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오천피’에 취한 시장, 누가 브레이크를 밟나

“코스피 5000p 시대", “7500p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는 사상 처음 4000선을 넘어섰고, 일부에선 '재평가 장세'라는 단어까지 동원됐다. 반도체 실적 호조, 외국인 순매수, 정책 기대감이 맞물리며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문제는 이 상승이 얼마나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느냐다. 최근의 시장은 숫자만 보면 화려하지만 속살은 불안하다. 4000p를 찍고도 코스피는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몇 주 사이에는 하루 만에 2~3%씩 출렁이는 장세가 낯설지 않다. 지수가 오르는 동안 개인의 신용융자 잔액은 빠르게 불어났다. 이제는 빚이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건지, 시장이 빚을 부추기고 있는 건지 경계가 흐릿해졌다. 레버리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빚투는 실적이나 구조 변화에 대한 '계산된 베팅'이라기보다 흐름을 쫓는 추격 매수에 가깝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이 취약한 고리는 가장 먼저 충격을 받게 된다. 외국인 수급에 대한 의존도도 여전하다. 그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개인의 '저가 매수'는 버팀목이 아니라 낙폭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상승의 동력으로 꼽히는 반도체 역시 냉정히 봐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은 안정적이지만 슈퍼사이클이 영원한 적은 없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지표는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 소비는 둔화되고 있고, 제조업 고용은 회복세가 미약하다. 대형주 몇 개가 지수를 끌어올리는 동안 중소형주와 코스닥은 뒤처져 있다. 겉보기 호황과 체감 경기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에 AI 과열 논란도 겹쳤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던 AI 관련주가 급락하며 코스피도 순간적으로 3900선이 무너졌다. 일부 빅테크는 실적을 내고 있지만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정책 신호다. 증시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빚투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한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다. 부동산 빚은 경계하면서 주식 레버리지는 '투자의 한 방식'처럼 포장되는 이중 잣대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숫자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리스크 관리라는 본질이 희미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시점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다. 코스피 5000은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구호가 되어선 안 된다. 지수만 올려놓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식이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상법 개정이 시작점이 될 수는 있지만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문화가 실제로 바뀌지 않는다면 상승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이 했던 것처럼 연기금과 거래소가 주도하는 구조 개혁, 자본 효율 중심의 경영 전환이 동반돼야 한다. 지금은 들뜬 축배를 들 시기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타이밍이다. 시장의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랠리는 결국 되돌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천피'는 구호가 아니라 펀더멘털로 설명 가능한 결과여야 한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공항 보안 수수료 제도’ 도입, 더는 늦출 수 없다

지난해 총 이용객 수 7115만6947명에 이르는 인천국제공항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하늘 관문이다. 개항한 지 어느덧 21년의 청년기 인천국제공항이 최근 보안 검색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내에서 실탄이 발견되는가 하면 승객이 커터 칼과 공업용 칼을 소지한 채 보안 검색대를 무사통과해 탑승한 사건이 벌어지고, 심지어 외국인들이 공항 외곽 담장을 넘어 밀입국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올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항공 보안 불시 평가에서 모의 폭발물 탐지 실패 등 '보안 구멍' 사례가 71건이나 적발됐고, 최근 3년간 항공보안법 위반 사례도 51건에 달한다. 세계 1위 공항이라는 명성 뒤에 가려진 대한민국 항공 보안의 현주소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와 해결책은 '돈'과 '구조'에 있다. 우리는 '공짜 보안'이라는 환상 속에 살아왔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공항 검색대 앞에서 신발을 벗고 노트북을 꺼내며 잠시 불편을 감수한다. 하지만 이 삼엄한 보안 뒤에 가려진 '비용'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20여년 간 대한민국 공항의 보안 비용 청구서는 사실상 '동결' 상태였다. 이제 그 청구서의 만기가 도래했다. 본래 항공 보안의 책임은 항공사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이후 효율성을 이유로 검색 업무와 비용 부담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등 공항 운영자에게 넘어갔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안전의 수혜자인 승객과 항공사가 져야 할 짐을 공공성을 띤 공항 운영자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문제는 책임만 넘기고 지갑은 닫아버렸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사이 액체류 검색 강화와 패스트 트랙 도입 등으로 보안 업무는 폭증했고, 한국공항공사의 보안 위탁비는 2003년 대비 530%나 뛰었다. 