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소비쿠폰 좋다지만 최저임금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내건 기치는 '민생 회복'이다. 소비 쿠폰 등이 포함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은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단비'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속도감 있는 추경 편성을 당부하며 “취약계층, 소상공인을 우선 지원하라"고 지시한 건 참 다행스럽다. 그러나 새 정부의 행보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한창 논의를 진행 중인 최저임금 문제 때문이다. 소상공인업계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에도 최저임금의 동결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계 표심(票心)을 고려한 행보였다 하더라도, 소상공인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대비 14.7% 올린 1만1500원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인상률이 16.4%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한발 물러났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의 최저임금도 버텨낼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숫자다. 노동계의 요구안이 공개된 후 소상공인 자영업자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성토의 장이 됐다. 편의점 사장의 수입이 아르바이트생 수입보다 적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재 중 만난 한 자영업자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가게를 접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안 오거나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쪼개기 알바'만 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주일에 1시간에서 14시간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지난해 174만2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간 당 1만원을 넘어선 최저임금에 주휴수당 부담까지 커진 결과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사라지면 근로자가 설 곳도 없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영세 소상공인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다. 소비쿠폰, 부채탕감 등 달달한 정책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든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사용자 측 위원으로 참여하는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제1의 기치로 내걸겠다고 했다. 최저임금 동결은 소상공인의 '마지막 보루'다. 소비쿠폰이 당장의 어려움을 잊게 해 줄 '진통제'라면, 최저임금 인상은 지병을 악화시키는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한국지엠 철수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상상해 보자. 현대자동차가 베트남 자동차 제조사를 인수했다. 인건비가 저렴해 매력적인데 정부가 보조금까지 준다. 세월이 흐른다. 경쟁에서 밀려 판매가 급감했다. 현지 수요가 줄자 차량을 한국으로 수출하기로 한다. 어느날 갑자기 관세 장벽이 생긴다. 인건비는 매년 치솟아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생산성은 최하위다. 그런데도 노조는 계속 임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일부 조합원들은 사장실을 점거한 뒤 집기를 부수며 폭력시위를 한다. 베트남 정부는 내수용 전기차 신모델을 생산하라고 회사를 압박한다. 현대차는 이 공장을 계속 운영해야 할까? 한국지엠 '철수설'로 자동차 업계가 시끄럽다. 사실 정확한 표현은 '철수설'이 아니라 '철수 수순'이다. 한국지엠은 주요 공장 부지와 직영 서비스센터 9개를 매각한다고 최근 밝혔다. '수익성 증대 차원의 결정'이라는 사측 발표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떠날 준비를 해왔다. 유럽 오펠 매각 등 글로벌 사업장 구조조정을 본격화한 2017년이 기점이었다. 당시 메리 베라 회장이 '해외공장 살생부'에 한국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지엠이 수조 원 적자를 내는 동안 노조가 성과급을 달라고 파업을 벌이던 시기였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은 2018년 군산공장 문을 닫으며 시작됐다. GM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투입한 혈세 8000억 원은 '10년간 사업을 지속한다'는 약속의 대가였다. 한국지엠은 곧바로 연구개발 법인을 인적분할하며 오는 2028년 이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내수 판매가 부진하다면서 광고선전비 집행액은 2023년 348억 3300만 원에서 지난해 221억 4200만 원으로 36.4% 줄였다. 이런 상황에 한국지엠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에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당기순이익의 15% 성과급, 통상임금의 500% 격려금 등 내용을 담았다. 1인당 6000만원 이상 일시금을 받아 가겠다는 뜻이다. 사측이 밝힌 자산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국내에 신차 물량을 배정해달라는 요청도 할 계획이다. 파업은 정해진 수순이다. '노란봉투법' 같은 법안 통과도 예고돼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GM은 이 공장을 계속 운영해야 할까? 한국지엠이 철수할 경우 우리 경제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직접 고용 인력만 1만1000여명이다. 협력사 수는 3000여개로 추산된다. 결국 정부가 나서 GM과 협상을 벌일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쌍용차 사태'까지 겪었던 KG모빌리티는 한국지엠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부활한 경험이 있다. 중국·인도 자본의 만행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노동자와 경영진이 뭉친 덕분이다.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 시기 쌍용차 노동자들은 수년간 임금을 동결하며 고통을 분담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임기 초부터 시험대 오른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

노동자 인권을 강조한 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인명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대선 하루 전인 2일 한전KPS의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목숨을 잃은데 이어 9일에도 태안화력 옥내저탄장에서 한 노동자가 쓰러져 심정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관은 이 외에 지난해에도 2건의 인명사고를 냈다. 이쯤 되면 개별 작업장이나 노동자의 실수로 돌릴 수 없다. 구조의 문제다. 죽음의 원인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노동자의 삶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 소년공으로 일하며 위험과 열악함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 존중'과 '산업재해 근절'은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강조된 정책 기조였고, 취임 후 중대재해처벌법 엄정 적용 원칙도 재확인했다. 