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500년 ‘장마’의 퇴장, 이제 장마를 장마라 부를 수 없다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 기록이 전해지는 '장마'는 최소 500년 넘게 우리 민족의 여름철 삶을 규정해 온 공식이었다. 6월 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한 달 남짓 지루하게 비를 뿌리던 전통적인 장마. 성질이 다른 두 거대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팽팽하게 힘겨루기하며 만들어낸 정체전선은, 비록 수해를 발생시키고 생활의 불편을 주었을지언정 우리가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익숙한 불청객'이었다. 전통적인 장마의 핵심은 '대우(大雨)', 즉 일정 기간 지속해서 비가 내리며 누적 강수량이 늘어나는 형태였다. 정체전선의 위치에 따라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전국이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우리 삶도 장마 전과 중, 후로 나뉘어 움직였다. 방재 당국은 장마 정보를 나침반 삼아 대책을 세웠고, 도시의 배수 관리와 농사일의 순서도 이에 따랐다. 전력 수급 계획은 물론 가정의 살림, 아이들의 방학, 직장인의 휴가 일정까지 장마가 기준이었다. 장마는 단지 비가 오는 기간이 아니라, 한국인의 여름 생활을 조직해 온 하나의 거대한 질서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여름은 어떤가.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알던 500년 역사의 '장마'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기후변화는 여름의 공식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기상학적으로 이제 한반도 장마의 대표적 상징인 정체전선은 뚜렷한 형태를 찾기조차 어렵다. 장마의 시작과 끝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약 10년 전부터 이러한 징후는 뚜렷해졌다. 가까스로 전선이 형성되더라도 과거처럼 넓은 지역에 길게 비를 뿌리지 않는다. 대신 좁은 구역에서 대기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마치 팝콘이 튀어 오르듯 동시다발적으로 강한 비구름대가 발달했다가 순식간에 소멸한다. 극도의 불확실성을 갖는 국지성 폭우, 즉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새로운 주류가 된 것이다. 심지어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장마 종료를 선언한 이후에 오히려 더 치명적인 호우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기현상이 이제는 새로운 표준(뉴노멀)이 되었다. 이 급격한 변화는 단순히 기상학적 용어의 수정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뿌리째 바꿔야 한다는 경고등이다. 우리는 먼저 과거의 장마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올해 장마는 언제 끝나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장마 기간의 시종(始終)에 매달리기보다, 여름철 내내 언제든 재난급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상시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당장 국가의 방재 시스템부터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장마를 비중있게 고려하여 만들어진 과거의 강수량 통계와 배수 용량 기준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단 몇 시간 만에 한 달 치 비가 쏟아지는 기습 폭우에 견딜 수 있도록 도시의 빗물 수용 능력을 재설계해야 하고, 산사태와 하천 범람 경보 시스템도 실시간 국지성 예측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산업과 일상도 달라져야 한다. 전력 수요 예측이 생명인 에너지 수급 계획은 장마의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 커진 여름철 하늘상태, 기온과 습도에 맞춰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의 물류망 관리, 농가의 재배 타이밍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의 여름휴가 계획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과거의 장마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에 입각한 준비가 필요하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 집중되던 일률적인 휴가 문화도 분산되어야 안전과 휴식의 질을 모두 담보할 수 있다. 다행히 기상청과 기상학계는 이러한 위기를 엄중히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 왔다. 지난 2023년부터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로 다변화된 장마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 그 일차적인 청사진이 도출되었다. 아마도 내년 여름부터는 이렇게 새롭게 정립된 강수 개념과 예보 체계를 바탕으로, 국가 방재부터 국민 일상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의 구체적인 대응 방향이 현장에서 실천될 것이라 기대한다. 기후위기는 500년 이상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계절 감각과 삶의 방식을 강제로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 인간은 무력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역사적 전환기마다 닥쳐온 숱한 위기를 늘 지혜롭게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바꾸어 낸 저력이 있다. 비록 익숙했던 장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장마를 장마로 부를 수 없는 당황스러운 현실을 마주했지만, 우리가 바뀐 기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사회적 지혜를 모은다면, 이 변화된 여름 역시 가장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다스려 낼 것이라 확신한다.

