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열려도 ‘고유가 뉴노멀’…에너지정책 대변화 예고

중동 전쟁이 4월을 넘지 않는다 해도 국제유가는 2분기에 평균 배럴당 110달러 이상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중단 사태가 회복하려면 최소 몇주에서 연말까지 소요되고,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세 징수를 주장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도 전쟁 전 수준의 유가는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유가 체제를 전제로 에너지 정책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고, 발전 믹스에서는 LNG를 줄이면서 원자력과 석탄 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조기 퇴출을 위해 재생에너지, 전기차 중심의 에너지전환에 강하게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LNG 발전 비중이 줄게 되면 재생에너지까지 영향을 받게 되고, 고유가는 재생에너지 생산단가를 높이기 때문에 에너지전환 정책에서 에너지안보와 비용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동 원유 생산 중단량 일 910만배럴, 회복 몇주에서 연말까지 소요 8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을 비롯한 국내외 관련 기관들에 따르면 이번 전쟁이 4월에 종료되더라도 브렌트유 가격은 2분기 평균 배럴당 115달러, 4분기에도 90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에도 초반기에는 80달러를 넘었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60달러 중반대로 수렴돼 연평균으로는 70달러 중반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일일 약 91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 차질이 발생한 상태다. 이는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9% 수준이다. 생산 및 수출 정상화에는 나라 사정에 따라 최소 몇 주에서 길게는 연말까지 소요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천연가스 시장 역시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카타르 국영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의 약 17%가량이 이란군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어 완전 정상화까지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카타르는 미국, 호주에 이어 세계 3위 LNG 수출국이다. 이는 글로벌 LNG 공급 여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LNG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전력시장과 산업 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해 일종의 통행세를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해협이 자기네 영해라며 배럴당 1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VLCC급은 원유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데, 배럴당 1달러 통행세를 내게되면 200만달러(약 28억원)를 내야 한다. LNG 선박에도 같은 수준의 통행세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유가 및 가스 가격은 단기적인 급등에 이어 중장기적으로도 높은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분간 석유 최고가격제 유지…LNG 발전 줄이고, 원전·석탄으로 대체 전쟁이 끝나더라도 2분기까지는 높은 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물가 안정을 위해 3월 13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시아의 석유가격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제품가격을 국내 시장에 반영하면 휘발유는 약 2000원, 경유는 약 3000원 수준이다. 차량 운행이 늘어나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어 타이트한 연료 수급으로 인해 가격은 좀처럼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LNG 가격도 높게 형성됨에 따라 발전 믹스에서 LNG 비중이 줄고, 원자력과 석탄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동북아 LNG 현물가격은 MMBtu당 19.8달러로 전쟁 전의 10달러보다 98%나 오른 상태다. 북반구 여름철 냉방전력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가격은 더 오르고, 이상고온까지 겹치게 되면 가격 폭등도 올 수 있다. 당장 재생에너지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정부로선 원전과 석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화석연료 줄이고,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전환 가속 이재명 정부는 이번 중동 사태를 계기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입장이다. 우선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정책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주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햇빛소득마을 정책사업도 기존 목표인 올해 500개, 2030년까지 2500개 구축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나라 행정리가 3만8000개인데 왜 2500개만 하는 것이냐"며 늘릴 것을 주문했다. 