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검증대 선 금융지주 지배구조, 증명의 시간

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정 인물의 거취를 둘러싼 소란이라기보다 국내 금융지주 지배구조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되묻는 질문에 가깝다. 이 문제의식은 최근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됐지만 논란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깊다.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융지주를 향해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겼다",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10년, 20년씩 한다"고 직격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BNK금융지주에 대한 현장 검사에 착수하자 금융권의 시선은 발언의 수위보다 이 한마디가 기존 질서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에 쏠렸다. 회장 선임의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는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역시 이 변화의 맥락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금융지주 회장 논란의 본질은 연임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연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누가 이를 견제해 왔느냐다. 주력 계열사 수장을 거쳐 지주 회장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이미 익숙한 공식이 됐다. 안정과 연속성이라는 명분 아래 경영 권한은 특정 내부 라인에 축적됐고 이사회와 제도는 이를 조정하기보다 추인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사회는 이 구조의 핵심에 있다.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중대한 안건이 부결되는 사례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특히 회장 선임과 지배구조 관련 안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금융지주들은 “이사회에 올리기 전 충분한 논의를 거친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이사회가 의사결정의 종착지가 아니라 사전 합의의 확인 절차로 작동해 왔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사회가 어떤 대안과 이견을 검토했고 어떤 기준으로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시장에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대통령 발언 이후 금융권이 즉각 긴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언 그 자체보다 그동안 내부에서 걸러지지 않았던 문제가 외부 신호 하나로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점이 더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회장 선임 절차가 최고 권력자의 발언과 감독당국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지배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균형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배구조의 문제를 단기간의 정치 이슈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분명하다. 금융지주회사법과 지배구조 관련 규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독립성, 후보 검증 과정, 권력 집중 문제는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지난한 논쟁의 마침표는 금융사 스스로가 신뢰를 입증하는 방식으로만 찍을 수 있다. 정부의 발언을 방어하거나 정치적 의도를 따지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신뢰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주주 추천 사외이사 확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실질적 독립성 강화, 주요 안건에 대한 이사회 논의 과정의 부분 공개 등은 더 이상 낯선 제안이 아니라고 본다. 이사회가 실제로 어떤 기준과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닫힌 권력 구조'에 대한 의심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이 금융회사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이 균형이 흐려질수록 개혁과 관치는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구조로 입증되지 않는 개혁은 결국 또 다른 불확실성으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쿠팡에게는 공정한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한국을 흔들고 있다. 규모와 경위는 조사 중이다. 국회는 한 발 빠르게 반응했다.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렀다. 김 의장은 불참했다. 사유는 '해외 사업 일정'이다. 예상된 수순이다. 역대 국회에서 재벌 총수들은 늘 그래왔다. 숱하게 해외 일정을 핑계로 여의도를 피했다. 그때마다 의원들은 호통을 쳤다. 그러나 결국 늘 그렇듯 유야무야 넘어갔다. 관행이고 '약속대련'이다. 이번은 다르다. 공세 수위의 결이 다르다. 국회는 동행명령장 발부까지 거론하며 압박한다. 단순한 압박을 넘어선다. 쿠팡을 본보기 삼아 기업 규제 프레임을 다시 짜려는 기류마저 보인다. 