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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칼럼] 이-팔 전쟁발 중동정세 불안과 한국 경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분쟁은 이미 선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이 협상은 없다고 단언한 가운데 하마스가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로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상군이 투입되면 인명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 속히 평화가 오기를 바래본다. 이-팔 전쟁을 오로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분쟁은 분명 이제 막 코로나 펜데믹을 벗어나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 큰 악재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바이지만, 이번 분쟁이 주변국의 참전을 의미하는 확전으로 번지지만 않는다면 일정 수준의 쇼크에서 악영향이 멈출 것이다. 악영향은 바로 국제유가의 상승이다. 최근 국제 유가는 안정세를 보이다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배럴당 90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50달러까지 갈 가능성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 정도 수준까지 국제 유가가 오르면 한국 경제에는 재앙이다. 한국은 2022년 원유소비량 기준으로 미국, 중국, 인도, 사우디,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7위, OECD 국가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특히 1인당 연간 원유소비량은 20.2배럴로 OECD 국가 중 4위, GDP1만 달러당 원유소비량은 6.3배럴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를 기업이라고 볼 때 국제 유가가 오르면 ‘대한민국’이라는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더 큰 비용 상승 압력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은 제품 가격이 비싸져 수출이 안 되거나 채산성 악화로 경제성장률의 하락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번 이-팔 전쟁이 국제 유가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 유가의 향방을 가늠해 보기 위해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이번 사태와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지구에서 교전(2014년7월8 ~ 8월26일)이다. 이때 개전일 두바이 유가는 배럴당 106.9달러에서 종전 시 100.5달러로 하락했다. 당시 국제 유가는 교전 전후로 100달러 수준을 상당 기간 넘어 있었는데 이는 분쟁 때문이 아니라 ‘아랍의 봄’으로 대변되는 중동 국가들 자체의 전반적인 정치 불안 때문이었다. 둘째, 보다 확전된 개념의 걸프전(1991년 1월17 ~ 2월28일)과 미-이라크전(2003년 3월20 ~ 4월 9일)을 들 수 있다. 이때의 유가 흐름은 오히려 전쟁이 시작되면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동 지역의 분쟁으로 국제 유가가 폭등했던 사례는 1차 오일쇼크를 유발했던 1973년의 4차 중동 전쟁(다수의 산유국 참전)이다. 이 때 국제 유가는 4배가 급등했던 것과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유가가 약 2.5배 상승했던 사례가 있다. 따라서 이번 이-팔 사태가 앞의 어느 사례를 따라갈지가 국제 유가의 향방을 가늠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첫 번째 사례, 즉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지구 내에서의 국지적 교전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또 한 가지 변수는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물론 주변 산유국과 미국까지도 이번 하마스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테러 수준의 공격이 아니고 로켓탄 수천 발을 사용하는 대규모의 공격이다. 즉 많은 준비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각국의 정보기관에서 이를 놓치기 쉽지 않다. 특히 주변 산유국들이 몰랐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어쩌면 이번 사태로 이전부터 관계 개선이 시급한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미국-이란 간 대화 채널에서 협상력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별 고도의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더라도 국제 유가를 크게 올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한다. 빨리 종전이 돼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그럼에도 왠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을 지워버리기는 어렵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E칼럼] 이-팔 전쟁과 석유파동 50년 주기설

지난 6일 유대교 축제일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발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1973년 10월 전쟁 발발 50주년인 이날 기습 도발했다. 더 많은 중동 나라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고 석유 전쟁에 협조하기를 유도한 것 같다. 전쟁 상황은 수시로 변하지만 일단 이스라엘의 전면 반격이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궤멸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위해 30만 명 이상의 예비군을 동원한다. 미국은 핵추진 항공모함을 이스라엘 앞바다로 전진 배치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완전히 사악한 행위’라고 언급했다. 미국과 서방 주도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시도 등 지역 긴장해소 노력이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단 부인하고 있지만 이란과 하마스의 연계가 밝혀지면 향후 확전이 불가피할 것 같다. 양측 사상자는 이미 2000명을 넘어서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제유가는 당연히 지정학적 위험을 반영하여 미국(서부 텍사스유)이나 유럽(브렌트유) 선물 시장에서 배럴당 80달러 후반으로 4% 가량 올랐다. 