[EE칼럼] 산을 푸르게 만든 것은 식목일이 아니라 석탄이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약 63%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산림국가다. 오늘날의 울창한 산림은 흔히 식목일이나 산림녹화 정책의 성과로 설명되지만, 에너지 전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정용 연료의 대부분은 땔나무였으나, 태백 탄전 개발과 연탄 보급 확대에 따라 난방 연료가 나무에서 석탄으로 전환되었다. 산림이 회복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림 사업뿐 아니라,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널리 보급되면서 산림 훼손 압력이 감소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에너지 전환이 환경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는 해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지난 20년간 탄소배출량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발전 연료의 변화였다. 셰일혁명을 통해 공급된 저렴한 천연가스가 석탄 발전을 대체했고, 동시에 여러 주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향상 정책을 추진했다. 정책과 시장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사례는 탄소중립이 단일한 해법만으로 달성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환경단체들은 천연가스 역시 화석연료라는 한계를 지적했고, 반면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의 현실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기술, 정책 수단이 상호 경쟁하고 조정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의 경험은 탄소 감축이 이상적인 해법보다는 현실적인 선택과 점진적인 변화의 축적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의 사례는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인 동시에 세계 최대 태양광·배터리 생산국이다.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흐름이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점을 일찍 인식하고,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관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청정에너지 산업은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역할은 단순히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태양광 발전 비용이 크게 하락한 배경에는 중국의 대규모 생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국제사회가 정책을 통해 시장을 형성했다면, 중국은 제조 역량을 통해 기술 보급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는 에너지 전환이 환경정책인 동시에 산업정책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 역시 주목할 만하다. 유럽연합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을 추진해 온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산업 경쟁력 확보가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2024년 발표된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의 보고서는 높은 에너지 비용이 유럽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탈탄소화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탄소중립의 성공이 목표 선언 자체보다 실현 가능한 이행 경로를 마련하는 데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탄소중립은 환경정책인 동시에 산업정책이자 에너지정책이다. 그러나 국내 논의는 여전히 감축 목표나 특정 기술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탄소중립이 새로운 성장 기회보다는 비용과 규제로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 중국, 유럽의 경험은 공통적으로 탄소중립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기술, 공급망, 에너지 안보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전략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탄소를 얼마나 감축하느냐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떠한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있다. 지방정부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단순한 감축 사업의 나열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일자리, 에너지 체계와 연계된 발전 전략으로 설계해야 한다. 지역의 여건과 비용 부담, 산업 구조를 고려한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환 경로가 요구된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균형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 탄소중립 역시 이상과 현실, 환경과 산업, 규제와 성장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지속 가능하게 수용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는 데서 출발한다. bienns@ekn.kr

[EE칼럼] 원전 산업과 전력의 통합 관리가 절실하다

한수원이 영덕과 기장을 신규 원전 부지로 선정했다. 두 곳 모두 원전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인허가와 건설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는 것이 선정위원회의 평가다. 낭비적인 이념적 갈등에 지친 주민들이 국가적 수요와 경제적 실리를 선택한 결과다. 지역 주민의 거부감 때문에 신규 원전 부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던 대통령의 우려는 괜한 것이었다. 당장 원전 건설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영향평가, 주민 의견 수렴, 안전성 평가 등의 복잡한 인허가 과정에 무려 5년이 걸린다. 실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2031년부터다. 영덕에 들어서는 국내 33·34번째 1.4GW급 대형 원전(APR 1400)은 2037년·2038년에나 완공이고, 기장의 첫 0.7GW급 SMR은 2035년에 가동을 시작한다. 특히 4기의 원전을 세울 수 있는 영덕의 부지는 2011년 천지원전 예정지로 선정되었다가 2018년 사업이 취소되기까지 무려 7년 동안 지질 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등이 이미 진행됐던 곳이다. 과거의 조사 자료를 적극 활용해서 인허가 절차를 최대한 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는 하루가 여삼추(如三秋)다. 물론 인허가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원전에 대한 지나친 이념적·당파적 갈등은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 2011년 지진해일 때문에 발생했던 재앙적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잦아들었던 원전에 관한 불안·거부감이 빠르게 잦아들고, 소위 '원전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이 모두 그렇고, 심지어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미국은 1974년부터 가동을 시작해서 2019년 경제성 악화로 가동을 포기했던 쓰리마일아일랜드(TMI) 1호기를 내년부터 재가동한다. 