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외연 확장” 언급에 文 “국민 통합” 강조…당청갈등 속 온도차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첫 공식 오찬 회동에서 민주당 단합에 뜻을 모았다. 정치권에서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당청 갈등과 계파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상징적 행보라는 평가와 함께, 실제 갈등 해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오찬 회동에서 “우리는 모두를 대표하고 모두를 위한 정치와 행정을 해야 한다"며 “내부 단합이 매우 중요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과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내부 단합과 외연 확장이라는 두 가지를 조화롭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재명 정부의 또 하나의 시대적 과제는 국민 통합"이라며 “국민 통합으로 나아가려면 민주당의 단합이 출발점이고 민주개혁 진영의 더 큰 단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통령뿐"이라며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해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단합'을 이야기했지만,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드러났다. 이 대통령의 '외연 확장' 발언은 민주당 내부 결속을 바탕으로 중도층과 비지지층까지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혀 안정적인 국정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에 무게가 실렸다. '구조적 다수'라는 표현 역시 외연 확대를 통한 정치적 기반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 통합'은 정치적 지지층 확대보다 사회 전체의 갈등을 줄이고 국정 운영의 통합성을 높이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그는 민주당 단합을 국민 통합의 출발점으로 제시하면서도 최종 목표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차이는 두 사람이 처한 위치와 역할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국정을 책임지는 현직 대통령인 이 대통령은 국정 추진을 위한 정치적 기반 확보를, 전직 대통령인 문 전 대통령은 국정의 포용성과 통합의 가치를 주문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외연 확장은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히는 전략이고, 국민 통합은 국정 운영의 목표를 제시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긴장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각각 다른 키워드를 내세운 것은 여권 내부에 서로 다른 문제의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대목으로도 읽힌다. 회동을 두고 당내 계파 간 평가도 엇갈렸다. 친명계인 한 초선 의원은 본지에 “대통령 두 분이 잘하셨다. 통합과 화합, 협력의 길을 가야 되니까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씀을 나눴다"며 “이런 통합 행보가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친청계 의원은 “통합은 만남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앞으로도 실제 당 운영과 국정에서 보여져야 통합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동은 전·현직 대통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단합의 필요성에는 뜻을 모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적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여운을 남겼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선관위 무능” 한목소리 비판한 여야, ‘올공 조사’엔 이견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조사 중인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부실한 자료 제출과 대응 체계가 집중 질타를 받았다. 여야는 당시 현장 대응과 의사결정 과정을 확인할 핵심 자료가 누락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점을 한목소리로 비판하며 선관위 책임론을 제기했다. 국조특위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2차 기관보고를 실시했다. 지난 1차 보고 이후 8일 만이다. 이날 국조특위는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박정보 서울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 당시의 보고 체계와 의사결정 과정, 기관별 대응 등을 집중 질타했다. 앞서 1차 기관보고에서는 중앙선관위원과 서울시·송파구 선관위원장 등 증인 16명이 불출석해 특위 위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이들은 뒤늦게 출석해 사과했다. 이번 2차 보고에는 여야가 채택한 증인 60명 가운데 4명을 제외한 전원이 출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선관위가 선거 당일 접수된 민원과 초기 대응 보고서 등 핵심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은 점이 집중 도마에 올랐다. 여야 모두 당시 상황을 복기할 자료조차 부족한 것은 선관위의 상황 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차 기관보고 때는 증인으로 나오지도 않더니 자료도 제대로 내놓지 않고, 내놓은 자료도 엉망"이라며 “선거 당일 상황실로 접수된 항의 전화나 민원 상세 내역을 달라고 했더니 접수·관리하지 않아 제출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범수 국민의힘 특위 간사는 “선관위에 자료 제출을 요청했는데 업무시간이 끝난 뒤 자료만 보내놓고 연락하면 자동응답기만 연결된다"며 “아직도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선관위를 대한축구협회에 빗대어 “두 기관 모두 내부 통제를 거부해서 폐쇄된 카르텔을 갖고 있고 무책임·무능력으로 실종된 리더십, 실패로부터 학습되지 않은 반복되는 무능이 비슷하다"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은 선관위의 내부 통제와 기록 관리 부실 문제도 집중 부각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 당일 핵심 지역별로 어떻게 초기 대응을 했는지 보고서를 요청했는데 사건·사고로 인지하지 않아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국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는 2일 예정된 잠실 올림픽공원 현장조사를 앞두고 경찰력 지원 방식을 놓고는 입장차를 드러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경찰이 미리 진입로를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국민의힘은 공권력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용만 민주당 의원은 “필요하다면 시위대 측 인사와 함께 들어가 점검하고 오는 것이 목표인데 경찰 협조도 없이 어떻게 거기를 들어간단 말인가"라며 “책임 있는 현장조사를 위해서는 분명히 (경찰에) 공문을 보내고, 필요하다면 시위대와 함께 들어가 점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투표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참관인도 