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영 “용인 반도체 전북 이전, 포퓰리즘 아닌 국가 리스크 관리 차원의 검토 사안”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은 12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북 이전은 불가능한 주장이 아니라, 국가가 구조적 리스크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현실적 해법"이라고 밝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차원에서 반도체 입지와 전력·용수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이 논의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입지 논쟁이 당과 국가 차원의 공식 의제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안 위원장은 전날 윤준병 전북도당 위원장이 중앙당과 협의를 통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용수 문제를 점검하고, 새만금 등 지방에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을 논의했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전북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 중앙당의 공식 논의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수도권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존 구도를 고정시키기 위한 주장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안 위원장은 “기업의 이전 여부는 기업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며, 정부가 강제로 결정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기업은 항상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과 용수의 안정적 공급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고, 송전선로 갈등과 장기 지연 가능성이라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다"며 “이 같은 조건에서는 기업이 입지 재검토를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불가역적 사업이라는 인식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인 클러스터는 총 10기 팹을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건설하는 장기 프로젝트"라며 “현재 실제로 착공에 들어간 것은 SK하이닉스 팹 1기에 불과하고, 나머지 팹은 구체적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아직 토지 보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체 사업의 90% 이상은 여전히 계획 단계에 있으며, 행정적으로는 입지 재배치를 포함한 '계획 변경'이 가능한 상태"라며 “정치적 언어로는 '이전'이지만, 행정적으로는 국가 리스크 관리를 위한 합리적 계획 수정"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용인 유지 + 지방 기능 분담'이나 '후속 사업 유치' 방안에 대해서도 안 위원장은 “핵심을 비켜간 미봉책"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용인 클러스터가 직면한 전력·용수 대란과 RE100 대응 한계를 그대로 둔 채 껍데기만 나누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에너지 전환 시대에 맞춰 산업 입지 자체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구체적인 이전 시나리오로, 이미 착공된 SK하이닉스 팹 1기를 제외한 나머지 9개 팹을 단계적으로 지방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반도체 팹은 2~3년의 건설 기간을 거쳐 순차적으로 가동되는 만큼, 단계적 이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새만금의 경우 “2029년까지 약 3GW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즉시 공급할 수 있어 초기 팹 2기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할 수 있다"며 “용인에서는 송전선로 갈등으로 10년 이상 걸릴 일을, 새만금에서는 3년 내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9개 팹 이전 시 최종 전력 수요를 약 14GW로 추산하며,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로드맵(총 10GW)과 추가 전원 확보 여지를 근거로 “장기적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영농형 태양광과 해상풍력 확대를 통해 추가 전력 확보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안 위원장은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 “345kV 송전선로 하나를 건설하는 데만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고, 용인 클러스터에는 이런 송전선로가 10개 이상 필요하다"며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낮은 계획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논의는 개인의 문제 제기를 넘어 중앙당 특별위원회라는 공식 기구에서 구조적 리스크를 점검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며 “반도체 경쟁력과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해법을 책임 있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인터뷰]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 “AI·탄소중립, 둘 중 하나 선택할 문제 아니다…전력 인프라·시장 구조 전면 재설계해야”

“AI와 탄소중립은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라, 동시에 달성해야 할 과제입니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전력산업 구조와 전력망이 준비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기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전력 수급·시장 체계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올해 학회 슬로건을 'AI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대한전기학회'로 정한 배경에 대해 “AI도, 탄소중립도 결국 해답은 전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AI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능력이고, 탄소중립 역시 전기화와 저탄소 전원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2030년이 승부…비수도권 2단계 전략 필요" 박 회장은 AI 산업의 시간표가 촉박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AI 산업의 1차 승부는 2030년 이전에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그 시기까지 국내 AI 인프라, 특히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AX(인공지능 전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도권 입지 한계도 분명히 짚었다. “수도권은 이미 계통 여력이 사실상 포화 상태"라며 “개통 영향 평가로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당분간은 