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불장 수혜는 고신용자만?…저신용자는 주가 잔치도 소외

“정부가 '빚내서 집사라'하고 부추기던 시절엔 모두가 대출이 쉬웠는데 '전재산 증시에 넣어라'라는 현재는 고신용자들만 돈 버는 게 아니냐" 최근 코스피지수가 크게 오르는 등 증시 활황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중·저신용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증시 진흥' 정책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금융 접근성이 낮아진 최근의 현상이 부동산 시장을 넘어 주식시장에서까지 커지고 있다는 푸념이다. 저신용자들은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 이후 대출 총량 관리와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도입 등에 대출이 이전보다 어려워진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은행권이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맞추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점수 900점 이상의 초고신용자들 위주로 대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밀려난 중·저신용자들의 수요가 2금융권인 저축은행·카드사 등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도 나타났지만 현재는 2금융권 또한 대출 관리 강화로 인해 신용대출 공급을 줄이면서 중·저신용자들의 생계 자금줄이 막히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국면이다. 이런 와중 '고신용자 위주의 대출 공급' 현상으로 인해 소위 '불장' 수혜까지도 고신용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융통 가능한 현금이 많지 않은 저신용자들의 경우 투자금인 '시드머니'를 빌려 투자에 나서는 게 이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는 현재와 같은 시기에 고신용자는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자금을 빌릴 수 있지만 저신용자들의 경우 대출 한도 등이 크게 줄었다. 특히 신용거래의 경우 고신용자 대비 제한이 커졌다. 일부 저신용자는 올 들어 신용거래 약정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한도가 매우 낮게 설정되고 있다. 증권사는 신용공여를 법적 한도에 맞추는 과정에서 대출이 많아지면 리스크가 큰 중·저신용자들의 한도부터 거절하게 되는 구조다. 대표적인 서민 급전창구인 카드론 역시 고신용자가 몰려들면서 증시 호황 국면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작년 4분기 8개 전업 카드사의 신용점수 800점 초과 고신용자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용점수 700점 이하 저신용자 카드론 취급액은 7.1% 줄었다. 중·저신용 소비자들은 '대출 양극화'도 모자라 '자산 양극화' 현상까지 키우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정책의 부작용이 중·저신용 소비자의 자산 증식의 기회나 자유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여러 영향을 꼼꼼히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소문은 떠돌고 기록은 남는다

선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떠도는 것이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 이른바 '지라시'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선거판을 돌며 누군가의 정치적 운명을 흔드는 장면은 선거철마다 반복돼 왔다. 세종 정치권에서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세종시는 더불어민주당의 강세가 두드러진 지역이었다. 세종시는 행정수도 건설을 목표로 조성된 계획도시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행정수도 완성 논의가 정치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치 지형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실제 선거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종시장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춘희 후보가 71.3%의 득표율로 당선됐고, 시의회 역시 18석 가운데 17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당시 지역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후보들의 당선 기사 틀을 미리 작성해 두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내 경선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선거를 앞두고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나 투서가 정치권 안팎을 오갔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한 인사는 결국 경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정치의 평가는 선거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인사는 이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에 당선됐다. 의정활동 이후 지역 현안을 꾸준히 챙기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존재감을 보여 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도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가 다시 돌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2018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렸던 한 시의원은 취재 과정에서 “당시에도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돌았고, 최근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정치권 주변에서 빠르게 퍼지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소문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보다 먼저 퍼지는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에서 경선은 단순한 당 내부 절차가 아니다. 시민이 선택할 후보를 가리는 중요한 민주적 과정이다. 그 과정이 근거 없는 소문에 흔들린다면 정치 경쟁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평가는 결국 기록으로 남는다. 의정활동과 정책 성과, 그리고 시민의 평가가 그것이다. 선거판을 떠도는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정치인이 남긴 기록은 오래 남는다. 선거철마다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남겨진 기록이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김은지 기자 elegance44@ekn.kr

