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00GW 보급…국토 2% 육상풍력

독일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00GW를 보급하고 전 국토의 2%를 육상풍력에 할당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가 2030년까지 100GW의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점을 고려하면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독일은 발전량이 제각각인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만큼 전계통에 부담을 주는 비용도 고려하고 있다. 마리우스 스트롯요한 독일연방경제에너지부 에너지파트너십·정책담당관은 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7차 한-독 에너지데이 컨퍼런스'에서 독일의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과 정책 방향을 소개했다. 행사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가 공동 주최하고 주한독일상공회의소가 주관했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5년 빠른 204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전체 전력소비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독일은 지난해 기준 전체 전력소비의 약 절반을 이미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스트롯요한 담당관은 “독일은 2030년까지 풍력 100GW, 태양광 200GW 보급 목표를 세웠다"며 “이를 위해 상업용 건물이라면 어떤 곳이든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태양광 촉진 패키지를 통해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육상풍력의 경우 법으로 2030년까지 독일 국토의 2%를 풍력 설치 용도로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며 “독일은 해상풍력 잠재량이 큰 편이 아니어서 태양광과 육상풍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민 수용성 확보 전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지역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재생에너지 사업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역사회 활동에 관여할 경우 인허가 편의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며 “독일은 탄소에 비용을 부과해 화석연료 가격을 높이고 있으며, 태양광과 풍력은 배터리를 포함하더라도 화석연료 대비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계통비용 증가 문제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역시 우리나라처럼 전력 생산지와 수요지가 불일치하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 송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문제점도 언급됐다. 스트롯요한 담당관은 “전력수요가 높은 지역은 남부와 서부인데, 풍력자원이 풍부한 북부에서 남부로 전력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송전 제약이 발생한다"며 “송전망 확대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LCOE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재생에너지를 늘릴 수 없다"며 “전력계통 비용과 전체 시스템 비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최고 효율’ 집단에너지, 재생에너지의 희생양 되나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집단에너지는 다른 에너지 시스템보다 효율이 20~30% 높아 현존 최고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해 아이슬란드, 스위스, 일본, 미국, 이탈리아 등 선진국 중심으로 보급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살리려 집단에너지 죽이기에 나섰다. 발전 및 계통시장에서 집단에너지 비중을 줄이고 그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발전업계 및 전문가들은 집단에너지를 제약하면 발전 및 열 공급 시장의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며 특정 에너지원 밀어주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전력거래소가 추진 중인 '모든 발전기의 자기제약 입찰 최소화' 규칙개정안이 최근 규칙개정 실무협의회를 통과했다. 전력거래소는 오는 4일 규칙개정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포함한 총 12건의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업계는 “전력시장 정산원칙에 위배된 처사이자 열공급 특성을 무시한 제도 개편"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전력당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열병합발전기는 지역난방·산업단지 등에 24시간 안정적으로 열을 공급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전력거래소의 기동 요청 여부와 무관하게 스스로 발전량을 제출할 수 있는 자기제약(Self-constraint) 입찰이 허용돼 왔다. 이는 단순한 특혜가 아니라 열공급의 필수성, 기온 및 외부수열 변동성, 시간대별 열수요 예측의 어려움을 반영한 제도적 장치다. 또 자기제약 입찰은 결과적으로 발전비용이 0원(kWh)으로 간주돼 전력도매가격(SMP)을 낮추는 효과도 있어, 계통 및 소비자 측면에서도 순기능으로 평가돼 왔다. 그런데 전력당국은 이 제도가 계통 운영에 예측 불확실성을 준다는 이유로, 모든 발전기의 자기제약 입찰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전력시장 운영의 근간인 단일가격정산(SMP)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라고 비판한다. 현재 하루전 시장에서는 계통제약, 자기제약 등 모든 조건을 반영해 SMP가 산정된다. 