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틀 폭락 뒤 하루 폭등…롤러코스터 탄 코스피

코스피가 사흘 사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이틀 연속 급락하더니 하루 만에 급등했다. 불과 며칠 사이 폭락과 폭등이 반복되면서 시장의 불안정한 체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코스피는 지난 3일 7.24% 하락한 데 이어 4일에도 12.06% 급락했다. 이틀 동안 낙폭만 18%를 넘어 시장에서는 “중동이 아니라 한국에서 전쟁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5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낙폭이 과도했다는 인식 속에 저가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장중 12% 넘게 반등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장세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동 리스크다. 이란 사태로 국제유가 상승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긴장 상태에 들어선 깃이다. 문제는 같은 악재 속에서도 일본이나 중국 등 주요 아시아 증시보다 한국 증시의 낙폭이 유독 컸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시장 구조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증시는 외국인 자금 의존도가 높은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반도체 대형주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반도체 대형주들이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동시에 출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 빠지면 지수 변동폭이 순식간에 커지는 구조다. 그간 가파른 상승세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코스피는 약 8개월 만에 3000선에서 6000선까지 치솟으며 주요국 증시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실물경제 회복 속도보다 시장 상승 속도가 훨씬 빨랐던 만큼 작은 악재에도 투자심리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코스피 상승 과정에서 늘어난 신용거래와 '빚투' 자금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하락장이 시작되면 레버리지 자금 청산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낙폭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급락 국면에서는 신용 반대매매 가능성이 거론되며 시장 불안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번 급락과 반등은 외부 변수에 국내 증시가 얼마나 민감하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결국 문제는 외부 충격보다 시장 체력이다. 외국인 자금 흐름과 반도체 대형주에 좌우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롤러코스터 장세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미래혁신 대신 현실안주…게임업계 ‘추억팔이’

“혁신은 어디에." 요즘 국내 게임산업을 지켜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신작보다는 이미 성공을 거둔 지식재산권(IP)을 다시 꺼내 안전하게 다듬는 전략이 게임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한 흐름이다. 추억의 게임들이 속속 복귀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넷마블은 1999년 출시돼 글로벌 이용자 2억명을 모았던 '스톤에이지'를 방치형 RPG로 재해석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리니지'의 초기 버전을 구현한 '리니지 클래식'을 선보였다. 20~30년 역사를 자랑하는 IP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의 게임이 컴백하는 배경은 명확하다.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충성고객을 확보한 IP는 출시와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담보한다. 대표 사례로 '리니지 클래식'은 출시 20일 만에 누적 매출 400억원을 돌파하며 검증된 IP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의 이런 추세는 동시에 '현재의 성적표'에 집중한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 신작들은 '검증된 IP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기존 자산의 확장에 가깝다. 3040세대의 향수와 구매력이 맞물리며 단기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앞으로 게임산업의 주력 소비층이 될 1020세대까지 사로잡을 지속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겉으로는 일부 흥행작 덕에 업계가 호황인 듯 보이지만 구조적 경고음은 이미 울리고 있다. 국내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를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최근에는 50% 초반까지 떨어졌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대체 콘텐츠가 급부상하며 여가 소비 지형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더 이상 독보적 플랫폼이 아닌 시대에 '새로움' 없는 반복전략이 장기적으로 통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기업들의 현실적 고민도 이해된다. 이용자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개발 비용은 급증했다. 웬만한 대작 게임 하나에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시대다. 실패의 부담이 큰 만큼 검증된 IP에 의존하려는 선택은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산업이 그렇듯 혁신 없는 안정은 결국 정체로 이어진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때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한국 게임산업의 혁신을 상징했다. 그 도전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놀라게 했다. 지금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다. '추억 팔이'에 나선 산업은 성장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새로운 '빅게임'의 등장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이재명 정부의 리스크 ‘대정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 상승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0%에는 못 미치지만 57.1%(리얼미터 2월 4주차 조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 정권 초반이다. 