없이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해 억지로 가져간 것도 큰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며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히 (시민들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고, 여의치 않으면 현장조사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위원장을 맡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일단 의결을 한 뒤 서울경찰청과 송파경찰서에 국정조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질서 유지 차원의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법사위 장악’ 민주당, 검찰개혁·부동산 세제 입법 속도낸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까지 확보하면서 검찰개혁과 부동산 세제 개편 등 주요 개혁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법사위는 국회 본회의에 앞서 법안을 최종 심사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꼽히는 만큼 위원장 선출은 향후 입법 일정과 국회 운영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일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 출신 조정식 국회의장은 지난달 30일 저녁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고 법사위원장으로 민주당 4선인 서영교 의원을 선출했다. 민주당은 이번 원 구성에서 18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11곳의 위원장을 맡게 됐으며, 나머지 7개 상임위원장은 야당 몫으로 배분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야는 본회의 직전까지 법사위원장 배분을 놓고 협상을 이어갔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은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제1야당이 맡아온 관례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원활한 국정 운영과 개혁 입법 추진을 위해 법사위를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법사위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자구를 심사한 뒤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하는 국회의 핵심 상임위다. 이 때문에 법사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법안 처리 속도와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주당은 법사위 확보를 계기로 검찰개혁을 비롯한 주요 개혁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검찰개혁 완수와 민생·개혁 입법의 신속한 추진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관련 법안 처리에 힘을 실었다. 한병도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개혁의 마지막 퍼즐인 형사소송법 개정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원내대표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 구조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권력 분립의 원칙을 중대하게 훼손해 왔다"며 “원내 지도부와 정책위·법사위원들은 형사소송법 개정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부동산 보유세를 비롯한 세제 개편 법안 역시 법사위 심사를 거쳐야 하는 만큼 처리 절차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사위를 여당이 맡게 되면서 검찰개혁뿐 아니라 주요 세제 개편 법안의 입법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측에 “야당에 법사위원장을 주는 전통을 되살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합의가 불발됐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법안 처리를 지연시켜 왔다고 주장하며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진 법사위를 여당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한편 민주당은 18개 상임위 가운데 법사위 외에도 10곳을 더 가져갔다. 정무위원장에는 당 사무총장인 유동수 의원이 선출됐다. 재정경제기획위원장은 조승래 의원이, 국방위원장은 진성준 의원이 각각 뽑혔다. 또 운영위원장에는 한병도 원내대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에는 송기헌 의원, 행정안전위원장에는 김영진 의원이 선출됐다.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이재정 의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은 서삼석 의원,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각각 김정호 의원과 이광재 의원이 맡게 됐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위원장 선출을 주도한 것을 두고 “오만의 정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조 의장이 11개 위원회 위원을 강제로 선임해 (우리 당에) 통지했다"며 “각 위원회에 강제로 선임된 의원들의 '위원 사임의 건' 공문을 국회 의사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11개 위원회 위원장 선출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갈등이 표출된 만큼 나머지 7곳의 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文 맞은 李대통령, ‘통합 밥상’ 내놨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취임 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첫 공식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오찬 메뉴에 관심이 쏠린다. 통상 대통령과의 식사 메뉴에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이날 청와대에 따르면, 첫 번째 메뉴로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 전 대통령과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 대통령을 위한 안동 종가음식인 수란채가 나왔다. 수란채는 안동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올리는 전통 한식이다. 닭고기, 문어, 각종 데친 채소에 수란을 곁들여 잣 국물을 부어 먹는다. 생선을 좋아하는 문 전 대통령을 위한 남해 여름 제철 생선인 달고기, 이 대통령이 좋아하는 경북 향토 음식인 배추전을 한 접시에 모아 조화롭게 내놓은 전 세트도 나왔다. 주메뉴는 한우 갈비찜 구이였다. 식전 차담에는 개성주악, 삼색 매작과, 사과 정과, 배정과 등 다양한 한과와 대추차가 나왔다. 후식으로는 모둠떡과 과일화채가 준비됐다. 청와대는 “문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생선류이자 여름 제철 음식으로 최고의 보양식인 민어탕과 통합의 상징인 비빔밥"이라며 “퇴임 이후 청와대를 다시 찾은 문 전 대통령을 환영하는 메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행사는 취임 직후부터 추진됐지만 국정 일정으로 미뤄지다 양측 일정이 조율되면서 성사됐다. 이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배우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이슈&인사이트] 지구촌적 불안의 원인은?

