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부의 정책 철학, 딜레마 빠질 때마다 피해는 국민의 몫

정부가 지난 13일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을 꺼냈다. 주택 공급과 실수요 위주로 나타난 대출 절벽현상을 완화하고, 투기성 자금은 더 조이는 방식으로 규제를 재설계한 게 골자다. 그러나 시장 불안감은 완전히 잠재워지지 않았다. 정부의 대출총량 두 배 확대와 대출 여력의 집단대출 우선 공급 약속에도 은행권은 구체적인 총량 배분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관망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내달 입주인 3000세대 대단지 디에이치방배만해도 5개 은행에 배정된 총한도 5000억원 가량이 여전히 부족한 액수란 관측이다. 잔금대출 선착순 대란 뿐만이 아니다. 2금융권을 기웃거리는 고소득자의 여건이나 주담대 오픈런 현상이 완전히 잦아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출을 풀었다지만 차주는 그래도 빌리지 못하고, 은행은 어디에 얼마나 빌려줄지 몰라 주저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정책 철학과 금융 정책의 특성이 부딪히며 당국이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국민들은 각종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시장 피해와 반발이 거세지면 그때마다 완화된 정책을 내놓는 '땜질식 행정'이란 비판은 현 정부의 금융정책 내내 따라붙은 꼬리표다. 지난해 6·27 이후 9·7, 10·15 대책때도 강력한 대출 규제 먼저 도입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자 예외를 만드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정책 신뢰도가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들어선 기조마저 번복되고 있다. 이번 대책에선 주택공급을 위한 금융을 확대하면서 '부동산과 금융을 절연한다'던 기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이 여전히 옳다면 다시금 금융과 연결하는 선택은 이전 흐름과 배치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대책이 보다 나은 방향이라면 이전까지의 정책은 다소 과했다는 것의 방증이 된다.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 예외 기준에 '거주 이력이 하루'인 점 또한 투기를 잡아야 한다며 만든 잣대가 너무 강한 나머지 수많은 사례의 주거 형태를 '하루'라는 기준으로 나누게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커다란 변화를 위해 과감한 결단과 강경한 대응은 응당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일관되고 강력한 추진 뒤에 서민 자금을 끊는다는 비판이나 '난수표 규제'란 별칭이 더이상 이어져선 안된다. 부동산을 좌우하는 금융정책인 만큼 섬세한 계획과 유연한 속도감은 반드시 가져야할 요소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네이버가 두나무 품을 때 생긴 ‘예외’…참 절묘한 우연

시험 감독관을 미리 9명이나 자기 학원 강사로 데려다 놓은 학원이 있다면, 이걸 실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시험 대비를 참 잘했다고 봐야 할까. 네이버가 지금 인수하려는 두나무가 딱 이런 학원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딜을 추진 중이다. 이 결합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와 함께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인허가가 걸려 있다. 때마침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 문턱을 낮춰줬다. 원래는 “위반 이력이 있으면 경중과 관계없이 불수리"였던 조항이, 이제는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고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인정하면 예외적으로 수리 가능"으로 바뀌었다. 네이버가 지난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1심 벌금형을 받아 대주주 자격에 빨간불이 켜졌던 바로 그 지점에, 딱 맞춰 비상구가 하나 열린 것이다. 절묘한 우연이다. 업계는 곧바로 “네이버-두나무 기업결합에 숨통이 트였다"고 반겼다. 채점 기준을 손보는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무조건 감점하고 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 이 '경미함'을 누가 판단하느냐다. 개정안은 그 재량을 금융정보분석원장 한 사람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 재량이 처음 적용될 회사로 유력한 두나무는, 공교롭게도 이 재량을 쥔 기관과 이미 깊은 인연이 있다. 최근 5년간(2021~올해 6월) 인사혁신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현황에서 취업 예정기관이 '두나무㈜'인 사례를 추려보면 총 19건이다. 이 가운데 금융감독원 출신이 9건으로 가장 많다. 2021년 고객보호실장을 시작으로, 2022년 사내변호사, 2024~2025년에는 매해 실장·팀장급이 실원부터 준법감시팀장, 거래지원심의위원회 위원까지 자리를 잡았다. 감독하던 기관 사람들이 감독받던 회사의 감독 대응 부서로 옮겨가는 흐름이, 지난 5년간 거의 매년 이어진 셈이다. 당국은 이번 완화 조치를 두고 “위반 경중을 따지지 않는 건 규제 목적에 비해 과도한 제한"이라고 설명한다. 발언 자체는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경중'을 가늠할 기관 바로 옆에는 이미 그 기관 출신 인사 9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 절묘하다. 이런 인맥을 갖춘 학원이 하필 이 채점 기준 완화의 수혜 사례가 된다는 점을, 순수한 우연으로만 봐도 될까. 우연이라면 그것참 부지런한 우연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자의 눈] 카지노 복합리조트, 예측가능한 정책이 자본을 유치한다

지난해 4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가 열렸던 일본 유메시마에서는 MGM과 오릭스가 초기 투자만 1조2700억엔에 달하는 일본 최초의 카지노 포함 복합리조트를 착공했다. 2030년 가을 개장이 목표로, 일본 정부는 도쿄와 요코하마 등 두 곳에 복합리조트를 더 공모할 계획이다. 도박을 금기시해온 아랍에미리트(UAE)도 2024년 걸프국 최초로 카지노 면허를 내줬고, 윈 리조트가 39억달러를 들여 2027년 초 문을 열 예정이다. 싱가포르는 2019년 카지노에 부과하는 세율을 올리면서도 마리나베이샌즈 등 두 복합리조트의 카지노 독점을 2030년까지 연장했고, 이후 10년간 카지노 세율 동결을 보증했다. 그 대가로 90억싱가포르달러 규모의 재투자를 약속받았다. 각국이 카지노에 진심인 이유는 도박이 좋아서가 아니다. 카지노 수익이 호텔과 공연장과 회의장을 짓고 객실료 인상을 억제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인바운드 관광의 돈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최신 복합리조트 인스파이어의 투자액 1조8000억원은 오사카 복합리조트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미 몸집에서 밀리는데 우리 정부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관광진흥개발기금(관광기금) 부담률 상한을 매출액의 10%에서 15%로 올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유효기간이 없던 카지노 허가를 5년마다 갱신하는 제도, 양수도 사전인가제도 함께 얹었다. 30년 된 규칙 셋이 한꺼번에 바뀌는데 관광기금 부담률 15%가 적용될 매출 구간은 아직 미정이다. 