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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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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근로시간 개편 '개문정차(開門停車)'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16 18:15
이진우 칼럼용

▲유통중기부 이진우 부장(부국장)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핵심축인 근로시간 개편이 ‘개문정차(開門停車)’한 상태다. 정부가 시동만 걸어둔 채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한다는 개편안은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노동계는 물론 젊은 MZ세대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자 윤대통령이 서둘러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때문이다.

당초 고용노동부는 이달 17일까지 근로시간 개편안을 입법예고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재검토가 떨어지자 부랴부랴 MZ세대 주축 노조와 청년 근로자, 중소기업 노사, IT업계와 연구기관 등과 현장간담회를 갖고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조만간 전국민 6000명 대상으로 근로시간 개편 관련 여론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17일 입법예고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올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 또한 희망 섞인 전망일뿐이다.

윤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입장에서 윤석열 당선의 지지표였던 2030세대의 이반은 내년 4월 국회의원선거 필승전략에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격이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취임 첫 달인 지난해 5월에만 ‘50%’를 찍었을뿐 이후 줄곧 ‘30% 박스권’(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에 갇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내년 선거에서 야당을 찍겠다는 응답이 과반을 기록할 정도로 ‘국정 안정’보다 ‘권력 견제’ 여론이 더 높다.

이같은 ‘반(反) 여권 정서’는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국정 동력을 저하시킨다. 근로시간 개편안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기업 경영주 입장에선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근로시간을 늘리기를 원한다. 현행 주 52시간으로는 납기를 맞추기 힘들고, 규정을 어기면(시간 초과하면) 법 위반으로 범법자가 될 처지에 몰리기 때문이 주 52시간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친기업 노선의 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주 52시간제를 ‘기업 규제’로 규정하고 주 69시간제의 개편안을 내민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는 ‘근로의 주체’ 노동계의 주장이 빠져있다. 그동안 경제단체 위주의 설명회, 간담회에 몇몇 중소벤처기업 근로자를 참석시켜 ‘일을 더해서라도 돈을 더 받고 싶다’는 발언을 마치 근로자 대표 입장인양 치장됐다.

기업들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로 ‘내 일자리가 사라질까 걱정하는’ 21세기의 산업 근로자들에게 ‘일을 더하는 것만이 생존’이라는 구시대적 근로 가치관이 통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자, 착각이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최근 발표한 ‘MZ세대 기업(인) 인식조사’ 결과가 이같은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2030세대들은 취업하고픈 기업으로 ‘월급과 성과보상체계가 잘 갖춰진 기업(29.6%)’보다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 보장되는 기업(36.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전경련도 "(MZ세대가) 월급과 정년보장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인식변화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근로시간 연장이 더 우려스러운 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저출산’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물가, 고금리로 국민들의 경제적 여유가 침식되고 있는 마당에 부족한 생계비를 근로시간으로 더 때우라고 한다면 어느 월급쟁이 부부가 자녀 갖기를 원하겠는가.

좋은 정책은 국민의 삶에 공평한 복지를 가져다 주는 것이지, 특정 집단의 편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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