강공의 배경에 '정경유착'이 있다. 실각한 과거 정부와 쿠팡 리더십간의 관계가 주안점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왜 이렇게 쿠팡이 오만방자한가 했더니 강한승 전 (쿠팡)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고 한덕수 전 총리를 미국 대사관에서 모셨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인사와 민주당계 인사도 쿠팡에서 대관(CR)을 담당하고 있다고 맞불을 놨다. 쿠팡 자체에 대한 조사를 넘어 여야가 서로 정경유착에서 발뺌하려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회는 이 틈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서두른다. 개인정보 유출은 치명적이다. 여기에 최고경영자의 소환 불응마저 겹쳤다. “글로벌 기업이라며 한국 국회를 무시한다"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이미 쿠팡은 서여의도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국민 정서법이 근거다. 정치적 갈등 속에 낀 쿠팡에 대한 강공은 공정한가. 다른 기업에게 국회는 어떠했나. 시중은행에서 수백억 원대 횡령 사고가 났다. 메신저 기업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전 국민이 불편을 겪었다.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했다. 그때마다 CEO가 소환장을 받았다.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기업의 존폐를 흔들거나 특정 정치 세력의 타깃이 되어 집중포화를 맞지는 않았다. 출석하고, 질타를 받고, 사과로 마무리했다. 두 어달 지나면 여론은 잦아들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은 명백한 과실이다. 현행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면 된다. 과징금을 물리고, 보안 시스템을 감시하면 된다. 그러나 현 상황은 법적 처벌 수준을 넘어선다. 여야 정계인사가 연루되면서 국회는 기업의 지배구조와 리더십을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려 한다. 해외 출장을 이유로 한 불출석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기업 총수들이 같은 이유로 빠져나갈 때 적용했던 '유연함'이 김범석 의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중잣대다. 이중잣대를 들이댄 이유는 전 정권 인사 영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대관 전략 차원에 불과하다. 이를 근거삼아 기업 활동 방식을 지적하는 것은 주객전도다. 공정은 형평성에서 온다. 잘못한 만큼 벌을 주는 것이 정의다. 미운털이 박혔다고 더 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지금 국회와 여론의 매질이 쿠팡의 과실에 대한 징계에 그칠 거라고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정치적 희생양을 찾는 '정치적 연대 책임'을 묻는 자리가 되고 있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탄소중립, 전기화가 능사는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 이후 이를 실천하기 위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합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초대 장관에 환경 및 에너지에 관심이 많던 김성환 국회의원을 임명했다. 김성환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핵심 탄소중립 설계자이자 총책이라 할 수 있다. 김 장관의 탄소중립 실현 방식은 명확해 보인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한 전기화이다. 그는 장관 후보 시절 언론에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모든 것을 다 전기화해야 한다. 탄소 문명에서 탈탄소 문명으로 전환하는 문명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1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식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뿐만 아니라 건설기계 · 농기계 · 선박 등 모든 동력기계를 전동화하고 도시가스 대신 전기로 열을 생산하는 히트펌프, 제로에너지빌딩 확산 등 건물 부문 탈탄소 전환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현 35GW 보급), 도시가스가 아닌 전기로 열을 공급하는 공기열 히트펌프 지원책 마련 등 본격적인 전기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에너지업계의 시선에는 우려감이 한가득이다.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그럼에도 이를 독단적으로 밀어부칠 경우 에너지안보에 심각한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보급하려면 향후 일년에 15GW씩, 5년동안 75GW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도 많지 않아 대부분 태양광으로 공급해야 한다. 태양광 1GW에 필요한 면적은 대략 축구장 600개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축구장 600개 면적의 태양광 발전소를 일년에 15개씩, 5년동안 구축한다는 게 가능할까? 총 에너지 수요에서 전기화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게 되면 그만큼 피크 전력도 높아져 더 많은 발전용량이 필요하다. 