지지율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리스크는 '대정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몇 시간 불이 꺼지는 정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2011년 9·15 정전사태' 그 이상의 대정전을 말한다. 광역도 단위의 대정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핵심시설, 국민 안전, 산업 생산을 동시에 위협한다.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 다수가 AI, 데이터센터, 반도체처럼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산업군이다. 대정전은 시장에도 큰 리스크다. 이란 공습 등으로 중동발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까지 커진 상황에서 충격은 배가 될 수 있다. 최근 전력당국의 태도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보수적이고 신중하던 관계자들이 공개 세미나에서 전망 차원이 아니라 직접 대정전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다. 매년이 고비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라면 현장의 긴장감은 상당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배경에는 급증한 태양광 설비가 있다. 태양광은 5년 전인 2021년 3월 15.7기가와트(GW)에서 이달 31.4GW로 두 배로 확대됐다. 매년 원전 3~4기 규모가 늘어난 셈이다. 설날 연휴인 지난달 17일 오후 1시 태양광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4%까지 치솟았지만 일주일 뒤 비가 내리자 같은 시간 2.5%로 급락했다. 며칠 사이 비중이 2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급격한 출력 변화는 전력망을 뒤흔든다. 지난해 4월 스페인 대정전 사례처럼 순간 과출력이 통제되지 못하면 국가 단위 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호남·영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망이 과부하로 끊길 경우 충청권을 포함한 수도권 전역에 대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햇빛소득마을'을 중심으로 태양광 확대 정책을 강조해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의 한축이지만 보완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대정전은 이란 공습 같은 대외 변수와 달리 정부가 더 주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위험이다. 태양광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지난달 27일 이례적으로 전력거래소를 직접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실시간 가격 신호를 반영하는 전력시장 개편, 전력망 안정화 투자 등 대책이 더욱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소리다. 대정전은 단 하루의 방심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 날이 오지 않도록 이제는 개혁을 더 미룰 수 없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고령운전자 시대, 제도 정비 서둘러야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년층 운전자의 안전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도로 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으며, 심지어 세대간 갈등으로 깊어지는 양상이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사고율이 높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최근 통계와 사례를 종합해 보면 고령층의 사고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4년 4만2369건으로 36.4%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전체 교통사고 수치는 20만 9654건에서 19만 6349건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게다가 고령세대에서 신차 등록대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60대와 70대의 신차 등록대수는 각각 20만4294대, 5만861대로, 전체 판매대수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각각 18.5%, 4.6%로 집계됐다. 60대의 신차 등록 점유율은 10년 전인 2016년 9.6%에 불과했지만 매년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에는 2배 가까운 18.5%까지 뛰어올랐다. 2016년 2.8%였던 70대의 신차 등록 점유율도 매년 증가해 작년에는 4%대 중반을 기록했다. 이처럼 고령운전자 수와 운행 차량이 동시에 늘면서 사고 관련 우려와 사회적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정 나이가 되면 운전면허를 의무적으로 반납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거론되고 있지만 고령층의 이동권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고령자 운전사고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령운전자들의 사고 발생빈도가 높은 주요 원인으로 신체능력 저하에 따른 순발력 감소와 시야 축소, 인지능력 저하 등을 꼽는다. 하지만 고령자 운전사고는 지금의 젊은세대도 미래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해당한다. 또한, 고령운전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사안도 아니다. 고령운전자 증가를 막을 수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제도적·기술적 장치를 마련해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 면허 갱신 주기 단축, 적성검사 강화, 운전 능력 평가의 실효성 제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의무화 등 보다 촘촘한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고령 운전자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안전을 전제로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세대 갈등을 키우기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할 때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기자의 눈] 차액가맹금 분쟁, 프랜차이즈산업 성장 자양분 되길

