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판결’ 폐기에 둘로 갈라진 미국..."낙태는 불법" vs "피난처 될 것"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미국이 둘로 쪼개졌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낙태권 인정 여부는 주(州) 정부와 의회의 몫으로 남겨졌는데 주별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다. 26일 AP, BBC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판결이 나온 직후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애리조나, 아칸소, 켄터키, 미주리, 사우스다코타, 위스콘신, 웨스트버지니아, 루이지애나 등에서는 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속속 중단했다. 이들 주에는 대부분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자동으로 낙태를 불법화하는 이른바 ‘트리거(방아쇠) 조항’이 적용되고 있어 이전처럼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가는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미주리, 루이지애나 주는 대법원 판결 직후 낙태가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에릭 슈미트 미주리주 법무장관은 "생명의 신성함을 위한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대법원의 판결이 이뤄진 이날 하루 휴무를 결정하고, 앞으로도 연례 휴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실제 아칸소주 리틀록의 한 병원은 대법원 결정이 온라인에 공개되자마자 문을 닫았다고 BBC는 전했다. 병원 직원들은 환자에게 예약 취소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한 간호사는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막상 나쁜 소식이 현실로 다가오면 무척 힘들다"며 "환자에게 낙태권 폐지 소식을 전하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여성 전문 병원도 문을 닫고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병원 관계자도 온종일 수십명의 환자에게 취소 전화를 돌렸다면서 "환자들이 충격 속에 말을 잇지 못했고,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앨라배마의 한 병원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24일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알리자 대기실이 눈물바다가 됐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 구트마허연구소는 미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트리거 조항이 적용된 주를 제외하고 미시시피와 노스다코타에서는 주 법무장관 승인 후에 발효될 예정이다. 와이오밍에서는 대법원 판결 5일 뒤부터 법률 효력이 발효된다. 아이다호, 테네시, 텍사스에서는 30일 뒤부터 낙태가 금지된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찬반이 팽팽히 갈리는 주에서는 투표로 최종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낙태권을 보호하는 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도 예상된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둔 주 정부들은 잇따라 낙태 시술을 보호하는 조치를 도입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25일(현지시간) 낙태가 불법인 주에서 출산 관련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미네소타로 오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도 이날 기자회견을 하고 워싱턴주가 출산 관련 선택에 대한 ‘피난처 주’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인슬리 주지사는 그러면서 조만간 발령할 행정명령을 통해 주 경찰이 낙태 시술을 받으러 워싱턴주로 온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다른 주가 제기한 어떤 인도 요청도 따르지 말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24일 캘리포니아에서 낙태권을 강화하는 법률인 AB1666에 서명했다. 이 법률은 낙태 시술을 하거나 이를 도와준 사람, 낙태 시술을 받은 사람을 상대로 다른 주에서 제기할 잠재적 민사 소송에 대해 보호막을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제임스 레티샤 뉴욕주 법무장관은 "뉴욕은 낙태를 찾는 누구에게라도 안전한 대피처가 될 것"이라며 원정 낙태 지원 입장을 밝혔고,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낙태권 유지를 위해 죽기살기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는 보험사가 낙태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USA-ABORTION/OKLAHOMA 미국 오클라호마주 한 낙태 수술병원(사진=로이터/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