“생선회보다 집값이 싸다?”…이상한 韓 물가지수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물가 안정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워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설탕·밀가루·계란 등 생활 필수품 담합을 단속했고 설탕업계에는 40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국세청도 물가 불안을 키운 기업 탈세를 적발했다. 그 결과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2.1%로 낮아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물가 관리가 일정 부분 효과를 낸 셈이다. 그러나 서울 시민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장바구니 부담도 여전하지만 무엇보다 주거비가 삶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 평균 가격은 이미 18억원을 넘어섰다. 영끌로 집을 산 가구는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고, 세입자는 월세 인상 통보에 한숨을 쉰다. 이렇게 집값이 올랐는데도 물가지수는 비교적 조용하다. 한국은행은 향후 물가 흐름이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괴리는 한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한국 CPI에는 전세와 월세 같은 임차비용만 포함되고 집값은 빠져 있다. 내 집에 살면서 발생하는 비용, 이른바 '자가 주거비'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값이 아무리 뛰어도 물가지수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조다. 주거비 비중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생선회보다 낮은 집값 비중'이라는 말은 한국 물가 통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전세와 월세를 합친 주거비 비중은 약 10% 수준이다. 그런데 같은 지수 안에서 생선회 외식 항목의 비중은 10.3에 달한다. 통계만 보면 한 달 생활비에서 집세보다 생선회가 더 큰 지출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많은 가구가 소득의 30~40%를 주거비로 쓰고 있다.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나 대출 이자로 내는 현실에서 집값보다 외식 메뉴의 비중이 더 크게 잡혀 있는 통계는 시민들의 체감과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다른 선택을 했다. 미국은 '자가주거비(OER)'라는 개념을 도입해 집을 빌린다면 얼마의 임대료를 낼지를 추정해 CPI에 반영한다. 그 결과 미국 물가지수에서 주거비 비중은 약 44%에 이른다. 유럽연합도 올해부터 자가 주거비를 물가지수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더 늦출 수 없다. 집값이 통계 밖에 있는 한 물가는 실제보다 낮게 보일 수밖에 없고 정책 판단도 왜곡될 수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부터 정부의 민생 정책까지 잘못된 신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월 물가대책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집값과 전·월세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지만,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집값을 물가로 볼 것인지, 언제 답을 내놓을 것인가.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자의 눈] 웹젠의 ‘이상한 전액환불’ 기준

게임사 웹젠이 최근 신작 '드래곤소드'의 과금액 전액 환불을 결정했다. 이번 전액 환불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이지 만은 않다. 불과 얼마 전, 명백한 소비자 기망 행위가 확인된 다른 게임들에서 웹젠이 보여준 소극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웹젠은 '드래곤소드'의 환불 결정에 대해 소비자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전액 환불을 개발사 '하운드13'을 헐값에 인수하기 위한 '압박 카드'가 아니냐고 의심한다. 전액 환불을 단행해 게임 매출을 '0원'으로 만들면, 퍼블리셔인 웹젠이 개발사에 지급해야 할 수익 정산금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금난을 겪는 개발사의 현금 흐름을 차단해 경영권을 헐값에 넘기도록 유도하려는 '고사 작전'의 일환이라는 의혹이다. ​반면, 웹젠의 귀책사유가 명확했던 사례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뮤 아크엔젤'이 대표적이다. 당시 웹젠은 특정 횟수까지 아이템 획득이 아예 불가능한 일명 '바닥 시스템'을 설정하고도 이를 고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했다. ​그러나 환불에는 '천장'이 있었다. 웹젠은 환불 대상을 특정 기간, 특정 상품으로 한정했고, 패키지 상품의 경우 구성품 비율을 따져 환불액을 산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 이용자가 2000만원가량을 결제했음에도, 아이템 사용 가치 등을 공제당해 약 119만원(5% 수준)만 환불받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24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한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도 마찬가지다. 웹젠은 서비스 종료가 내부적으로 확정된 시점에도 이용자 문의에 “검토 중인 사항이 없다"고 거짓 답변을 하며 아이템 판매를 지속해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소비자를 속여 판매한 기만행위가 있었음에도 당시 환불은 '사용하지 않은 유료 재화' 반환에 그쳤다. ​웹젠의 환불 정책은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기업이 경영 전략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질수 있지만 그 전략의 도구가 '소비자 환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드는 환불 기준 앞에서, 소비자는 웹젠의 '고객 보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기자의 눈] “저 믿으시죠?”