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오천피·천스닥 달성 이후 남은 과제는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 한국 증시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장중 변동성은 있었지만 지수는 결국 사상 최고치에서 거래를 마쳤다. 시장 분위기도 단기 조정 우려를 밀어내는 쪽으로 기울었다. 다만 지수 상승과 동시에 원/달러 환율이 함께 오른 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지점이다. 코스피가 5000선을 처음 넘긴 날에도 환율은 상승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479원까지 올랐다. 주가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장면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다. 환율이 오른다는 건 원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 자금 흐름과 기업들의 비용 부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처럼 환율 상승이 곧바로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구조도 아니다. 해외 생산 비중이 커진 만큼 환율 변동이 오히려 기업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떄문이다. 지수 상승의 내용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반도체 대형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년 사이 빠르게 커졌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과 인공지능(AI) 투자 기대가 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 강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 지수 흐름과 달리 기업들이 느끼는 경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기업심리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내수와 서비스업 회복은 여전히 더딘 편이다. 기업들은 원가 부담과 경기 불확실성을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기대가 아직 실물경제 전반으로 퍼졌다고 보긴 어렵다. 코스닥도 4년 만에 1000선에 도달했고 숨 돌릴 틈 없이 1100까지 달려왔다. 지속성을 장담하기엔 갈 길이 멀다. 기술력과 사업 모델을 선별할 수 있는 시장 평가 기능, 부실 기업에 대한 정리, 중소형 성장주에 대한 장기 투자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수 상승은 일시적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주식시장은 늘 기대를 선반영한다. 다만 지수가 앞서가는 동안 환율과 실물경제가 보내는 신호를 함께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기록 경신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떠받치는 기업의 수익 구조와 경제 여건이 함께 개선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오천피와 천스닥이 일시적 이정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지수의 높이보다 그 기반을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반도체 실적’에 취할 때가 아니다

국내 증시 사상 최초 시가총액 1000조원 돌파,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20조원. 삼성전자가 불가능해 보이던 기록을 새롭게 동시에 달성한 두 개의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화려한 기록의 배경은 비교적 분명하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회복된 영향이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메모리 슈퍼 호황에 힘입어 16조~17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호황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AI 투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를 견인한 결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생산 공백'이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들어가는 범용 D램 공급이 줄었고, 이것이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며 실적을 떠받쳤다. 수요의 폭발적 증가라기보다 공급구조 변화에 따른 가격 효과라는 점에서 이번 호황의 지속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은 과거 전례가 증명한다. 업계는 코로나19 특수로 2021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2년 뒤인 2023년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연간 영업이익 51조원을 웃돌던 삼성전자는 2년 만에 7조원 안팎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익 구조다. 삼성 반도체 실적은 여전히 메모리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를 아우르는 비메모리 사업은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V·가전 사업부 역시 지난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이들 사업은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정면으로 노출돼 있다. 최근 중국 TCL이 일본 소니 TV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결정은 상징적이다. 한때 TV시장을 호령하던 소니가 중국기업에 경영권을 넘기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TV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20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 역시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메모리 호황에 가려진 다른 사업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메모리 이후를 책임질 성장축이 무엇인지, 그리고 비메모리·가전 사업에서 다시 한 번 '초격차'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는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지자체에 발전사업 허가권을 주자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과 이를 위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에너지 분야에서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를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정치인의 욕심이나 지역의 