비수도권으로 AI 데이터센터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남처럼 원자력과 LNG가 풍부한 지역, 호남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을 활용해 2030년까지는 비수도권 중심 전략을 취하고, 이후 송전망이 보강되면 수도권도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2단계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2차 전기본, AI 수요부터 다시 써야" 박 회장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AI 전력 수요 재산정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1차 전기본은 2023년에 착수되어 AI 수요를 예측했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 확산 속도는 당시 가정을 완전히 뛰어넘고 있다"며 “2038년 기준 6.2GW 수준이었던 기존 전망은 현재 추세를 보면 큰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산업계에서 거론되는 'AI 전력 수요 20GW' 전망에 대해 그는 “실현 여부를 떠나, 수요 상향 가능성을 전제로 전력 시스템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 산업의 전력 수요는 줄고 있지만, AI·반도체·전기화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며 “12차 전기본은 이 구조 변화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생·원전·LNG·ESS…네 축 모두 필요" 에너지 믹스에 대해서는 명확한 '병행론'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두 축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며 “여기에 LNG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유연성 축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35년 이전에는 신규 원전의 건설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고, 이후에는 SMR을 포함한 원전 옵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LNG는 완전한 탄소중립 전원은 아니지만, 과도기적 유연 전원으로 적절한 보상을 전제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S와 양수발전 확대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전력시장 구조, 이대로는 안 된다" 박 회장은 현행 전력시장 구조에 대해 “에너지 전환과 AI 시대를 감당하기에 구조적으로 너무 낙후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입찰제 도입 ▲유연성 보상 메커니즘 강화 ▲실시간 전력시장 조기 도입 ▲지역별 가격 체계 검토를 도매시장 개편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특히 현재 전력시장 운영 기관과 당국이 너무 국내 상황에 매몰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 등 간헐성 자원의 비중이 높은 해외의 전력시장 진화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특히 “재생에너지 100GW 시대에는 지금의 예비력·보조서비스 체계로는 계통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출력 제어와 유연 운전을 제대로 보상하는 시장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매 요금과 관련해서는 “전기요금 결정의 독립성과 거버넌스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전망, 민간 역할 확대 검토할 시점" 송전망 확충과 관련해서는 민간 참여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회장은 “해외에서는 민간이 HVDC 등 기간 송전선로를 건설하고 장기적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모델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민간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HVDC, 인버터, 해상풍력 핵심 장비의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단기 비용만 보고 해외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스터빈 국산화를 통한 북미 수출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정답 제시보다 토론의 장 만드는 학회 역할 강화" 대한전기학회 회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박 회장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찬반이 공존하는 토론의 장을 만드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전기공학을 넘어 경제·법·행정·AI 등 인접 학문과의 연계를 통해 정책 논의의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전력·에너지 문제는 이제 특정 학문이나 이해관계자만의 영역이 아니다"며 “전문가 집단의 집단지성이 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학회가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국내 산업을 키우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요금 체계와 장기적 관점의 정책 설계가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민주당서 RPS 폐지 법안 첫 발의…전력 경매제도 전환 본격화

더불어민주당에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에서 RPS 폐지 법안이 발의된 적은 있으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인 민주당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RPS 폐지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와 함께 재생에너지 정책이 RPS에서 정부 주도의 경매제도로 전환되는 흐름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일 재생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행 RPS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와 물량을 직접 설정하고 경매 방식으로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계약시장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RPS란 500메가와트(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공급의무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 의무비율은 2012년 2%로 시작해 2026년 15.0%이다. 그만큼 RPS 제도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RPS의 한계점도 커지고 있다. RPS 대상 발전사들이 의무를 충당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것이 있는데, 발전사업의 현실적 제약으로 REC를 구매하는 경향이 늘면서 REC 가격이 높게 형성돼 RPS 이행비용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전력으로만 제품을 만드는 RE100 제도로 인해 REC 구매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더 오르는 경향도 있다. RPS 이행비용 증가는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정부와 국회가 RPS 제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에서 “신재생에너지 보급환경의 변화와 함께 REC의 가격 변동성이 커서 RPS의 체계적인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특히 REC 관련 발전사들의 자체투자보다 외부 구매, RE100 기업과 수요의 경합, 수급 불균형 등으로 현물시장 REC 가격이 상승해 기업의 경쟁력 저하와 가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RPS가 폐지되더라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와 공공기관 등에 재생에너지 보급 의무를 부과하며, 다른 의무 이행 방식으로 기준금액 납부 등을 통해 대체 이행할 수 있도록 했다. RPS가 폐지되더라도 대규모 발전사에 대한 재생에너지 보급 의무 자체는 유지되는 구조다. 