이와 달리, 이를 충당할 보안 재원은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수입 없는 지출은 빚으로 쌓였다. 더 큰 위기는 미래에 있다. 테러 위협은 지능화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대당 14억 원에 달하는 3D CT X-레이 검색기와 AI 판독 시스템 확보가 필수이다. 기존 2억 원짜리 장비와는 차원이 다른 비용이다. 지금 같은 쥐꼬리 수준의 공항 이용료 수입으로는 첨단장비 도입은커녕 현재의 보안 인력의 월급 주기에도 벅차다. 박봉에 시달린 보안 인력들은 업무가 손에 익을 쯤이면 줄퇴사를 한다. 형평성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바다를 건너는 배를 탈 때 우리는 '항만시설 보안료'를 낸다. 국제선박항만보안법에는 이용자에게 비용을 징수해 보안 인력과 장비에 투자하도록 명시돼 있다. 미국은 9·11사태 이후 보안비로 편도 5.60달러(약 7350원)를, 영국과 홍콩도 2만 원 안팎의 보안료를 징수하고 있다. 유독 한국 공항만 '보안은 공짜'라는 착각에 갇혀 있는 셈이다. 구멍 뚫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싶은 승객은 없을 것인 만큼 공항 보안 수수료 도입은 단순 비용 부과가 아니라 '안전 투자'로 봐야 한다.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 물가 인상 자극 우려를 핑계로 언급조차 않는 국토교통부와 국회는 더 이상 표심 핑계로 공항 보안 수수료 도입을 머뭇거려선 안된다. 현행 항공보안법 제34조를 개정해 공항 보안 수수료 징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그 재원이 오직 장비 고도화와 인력 처우 개선에만 쓰이도록 칸막이를 쳐야 한다. 낡은 장비와 과로에 지친 보안 요원에게 국민의 생명을 맡기는 도박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 공짜 점심이 없는 것처럼 공짜 항공 안전도 없는 법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울산·포항·서산 분산에너지 보류, 에너지전환 정치리스크

정부가 지난 5일 울산·포항·서산의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보류하자 지역 반발이 거세다.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발전, 집단에너지가 특구 신청안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정치권 해석이 나온다. 다만, 집단에너지는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구조로, 일반 석탄·LNG 발전 대비 에너지 효율이 높고 탄소 배출도 상대적으로 적다. 화력발전 가운데서도 퇴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발전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보류된 지역에서는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자는 분산에너지 개념 아래, 저렴한 전기요금 공급을 통해 지역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 했던 만큼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분산에너지특구 선정을 에너지전환의 한 축으로 삼으려고 한 듯 하다. 에너지전환은 겉으로는 화력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과정이지만, 실제로는 부의 재분배 구조까지 함께 바꾸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예컨대 기존 화력이 지역 경제를 떠받쳐 왔듯, 태양광이 새로운 지역 경제의 축으로 편입되고 있다. 태양광은 대규모 부지를 필요로 하는 특성이 있다. 해안 도시 지역에 집중됐던 발전설비가 농촌과 산지로 분산되면서, 그동안 발전설비가 많지 않았던 내륙에도 수십 기가와트(GW) 규모의 태양광이 들어서고 있다. 에너지전환은 일부 지역에 편중됐던 부를 분배하는 과정도 포함해, 누군가는 부를 얻고 누군가는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태양광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수단인 '햇빛연금'은 마치 무한한 햇빛 속에서 얻어지는 자원처럼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다른 발전원처럼 발전단가에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전기요금이 재원이다. 결국 햇빛연금도 국민 전체가 부담한 비용을 특정 지역으로 재분배하는, 일종의 지역 기본소득 구조에 가깝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명제로 정치적 변화와 갈등을 덮을 수 있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장기적으로 화력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어떤 전원을 어떤 속도로 줄일지에 대해서는 우선순위를 더 정교하게 정해야 한다. 정부는 2040년 석탄발전 대규모 폐지를 예고해둔 상황이라 이번 특구 논란보다 훨씬 큰 정치적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 한정된 정치적 자원을 고려할 때 석탄이 아닌 집단에너지까지 전선을 넓혀 갈등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또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연말 재심의에서 집단에너지의 포함 여부가 다시 논의되겠지만, 명확한 설명 없이 최종 탈락이 결정될 경우 논란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라는 대의가 갈등을 덮는 명분이 되는 순간, 에너지전환은 정치적 신뢰를 잃을 위험이 크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부동산대책, 실수요자 배려해야 효과 본다