이는 금리 인상과 경기 부진으로 원유 수요 증가의 한계가 반영된 9월 마지막 주의 90달러 중반 수준에서 약 7∼8% 하락한 수준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산유국이 아니라서 원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이 원유 생산량 유지 정책을 견지할 것이어서 급변 상황은 진정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으로 원유·가스 감산을 시행할 처지가 못 된다. 1973년 석유 파동 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주요 아랍 국가들이 일제히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면서 강력한 석유 감산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그런 움직임은 아직 없다. 결국 산유국들의 동시다발적 감산과 수출통제 가능성은 거의 없어 50년 전 상황과는 다를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종래와 전혀 다른 다음의 에너지-석유 위기 대응 전략을 심각하게 그리고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 사실 1970년대 아랍 석유 금수조치의 충격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에너지 및 외교 정책의 주요 기반을 형성했다. 석유의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 가능성은 모두에게 ‘에너지 독립’에 대한 강박적인 탐구로 이어지게 했다. 미국은 셰일 붐으로 인해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독립’의 필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더욱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필요성으로 인해 에너지정책 수립 기반은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한 기술적-경제적 여건에 직면해 효율적 정책 구도 정립 방안이 혼돈 속에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해 많은 나라에서 이미 국민적 지지가 어느 정도 입증된 1970년대 식의 에너지정책을 주저 없이 채택하고 있다. 가격을 통제하고 에너지 독립을 중시하며 수입 감축을 추구한다. 이는 지금과 1970년대와 에너지 위험의 성상과 구조가 매우 달라졌다는 사실을 일정 부문 간과한 것이다. 지금 세계 에너지정책 기조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 심화, 분열과 보호주의 강화, 화석 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의 다소 ‘무질서한’ 전환 시도, 기후 변화의 영속적 폐해 가능성과 같은 종래와 다른 정책 수요가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결국 석유파동 5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1973년의 교훈을 냉철하게 되새겨야 한다. 필자는 ‘에너지 독립’이라는 개념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 (Chimera)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느 국가이든 오래 에너지 독립을 추구하지만, 깊이 통합되고 상호 연결된 세계 시장에서 그 독립 가능성은 매우 제약된다. 어떤 특정 산유국에서든 석유 공급 장애가 발생한다면 시장이 연료 가격을 결정하는 모든 국가의 유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순 석유 수출국의 지위를 가진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각종 연구에서 입증됐다. 따라서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단지 수입을 줄이거나 국산 생산증대보다 덜 사용하고 효율화하는 것에서 달성할 수 있다. 세계는 연비 기준을 부과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석유 사용감축 조치를 통해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에너지수입국의 경우 석유 위기에 따라 국가 차원의 원유 확보 장애 뿐 아니라 소비자 차원 적정가격의 휘발유 부족 사태에서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이는 유가 통제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채택된 복잡한 위험 할당 정책 때문이다. 석유 회사들은 정부 지침 등에 따라 원유 수입을 줄인 이후에 주유소 등 소매점에 대한 판매를 제한하는 시장 실패를 자초했다. 소비자 희생을 바탕으로 한 관-민 정책 야합으로 매도해도 할 말이 없다. 되돌아보면 1973년 당시 대부분의 석유는 장기 계약 형태였기 때문에 계약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대체공급원 확보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 현물 시장과 함께 다양한 대체에너지 시장, 그리고 청정 전환 시장이 잘 준비되고 갈수록 그 작동 효율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유럽의 러시아 가스 및 원유 가격 상한제 실시는 정책 실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격 신호 기능 약화는 항상 나쁜 선택이다. 더 많은 공급을 촉진하고 수요 억제를 통해서만 시장 및 정책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 그 대신 정책 당국은 시장 주도자 위치를 고수하기보다 저소득층과 취약 가구 지원과 보호에 더 큰 관심을 둬야 한다.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EE칼럼] 난이도 높아진 전력망 운영 해결사로 등장한 AI

1902년 6월부터 스위스 특허국에서 특허 신청 서류를 검토하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을 하던 아인슈타인은 이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1905년 여름, 아인슈타인은 다섯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중 하나가 <빛의 발생과 변환에 관한 하나의 모색적 관점에 대하여>라는 다소 모호한 제목의 논문이다. 광전효과를 다룬 이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탔다. 이 논문은 한 세기가 지나서 등장한 태양광 산업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태양광 발전이 태양 빛을 전기로 바꾸는 빛의 연금술이 된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바람을 이용한 배의 돛대는 노예와 함께 주요한 동력원이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풍차를 이용해 곡물을 빻았다. 네덜란드는 풍차를 제방 뒤쪽의 습지나 호수에서 물을 빼내 농경지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유럽의 풍차는 밀을 빻는 것부터 용광로의 풀무를 돌리는 등 다양한 산업적 용도로 활용됐다. 19세기에 증기기관이 발명되기까지 수 백년 간 유럽 산업에너지의 4분의 1은 바람에서 나왔다. 