또한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방 우대, 경찰차·택시·렌터카·법인차 등 전기차 전환, 충전시설 보급 속도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환 장관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2030년 신차의 40%를 전기 및 수소차로 전환하는 등 모든 동력원의 전기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중동 사태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전력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 환경에서는 연료비 영향을 받지 않는 원전과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낮은 석탄이 전력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정부 역시 LNG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원전 이용률을 높이고, 2040년 석탄발전 60기 폐쇄를 유지하면서 폐쇄 집중도를 후반부로 늦출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LNG 발전 비중이 줄게 되면 재생에너지 보급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태양광은 햇볕에 따라 하루 3~4시간만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몰 시간대에는 이를 보완해 줄 발전원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2~3차례 발전기 가동을 번복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현재로선 LNG가 유일하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완 수단으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를 제시하고 있지만, 비용과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다. 에너지산업 컨설팅업체인 C2S컨설팅의 최승신 대표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핵심 원자재 공급망이나 설비 구축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전력 수급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태양광과 풍력 역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과 소재에 기반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원전, 재생에너지, 화석연료를 포함한 균형 있는 에너지 믹스를 유지하는 것이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보다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유가 전제로 설계된 에너지전환 유지 어려워…현실 기반 전환 요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정책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정책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에너지안보와 비용 문제가 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전과 같은 저유가 환경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에너지 정책도 이러한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저유가 시대를 전제로 설계된 에너지 전환 정책은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며 “이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그리고 비용이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현실 기반 정책'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자원 안보 시대, 한국과 캐나다의 전략적 연결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에너지 질서는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화석연료가 재부상하고,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전력 수요 확대가 촉발된 것에 더해, 에너지 및 자원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마저 높아지면서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인식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저탄소 에너지원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환경적 차원을 넘어서서 디지털 혁명과 맞물리며 산업 정책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제 전쟁 국면으로 인해 에너지 안보와도 결합하였다. 이는 한국과 같은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국가에게는 미래 산업 전략과 직결되는 사안이자,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 속에서 경제 안보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이 있다. 지난 3월 27~28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린 한국-캐나다 포럼에서 필자는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디지털 산업까지—거의 모든 미래 산업은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과 같은 핵심광물에 의존한다. 핵심광물은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다. 공급망을 통제함으로써 산업을 좌우할 수 있는 '지정학적 자산'이다. 한국의 현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제시하는 한국의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2024년 기준으로 약 226조 원, 광물 수입은 약 33조 원으로, 이를 합치면 약 260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전체 수입액의 약 30%에 해당한다. 호르무즈 사태가 불러온 나비효과를 떠올리면, 석유·가스보다 더 지역 편중이 심한 핵심광물 공급 구조는 훨씬 더 큰 경각심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코발트 생산은 콩고민주공화국(DRC)에 집중되어 있으며, 니켈은 인도네시아, 리튬은 호주와 남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핵심광물의 정제·가공은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데,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흑연 하나만 보더라도 98%가 중국에서 가공된다. 이러한 구조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울 수밖에 없다. 중동에서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에너지 가격이 흔들리는 것처럼, 핵심광물 역시 언제든지 자원 안보를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에너지 안보와 자원 안보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 본질은 결국 지정학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원 빈국이자 섬과 같은 지리적 구조에 처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분명하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캐나다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는 단순한 자원 공급국이 아니다. '신뢰 가능한 공급망'을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캐나다는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등 다양한 핵심광물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다. 