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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4월,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첫 원전이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했다. 우리는 공사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1990년대 한빛 3·4호기에서 기술자립의 첫발을 뗐고,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에 이어 지난해에는 체코 신규 원전 사업까지 수주했다. 고리 1호기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가 원전의 본고장 미국에 원전을 짓는 길을 열었다. 지난 1일 한미 양국은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최대 1200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짓는다. 이 중 2기가 우리 APR1400이다. 한국형 원전이 미국 본토에 들어서는 첫 사례다. 원전 기술을 배워 온 나라가 이제 원전종주국의 시장에 진출하는 셈이다. 우리 원자력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상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한국의 원전 기술력과 시공 역량을 인정하고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한 것이다. APR1400은 이미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받았다. 외국 노형으로는 처음이었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4기를 성공적으로 지은 실적도 있다. APR1400 2기가 전부가 아니다. 나머지 AP1000 6기에도 국내 설계·시공 기업과 기자재 기업의 참여가 추진된다. 노형 하나를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원전 공급망과 건설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 역시 무너진 원전 공급망과 건설 역량을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건설 경험이 미국의 원전 확대와 맞물리는 이유다. 원전은 이제 국가 전략기술이 됐다. 필요한 기술과 공급망을 가진 나라는 협상장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반도체와 조선에 이어 원전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미 원자력협력과 원전 외교에서도 우리의 발언권은 한층 커질 것이다. 그러나 기회의 문이 열렸다고 결실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국내 신규 원전 건설과 체코 원전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미국 사업까지 더해진다. 여러 사업을 함께 해내려면 우리 기업의 역량을 키우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미리 갖춰야 한다. 첫째, 미국의 품질보증과 인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 미국 원전에 기자재를 공급하려면 연방규정이 정한 원자력 품질보증 요건과 관련 인증을 충족해야 한다. 안전 관련 결함을 규제기관에 보고할 법적 의무도 따른다. 대기업은 미국 원전에 주기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수많은 중소 협력사다. 정부가 이들 기업의 인증 취득 비용과 품질 전문인력 양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둘째, 현지 법과 건설제도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은 연방법뿐 아니라 주(州)별로 건설과 노동 관련 제도가 다르다. 인허가 절차, 현장 안전기준, 노무 관행도 우리와 다르다. 사업 초기부터 현지 법률과 인허가, 노무제도에 정통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공기와 비용의 불확실성을 제도로 관리해야 한다. 미국 보글 3·4호기는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가 신규 원전 사업의 가장 큰 위험임을 보여줬다. 미국 정부가 신규 원전 인허가 기간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힌 만큼, 이를 이번 사업에 실제로 적용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원전 사업 부지에 적용되는 연방법과 주법, 인허가 절차와 규제기관 간 관계를 미리 정리해야 한다. 불필요한 중복 절차를 줄이는 특례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기업 역시 설계 확정과 기자재 조달을 철저히 준비해 공기를 지켜야 한다.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의 위험을 어느 한쪽에 떠넘기지 않는 합리적 분담 체계도 필요하다. 넷째, 우리 근로자를 보호할 제도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불거진 한국인 근로자 비자 문제는 해외 대형 사업에서 근로자의 법적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원전은 장기간 고도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착공 전에 기술인력의 입국과 근무를 보장하는 비자·취업허가 체계를 양국이 합의해야 한다. 현지 산업재해 보장과 법률 지원 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반세기 전 우리는 배우는 나라였다. 이제 미국과 함께 원전을 건설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나라의 몫이다. 정부는 제도로, 기업은 역량으로 답해야 한다. 미국 원전시장 진출의 성패는 계약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되는 준비에 달려 있다. 이제는 준비의 시간이다.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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