제도가 전환되면 현재 RPS 체계 아래에서 실시간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거래하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현물시장은 폐지될 전망이다. 대신 정부가 입찰 물량을 사전에 정하고 해당 물량 내에서 가격 경쟁을 통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경매 방식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태양광·풍력 고정가격계약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가격 변동성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에는 계약시장제도에서 발생하는 재생에너지 구매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도 담겼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전력계통 신뢰도가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계약시장 낙찰 설비에서 생산된 전력을 구매계약자가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해 회수하도록 했다. 이는 발전사의 RPS 조달비용을 전기요금으로 회수해온 기존 방식과 유사하다. 기후부는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RPS의 경매제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관련 법안이 본격적으로 발의되면서 경매제도로의 전환을 위한 시행령 마련 등 정책 윤곽이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송전망 국민펀드, 지역 수용성부터 설계해야

정부가 추진 중인 송전망 국민펀드는 한전의 누적 적자와 전력망 투자 재원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등장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첨단산업 전력 수요 증가, 계통 안정성 확보라는 과제가 동시에 몰려오는 상황에서 송전망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인프라 과제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돈을 모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사업을 실제로 완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송전선로는 전국민을 위한 공공 인프라이지만, 그 부담은 항상 특정 지역 주민에게 집중된다. 경관 훼손, 토지 이용 제한, 재산권 침해 우려, 건강에 대한 불안까지 감내하는 것은 지역인데, 그 대가는 늘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추상적 명분으로 대체돼 왔다. 이 불균형 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채 추진되는 어떤 제도도 지역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밀양 송전선로 갈등이다. 765kV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이 갈등은 2005년 계획 수립 이후 약 10년간 이어졌고, 공사 중단과 재개, 노선 변경, 물리적 충돌까지 겪으며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한전이 부담한 직접 공사비 증액만 수천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찰·행정 인력 투입, 소송 비용, 갈등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면 사회적 비용은 훨씬 커진다. 그러나 밀양 사태의 진짜 비용은 장부에 남지 않은 영역에 있다. 송전망 구축 지연으로 전력계통 안정성이 훼손되면서 재생에너지 연계가 늦어졌고, 그 공백은 화석연료 발전으로 메워졌다. 이는 연간 수천억 원 규모의 추가 연료 수입 비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전력망 제약은 산업단지와 대규모 수요처의 입지를 제한해 반도체,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업 투자 지연이라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켰다. 이 모든 비용은 결국 한전 적자로 귀결되고,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라는 형태로 국민에게 전가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국민은 이미 송전망 지연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그 경제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펀드 논의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 과거의 실패 경험을 제도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해법은 분명하다. 계통소득은 반드시 지역에서 시작해야 한다. 송전선로 인근 주민에게 투자 우선권을 부여하고,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야 한다. 이후 기초 지자체, 광역 지자체, 마지막으로 전국민 참여로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전국민 동일 조건 참여를 허용하는 방식은 형식적 공정성은 있을지 몰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정부는 밀양과 같은 사례에서 발생한 사업 지연에 따른 직접 비용과 기회비용을 정량화하고, 송전망 조기 구축으로 회피 가능한 비용을 국민펀드의 인접주민 투자자를 위한 추가 수익 재원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지역 주민부터 전국민까지 모두가 '계통소득'을 통해 국가적 손실 감소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 송전망 국민펀드는 단순한 재원 조달 장치가 아니다. 이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누적된 갈등을 소득과 참여로 전환할 수 있는 정책적 실험이다. 그러나 그 출발점이 '전국민'이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시작하지 않는 국민펀드는, 결국 또 하나의 밀양을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윤태환

히트펌프·청정메탄올, 녹색채권 발행 대상 추가