즉 이미 가격에 반영된 자기제약을 사후에 '과다 기동'처럼 간주해 정산금을 또 감액하는 것은 중복규제이자 SMP보상 원칙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한 전력전문가는 “해외 어느 국가에서도 시장가격 이하로 정산하는 구조는 없다. 전력 계통 사정이 엄중하다고 해도 시장원칙 위배는 명백하며, 법적 분쟁 위험도 있다" 고 지적했다. 사실상 변동비 이하만 보상하고 SMP 보상은 제한하는 '상한제 유사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우려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거래소는 자기제약 축소뿐 아니라 열공급 제약 발전기에 대한 입찰 정확도 패널티 부과 규칙 개정도 함께 제출해, 집단에너지업계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 집단에너지 관계자는 “열수요는 기온 외에도 외부수열 공급량 등 변수가 많아 예측 난도가 전력보다 훨씬 크다. 안정적 열공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제약을 하는 것이 현실인데, 초기입찰부터 이를 '최소화하라'는 건 시스템을 모르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미 집단에너지사는 봄·가을 경부하 기간에 전력거래소 요청에 따라 오전 11시~오후 3시 자기제약 최소화 등 계통안정화 조치에 적극 협조해왔다. 해외 주요국은 분산전원·열병합(CHP)의 계통 기여도를 인정해 분산편익 보상, 계통지원 인센티브 등을 지급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계통 유연성 확보를 명분으로 규제만 강화하는 '채찍 위주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열병합발전은 계통 혼잡 완화, 송전손실 절감, 전력·열 통합공급 등 분산편익이 큰데 우리나라는 이런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규칙으로만 압박하는 상황"이라며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다면 사업자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보상·인센티브'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거래소는 오는 4일 규칙개정위원회에서 자기제약 축소안, 입찰 정확도 패널티 안을 포함한 12건의 개정안을 상정한다. 발전업계는 이번 안건이 통과될 경우 열공급 안정성 저해, 전력시장 왜곡, 집단에너지사의 경영위험 증가, 정산체계 혼선 등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한다. 전력당국이 계통 유연성 확보와 시장원칙 준수, 열공급 안정성 보장이라는 세 축을 어떻게 조율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단독] 석탄 대체 LNG발전 용량, 원래대로 유지된다

정부와 여당이 탈화석연료 기조의 일환으로 노후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으로 대체할 때 기존 100% 용량을 50%로 축소하는 방안이 최근 발전업계 일각에서 거론됐으나, 정부는 “공식화된 내용은 없다"며 현행 계획대로 전환 작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2일 기후부는 “(용량 축소는) 내부적으로 의견을 청취한 것일 뿐, 정책화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최근 발전공기업 및 민간 LNG 업계에서는 기존 1000MW 석탄 → LNG 전환 시 500MW만 허가하는 '절반 룰'이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방안은 석탄발전 대체를 최소화해 전체 발전용량(총량)을 줄이는 방식이어서 '탈석탄 가속' 취지로도 해석됐다. 그러나 기후부 핵심 관계자는 본지에 “일부 검토 라인에서 아이디어 차원의 의견 청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나, 공식 정책 검토도 아니며 장관이 발언한 적도 없다"고 확인했다. 따라서 현행 석탄→LNG 1:1 전환 체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발전업계는 그동안 '절반 허용설'에 대해 강하게 우려해왔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당장 봄·가을 계절전력과 피크 대응 여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며 “AI·데이터센터 전력수요 폭증이 예고된 상황에서 절반 허용은 사실상 전력공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한 2040년까지 석탄발전 전면 폐지를 선언한 만큼, 이를 보완할 중간 전원으로 LNG의 역할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2040 탈석탄' 목표 자체가 과도하게 빠르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재생에너지·원전·LNG 믹스만으로는 △산업 전력수요 증가 △ 전기차·히트펌프 전환 △데이터센터 부하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발족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작업에서도 이번 '절반 전환' 논의는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부 관계자는 “전력수급 안정이 최우선"이라며 “당분간 원안대로 전환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 최대 관심사였던 LNG 용량시장 공고는 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및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시장제도개편과 연계된 논의가 많아 실무 검토가 길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형 LNG 용량시장은 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주연료로 사용하는 신규 발전설비, 특히 집단에너지 사업의 열병합발전기를 대상으로 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하여 전력 시장 진입을 추진하는 제도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LNG 발전소의 과잉 설비를 방지하고, 전체 무탄소 전원 대비 LNG 발전의 비중을 적정 규모로 통제하려는 취지에서 지난해 도입됐다. 2024년 시범 입찰 물량은 1.1 GW였으며, 2025년 입찰 물량은 1.6 GW로 예정되어 있다. 