동시에 G7 국가로서 안정적인 제도와 높은 환경·사회 기준을 갖춘 국가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배터리, 전기차, 소재 가공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즉, 양국은 구조적으로 보완적인 관계다. 한쪽은 자원과 생산 생태계를, 다른 한쪽은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조합은 단순한 교역 관계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더 중요한 점은 지정학적 환경이다. 한국과 캐나다는 서로 간의 국제정치적 갈등이 발생하기 힘든 거리로 떨어져 있지만, 열린 바다인 북태평양을 통해 교역이 이루어지므로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주요 초크포인트(chokepoint)가 부재하다는 이점이 있다. 이미 한국과 캐나다 관계는 2022년 이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양국 간 협력은 더욱 견고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과 캐나다 간에는 단순 에너지 및 자원 교역을 넘어 공동 투자로 전환하여 이익 배분 구조를 제도화하고, 배터리와 전기차를 중심으로 밸류체인을 통합하며, 이를 뒷받침할 금융을 포함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는 동시에 자원 안보의 시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국과 캐나다 간 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이 재확인되고 있다. ekn@ekn.kr

시민단체, 중동 위기 극복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제안

중동 전쟁 발발로 에너지 수급 위기가 커지자 대중교통을 한시적으로 무료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전국 210여개 환경·시민단체로 구성된 에너지시민연대는 지난 7일 대표자회의를 열고 특별결의를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공공기관 차량 2부제에 시민들의 자발전 참여 독려와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정책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8일부터 공공기관에는 차량 2부제를 민간에는 공영주차장 5부제를 실시한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차량 2부제 및 5부제 시행에 따라 시민들의 불편을 완화하기 위해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지난달 29일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및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에 출퇴근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지원 사업을 포함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기업들과 지역 단위 에너지절약 실천 및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미 EIA “호르무즈 열려도 유가 90달러 이상”…중동 원유 생산 중단량 910만배럴/일

중동 전쟁이 4월에 끝난다고 해도 국제유가는 2분기에 배럴당 115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서서히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등 중동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이 상당히 감소한 상태여서 이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4월 단기에너지전망 보고서에서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중동 원유 생산시설이 피격을 당하면서 생산량이 줄고, 석유저장시설이 빠르게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은 3월에 하루당 총 750만배럴의 원유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추산되며, 4월에는 생산 중단량이 910만배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쟁이 4월에 중단되고, 유전에 대한 추가 피격이 없다면 생산 중단량은 5월에 670만배럴로 감소하고, 연말에는 전쟁 이전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브렌트유 현물 가격이 3월에 배럴당 평균 103달러를 기록했으며, 올 2분기에 배럴당 115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중동의 생산 중단이 서서히 완화됨에 따라 4분기에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떨어지고 2027년에는 평균 7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브렌트유와 WTI 간의 가격 차이(스프레드)는 중동 분쟁으로 인해 브렌트유 현물가격이 WTI 현물가격보다 높아지면서 3월 평균 배럴당 12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현물가격 상승폭은 높은 운송비와 중동과 아시아 주요 소비 시장 간 원유 흐름 감소의 ​​영향으로 WTI 현물가격보다 더 컸다. 보고서는 브렌트유-WTI 스프레드가 생산 차질이 가장 큰 4월에 배럴당 15달러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재개되고 유가가 하락함에 따라 브렌트유-WTI 스프레드는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LNG 수출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량 감소로 전 세계 LNG 공급량이 줄었고, 미국 헨리허브 현물 가격과 유럽 및 아시아 수입가격 간의 스프레드가 급격히 확대됐다. 미국 LNG 수출 시설은 거의 최대 가동률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3월에 하루 약 180억입방피트의 천연가스를 수출해 2025년 12월에 세운 기록에 근접했다. 높은 가동률로 인해 수출량을 늘릴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수출량 증가 여지는 미뤄진 유지보수, 신규 프로젝트 증설 속도, 그리고 최근 체결된 수출 허가 계약에 달려 있다. 미국의 천연가스 재고량은 5년 평균보다 3% 높은 1조9000억입방피트(Bcf)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천연가스 생산량 증가와 수출량 증대 여력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천연가스 저장량 증가는 5년 평균을 상회해 10월 말 기준 4조1500만입방피트(Bcf)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5년 평균보다 6% 높은 수치이다. 미국의 소매 휘발유 가격은 4월에 월평균 갤런당 약 4.30달러(리터당 약 1703원)까지 오른 뒤 올해 평균 3.70달러(약 1466원)가량으로 예상된다. 경유 가격은 4월에 갤런당 5.80달러(약 2296원) 이상으로 정점을 찍고 2026년에는 평균 4.80달러(약 1904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1갤런은 3.78541 리터이다. 미국의 전력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상업 부문이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력 수요는 냉방 수요 증가로 인해 여름철(6월~9월)에 정점을 찍고, 올여름 주거 및 상업 부문의 전력 수요는 작년 여름 대비 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업 부문의 성장률은 2027년 여름에 6%에 달해 주거 부문의 1% 성장률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나프타 공급 대란…“국내 생산 ‘재생 나프타’ 활용방안 강구해야”