우리는 수시로 전등과 TV를 켜고 끈다. 전력망은 수시로 변하는 전력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급전가능(dispatchable)’한 발전원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를 켜는 순간 바로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태양이 얼마나 강렬하고 바람이 어느 정도 부는지에 따라 발전량이 수시로 달라진다. 이런 변동성은 태양광과 풍력 산업 성장에 장애로 작용한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많은 국가의 전력망은 에디슨과 테슬라가 살았던 100여 년 전 전력망을 처음 도입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게 작동한다. 날씨, 시간대, 요일, 계절에 따라 전력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대규모 송전 또는 발전 시설의 예기치 않은 손실과 같은 우발적 상황에 대한 관리도 중요해진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이런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는 발전소, 전력망, 수요 측 대응, 에너지 저장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70% 이상을 차지할 때 기후 조건에 따라 비용 최소화를 위해 유연성 자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이 최적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에 따라 온대, 열대, 건조, 대륙성 기후와 같은 네 가지 기후로 구분해 살펴보자.여름이 무더운 ‘온대 기후’에서는 여름에 냉방 수요로 인해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고, 겨울에 난방 수요로 인해 이 보다는 작은 피크가 발생한다. 겨울에는 평균적으로 풍속이 높아 풍력이 피크 수요 대응에 도움이 되고, 일사량과 강수량이 많은 여름은 태양광과 함께 수력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 기후’에서는 연중 전력 수요가 일정하다. 그러나 계절별로 풍속이 크게 달라지므로 건기에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 우기에는 발전량이 떨어져 수력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조 기후’에서는 계절별 전력 수요가 일정한 편이다. 태양광 발전량도 연중 균일하지만, 풍력 발전은 연초의 짧은 우기 동안에는 크게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성 기후’에서는 여름에 일사량이 최고조에 달하고, 겨울에 강한 바람이 분다. 태양광과 풍력이 상호보완적이므로 계절적 변동성에 대응하는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는 7년 만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엘니뇨로 인해 일반적으로 겨울에 아시아 대부분과 캐나다 서부의 날씨가 따뜻해지고, 중국 남부와 미국에 강수량이 늘어난다. 여름에는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특히 중미에 건조한 날씨를 일으킨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인 파나마 운하에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배가 산을 넘어야 해서, 갑문에 물을 채워 배를 높이 띄워 운하를 지나가게 한다. 가뭄으로 인해 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가툰호(Gatun Lake)의 수위가 낮아졌다. 이에 최근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 수가 줄었다. 전체 LNG 거래의 약 20%를 차지하는 아시아로 향하는 미국 LNG 선박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 발전소는 신속하게 켜고 끌 수 있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변동성에 대한 백업 발전으로 유용한 데, 엘리뇨의 영향 때문에 가스 가격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기후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쳐왔고 지금도 그렇다. 농경사회의 농민은 갈라진 논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도했고, 따뜻한 햇볕으로 벼가 익기를 소망했다.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시 기후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그러나 우리는 천수답 앞에서 기우제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산초 판자가 ‘아무리 봐도 풍차가 틀림없다’며 말렸지만, 30개가 넘는 거대한 괴물을 향해 창을 겨누고 돌격한 돈키호테가 될 필요도 없다. 발달한 인공지능과 모델링 기법을 토대로 기후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기후를 예측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이슈&인사이트] 온플법, 서두를 일 아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얼마 전 ‘글로벌 디지털 전쟁, 플랫폼 자율규제가 해법’이라는 글에서 "급변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모든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은 국내 플랫폼의 혁신 동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민간 주도의 플랫폼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하고 있으며 …"라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작 단계인 플랫폼 자율규제의 성공을 위해 법ㆍ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플랫폼 자율기구 설립ㆍ지원 근거와 참여 인센티브 등을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같은 자율규제방식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국내 빅테크 기업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미 8월 자율규제 방안 마련을 위한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공정위는 본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라는 단행법을 제정할 계획이었으나 근래에 입장을 바꿔 단행법 제정보다는 기존의 공정거래법 개정과 자율규제 제도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율규제에 초점을 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온플법은 유럽연합(EU)의 DSA(디지털서비스법)과 DMA(디지털시장법)과 유사한 규제방식을 취하기로 해 시장 관계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DSA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대형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사전규제 도입이 목적이고, DMA는 EU 단일 시장의 디지털 부분에서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거나 시장지배력보유가 예견되는 게이트 키퍼에 대한 사전규제 도입이 목적이다. 