“지금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하기 딱이야."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보름 후 수원에 사는 지인의 말이다. 그는 “우리 동네는 규제에서 빠졌잖아"라며 차익을 노리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놀라운 건 이런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동산 업체 통계를 보면 10·15 이후 규제지역 거래는 76% 급감한 반면 비규제지역은 22% 증가했다. 그중 그가 사는 수원 권선구는 73%나 폭증했다. 규제를 피해 수요가 이동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반복됐던 풍선효과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규제를 강화했지만 인접 지역 가격이 급등하며 정책이 오히려 과열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재명 정부는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일괄 묶는 초강수를 꺼냈다. 그러나 6·7 대책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6억원 제한에 이어 규제가 연달아 나오자 서울 상급지 시장에서는 “현금 부자만 웃는다"는 냉소가 커졌다. 특히 수요 억제 일변도의 정책은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에게 가장 먼저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10·15 대책 이후 전세 매물은 줄고 월세 전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기 지역의 아파트 월세는 100만원대를 훌쩍 넘나든다. 소득이 넉넉지 않은 청년·신혼부부가 주거비 압박을 가장 먼저 체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의지할 정책 대출의 문턱은 좁아졌다. 대표적 정책대출인 생애최초 디딤돌 대출은 부부합산 8500만 원 이하(일반 7000만 원 이하)만 가능하지만, 맞벌이 신혼부부 소득이 그 이상인 경우가 흔하다. 신생아특례대출도 올해 6월부터 한도가 5억 원에서 4억 원으로 줄었고,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 총량도 25% 축소됐다. 전세는 불안해지고, 매매는 규제로 막힌 가운데 정책대출까지 줄어드니 무주택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 셈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취지는 '과열 억제'지만, 정작 보호가 필요한 무주택 청년·신혼부부가 정책 설계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수요 억제와 함께 실수요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정책대출 소득 기준을 현실에 맞게 완화하자. 생애최초·신혼부부 대상 금리 우대 확대, 축소된 대출 한도·총량 조정, 예외적 대출·거주 요건 적용, 임대 공급 확대와 임차인 보호 대책 등도 필요하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소상공인 정책 엇박자 줄이려면

“중소기업 정책은 그나마 규모별, 업종별로 세분화가 돼 있어요. 가령 스마트공장 지원사업만 봐도 고도화 수준에 따라 지원 수준을 달리하고 있고, 업종별로도 카테고리가 나뉘어져 있죠. 그런데 소상공인은 그냥 소상공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정책의 디테일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소상공인 성장정책 토론회'에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정책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보편적 지원'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는 업계 주문은 결국은 새로 신설된 소상공인 전담 차관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소상공인 790만. 이 안에는 식당을 하는 소상공인도 있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도 있으며, 도매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도 있다. 소상공인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여있지만, 각 업종이 처한 특수성과 애로사항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음식점업은 원재료 가격 변동에 민감하고, 배달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들에게는 배달 수수료 부담완화, 원자재 공동구매 플랫폼 지원 등이 시급하다. 반면 도소매업은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심화와 재고관리 문제, 오프라인 고객 유치 감소 등이 당면과제다. 온라인 판로 지원, 스마트 재고관리 시스템 보급, 지역 기반의 상권 공동 마케팅 활성화와 같은 정책이 절실하다. 업종별 지원에 있어서도 '성장'이냐 '보호'냐를 따져야 한다. 일부 음식점업 종사자는 성장을 곧 '프랜차이즈화(化)'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맹점 관리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확대한다면 결국 또 다른 소상공인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유통사의 PB 브랜드는 소비자의 편익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제품을 개발한 기업들이 자기 브랜드를 가질 수 없고 독자적인 판로개척도 어렵게 된다. 정책의 디테일을 살릴 묘책은 딱 두 곳에 있다. 현장과 데이터다. 아직까지 소상공인 관련 데이터는 매우 제한적인 실정지만 그나마 중소기업중앙회가 노란우산 데이터를 활용한 소기업소상공인 정책지표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새로 신설된 소상공인 컨트롤타워가 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해 소상공인 성장과 생존을 위한 전문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규제 말고 지원”···산업계 호소가 절박한 이유

“한미 협상으로 25%였던 관세를 15%로 낮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0%였던 게 15%로 올라간 겁니다." 최근 만난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의 목소리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우리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요국이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며 무역 장벽을 쌓는 동시에 자국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건을 팔아야 할 거점에서 포탄이 오간 지 수년이 지났다. 내수 경기가 여전히 차가운데 환율은 치솟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모래주머니'까지 차는 모양새다. 정부·국회가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거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골자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산업계 의견은 듣지 않고 있다. 