중동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폐플라스틱·폐비닐을 오염물질 배출 없이 분해해 나프타 수준의 재생유로 만드는 세계 최초의 국산 기술이 정치권에서 거론돼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국내 한 재생유 생산업체의 신기술을 소개하며 활용 방안을 강구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 질의에서 박 의원은 “지난해 가을 전북 정읍에 있는 한 회사를 방문했는데 세라믹 파동 기법을 사용해 폐플라스틱·폐비닐로 나프타(나프타급 재생원료)를 생산하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는 현장을 직접 봤다"고 소개했다. 박 의원이 소개한 회사는 지난해 11월 정읍에 세계 최초로 폐비닐·폐플라스틱 저온열분해 시설 '웨이브 정읍'을 준공한 도시유전이다. 이 시설은 도시유전이 30여년간 독자 개발한 'RGO 기술'을 적용한 시설로, 세라믹에서 방출되는 파동에너지를 이용해 저온에서 폐비닐·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플라스틱의 고분자 결합구조만을 끊어냄으로써 플라스틱의 최초 원료인 나프타 또는 경질유 수준의 원료유로 복원시키는 세계 유일의 촉매 기반 열분해 시설이다. 이 시설에서는 농가에서 발생하는 영농폐비닐을 비롯한 연간 6500톤의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처리해 최대 4550톤(약 540만 리터)의 플라스틱 재생원료유를 생산할 수 있다. 무게 기준으로 약 70%의 수율을 가진다. 소각 없이 저온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온실가스는 물론 다이옥신 등 일체의 오염물질 배출이 없다. 이 시설에서 생산되는 재생유는 총 3개 등급으로, 1급 재생유(RGO-1)는 NCC(나프타 크래킹 공정) 라인에 직접 투입이 가능해 PE, PP, PET 등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 2급 재생유(RGO-2) 및 3급 재생유(RGO-3) 역시 기존 열분해 기술로 생산하는 재생유인 '중질유'보다 품질이 우수하다. 이 기술의 중요성은 국내보다 해외 기업들이 먼저 알아봤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재생원료는 해외 수출될 예정이며 이미 독일의 굴지의 화학기업인 B사는 이곳에서 생산된 재생유 샘플을 자국 본사에서 테스트 중이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계약 추진을 통해 국내 NCC 라인에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이다. 이날 대정부 질의에서 박 의원은 “온실가스 발생 없이도 나프타(나프타급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신기술을 개발했는데도 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는가 배경을 알아보니 친환경 에너지 생산시설인데도 폐기물 재활용 시설로 분류되는 바람에 인허가 절차도 까다롭고, 운송용으로는 사용을 못하는 등 법적 제약이 있어서 성장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총리는 “(이 기술을 활용하려 해도) 원료인 폐플라스틱을 처리하는 기존 규정이 아직 정비가 안된 것이 있어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도시유전 관계자는 “국내 재생연료 정책은 중유와 디젤 수준에 머물러 있고 고급유 재생원료는 '사용 허용' 수준에 그치고 있어 의무사용이나 혼합비율, 스코프3(Scope3) 인정체계 등이 부족하다"며 “재생유를 연료용, 일반 원료용, 나프타급 고품질 원료 등으로 구분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단계적 의무사용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국힘 “재생에너지 일변도, ‘하늘의 호르무즈’ 자초”…원전 중심 에너지믹스 촉구

국민의힘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강하게 비판하며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믹스 복원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박충권 원내수석대변인은 7일 논평을 통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발표한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겨냥해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 축인 원자력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며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에 치우친 균형감각 상실"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특히 최근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공급망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도 원전 활용 방안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기후 여건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에너지 전환이 어렵다"며 “장마, 풍량 감소 등 기후 변동성이 큰 국내 환경에서는 전력 공백, 이른바 '하늘의 호르무즈'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전력망 안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며 “원전은 연료 비축이 가능하고 공급망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위기 상황에서도 에너지 안보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박 대변인은 정부가 추진 중인 '햇빛·바람 연금' 구상에 대해 “대다수 국민의 부담으로 일부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라며 “태양광과 풍력 핵심 부품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 인상 압력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AI·반도체 산업은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라며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는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정부를 향해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무탄소 기저전원인 원전을 중심으로 한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에너지믹스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후에너지단상] 끝날 기미 없는 중동위기, 대국민 담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에너지 주무장관이 대국민 담화를 한 건 역사상 두 번뿐이다. 