현재 한겨울 난방으로 인한 피크 전력은 80GW에서 많을 때는 90GW를 넘는데, 여기에 전기모빌리티 비중이 더 높아지고 전기 열까지 더해지면 피크 전력은 120~130GW를 훌쩍 넘을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계통 접속을 받아주기 위해 원전, 석탄, LNG 발전의 비중이 축소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자연현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짧은 시간에 재생에너지 발전 공급량을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일각에서는 AI로 전체 전력 시스템을 통제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는 이론적 반론도 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통신사, 유통사들이 해커조직에 여지없이 뚫리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자면 전력 시스템의 AI화는 국가안보에서 가장 핵심인 에너지 시스템을 적에게 통째로 내주는 최악의 쥐구멍이 될 수도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 에너지만 고집할 게 아니라 가스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가스 에너지는 다른 화석연료보다 탄소와 배출먼지가 적게 발생해 전환기연료 또는 브릿지연료로 불리며,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등 미래 기술과 접목하면 충분히 탄소중립연료로도 전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 곳곳에 6만km가 넘는 가스배관이 깔려 있어 '제2의 에너지 고속도로'가 구축돼 있는 셈이다. 대외 여건도 가스에너지에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 러-우 전쟁 종결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최대 수출품목인 천연가스를 판매가 막힌 유럽 대신 대부분 아시아로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관세협상으로 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대규모의 천연가스 판매계약을 맺음에 따라 향후 2~3년 안에 미국 본토산 천연가스가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향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알래스카주의 풍부한 천연가스도 아시아로 향할 수밖에 없다. 물류가 몰리는 곳에는 허브가 필요하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국이 국내외 기회를 포착해 에너지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 허브를 구축하면 경쟁력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를 통해 AI강국과 제조업을 발전시켜며, 동시에 에너지안보까지 튼튼하게 구축하고 미래 청정연료 확보할 수 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데스크 칼럼] AI 시대, ‘한국형 ODA’의 새 기회

지난달 정부가 주관한 '2025 개발협력주간' 행사에서 한 국내 벤처창업가는 대표적 저개발국인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깜짝 놀랐던 경험을 전했다. 1인당 GDP가 세계 150위권인 이 나라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한 마을을 방문했는데 농업용 관개수로나 식수용 상하수도 시설은 없어도 현지 주민의 스마트폰과 이를 위한 통신망 인프라는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식수 및 위생 개선사업을 하는 이 창업가는 높은 현지 스마트폰 보급률을 활용해 비용은 물론 시간, 공간, 인간의 제약조건을 극복한 새로운 개발협력 사업 기회를 봤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자리바꿈한 모범적인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무상원조 규모는 미국, 독일, 일본 등 기존 공여국(선진국)에 비해 10~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고안한 원조 방식이 '프로젝트 원조'였다. 선진국처럼 도로, 철도, 항만, 발전소 등 대규모 원조(공적개발원조·ODA)를 무상으로 제공할 순 없지만, 학교, 병원 등 비교적 소규모 시설을 무상으로 지어주면서 동시에 한국의 강점인 '맨 파워'를 결합해 교사, 의사 등 봉사자를 파견하고 현지인을 국내로 초청 연수해 주는 '물적+인적 결합 패키지' 원조 방식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는 교육, 의료, 위생 등 저개발국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한국 봉사자와 현지 주민간 스킨십을 가능케 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우리나라와 지리적·역사적 연관이 별로 없던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에서도 '글로벌 프렌드 코리아'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가성비 좋은' 무상 ODA 사업방식에 또다른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ODA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저개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는 식량부족이다. 이는 저개발국의 높은 인구증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증가와 농작물 수확량 감소가 더 큰 요인으로 꼽힌다. 기후위기 대응은 글로벌 공통 과제지만 특히 저개발국은 대응 능력이 부족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상 ODA 대표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AI를 활용한 기후위기 대응 사업을 미래 ODA의 핵심 사업으로 꼽고 있다. 