문체부는 지난 3일 누진구간 구성은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업계와 전문가 논의를 거쳐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상한을 먼저 정해 놓고 적용 대상은 나중에 정하는 것이다. 또한 의견수렴 토론회가 열리기 전에 법안 발의 일정부터 잡혔다. 기금은 매출 기준이라 적자가 나도 내야 한다. 인스파이어는 지난해 1548억원 순손실에도 관광기금 280억원을 냈다. 이런 시장에서 조단위 장기 투자를 결심할 자본은 세율보다 예측가능성 여부를 먼저 볼 것이다. 부담률 인상의 명분인 기금 사정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광기금의 '구멍'은 2024년 7월 출국납부금 인하가 냈다. 출국자가 151만명 늘었는데 징수액은 734억원 줄었다. 시행령만 고치면 복원될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출국납부금 2만원 인상 법안이 지난해 12월 발의 이후 계류 중인 사이, 카지노의 관광기금 부담률 인상에 먼저 속도가 붙었다. 국가가 허가한 사행산업인 카지노의 공적 기여 확대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유인책 없는 일방적 부담 증가다. 만일 지역과 공공에 투자한 몫을 기금에서 감면하고 세율 동결 등 예측가능성을 보증한다면 자연스럽게 투자도 뒤따를 것이다. 오사카가 문을 여는 2030년까지 4년이 남았다. 투자금은 세율이 낮은 곳이 아니라 규칙을 예측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지금 정부가 키우고 있는 것은 기금 수입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기자의 눈] ‘죽은 정치’만 나오는 씁쓸한 민주 전대

“김대중·노무현 정신과 가르침이 좋은 방향인지 여부를 떠나 전당대회가 '죽은 정치'로만 흐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막바지로 치닫는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바라본 정치권 한 관계자의 말이다.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표현이다. 실제 유력 당권주자인 김민석·정청래 후보는 연일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하고 있다. 김민석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 키즈", “김대중의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웠다. 정청래 후보 역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신으로 승리하겠다"며 자신이 노사모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후보가 호출하는 정치적 상징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이다. 고인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래를 말해야 할 전당대회에서 과거의 이름과 정치적 유산이 경쟁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두 후보가 각각 DJ와 노무현을 호출하는 이유는 결국 민주당의 '정통성' 경쟁과 맞닿아 있다. 누가 민주당의 역사와 전통을 더 잘 계승할 적임자인지를 겨루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누가 과거의 민주당을 더 잘 계승했는지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앞으로 민주당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 경쟁하는 자리다. 민생과 경제를 어떻게 챙길 것인지, 집권여당으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가 당대표 후보들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대에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 과거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경쟁과 상대 후보의 행적을 파고드는 네거티브가 더 도드라진다. 정작 '다음 민주당'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결국 살아 있는 국민을 향해야 한다. 국민은 과거의 이름보다 오늘의 삶을 바꿀 정치의 답을 원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긴 가치를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과거는 정치의 자산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남은 전대 기간만큼은 후보들이 과거의 이름에 머물기보다 살아 있는 국민을 향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한다. 정치는 과거의 이름을 되풀이할 때가 아니라, 그 이름을 넘어 새로운 답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살아난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탈석탄 보장 없는 발전공기업 통폐합, 에너지전환 장애물 될라

정부가 추진 중인 발전공기업 통합의 당위성은 '탈석탄'에서 출발한다. 정부 목표대로 2040년 석탄발전이 사라지면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발전공기업 5사의 기존 사업 기반은 크게 쪼그라든다. 현재 이들이 보유한 석탄발전 설비만 32.1기가와트(GW)로 국내 전력생산의 약 30%를 맡고 있다. 공공은 탈석탄으로 석탄발전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잃게 된다. 이에 대비해 흩어진 발전사들의 투자 역량을 하나로 모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공공의 역할을 유지하자는 게 통합론의 핵심이다. 통합 이후 몸집은 막강하다. 5개사를 합치면 연매출 약 30조원, 정직원 1만3000여명, 발전설비 53GW를 보유한 국내 최대 발전사가 탄생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설비용량 31.4GW를 훌쩍 넘어선다. 그러나 이 거대한 공기업을 탄생시키는 전제인 2040년 탈석탄은 확실하게 보장돼 있지 않다. 지난 5월 1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안'에도 구체적인 석탄발전 폐쇄 시점은 담기지 않았다. 2040년 탈석탄은 현재 정부의 정책 목표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 향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탈석탄 계획을 담더라도 정부 정책과 전력수급 여건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남는다. 최근 AI·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탈석탄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서 통합발전사의 딜레마가 생긴다. 