다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LNG발전소 건설, 수도권·충청권 일부 노후 석탄 대체 사업 등은 기존 로드맵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업계는 “전력수급 공백 우려가 해소된 만큼, 불필요한 혼란은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12차 전기본에서 LNG의 위치를 어떻게 정의할지가 향후 핵심 쟁점"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김성환 “올해 안에 신규 원전 공론화 방식 결정”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올해 안에 신규 원전 공론화 방식, 분산에너지특구 보류지역 재심사, 탈플라스틱 로드맵 등 에너지·환경 정책의 주요 사안에 대해 큰 방향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발전공기업 통폐합 문제도 내년 상반기에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김 장관은 지난 1일 기후부 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에너지·환경 정책의 주요 사안에 대해) 가급적 올해를 넘기지 않고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안으로는 신규 원전에 대한 공론화 방식이 있다. 앞서 김 장관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이 확정된 신규 원전 2기의 건설 여부에 대해 공론화를 거쳐 12차 전기본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 공론화 방식을 연내에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12차 전기본은 발족하기로 결정했고 위원 구성 후 별도 킥오프를 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규 원전 2기를 어떤 공론화 절차로 결정할지 조만간 정하겠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이 올해 중에 부지 결정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올해를 넘기지 않도록 내부 의견수렴 후 방식과 절차를 곧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신규 원전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됐었다. 당시 문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하고 건설이 확정됐던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도 건설 여부를 재결정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공론화위원회는 약 3개월 간의 활동 끝에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김 장관은 분산에너지특구 판단 보류지역인 경북 포항, 울산 미포산단, 충남 서산에 대해서도 연내에 재심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생에너지가 지산지소형(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인데 간헐성이 있어 전면적 실험이 어렵다"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완화하기 위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분산에너지특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산특구에서는 재생에너지 외에 화석에너지도 실험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이번에 보류된 지역이 법을 위반해 특구 신청을 한 것은 아니었다"며 “법 위반은 아니지만 원론적 의미와 다르다는 지적이 있어 표결하지 않고 보류하고 조금 더 보완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보류 결정과 관련해 울산 지역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울산시는 미포산단을 분산에너지특구로 지정해 열병합발전기를 활용한 기업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지정이 보류되면서 지역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 장관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포함한 보완안을 제출했다는 긍정적 메세지를 전했다. 그는 “포항은 그린암모니아 기반으로 하겠다고 하고, 울산도 재생에너지를 대폭 보완하겠다고 하는 등 보완안을 제출했다"며 “위원회 의결 사항이라 결론을 미리 말하기 어렵지만 원만하게 되면 올해 안에 의사결정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탈플라스틱 대책 등 주요 환경 정책들도 올해 중 초안을 공개하고 내년 초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김 장관은 “올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시안을 갖고 관계기관·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확정안은 아니지만 주요 협의가 마무리되면 시안을 넘어선 안 형태로 국민께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의 생산·수출·재활용·소각 등 전 과정을 확인했고 분야별 대책을 다 살펴봤다"며 “한꺼번에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종합적인 안을 보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40년 석탄발전소 폐지 계획에 따른 발전공기업 통폐합 문제도 12차 전기본 발표 전에 공개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에 집중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복잡한 요소가 많아 단기 용역을 통해 전문가 의견을 듣고 논의할 것"이라며 “2040년에는 석탄발전소 전체를 폐지한다는 정부 약속이 있기 때문에 2040년 모습을 역산해 발전공기업 구조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에 집중 논의하고 12차 전기본 발표 전에 방향을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녹조 대책은 농림축산식품부와의 협의가 진전 중임을 알렸다. 