제4차 중동전쟁 발발로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3년 11월 23일, 당시 김용환 재무장관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위기상황을 공식화하고 국민 절약을 호소했다. 석유파동은 이후 1978년 에너지 전담부처인 동력자원부 신설로 이어졌다. 또 한 번은 2011년 1월 12일 겨울철 전력수요가 급증하자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전력수급 위기를 우려하며 절약을 요청했다. 같은 해 9월 15일에는 실제로 전국 단위의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며 경고가 현실이 됐다. 중동 전쟁은 이 두 사례와 비교해 결코 가볍지 않다. 2월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지금까지 한달 이상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돼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가스의 20~25%가 공급되는 핵심 통로이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7일 기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113달러, 유럽 브렌트유는 110달러를 기록했다. 전쟁 전 60달러 후반 수준과 비교하면 60% 이상 급등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전쟁이 더 길어질 경우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도 전쟁이 장기화될 시에는 물론이고 조기 종료된다 하더라도 유가는 90달러 이상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석유제품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7일 기준 국내 휘발유는 1964원, 경유는 1955원 수준이지만, 국제 가격을 국내 시장에 반영하면 휘발유는 리터당 2200원, 경유는 3500원 수준이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는 전쟁 전 톤당 570달러에서 현재는 990달러로 올랐으며, 수급 차질로 여천NCC 등 일부 석유화학사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이로 인해 쓰레기종량봉투 등 일부 비닐, 플라스틱 제품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에너지 수급 위기는 이전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 비해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일 자원안보특별법에 근거해 두 번째로 높은 '경계' 단계의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사상 처음으로 발령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공공부문 차량 2부제, 민간 공영주차장 5부제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또한 12가지 에너지 절약 방안을 발표하고 기업에도 에너지 절감을 요청하고 있다. 산업부는 홍해지역에 호르무즈를 대체할 경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책들이 강제가 아닌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어 실제 에너지 절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절감에 나서게 하려면 정부의 에너지 총괄자가 대국민 호소라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 주무부처는 기후부와 산업부로 나뉘어 있다. 기후부는 전력과 에너지 효율 및 수요 관리를 맡고 있고, 산업부는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수급을 담당하고 있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산업부가 발령하고 에너지전환과 절약 정책은 기후부가 주로 발표하는 구조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기후부와 산업부가 에너지를 쪼개서 맡고 있어 이번 중동사태 대응에 있어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며 “두 부처가 하나의 부처처럼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단순한 절약 권고를 넘어 국민에게 상황을 명확히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단계다. 한두 달만 지나면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는 여름이 시작된다. 과거처럼 위기를 공식화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대국민 담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날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서울정부청사로 지하철로 출근하며 에너지 절약에 국민들이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제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함께 보다 분명한 메시지로 국민 앞에 나설 때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고유가 시대, 석유제품 가격 안정화·비용 절감을 위한 대책 시급

최근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등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뒤 100달러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중동지역 군사·정세 불안이 원유 공급망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면서, 원유 선박 운항 차질과 일부 산유국의 감산 움직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번 국제유가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에 있다. 이 같은 국제유가 급등은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도 빠르게 전이됐다. 올해 3월 들어 국내 주유소 기준 휘발유 가격은 한 달 사이 1,700원대 초반에서 2,000원을 눈앞에 두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가계 및 화물·운송업계의 교통비, 물류비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가 국내 경제와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히 크다. 