21세기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불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불안의 중심에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달러는 국제 금융의 중심이고,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 혁명의 심장부다. 그럼에도 미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 불안해 보인다. 그리고 그 불안은 세계 곳곳을 흔드는 외교와 군사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벌이는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혁신 경쟁이 아니다. 반도체와 희토류, 데이터센터, 전력망, 해저케이블, 개발원조, 금융제재까지 모두 하나의 전략 아래 묶여 있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전략이 되었다. 왜 미국은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것일까. 답은 중국에 있다. 중국은 제조업 규모에서 이미 미국을 앞질렀고,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희토류 정제, 일부 AI 응용기술에서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미국 중심 질서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세계는 더 이상 단극 체제가 아니다. 문제는 미국은 경쟁자를 단순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상대의 성장을 자신의 쇠퇴로 해석한다. 그래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대신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군사동맹을 확대하고, 경제제재를 강화하며, 기술을 안보 문제로 바꾸고, 금융을 외교의 무기로 활용한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상당수 갈등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이라는 직접적인 원인과 함께 유럽 안보 질서와 NATO 확대라는 더 숨가쁜 상황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원이 지역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란과의 긴장 역시 핵문제만이 아니라 중동의 세력균형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에서도 제재와 외교적 압박은 오랫동안 미국의 영향력 행사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이들 사안은 각각의 원인이 달라,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세계 주요 분쟁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종종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점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 그 국제질서는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미국은 스스로를 보편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은 패권이 흔들릴수록 예외를 만들기 시작한다. 동맹국에는 관대하고 적대국에는 원칙을 적용한다. 국제법은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인권은 외교적 언어가 된다. 규범은 점차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전략적 자산으로 변한다. AI 시대는 이러한 모순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요구하고, 데이터는 전력을 요구하며, 전력은 희토류와 반도체를 요구한다. 결국 AI 경쟁은 광물과 항만, 해저케이블과 전력망, 금융과 군사동맹까지 하나의 거대한 지정학으로 연결된다. AI는 새로운 산업혁명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냉전의 기반이 되고 있다. 패권국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절대적으로 강할 때가 아니라 상대적인 쇠퇴를 자각할 때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는 점점 더 많은 자원을 군사와 제재에 투입하고, 경쟁자는 더욱 빠르게 대안을 구축한다.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진영으로 나뉘고, 중간국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가 승리하느냐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패권 경쟁 자체가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빈곤, 난민, 전염병 같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여지를 점점 좁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인류를 위한 기술이 될 것인가, 아니면 패권을 위한 무기가 될 것인가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그리고 지금 세계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이 아니라, 자신의 쇠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존 패권국의 착각 때문일지 모른다. 성일권

[이슈&인사이트] 이란 전쟁 종전 이후 우려되는 미국 리더십 위기

지난 6월 18일 미국과 이란의 이란 전쟁 종결 양해각서 내용이 공개된 이후 국제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미국이 공들여 진행한 합의의 결과가 실망스럽다는 평가이다. 일부 언론은 합의 내용을 보면 오히려 이란이 승전국 같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이 양해각서를 보면, 1단계에서 전쟁 즉시 종결, 미국 봉쇄 해제 및 이란의 호르무즈 개방, 이란산 원유 제재 해제와 이란의 동결 해외 자산·자금 이용을 허용하고, 2단계에 가서 이란 핵을 영구적으로 불능화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미국이 2단계 목표를 완전히 달성한다면, 우크라이나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번 전쟁을 결심한 미국의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각서에 문제가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3,000억 불에 달하는 이란 재건 자금을 지원하는 조항이다. 미국이 이란과 종전 조건으로 이란 자금 동결 해제와 원유 수출 개재 허용 등 당근을 줄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핵 포기 확정도 하기 전에 3,000억 달러의 재건 자금까지 대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나쁜 행동을 해 온 이란에 대한 과분한 보상이다. 이스라엘이 사주했다는 등 과격한 주장이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번 전쟁이 이란 핵 능력 불능화 및 수만 명의 자기 국민을 살해하고 주변국에 테러와 혁명을 수출하는 악의 정권 축출이 목표였다. 그러나 미국이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급진 이슬람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오히려 이란 급진 정권에 날개를 달아 줄 동결 자금 해제, 원유 수출 재개 허용, 3,000억 불 재건 자금 지원 등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버티기만 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나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너무나 서둘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신봉자인 마가(MAGA)를 중심으로 공화당이 지지했지만, 반대도 많았다. 