…공주에서 남은 정치의 질문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저 믿으시죠." 2024년 12월 2일, 충남 공주 산성시장. 윤석열 대통령은 전통시장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은 민생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튿날 밤인 12월 3일,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시장 골목에서 “믿어달라"는 말이 나온 지 하루 남짓 지난 뒤 내려진 결정이었다. 공주 산성시장은 계엄 선포 전날 대통령이 찾은 민생 현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지금도 묘한 정치적 장면으로 기억된다. 민생의 언어와 국가 권력의 결정이 하루 남짓한 간격으로 교차한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공주는 윤석열 대통령 부친의 연고가 있는 지역이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충청의 아들'을 강조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표심 역시 분명했다. 2022년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공주에서 3만7339표를 얻어 이재명 후보(2만8472표)를 약 8800표 차로 앞섰다.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 최원철 후보가 공주시장에 당선됐다. 2022년 6월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약 2만7000여 표, 55% 안팎의 득표율이었다. 충청은 특정 정당에 고정된 지역이라기보다 선거 때마다 표심이 움직이는 지역으로 평가돼 왔다. 전국 선거에서 충청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온 이유다. 그리고 다시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당 경쟁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정체 속에서 공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함께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산성시장에는 한 문장이 남았다. “저 믿으시죠?" 정치에서 믿음은 말로 시작되지만 결과로 증명된다. 고사성어로 말하면 언행일치(言行一致),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질문은 공주시민에게 돌아왔다. 6월의 투표함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 김은지 기자 elegance44@ekn.kr

[기자의 눈] 이틀 폭락 뒤 하루 폭등…롤러코스터 탄 코스피

코스피가 사흘 사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이틀 연속 급락하더니 하루 만에 급등했다. 불과 며칠 사이 폭락과 폭등이 반복되면서 시장의 불안정한 체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코스피는 지난 3일 7.24% 하락한 데 이어 4일에도 12.06% 급락했다. 이틀 동안 낙폭만 18%를 넘어 시장에서는 “중동이 아니라 한국에서 전쟁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5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낙폭이 과도했다는 인식 속에 저가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장중 12% 넘게 반등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장세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동 리스크다. 이란 사태로 국제유가 상승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긴장 상태에 들어선 깃이다. 문제는 같은 악재 속에서도 일본이나 중국 등 주요 아시아 증시보다 한국 증시의 낙폭이 유독 컸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시장 구조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증시는 외국인 자금 의존도가 높은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반도체 대형주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반도체 대형주들이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동시에 출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 빠지면 지수 변동폭이 순식간에 커지는 구조다. 그간 가파른 상승세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코스피는 약 8개월 만에 3000선에서 6000선까지 치솟으며 주요국 증시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실물경제 회복 속도보다 시장 상승 속도가 훨씬 빨랐던 만큼 작은 악재에도 투자심리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코스피 상승 과정에서 늘어난 신용거래와 '빚투' 자금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하락장이 시작되면 레버리지 자금 청산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낙폭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급락 국면에서는 신용 반대매매 가능성이 거론되며 시장 불안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번 급락과 반등은 외부 변수에 국내 증시가 얼마나 민감하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결국 문제는 외부 충격보다 시장 체력이다. 외국인 자금 흐름과 반도체 대형주에 좌우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롤러코스터 장세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미래혁신 대신 현실안주…게임업계 ‘추억팔이’