히트펌프와 청정메탄올 등 차세대 저탄소 기술이 한국형 녹색채권 발행 지원 대상에 새로 포함된다. 정부는 녹색채권과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지원을 확대해 중소·중견기업의 탈탄소 투자를 위한 민간 자금 조달을 본격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2026년 '한국형 녹색채권 및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지원사업'을 대폭 확대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번 지원사업은 지난해 12월 말 개정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반영해 차세대 저탄소 기술을 폭넓게 지원하고 자금 지원 범위도 넓혀 기업의 탈탄소 투자 수요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개정으로 새롭게 녹색경제활동에 포함된 히트펌프, 청정메탄올, 탄소중립 관련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녹색채권 발행 지원 대상에 추가했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 핵심 기술에 대한 민간 자금 조달을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형 녹색채권 자금 지원 범위도 확대된다. 올해부터 중소·중견기업은 시설자금뿐 아니라 녹색경제활동과 관련된 운전자금에 대해서도 녹색채권 이차보전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건설·조선업 등 업종 특성을 고려한 시설자금 인정 기준을 새로 마련해 녹색채권 발행 접근성도 높였다. 이차보전은 대출 이자 비용의 일부를 정부나 공공기관이 보전해주는 제도다. 채권시장 진입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기업 지원도 강화된다. 기존에는 1년간만 이자비용을 지원했으나, 앞으로는 최대 3년까지 지원 기간을 확대해 기업의 금융 부담을 완화한다. 지원 수준은 1차년 중소기업 3%p, 중견기업 2%p이며, 2·3차년은 1차년도 지원액의 50% 내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적용한 녹색채권 또는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시 발생하는 이자비용을 기업당 최대 3억 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한국거래소와의 협조를 통해 한국형 녹색채권 발행기업에 대한 상장수수료 및 연부과금 면제 기간도 올해 12월 31일까지 1년 연장한다. '한국형 녹색채권 발행 이차보전 지원사업'은 오는 12일부터,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지원사업'은 오는 21일부터 환경책임투자종합플랫폼(gmi.go.kr)을 통해 참여 신청을 받는다. 모집 공고와 자격 요건, 지원 내용 등 자세한 사항은 기후에너지환경부 누리집(mcee.go.kr)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누리집(keiti.r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영태 기후에너지환경부 녹색전환정책관은 “탈탄소 투자를 추진하는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녹색금융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형 녹색채권과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민간 주도의 녹색투자를 확대하고 탄소중립 실현을 뒷받침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무행동의 비용과 우리의 선택

유엔환경계획(UNEP)이 1997년을 첫 시작으로 매 5년마다 발간하는 Global Environment Outlook (GEO) 시리즈는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미래환경보고서로, 각국 정부가 중장기 정책 방향을 점검할 때 참고하는 일종의 환경진단서다.작년 12월에 발간된 7번째 GEO가 보여주는 지구환경 상태는 충격적이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폭염과 가뭄, 홍수는 일상이 되었고, 이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 물가, 사회적 취약성으로 직결된다. 생물다양성 손실은 단순한 종 감소를 넘어 생태계 기능 약화를 가져왔고, 오염은 지역 환경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중보건 위기로 확대되었다. 특히,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이라는 이른바 '삼중 위기(triple planetary crisis)'는 각각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 위기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의 정책과 경제 구조가 유지될 경우, 기후 위기와 환경 악화는 단순한 자연생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식량과 에너지 가격 변동, 생산성 저하, 건강 비용 증가, 재정 부담 확대, 사회적 불안정으로 전이된다는 것이 GEO-7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이다. GEO-7이 던지는 질문은 더 이상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발생한 피해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이다. 관련해서 환경 대응을 도덕적 선택이나 가치의 문제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대응을 미루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줄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 지금 전환에 나설 경우 얻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과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손실을 비교하면 후자, 즉 '무행동의 비용(cost of inaction)'이 전자 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지구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성장 전략이 얼마나 큰 비용을 초래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GEO-7 보고서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선 환경을 더 이상 일개 부문 정책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책 구조는 환경, 에너지, 산업, 국토, 재정 등을 분리해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시스템 위기 관점에서 보면, 이런 분절적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병목현상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전력망과 입지 갈등, 산업 전환 비용, 도시 구조와 에너지 수요는 서로 연결돼 있으며, 조정 능력의 부재는 곧 전환 지연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전환의 속도를 '지속 가능한 속도'로 재정의해야 한다. 독일이나 영국처럼 이미 상당한 전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국가와 달리 우리의 전환 성과는 미미하다. 전환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에서, 속도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무작정 가속하는 전략은 현실적 제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전력망 제약, 높은 인구 밀도와 입지 갈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와 산업경쟁력 문제, 요금 체계의 경직성 등은 전환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물을 앞두고 멈추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환의 속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환에 수반되는 비용보다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비용, 즉 더 큰 재난과 복구비 증가, 건강 피해, 공급망 리스크 증가, 지역 갈등의 확대는 천문학적 규모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전환비용은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한 투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997년 발표된 첫번째 GEO의 메시지가 '경고'였다면, 30년이 지나 발표된 7번째 보고서는 그 경고가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진단서다. 