몽니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지역이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 역할을 하며 감내해온 희생을 외면한 채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만 이 문제를 덮어두기에는 정치적 갈등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여당 내부 분열로까지 번지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최근 광주·전남특별시 등 광역시와 도를 통합해 특별시로 키우려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정부가 보유한 3메가와트(MW) 이상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 대한 발전사업 허가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역 스스로 발전사업의 출발점부터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지자체는 이미 발전사업 인·허가 중간 단계인 개발행위허가권을 통해 사업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그들은 중앙정부와 대규모 투자자 위주로 이뤄져 지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재생에너지 보급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지자체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재생에너지 설치구역을 제한하는 이격거리 조례를 강화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원활히 이뤄질 리 없다. 물론 정부의 발전사업 허가권을 지자체에 넘기는 데에는 전력망 안정에 있어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발전사업 허가권 관리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가 난발된 결과, 2021~2025년 동안 상업운전 개시일을 넘긴 발전사업 허가 물량은 원전 16기에 해당하는 1만6000MW에 달한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4000MW를 허수물량으로 규정하고 회수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지자체도 개발행위허가 과정에서 전기위원회처럼 한국전력으로부터 전력망 용량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자체가 처음부터 발전사업 허가권을 갖고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자를 선별한 뒤 개발행위허가를 간소화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다만, 지자체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사업을 밀어붙이고 전력망 안정성을 해칠 문제를 보완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사업은 기후부나 전기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하고 필요시 정부에서 제약을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시장제도 개편을 통해 전력망 불안정성을 가격에 반영하는 입찰제도를 도입한다면 사업자는 초기 단계부터 전력망 비용을 감안한 사업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허가권을 넘기는 만큼 지자체 역시 사업 지연과 계통 부담에 대한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 주도의 기업 유치와 기업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공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자체가 발전사업 허가권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수도권 발전을 위해 희생해온 지역이 이제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요구하는 흐름을 더 이상 막기는 어렵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현대차 노조 ‘로봇 러다이트’, 자충수될 수 있다

1811~1816년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서 새 방직기계 도입에 반대해 노동자들이 저항했던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상으로 재발하는 것일까. 러다이트 운동 발발 200여 년이 흐른 2026년 1월 글로벌 완성차기업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이 방직기 대신 로봇을 공장에 투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22일 소식지를 통해 “생산현장 내 로봇 단 1대의 투입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노조의 '반(反) 로봇' 입장은 이달 초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6에서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제조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발표에 대한 반응이었다. 아틀라스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피지컬 AI 제품으로, 사람처럼 보행하고 관절을 활용해 생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기존 공장 설비와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를 미국 사업장에 먼저 투입한 뒤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사업장으로 차례로 확대해 피지컬 AI 시대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같은 아틀라스의 작업현장 투입 소식을 접한 현대차 노조는 “국내에는 단 1대의 로봇도 들일 수 없다"며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같은 완성차 계열사인 기아의 노조 공식 입장은 없지만, 반대 기류가 현대차그룹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은 물론 정의선 회장의 피지컬 AI 전환 구상에도 큰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현대차 노조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기우라고 몰아세울 순 없다. 과거에도 자동화 기계의 도입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해 고용 불안을 야기한 사례가 있었고, 이는 노동자의 생업 문제와 직결됐다. 그럼에도 갈수록 신기술과 거대자본의 힘이 먹히는 냉혹한 기업 경쟁 속에서 로봇·인공지능 등 도입은 더 이상 '미래형 선택지'가 아니다. 뒤처지는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는 2세기 전 러다이트 운동의 결과를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인류세계의 신기술 대전환은 노동의 질과 구조의 대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19세 초 영국 러다이트의 오류성이 증명됐다. 무조건 '로봇 거부 전쟁' 선포가 능사가 아니다. 고용 안정 등 여러 선택지를 놓고 회사와 협상해 파급 영향을 최소화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대차 사측도 노조의 '로봇 러다이트'를 경영에 발목잡기로 치부하지 말고 로봇 도입에 따른 중장기 작업 및 인력 조정 대안을 제시해 당장의 실직 사태를 걱정하는 공장 직원들을 타협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기자의 눈] 부동산 대책, 공급보다 ‘임대료 지원’ 급선무