이번 태안화력 사고 직후 대통령 비서실장이 유족을 찾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포함해 엄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사고 현장을 찾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이 행동으로 이어질지 노동계와 국민 모두가 주시하고 있다. 이번 사망사고에 한전KPS와 관할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책임도 회피할 수 없다. 안전총괄자인 한전KPS 사장은 지난해 6월 이미 임기가 종료됐으나 현재까지 연임 중이다. 지난해 말 이사회와 주총에서 신임 사장이 내정됐지만, 산업부가 여전히 임명을 미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관의 책임있는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기대하긴 어렵다. 노동계가 이번 사고를 두고 정부와 여당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뿐인 중대재해처벌법, 보여주기식 유가족 위로에 그친다면 이재명 정부의 '노동 존중' 선언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름 그대로다. 사업장에서 사람이 죽으면 최고경영자가 책임지는 시대가 왔다. 이는 노동자의 권리 이전에, 국가가 법으로 보장한 인간의 생명권이다. 대통령이 강조했던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태안화력 사고는 단지 한전KPS나 서부발전, 발전공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새 정부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증명할지 여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사고 기관의 말이 면피성이 아니라, 이번에는 그 말이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패션도 과학이다

이제는 패션의 경쟁력을 과학이 좌우한다. 단순히 디자인의 변화로 소비자의 눈을 만족하는 시대는 지났다.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모든 부분에서 전문성을 강화한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부터 러닝, 트레킹 등이 취미로 급부상하는 트렌드에 맞춰 R&D 기반의 제품 개발에 힘썼다. 디자인은 물론 운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트레일러닝 전용 상품 'TL-X'를 내놓았다. 이 상품은 코오롱스포츠가 자체 개발한 에너지 회복에 최적화된 질소 주입 방식의 하이퍼리프 미드솔을 사용했다. 또 최고급 반발력 소재인 PEPA폼을 복합 적용해 뛰어난 탄성과 안정적인 쿠셔닝을 제공한다. 편안한 착화감은 기본으로 기록 달성까지 가능한 기능성을 담아 제작했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패션기업의 소재 개발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는 2010년 자체 개발한 냉감 소재 '쿨테크'로 여름 시즌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쿨' 라인 제품은 135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15% 증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쿨테크는 나일론에 냉감 원석을 혼합하고 속건 기능을 가진 폴리에스터와 혼방한 소재로, 시원한 촉감, 흡습속건 기능, 관리의 용이성 등을 갖추고 있다. 네파는 냉감 의류 라인인 컴포(컴포 테크·컴포 쿨) 시리즈를 새롭게 공개했다. 컴포 테크는 접촉 냉감성 나일론 소재를 사용해 몸에 닿을 시 바로 시원한 착용감을 선사한다. 컴포 쿨은 용융사 메시 소재인 마이크로 에어 닷을 활용해 몸의 열기는 원활히 내보내 시원한 착용감을 자랑한다. K2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케이랩 시그니처'를 선보였다. 아웃도어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운영하는 K2연구소가 개발한 이 서비스는 3D스캐너로 발을 분석해 소비자의 발 길이와 폭, 아치 높이 측정부터 보행 분석, 신체 균형까지 종합적으로 진단해 맞춤형 제품을 추천한다. 그동안 매장에서 직원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품의 설명을 듣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선수나 의료기관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고급 분석 기술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신체에 알맞은 제품을 과학에 기초해 선택 가능하다. 패션기업 관계자는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 과거에 비해 디자인보다 기능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며 “각 브랜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소재를 개발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은행 ‘PBR 1배’의 벽이 말하는 것

지난 4일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국내 은행주는 급등세를 보였다. 주가가 10만원을 넘어선 KB금융지주를 포함해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모두 장중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어수선했던 정치적 분위기가 안정되고 새 정부의 코스피5000 공약 등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주가 상승 속에서도 국내 은행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여전히 1배를 밑돌고 있다. PBR은 기업의 순자산 대비 1주당 몇 배에서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PBR이 1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사업을 청산했을 때보다 주가가 낮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장기적으로 PBR 1배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달성 가능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금융지주사별 PBR은 KB금융 0.68배, 신한금융지주 0.53배, 하나금융 0.48배, 우리금융 0.44배에 각각 그친다. PBR이 1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은행 산업이 정책 리스크에 휘둘리고, 은행 산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금융지주사들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발표하며 은행의 장기적 성장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정책 변동성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새로운 정부에서 은행의 상생금융 압박은 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벌어들인 돈을 뱉어내도록 강제하는 구조는 은행이 민간 은행이라기 보다는 공공재란 인식을 더욱 부각시킨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마다 정부가 나서 은행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은행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은행산업의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 이익이 정부 방침에 따라 언제든 환원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해당 은행을 믿고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가 주가로 반영되고 낮은 PBR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은행의 사회적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방법이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우리나라 은행주가 제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 정부가 내건 코스피 5000 시대에 은행주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PBR 1배란 목표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은행권, ‘종노릇, 공공재’ 낙인...