이처럼 DSA와 DMA는 사전규제방식을 취하는데, 온플법 역시 사전규제방식을 취할 예정이다.이에 업계에선 자율규제와 사전규제 원칙이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 내 독과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내 온플법의 도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EU의 DSAㆍDMA 도입 배경이 한국과 한참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EU는 EU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애플, 구글, MS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견제하고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DSA와 DMA를 제정한 것이지, 자국 기업을 규제하려는 목적에서 제정한 게 아니다. 이에 반해 온플법은 한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목적이다.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등 토종 자생 플랫폼이 자국 시장을 선점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들이 국내 시장을 독식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국제사회에서 한국 플랫폼 기업은 스타트업 수준이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온플법 제정은 플랫폼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악화시켜 국가 경제 성장을 발목잡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온라인 플랫폼 관련 글로벌 스탠다드가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온플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가뜩이나 온플법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 규제들은 이미 공정거래법, 대규모 유통법, 전기사업법 등 기존 법령으로도 충분히 제재가 가능해 이중규제 여지도 있다. 지금 이 순간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 소통, 검색, 쇼핑, 문화생활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슈퍼앱’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SNS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고,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보다가 인상 깊었던 OST를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바로 들을 수 있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사업 확장 목적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측면이 크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도 이같은 세계적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한 노력을 규제로 옭아매어 한국형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싹을 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한국 반도체 장비 유예는 윤 정부 외교 성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을 무기한 유예했다. 두 회사의 중국 내 반도체공장을 미국 수출관리 규정에 따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앞으로 별도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전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종전처럼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내 공장에 들여보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 쑤저우에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 다롄에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고, 자국우선주의의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 일련의 정책과 입법을 추진해 왔다. 특히 상무부는 안보 전략 차원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과 기술 절취 등을 막고자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18nm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 등을 초과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multinationals)이 소유한 경우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시 한미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중국에서 운영 중인 삼성반도체, SK하이닉스 반도체 등 한국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1년 동안 수출 통제 유예를 받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조치의 유예 연장을 호소해 왔고 한국 정부도 추가 연장을 목표로 협상을 벌여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출통제 유예 조치가 중국 내 공장의 안정적 운영을 좌우할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장비를 상시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장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반도체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걷히게됐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번 결정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며 "우리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 운영과 투자 관련 불확실성이 크게 완화됐고 장기적으로 차분하게 글로벌 경영 전략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중 대결 과정에서 굳어지고 있는 디커플링과 그에 따른 두 개의 공급망 체제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안보 전략의 중요한 과제다. 