프랜차이즈 산업의 수익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초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한국피자헛의 차액가맹금 반환 소송 여파다. 대법원은 지난 1월 가맹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차액가맹금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며 한국피자헛에 215억원을 반환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 이후 많은 로펌들이 가맹점 집단소송 전담팀을 꾸리면서, 업계에서는 줄소송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가맹 본사와 점주 간 갈등이 큰 시국이지만, 놀랍게도(?) 프랜차이즈(franchise)의 어원은 '자유'와 '특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특정 구역 안에서 본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규모의 경제'에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대량구매를 통해 원자재 매입 단가를 낮추고, 가맹점주에게 원자재를 시중가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만약 가맹점에 시중가보다 비싸게 공급해서 차액가맹금을 많이 수취한다면 이는 프랜차이즈의 본질인 '규모의 경제'에 역행하는 것이다. 가맹점에 납품하는 상품, 원부재료 등에 마진을 추가로 얹는 차액가맹금 논쟁이 답답하기만 한 이유다. 본사만 탓하는 것은 아니다. 본사의 정책이 점주 본인 마음에 안 든다며 재료를 마음대로 사입해 쓰거나, 이익을 좀 더 내보겠다고 본사가 제시한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명백히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그런 일탈 행위는 다른 점주들에게도 해가 된다. 맥도날드는 맥도날드 형제가 창업했지만 맥도날드의 세계화를 이끈 것은 프랜차이즈 권리를 사들인 레이 크록(Ray Kroc)이었다. 그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영감을 얻은 '햄버거 생산 라인'과 함께 어느 지점에서도 반드시 정확하게 똑같은 음식을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제공하는 '표준화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통상 한 끼를 위해 드는 금액의 절반 가격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본사와 점주가 상생할 때 소비자도 그 과실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가 하나의 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가 발족한 것도 1998년의 일이다. 지금 업계에 위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 시기가 산업을 더 견고하게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AI 전쟁은 ‘시간 싸움’이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실리콘밸리 공기를 바꿔놓고 있다. 한때 미덕처럼 여겨지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후순위로 밀리고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뜻의 '996 근무'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부 빅테크는 '창업자 모드'를 선언하고 업무 강도를 높였다. 핵심 엔지니어들이 특정 시기 '24시간 대응 체제'에 돌입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에 '허슬(hustle)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AI 역량 개발을 기치로 내건 첨단 기업들을 중심으로 직원들에게 고강도 노동을 독려한다. '996 문화'의 원조가 중국이다. 유명 기업인들이 공식석상에서 “집에 안 갈 각오를 하라"는 말을 할 정도다. AI가 산업 지형도를 바꾸면서 기업 문화도 다시 속도와 성과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기술 패권 경쟁은 자본 싸움이면서 동시에 시간 전쟁이다. 한 분기 늦으면 시장을 내주고, 한 세대 뒤처지면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인력과 자본을 총동원해 속도를 끌어올리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달라 보인다. 특히 '산업의 기둥'이자 AI 첨병인 반도체를 둘러싼 제도 개편 논의가 제자리걸음이다. '반도체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긴 했지만 연구개발 인력의 근로시간 특례를 담은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이 빠진 반쪽짜리다. 무작정 장시간 노동을 옹호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반도체 공정 개발과 AI 반도체 설계처럼 집중 투입이 불가피한 분야에 대해 산업 특성에 맞는 유연한 제도를 설계하자는 요구다. 우리 정치권 내 논의는 노동권 후퇴냐 아니냐의 이분법에 갇혀 있다. 반도체 호황은 우리에게 분명 기회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수요 확대로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 흐름이 영구적 우위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글로벌 수요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이 큰 만큼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경쟁국이 총력전을 펴는 사이 우리는 제도 논쟁에 머문다면 차이는 순식간에 좁혀질 수 있다. 노동계의 우려도 경청할 대목이 있다. 보상과 안전장치 없이 노동시간만 늘리는 방식은 해법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면 완화가 아니라 정밀한 설계다. 연구개발 고소득 직군에 한해 자율과 책임을 강화하고, 성과 보상과 연동하는 특례 모델 등을 고민할 수 있다. 시장의 시계는 국회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AI 시대 기술 전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시간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전장 한복판에 서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정권 바뀌면 재논의…국가 계획 믿을 수 있나