크레인(Crane)청정에너지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한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이 가장 이상적인 '무(無)탄소 전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이제 원전이 위험해서 포기해야 한다는 비겁한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거칠고 위험한 자연에서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모든 기술이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기술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와 '기술'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원자력과 전력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성도 없으면서 무작정 목소리만 높이는 짝퉁 전문가는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민간단체가 마케팅 수단으로 들고나온 'RE100'(재생에너지 100%)에 대한 지나친 억지도 경계해야 한다. RE100이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RE100 때문에 우리 기업의 수출길이 막히는 일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RE100이 가장 대표적인 무탄소 전원인 원전을 거부할 명분도 없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태양광·풍력의 한계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극심한 간헐성·변동성을 극복할 길이 없다.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배터리나 환경 파괴가 심각한 양수발전과 같은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역부족이다. 기술 개발 대신 햇빛·바람 연금까지 들고나온 기후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미래 기술의 육성이 아니라 퇴출을 부추길 뿐이다.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설비를 100GW로 확대하겠다는 기후부의 '재생에너지기본계획'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전력의 '지산지소'(地産地消)에 대한 착각도 버려야 한다. 전력 생산에서의 오염과 위험을 인구·공장 밀집 지역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전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히려 송전망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송전선로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강화하고, 새로운 송전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원전 산업은 산업부가 담당하고,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은 기후부가 관리하는 정부의 낭비적인 관리 체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과기부가 맡고 있는 원자력 진흥까지 고려하면 원자력을 두고 3개 부처가 서로 기싸움을 하는 형국이다. 원전과 전력 정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확실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기후환경에너지부의 부끄러운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bienns@ekn.kr

[EE칼럼] 반도체 지방 유치, RE100 압박 아닌 ‘인센티브’로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남 지역에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신규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력과 용수 소비가 거대한 전공정(Fab)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패키징 공장을 비수도권에 분산 배치하겠다는 전략이다. 패키징 공장의 호남 투자는 RE100 때문에 수도권 공장을 폐쇄하거나 이전하는 사례가 아니라, 기업이 지방균형발전을 고려해 신규 투자를 분산하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반가운 소식의 이면에는 우려스러운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를 빌미로 “수도권에서는 RE100 달성이 불가능하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자체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RE100 제도의 본질을 오해한 잘못된 팩트에 기반한 주장이다. 건설적인 국가 대사를 논하기 위해서는 RE100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RE100은 2014년 영국의 비영리단체 '더 클라이밋 그룹'의 주도로 시작된 자발적 캠페인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핵심은 RE100이 전기를 발전소에서 공장까지 물리적으로 직접 끌어다 써야 인증해 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RE100의 이행 수단은 다양하다. 한국전력에 웃돈을 주고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녹색프리미엄, 발전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제3자 및 직접 PPA(전력구매계약),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그리고 자가발전 등이 있다. 즉, RE100은 '글로벌 회계 및 인증 체계'에 가깝다. 호남에서 생산된 신재생에너지 전력의 '환경적 가치(REC)'를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공장이 구매하면 RE100 달성으로 인정받는다. 공장의 지리적 위치와 RE100 달성 여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RE100 때문에 공장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사실은 국가와 기업별 전력 환경의 차이다. 애플,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RE100을 주도하는 선도기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엔비디아, 퀄컴, AMD, 브로드컴 같은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아직 RE100 가입 선언을 미루고 있다. 이들은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아 자체 전력 소비량이 적다. 이들은 제조시설을 직접 운영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RE100 이행 부담이 낮음에도 아직 가입을 유보하고 있다. 이들이 제품 생산을 맡기는 공급망(Scope 3)에 바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 같은 메모리·파운드리 제조 기업(Fab)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비하는 제조 기업들은 국가적 전력 인프라의 뒷받침 없이 독자적으로 RE100을 달성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마이크론 역시 아직 RE100 가입 선언을 하지 못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기업과 국가의 현실을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작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 할 대목은 RE100을 가로막고 있는 국내 전력 시장의 구조적 모순이다. OECD 국가 중 한국과 멕시코는 전력 판매 경쟁이 가장 제한적인 국가에 속한다. 특히 한국전력이 송배전과 판매를 독점하다 보니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막대한 제약이 따른다. 