경제와 안보가 연결된 상황에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운명을 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벅차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생존과 대한민국의 안녕이 걸린 문제다. 정부가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치열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 이번 반도체 장비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은 정부의 전략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작년 바이든 대통령 방한, 올해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공급망과 수출 통제와 관련, 긴밀한 공조 의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왔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반도체 수출 통제 무기한 유예하는 결실을 보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다방면의 영역에서의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한국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인 만큼 치밀한 전략과 민관협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기자의눈] 허울 뿐인 인구특위…저출산 해법 모색 나서야

대한민국 인구수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9명이었다.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 사는 서울 지역에서는 출산율이 무려 0.59명으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 이하인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대한민국이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저출산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여야가 합의해 올해 2월 인구위기특별위원회(인구특위)를 출범했다. 인구특위는 여야가 특위 구성에 합의한 지 4개월 만인 3월 31일 첫 회의를 열었다. 당시 ‘늑장 특위’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음에도 한 달 뒤에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도 주요 국무위원들이 불참하면서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6개월 만인 이달 5일 3차 회의를 열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이달 말로 활동이 종료될 예정이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5년 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28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활동인구 확충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예산 투입에만 급급하다 보니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저출산의 주된 원인들인 높은 부동산 가격, 젊은 층의 가치관 변화, 고용 불안, 젠더 갈등, 출산·육아 비용 부담, 수도권 쏠림 현상과 같은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출생 현상의 배경이 되는 현실은 복잡다단한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대책을 주문한 것이다. 올해 안에 저출산에 관련한 대책이 나온다고 해도 입법 과정을 거치면 한참 뒤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정치적 논란으로 인해 저출산 대책을 논의할 시간을 수 개월이나 허비했는데 국민들은 손놓고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정쟁에 휩쓸려 유야무야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인구 위기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와 국회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금 투입 접근 방식인 현금 살포식 지원은 일차원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각도의 시각과 장기적인 관점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과 적극적인 실행이 시급하다. ysh@ekn.kr윤수현 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 ‘좋은 이모님’ 구하기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논쟁

최근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이 낳은 기쁨도 잠시, 육아 문제로 고통을 겪는 부모들은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나"라고 푸념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1~3년 넘게 기약 없는 대기 줄을 서야 한다. 정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 역시 대기 줄이 긴데다 소득이 높은 맞벌이 부부는 소득 기준에 걸려 언감생심이다. 한국은 기혼 여성 6명 중 1명꼴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웬만한 봉급 생활자의 한 달 치 월급을 전부 바쳐야 할 정도로 육아비 부담이 높기 때문이다.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가사도우미의 도움이 절실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는 내국인과 중국 조선족에게만 허용된다. 다른 나라 출신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내국인은 물론 조선족 가사도우미 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가사도우미 인건비도 치솟고 있다. 출퇴근하는 내국인 가사도우미의 경우 서울 기준 350만~450만원에 달한다. 그나마 조선족 도우미는 내국인에 비해 월 30만~50만원 낮아 맞벌이부부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를 선호한다. 