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열린 '북극항로와 자원안보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문명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며, 북극항로를 중심축으로 한 국가전략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이 전 총장은 발표 서두에서 인류 문명사 속 세 번의 '길의 혁명'을 제시했다. 그는 “첫 번째 문명의 길은 실크로드였다. 당나라와 로마를 연결하며 동서 문명을 하나로 묶었다. 두 번째는 대항해 시대의 항로였다. 희망봉을 돌아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이 연결되며 신세계가 열렸다. 세 번째는 인터넷이다. 정보와 권력이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흐르는 디지털 문명의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제 네 번째 길, 즉 북극항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이 길은 단순한 해상 물류 루트가 아니라, 아시아·유럽·북미·러시아·북한을 모두 연결하는 정치·경제·안보의 '대혈관'이자, 대한민국이 다시 '길을 여는 나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거대한 기회"라고 역설했다. 이 전 총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고립성을 언급하며, 북극항로가 이를 타개할 '대전환의 기회'임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 분단 상태로 인해 우리는 사실상 섬나라처럼 고립돼 있다. 그러나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을 거쳐 러시아와 북극해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새 루트가 생긴다. 이는 단순한 경로가 아니라, 섬나라 대한민국이 대륙국가로 다시 연결되는 역사적 전환"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전 총장은 과거 장보고의 해상 실크로드와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을 언급하며 “북극항로는 그 정신을 계승하는 21세기의 '해양 팽창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광재 전 총장은 발표의 절반을 할애해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전략적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과거 한진해운 붕괴로 대한민국 해운산업이 위축됐지만, 지금이야말로 '제2의 해양르네상스'를 준비할 때"라며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제안을 내놓았다. 이 전 총장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HMM 지분을 포스코, 현대차 같은 '화주 기업'들이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조선사도 주주로 참여하면, 글로벌 통합형 해운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며 “단순한 행정 이전이 아닌, '해양산업 클러스터'구축이 필요하다. 싱가포르 PSA처럼 항만 운영, 조선, 선박 금융, 선물거래가 융합된 글로벌 거점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며 해양수산부 및 연관 기관의 전면 이전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싱가포르는 국제학교만 100개다. 부산은 아직 4개에 불과하다. 국제 교육 인프라와 생활 여건 확충 없이는 세계 인재가 오지 않는다"며 글로벌 인재 유치 인프라 확보도 강조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북극항로는 동북아 군사긴장의 완충지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놨다. 이 전 총장은 “대만은 압력밥솥처럼 긴장이 높아지지만, 북극항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협력해야만 가능한 루트다. 미국, 러시아, 일본, 한국, 심지어 북한까지 모두 연결된다. 북극항로는 동북아의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밸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 역시 에너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북극항로가 현실화되면, 북한 해역 통과를 전제로 한 국제 에너지 협력 모델이 가능하며, 이는 비핵화 이후 동북아 공동번영 구상의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 전략과 함께 육상 교통망 확충도 함께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 해양도시가 되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 반 이내 KTX망이 필수다. 현재 고속철 노선도 교체해야 한다. 또 부산을 중심으로 한 순환형 환동해 철도망도 조속히 검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전 총장은 북극항로가 한·미·러 에너지 협력, LNG 공동구매, 해양운송 협력 등 다층적 전략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스가 협정(한미 조선산업 협력)으로 1500억 달러 규모 협력을 일궈냈다면, 북극항로는 '제2의 마스가', '제3의 마스가'가 될 수 있다. 알래스카와 러시아의 LNG, 북극의 희귀자원, 한국 조선·운송 산업이 결합되면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이제는 우리도 성을 쌓는 대신 길을 열어야 한다"며, 해양을 통해 다시 확장하고 문명을 창출하는 대한민국을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크로드, 대항해시대, 인터넷에 이은 새로운 문명의 길. 북극항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광개토대왕의 꿈, 장보고의 야망, 이순신의 정신을 북극에서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