김 장관은 “낙동강 취수장 보완 방안이 거의 완성돼 올해를 넘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국무총리실이 총괄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국방부·교육부·복지부와 3차 회의를 진행 중이고, 특별법을 정부 책임이 포함된 법으로 바꿔야 한다"며 “보상체계 규모 추계가 될 수 있어 조만간 국민께 보고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다자외교의 장에서 재부상한 원자력과 한국의 역할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올가을 한국 외교는 '중견국 외교'라는 표현이 공허한 수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우선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단순한 개최국을 넘어 지역 질서의 의제를 설정하는 국가로 부상했음을 상징했다. 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이 남아프리가공화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참석하고, 이를 계기로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튀르키예까지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순방한 것은 한국 외교가 다자외교의 주변부가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려는 행위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기화하는 전쟁과 서방 대 러시아 간 대결,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미국의 일방주의 등으로 인해 국제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운 가운데, 양 진영 어느 쪽과도 대립하지 않고,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도 역사적 부채 없이 협력할 수 있는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또한 잇따른 다자 외교의 중심에 에너지가 주요 의제로 거론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와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 제재와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에너지는 산업정책적인 측면에 더해 경제안보, 나아가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사안으로 여겨지며 국제질서 재편의 국면에서 핵심적인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의제 설정의 변화가 아니라, 국제질서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가 재정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G20 요하네스버그 선언은 개발도상국의 부채 문제와 기후 재난, 에너지 전환을 더 이상 주변 의제가 아닌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심 과제로 격상시켰다. 앞서 경주 APEC 선언 역시 '연결·혁신·번영'이라는 주제 아래 공급망 재편과 기술 주권, 디지털 전환을 지역 협력의 핵심 언어로 공식화했다. 서로 다른 무대에서 채택되었지만, 두 선언은 모두 공통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국제질서의 재편에 있어 핵심적인 기제가 되는 것은, AI로 대변되는 미래 기술과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원자력이 있다. 이 맥락에서 이번 대통령 순방이 이집트와 튀르키예를 포함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국가는 모두 러시아와 깊이 얽힌 원자력 협력 구조를 형성해 온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튀르키예는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이 주도한 아쿠유 원전 프로젝트를 통해 운영·연료·유지보수까지 러시아에 구조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집트 역시 엘다바 원전 사업을 통해 러시아 중심의 원자력 공급망과 금융 구조에 편입돼 있다. 원자력은 건설, 운영, 폐로까지 전 주기를 고려하면 수십 년 단위의 장기 관계를 전제로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세대(世代)에 걸친 협력 구조를 형성한다. 수출 통제는 물론 연료 공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핵 비확산과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어느 나라와 원자력 협력을 맺느냐는 지정학적 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순방에서 튀르키예나 이집트가 모두 한국과의 원자력 협력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협력을 넘어, 장기적인 전략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튀르키예 방문에서는 구체적인 성과도 있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자력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규제·부지 평가·사업모델·기술 협력 등을 포괄하는 공동 작업 구조를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튀르키예가 한국을 러시아에 의존적인 구조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지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집트와의 정상외교에서는 원자력 협력이 주요 의제 중 하나로 거론되었으나, 사업 계약이나 협약 체결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역시 원자력 분야에서의 러시아의 대안을 탐색하고 있으며, 한국을 현실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가진 강점은 분명하다. 군사적 패권국도 아니고, 과거 식민 지배와 같은 역사적 부채도 없다. 기술 표준과 안전 문화를 국제 규범에 맞게 축적해 왔고, 원전 운영과 건설 경험을 동시에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경주 APEC이 강조한 '연결·혁신·번영'은 원자력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원자력을 단순한 수출 산업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외교·안보·기후 전략을 연결하는 전략 자산으로 스스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준비가 되어 있는 거의 유일한 중견국이다. 더 늦기 전에 이 역량을 전략으로 전환하고, 실행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임은정

