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자영업 먹여살리는 두쫀쿠, 이마저도 편승하는 대기업

요즘 어딜 가든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로 난리다. 없어서 못 살 만큼 잘 팔리니 두쫀쿠 만들기에 허덕이는 사장님도 만나봤다. 얼마 전 친구의 부탁으로 대리구매하기 위해 방문했던 디저트 전문점 운영주인 그는 “주로 100% 예약제로 홀케이크를 판매해 왔는데, 최근에는 두쫀쿠 예약 문의가 훨씬 많다"며 “하루에 많이 만들면 70개 수준인데 따로 알바생을 구하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이정도만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쫀쿠에 눈 돌린 사장님들이 한둘이 아니다. 카페·디저트 전문점·냉면집·고깃집에 이불가게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두쫀쿠 판매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두바이 현지에서 '코쫀쿠(코리아 쫀득 쿠기)'라는 이름으로 역수출된 사례까지 나오니 그만큼 높은 흥행성을 방증한다. 두쫀쿠 광풍에 10년 전 국내 시장을 흔들었던 '허니버터칩'을 떠올리는 소비자들도 있다. 오픈런까지 뛰어야 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고, 정가 대비 비싸게 되파는 현상까지 벌어진 것도 똑 닮았다. 차이점이라면 대기업이 만든 허니버터칩과 달리 두쫀쿠는 자영업자 주도로 개발됐고, 셀 수 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가세해 거대한 인기 흐름을 형성한 것이다. 두쫀쿠는 원조 브랜드로 알려진 몬트쿠키가 별도로 특허·상표 출원을 진행하지 않아 누구나 레시피를 활용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이 독점하거나 단독 채널을 통해 거래되지 않는 덕분에 빠르게 유행이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두쫀쿠 대란에 합류한 대형 식품·외식·유통업체들은 '골목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빈축을 사고 있다. 물론 전국 단위로 판매망을 보유한 대기업 특성상 수도권보다 유행을 소비할 기회가 적은 지방인들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공익적 측면에서 봤을 때 원재료 조달 등이 용이한 대기업이 비교적 자본이 제한적인 자영업자 수요를 뺏어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마시멜로우·피스타치오 스프레드 등 주 재료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이 대량으로 사들일 경우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우려가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히트 상품 가뭄에 시달렸던 유통가에서도 두쫀쿠 유행이 달갑겠지만 본인들만의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는 노력에 더 공들여야 하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결국 두쫀쿠도 2024년 두바이 초콜릿 유행의 연장선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식상함을 느끼는 소비자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상품을 꺼내들기에 절호의 기회인 때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눈] 달리는 장세, 급하게 올라탈수록 낙마하기 쉽다

연초부터 증시는 멈출 기색이 없다. 42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 지수는 단숨에 5300선에 도달했다. 지수는 조정을 겪어도 빠르게 회복한다. 2일 코스피는 5% 급락했다가 다음날 7% 올랐다. 장중 변동성마저 상승 흐름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런 장세에서는 위험보다 기회가 먼저 보이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시장에 들어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이 신용거래다. 자기 자본만으로 체감 수익이 작다고 느껴질 때, 레버지리를 활용해 더 큰 돈을 벌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이른바 '빚투' 지표로 쓰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일 기준 30조5397억원이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뒤 아직 상환하지 않은 금액을 뜻한다. 빚투가 늘면서 대출 한도를 다 쓴 증권사도 줄줄이 나오고 있다. 신용거래에서 가장 위험 요소로 꼽히는 건 반대매매다.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스스로 매도 결정을 내리는 거래가 아니다. 신용거래 계좌의 담보비율이 기준 아래로 떨어지고, 추가 증거금을 채우지 못하면 증권사가 투자자 동의 없이 주식을 처분한다. 투자자의 의사와 반대되는 매매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영문(Forced Sale)으로는 강제 매도, 강제 청산에 가깝다. 급등락장에서 이 구조는 특히 빠르게 작동한다. 주가가 조금만 밀려도 신용 비중이 높은 계좌는 곧바로 담보 압박을 받는다. 한 종목의 하락이 계좌 전체의 담보비율을 떨어뜨리고, 이로 인해 다른 종목까지 함께 매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발생한 매도 물량은 다시 가격을 누르고, 이는 또 다른 반대매매를 부른다. 급락이 더 큰 급락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반대매매가 반드시 시장의 고점이나 바닥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방향이 틀려서라기보다 변동성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였는지가 결과를 가른다. 시장이 중기적으로 상승 흐름을 유지하더라도, 중간에 나타나는 큰 조정은 신용 계좌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급등락장은 결국 지나간다. 그러나 그 사이 빚투가 빠르게 늘고, 그 빚이 시장의 작은 흔들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반대매매는 그 구조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예측의 실패라기보다, 변동성 앞에서 계좌가 허용한 한계가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시장은 여전히 달릴 수 있지만,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에게 조정은 곧 낙마 신호가 될 수 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기자의 눈] 모럴 해저드로 피멍든 자보, 회생 가능할까