대표적인 예로,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하는 PPA의 송배전 요금은 기존 한전 요금보다 많게는 두 배까지 비싸다. 기업 입장에서는 친환경 전력을 쓰고 싶어도 과도한 비용 장벽에 가로막히는 셈이다. 게다가 실시간 요금제가 정착되지 않아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널뛰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시장에서 유연하게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호남이나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남아돌아도 전력망 과부하를 막기 위해 발전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출력제한'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재생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력망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정작 전력이 필요한 곳으로 에너지를 보내지 못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지체와 병목현상이야말로 RE100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방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지역 소멸을 막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대기업의 지방 투자는 절실하다. 그러나 그 수단이 RE100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사실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 “RE100을 못 하니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식의 정치적 압박과 겁박은 기업의 경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도리어 국가 반도체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가 될 뿐이다. 지방이 기업을 유치하는 올바른 방법은 명확하다. 철저한 팩트를 바탕으로 논쟁하고, 기업이 스스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매력적인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과감한 세제 혜택, 규제 완화, 풍부한 용수 인프라, 그리고 호남의 청정 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제도적 인센티브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기업을 오게 만드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기업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치밀하고 유연한 '유인 정책'이다. bienns@ekn.kr

[EE칼럼] 트럼프의 화석연료 제재, 중국엔 ‘사랑의 매’

고립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트럼프 공화당 행정부가 온갖 비난을 들어가며 이란·베네수엘라에 군사개입하고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을 제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군을 해외 분쟁에서 빼내겠다던 MAGA 정권이 굳이 호르무즈와 카리브해에 힘을 쏟는 모순을 설명하는 길은 단 하나다. 중국이 그동안 누려온 값싼 원유 공급선의 차단이 주 목적이었다는 것뿐이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2025년 중국은 이란 해상 수출 원유의 80% 이상을 사들였다. 하루 평균 약 138만 배럴, 해상 원유 수입의 13.4%에 달하는 물량이다. 베네수엘라산도 2025년 12월 기준 하루 60만 배럴을 넘어 중국 원유 수입의 약 4%를 차지했다. 이렇게 국제 제재를 받은 원유는 그 위험을 반영해 국제 시세보다 배럴당 수 달러에서 많게는 십수 달러까지 할인되어 거래되어 왔으니, 중국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서 누리던 보조금이나 다름없었다. 이 공급선이 막히면서 중국은 이제 같은 기름을 시장가격에 사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 외교정책 문서에서도 '중국의 할인 원유시장 접근 제한'을 명시적 우선순위로 적시하고 있으니, 우발적 부수효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압박인 셈이다. 미·중 충돌이 반영하고 있는 진실은 분명하다. 에너지 자립, 곧 에너지 주권이 산업패권의 축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거도 그랬고 사실 중국도 미국의 이란 공격이 결국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은 에너지 주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AGI 인공지능 로보틱스가 향후 제조업의 패권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AGI가 만드는 스마트팩토리는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자율공장으로, 주 생산요소는 단 하나 전력이다. 사업자 입장에선 값싼 전력, 국가 전체적으론 한계생산비용이 0인 발전원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의 재생에너지 설비는 석탄을 추월해 2025년 초 14.8억kW에 도달했다. 2025년 첫 3분기에만 약 310GW가 새로 깔렸다. 웬만한 나라의 전체 발전설비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새로 지어버린 셈이다. 신장과 내몽골의 시간대 전기요금은 kWh당 0.243위안까지 떨어졌다. 청정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만도 2024년 중국 GDP의 10%를 차지했다. 인구에 비해 빈약한 부존자원이라는 한계가 오히려 이들로 하여금 세계 최초의 '전기국가(electrostate)'를 향해 박차를 가하게 만든 것이다. 수요 측면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밀어내고 히트펌프가 보일러를 대체하면서, 중국의 석유 수요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이 틀어쥐려는 수입연료 목줄 자체가 해마다 가늘어지고 있다는얘기다. 잡은 손에 힘을 줄수록 중국은 그 목줄이 필요 없는 몸으로 체질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기존 미국의 에너지 전략 자체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러시아나 이란 같은 우호국의 원유 도입을 차단한들, 중국 내 국산 에너지 확보 속도가 이 정도라면 미국의 차단벽은 장기적으로 보아 단기 효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러니 미국의 제재는 한계생산비용이 0이고 에너지 안보까지 챙기는 미래형 에너지 공급체계를 중국이 선점하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말 그대로 '사랑의 매' 수준이 될 뿐이다. 이 충돌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이제 제조업의 경쟁력은 과거와 같은 값싼 인건비가 아니다. 공정의 사람 손은 모두 로봇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로봇에 공급할 전기료 자체가 곧 국가 경쟁력이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든 자동화 공장이든, 결국 전기를 먹고 크는 산업들이다. 임금이 경쟁력이던 시대에는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가 세계의 공장이 되었지만, 전기료가 경쟁력인 시대에는 싼 전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세계의 공장이 된다. 중국과 수많은 제조업 부문에서 경합하는 한국이, 막대한 수입산 원료를 계속 사면서 과연 경쟁력을 지켜낼 수 있을까? bienns@ekn.kr

[EE칼럼] 에너지 시장에서 고착된 선입관