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의 임기가 4일 오전 6시 21분 공식 개시됐다. 이 대통령 임기 첫날 코스피는 2% 넘게 올랐고, 직전 연고점인 5월 29일(2720.64)를 경신하며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지수를 기록했다.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미중 정상간 대화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뉴욕 증시도 상승 마감하면서 국내 증시에 훈풍이 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윤석열 정부 내내 상생금융 압박에 시달렸던 은행권에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라고 발언한 데 이어 같은 해 2월에는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0월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전하기도 했다.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이 수조원 규모의 상생금융을 발표하고, 금융지주 회장들이 상생금융에 열을 올린 것은 앞서 윤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전 정부의 금융 관련 정책들에 모두 흠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2월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를 목표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공개하고, 주주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인프라 개선 등에 집중한 덕에 국내 증시를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금융권을 향한 무조건적인 낙인은 멈추고, 자본시장 선진화, 금융시장 발전 등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현재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금융권을 향한 상생금융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 6개 시중은행장과 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방안을 이행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전 정부가 주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쏟는 동시에, 금융사들이 보다 의미 있는 방향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그것이 이 대통령의 최종 득표수 1728만7513표, 최종 득표율 49.42%에 보답하는 길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가덕도신공항 문제, 새 정부 직접 나서야

“우리라고 왜 (가덕도신공항 공사를)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일부에선 현대건설이 떼돈을 벌려고 일부러 공사를 시작도 안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무조건 기한 내에 공사를 끝내라고만 하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지난달 말 만난 현대건설 한 관계자의 한탄이다. 듣는 순간 현대건설은 이미 가덕도신공항 공사에서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가 명확하게 공사 진행 여부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아 기사화 하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대화를 주고받은 지 열흘 남짓 지난 후 결국 현대건설은 가덕도신공항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현대건설 입장에서도 일방적으로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다가 회사가 위기 상황에 빠질 수는 없으니 '차라리 공사를 접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가덕도 신공항 공사는 현대건설 단독 시공 사업장이 아니다. 현대건설이 지분 25.5%를 들고 있는 주관 시공사이긴 하지만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도 각각 18%와 13.5%의 지분을 들고 시공에 공동 참여하는 컨소시엄 프로젝트다. 현대건설은 이번에 사업 불참 결정을 내리면서 공사 파트너인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 측과 사전에 그 어떤 협의도 하지 않았다. 해당 건설사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현대건설이 불참 선언을 한 지난달 30일 당일에서야 언론을 통해서 사태를 파악했다고 한다.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주관사인 현대건설이 사업에 빠지면서 허공에 뜬 상태가 됐다. 앞으로 가덕도신공항 공사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자 두 회사 관계자들은 “주관사가 못하겠다고 빠진 상황에서 당장 뭐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고 난감해 했다. 이번 사태는 시공사와 현지 이해 관계자들의 감정 싸움이 결국 파국에 이른 결과다. 그 피해는 부산 시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이처럼 당사자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땐 중간에서 조정에 나서는 것이 정부 당국의 일이다. 이번 문제에 있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과연 얼마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토부가 무조건 현대건설을 상대로 공사기간을 지키라는 윽박만 지른 것 같다는 것이 현대건설과 국토부를 출입하며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다. 가덕도 신공항 사안은 정권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산적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번 정부에선 국토부가 부디 '운영의 묘'를 발휘하길 기원한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낮은 가치 산정에 시달려왔다. 낮은 주주환원율,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온 결과다. 6·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상법 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세제 혜택 확대를 중심에 놓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목표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는 독립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활성화, 전자투표 의무화,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등의 정책에 포함된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 신주를 일정 배정하는 제도와 소액주주 회수 기회 보장을 위한 의무공개매수제도도 추진될 예정이다. 상장사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상법 개정이 추진되면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투자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바탕으로 투자 기업의 경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이런 제도 변화는 기업들이 주주로부터의 감시와 견제를 더욱 강하게 받게 된다는 점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실행 과정에서 반발과 충돌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김 후보 측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해서는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상장사 주주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사외이사 전문성 제고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물적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 대한 신주 우선 배정, 경영권 변경 시 소액주주 권익 보호, 주주총회 소집기한 연장,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도 포함된다. 