유가 10% 상승 시 한국의 수출이 약 0.39% 감소할 수 있다는 한국 무역협회의 보도처럼 우리 경제는 원자재·에너지 수입 의존형 구조이다. 특히, 중소·중견 제조기업은 유가 상승시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의 부담을 동시에 겪으며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채산성이 악화될 개연성이 크다. 가계 측면에서는 자가용 운행비, 버스·택시 등 운송 관련 비용이 증가해 실질 구매력이 하락한다. 또한, 유가 급등은 국내 자본시장에까지 파급된다. 과거 고유가 국면에서 국내 증시가 크게 하락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8년을 들 수 있다. 2008년 상반기 국제유가는 WTI 기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뒤 7월 최고 147달러 수준까지 급등하며, 국내 원유 수입 가격과 운송비·물류비가 크게 상승했다. 해당 과정에서 코스피는 1년간 약 40% 이상 하락하는 등 전방위적인 약세를 겪었다. 특히, 2008년 5월 고유가 국면에서는 '고유가의 늪'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증시가 연속 하락을 이어갔다. 학술연구에 따르면, 국제유가 급등기에는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운송업 중심의 주가 수익률이 둔화되며 코스피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실증분석도 보고된 바 있다. 이로써, 정부의 시의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유류세를 자동 조정하는 '국제유가 연동 유류세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처럼 정부의 개별 연장·확대가 아니라, 고유가 구간(예: 배럴당 90·100달러 통과 시)을 기준으로 유류세 인하 폭과 기간이 사전에 조정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고유가를 에너지 구조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즉, 전기·수소차 보급과 충전 인프라 확장, 대중교통 요금 안정화 및 서비스 확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전기·수소차의 구매보조금 지원과 자동차세 감면을 고유가 기간에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수도권·광역시를 중심으로 버스·철도 요금을 유가 상승 구간에 동결 또는 인하해 자가용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셋째, 국내 석유제품 안정화를 위해서 원유의 공급원 다변화와 비축 체계의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중동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북미·중남미·아프리카 등 산유국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확대하고, 해외 석유개발사업·전략비축유 공동 비축 프로젝트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전략비축유의 규모를 확대할 뿐 아니라, 국제유가 구간에 따라 방출량·시기를 사전에 공개하는 '단계별 비축유 방출 로드맵'을 구체화해야 한다. 넷째, '포괄적 보조금' 중심에서 벗어나, 고유가 충격의 직접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화물·택배·버스·택시 업계의 유가 연동 보조금, 중소기업의 에너지 효율화 설비구축을 지원하는 대출 등 분야별로 보조금 지급 기준과 기간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최근 국제유가 급등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1,900원대 수준으로 밀어 올리며 가계 부담과 제조·운송업의 수익성에 커다란 압박을 주고 있다. 이는 금융시장 변동성과 수출 경쟁력 약화를 동반하는 구조적 위기 요인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 유류세 인하, 석유 가격 상한제에 그치지 말고, 국제유가 연동 유류세 체계 도입, 전기·수소차 확충, 원유 공급원 다변화와 전략비축유 방출 로드맵 구체화, 그리고 화물·택배·버스·택시와 중소기업 중심의 맞춤형 보조·금융 지원 체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ekn@ekn.co.kr

ESG 공시 의무화 충돌…“글로벌 기준에 맞춰” vs “기업 부담 적게”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제도 설계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이해관계자 간 논란이 뜨겁다. '글로벌 정합성 확보'와 '기업 부담 완화'라는 두 축 사이에서 정책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ESG 공시 제도는 지난 2월 26일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의결하면서 본격적인 틀이 마련됐다. 기준은 일반 공시를 다루는 '제1호'와 기후 관련 공시를 담은 '제2호'로 구성되는데, 특히 기후 관련 정보는 의무 적용 대상이다. 반면 기타 ESG 요소는 자율 공시로 설계됐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하루 전인 2월 25일 단계적 의무화 로드맵 초안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ESG 공시는 2028년부터 자산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시작되고, 2029년에는 자산 10조 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가치사슬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인 '스코프 3(Scope 3)' 공시는 기업 부담을 고려해 2031년으로 3년 유예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러한 '점진적 도입' 전략은 발표 직후부터 투자자, 기업, 시민사회 간 첨예한 논쟁을 촉발했다. ◇쟁점 1: 공시 대상과 시기…“너무 늦고 좁다" vs “현실 무시" 가장 큰 논란은 공시 대상 범위와 도입 시점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달 30일 서원주 기금이사 명의 의견서를 통해 금융위 안이 “장기 투자자 관점에서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공시 의무화 기준을 자산 30조 원 이상으로 할 경우 약 58개 기업만 포함하고, 더욱이 그중 상당수가 금융기관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제조업 등 실질적 전환 리스크를 지닌 기업이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시 대상을 자산 2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시행 시기도 2027년으로 앞당길 것을 요구했다. 