더군다나 이 전쟁이 초래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중하층민이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핵심 세력이지만, 오히려 트럼프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다. 이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본 국제사회가 아무리 비난해도 트럼프가 신경을 안 쓰는 이유는 본인을 지지하는 미국민만 바라보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유권자만 미국 대통령을 선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지지자만 아우르면 된다. 이런 소수 극렬 추종자만 바라보는 팬덤(열성팬)·인기영합주의 정치는 이미 전 세계에 만연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한국도 좌우를 막론하고 지지자만 바라보는 팬덤 정치에 올인(all-in)하고 있다. 아무리 정치를 못 해도 견고한 팬들의 지지만 있으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트럼프의 마가(MAGA) 기반 팬덤 정치가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재선된 가장 큰 이유는 급진적인 '정치적 올바름' 사상에 매몰된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이 워낙 잘못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너무 못해서다. 이번 이란 합의가 비겁하거나 즉흥적으로 보인다면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에 대해 가지고 있던 비교우위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가 생각하던 강하고 정의로운 미국의 이미지는 퇴색했다. 이미 많은 미국민이 양극화한 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관심을 잃었다. 더 이상 미국이 강하고 정의로운 나라라는 믿음이 사라지면, 희망과 기대를 잃은 미국민은 점차 냉소적 고립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 미국 정치의 실패는 미국의 영향력 훼손으로 그리고 국제사회 미국의 리더십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은 막강한 영향력과 국력을 기반으로 국제사회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상적인 질서로 유지했고, 이 때문에 대한민국 같은 많은 나라가 번영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미국의 성급한 결심이 불확실한 미래를 가속할 수 있는 징조여서 우려된다. 만약 미국 리더십이 이전 같지 않다면 한국도 독자생존의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길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기와 충돌이 확산하는 현재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bienns@ekn.kr

봉하 간 송영길, 맞받은 정청래…與 ‘친노 적통’ 경쟁 불붙었다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친노 적통'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부각하며 정청래 전 대표를 겨냥했고, 정 전 대표는 “소모적인 적통 논쟁을 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전당대회 초반부터 핵심 지지층을 겨냥한 정통성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송 의원은 30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며 “누가 적통이라고 자신을 내세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정 전 대표와의 '친노 적통' 논란과 관련해 재차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서 송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 전 대표가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 불참했다'는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겠다며 “사과한다"고 밝혔다. 전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는 완전히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져 장례식에 참석도 못 했다"고 말한 데 대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은 것이다. 송 의원은 장례식 불참 발언을 사과하면서도 정 전 대표를 향한 '친노 적통' 문제 제기는 이어갔다. 그는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크다"며 “제 발언의 요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 모두가 '지못미', 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기 노사모 출신이긴 하지만 정동영 정통모임 핵심으로 활동하면서 노사모와 멀어진 정청래 후보가 다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적통을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또 “노무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고, 그 선봉에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즉각 반박했다. 그는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제 입으로 적통의 적자도 꺼낸 적이 없다. 그럴 생각도 없다"며 “소모적인 적통논쟁 하지 말자"고 말했다. 정 전 대표는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고 비틀어서 '적통이네 아니네'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맞장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저는 그냥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동지이자 전우로 남고 싶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친정청래계 의원들도 반격에 나섰다. 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민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깔끔하게 사과만 하면 되지, 왜 또 다른 말을 만드냐. 누가 적통이란 말을 썼냐"며 “송 의원님, 전당대회의 시작을 퇴행적 모습으로 만들지 말라"고 비판했다. 최민희 의원도 “갈등은 필연이지만 팩트로 논쟁하자"며 “다들 적통 논쟁도 하지 말자"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논쟁을 단순한 과거사 공방이 아니라 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겨냥한 전략 경쟁으로 보고 있다. 