휘발유-LPG 가격차 2년만에 최대로 벌어져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오를 때 LPG 가격은 동결되면서 두 차량연료 가격차가 2년 만에 최대로 벌어졌다. LPG는 가장 저렴한 연료라는 특장점을 가졌지만, 시장에 매력적인 차량모델을 갖추지 못해 보급 대수는 점차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전일보다 리터당 0.45원 오른 1746.9원, 경유 가격은 전일보다 0.57원 오른 1663.4원을 기록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고환율 영향으로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2023년 11월 초 이후 거의 2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전국 LPG(부탄) 충전소 가격은 SK가스와 E1이 전달에 이어 12월 가격을 동결하면서 리터당 전일보다 0.02원 오른 998원을 기록했다. LPG 충전소 가격은 올해 5월 1089원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다가 9월부터 현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계속 오르고, LPG 가격은 동결되면서 두 연료 간의 가격차는 2년 만에 최대로 벌어졌다. 주간 가격 단위로 비교했을 때 가격 차(휘발유값-LPG값)는 리터당 2023년 11월 2주 749원에서 2024년 10월 2주 568원, 올해 1월 1주 612원, 5월 4주 544원까지 떨어졌으며, 이후 다시 벌어져 11월 4주 747원이 됐다. SK가스와 E1이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LPG 가격을 동결한 배경에는 국제 LPG 가격의 하락이 있다. 아시아 LPG 가격의 기준이 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판매가격은 프로판 기준으로 톤당 9월 520달러에서 10월 495달러, 11월 475달러로 하락했다. 12월 495달러로 올랐으나 기존 하락 폭과 시장전략적 판단에 따라 동결이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LPG는 차량 연료 중 가장 경제성을 갖게 됐으나, 오히려 차량 선택에서는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LPG차 보급 대수는 2023년 12월 183만3000대에서 올해 4월까지 185만1000대로 증가하다가 다시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 9월 기준 184만4000대로 떨어졌다. LPG트럭은 월 1만대 이상 판매량을 지속하고 있으나, 승용차와 택시에서 보급 대수가 감소하고 있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LPG차 판매돌풍을 일으킨 르노자동차의 QM6 LPG모델이 2019년 출시된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시장에 어필할만한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지 않은 영향도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LPG업계 한 관계자는 “택시시장에서 전기차 보급이 크게 늘면서 LPG차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르노의 QM6를 이을 새로운 모델을 빨리 내놓지 못한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대한LPG협회와 르노자동차는 올해 9월 LPG 풀하이브리드 차량 엔진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개발이 완료되기 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므로, 차량이 시장에 나올 즈음에 과연 전기차 모델에 비해 경제성과 매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고 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베트남 핵심광물 투자 협력 첫발… 광업투자협의체 본격 가동

한국해외자원산업협회(회장 직무대행 양원창)는 1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베트남 광업투자협의체' 킥오프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의체 출범은 산업통상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추진하는 ODA 사업인 '베트남 핵심광물 공급망 기술협력센터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광업 분야 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기업 간 협력 기반을 마련하고 핵심광물 공급망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됐다. 수행기관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해외자원산업협회, 이산컨설팅그룹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회의에는 광업·소재 분야 국내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베트남 측 광업 기업 관계자도 함께해 양국 간 핵심광물 개발 및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협의체는 ODA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확보되는 최신 광업 정보, 투자 기회, 기업 협력 프로그램 등을 참여 기업 간에 공유하고, 향후 협의체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공동 대응과 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 협의체 출범은 국내 기업의 베트남 광업 진출 기회를 확대하고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부 및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실질적 성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협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후에너지단상] 애매해진 국회 기후특위, 역할 다시 따져봐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지난 10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기후 관련 입법을 다루는 위원회가 둘이나 존재하게 됐기 때문이다. 