'호르무즈' 사태 이후 세계 석유 시장형성 기조(基調)는 1) 기존 시장 질서 회복 시도와 2) AI(인공지능)의 파급 효과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혼존(混存)이다. 우선 '호르무즈' 사태 이후 기존 질서 회복 시도는; 페르시아만 수출국들의 파이프라인 확장을 통한 '호르무즈' 우회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UAE(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는 이미 대체 수출 경로를 확대-운영한다. 여기다 베네수엘라, 이란과 러시아의 추가 수출이 예상된다. 미국 영향권에 있는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은 이미 125만 배럴/일 수준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원유 생산의 중복성, 저장능력 확대, 그리고 다양한 수출 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미래 원유시장 변화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미국-이란 전쟁이 처음 발발하였을 때 1)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절대 폐쇄하지 않을 것이며, 2) 폐쇄되더라도 몇 주 이내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무기한 해협 폐쇄 가능성이 제기되자 결국 비상 대책들이 나왔다. UAE의 OPEC 탈퇴는 그 대표적일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UAE(아랍 토후국 연합)는 자국 원유 생산량을 하루 500만 배럴로 늘리는 노력을 해 왔으나 OPEC 내부 합의에 실패하였다. 이번 조치는 자국 에너지 독립성 제고를 위한 비상책일 것이다.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내륙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호르무즈를 우회하고 있다. '이라크' 역시 남부 유전 생산이 70% 급감하여 비상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결국 이번 위기는 호르무즈 해협 우회를 위한 '인프라' 건설 경쟁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여건 아래 지난 6월 10일 국제원유시장은 미국 WTI(서부 텍사스중질유) 가격은 종전 거래일 대비 3.4% 내린 88.20달러/배럴 수준으로 시작되었다. 북해산 Brent유는 91.73달러, 천연가스는 약 0.22% 하락한 3.14 달러/백만BTU(영국열량단위) 수준을 보였다. 통상적 시장변화 범주 아래 있다.그러나 길게 보면 이러한 가격 변화 이면에는 석유, 가스, 석유화학, 비료, 헬륨 등 상호 연결된 원자재 사슬 전반에 걸친 위기 요인들이 누적되고 있다. 그 위기는 시장가격 '리스크'에서 배송 및 시장접근 위험으로 바뀌고 있다. 석유 등 에너지 시장의 본원적 한계인 고갈 가능성과 함께 공급망 유연성 부족 우려가 더해지는 셈이다. 두 번째 석유 시장형성 기조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과 에너지시스템/시장과의 연계이다. 이를 통한 지속적 융합-고(高)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란 인간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등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을 말한다. 차세대 청정에너지 기술 개발에 매우 유용하단다. 예컨대 신형 SMR(중소형 핵융합로)와 재생 에너지 개발 과정에서 AI 활용 효율성이 입증되고 있단다. 특히 전력 수요 급증 대처와 수급 체계 건전화 차원에서 AI는 미래 전력 체계 변화의 장-단점을 손쉽게 검증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AI시대를 여는' 이재명 정부 시대를 살고 있다. 작년 6월 취임 직후부터 AI 선거공약을 적극 시행 중이다. 주요 공약은 관련 정부예산 지속 증액과 민간투자 100조 원 수준 달성, 데이터 센터 등 AI 고속도로 구축, 최신 GPU(최소 5만 개) 확보, 미래 인재 육성 등이다. 여기다 대통령실 'AI 정책수석'이 신설되었다. 취임 2년 차인 올해는 1) 'AI 3대 강국 도약 2) 첨단전략 산업 등 핵심기술 개발 3) AI 인재 1,1만 명 양성과 고성능 GPU 1.5만 장 추가 구매 4) 150조 원 수준 국민 성장 펀드(5년간) 조성 등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성공을 바란다. 그러나 AI 정책 실패는 AI 도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국내외 전문가 지적에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대규모 AI 모델을 도입, 운영에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나 AI는 다양한 부문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크게 높인다고는 한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AI가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검증이 중요하다. 특히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고려하고, 수명 기간 전반에 걸친 동태적-객관적 경쟁력 검증이 필요하다. 이에 AI 투자 평가 기준이 모델 성능에서 '와트당 토큰 가치'로 전환되고, '전력 경제학'이 생존의 핵심 화두로 부상한단다. 사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AI 첨단 모델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한 이래 글로벌 AI 기업들의 대형 IPO(자본 모집을 위한 기업공개)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그만큼 유동성 우려가 커진다. 따라서 글로벌 AI 질서는 미국 중심의 민간 'AI 생태계' 성공 여부에 크게 달려 있다. 사실 AI 붐은 에너지 산업에 전례 없는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우려가 분명히 있다. 우선 AI 데이터 센터용 전력 공급 가능성 차원 우려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노후화된 기존 전력망을 가진 현재 여건에서 국가 민생 복리를 저해하지 않는 '효율적' AI 전력 수요대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효율적 AI 도구 활용 조건에 상충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 해결 과제가 도출되는 셈이다. 여러 전문 의견을 종합할 때 거시 측면의 AI 투자/사업 효율화 방안에 대한 확실한 결론은 아직 없다. AI 투자/사업이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절약 가능한지에 대해 전문가 견해마저 엇갈린다. 따라서 AI 투자는 위험 회피 전략 요소를 구비 해야 한다. AI 투자 편익을 기존 화석 연료 소비 시설 (발전소 등) 비용 합리화에 재투자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석유파동 때 직시한 '석유 메이저(Oil Major)'들의 '영역 독과점' 폐해를 다시 볼지 모른다. ekn@ekn.co.kr

[EE칼럼] 한・미 원자력 협상, 선장이 필요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이 있다. 뱃길을 잘 아는 사람이 여럿이어도 방향을 정하고 책임지는 이가 없으면 배는 결국 목적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정부 간 협상도 다르지 않다. 여러 부처가 저마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방향을 잡고 끝까지 밀고 나갈 선장이 없다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6월 첫 주 한·미 안보 분야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농축과 재처리를 포함한 핵연료주기 전반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미 협상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93.4%를 수입했다. 원전 연료인 농축우라늄은 전량 수입한다. 2025년 기준 약 37%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여기에 고리와 한빛 등 주요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핵연료주기의 앞단인 연료 공급과 뒷단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모두 국내외 제약에 묶여 있는 셈이다. 