전당대회 초반부터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지금 민주당의 정치적 원형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친노 적통' 논쟁도 단순한 과거사 싸움이 아니라 민주당이 앞으로 어떤 노선으로 갈 것인지를 둘러싼 경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송영길 의원이 '노무현'을 앞세우는 것은 정청래 전 대표와 겹치는 지지층을 흔들기 위한 전략"이라며 “결선에 갈 수만 있다면 친노·친문 성향 지지층과 호남 일부가 본인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계산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현재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기 때문에 전당대회 국면에서도 '노무현 마케팅'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친노 적통' 경쟁은 단순한 상징 싸움이 아니라 민주당 핵심 당원층을 잡기 위한 전략적 경쟁"이라고 말했다. 다만 엄 소장은 송 의원의 장례식 불참 발언에 대해 “사실관계를 오인하거나 왜곡한 발언은 당심의 역풍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민주당 전당대회는 중도 확장보다 기존 지지층 안에서 더 선명한 후보를 가려내는 축소 지향적 경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李,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대통령 직할로 속도전”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반도체, 피지컬 AI,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대도약을 위한 삼각 축"이라며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세 축을 지역 거점과 연결해 한국형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대통령 직할 체계로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주재하고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도약의 전환점에 서 있다"며 “국정 2년 차인 올해를 세계 어떤 나라도 대신할 수 없는 대체 불가 대한민국의 꿈이 시작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초격차 산업 강국으로의 대도약"이라며 “오직 속도전만이 살 길이다. 어떤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의 핵심 요소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와 피지컬 AI,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대도약을 위한 삼각축'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하나로 묶어 속도감 있게 한국형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에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을 향해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여기에 함께하신 두 분 회장님께 감사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자리에 계시지 않은 대한민국 산업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인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여러분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대전환의 결단을 우리 정부가 전적으로 잘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이 발표는 우리가 국가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량을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지방정부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동원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열게 되었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며 “오늘 이 성과는 가장 큰 국민적, 역사적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첨단산업 거점의 지역 확장을 강조했다. 그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에 맞춰 현재 진행 중인 생산 거점들을 빠르게 완성하고, 서남권 등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통해 압도적인 공급 역량을 미리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용인, 평택을 중심으로 한 사이트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특히 전력과 용수 등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만큼 계획된 사이트들을 신속하게 완료하고, 지금보다 속도를 매우 앞당겨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며 '지역에 대한 전략적 접근과 활용'의 필요성을 거듭 언급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산업화 시기에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수도권 집중 정책을 취해왔다"며 “성장에는 유용했지만 지금은 집중에 따른 비효율이 심화되면서 수도권은 폭발 직전이고 지방은 소멸 직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호남 지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영남·강원·충청 지역에 대한 투자 계획도 발표되겠지만, 호남 지역은 장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오히려 기회 요인이 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서남 해안 일대는 용수도 풍부하고 특히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이라며 “전력과 용수가 풍부하고 안정적이면서 값싼 용지도 갖춘 지역을 새로운 사이트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이 3대 메가프로젝트의 거점으로 지역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며 “기업은 성장과 이윤이 중요하고, 국가는 균형발전이 매우 중요하다. 이 양자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강조했다. 그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기업들에게 손실과 위험을 강요하면서 국가적 필요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손해 보지 않고 더 나은 전망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의 역량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일이 바로 정부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또 “대규모 산업 벨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 구축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매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다행히 광주·전남 지역은 이번 통합에 따른 지원금을 적게는 5조 원에서 많게는 20조 원까지 전체를 투자할 수도 있겠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며 “판단과 행동의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도 미리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끝으로 “청와대 안에 이 사업을 직접 담당할 직할 담당관을 