문제는 더 이상 환경이 나빠질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나빠진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전환을 미루는 것은 비용을 줄이는 선택이 아니라, 더 큰 비용을 미래로 전가하는 결정이다. The Guardian의 최근 보도가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The Guardian은 GEO-7을 인용해 현재의 식량 및 화석연료 생산 방식이 시간당 약 50억 달러에 달하는 환경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환경 위기가 먼 미래의 추상적 위험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적 손실로 누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환경보고서이지만 경제・정책보고서로 읽히는 GEO-7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전환과 환경 대응은 '도덕적 선택'을 넘어 '경제적 선택'의 문제로 다뤄져야 하며, 투자를 미룰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지금 전환에 나설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사회적 편익보다 크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선택은 분명하다. 경고를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진단에 맞는 처방을 실행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병오년을 맞이하여 지속가능한 전환 속도를 만들어 가는 의미있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에너지 인사이트] 대통령실 선 그은 ‘반도체 이전론’…새만금 RE100 구상의 기술적 현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에 대해 대통령실이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 새만금을 RE100 산업단지이자 반도체 대안 입지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현실적 검증의 문턱에 다시 섰다. 대통령실은 “기업 이전은 정부가 검토할 사안이 아니며,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고 못 박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새만금은 기술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대통령실은 8일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과 관련해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공식 확인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클러스터 대상 기업의 이전을 정부가 논의한 적은 없다"며 “입지 결정은 기업의 판단 영역"이라고 밝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산업 기반을 흔드는 논의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권 논의를 정책 차원에서 일단 차단한 셈이다. 이 같은 대통령실의 거리 두기와 별개로, 새만금 RE100 산업단지 구상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점점 기술적·물리적 한계로 옮겨가고 있다. 재생에너지 잠재량만으로 반도체 산업 입지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새만금 반도체 이전은 '공장 하나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전력·용수·산단·계통을 처음부터 새로 짓는 국가급 프로젝트로, 최소 30조 원 안팎의 추가 비용과 장기 리스크가 전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전력 문제다. 반도체·AI 산업은 24시간 무중단 전력 공급이 전제다. 재생에너지는 장기적으로 확대해야 할 전원이지만, 태양광·풍력 중심의 전원 구성은 출력 변동성과 계절 편차를 피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하려면 대규모 백업 전원과 저장 설비, 그리고 무엇보다 초고신뢰 전력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만금 일대는 아직 반도체 공정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계통 안정성과 송전망이 구축돼 있지 않다. 수도권에 비해 송전선 신설에 따른 환경·주민 갈등 리스크도 더 크다. 발전소 설치 문제 역시 간단하지 않다. 반도체 단지를 단일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필요한 전력 규모는 수 GW(기가와트) 단위에 이른다. 이는 단순히 태양광 몇 기를 추가로 설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LNG·원전·수소 등 안정적 전원을 포함한 복합 전원 체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새만금은 그동안 '재생에너지 실험지'로 기능해왔을 뿐, 대규모 기저·조정 전원을 병행하는 산업 전력 허브로 설계된 적은 없다. 용수 공급도 구조적 제약이다. 반도체 공정은 전력만큼이나 막대한 양의 초순수(超純水)를 필요로 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용수 공급망을 구축해왔지만, 새만금은 아직 산업용 초순수 인프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장기 인프라 투자 문제가 뒤따른다. 반도체 산업에서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공정 특성상 미세한 변수 하나가 막대한 손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공정은 정전이 단 한 차례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수천억 원대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밀리초(ms) 단위의 전압 변동만으로도 공정 중인 웨이퍼 전량이 폐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력 공급뿐 아니라 산업용수, 전력망 인프라는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구축이 지연될 경우 공장 가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무중단 운영이 전제되는 만큼, 전력 안정성과 용수 공급, 계통 신뢰성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하나라도 부족하면 입지 이전은 성립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산업 입지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접근이라는 것이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전기·물·망이 하나의 시스템"이라며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이전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산업계에서는 새만금 이전론을 두고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산업 입지 전략을 혼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100은 입지를 옮기라는 요구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 공급 체계를 요구하는 글로벌 기준에 가깝다. 전력시장 제도, 요금 체계, 계통 운영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 이전론부터 제기하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라는 것이다. 