조선족 도우미의 장점은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점과 함께 문화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때로는 담합도 하기에 시세에 맞춰 인건비를 계속 올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 이후 조선족 도우미들이 입국하지 못하면서 임금이 껑충 뛰어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여 명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전망이다. 2024년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이니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월 인건비는 최소 206만740원인 셈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나뉘어 있다. 찬성 쪽은 ‘싼 비용’으로 가사노동 문제와 육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지금보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본국보다 높은 임금으로 만족을 느끼는 ‘윈-윈’ 정책이라는 점을 든다. 이에 비해 반대 쪽은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소통의 문제와 가사도우미를 빌미로 한 불법체류 증가, 내국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여부를 놓고도 견해가 극명하게 나뉜다. 최저임금 적용을 주장하는 쪽은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0호 협약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대 쪽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가사비용 부담을 더는 것인데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도우미 인건비가 200만원대 중반으로 30대 여성 중위소득(271만원) 수준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저출생대책으로서 효과가 있을까? 1970∼1980년대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도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2년 싱가포르 출산율은 1.05명이고 홍콩은 우리보다 낮은 0.68명이다. 그렇다면 저출생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답은 단순 비교가 불가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정책목표는 당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 증가에 초점을 맞췄고 일단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원인 중 육아가 42.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미혼여성이 꼽은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정책 설문에서도 ‘경력 단절 예방 지원(29.4%)’이 2위에 올랐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도입은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모든 문제의 만능해결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내국인 가사도우미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이 사회적 인식과 낮은 급여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의 가사근로자법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내국인 가사도우미가 어느 정도 늘어날지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 사실상 외국인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경제임에도 외국인에 대한 국민 수용성은 상당히 낮다. 이들에게 빗장을 열기 시작한 만큼 이제는 동반자로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에서 출생률 꼴찌인 한국 부모들이 희망하는 저출생 해법은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긴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 양육에 타인의 도움을 지원받는 것보다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도록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제대로 실천만 된다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EE칼럼] 도시가스 사각지대 농촌 난방, 해법은 바이오 매스

작년 겨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 고유가로 난방비가 폭탄을 맞았다. 국민들은 전년보다 50% 정도 늘어난 도시가스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난방비 걱정은 도시보다 시골이 더 심하다. 지금은 읍단위까지는 도시가스(LNG)가 들어오지만 그 외 대부분의 농촌 지역은 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취사에는 석유가스(LPG)를 쓰고 난방은 석유나 LPG, 심야전력을 이용한다. 그래서 보통 때도 농촌지역의 난방비는 도시 가정보다 많이 든다.요즘 필자의 고향 인근 담바우마을인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는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난방 공사가 한창이다. 약 50억원의 국·도비 지원을 받아 방치된 초등학교 폐교부지에 목재칩 보일러와 가스화 발전설비를 갖추고,인접한 장암리와 신대리 50여가구에 열배관을 연결하는 한편 가구마다 열교환기를 설치해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공사다. 여기에 쓰이는 연료(목재칩)는 괴산군에서 군유림 간벌 등을 통해 공급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이오매스가 가정의 주 연료였다. 60대 이상에겐 어린 시절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결과 당시 우리나라 마을 주변의 산은 모두 민둥산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정의 연료는 연탄과 석유로 대체됐다. 부엌에는 석유곤로가 취사를 담당하고 아궁이에선 구공탄이 장작을 대신했다. 1986년 평택 인수기지에 첫 입항한 천연가스(LNG) 보급은 늘어나는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단독주택까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제 가정 연료의 총아는 명실상부 도시가스의 시대가 됐다. 가정 연료의 변화는 황토빛으로 먼지를 날리던 민둥산을 푸르른 숲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제 동네 야산은 우거진 잡목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밀림이 됐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타다가 자칫 벗어나면 산중에서 헤매기 일쑤다. 잡목 숲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산림청에서는 해마다 벌목을 통해 수종을 개량하기도 하고 잡목을 걷어내는 간벌을 한다. 