두고, 3대 메가프로젝트를 제가 직접 챙기며 신속하게 집행하겠다"며 “지금 우리가 쌓아 올리게 될 3대 메가프로젝트의 성과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20년, 30년을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 발표에 나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서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총 800조 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4기의 메모리 팹을 구축하겠다"며 “인허가부터 건축 기간까지 획기적으로 단축해 생산 능력을 신속히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대한민국 대도약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승부처는 첫째, 지방"이라며 “반도체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속도전, 거점전, 선도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은 수도권 반도체 생산 능력을 5년 안에 2배로 확대하고, 2040년대 중후반으로 계획된 팹 구축 시기를 2030년대 중반까지 최대 12년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력과 용수 등 핵심 인프라도 조기에 구축해 팹 가동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김 장관은 수도권과 서남권을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충청권을 패키징 거점으로, 동남·대경권을 소부장 혁신 거점으로 각각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충청권에는 반도체 생산 확대에 맞춰 첨단 패키징 산업 거점을 조성한다. 동남·대경권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전력반도체 등 차세대 혁신 거점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김 장관은 “생산 거점, 패키징, 소부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전국 단위의 반도체 생태계를 완성하겠다"며 “15년간 30조 원을 투자해 R&D와 설계, 실증, 제조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수도권 일극 깬다…李, 첨단산업 지도 다시 그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핵심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다. 1000조 원을 넘어서는 전체 투자 규모 가운데 절반 이상이 광주·전남에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만난 이후 삼성전자의 광주·전남 반도체 전공정 팹(fab) 투자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앞서 SK하이닉스도 전공정 팹은 물론 에너지저장장치(ESS),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까지 망라한 투자로 광주·전남 클러스터에 먼저 힘을 보탰다. 투자가 현실화되면 수도권에 집중됐던 국내 첨단산업 지형도가 호남(반도체)·영남(피지컬 AI)·충청·강원(AI 데이터센터) 등 권역별 특화 체제로 재편될 전망이다. 2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3대 권역별 산업 특화다. 광주·전남 등 호남권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제2 반도체 클러스터'가, 경남 창원·사천 등 영남권에는 한화·두산 등을 중심으로 우주항공과 로봇을 아우르는 '피지컬 인공지능(AI) 종합 벨트'가 조성된다. 강원(동해)과 충청(당진)에는 GS그룹 등이 주도하는 기가와트(GW)급 통합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첨단산업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분산하는 이재명 정부의 '5극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본격화하는 첫 대형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 첨단산업의 뼈대가 될 이 구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까지는 개선해야 할 인프라 과제도 적지 않다. 전공정 팹 1기를 가동하려면 20만 평 규모의 부지와 하루 20만t 수준의 용수, 1GW 안팎의 전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연구위원은 “반도체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만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건 현실"이라며 “지자체 간에 협업이 있어야 한다. 전남은 전기, 다른 지역은 부품과 소재, 또 다른 지역은 용수 이런 식으로 특색을 갖고 협업해 넓혀나가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부지 확보는 비교적 수월하다는 평가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광주 첨단3지구(339만㎡), 빛그린국가산업단지(407만㎡), 군공항 이전 부지(826만㎡) 등이 이미 가동 중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289만㎡),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415만㎡)와 맞먹는 규모를 갖췄기 때문이다. 문제는 용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용인 산단은 2050년 하루 109만t 이상의 용수 부족이 예상돼, 광주·전남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광주는 장성호와 영산강, 용연정수장 등을 활용해 물량 자체는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평가지만, 관건은 '양'이 아닌 '질'이다. 반도체는 나노미터(㎚) 단위 회로를 새기는 초미세 공정인 만큼 고순도 수질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력 확보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반도체 팹 1기는 대형 원전 한 기와 맞먹는 24기가와트시(GWh)급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팹에서는 0.01초의 순간 정전조차 조 단위 손실로 직결되는 탓에 안정적인 전력망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조성 중인 클러스터의 총 전력 수요는 5.8GW에 달하지만, 3·4기 팹에 공급할 전력원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자립도 197%(전남 기준)인 호남은 수치상 최적지로 꼽힌다.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 영남권과 달리, 호남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기반의 잉여 전력이 풍부하다. 