자동차보험료가 5년 만에 오른다. 손해율이 높아지면서 2024년 적자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이 입은 손실이 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까닭이다. 이번달 중순을 전후로 각 사의 보험료가 1%대 초중반 오를 예정이지만, 올해도 적자가 유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몇 년간 자보 보험료가 소비자물가지수(CPI)에 포함되는 특성상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보험료 상승을 억제해왔으나,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추가적인 인상 압박이 발생한다. 고물가로 고생 중인 우리 국민이 짊어지는 '모래주머니' 하나가 더 무거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교통사고에 대한 판단과 보험금 청구·지급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경상환자에 대한 과잉진료를 막기 위한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한·양의학을 불문한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90%가 넘는 상해 12~14급 경상환자가 8주 이내에 치료를 마친 뒤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착안해 추가적인 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 심의 기준을 8주로 설정하는 것이 환자의 치료권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초과 치료 및 보험금 지급의 필요성을 보험사가 판단하면 곤란하다는 의견은 일리가 있으나, '상한선'을 정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에서도 과잉진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행태가 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경찰의 판단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한다는 방침 때문이라지만, 우측에 정차 중인 차량의 전면으로 달려나오는 무단횡단 보행자와 부딪힌 경우도 과실이 있다고 보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보행자에게 지급한 치료비 반환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운전자 과실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차량과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음에도 아픔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달려가도 보험금이 나가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무과실이 가능하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 이미 자보가 또다른 형태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전락했다고 토로하는 것도 빈말이 아닌 이유다. 자보는 의무보험인 특성상 전체 가입자가 2000만명에 달해 '블랙컨슈머'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합리적 제도를 수립하고 교통문화를 바꾸는 다각적인 노력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서학개미 잘못?…환율 주범 지적에 황당한 개미

원달러 환율이 1460원 선을 등락하고 있는 가운데 환율 사수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원달러 환율은 1464.3원으로, 지난달 한 때 1470원대를 돌파하며 위기감이 커졌지만 현재는 안정화 시킨 채 방어 중이다. 정부와 외환 당국은 전방위적 압박 조치를 통해 환율 잡기에 나섰다. 국민연금과의 통화 스와프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비롯해 주요 은행 외환 담당자를 소집해 기업과 개인의 불필요한 달러 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당국이 서학개미의 국장 복귀를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의문이다. 금융사들에게는 해외투자 상품에 대한 과도한 마케팅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도 거듭 당부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3일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코스피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해외 주식 투자와 외화 금융상품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며 해외 투자가 문제라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날은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5.3원 올라 1473.7원을 기록한 날이다. 서학개미에게 화살을 돌리는 듯한 당국의 행보에 개인투자자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한·미 금리차를 비롯해 수출과 수입 등 경상수지, 외국인 자본 유출입, 글로벌 달러 강세 등이 결정한다.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외환시장에서 보면 극히 일부일 뿐더러 개인들이 환율을 잡겠다고 개인 자산을 일부러 국장에만 투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정부는 수출 기업들이 번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는 행태가 환율 불안을 가중시킨다며 관세청을 통해 수출대금 미회수 전수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외환 거래를 조사해 우회적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결국 환율을 잡는 과정에서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게 돌리고 개인과도 나눠 가지려는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원화가치가 녹아내리는 상황에서 달러 자산으로의 이동은 어찌보면 교과서적인 선택이며,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산을 지키기 위해 합리적인 분산 투자에 나설 뿐이다. 당국의 '개미 탓' 시그널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 더 문제다. 해외투자가 마치 환율 불안의 원인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거나 개인이 국내 투자를 하지 않아 문제인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면 종국엔 시장이 왜곡되거나 시장 불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시장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융기관장의 발언이 중요한 이유다. 당국은 고환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기업과 개인에 책임을 돌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고환율 책임을 엄한 곳에 돌리기보다 정부의 외환 컨트롤타워가 약한 건 아닌지, 당국의 시장 개입이나 돈 풀기 정책이 잘못된 방향은 아닌지부터 살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 진짜 신경써야 하는 것들은 장기 방치되는 한·미 금리차, 구조적인 무역수지 부진, 글로벌 달러 초강세 등이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청년 생각하면 ‘부동산 대책 갈등’ 멈춰라