새롭게 연료로 복귀하고 있는 바이오매스는 이전과 활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래식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아궁이나 화덕에 바로 나무나 짚 등을 태워서 용기를 데우거나 방을 덥히는 방식이라 열효율이 5~8%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목재칩을 만들어 보일러 연료로 쓰거나 가스화해 연료로 사용하므로 열효율이 높고 배기 중의 오염물질 관리도 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적인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분류한다. 그렇다고 바이오에너지가 항상 재생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연간 재생산 범위 내에서 채취가 이뤄져야 한다. 해마다 자라는 식물량이 채취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예전처럼 민둥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생에너지로 분류한 중요 근거인 기후변화 저감 연료라는 점은 전주기 탄소배출을 평가해 인정해야 한다. 바이오매스는 성장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고 분해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므로 ‘탄소중립적’이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목재칩은 해상 운송 에너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탄소중립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국제바이오에너지파트너십(GBEP)에서는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과 임산자원의 수확 수준 등 24개 환경·사회·경제적 요인을 고려해 바이오 에너지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것을 권고한다.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바이오매스의 중요한 장점의 하나는 바로 ‘자립에너지’라는 점이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94%, 연간 250조원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자립에너지의 수입대체 효과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즉시 대응이 가능한 에너지라는 점도 장점이다. 담바우 마을의 지역난방과 발전은 마을 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에너지 소비의 핵심 시설을 주민이 직접 소유, 운영하는 것은 지역경제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한다. 일방적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에너지를 사용하던 소비자에서 에너지 생산자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로 유출되던 재화가 지역경제 내에서 순환하게 된다. 지역난방의 운영이 정착되고 경험이 쌓이면 지역에서 다른 에너지 산업으로 확대할 수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축산농가의 폐기물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다. 축산폐기물의 해양 투기가 금지된 2012년 이후 폐기물 처리는 축산농가와 정부의 비용이다. 하지만 축산폐수의 가스화를 통해 에너지를 추출하고 나머지로 액비를 만들면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협동조합이 주체돼 공공시설이나 공유지에 태양광 설비를 운영하면 안정적인 농가 수입은 물론 자립에너지 증가로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촌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은 전기농사와 다름없다.담바우마을을 비롯해 횡성, 완주, 양평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림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주민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운영돼 지역 에너지 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기자의 눈] 정부, 전기차 충전 인프라 문제 외면 그만해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변하고 있다. 국내에선 상황이 다르다. 업계가 분주히 사업 재편과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전기차 판매량은 주춤하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전기차 보조금 인상 정책 등을 내세워 수습에 나섰지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은 아직이다. 문제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는 지난 5월 기준 누적 등록 대수 45만대를 돌파했지만 고속도로의 전기차 충전소는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한국도로공사가 국정감사를 위해 제출한 ‘전기차 충전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총 206개인데 비해 전기차 충전소는 1015개로 휴게소 당 평균 4.9개에 그치고 있다. 또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50kw급 급속충전기는 892기(88%), 200kw급 초급속 충전기는 123기(12%)에 불과하다. 고속도로 휴게소 시설에 평균 4.9개 설치된 전기차 충전시설에 이용자들이 몰릴 경우 충전에 많은 불편함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고속도로 충전소에 가보면 상용 전기트럭이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용트럭의 경 우 주행거리가 약 210km 밖에 되기 때문에 고속도로 충전소를 보통 이용 한다. 때문에 일반 전기차 소비자들은 고속도로 충전소에서 속절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번 추석 황금연휴 동안에도 충전소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전기차 행렬을 여러번 목격했다. 정부는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세에 접어든 데 대한 원인을 ‘가격’에서 찾은 모양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보조금을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욕을 끌어올리는 차원이다. 이로써 기본 판매 가격 5700만원 미만의 전기 승용차에 지급하는 국비보조금이 기존 최대 680만원에서 780만원까지 늘어났다. 전기차 제작사가 전기차 가격을 할인해주면 할인폭에 비례해 보조금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물론 가격도 중요하다. 문제는 아무리 저렴해도 충전할 곳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전기차도, 공을 들인 정책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들과 전기차 구매 의향자들이 원하는 건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보조금의 문제가 아니다. 충전 인프라 문제가 해결돼야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전기차를 구매한다. 정부는 장기간,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충전 인프라 확충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kji01@ekn.kr김정인 산업부 기자 김정인 산업부 기자