전남을 지역구로 둔 '5선'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에 “해남은 풍부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고 있어 대규모 전력 수요 충당과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태양광·풍력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 변동이 커, 미세한 전압 변화조차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 공정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반도체 라인은 단 1밀리초(0.001초)의 전압 강하로도 수백억 원의 웨이퍼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력의 '양'을 넘어 '질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다각적인 보완 과제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호남권 클러스터의 성패는 단순히 전력이 많다는 차원을 넘어,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정제해 반도체용 '1급수 전력'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정부와 한국전력이 호남권 계통에 동기조상기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무탄소 기저전원을 패키지로 공급하는 인프라 투자를 선행해야 기업들의 투자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한빛 원전의 계속운전, 여수 권역과 경상권 원전 단지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송전선로 확충, 광주 권역의 LNG 발전소 추가 건설을 통해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전공정 팹 관리에 필요한 석·박사급 엔지니어 수천 명의 지방 근무 기피는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우수 인력이 내려갈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경기 평택·이천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 탕정에 산업단지를 구축할 당시에도 우수 인력의 지방 이주 기피로 고전한 사례가 있다. 정부와 기업은 29일 발표를 시작으로 후속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30일에는 SK가 광주에서, 다음 달 2일에는 삼성이 충남 아산에서 각각 투자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충청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존 후공정 기반을 살려 수도권과 호남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기존 천안·온양 캠퍼스의 후공정 고도화를,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낸드플래시 공장 증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김어준이 꺼낸 ‘李 지지율 코어 이탈론’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국면을 두고 친여 유튜버 김어준씨가 사흘째 “통상의 하락과 다르다"는 경고를 이어가면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핵심 지지층 이탈을 경고한 김씨의 메시지가 당대표 연임에 나선 정청래 전 대표에 대한 지원사격으로 읽히면서, 친명(이재명)계는 “근거 없는 정치적 메시지"라며 선을 긋고 있다. 여권의 대표적인 스피커 김어준씨는 25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통상적인 지지율 하락은 충성도가 낮은 외곽 지지층부터 빠지는 법인데, 지금은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코어 지지층'이 흔들리는 생소한 풍경"이라고 진단했다. 연령대로는 40~50대, 정치적으로는 친노(노무현)·친문(문재인) 색채가 강한 전통 지지층의 이반이 심상치 않다는 취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코어 지지층이 무너지면 임기 내내 힘들어지며, 이는 단순히 성과를 보여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스스로 성과를 내 지지율을 끌어올린 정치인이고, 임기 1년 차에도 60~70%대 높은 지지율을 만들었다"면서도 “대통령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이 분리되는 '디커플링' 신호는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23일 방송에서도 김 씨는 “코어 지지층의 특징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을 바로 버린다. 가치연대이기 때문"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사면 얘기하고 이낙연 지지율이 확 빠졌다. 그렇게 친문이던 이낙연을 반문인 이재명이 이겨버렸다"라고 했다. 이어 “이 진영의 전파 속도는 엄청나다. 며칠 안 됐는데 지지율이 이렇게 됐다. 빨리 대응해야 한다"며 “청와대가 원인 분석하고 해결하면 올라갈 수 있는데 제대로 못 하면, 코어 지지층은 한번 빠지면 안 돌아온다. 그게 무서운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씨는 전통 지지층 이탈의 배경으로 '뉴이재명' 신주류 지지층의 공격을 꼽았다. '뉴이재명'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롭게 유입된 중도·실용 성향의 친명 지지층을 일컫는 말이다. 기존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친명 기반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을 싸잡아 비난하는 흐름이 이어지며 전통 지지층의 소외감이 쌓여왔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재명 지지자와 문재인 지지자는 서로 다르지 않다", “친문이 친명이 된 건데 이걸 다르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친문은 이제 필요 없고 뉴이재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라고 했다. 여기에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 검찰 출신 민정수석 임명 등을 계기로 검찰개혁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이탈 요인으로 거론했다. 김씨는 “코어 지지층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을 바로 버린다"며 2021년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 사면을 언급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고, 결국 반문(反文) 정체성의 이재명 후보에게 패한 사례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코어는 등까지는 안 돌렸는데 팔짱을 낀 상태"라며 “이대로 두면 등을 돌리게 되고, 한번 빠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보수까지 아우르려는 이 대통령의 통합·외연 확장 행보가 '정체성 부정'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다만 당내에서는 김씨의 발언이 정 전 대표에 대한 사실상의 지원 사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 전 대표가 “일신우일신, 개혁하고 또 개혁해야 한다"며 출마 명분으로 개혁 노선을 내세운 만큼, 집토끼(전통 지지층) 이탈 위기를 수습할 적임자라는 논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3선 중진인 김영진 의원은 25일 한 라디오에서 “1000명, 2000명 샘플에 코어 지지층이 보이느냐"며 “김어준 대표만의 분석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친명 성향 유튜버 이동형씨도 “흔들리면 코어층이냐, 연성 지지자니까 흔들리는 것"이라고 했다. 배철호 폴리시스랩 소장은 “최근 지지율 하락은 사안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연성 지지층이 빠져나간 결과"라며 “근거가 없는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고 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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