야당 역시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현장 행보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같은 날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공사 현장을 찾아 “정치적 논쟁이 산업 경쟁력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반도체 생태계를 유지·고도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다. 결국 새만금 RE100 산업단지가 반도체 산업의 대안 입지로 거론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비전이나 구호보다 전력·망·용수라는 냉정한 기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지부터 입증해야 한다. 대통령실이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은 배경 역시, 이러한 현실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산업 전략은 분명 중요하지만, 첨단 산업의 입지는 선언이 아니라 검증된 인프라와 신뢰 위에서만 결정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윤상하 KIEP 실장 “독일, 에너지 비용 급등으로 구조적 어려움 직면”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실장은 9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에너지미래포럼 기조강연에서 “2026년 세계 경제는 전반적으로 둔화 국면에 있지만, 관세 충격에도 불구하고 하방이 일정 부분 방어되는 '비대칭적 완충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실장은 세계 경제 성장률에 대해 “2025~2026년 모두 3% 안팎으로, 팬데믹 이전 평균(3%대 중반)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절대적인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요인이 성장을 지탱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전망의 의미를 “정확한 숫자를 맞히기보다는, 기업과 정책 결정자들이 대비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상대적 강세, 유럽·일본의 구조적 부진, 신흥국 간 양극화가 뚜렷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성장률은 과거 평균보다 낮아지겠지만, AI를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가 전체 경기를 떠받치고 있다"며 “관세 충격이 예상보다 제한적인 것도 기업들의 빠른 공급망 재편과 환율 효과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유럽은 국가별 편차가 커지고 있다. 윤 실장은 “독일은 에너지 비용 급등과 산업 전환 지연으로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반면, 스페인은 관광·서비스업 호황으로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명목임금은 오르고 있지만 실질임금이 여전히 마이너스여서 내수 회복에 제약이 있다"며 “금리 정상화 과정이 경기 회복을 동반한 결과라기보다는 공급 충격 대응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성장 둔화와 산업 과잉의 이중 구조를 지적했다. 윤 실장은 “부동산 부문의 장기 침체와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산업 부문은 과잉 경쟁 속에서 저가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 같은 구조는 글로벌 시장에 디플레이션 압력을 전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해외 직접투자 유입과 내수 확대를 바탕으로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격 변수와 관련해서는 장기 금리의 하방 경직성을 강조했다. 윤 실장은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재정 적자와 신뢰 훼손 우려로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금리 전반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환율에 대해서는 “달러화는 중장기적으로 약세 압력이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과거 수준으로 빠르게 복귀하기는 쉽지 않다"며 “자본 이동과 해외 투자 확대 등 구조적 변화가 환율 레짐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는 공급 우위와 중국 수요 둔화를 이유로 “기조적으로는 60달러대 초반의 저유가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윤 실장은 향후 세계 경제의 주요 하방 리스크로 ▲미국 관세 정책을 둘러싼 사법 판단과 정책 불확실성 ▲각국의 재정 여력 약화 ▲AI 투자에 대한 기대가 자산시장 과열로 이어질 가능성 등을 꼽았다. 그는 “경제 주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수준보다 변동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라며 “정책의 일관성과 방향성 제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실장은 “2026년 세계 경제는 침체로 급락하지는 않겠지만, 국가·산업·계층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국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에너지, AI, 공급망 등 구조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각국의 성과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단독] 대통령 공약이 우선…‘햇빛소득마을’ 태양광 전력망 새치기 의혹

한국전력이 이재명 대통령 공약인 '햇빛소득마을' 태양광의 전력망(계통) 우선 연결을 위해 기존 사업자들의 계통 연결을 뒤로 미루고 있다는 이른바 '새치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부지를 매입하고 투자를 진행 중인 기존 태양광 사업자들은 기약없이 계통 연결이 지연되고 있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9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한국전력 충북본부와 강원본부는 신규 태양광 발전 전력의 계통 연결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에서 태양광 사업을 준비하던 사업자들은 지난해 12월 24일 한전 충북본부로부터 배전 물량 분배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강원도의 일부 사업자들도 한전 강원본부에 계통 연결을 신청했으나 반려 통보를 받았다. 태양광 발전사업을 하려면 발전소를 구축한 뒤 여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계통망(전력망)에 연결해야 비로소 판매가 이뤄져 매출이 발생한다. 계통 연결이 안되면 발전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사업자들은 지난해 5월 한전으로부터 계통 여유가 있다는 정보를 받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28일 한전은 '신규사업자 재분배 용량' 공지를 통해 강원도와 충북도에 각각 604메가와트(MW), 19.8MW 계통 연결이 가능하다고 알렸다. 사업자들은 이 공지를 기반으로 사업에 착수해 계통 연결을 신청했으나, 반려라는 뜻밖의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자들은 이러한 계통연결 제한 조치가 지난해 12월 16일 열린 국무회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는 햇빛소득마을 사업에 계통 우선접속을 부여하는 방안이 공식적으로 논의됐다. 햇빛소득마을은 마을공동체가 주도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운영하고 발전수익을 주민에게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모델로, 이 대통령의 공약 사업이기도 하다.