기후가 중요한 의제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성격의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이중으로 둘 필요까지 있는지는 따로 짚어볼 대목이다. 올해 3월 출범한 기후특위의 출범 배경과 역할은 분명했다. 기후와 에너지가 서로 떨어져 다뤄지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국회에서는 에너지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환경과 기후는 환경노동위원회로 나뉘어 논의됐고 정책 연계성은 한계에 부딪혔다. 예컨대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각 당을 대표하는 기후·에너지 전문 의원으로 22대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박 의원과 서 의원은 산자위로, 김 의원은 환노위로 갈라졌다. 이 구조에서는 박 의원과 서 의원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김 의원이 에너지 이슈를 각각 직접 다루기 어려웠다. 이처럼 국회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수단이 에너지인만큼 “기후와 에너지는 함께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항상 존재했다. 당시 기후특위 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21대 국회 때와는 달리 에너지 법안까지 다룰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후특위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협조 속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등을 심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기후 관련 예산안은 심사 권한 없이 의견만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기후특위는 비록 에너지 법까지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고 활동 기한도 내년 5월 29일로 제한돼 있지만 출범 자체에 의의를 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올해 10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부문이 합쳐지면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새롭게 출범했고, 국회에도 이에 대응하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가 꾸렸졌다. 기후노동위는 기존 환노위 기능에 더해 에너지 일부 사안을 포괄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됐다. 현재 박지혜·서왕진·김소희 의원이 모두 기후노동위에 속해 있다는 점만 봐도 국회 내 구조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기후특위가 맡기로 했던 배출권거래제 등 주요 이슈도 에너지 전문 의원들이 기후노동위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영역이다. 특별위원회는 본래 특정 과제를 중심으로 한 임시 조직이라는 점에서 상임위와 일정 부분 기능이 중첩될 수밖에 없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 중복 폭이 더 커진 만큼 역할 재정의 논의가 불가피하다. 실제 행정 현장에서 국회 위원회가 두 갈래로 나뉘어 동시에 움직일 경우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피로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동일한 사안을 두 개의 기구에 반복적으로 보고하고 설명해야 하는 구조는 정책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현장 공무원들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게 현실이다. 기후위기가 중대한 시대적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중요성만을 이유로 위원회를 이중화하는 것이 항상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후특위의 존속 필요성과 역할 재정의에 대한 냉철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후특위를 연장하더라도 역할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정치권의 선택이 요구된다. 만약 역할을 재설계한다면 기후특위에 참여하는 의원 구성을 더욱 다양화해 여러 상임위의 기후 이슈를 특위를 통해 아우르는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기후특위가 산업·농업·산림 등 기후노동위가 직접 다루기 어려운 영역에서 활약해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수출 외치면서 국내선 멈칫…이재명 정부도 원전 모순 되풀이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UAE·튀르키예 국빈 방문에서 연이어 원전 수출 협력 의지를 밝히며 원전 외교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원전 정책에서 이를 뒷받침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UAE와 튀르키예 국빈 방문에서 잇달아 원전 수출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양국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소형모듈원전(SMR)·원전건설·정비(O&M) 분야에서의 공동 진출을 언급하며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적극 내놨다. 그러나 정작 국내 원자력 정책 방향은 수출 드라이브와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1일 본지와의 취재에서 “원전을 자국에서 짓지 않는 나라가 원전을 수출한다는 건 전례가 없다는 게 해외 원전 발주국 관계자의 일관된 평가"라며 “UAE·튀르키예 두 나라 모두 한국 원전의 잠재적 수출 시장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의미 있는 메시지였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국내에서는 원전 확대 정책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원전 정책은 확대·육성이 아니라 “현상 유지 또는 제한적 활용"에 가까운 수준이며, 신규 원전 건설·전력계획 반영·SMR 인허가 제도 개선 등 핵심 정책은 여전히 정지 상태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정책 모순이 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내에선 안 짓고, 해외에는 팔겠다'는 모순된 정책은 결국 폴란드 등 해외 원전 수주 실패로 귀결됐다. 