통합의 명분은 석탄발전 소멸에 대비해 공공 발전의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정작 석탄발전이 예상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석탄이라는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그대로 가진 연매출 30조원짜리 공기업이 태양광, 해상풍력, 액화천연가스(LNG),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규 시장에서 민간과 경쟁하게 된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통합이 오히려 민간을 전력시장에서 밀어내는 '공룡기업'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민간의 역할은 분명하다. 새로운 기술 개발과 신규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물론,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이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민간 자본과 사업자의 역할이 컸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공공의 책임과 함께 민간의 투자와 혁신 역량 적극 활용해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통합발전사는 과연 자신의 주력 자산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탈석탄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석탄을 내려놓는 것이 통합의 전제라면 그 전제부터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발전공기업 통합과 함께 구속력 있는 탈석탄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거대 통합발전사가 신규 발전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민간과의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탈석탄 없는 발전공기업 통합은 에너지전환의 해법이 아니라 새로운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비은행 강화에 목적 둔 금융지주, 그래도 은행이 먼저다

금융지주들이 비은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증권·보험·카드 등 비은행 계열사의 경쟁력을 키워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은행의 이자이익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는 11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증시 회복에 따른 증권사 실적 개선과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의 성장도 실적을 뒷받침했다. 그동안 국내 금융지주의 약점으로 지적된 것은 높은 은행 의존도였다. 금리와 대출시장 상황에 따라 그룹 전체 실적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금리 경쟁이 심해지거나 대출 성장이 제한되면 은행의 이익 증가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금융지주들은 은행보다 비은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증권은 자본시장 확대와 투자 수요 증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 수 있고 보험은 장기적인 보장과 자산관리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 금융지주들이 증권사와 보험사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하지만 비은행을 키우는 것이 은행의 중요성이 낮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비은행 경쟁력이 커질수록 은행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은행은 금융지주가 확보한 가장 큰 고객 접점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 고객은 은행을 통해 예금과 대출을 이용하고 이후 증권·보험·카드 등 다른 금융서비스로 연결될 수 있다. 비은행 계열사가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이를 이용할 고객 기반이 없다면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비은행 성장의 출발점에도 은행이 있다. 최근 금융지주들이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서면서 외형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열사를 얼마나 많이 확보했느냐가 아니라 새로 편입한 계열사를 기존 은행과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다. 금융지주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은행 중심에서 비은행 중심으로의 전환'이 아니다. '은행을 기반으로 한 종합금융그룹'이어야 한다. 비은행은 금융지주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하지만 그 성장동력을 움직이게 하는 기반은 여전히 은행이다. 여전히 금융지주의 사업구조를 분류할 때 '은행'과 '비은행'으로 나뉜다. 결국 '은행'이라는 단어가 앞에 들어가는 만큼 은행은 금융지주 사업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는 의미다. 금융지주의 미래는 은행과 비은행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은행의 안정성 위에 비은행의 성장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쌓느냐에 달려 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기자의 눈] ‘참교육’ 속 도박과 게임…규제의 경계는 어디인가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TV 시리즈 '참교육'에는 청소년들이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사행성 게임을 즐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소액으로 시작한 게임이 가족의 종잣돈을 탕진하고 친구들의 금품까지 갈취하는 상황으로 번지는 모습은 상당한 충격을 줬다. 최근 열린 게임법 토론회에서는 이와 다른 논의가 오갔다. 오랫동안 게임을 즐긴 이용자에게 피규어 하나를 경품으로 제공하는 것까지 사행성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었다. '참교육' 속 불법 도박과 일반 게임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게임과 도박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현재 논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은 게임에 적용되는 사행성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제 완화만을 강조할 순 없겠지만, 낡은 규제를 개선하고 게임에 대한 사행성 오해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특히 이 토론회에서는 게임을 사행성 위험도에 따라 세분화하고 유형별로 다른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확률적 요소의 유무와 이용자의 참가비 지불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위험도에 따라 규제 수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방향 자체는 합리적이다. 