화룡점정은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NDC를 권고사항으로 정하는데 한국만 나 홀로 이를 법적 의무로 못 박기로 했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한 2035 NDC의 골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68.8∼75.3%, 산업 24.3∼31.0%, 수송 60.2∼62.8% 등 부문별로 목표치를 차등화했다. 기업들은 이를 '족쇄'로 인식하고 있다. 2035 NDC 48%를 '도전적인 상한선'이라고 호소했지만 정부가 해당 의견을 완전히 묵살해서다. 탄소 감축 기술·설비 투자를 늘리면 수익성 악화→투자여력 감소→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기료 인상에 따른 원자재 부담 증가도 불가피하다. 적자 해소를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철강·석유화학 업계 등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동차 산업은 지형도 자체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2035년까지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중 무공해차 비중을 30~35%로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내연기관차 단종' 수준의 조치가 필요하다. 부품 산업은 붕괴가 우려된다. 국내 부품 업체의 95% 이상은 중소·중견기업이다. 이들 중 현재 전동화 차량 등 미래차 매출액 비중이 30% 미만인 업체가 86.5%에 달한다. 주요국들은 탄소중립보다는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에 방점을 찍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친환경 정책과 사실상 이별을 고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최근 204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하면서 원안보다 대폭 완화된 타협안을 채택했다. 중국은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무섭게 성장해나가고 있다. 5년 뒤 반도체를 포함한 우리나라 모든 산업·기업 경쟁력이 중국에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NDC 달성을 위해 규제보다 인센티브 중심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달라'는 산업계 호소가 유독 절박하게 들린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이재명 대통령式 발전공기업 통폐합의 미래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공공기관 개혁의 방향을 두고 “개혁의 명분 아래 힘 없는 사람을 자르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불필요한 임원 자리를 정리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단순한 조직 축소나 인력 감축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중복 구조를 정면으로 손보겠다는 메시지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수차례 논의만 반복됐던 발전공기업 통폐합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한국전력 산하 발전자회사 5곳(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은 설립 배경과 발전 용량이 거의 동일하고, 사업 구조 역시 화석연료 중심으로 사실상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각 사가 별도 법인으로 존재하면서 과도한 임원 수, 중복된 조직, 지역별 '체급 경쟁'이 이어져 왔다. 경영평가 체계는 이들 5개사를 한 줄로 세워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보니, 필요 이상의 경쟁이 불가피했고 장기적인 투자·안전·정비보다는 '평가 점수 관리'에 매달리는 기형적 행태가 누적돼 왔다. 이 같은 문제는 내부 구성원들 역시 오랫동안 체감해온 현실이다. 현장 직원 사이에서도 “동일한 구조와 사업인데 5개 회사로 나뉘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많은 사외이사·임원 자리, '한전 패밀리'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방만 운영을 정당화한 문화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구조적 비효율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공공기관 개혁=인력 감축'이라는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 임원·지배구조·평가체계·중복 기능 등 핵심 병목을 손보겠다는 의지가 짙게 반영돼 있다. 공공기관 개혁의 본질이 “힘없는 직원이 아니라, 불필요한 의사결정 구조를 걷어내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발전자회사 통폐합은 결코 단순한 구조조정 작업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반발, 노조의 고용 안정 우려, 임원단의 저항 등이 얽혀 있어 정부의 정치적 리더십 없이는 추진 자체가 어렵다. 더욱이 정부의 탈석탄 기조와 재생에너지·전력망 확충 정책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발전자회사 개편은 국가 전력정책의 방향과도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 조직만 합친다고 효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원믹스 변화·계통 안정·투자 주기 조정·전력시장 개편과 같은 종합적 관점에서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은 '누구를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국가 전력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밝힌 대로, 임원단을 포함해 기득권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개혁 방향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공기관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구성원들과 지역주민 등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경쟁력있는 국가 발전 책임 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제는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글로벌 브랜드 韓 진출 러시…K컬처 매력의 끝은?