“곧 현실적인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대책의 현실성을 강조했다. 과거처럼 “주택 100만 호"를 몇 년 안에 공급하겠다는 식의 추상적 총량 계획이 아니라, 인허가·착공 기준으로 실제 공급 가능한 물량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잇따른 정책 발표에도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며 공급 확대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실효성 있는 공급대책을 내놓겠다는 메시지 자체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공급을 인허가·착공 기준으로 말한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집이 당장 나오는 대책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추가 공급 대책을 발표한다고 해도 입주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비교적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비아파트형 주택도 인허가와 공사 기간을 감안하면 올 이사철에 맞춰 쓸 수 있는 물량은 아니다. 도시형생활주택 등은 인허가가 상대적으로 빠른 카드로 거론되지만, 지금 발표하는 대책이 실제 입주로 이어지기까진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사이를 버텨야 하는 무주택자다. 전세 만기를 앞둔 필자도 최근 중개업소에서 “보여줄 집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전세 매물은 확 줄었고, 그 빈자리를 월세가 채운다. 그런데 월세는 선택지라기보다 통로에 가깝다. 전세가 없으니 월세로 갈 수밖에 없고, 월세가 140만~150만원씩 나오면 버티기 어렵다. 임금근로자 평균 월급이 300만~400만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다. 결국 주거를 위해 생계비를 줄여가며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서 수요 억제 정책의 역설이 나온다. 매매를 눌러 집값을 잡겠다는 규제가 강해질수록 거래가 줄면서 전세 물건이 시장에 새로 나오는 통로도 좁아진다.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규제로 매수·매도가 묶이고,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막히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던 수요가 끊기면서 전세 매물은 더 씨가 마른다. 전세가 줄면 전셋값이 오르고 월세화가 빨라지는데,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한 무주택자들이 “차라리 사자"로 돌아서며 매매 수요를 떠받치는 역효과가 난다. 정부가 할 일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전세가 없어 월세로 밀려난 가구부터 숨통을 틔워야 한다. 청년월세 한시지원, 월세 세액공제 같은 제도가 있지만 대상과 기간이 제한적이라 '지금 나가는 돈'을 줄여주는 한시적 월세 지원과 세액공제 확대가 더 필요하다. 전세로 버티고 싶은 실수요자에겐 보증금 마련 길을 열어줘야 한다. 청년·신혼부부 전세대출 보증요건을 미세 조정하고, 이사철에 전세대출이 끊기지 않게 하는 보완책이 현실적이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몇 년 뒤 착공 숫자가 아니라 지금 무주택자가 버틸 수 있느냐로 증명돼야 한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쿠팡이 영업정지 된다면

정부가 쿠팡에 대한 총체적 압박에 들어갔다. 최악의 경우 영업중지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가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에서는 이번 쿠팡 사태로 '탈팡'(쿠팡을 탈퇴하는 것)이 급증해 사업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동안 쿠팡의 '갑질'에 소상공인들이 무척 힘들었다는 분노의 목소리도 많았다. 그때 문득 궁금해졌다. 쿠팡이 미운 건 맞는데, 영업정지라는 카드가 과연 소상공인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일까. 쿠팡 입점업체 대표 몇몇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였다. 입점업체 대표 A씨는 “업체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우린 쿠팡 그로스(쿠팡 풀필먼트서비스)도 하려고 하는데 영업정지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고, B씨는 “쿠팡 전용 상품을 만드는 업체도 있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쿠팡 문 닫으면 다 망한다"고 말했다. C씨는 “영업정지가 현실적으로 되나. 그런 것에 관심 없다. 잘 팔리면 계속 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쿠팡 사태를 보면서 스쳐간 장면이 있다. 한때 '국민 매국노 기업' 취급을 당했던 카카오 얘기다. 카카오는 지난 2022년 10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로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정부와 국회, 언론의 융단 폭격을 맞았다. 플랫폼 독점에 높은 수수료,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결합되면서 전방위 압박을 받은 것이다. 카카오는 결국 헤어샵 예약 서비스 등 진행하던 이런저런 사업들을 상당수 접게 됐다. 헤어샵 예약 서비스를 철수했을 당시를 떠올려보면, 중소 미용실 사업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규 고객 유치 채널을 잃게 될 것이라며 카카오의 철수를 반대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카카오의 빈자리는 결국 네이버가 채웠다. 카카오의 사업 철수는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추진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네이버의 독점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업계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론상으로는 쿠팡 영업정지가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현실적으로는 거기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혼쭐'은 내야겠으니 있는 힘껏 '블러핑(bluffing)'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간 쿠팡의 아성에 위축됐던 이커머스 업체들의 '반사 수혜'가 실제로 가시화됐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결국 정답은 '시장'에 있지 않나 싶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K-스타트업 성공신화의 전제조건