[EE칼럼] 국제감축 활성화를 위한 그린ODA의 역할

올해 4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과 녹색성장 실현을 위한 국가 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는 NDC(국가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전환, 산업, 국제 감축 등 부문별 감축목표를 조정했다. 감축 준비가 안된 산업 부문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목표를 낮췄고,국제 감축 부문은 2030년에 3750만톤을 확보해야 하는 상향 목표치를 부여받았다. 당시 파리협약 6조2항에 기반해 우리 정부와 양자협력을 맺은 국가는 베트남 한 나라 뿐이었다. 오랜 기간 준비해온 덕분에 20개 이상의 국가들과 양자협약을 맺어 국제 감축으로 10년간 1억톤을 NDC 목표에 활용하겠다고 제시한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준비가 안된 건 사실이었다. 양자협력 대상국 확대, 시범사업 추진, 예산 마련 등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항들이 다행히도 매우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외교부의 노력으로 몽골, 가봉, 우즈베키스탄, UAE와 협약을 체결했고 페루, 모로코와는 체결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 20여개국을 우선 협력국으로 정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동시에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는 감축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진출을 지원할 시범사업 추진을 진행하고 있다.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속도감을 반감시키는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6조2항 양자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국과의 상응조정, 즉 온실가스 감축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양국 간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세부 지침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이를 위한 법령이 부재하고, 등록부 등을 마련할 역량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UNFCCC는 6조2항 사업 준비를 위해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가 2018년 기업들과 함께 미얀마에서 UN의 CDM(청정개발메커니즘) 사업을 진행할 때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고효율 쿡스토브 보급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하려면 땔감 사용량을 절감해 산림의 황폐화를 얼마만큼 방지했는지를 입증해야 했다. 당시 미얀마는 UN에 공식적으로 제출할 수 있는 산림 면적에 대한 통계 구축이 안돼 있어 베이스라인 선정이 어려웠다. 결국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 미얀마 산림청과 함께 1여년간 국가 통계작업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사업지연이 발생했다. 지금 6조2항 사업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문제점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도 제도를 준비해 추진하는 상황인데, 개도국 역시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 인프라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결국 역량 강화가 동시에 뒷받침 돼야 한다. 파리협약 6조8항 비시장 메커니즘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6조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ODA등을 활용해 지원하는 모든 것이 포함됨을 의미한다. 미얀마 사업은 기업들과 논의해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ODA는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지원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계획돼 있는, 또는 앞으로 수립할 그린ODA 계획이 국가 NDC달성을 위해 추진하는 국제 감축사업과 전략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 발생한, 앞으로 예상되는 개도국들의 어려움들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시의적절한 역량강화 지원이 ODA를 통해 뒷받침돼야 한다. 당장 베트남 정부는 6조2항 추진을 위한 법령 수립을, 우즈베키스탄은 ITMO 잠재량 파악에 대한 지원을 우리 정부 또는 국제사회에 요청하고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개도국 온실가스 통계 구축 역량지원을 해왔고, 역량강화를 위한 지식공유 사업은 오랫동안 정부가 ODA를 통해 지원해왔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이런 사업들을 잘 취합하여 국제감축 추진을 위해 협의되고 있는 중점협력국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지원해 사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국제감축 사업은 궁극적으로 국내 기업의 기술 협력을 통해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해 글로벌 기후대응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불합리한 관행이 있다면 과감히 깨고 우리와 개도국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개도국의 역량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린ODA의 핵심이다.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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