유명세는 물론 강렬한 개성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브랜드들의 '한국행'이 물밀 듯 이어지고 있다. K-팝, K-드라마, K-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열풍이 K-패션과 K-뷰티, K-푸드 신드롬으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탄생지인 한국에 대한 매력도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수수료 높은 구매대행이나 해외직구 등을 이용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초부터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한국 진출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3월 스웨덴의 명품 니치향수(전문 조향사가 만든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BYREDO)가 팝업 전시회 개최 첫 번째 장소로 한국을 선택했다. 이달 초에는 25년 전통의 영국 유명 소프트 토이 브랜드 '젤리캣'(Jellycat)이 한국에 공식 론칭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28일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한국 최초 팝업 스토어 '젤리캣 스페이스'를 운영한다.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우주 콘셉트다. 그동안 젤리캣은 글로벌 시장에서 각기 다른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를 선보였다. 영국 런던 '피시앤칩스', 중국 상하이·베이징 '젤리캣 카페', 미국 뉴욕 '다이너' 등으로 공간을 꾸몄다. 또 한국 한정으로 어뮤저블스 스페이스 코멧, 어뮤저블스 젤리소서, 어뮤저블스 플래닛 마스, 질런 에일리언 등 신규 캐릭터 4종을 출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걸그룹 블랙핑크 제니 등이 착용하면서 국내 인지도를 높인 독특한 초승달 모양이 시그니처인 프랑스 패션브랜드 '마린 세르'(Marine Serre)가 첫 번째 글로벌 단독 매장 국가로 한국을 '픽(Pick)'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린 세르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 외에 오픈한 최초의 단독 매장이다. 마린 세르는 지난달 패션기업 무신사의 자회사 무신사 트레이딩을 통해 서울 한남동에 '마린 세르 한남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게다가 최근 2030세대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스킴스'(SKIMS)가 한국에 상륙한다. 이달 21일부터 서울 성수와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공식적으로 한국 소비자들에 첫선을 보인다. 스킴스는 글로벌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이 이끄는 란제리 브랜드로, 속옷을 패션으로 승화하며 속옷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한국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의 전략적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는 속도가 굉장하다. 방한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대상으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로도 활용 가능하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로 넘어가 주목을 받는 방식에서 이제는 해외 브랜드가 K-컬처의 탄생지로 직접 발을 들이고 있는 지금이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금융에 ‘냉정함’이 필요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은 잔인하다"고 연이어 발언하자 은행권은 좌불안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서민금융 금리가 15.9%까지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고신용자는 저금리로 장기, 저신용자는 고금리로 단기로 돈을 빌려준다"면서 “금융이 가장 잔인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한 번 빚지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닌다"며 “왜 가난한 사람들끼리 손실을 다 감당하나. 금융이 너무 잔인하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의 지적처럼 금융의 냉정함이 때론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 속성에서 비롯된다. 대출 금리에는 차주의 신용프리미엄이 반영된다. 과거 상환·연체 이력 등을 고려해 연체 가능성이 낮은 고신용자는 대출 금리가 낮아지고, 연체 위험이 높은 저신용자는 금리가 높아지는 것이 시장 원리다. 이를 인위적으로 바꾸려 하면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 대출 위험이 금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은행들은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하며 대출 문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은행을 향한 비판이 당장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고신용자에 대한 역차별도 우려된다. 대출을 제때 잘 갚았지만 오히려 금리 등에서 차별을 받으면 차주가 빌린 돈을 성실히 갚아야 할 유인이 사라진다.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금융기관과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 흔들리게 된다. '신용이 낮으면 금리를 높게 받는다'는 기본 원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물론 은행에 대한 서민금융 지원 역할이나,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기업에 대한 은행의 생산적 금융 강화 등의 요구는 타당하다. 그동안 은행들이 가계대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이자장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온 것에 대한 비판 역시 일리가 있다. 다만 은행의 냉정함을 곧 은행의 잔인함으로 단정하기에는 지나친 부분도 있다. 금융기관은 그 냉정함을 바탕으로 지금의 신용사회와 금융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서민과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금융 때리기만으로는 서민들이 체감하는 잔인한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당국 수장, 금융권에 ‘생산적 금융’ 외칠 자격 있나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갭투자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이 위원장은 “뭘 포기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평생 1가구 1주택, 한 채로 해서 그냥 산다는 그런거다"며 “공직자 임원으로, 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유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부동산 거래 관련해 국회의원들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다. 이 위원장은 과거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를 갭투자 방식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찬진 원장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해 다주택자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이 위원장은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1가구 1주택을 약속했고, 이 원장은 결국 아파트 한 채를 처분했다. 이 원장이 아파트를 처분하는 과정도 전혀 매끄럽지 않았다. 이찬진 원장은 아파트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실거래가보다 높은 금액에 매물로 내놔 정부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일었고, 결국 가격을 다시 낮췄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 구설에 오른 건, 그만큼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유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강도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과 민심 모두 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출 규제로 현금 부자들만 로또 청약의 기회를 얻었고,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는 끊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자신감과 관계없이 강남 아파트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이 와중에 금융당국 수장들은 금융권을 향해 생산적 금융을 주문하고 있다.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생산적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가구 1주택을 그냥 살겠다"라고 했고, 이 원장은 실거래가보다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내놨다. 금융권 입장에서, 국민의 관점에서 금융당국의 정책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수장들부터 언행일치의 품격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 원장을 향해 “내로남불 원장의 리더십이 시장에 먹히겠냐"고 쏘아붙였다. 그들이 내로남불 정책, 내로남불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이, 강남 아파트 가격은 지금도 신고가를 경신 중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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