이재명 정부도 국내 원전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 전략이 선언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원전을 짓고, 유지하며, 생태계를 강화하는 '실질적 정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해외 수출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노후 원전 조기폐쇄 등으로 생태계가 약화되자 해외 원전 발주처들은 한국의 '일관성'을 의심했다. 당시 체코·폴란드·사우디 등 굵직한 원전 프로젝트에서 대한민국은 수차례 경쟁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종 수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발주국이 가장 우려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정책 안정성'이다. 한국이 자국 내에서는 원전을 위험하다고 폐기하면서, 해외에는 팔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5월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 원자력 공급망 회의(WORLD NUCLEAR SUPPLY CHAIN)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참여하지 않았고 프랑스 EDF 부사장은 'EU공급망'을 강조하며 “이재명 정부는 전 정부에 비해 원전에 대한 지지가 덜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전 생태계(설계–제작–시공–연료–정비)가 국내에서 유지되지 못하면 해외 경쟁력도 약화된다는 교훈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수출 구상과 국내 정책의 간극으로 수출 전략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공식적으로 '탈원전' 기조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불투명 △원전 비중 확대 계획 부재 △SMR 관련 법·제도 정체 △원전 수출컨트롤타워 부재 등으로 인해 실질적 육성 정책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 전력설비를 결정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착수했지만 국내 원전 확대 기조가 아닌 현상 유지나 축소될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여기에 원전수출은 기존 산업통상부가 담당하는 이원화 구조도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SMR 분야는 미국·캐나다·프랑스가 공격적으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인허가 제도 개편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설비 제작·주기기 공급망도 다음 수주 물량이 불투명해지면서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 한 전력정책 전문가는 “대통령이 해외에서 수출 협력을 언급하는 건 의미 있지만, 국내에서 시장·수요·산업 기반을 키우지 않으면 외교적 발언만으론 수주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지난 10년간의 교훈"이라라며 “발주국은 기술보다 국가 의지를 본다.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UAE 바라카 원전과 체코 원전 수출 성공도 단지 기술력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정부·한전·한수원·산업계–연구기관이 총동원되는 국가 단위 사업이었으며, 한국이 '신규 원전을 계속 건설하는 나라'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해외 발주국들은 한국의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내부에서는 신규 원전 없이 현상 유지만 하는데, 외교 무대에서는 수출을 선언한다면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세계 원전 시장은 지금 미국(웨스팅하우스), 프랑스(EDF), 중국(CNNC), 러시아(로사톰)가 정부 차원의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국 내 신규 건설과 해외 수출을 동시에 추진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신규 원전 건설 재개 또는 중장기 건설 로드맵 제시 △SMR 인허가·실증 기반(규제 체계) 정비 △원전 생태계(제작–설계–정비) 유지 가능한 물량 확보 △정부 차원의 원전 수출 컨트롤타워 복원와 같은 정책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체코 원전 수주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UAE·튀르키예에서 보여준 외교적 메시지 자체는 긍정적"이라며 “한국 원전 산업계도 두 시장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국내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또다시 '구호만 있는 수출전략'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책 모순 반복되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되살리기 어렵다"며 “원전 수출은 단순한 외교 선언이 아니라, 국내 산업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신뢰를 증명해야만 가능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깐부에서 꼰대가 되어 버린 에너지 효율화 정책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깐부는 친한 친구나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이다. 깜보, 깐보라고도 불린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과 치맥을 함께 한 장소도 이 이름이며, '깜보'라는 영화가 2차 석유 위기가 끝나가던 1986년에 개봉하기도 하였다. 1986년의 국제 원유 가격은 OPEC의 감산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1979년 대비 10배나 넘게 상승해 있었다. 