저개발국의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한국의 IT 및 AI 역량을 결합해 막대한 원조자금을 들이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기후변화 피해를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라오스의 특정 농경지역에서 단기(10일) 및 중장기(3개월) 강수량 예보, 지하수 정보, 토양수분 실시간 정보 등을 AI로 분석해 현지 농민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제공함으로써 가뭄·홍수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 개발 및 보급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이 아이디어는 코이카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공동 주관하는 AI 기반 기술 공모전인 'AI for Climate Action Awards 2025(2025 AICA 어워즈)'에서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된 바 있다. 나아가 코이카는 기존 코이카가 직접 주도하던 원조 방식을 넘어, 민간 대기업, 스타트업, 소셜벤처, 수혜국 현지기업들이 서로 협업해 개발협력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플랫폼' 역할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BS)' 등 신개념 개발협력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코이카의 새로운 ODA 전략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 한국형 AI 모델을 보급하고 현지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우리 AI 기업이 활용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내걸은 '세계 3대 AI 강국'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AI 시대에 다시 한번 ODA 모범 국가로 자리잡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데스크 칼럼] BNK, 변화의 리더십 세울 때

BNK금융지주가 차기 회장 후보를 4인으로 압축한 숏리스트를 내놨다. BNK가 그룹과 지역의 미래를 건 중대 기로에 섰다. 이번 회장 인선은 단순한 리더 교체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부울경 해양·물류 허브' 전략에 발맞춰, 부·울·경을 아우를 지역금융의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현재 후보군은 ▲현 빈대인 회장 ▲방성빈 부산은행장 ▲김성주 BNK캐피탈 대표 ▲안감찬 전 부산은행장 등 4명이다. 지난달 27일 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1차 7인에서 2차 후보군 4인으로 후보자를 압축했다고 발표했다. 임추위는 외부 전문가 블라인드 면접과 PT 심사 과정을 거쳐 산업·지역에 대한 식견, 금융철학, 조직 리더십, 테크 대응 역량 등을 종합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숏리스트를 뜯어봤다. 현직인 빈대인 회장의 연임은 연속성에 따른 안정감을 주나 리스크도 크다. 빈 회장은 자본건전성 관리와 조직 연속성 면에서 장점이 크다. 그러나 도이치은행 관련 대출 의혹과, 일부에서 제기되는 '셀프 연임용' 시간표 설계 비판을 받아 지배구조 리스크를 키운다. 금융당국이 “필요 시 수시검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감독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전략적 리더십과 변화 대응력이 필요한 시점에 '안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방성빈 부산은행장은 그룹 안정에 유리하다. 그러나 변화 카드로는 부족한 것이 단점이다. 방 행장은 현역 CEO로서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는 기업여신과 리스크 관리, 은행 운영 기반에서 강점을 가진다. 그러나 해양금융, IB, 대형 국책 프로젝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부울경 초광역 금융 전략을 추진해야 할 BNK에는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틀을 유지하는 경영'에는 적합하지만, '판을 바꾸는 리더'가 필요한 지금엔 아쉬운 카드다. 김성주 BNK캐피탈 대표는 비은행·자산관리 쪽 성장엔 적합하다. 그러나 지주 전체 리더로는 검증 부족한 편이다. 김 대표는 그룹의 비은행 사업 확장과 자산관리 역량 강화에 강점이 있다. 그는 실무 중심, 수익성 중심의 경영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은행장 경험이 없고, 지역사회·정치권 네트워크도 약하다는 점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로서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부울경의 금융 허브 구축, 해양·물류금융처럼 지역과 연계된 대전략은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안감찬 전 부산은행장은 부울경 금융 대전환을 이끌 전략 카드이긴 하나 전임(前任)이라는 것이 약점이다. 안 전 행장은 해양금융·IB·전략 기획을 두루 경험했다. 그는 지역금융과 본사의 조직 구조,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 이번 부울경 해양·물류 금융 허브 구상, 북극항로 연계, 항만재개발 등 국가 전략 과제와의 정합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행장 시절 내부 파벌에 치우치지 않는 인사로, 직원 및 지역사회의 신뢰도 높았다. 다만 복귀형이라는 점이 그룹 사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은행을 비운 이후 이미 많은 기획과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행 중인 사업을 뒤엎어야 하는 것이 지주 전체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BNK가 가야 할 길에는 '전략·실행·신뢰' 3박자가 중요하다. 