시장에서는 이런 공약들이 실행 여부에 따라 평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법 개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 공모주 제도 개선, 금융 범죄 대응 강화 등은 국회 논의, 예산 확보, 민간 참여 등 다수의 절차를 거쳐야만 실현될 수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역시 정책적 의지 외에 외국인 투자환경, 외환시장 접근성, 기업 공시 수준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단기간에 이루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장기 과제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이 저마다 해법을 내놨지만, 시장 신뢰는 번번이 공염불에 그쳤다. 이번 대선 역시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약에서 실행으로 이어질 때만이 투자자들의 신뢰가 돌아오고, 시장은 비로소 저평가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던진 약속들이 이번에도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HMM 본사 이전의 경제학

HMM이 대선 정국에서 때 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HMM 본사의 부산 이전에 대한 의지를 연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지난 27일 진행된 마지막 TV 토론회와 지난 14일 부산 유세에서 HMM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강조했다. HMM이 민간기업이지만 현재 정부가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HMM에 대한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 지분 71.69%와 국민연금 지분 6.02% 등 77.71%의 지분을 갖고 있긴 하다. 그러나 국민의힘·개혁신당 등으로부터 현실성이 없는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HMM 관련 논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HMM의 부산 이전이 선거 공약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총선, 지자체장 선거는 물론이고, 제20대 대선 당시 이 후보가 부산 9대 공약 중 하나로 HMM 부산 이전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 기업 이전이 정치적 고려가 아닌 경제 논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현실화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 공약이었던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산업은행은 공기업 중 자산 규모나 역할이 커 이전 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HMM도 다르지 않다. 고객사인 화주가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해외 고객사를 응대하기에도 서울이 훨씬 낫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해운업이 글로벌 영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사 이전으로 경쟁력이 상당히 흔들릴 수 있다. 또 HMM은 민간기업이라는 점도 문제다. 현재 산은·해진공이 최대 주주이나 이들이 HMM을 지속적으로 소유해 사업을 영위할 것이 아니기에 본사 이전과 같이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HMM 인수를 원하는 원매자가 본사 이전을 찬성할지도 미지수다. 자칫 HMM의 가격이 낮아져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의 최대 회수를 저해할 요인도 있다. 앞으로 국내에서 산업은행의 손을 거칠 기업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모두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이 아닌 어딘가로 본사를 이전시킬 수는 없다. HMM의 본사 이전이 진정으로 동력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밀어붙이는 것을 넘어 서울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 자진해서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정 HMM과 부산시를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할 때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구멍 뚫린 사이버 방패, 줄줄 새는 개인정보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먼저 가 있던 개인정보가 마중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SK텔레콤 유심(USIM·가입자식별모듈)정보 해킹 사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러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화제를 모았다. '반려동물' 대신 '개인정보'를 넣어 부실한 관리 체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번 사고의 경우, 기업 차원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단 데 이견을 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도 많은 지적거리가 나와 더 언급하기 입아플 지경이다. 국민들은 “내 개인정보는 나도 못 해본 세계여행을 이미 끝마쳤을 것 같다"는 자조적인 말을 꺼낼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이제 우리가 짚어야할 건 초기 대응 너머에 산적한 문제들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땜질과 책임을 면피하려는 태도에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해킹 사고 수습은 해커를 찾아 처벌하는 한편, 원인 점검 후 빈틈을 메꾸는 데 그쳤다. 이 때 예산을 푸는 건 잠시뿐, 일정 수준 수습되면 보안은 다시 후순위로 밀렸다. 문제는 또 있다. 사고 발생 이후 고객들의 트라우마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 수 있는 기관이 없단 것이다. 고객이 기업 등지에 본인이 겪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유구하지만,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내용에 그친다. 잦은 사고 여파로 보이스피싱·스미싱은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때문에 기존보다 스미싱 빈도가 더 높아지면 '어디서 또 개인정보가 유출됐나' 지레짐작할 뿐이다. 이것만으론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없어 기업으로선 책임을 피하기 유리하다. 기업들은 양자암호통신 등 기술을 앞세워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정작 위약금 문제엔 뒷짐져 왔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운 정부는 “보안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조사 종료 이후의 대책은 아무도 꺼내지 않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듯 보안 시스템 강화에 그치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 이번 사고 여파를 끝까지 책임지고 수습하겠다는 태도로 고객 피해 보상책까지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행여 너무 많은 비용 손실이 발생해 회사 존립에 문제가 생긴다면, 평소 개인정보 보호를 신사업 뒤로 미뤄온 업보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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