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이 여전히 혼선이다. 기존 계획을 돌연 중단하고 다시 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연초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찬성 응답이 더 많았고, 정부는 결국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긴 기존 신규 원전 건설 방침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결론이 같았다면, 굳이 다시 물어야 했을까.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다. 수년간의 논쟁과 전문가 검토, 공청회, 정치권 협의를 거쳐 이미 사회적 합의를 형성한 국가 계획이다. 여야 간 큰 틀의 공감대까지 형성된 사안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다시 토론회를 열고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대신 세금은 쓰였고, 사회적 갈등만 다시 소환됐다. 문제는 원전이 아니다. 이미 결정된 정책을 정부 스스로 다시 흔드는 행정 방식이다. 정책은 토론으로 시작하지만, 결정 이후에는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에너지 정책에서는 '결정 → 재검토 → 논쟁 재점화'라는 이상한 공식이 반복되고 있다. 차일피일 밀리고 있는 LNG 용량시장과 청정수소발전(CHPS) 입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고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신호를 보내면 기업들은 수천억 원 규모 투자 준비에 들어간다. 설계와 금융 조달, 인력 확보까지 진행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방향 재검토, 일정 연기, 제도 수정 이야기가 나온다. 정책을 믿고 움직인 기업만 '리스크 관리 실패'의 책임을 떠안는 구조다. 이쯤 되면 시장은 묻게 된다. 정부 계획은 과연 계획인가, 아니면 임시 의견인가. 에너지 산업은 정치 일정에 맞춰 움직일 수 없는 분야다. 발전소 하나, 인프라 하나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 투자는 멈추고 산업은 관망 모드로 들어간다. 정권이 바뀌고 부처가 신설되고 장관이 교체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계획까지 매번 초기화된다면 그것은 정책 수정이 아니라 정책 붕괴에 가깝다. 정책을 바꾸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을 다시 묻는 데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이미 합의된 정책을 반복적으로 여론조사와 토론회에 올리는 순간, 정부는 스스로 결정에 확신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행정 비용 낭비, 사회적 논쟁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 하락이다. 기업은 방향이 보일 때 투자한다. 방향이 흔들리면 기다린다. 정부가 매번 다시 묻는 나라에서 장기 산업 전략은 존재하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는 매번 재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다. 한 번 결정했다면 일정 기간 책임 있게 밀고 가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토론이 아니다. 이미 결정한 것을 지키는 신뢰다. 국가 계획이 정치 이벤트가 되는 순간, 정책은 설득력을 잃고 산업은 미래를 잃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가성비로 현혹하고 표절로 기만…블루엘리펀트, K-아이웨어에 ‘찬물’

2019년 론칭, 국내 대표 아이웨어 브랜드로 급성장, 잇따른 표절 시비, 대표 구속. 7년 간 블루엘리펀트가 화려하게 펼쳐온 막을 내리는 초라한 과정이다. 빠른 속도로 수직상승했다가 곤두박질치는 모양새다. 사실 블루에리펀트의 위기감은 줄곧 존재했다. 2019년 론칭 당시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8년 전 첫발을 내딛은 젠틀몬스터와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블루엘리펀트는 트렌디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20~30대 소비자의 눈을 홀린 뒤 그 뒤에서는 베끼기에 급급했다. 같은 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하는 정신을 무시했다. 최소한의 상도의를 지키지 않았다.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한 연구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을 가로챈 셈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블루엘리펀트의 젠틀몬스터 유사성을 어느 정도 인지했다. 물론 디자인 표절은 경계가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고, 대형 브랜드들도 과거 카피 제품을 출시하며 성장한 사례가 있어 칼로 무를 베듯이 표절이라고 단정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글라스 파우치와 오프라인 매장 인테리어까지 쏙 빼닮은 것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따라 초반에는 트렌드를 따라가려다 발생한 우연이라고 여겼지만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결국 선을 넘어버렸다. 2024년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블루엘리펀트를 상대로 아이웨어 제품군이 자사의 디자인 권리를 침해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 및 디자인보호법 위반 혐의로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스스로 발목에 잡혀 자멸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이로 인해 블루엘리펀트가 설립 후 처음으로 진행하던 300억~500억 원의 대규모 투자 유치는 잠정 중단됐다. 투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온 국내 벤처캐피털(VC) 입장에서 대표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과 사법 리스크를 무리하게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할 명분을 찾기 쉽지 않다. 블루엘리펀트는 투자를 통해 꿈꿔온 글로벌 사업 확장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블루엘리펀트의 행보는 브랜드 자체의 성장 기회를 날렸다는 점 외에도 잘 나가는 K-아이웨어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 관광객이 차지하면서 K-아이웨어 브랜드로 글로벌에 이름을 떨칠 그림을 그렸고, 서울 성수동이란 공간에서 젠틀몬스터와 원투펀치로 국내외 아이웨어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지만 결국 물거품되고 말았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주주환원이 만든 PBR 1배, 다음은 지배구조