1·29 공급대책을 계기로 부동산 공급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충돌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수도권에 총 6만 가구를 공급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태릉CC 등 가용 부지를 총동원하겠다는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해 3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등 일부 핵심 지역의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시장이 불안해진 것에 따른 조치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 “부동산(자산 집중) 망국병"이라는 강한 어조를 동원하면서 보유세제 개편을 포함한 강경한 대책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대책 발표 약 4시간 만에 “서울시의 우려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발표됐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8000가구 공급이 국제업무지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이고, 태릉CC 공공주택 공급 역시 그린벨트 해제 면적에 비해 주택 공급 효과가 미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공방은 주말에도 이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태릉CC 사업지의 약 13%가 조선 왕릉 보존지역과 겹친다고 비판했다. 종묘 보존을 이유로 세운상가 개발을 제동 걸었던 정부의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국토부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선행을 분명히 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직접 반박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는 원인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과 정책 책임을 둘러싼 공방은 곧바로 표심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부와 서울시 모두 공방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상황이다. 부동산은 청년과 신혼부부를 포함한 전 세대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길어질수록 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현재 시장에 필요한 것은 정책 주도 싸움이나 책임 공방이 아닌 현실적인 해법이다. 정부나 오 시장이나 정치적 이해 득실이 아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협상과 협력에 나서야 한다. '부동산 망국병'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마따나 이대로 부동산 시장을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있을 지 조차 의심되는 상황이다. 더 이상 부동산 투기 때문에 초고령화·양극화, 인공지능(AI)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사회·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훼손당해선 안 된다. 부동산은 정쟁의 소재가 아닌 최우선 협력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30년 1조원, 서울시 ‘값비싼 미루기’의 청구서

행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방치다. 실패는 수정이라도 가능하지만, 방치는 어느 순간부터 구조가 되고 관성이 된다. 서울시의 임차청사 운영 문제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금을 누수시키는 방치 행정의 전형이다. 시는 현재 본청 외에도 여러 임대청사에 핵심 행정 기능을 분산해 운영하고 있다. 서소문2청사, 무교별관, 한국프레스센터 등 민간 건물에만 1800명 가까운 인력이 근무 중이다. 시티스퀘어에 위치한 서소문2청사에는 7개 실·국, 53개 부서, 1378명이 근무 중이다. 무교별관에는 2개 실·국 8개 부서 149명이, 한국프레스센터에는 3개 실·국 12개 부서 299명이 배치돼 있다. 서울시의 핵심 행정 기능 상당수가 본청이 아닌 민간 임차 공간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한시적 대안'이라는 설명과 달리 이미 장기 고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임대료는 해마다 자동으로 늘고 있다. 시가 내는 연간 임대료는 2022년 174억7400만원에서 2023년 199억3900만원, 2024년 222억1700만원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234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3년 만에 연간 부담이 약 60억원 가까이 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구조 개편이나 청사 운영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정책 결정이 없으면 비용은 꾸준히 상승한다. 국회 박홍근 의원실이 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한 장기 추정치에 따르면 임대료 누적액은 2030년 1435억원, 2040년 4472억원, 2050년 8554억원에 이르고, 2054년에는 1조556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이 움직이지 않을수록 예산은 더 빨리 새어나간다. 이 문제를 단순히 '공간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시에서 구상 중인 신청사 인근 도시재개발사업의 공공기여분을 활용해 자가청사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임차청사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도 하나의 선택지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임대라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반복해 왔다. 갈등도 없고, 결단의 책임도 뒤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매년 고스란히 예산서에 쌓인다. 행정 효율 측면에서도 손실은 분명하다. 여러 건물로 쪼개진 행정은 이동 비용과 협업 저하를 낳고, 이는 곧 정책 조정력과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값비싼 미루기'의 부담은 결국 시민에게 돌아간다. 행정의 책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결단을 내려 방치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자의 눈] 통신사 해킹, 기업의 정직이 중요하다