내부 통합과 지주-은행-캐피탈 간 협력 체계를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도이치 관련 의혹을 포함한 지배구조 리스크 해소, 마지막으로 정부 국책 과제인 부울경 해양금융 허브 구축의 컨트롤타워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 누가 셋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 BNK의 결심이 궁금해진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AI 기본사회’로 가는 제3의 길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급속하게 진화하는 AI 산업 생태계에서 한국이 앞장서 주도해 나가겠다는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동시에 AI 산업 발달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모든 국가와 사람들이 고르게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최근 폐막한 G20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밝힌 '글로벌 AI 기본사회'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글로벌 AI 기본사회는 AI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보고, 모든 국가와 계층이 공평하게 혜택을 누리도록 국제 협력과 포용적 정책을 추진하자는 비전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AI 기본사회는 AI산업의 고도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량의 에너지원을 요구로 한다. 기후 위기와 탈탄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AI 기본사회는 오히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시계침을 더 빨리 돌리는 작용만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경쟁력은 세계 산업선진국에서 가장 취약하다. 지난 2022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 94%에 에너지 자립도는 0.18 수준이다. 에너지 소비 규모는 1억8100만toe(석유환산톤)으로 세계 10위이며, 세계 평균(6000만toe)의 3배에 이른다. 따라서, 한국의 AI 기반 성장론이 실현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우리보다 AI와 기후대응 산업 정책이 앞선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주요기업들이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생산 효율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슬라는 스마트 제조와 데이터 기반 공급망 관리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통해 탈탄소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아마존도 물류 자동화와 AI 기반 수요 예측으로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며, 대량소비 구조 속에서도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그린딜'을 통해 순환경제와 탈탄소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동원해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세 도입으로 산업 구조 자체를 저탄소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들은 소비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제품을 장려하고, 재활용·재사용을 제도화하여 대량소비의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이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결합하는 정책이라면, 유럽은 생산과 소비 전 과정에서 녹색 전환을 제도화하는 보다 근원적 해법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을 참고로 두 가지 모델을 결합하는 '제 3의 길'을 채택하는게 현실적이라는 전문가 견해가 많다. AI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순환경제와 탈탄소 정책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포용적 성격의 '모두의 AI'가 구현되기 위해선 AI산업 육성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AI혁명의 포용성이 인류 삶의 토대인 지구 생존보다 우선할 수 없다. 결국 글로벌 AI 기본사회의 성립은 '성장과 환경'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조화로운 양립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가 향후 어떤 '공존의 해법'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데스크 칼럼] 차기 서울시장의 조건