이번 협상에서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에 실패하면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려되는 것은 협상 자체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만, 핵심 의제인 농축과 재처리 관련 업무는 다수 부처에 걸쳐 있다. 이렇게 분절된 방식으로는 미국을 설득할 촘촘하고 강력한 논리를 짜기 어렵다. 핵연료주기는 우라늄 확보와 농축, 핵연료 제작과 사용, 사용후핵연료 저장·재처리·처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된 체계다. 어느 한 부분만 떼어놓고 접근해서는 국가 전략이 될 수 없다. 이 전체를 한눈에 꿰는 범부처적 밑그림이 있어야만 비로소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부처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나라와 범부처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단일한 전략을 제시하는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신뢰를 얻겠는가. 협상 테이블에서 신뢰는 말이 아니라 준비된 국가 체계로 증명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준비다.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우리나라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국가 차원의 핵연료주기 전략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일본이 1988년 포괄적 사전동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수십 년간 유지된 장기계획이 미국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 재처리 추진 중단, 2004년 미신고 핵물질 실험 파동 등을 거치며 비확산 분야에서 적지 않은 불신을 자초해 왔다. 이번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협상에 임한다면 결과는 선언적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기껏해야 구색 맞추기용 성과에 그칠 뿐, 실질적 에너지 자립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원자력협정의 유효 기간은 수십 년에 이른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나라의 농축우라늄 공급망 취약성은 장기간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발 공급 부족이나 지정학적 위기 가운데 어느 하나만 발생해도 원전 운영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고 처분 부담을 줄이는 선택지 역시 상당 기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대책은 분명하다. 범부처를 아우르는 '핵연료주기 자립 통합 태스크포스'를 조속히 구성하고 총괄 부처를 지정해야 한다. 대외협상 창구는 외교부가 맡더라도, 기술·산업·안전 논리를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할 총괄 부처가 꼭 있어야 한다. 아울러 올해 수립될 「제7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농축·재처리 통합 로드맵을 반영하고, 이를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국가 정책으로 확정해야 한다. 이러한 법정 계획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미국도 우리 정부의 정책적 지속성과 이행 의지를 신뢰할 것이다. 핵연료주기 자립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마지막 퍼즐이다. 그 퍼즐을 완성할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항로가 열렸다고 해서 목적지에 자동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공이 아니라 선장이다. 국가 명운이 걸린 협상을 앞두고 선장 없이 배가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bienns@ekn.kr

[EE칼럼] 햇빛이 마을 복지가 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당면 과제 앞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에너지 전환이 더 깨끗한 미래를 보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저절로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잘 와 닿지 않지만, 전 세계 수억 명의 인구가 여전히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자산의 소유권과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는 경우가 많다. 기후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후위기의 피해가 저소득 국가와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반면, 정작 이들의 목소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 일쑤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정의의 원칙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적 전환에만 매몰된다면, 다가올 재생에너지 시대 역시 기존의 구조적 불평등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는 원래 노동조합이 탈탄소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단순한 노동자 지원을 넘어, 현재의 기후·사회적 위기를 유발한 정치·경제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정책 설계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로 분배적 정의, 절차적 정의, 인정의 정의, 회복적 정의, 공간적 정의, 세대간 정의를 제시한다. 단순히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넘어, 에너지 전환으로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이익이 공정하게 나누어져야 하며, 의사결정에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과거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공동체를 치유하고, 국가 내부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며, 미래 세대에게 기후위기의 짐을 떠넘기지 않는 세대간 형평성 역시 담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정의의 원칙들을 우리 현실에 잘 녹여낸 실천적 대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2030년까지 3,000곳 이상 확대를 목표로 본격 추진 중인 햇빛소득마을이다. 햇빛소득마을은 주민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의 유휴부지나 농지 등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 소득과 마을 복지로 환원하는 주민주도형 에너지 자치 모델이다.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의 사례처럼 태양광 전력 판매 수익으로 마을회관의 무료 점심을 제공하고 무료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식이다. 이 사업이 가진 가장 큰 사회적 가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잘 부합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대규모 외부 자본 중심 개발에서 벗어나, 지역 자원을 활용해 발생한 수익을 마을 공동기금이나 복지사업, 지역경제 활성화에 환원한다. 이는 에너지 전환의 경제적 혜택이 특정기업이 아닌 지역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분배적 정의를 실현한다. 마을 공동체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됨으로써 에너지 시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과 입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소한다. 