미국 정치사에는 '문제는 범죄가 아니라 은폐'라는 격언이 있다. '워터 게이트'로 불명예 퇴진한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린 건 도청 그 자체가 아니라 '뻔한 거짓말'이었다. '침해 흔적이 없다'던 우리 통신사들의 해명을 떠올리면서 이 격언이 오버랩 되는 건 개인의 지나친 비약일까. SK텔레콤은 지난해 해킹 사실을 자진신고한 대가로 1347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과징금을 맞았다. 반면에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는 '침해 증거가 없다'며 신고를 미루거나 부인했다. 아직 제제 여부는 미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은 기업들에게 '정직'을 권장하고 있는가라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기업의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유출 사실을 신속하게 알려 정보 주체인 국민의 2차 피해를 막는 것이다. 해킹 사고에서도 '속도'는 생명이다. 기업이 과징금을 피하려 사고를 숨기는 사이 이용자인 국민의 개인정보는 다크웹을 떠돌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된다. 기업의 '은폐'는 단순한 비윤리적 행위를 넘어, 고객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건이 일어난 뒤의 처벌이다. 먼저 매를 맞은 SK텔레콤의 사례가 자칫 “신고하면 독박 쓴다"는 그릇된 학습효과를 줘서는 안 된다. 만약 조사를 방해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정황이 있는 기업들에게 당국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시장 전체에 '완벽하게 숨기는 게 이득'이라는 최악의 시그널을 보내는 꼴이 된다. 범죄학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은폐 시도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정직했을 때의 손해보다 압도적으로 크지 않다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언제든 이를 은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공은 규제 당국으로 넘어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수사당국은 KT와 LG유플러스의 사례를 다루면서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자진신고한 기업에는 합당한 절차적 참작을 하더라도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조사를 방해한 행위에는 최대의 피해를 가정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정직이 중요하다'는 말은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훈계가 아니다. 은폐는 범죄보다 더 나쁘다. 규제당국은 이번 기회에 “숨기면 반드시 죽는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데이터를 지키는 길이지 않을까.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기자의 눈] 오천피·천스닥 달성 이후 남은 과제는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 한국 증시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장중 변동성은 있었지만 지수는 결국 사상 최고치에서 거래를 마쳤다. 시장 분위기도 단기 조정 우려를 밀어내는 쪽으로 기울었다. 다만 지수 상승과 동시에 원/달러 환율이 함께 오른 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지점이다. 코스피가 5000선을 처음 넘긴 날에도 환율은 상승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479원까지 올랐다. 주가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장면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다. 환율이 오른다는 건 원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 자금 흐름과 기업들의 비용 부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처럼 환율 상승이 곧바로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구조도 아니다. 해외 생산 비중이 커진 만큼 환율 변동이 오히려 기업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떄문이다. 지수 상승의 내용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반도체 대형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년 사이 빠르게 커졌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과 인공지능(AI) 투자 기대가 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 강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 지수 흐름과 달리 기업들이 느끼는 경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기업심리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내수와 서비스업 회복은 여전히 더딘 편이다. 기업들은 원가 부담과 경기 불확실성을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기대가 아직 실물경제 전반으로 퍼졌다고 보긴 어렵다. 코스닥도 4년 만에 1000선에 도달했고 숨 돌릴 틈 없이 1100까지 달려왔다. 지속성을 장담하기엔 갈 길이 멀다. 기술력과 사업 모델을 선별할 수 있는 시장 평가 기능, 부실 기업에 대한 정리, 중소형 성장주에 대한 장기 투자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수 상승은 일시적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주식시장은 늘 기대를 선반영한다. 다만 지수가 앞서가는 동안 환율과 실물경제가 보내는 신호를 함께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기록 경신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떠받치는 기업의 수익 구조와 경제 여건이 함께 개선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오천피와 천스닥이 일시적 이정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지수의 높이보다 그 기반을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반도체 실적’에 취할 때가 아니다