다만 확률적 요소의 유무를 기준으로 상한액 규제의 적용을 가르는 방식은 다소 모호할 수 있다. 단순한 퍼즐 게임이 컬렉션 아이템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상자를 열도록 설계돼 있다면, 이를 확률적 요소가 포함된 게임으로 봐야 할까. 확률 요소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같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면 규제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확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확률이 게임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다. 결과가 사실상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과, 확률 요소가 있더라도 이용자의 실력과 전략이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게임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물론 실력과 운의 비중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확률이 게임 결과에 개입하는 방식, 이용자의 비용 투입 여부, 보상물의 환금 가능성, 반복 이용을 유도하는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게임산업법 개정 논의가 진정한 규제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게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먼저 구분하고, 그에 맞는 규제 수준을 설계해야 한다. 사행성 규제의 해법은 일률적인 폐지나 유지가 아니라, 게임의 구조와 위험도에 따른 정교한 규제에 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가격 인상보다 무서운 건 ‘익숙해진 소비자’다

또 올랐다. 라면, 과자, 만두, 콜라, 사이다, 참치, 케첩 등 가격이 모두 뛰었다.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코카콜라를 비롯해 CJ제일제당, 오뚜기, 농심, 사조 등이 최근 주요 제품 판매가를 조정했다. 눈에 띄는 것은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예전 같으면 “또 오른다고?"라는 불만이 쏟아졌겠지만, 이제는 “이번엔 뭐가 올랐지"라는 체념에 가까운 태도를 많이 보인다. 가격 인상이 잇따르면서 이제는 놀라움보다 익숙함이 먼저 느껴진다. 기업들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원재료 가격과 환율, 물류비,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이 동시에 상승했다. 전세계적인 보호무역 기조와 지정학적 리스크 탓에 경영 관련 불확실성 역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문제는 원가가 오를 때 제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지만, 안정되거나 내려가도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번 오른 제품가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이후에는 또 다른 비용 상승을 이유로 다시 올라가는 일이 반복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언제 내릴지'보다 '이번에는 얼마나 오를지'를 먼저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판매가 인상이 일상이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점점 줄어든다. 외식을 줄이고,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찾고, 할인 행사만 기다리는 소비가 일상화된다. 그럼에도 결국 생활 필수품은 살 수밖에 없다. 가격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감내하는 것이다. 기업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격을 무작정 올리면 자칫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업계 전반에서 비슷한 시기에 제품가를 조정하며 소비자들에게 '어차피 다 오른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가격 경쟁보다 인상이 더 자연스러운 시장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가를 움직이는 것은 기업이지만 그 결과를 가장 오래 감당하는 것은 소비자다. 가격 인상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소비자의 일상은 달라진다. 가격 인상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같은 상황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다. 소비자가 “또 올랐네"라는 말 한마디로 넘기기 시작한 순간 물가 상승은 일상이 돼버린다. 수요를 이기는 정책이 없듯, 소비자의 체념 위에 세워진 시장도 오래 건강할 수 없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폭염의 일상화, 산업계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폭염이 더 이상 한여름의 일시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되고 있다. 기온이 오를 때마다 냉방기기 사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권고가 나오지만, 기록적인 더위 속에서 에어컨과 자동차 사용을 무조건 줄이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워졌다.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별개로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냉방은 이제 사치가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그런데도 관공서와 기업의 폭염 대응은 여전히 실내온도를 제한하거나 점심시간 야외활동을 자제하도록 안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절약을 명분으로 냉방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직원들의 집중력과 생산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 냉방비를 아끼려다 업무 효율과 노동자의 안전이라는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얘기다. 폭염이 일상화됐다면 산업계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무직 근로자에게는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시차출퇴근제와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고,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시간대에는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당시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재택근무를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것처럼 폭염 역시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휴가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근무시간과 장소만이라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폭염특보가 발령된 날에는 출근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추고, 불필요한 외근과 대면회의를 줄이는 방식이다.