“스타트업이 제2의 삼성, 제3의 현대차로 도약할 수 있을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허황된 꿈처럼 들렸던 말이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데다 자본·인재도 미국으로 쏠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공신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IT공룡으로 도약한 네이버·카카오나 거액에 팔려나간 우아한형제들 같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들에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견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성장 방정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도 있었다. 새해 들어 국내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국가대표 AI 프로젝트' 1차 평가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살아남은 3개 팀 중 유일한 스타트업이다. 업스테이지는 가성비 AI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국의 딥시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무대에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크로스허브, 스튜디오랩, 둠둠주식회사, 엘비에스테크, 망고슬래브, Nation A, Deep Fusion AI, CT5 등 국내 기업들이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3D 모션 생성, 딥러닝 기반 안전 설루션, 표절 분석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특히 우리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장착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술을 앞세워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리벨리온, 에스투더블유(S2W), 에어스메디컬 등은 딥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일정 수준 성과도 내는 중이다. '빅테크'라 불리는 구글과 아마존도 시작은 초라했다. 구글은 스탠퍼드대학교 차고에서 시작된 검색 알고리즘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오랫동안 적자의 늪을 헤매야 했다. 당시 미국 사회가 이들에게 보낸 것은 냉소가 아니었다.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와 혁신을 향한 응원이었다.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도 이런 '성장의 시간'과 '사회적 지지'다. 기술력이 일정 수준 궤도에 올랐다면 이들이 시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규제의 빗장을 풀고 자금의 물꼬를 터주는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기업 규모가 커질 때마다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열정으로 뭉친 한국 스타트업들이 더 많은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길 기대한다. 이들의 성장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지배구조 개선과 신관치의 경계

“부패한 이너서클." 이재명 대통령의 한 마디에 금융지주 지배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을 겨냥해 “돌아가면서 은행장 했다가 회장했다가 10년, 20년 해먹는다"고 했다. 소수의 인물이 금융지주 지배권을 장기간 독점하는 구조를 날선 발언으로 지적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곧바로 움직였다. 이번 발언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BNK금융지주 현장검사에 이어 이번 주부터는 8대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진행한다. 이 대통령 발언이 금융권 분위기를 바꾼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금융권을 향해 “이자놀이를 멈추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자 기업으로 자금 물꼬를 바꾸는 '생산적 금융'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고신용자에게 낮게, 저신용자에게 높은 금리를 매기는 기존 금리 산정 체계를 문제 삼았고, “금융계급제"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금융권을 압박했다. 이후 저신용자 대출 지원과 혜택이 확대되며 고신용 대출 금리가 저신용대출 금리보다 오히려 높아지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한 지적도 새삼스럽지 않다. 회장 중심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체계와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회장 연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내규를 손보는 모습 등은 시장 불신마저 확대시켰다. 지난해 BNK금융의 회장 선임 방식을 두고 주주인 라이프자산운용이 서한을 발송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점검에 나서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앞서 주주 서한 등 의혹 제기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금감원이 대통령 발언 후 노골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신관치로 해석될 위험이 커진다.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이 2023년 마련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지배구조를 손질했다고 말한다. 당국은 이번 점검에서 모범관행의 '형식적 외관'이 아닌 '작동 여부'를 들여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모범관행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작동 방식에 빈틈이 발견되면, 모범관행을 설계한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범관행 마련 후 2년의 시간 동안 금융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이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만 해결 방식에 따라 금융권 해석은 달라진다. 정치 언어가 시장 신호로 읽히는 순간 변화의 시도는 성과로 남기보다 또다른 불안감을 낳는다. 시장이 왜곡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정책 개선과 신관치 사이의 뚜렷한 경계가 필요하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새만금 논쟁 핵심은 ‘이전’이 아니라 ‘해결 능력’이다