“혁신은 어디에." 요즘 국내 게임산업을 지켜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신작보다는 이미 성공을 거둔 지식재산권(IP)을 다시 꺼내 안전하게 다듬는 전략이 게임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한 흐름이다. 추억의 게임들이 속속 복귀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넷마블은 1999년 출시돼 글로벌 이용자 2억명을 모았던 '스톤에이지'를 방치형 RPG로 재해석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리니지'의 초기 버전을 구현한 '리니지 클래식'을 선보였다. 20~30년 역사를 자랑하는 IP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의 게임이 컴백하는 배경은 명확하다.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충성고객을 확보한 IP는 출시와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담보한다. 대표 사례로 '리니지 클래식'은 출시 20일 만에 누적 매출 400억원을 돌파하며 검증된 IP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의 이런 추세는 동시에 '현재의 성적표'에 집중한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 신작들은 '검증된 IP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기존 자산의 확장에 가깝다. 3040세대의 향수와 구매력이 맞물리며 단기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앞으로 게임산업의 주력 소비층이 될 1020세대까지 사로잡을 지속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겉으로는 일부 흥행작 덕에 업계가 호황인 듯 보이지만 구조적 경고음은 이미 울리고 있다. 국내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를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최근에는 50% 초반까지 떨어졌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대체 콘텐츠가 급부상하며 여가 소비 지형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더 이상 독보적 플랫폼이 아닌 시대에 '새로움' 없는 반복전략이 장기적으로 통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기업들의 현실적 고민도 이해된다. 이용자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개발 비용은 급증했다. 웬만한 대작 게임 하나에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시대다. 실패의 부담이 큰 만큼 검증된 IP에 의존하려는 선택은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산업이 그렇듯 혁신 없는 안정은 결국 정체로 이어진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때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한국 게임산업의 혁신을 상징했다. 그 도전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놀라게 했다. 지금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다. '추억 팔이'에 나선 산업은 성장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새로운 '빅게임'의 등장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이재명 정부의 리스크 ‘대정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 상승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0%에는 못 미치지만 57.1%(리얼미터 2월 4주차 조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 정권 초반이다. 지지율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리스크는 '대정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몇 시간 불이 꺼지는 정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2011년 9·15 정전사태' 그 이상의 대정전을 말한다. 광역도 단위의 대정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핵심시설, 국민 안전, 산업 생산을 동시에 위협한다.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 다수가 AI, 데이터센터, 반도체처럼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산업군이다. 대정전은 시장에도 큰 리스크다. 이란 공습 등으로 중동발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까지 커진 상황에서 충격은 배가 될 수 있다. 최근 전력당국의 태도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보수적이고 신중하던 관계자들이 공개 세미나에서 전망 차원이 아니라 직접 대정전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다. 매년이 고비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라면 현장의 긴장감은 상당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배경에는 급증한 태양광 설비가 있다. 태양광은 5년 전인 2021년 3월 15.7기가와트(GW)에서 이달 31.4GW로 두 배로 확대됐다. 매년 원전 3~4기 규모가 늘어난 셈이다. 설날 연휴인 지난달 17일 오후 1시 태양광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4%까지 치솟았지만 일주일 뒤 비가 내리자 같은 시간 2.5%로 급락했다. 며칠 사이 비중이 2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급격한 출력 변화는 전력망을 뒤흔든다. 지난해 4월 스페인 대정전 사례처럼 순간 과출력이 통제되지 못하면 국가 단위 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호남·영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망이 과부하로 끊길 경우 충청권을 포함한 수도권 전역에 대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햇빛소득마을'을 중심으로 태양광 확대 정책을 강조해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의 한축이지만 보완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대정전은 이란 공습 같은 대외 변수와 달리 정부가 더 주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위험이다. 태양광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지난달 27일 이례적으로 전력거래소를 직접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실시간 가격 신호를 반영하는 전력시장 개편, 전력망 안정화 투자 등 대책이 더욱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소리다. 