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햇빛소득마을 계통 우선접속과 관련해 “구체적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게 아니면 꼭 법이 아니더라도 대통령령으로도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조원철 법제처장은 “기존의 법률 자체가 전기시설들을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마을공동체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우선적,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고 답했다. 이는 아직까지 법 체계상 햇빛소득마을 사업에 대해 다른 사업보다 우선적으로 계통연결을 허용할 근거는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 국무회의 직후 행정안전부, 기후에너지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는 공동 발표를 통해 햇빛소득마을을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간 500개씩, 총 2500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사업의 태양광 설비 용량이 0.3~1MW 수준으로 추진되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150~500MW의 계통 물량이 필요한 셈이다. 특히 당시 정부의 발표에는 햇빛소득마을 태양광 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계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통 우선접속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의 제정 및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또한 국회에서도 주민참여형 발전사업에 대해 전기설비를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 3건(더불어민주당 주철현·박지혜·안호영 의원 각 대표발의)이 발의된 상태다. 사업자들은 한전의 계통 연결 신청 반려가 국무회의 이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공약인 햇빛소득마을 태양광 사업에 우선 접속권을 주기 위해 법이 통과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계통 연결이 제한되고 있는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충북지역 사업자에게 통보한 내용에는 정부 부처 관련이라고만 명시했다. 한전 관계자는 본지의 계통 연결 제한 사유와 물량 재분배 여부에 대한 질의에 “현재 내부에서 협의 중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태양광 사업을 진행 중인 한 사업자는 “계통 연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알았다면 부지를 구매하거나 개발행위허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적으로 햇빛소득마을에 우선권을 주더라도 이미 인허가 절차에 들어간 사업자들까지 배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계통 연결만 남겨둔 사업자들이 적지 않아 연결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호현 차관 “전력시장과 요금체계 너무 경직돼…지금이 바꿀 골든타임”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은 9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에너지미래포럼에서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환경 의제에 머무는 정책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국가 전략"이라며 “전력시장과 요금체계 전반을 바꿀 골든타임에 와 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이후를 돌아보며 “초기에는 배출권거래제와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 기후 정책이 먼저 부각됐지만, 그 이면에는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 있다"며 “에너지 대전환을 통해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과거와는 다른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에너지는 국민의 삶이자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며, 국제적으로는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차관은 특히 전 세계적인 전기화(Electrification) 가속을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60% 이상이고 전기화 비중은 20% 초반에 불과하다"면서도 “노르웨이는 전기화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방글라데시조차 태양광 보급을 계기로 전기화 비중이 30%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이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공급망을 장악하면서 '페트로 스테이트'가 아닌 '일렉트로 스테이트'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중국은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통해 역설적으로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태양광, 전기차, 히트펌프 등 핵심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가 50~80%에 이르는 현실은 우리에게 전략적 선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중국과 같은 규모는 어렵더라도, 전 세계 전기화 시장에서 최소 10~20% 수준의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라며 “기후에너지환경부라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통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혁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전력시장과 요금체계 개편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 차관은 “현행 전력시장과 요금체계는 너무 경직돼 있어 새로운 비즈니스와 투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며 “가격 신호를 활용한 거래와 투자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고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안보 역시 전환 정책의 최우선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는 “에너지 안보는 이제 전력 안보와 동일한 개념"이라며 “중단 없는 전력 공급을 전제로 가격 수용성, 에너지 효율, 탄소중립을 함께 추구하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차관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보유한 정책 수단의 폭을 강조했다. 배출권거래제와 규제뿐 아니라 녹색금융, 전환 펀드 등 다양한 정책 도구를 활용해 “에너지 전환이 산업 전환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이 같은 방향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아 산업계와 함께 논의해 나가겠다"며 “에너지 전환이 불안이 아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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