반면 재계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이 ESG 전담 인력 없이 기존 업무와 병행하는 '겸직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한경협 측은 “전문 인력 확보와 데이터 체계 구축이 선행되지 않으면 제도는 형식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쟁점은 결국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조기 도입"과 “기업 생존을 고려한 속도 조절" 사이의 충돌로 요약된다. 현재 로드맵 기준으로 한국의 ESG 공시 도입 시기는 주요국 대비 2~3년 늦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4년부터 시행 중이고, 일본·중국 등도 2026년 전후로 의무화를 시작한다. 특히 공시 확대 완료 시점 역시 한국은 2033년으로 예상돼 글로벌 흐름보다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정보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자본 이탈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쟁점 2: 스코프 3 공시…유예 기간을 둘러싼 격돌 스코프 3 공시를 3년 유예한 방안도 핵심 논쟁 대상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플랜1.5 등 시민사회는 국제 기준과의 괴리를 문제 삼는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1년 유예를 권고하고, 주요국이 2030년 이전에 공시를 완료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2031년으로 늦추는 것은 국제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업들은 현실적 한계를 강조한다. 스코프 3는 협력사 데이터를 포함해야 하는데, 중소 협력사의 측정 역량 부족, 데이터 신뢰성 문제, 막대한 비용 부담, 그리고 영업비밀 유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법적 책임이 수반될 경우 '그린워싱' 논란까지 겹쳐 리스크가 확대된다는 점이 핵심 우려다. 이 논쟁은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의 완결성"과 “조기 공개 필요성"이라는 상반된 입장이 낳은 갈등을 반영한다. ◇쟁점 3: 공시 방식…거래소 vs 법정 공시 공시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초기에는 부담이 적은 '거래소 공시'로 시작한 뒤 점진적으로 법정 공시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회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도 김포시을)은 지난달 30일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법률안을 통해 처음부터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는 '법정 공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지속가능성 공시가 돼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대신 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 도입을 제안했다. 이는 고의가 아닌 오류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일정 기간 면제하는 장치로, 불확실성이 큰 ESG 데이터 공시의 현실을 반영한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 쟁점은 “신뢰성 확보"와 “법적 리스크 완화" 사이의 균형 문제로 귀결된다. ◇데이터 부족엔 비례성 메커니즘 활용을 전문가들은 향후 정책 방향으로 세 가지 축을 제시한다. 첫째, 국제적 정합성 확보다. 지현영 변호사 등은 “글로벌 투자자 신뢰 확보를 위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공시 체계를 조속히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지표를 공시에 포함하고 법정 공시 전환 시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둘째, 인프라 구축이다. 전문가들은 제3자 인증 의무화와 함께 중소 협력사까지 활용 가능한 공공 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한다. 이는 스코프 3 공시의 실효성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셋째, 실무적 유연성이다. 정량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경우, 가정과 방법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공시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정량적 데이터가 없을 때는 정성적 설명을 허용하는 '비례성 메커니즘' 활용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비례성 메커니즘'은 기업이 공시 의무를 이행할 때 자사의 상황과 역량에 맞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 주는 원칙을 말한다. '과도한 원가나 노력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뒷받침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 한국이 2028년을 ESG 공시 의무화 시점으로 설정한 데에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등 EU의 역외 규제 영향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U가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ESG 정보 공개를 요구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수출과 투자 유치를 위해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기업 부담과 준비 수준을 고려해 시기를 조정한 측면이 있어, 단순히 외부 압력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기보다 대응과 완충을 병행한 절충적 결정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의무화는 외부 규제 대응 성격과 내부 수용성 고려가 결합된 정책으로 평가된다. 어쨌든 국내 ESG 공시 의무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도입할 것인가에 있다. 투자자들은 빠른 도입과 정보 신뢰성을 요구하고, 기업은 현실적인 준비 기간과 부담 완화를 호소한다. 결국 해법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라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확보 △데이터 인프라 구축 △법적 리스크 완화 장치 마련이라는 세 요소를 동시에 충족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에 달려 있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말 확정할 최종 로드맵에서 어떤 균형점을 제시할지, 그 결정이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12차 전기본 중대변수 발생…‘에너지안보’ 강화 전망