태양광 패널이 혐오시설이 아닌 우리 마을의 복지를 책임지는 효자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마을 주민을 에너지 전환의 능동적 주체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의에 부합한다.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인정하고 소외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은 인정의 정의에 해당한다. 아울러 그동안 도시를 위한 에너지 공급처로만 소비되던 농촌 공간이 재생에너지를 매개로 자립적인 경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은 공간의 소외를 극복하는 공간적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모델이 전국으로 온전히 확산되려면 송배전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제도적 과제도 남아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설비 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지지 없는 에너지 전환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민들이 에너지 대전환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체감할 때 지속적인 추진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지속가능한 미래로 걸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bienns@ekn.co.kr

[EE칼럼] 자원공기업 혁신, 일본은 했는데 우리는 못하는 이유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등 우리나라 3대 자원공기업의 혁신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원공기업의 혁신은 조직개편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광물 안보를 강화하면서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인 일본은 자원공기업에 대한 개혁에서는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례로 JOGMEC(조그맥)이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석유,가스 분야와 금속 광물 분야의 기관을 통합해 조그맥을 설립했다. 이후 2012년 관련법 개정을 통해 기능을 더욱 확대했다. 통합 이전 문제는 기관별 업무 중복, 투자 판단 분산, 해외 자원개발 협상력 부족, 민간기업 지원 체계 미흡이었다. 하지만 통합 이후의 변화는 자원개발 컨터롤타워 구축, 해외 프로젝트 투자.융자.보증 기능 일원화, 기업들의 해외 진출 지원, 국가 차원의 자원안보 전략 수행이다.조그맥은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 사이의 “자원개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일본 정부가 조그맥 설립을 통해 얻은 성과는 첫째, 에너지.광물 안보 강화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LNG 확보를 크게 확대했고, 중동, 호주, 동남아, 아프리카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뛰어 들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조그맥의 보증과 금융 지원을 활용해 대형 LNG 사업에 진출했다. 둘째, 민간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일본은 공기업이 직접 사업을 독점하지 않고 정부가 조그맥으로 그리고 민간 종합상사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를 구축해 실행했다. 사례는 미쓰비시, 미쯔이 등 종합상사와 INPEX(국제석유개발제석)가 해외 자원개발에 참여했다. 셋째, 위험 분산 체계를 구축했다. 해외 자원개발은 성공 확률이 낮고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따라서 일본은 정부 보증, 정책 금융, 탐사 및 기술 지원 등의 체계를 통해 민간기업의 위험을 줄여줬다. 넷째,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 성과다. 일본은 최근에는 석유보다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우라늄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했다. 물론 일본도 해외 자원개발에 있어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해외 광산 투자 손실과 자원 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 정부 재정 부담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정치 논란에 따른 무리한 투자를 상대적으로 적게 하고 전문가 중심의 투자 심사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명확하다. 우리 자원공기업이 가야할 길은 단순히 수익을 내는 공기업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안보와 핵심광물 확보를 책임지는 전략기관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정권마다 공기업 혁신을 말하면서 구체적 실행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 몇가지를 지적한다면 첫째, 해외 자원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석유, 가스, 우라늄과 리튬, 니켈, 구리, 희토류 등 에너지와 핵심광물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이들 에너지, 광물 확보는 단순 지분 투자보다 직접 운영 역량 확대가 중요하다. 또한 자원부국과 중장기 공급 계약 체결도 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원 확보는 경제안보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공기업이 위험성이 큰 초기 탐사를 담당하고, 개발 단계부터는 민간이 참여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예를들어 배터리, 철강, 반도체 기업과 혐력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둘째, 방만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 중복되는 조직 통폐합과 성과 중심 보상 체계 등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아울러 해외 자산에 대한 정기적 가치 평가를 하며 투자 실패에 대해선 분석을 통해 책임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AI 기반의 자원개발이다. 세계 주요 에너지 및 광산 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탐사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째, 국가 에너지, 자원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의 조그맥처럼 자원 안보를 총괄하는 기관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산업통상부가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업공단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전과 5개 발전공기업, 한수원을 관리하는 이원화 체계에 있어 제각기 역할이 분산되어 있다. 다섯째, 에너지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 석유, 가스 뿐만 아니라 우라늄, 리튬, 니켈, 코발트, 구리 등의 핵심광물 확보를 강화해야 한다. 여섯째, 국가 차원의 자원 안보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 공기업과 민간기업, 연구기관 간 협업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또한 해외사업과 자원외교가 연계되어야 하며, 핵심광물 비축도 더 확대돼야 한다. 특히 집중해야 할 분야는 향후 20~30년 동안 에너지.광물 안보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우라늄, 천연가스, 리튬, 니켈, 구리, 희토류의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원전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우라늄 확보가 중요하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참여하는 해외 우라늄 광산개발 연합팀을 가동해 확보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종합하면 과제 해결은 정부의 의지다. 기업들의 해외 광산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쇼는 “정권 리스크"이다. 자원정책이 정권 교체때마다 냉온탕을 오갔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지금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에 나섰다가 다음 정권에서 기조가 바꿔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업계의 우려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선 정부가 통제 가능한 자원공기업부터 제대로 혁신해야 한다. bienns@ekn.kr