전 세계가 석유 위기에 대응하고자 다양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일본의 혼다, 토요타 등 연비가 좋은 자동차가 엄청나게 잘 팔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내 유일 부존 에너지원인 석탄(연탄)의 증산에 나섰으며, 한 등 끄기는 물론 학교의 겨울방학 연장, 공장 자율 운영 등 고강도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내어놓았다. 또한 에너지관리공단이라는 공기관을 출범시켜 에너지 효율화 시책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 에너지 절약이 생활에 스며들어 일종의 깐부가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에너지정책 1번은 언제나 효율화였다. 그러나 지난 21세기 25년간 에너지 자급, 해외자원개발, 에너지전환 등 공급 부문의 정책은 꾸준히 발표되었지만 에너지 절약이나 효율화 정책은 점점 뒤로 밀려 이제는 논의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5년 전 에너지기본계획이 더 이상 법적 정부 계획이 아니게 되면서 에너지 효율화를 제대로 다룰 공간과 제도가 줄어들고 말았다. 여전히 에너지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내 정책에서 에너지 효율화나 이용 합리화 정책은 진부한 옛날 주제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책에 담기는 해야 하는 하나의 요식행위가 되었다. 에너지 효율화 정책이 깐부에서 꼰대로 변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정책 및 산업정책의 수립 과정에서 본받고 따라온 제조업 강국으로 독일과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모두 에너지 절약에 진심이다. 독일은 대표적인 산업 부문 에너지 절약 정책인 LEEN (learning energy efficiency network)를 21세기 들어서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2천여 개의 중견, 중소기업이 해당 정책의 혜택을 받고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에너지집약도(사용량/GDP)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에너지 효율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한국은 에너지집약도가 1980년 0.27, 2023년 0.16으로 크게 좋아졌으나 일본은 1980년 0.15, 2023년 0.08로 더 좋아졌다. 한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여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은 일본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으나 에너지 효율은 지난 40년간 일본의 절반 수준에서 전혀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에너지 효율 정책으로 선샤인(sunshine) 정책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매년 다양한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조사하여 순위를 발표하는 단순한 정책이다. 그런데 일본 국민은 이를 적극 참조하여 최고 효율을 가진 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한다. 그 구매 정도가 매우 높아 일본 기업들은 최고의 에너지 효율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고 말이다. 모두 에너지 효율화에 진심이다. 우리에게 이들 두 나라는 에너지 절약 정책에서는 넘사벽이 되어 버렸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구매 시 색상이나 크기에 더 고심한다. 건물 역시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다. 최근에도 우리나라 건물의 면적당 에너지사용량은 매년 증가 중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의 건물 정책이 에너지 효율화보다는 스마트시티, 혁신도시 등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도시 개발에 중점을 두어왔기 때문이다.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 이슈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도 구조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지금 짓는 건물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점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기에 잘못하면 수명이 되기도 전에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고 만다. 다행히 이번 새 정부에서는 에너지 효율화 분야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 히트펌프를 크게 육성하고자 한다거나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논의가 높아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에너지 효율 기술혁신,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통한 가정과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에너지 효율화를 다시 살리기 위한 첫발을 잘 디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만 다음은 국민과 기업이 실제로 절약과 효율화에 나서게 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할 차례이다. 정부는 민간단체와 함께 효율화 홍보활동을 활발히 시행하여 국민의 동참을 호소하고 인센티브 강화로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통하여 그 혜택이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허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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