중동 정세 악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방향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10월 출범부터 줄곧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보다 공격적인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를 추진하고 있다. 6일 국무회의에서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 발표를 통해 화석연료 의존 탈피를 재차 선언했지만, 전력 수급을 둘러싼 현실은 이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기후부는 올해까지 확정을 목표로 12차 전기본을 마련 중이다. 기존까지 예상됐던 12차 전기본은 기후부가 선언한 2030년 재생에너지 100기가와트(GW) 확대, 신규 원전 2기와 SMR 1기 추가, 석탄발전 폐쇄를 반영해 2030년 전력믹스는 원전 약 229TWh(33.5%), 재생에너지 약 140TWh(20.5%), LNG 약 185TWh(27%) 수준으로 증가하는 반면, 석탄은 약 89TWh(13%)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중동 전쟁 장기화로 석유, 가스 수급 위기가 커지면서 12차 전기본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업계와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일례로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려면 간헐성 문제를 보완해 줄 LNG 발전도 늘어나야 한다. 반대로 LNG 가격이 크게 올라 LNG 발전 증가가 어렵게 되면, 재생에너지 보급도 영향을 받게 된다. LNG 가격은 대체적으로 국제유가와 연동되는데, 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60달러대에서 현재 110달러대로 오른 상태이며,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행세 등으로 고유가가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차 전기본 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유지하되, 실제 전원 구성에서는 보완이 불가피하다는 내부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와 계통 수용성 문제, 그리고 최근 중동발 에너지 가격 불안이 겹치면서 안정적 전원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다. 우선 전력 단가가 가장 저렴한 원전의 역할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차 전기본에는 11차에 반영됐던 신규 대형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실증로)가 그대로 반영되고, 이와 함께 전기요금 안정 차원에서 발전단가를 낮추기 위해 기존 원전의 가동률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월 기준 한전의 발전연료원별 정산단가는 kWh당 원전 92원, 태양광 101원, 풍력 106원, 연료전지 107원, 수력 126원, 바이오 133원, 유연탄 133원, LNG 152원, 양수 199원, 무연탄 225원, 유류 532원으로, 평균은 108원이다. 에너지안보를 고려해 석탄발전 폐쇄 정책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후부의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 발표 자료를 보면 “현재 운영 중인 석탄발전소 60기를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이행안(로드맵)을 마련한다"면서도 “2040년 이후에도 수명이 잔존하는 21기는 안보 전원으로의 활용 등 전환비용을 최소화하는 폐지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너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기후부로서는 전력 공급이 가장 안정적인 석탄발전 폐쇄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2차 전기본에서 가장 큰 쟁점은 LNG 발전이다. 석탄발전이 줄고 경직성 전원인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늘어나면 전력수급의 유연성 전원은 LNG 외엔 대안이 없다. 에너지저장장치인 배터리와 양수발전도 있지만 배터리는 높은 가격, 양수발전은 공간제약과 민원으로 구축에 제한적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보완 발전원인 LNG 발전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중동 사태로 유가와 LNG 현물가격이 구조적으로 오른다면 LNG 발전 확대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LNG 발전 확대가 어렵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중동 사태의 영향을 받는 LNG 발전은 12차 전기본 수립 마지막까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상당히 유동적이어서 민간 발전사업자들의 투자 판단 역시 어려워지고 있다. 12차 전기본 논의 과정에서 정책 결정 구조 역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 기조가 위원회 구성과 논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며, 동시에 정부가 별도의 전력시장 제도 개선 논의를 병행하는 '투트랙'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력 믹스뿐 아니라 시장 구조까지 함께 개편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책 방향의 일관성과 현실 반영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번 12차 전기본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안보' 간 균형이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전기요금을 일정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까지 추진하려면 원전과 석탄 등 안정적 전원을 동시에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에너지안보 자원을 급격히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 정책과 전력 수급 운영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 중심 구조로의 전환은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방향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전력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전원 구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책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이 맞지만, 지금 당장 전력계통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원전과 석탄 없이 버티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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