내년 6·3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인구 930여만명이 거주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수장도 새로 선출된다. 서울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구·기후·인공지능(AI) 등 서울은 물론 국가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는 과제들이다. 향후 10년간 서울시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지속가능성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인물·정쟁이 아니라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장기적 전략과 비전을 가진 서울시장이 나와야 한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정책이 바뀌는 낭비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선 '늙어가는 도시'를 대비하자. 저출산·초고령화가 가져올 변화를 잘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전히 4인 가구 단위에 머물러 있는 돌봄·복지·주거 정책을 시급히 전환해야 하며, 노인 인구 급증에 따른 부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경기도로 빠져나가는 젊은 인구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균형발전 정책에 따른 도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고 서울 경제를 선순환하도록 만드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도시계획, 주택·부동산 문제에 대한 소신과 비전을 갖춰야 한다. 서울의 주택 시장은 강남 3구와 마용성 등 일부 지역만 가격이 뛰고 다른 지역은 침체되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같은 평형 아파트 가격이 수십배 차이가 나는 부동산 과열 현상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서민들의 박탈감, 투기를 부추긴다. 반면 '비인기지역' 주민들은 비좁은 주차장·도로, 낡아가는 인프라로 불편이 심각하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가는데 언제까지 그린벨트까지 해제해가며 새 집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 건설한 지 50년이 다되어가는 지하철, 교량, 상하수도 관로 등의 안전 관리 대책도 시급하다. 둘째, 기후 위기에 따른 탈탄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탄소 배출을 줄여가되 에너지 믹스를 통해 필요한 전기는 제때 조달해야 한다. 서울은 에너지 자급률 0%,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 사용기간 종료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른 지자체들과의 협상, 중앙 정부와의 조율, 잡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소신·소통 행정에 나서야 한다. 또 도심내 열섬 현상, 집중 호우시 침수 등에 대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본격화되는 AI·빅데이터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AI는 이제 막 도입됐지만 조만간 엄청난 속도로 진화해 산업은 물론 사회 전체를 집어 삼킬 태세다. 시민들에 대한 AI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 교통·도시안전·재난관리·복지·일반행정 등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AI를 활용해 효율성·합리성을 제고해야 한다. 서울은 스마트시티를 표방했지만 뉴욕·싱가포르 등 글로벌 도시에 비해 턱없이 뒤처져 있다. 넷째,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시장이 필요하다. 시민과 소통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존중·확산시켜야 한다. 요즘 서울시를 둘러 싼 한강버스·세운4구역 재개발 등 논란은 모두 소통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불도저식 청계천 복원으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추억은 잊어야 할 때다. 시민 참여 거버넌스를 회복하고 일방통행식 행정을 쌍방향으로 돌려놓자. 협치와 투명성, 조정 능력을 갖춘 시장이 나와야 한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데스크 칼럼] ‘깐부 동맹’이 열어야 할 구조개혁의 문

한국 경제가 다시 뛰기 위해서는 곳곳에 쌓인 구조적 병목을 풀어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과감한 구조개혁"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간 IMF, 무디스, 한국은행 등 국내외 기관들은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수 차례 촉구해 왔지만, 논의는 정치적 공방에 가려 번번이 본질에서 멀어지기 일쑤였다. 이번 메시지가 진영을 넘어 '국가 과제'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시선은 구조개혁이 실제로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로 향한다. 내년을 기점으로 정부가 개혁을 본궤도에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를 비롯해 하나·KB금융·신한 등 주요 금융지주들은 향후 5년간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실행 계획을 제시하며 기존의 단순 상생금융을 넘어선 '새로운 금융 역할론'을 꺼내 들었다. 과거 상생금융이 이자 환급, 공과금 지원, 서민금융 출연 등 사실상 부담 분담의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부 요구에 따라 금융회사가 수익 일부를 내놓던 '보조금형 상생'과 결별하겠다는 의미다. 생산적 금융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금융이 기업의 성장과 국가 산업 전략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자 장사 중심의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고, 미래 산업 생태계 구축에 금융이 전면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선언이다. 금융지주 계열사들이 벤처·기술기업 투자 경험을 축적해 온 만큼, 이를 하나의 체계로 결집해 '금융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도 더 단단해지고 있다. 