대정전은 단 하루의 방심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 날이 오지 않도록 이제는 개혁을 더 미룰 수 없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고령운전자 시대, 제도 정비 서둘러야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년층 운전자의 안전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도로 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으며, 심지어 세대간 갈등으로 깊어지는 양상이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사고율이 높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최근 통계와 사례를 종합해 보면 고령층의 사고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4년 4만2369건으로 36.4%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전체 교통사고 수치는 20만 9654건에서 19만 6349건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게다가 고령세대에서 신차 등록대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60대와 70대의 신차 등록대수는 각각 20만4294대, 5만861대로, 전체 판매대수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각각 18.5%, 4.6%로 집계됐다. 60대의 신차 등록 점유율은 10년 전인 2016년 9.6%에 불과했지만 매년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에는 2배 가까운 18.5%까지 뛰어올랐다. 2016년 2.8%였던 70대의 신차 등록 점유율도 매년 증가해 작년에는 4%대 중반을 기록했다. 이처럼 고령운전자 수와 운행 차량이 동시에 늘면서 사고 관련 우려와 사회적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정 나이가 되면 운전면허를 의무적으로 반납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거론되고 있지만 고령층의 이동권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고령자 운전사고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령운전자들의 사고 발생빈도가 높은 주요 원인으로 신체능력 저하에 따른 순발력 감소와 시야 축소, 인지능력 저하 등을 꼽는다. 하지만 고령자 운전사고는 지금의 젊은세대도 미래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해당한다. 또한, 고령운전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사안도 아니다. 고령운전자 증가를 막을 수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제도적·기술적 장치를 마련해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 면허 갱신 주기 단축, 적성검사 강화, 운전 능력 평가의 실효성 제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의무화 등 보다 촘촘한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고령 운전자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안전을 전제로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세대 갈등을 키우기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할 때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기자의 눈] 차액가맹금 분쟁, 프랜차이즈산업 성장 자양분 되길

프랜차이즈 산업의 수익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초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한국피자헛의 차액가맹금 반환 소송 여파다. 대법원은 지난 1월 가맹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차액가맹금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며 한국피자헛에 215억원을 반환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 이후 많은 로펌들이 가맹점 집단소송 전담팀을 꾸리면서, 업계에서는 줄소송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가맹 본사와 점주 간 갈등이 큰 시국이지만, 놀랍게도(?) 프랜차이즈(franchise)의 어원은 '자유'와 '특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특정 구역 안에서 본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규모의 경제'에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대량구매를 통해 원자재 매입 단가를 낮추고, 가맹점주에게 원자재를 시중가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만약 가맹점에 시중가보다 비싸게 공급해서 차액가맹금을 많이 수취한다면 이는 프랜차이즈의 본질인 '규모의 경제'에 역행하는 것이다. 가맹점에 납품하는 상품, 원부재료 등에 마진을 추가로 얹는 차액가맹금 논쟁이 답답하기만 한 이유다. 본사만 탓하는 것은 아니다. 본사의 정책이 점주 본인 마음에 안 든다며 재료를 마음대로 사입해 쓰거나, 이익을 좀 더 내보겠다고 본사가 제시한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명백히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그런 일탈 행위는 다른 점주들에게도 해가 된다. 맥도날드는 맥도날드 형제가 창업했지만 맥도날드의 세계화를 이끈 것은 프랜차이즈 권리를 사들인 레이 크록(Ray Kroc)이었다. 그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영감을 얻은 '햄버거 생산 라인'과 함께 어느 지점에서도 반드시 정확하게 똑같은 음식을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제공하는 '표준화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통상 한 끼를 위해 드는 금액의 절반 가격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본사와 점주가 상생할 때 소비자도 그 과실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가 하나의 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가 발족한 것도 1998년의 일이다. 지금 업계에 위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 시기가 산업을 더 견고하게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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