[EE칼럼] 에너지 전환의 특이점

에너지전환의 특이점(Tipping Point)이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가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역전되어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결정적 급변점을 의미한다. 한 번 이 지점을 넘어서면 기술·경제·사회적 관성이 재생에너지 체제로 고착되며, 화석연료로의 회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놀랍게도, 그 특이점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으며, 이 특이점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비용 경쟁력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이미 많은 지역에서 석탄·가스 발전보다 저렴해졌다. 기술 발전과 대규모 생산 효과로 인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시장 논리 자체가 재생에너지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기후 위기의 경고음이 더해지고 있다. 온실가스 축적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이미 약 1.4℃ 상승한 것으로 관측되면서,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195개국이 합의한 1.5℃ 상승 제한 목표에 바짝 다가섰다. 과학자들은 이 1.5℃를 '안전한 상한'으로 제시했으나, 우리는 그 문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는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단순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바꿔놓고 있다. 이 두 가지 흐름, 즉 경제적 우위와 기후적 절박함이 맞물리면서 에너지전환의 특이점은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지고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세계 에너지 투자 보고서(World Energy Investment 2026)는 이 전환의 속도를 숫자로 증명한다. 2025년 청정에너지 투자액은 2조 1,550억 달러에 달한 반면,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투자액은 1조 80억 달러에 머물렀다. 청정에너지 투자가 화석연료의 두 배를 넘어선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현상이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역사상 최대의 에너지 안보 위기 속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세계는 화석연료로 돌아가지 않았다. 영국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연례보고서는 더욱 선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2025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 발전량을 사상 처음 추월했고, 2025년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분 849TWh를 청정에너지가 100% 이상 감당했으며, 화석연료 발전은 오히려 38TWh 감소했다. IRENA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의 85.6%가 재생에너지였고, 그 중 태양광이 74%, 풍력이 23%를 차지했다. 태양광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 세계 누적 태양광 설비가 1TW에 도달하는 데에는 1954년 실리콘 태양전지 개발 이후 약 68년이 걸렸지만, 2TW까지는 34개월, 3TW는 불과 20개월이 소요됐다. 이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전환의 신호다. 에너지전환은 더 이상 선진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3월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필리핀은 2026년 4월 기준 4.1GW의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수입하여 신흥·개도국 중 최대이자 세계 2위 수입국이 됐다. 수입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배 수준이며 같은 기간 파키스탄 3.6GW, 태국 2.3GW, 베트남 2.2GW로, 일본(2.1GW)과 한국(1.8GW)을 앞질렀다. 아프리카에서도 콩고가 2025년 한 해 1.2GW를 수입한 데 이어 2026년 4월까지 이미 1.3GW를 기록했다. 주요국의 발전 비중도 눈길을 끈다. 룩셈부르크(30.5%), 헝가리(27.8%), 칠레(25.1%), 스페인(21.1%), 파키스탄(18.8%)이 이미 전체 발전량의 5분의 1 이상을 태양광으로 조달하고 있고, 2020년 대비 2025년 발전량 증가율을 보면 콩고 126배, 폴란드 10배,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9배, 스리랑카 6배 등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중심의 제조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에너지전환의 특이점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명운을 가르는 산업 경쟁력의 문제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RE100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조달 능력은 이제 수출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되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해외 고객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의 미비는 곧 산업 전반의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최근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100GW 확보, 2035년 발전비중 30% 목표를 확정했다. 이는 바람직한 출발점이지만, 글로벌 에너지전환 속도를 고려할 때 목표 달성 속도와 실행력에서 한층 더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목표대로 10년 뒤인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를 달성해도 이는 2025년 전 세계 평균 33.8% 보다 3.8%포인트 낮은 수준이며, 10년 뒤 목표가 오늘날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야심찬 목표라기보다는 사실상 포기선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글로벌 에너지전환 속도에 맞춰 전환을 더욱 가속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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