국내 증시 사상 최초 시가총액 1000조원 돌파,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20조원. 삼성전자가 불가능해 보이던 기록을 새롭게 동시에 달성한 두 개의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화려한 기록의 배경은 비교적 분명하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회복된 영향이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메모리 슈퍼 호황에 힘입어 16조~17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호황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AI 투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를 견인한 결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생산 공백'이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들어가는 범용 D램 공급이 줄었고, 이것이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며 실적을 떠받쳤다. 수요의 폭발적 증가라기보다 공급구조 변화에 따른 가격 효과라는 점에서 이번 호황의 지속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은 과거 전례가 증명한다. 업계는 코로나19 특수로 2021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2년 뒤인 2023년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연간 영업이익 51조원을 웃돌던 삼성전자는 2년 만에 7조원 안팎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익 구조다. 삼성 반도체 실적은 여전히 메모리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를 아우르는 비메모리 사업은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V·가전 사업부 역시 지난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이들 사업은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정면으로 노출돼 있다. 최근 중국 TCL이 일본 소니 TV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결정은 상징적이다. 한때 TV시장을 호령하던 소니가 중국기업에 경영권을 넘기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TV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20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 역시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메모리 호황에 가려진 다른 사업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메모리 이후를 책임질 성장축이 무엇인지, 그리고 비메모리·가전 사업에서 다시 한 번 '초격차'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는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지자체에 발전사업 허가권을 주자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과 이를 위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에너지 분야에서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를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정치인의 욕심이나 지역의 몽니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지역이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 역할을 하며 감내해온 희생을 외면한 채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만 이 문제를 덮어두기에는 정치적 갈등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여당 내부 분열로까지 번지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최근 광주·전남특별시 등 광역시와 도를 통합해 특별시로 키우려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정부가 보유한 3메가와트(MW) 이상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 대한 발전사업 허가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역 스스로 발전사업의 출발점부터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지자체는 이미 발전사업 인·허가 중간 단계인 개발행위허가권을 통해 사업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그들은 중앙정부와 대규모 투자자 위주로 이뤄져 지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재생에너지 보급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지자체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재생에너지 설치구역을 제한하는 이격거리 조례를 강화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원활히 이뤄질 리 없다. 물론 정부의 발전사업 허가권을 지자체에 넘기는 데에는 전력망 안정에 있어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발전사업 허가권 관리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가 난발된 결과, 2021~2025년 동안 상업운전 개시일을 넘긴 발전사업 허가 물량은 원전 16기에 해당하는 1만6000MW에 달한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4000MW를 허수물량으로 규정하고 회수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지자체도 개발행위허가 과정에서 전기위원회처럼 한국전력으로부터 전력망 용량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자체가 처음부터 발전사업 허가권을 갖고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자를 선별한 뒤 개발행위허가를 간소화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다만, 지자체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사업을 밀어붙이고 전력망 안정성을 해칠 문제를 보완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사업은 기후부나 전기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하고 필요시 정부에서 제약을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시장제도 개편을 통해 전력망 불안정성을 가격에 반영하는 입찰제도를 도입한다면 사업자는 초기 단계부터 전력망 비용을 감안한 사업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허가권을 넘기는 만큼 지자체 역시 사업 지연과 계통 부담에 대한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 주도의 기업 유치와 기업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공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자체가 발전사업 허가권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수도권 발전을 위해 희생해온 지역이 이제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요구하는 흐름을 더 이상 막기는 어렵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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