정부 역시 금융사의 숙원 해소에 속도를 내며 시장 변화에 불씨를 지피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인가를 내준 것이 대표적이다. IMA는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는 대신 고객자금을 기업금융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로, 일종의 '증권형 은행업'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다. 이번 인가를 계기로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중심의 기존 투자 영역에서 벗어나 유망 벤처·기술기업으로 자금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확보했다.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모험자본 공급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핵심 장치다. 정책 방향은 명확하지만 생산적 금융이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부동산에서 첨단벤처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예대금리형 금융에서 자본시장 투자 중심으로"라는 정부의 구상이 현실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규제혁신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금융위·공정위에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자금조달 규제 합리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참여 주체 확대, 일반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요건 폐지 등 20건의 제도 개선을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금공급이 기업 혁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투자 경로'를 넓혀야 생산적 금융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혁신의 토대는 금융이 놓고, 성장의 동력은 기업의 생산적 투자에서 나온다. 정부는 규제 혁파로 이 선순환의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금융권과 기업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관건은 실행이다. 정부·기업·금융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깐부 동맹'만이 국가 대전환의 실질적 첫걸음을 만들 수 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 모니터 속 AI만 버블이다

'인공지능(AI) 버블론'이 국내외 증시를 강타했다. 코스피 지수를 4000까지 끌어올렸던 큰 축이 AI 반도체 산업이었으니, AI에 대한 흥분이 잦아들자 반도체 기업 주가가 급락, 코스피 지수마저 크게 흔들렸다. 빌 게이츠는 “AI 붐은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경고했다. 예일 경영대학원은 벤처캐피털 투자의 70%가 AI 스타트업으로 몰리고 있으며 “패자의 손실은 상당할 것"이라 분석했다. IMF와 영란은행은 지난 10월 “투자자 입맛이 틀어지면 글로벌 주식시장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과연 AI 버블이 터진 것인가. 과거 IT 버블에서 답을 찾아보자. 2000년 3월 10일, 나스닥 지수는 5048포인트를 기록했다. 2년 7개월 후 같은 지수는 1114포인트로 추락했다. 78%의 가치 증발. 5조 달러가 사라졌다. IT버블의 교훈은 명료했다. '.com' 접미사만으로 기업가치가 치솟던 시절, 수백 개 기업이 실적 없이 상장했다. 그러나 Pets.com은 상장 9개월 만에 파산했고, 2000년 슈퍼볼에 광고를 집행한 17개 닷컴 기업 대부분은 2년 내 소멸했다. 거대한 마케팅 비용을 쓰며 손해를 감수하고 시장점유율을 쫓던 비즈니스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현재 IT를 버블이라 칭하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은 살아남았고 버블을 견딘 IT 기업들은 오히려 지구의 산업과 증시를 이끌고 있다. 결정적 전환점은 '실제 산업으로의 확산'이었다. 구글 애드워즈는 2000년 출시돼 광고 산업을 재편했다. 검색 광고 시장은 2005년 100억 달러에서 2024년 280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전자상거래는 2000년 270억 달러에서 2024년 1조 1000억 달러로 40배 증가했다. 마케팅과 소매라는 명확한 수익 모델이 기술을 구했다. IT는 측정 가능했고, 수익화가 가능했다. 2025년 AI를 향한 자본시장을 보자. 엔비디아는 2년간 1150% 상승했고, AI 주식은 S&P 500 수익의 75%, 이익 성장의 80%를 차지한다. 빅테크의 AI 인프라 지출은 2025년 2분기에만 9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아마존의 연간 자본 지출은 1180억 달러를 상회한다. 과거 IT 버블 직전 닷컴 기업에 자본이 쏠리던 그 당시 모습이다. 현재 시장 흐름의 특징은, 자본이 칩과 데이터센터로만 흐른다는 점이다. 순환 투자의 미로가 형성됐다. 오픈AI는 AMD 지분 10%를 취득했고, 엔비디아는 오픈AI에 1000억 달러를 투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대주주이자 엔비디아 매출의 20%를 차지한다. 오픈AI는 오라클과 5년간 3000억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연간 600억 달러다. 그런데 오픈AI의 2025년 매출 추정치는 130억 달러에 불과하다. 여전히 적자다. 돈은 순환하지만, 수익은 없다. 그래서 AI 버블론이 나왔다. 결정적으로 '실제 산업 확산'이 더딘 것이 문제다. 맥킨지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AI 에이전트를 확대 배치한 기업은 23%에 불과하다. 제조업 AI 도입률이 77%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예측 정비나 품질 관리 개선 같은 내부 효율화다. 혁명을 기대했건만 개선에 불과했단 이야기다. 