새만금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을 둘러싼 논쟁은 겉으로 보기엔 지역 간 경쟁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핵심은 어디로 옮길 것이냐가 아니라, 어디가 전력과 용수를 현실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다. 반도체 산업은 선언이나 구호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기업을 설득하는 것은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숫자로 입증되는 실행 능력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해당 지역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비용을 들여 24시간 무중단 전력과 대규모 초순수를 공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일정표와 재원 조달 방안, 계통·수자원 연계 계획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적격지'다. 수도권이든, 새만금이든, 또 다른 지역이든 기준은 동일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논쟁이 이 기준을 향해 가고 있는지다. 용인이 왜 논란의 대상이 됐는지, 송전망과 용수 문제가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 보다는 새만금 등으로 이전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정치적 공방이 앞서고 있다. 새만금 역시 재생에너지 잠재력이라는 장점만 강조될 뿐,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품질'과 계통 안정성, 초순수 공급 체계에 대한 구체적 검증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사실 이 논쟁은 정쟁으로 흐를 이유가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특정 지역을 밀거나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후보지를 동일한 잣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전력 수요(GW), 송전망 구축 기간(년), 용수·초순수 확보 가능성, 총 비용(조 원)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묻는 것이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과정이 정쟁에 소모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전론은 포퓰리즘이라는 공격과, 현 입지 고수가 기득권이라는 반격이 맞부딪치면서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질문, 즉 어디가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을 가장 빨리 줄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한 번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수십 년을 되돌릴 수 없는 산업이다. 그래서 입지 논쟁은 더더욱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접근해야 한다. 용인이든, 새만금이든, 혹은 제3의 지역이든, 전력과 용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방안을 제시하는 곳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논쟁만 반복된다면, 이번 논쟁 역시 또 하나의 정치적 소음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검증이다. 정쟁이 아니라 설계도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미래는 말이 아니라, 전선과 관로, 그리고 숫자가 결정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책임지고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보한 수치와 정보를 토대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연필조차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레너드 리드가 약 70년 전 선보인 에세이집 에는 “나는 읽고 쓸 줄 아는 모든 소년과 소녀, 어른에게 친숙한 나무 연필이다. (…) 그러나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명도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언론인 출신 영국 작가 에드 콘웨이는 리드의 에세이에서 소개한 연필 이야기 덕분에 수백만 명의 경제학도가 연필 공급망을 이해하고, 연필 부족 문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작은 연필 하나라도 원자재 조달과 가공 과정을 낱낱이 알아야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공급망 위기를 넘어설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연필 이야기를 꺼내든 건 최근 한국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불안해질 조짐 때문이다. 중국은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을 최근 일본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했다.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인 셈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수출 통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4년여 전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통제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차량 운전자들이 요소수를 구하느라 한동안 진땀을 뺐다. 그보다 앞선 2019년에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 필수 소재의 수출을 막아 우리 반도체기업들에 불안감을 안겨준 바 있다.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주요 교역국들이 핵심 원료 및 소재 등을 외교 및 통상의 압박 도구로 들고 나올 경우 대응력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 자원 뿐만 아니라 리튬·니켈 같은 핵심 광물까지 정·제련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공급망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 과정에서도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미국 견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국내외 악조건에서 지난해 수출 700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올해 연초부터 베네수엘라·이란 사태 등 국제정세 불확실성이 끊이지 않은 탓에 '공급망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럴수록 우리 산업계는 '연필이 주는 메시지'를 되새길 때다. AI산업의 쌀인 반도체부터 전통적인 제조업의 쌀인 철강, 제조업 핵심공정 곳곳에 쓰이는 석유화학 등 국내외 산업의 공급망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응해야 '부족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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