KB금융지주와 JB금융지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넘어섰다. 오랜 기간 저평가되던 금융지주 주가가 제 가치를 찾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또한 PBR이 0.8배 넘어서며 1배를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는 금융지주사들의 단기 실적 개선보다는 자본 정책 변화에 따른 주주환원 확대에 시장이 반응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2024년 금융지주사들은 밸류업 계획 발표 후 자본 재배치에 나섰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며 총주주환원율은 50%를 넘어섰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감액배당도 추진하며 향후 주주환원 확대 기대감도 키우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이 '이익을 내면 주주에게 돌려준다'는 믿음을 형성했고, 그 결과가 PBR 1배 달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제 주주환원 정책만으로는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변화는 그동안 낮게 유지되던 평가 수준이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시장 프리미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꼽힌다. 국내 금융사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요인으로도 지적돼 왔다. 그런 점에서 2024년 JB금융에서 주주 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처음 진입한 것은 의미가 컸다. JB금융 2대 주주인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에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며 주주 추천 사외이사 도입을 요구했고 금융지주 최초로 2명을 이사회에 입성시키는데 성공했다. 주주 추천 사외이사가 주주 입장을 대변해 의사결정이 어려울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마련하는데 발판이 되며 기업가치 강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연임 자체보다는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하는지가 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을 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특별결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동안 금융지주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하며 셀프 연임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온 만큼 주주 권한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시장은 특정 인물의 거취보다 지배구조 의사 결정 과정이 얼마나 검증 가능한지에 주목한다. PBR 1배까지는 자본 정책이 주도했다면, 1배 이후는 회사의 구조와 거버넌스 개선도 중요하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강압에 의한 변화가 아닌, 금융지주의 자발적인 지배구조 선진화 노력은 시장의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PBR 1배 다음 단계를 바라봐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지주, ‘생산적 금융’ 구슬땀...국회도 역할 다해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설 연휴 직전인 이달 11일부터 12일까지 광주, 전남, 충북, 충남지역을 방문해 '국민성장펀드' 알리기에 나섰다. 국민성장펀드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유망 프로젝트를 발굴·지원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 지역기업 등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국민성장펀드의 취지와 내용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주요 금융지주사도 국민성장펀드,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연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KB금융지주는 민관합동 국민성장펀드의 제1호 투자처로 선정된 '신안우이 해상풍력 발전사업' 금융주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어 약 1조원 규모의 'KB국민성장인프라펀드'를 결성해 국가 전력 인프라 사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민간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주요 그룹사 CEO들과 함께 '그룹 생산적 금융 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 신한지주는 생산적 금융의 이행 목표, 성과를 그룹사의 전략과제와 성과평가지표(KPI), 자회사의 경영진 평가와 연계해 실행력을 제고할 방침이다. 하나금융지주 핵심 계열사인 하나은행은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고자 KPI 항목을 개편하고, 하나금융연구소가 선정한 '코어 첨단산업' 업종에 대해 기업대출을 신규 공급할 경우 실적 가중치를 적용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 우리금융캐피탈, 우리투자증권 등 우리금융 계열사가 전액 출자해 2000억원 규모의 '우리 국민성장매칭 펀드'를 조성한다. 이 회사는 올해 정부가 주도하는 국민성장펀드 자펀드에 약 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그 시작으로 2000억원 규모의 '우리 국민성장매칭 펀드'를 만든 것이다. 4대 금융지주가 일제히 국민성장펀드, 생산적 금융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단연 안정적인 실적과 우수한 자본비율이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연간 총 순이익 17조9588억원으로, 18조원에 육박하는 실적을 달성했다. 환율 상승 등 시장 변동성 확대에도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끌어올리면서 총주주환원율도 사상 첫 50% 시대를 열었다. 누군가는 또다시 4대 금융지주의 이러한 성과를 '색안경'을 끼고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정적인 실적이 없다면 금융지주사가 생산적 금융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국회, 정부는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금융지주를 향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국민성장펀드·생산적 금융이 우리 경제의 저성장 극복으로 이어지도록 규제 완화와 같은 '생산적인 분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금융지주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고, 세계 시장에 우리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길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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