협동 로봇 시장은 2024년 약 10억 달러로, 전체 AI 시장 1840억 달러의 1%도 안 된다. 공장 자동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서비스 혁신도 마찬가지다. ChatGPT는 그림도 그리고, 동영상도 만들고, 보고서도 잘 쓴다. 하지만 모니터 안에서만 인상적이다. 아직 가상세계인거다. 산업은 리얼월드에서 소비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기상천외한 기술이나 화려한 논문은 연구자 외의 인류에게 그다지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이나 잘 조합한 보고서는 찰나의 흥미에 지나지 않는다. AI로 재화의 가격은 떨어지고 품질은 올라가고, 노동자의 여가 시간과 소득이 늘어나는 등 인류의 행복이 비가역적으로 증대되어야 AI가 또 하나의 '산업 혁명'이 된다. AI 버블론은 칩 양산과 데이터센터 같은 AI 기초 기업에 대한 자본 집중이 한도에 닿았다는 의미다. 이제는 AI가 인간의 실제 삶으로 확산하도록 자본 흐름이 전환될 때다. 엔비디아가 아니라 GPU의 결과물을 리얼월드에 응용하는 기업을 살펴볼 시점이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글로벌 희토류 전쟁, 한국은 엉뚱한 대책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마무리됐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등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협상 타결이었을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대중국 관세를 100% 이상으로 높이겠다며 으르렁댔다. 그러나 경주에서 타결된 미중 관세협상 결과를 보면 전혀 딴판이다. 미국이 최종적으로 매긴 대중국 관세는 20%에 불과하다. 처음에 주장했던 100%는 고사하고 한국, 일본 등 최혜국에 매긴 15% 관세와도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미중 관세협상은 중국의 완승이란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 “미국의 눈을 깜짝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평가했다. 세계 각국이 모두 미국에 쩔쩔 맬때 중국은 단 하나의 카드로 미국에 맞섰다. 바로 희토류 수출 통제다. 희토류(Rare-earth element)는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우는 핵심광물이다. 반도체, 우주항공, 군수, 첨단전자제품, 재생에너지, 석유화학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이렇게 귀한데, 거의 전량이 중국에서 밖에 생산되지 않고 있다. 희토류는 지구상에 부존량은 풍부하지만 지각 내 함유량이 매우 적어 상업적 생산량을 얻으려면 엄청난 면적의 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추출, 분리 과정에서 독성이 매우 강한 황산 물질을 대량 사용해야 해 환경오염도 심각하게 발생한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받은 적은 없지만,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워낙 높아 항시 불리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이 매우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희토류 확보를 위해 자국 내 희토류 광산 개발 및 생산을 장려하고, 나아가 정부가 개발사의 지분을 사들이도록 지시했다.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은 일본, 호주와 희토류 동맹까지 맺었다. 미국과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으로 호주에서 희토류를 생산해 자급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 동맹에서 일본을 눈여겨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과 호주 간의 협력인데, 일본이 끼어 있다. 이것은 희토류 개발과 생산에서 일본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2010년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분쟁 이후 희토류 확보를 위해 칼을 갈았다. 비록 자국에서 희토류 생산은 못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기 위해 매장량 확보와 함께 정제련 기술까지 고도화했다. 일본이 동맹에 끼게 된 배경이다. 그 핵심 역할을 일본의 자원개발 공공기관인 조그멕(JOGMEC)이 맡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혀 엉뚱한 대책을 세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범정부 희토류 TF를 구성하고 희토류 확보에 나섰다. 정부 전략의 핵심은 재자원화다. 희토류가 들어간 폐제품을 리사이클링을 통해 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추출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10대 전략 핵심광물 재자원화율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리사이클링만으론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경제성도 맞추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국내외 광산을 통해 확보하는 것을 우선으로하고, 리사이클링은 부차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희토류 확보 전략이 리사이클링으로 간 것은 상당히 잘못됐고, 실책이다. 자원개발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일본이 그랬듯 희토류 확보는 공공기관밖에 할 수 없다. 우리도 자원 공기업이 확보할 수 있도록 해외진출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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