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어려운 생산·건설·물류 현장에서는 작업시간 조정과 충분한 휴식, 냉방시설을 갖춘 휴게시설 제공이 뒤따라야 한다.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대책으로는 폭염 피해를 막기 어렵다. 복장 규정도 바뀔 필요가 있다. 여름철에도 정장과 긴소매 셔츠를 사실상 요구하는 조직문화는 에너지 절약과 업무 효율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소매와 운동화 등 간편한 복장을 폭넓게 허용하면 체감온도를 낮추고 냉방 수요도 줄일 수 있다. 형식적인 '쿨비즈' 캠페인보다 구성원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 물론 냉방 확대가 전력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은 고민해야 한다. 다만 해법은 개인과 노동자에게 더위를 참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고효율 냉방기기 보급과 건물 단열 개선,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활용, 전력 수요관리 등을 통해 냉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건강과 생산성을 희생하는 절약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감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미 닥친 폭염 속에서 사회와 산업이 어떻게 버틸 것인지에 관한 '적응'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과거의 냉방 제한 중심 대책에서 벗어나 쾌적한 근무환경과 유연한 노동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폭염이 일상이 됐다면 폭염을 견디는 방식도 일상이 돼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위를 참으라는 캠페인이 아니라, 더위 속에서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와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대기업만 웃은 ‘생산적금융’, 의미 되새길 때

정부의 '생산적금융' 기조에 발맞춰 은행들이 자금 흐름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동산 중심의 대출에서 벗어나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모험자본 공급도 확대하고 있다. 가계대출을 줄이는 대신 기업대출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실상을 보면 정작 자금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아닌 대기업으로 집중되는 '대기업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약 190조원으로 상반기 동안 약 20조원이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약 7조원이 늘었는데, 이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약 683조원으로 상반기 동안 약 8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약 2조원)보다는 성장세가 뚜렷했으나, 작년을 제외하면 예년 같은 기간 약 10조~20조원 이상씩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가세는 오히려 둔화됐다. 자금난에 금융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과연 은행 자금이 흘러가고 있는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은행들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을 무작정 늘리기는 한계가 있다. 경기 둔화, 고금리 등에 연체율이 악화하고 있어 건전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부실 위험이 커지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도 흔들릴 수 있다. 실제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67%로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게 치솟았다. 특히 기업대출 연체율은 위험 경고등이라고 평가되는 1%로 높아졌다. 이는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0.84%)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은행의 부실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을 무조건 늘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생산적 금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은행에서는 자금을 가계대출 중심에서 기업대출 중심으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대기업 대출 확대도 생산적금융에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금융의 궁극적인 취지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보고 산업 전반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금융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소상공인도 함께 자금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금융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은행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곳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 은행들은 리스크 평가 체제를 정교화하고 보증부대출을 확대하는 등 세밀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담보중심의 영업 방식을 바꾸고 기업의 기술성과 성장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금융 관행의 전환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생산적금융의 평가 잣대를 대출 규모로 우선적으로 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출뿐 아니라 다양한 투자와 모험자본,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을 균형 있게 확대해 자금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 자금이 필요한 곳에 은행 자금이 흘러갈 때 생산적금융은 그 의미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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