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정부의 용산공원 주택 공급 방침 철회를 전제로 보전 가치가 낮은 훼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주택 공급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그린벨트가 정부와 서울시 간 협상의 새 카드로 떠올랐다. 용산공원과 탄천물재생센터를 둘러싼 논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사업화가 가능한 훼손 그린벨트에서 공급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29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김윤덕 국토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다음 주 세 번째 회동을 열고 서울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양측은 최근 두 차례 회동에서도 용산공원 본체 부지 활용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지만, 훼손 그린벨트와 탄천물재생센터,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대체 공급 방안에 대해서는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새로운 변수는 훼손 그린벨트다. 서울시는 정부가 용산공원 본체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려는 방침을 철회할 경우 녹지로서 기능을 상실했거나 보전 가치가 낮은 훼손 그린벨트를 선별해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그동안 그린벨트 해제에 신중했던 서울시가 용산공원 보존을 조건으로 제한적인 해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도심 한복판의 국가공원을 훼손하는 대신 이미 창고나 주차장, 비닐하우스 등으로 이용돼 녹지 기능이 떨어진 지역을 활용하자는 논리다. 다만 국토부와 서울시는 훼손 그린벨트 검토의 전제를 놓고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 장관은 최근 오 시장과의 회동 결과를 설명하면서 서울시가 훼손 그린벨트 활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서울시는 용산공원 주택 공급 계획을 철회하는 것이 그린벨트 검토의 전제라고 재차 밝혔다.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를 독립적인 공급 대책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용산공원 본체를 지키기 위한 교환 조건으로 제시한 셈이다. 다음 주 회동에서도 정부가 용산공원 공급 구상을 유지할 경우 훼손 그린벨트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제도적으로도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그린벨트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는 수도권 공공주택지구 조성을 위해 해제하는 그린벨트 면적을 지방자치단체별 해제 가능 총량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이 의결됐다. 지자체가 기존에 배정받은 해제 가능 면적을 소진하지 않고도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과천경마장·국군방첩사령부 일대 1만6100가구 공급과 태릉CC 관련 절차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가 훼손 그린벨트 후보지를 제시하면 중앙정부의 공공주택지구 지정과 총량 예외 제도를 결합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관건은 실제 후보지와 공급 규모다. 서울시는 아직 검토할 수 있는 훼손 그린벨트의 구체적인 위치와 면적, 예상 공급량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린벨트라고 해도 환경평가 등급과 생태적 가치, 주변 기반시설 여건이 각각 다른 데다 해제 과정에서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발생할 수 있다.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 학교와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 필요한 비용과 기간도 따져야 한다. 보전 가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실제 공급 효과는 후보지가 공개돼야 판단할 수 있다. 김 장관은 지난 27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다음 달 공개할 수도권 7만3000가구 이상의 추가 공급 후보지에는 현재 서울 물량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 시장과 대화만 잘되면 서울에서 3만~4만가구 정도가 추가될 수 있다"며 전체 공급 규모가 10만가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추가할 3만~4만가구는 훼손 그린벨트 한 곳만으로 확보하기보다 여러 공급 방안을 조합해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탄천물재생센터와 동부도로사업소, 세텍(SETEC) 일대를 연계해 최대 1만3000가구를 공급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학교 부지 확보를 전제로 기존 6000가구에서 8000가구까지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훼손 그린벨트와 도심 유휴부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에 따른 공급 물량을 더하면 정부가 제시한 3만~4만가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용산공원 본체를 둘러싼 입장차는 여전히 크다. 김 장관은 어린이정원이 공급 대상지로 확정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구 방위사업청 부지와 장교숙소, 병원·옛 미군학교 부지 등 이미 훼손되거나 개발된 공간에서 청년·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공론화하자는 입장이다. 오 시장은 용산공원특별법 개정과 미군기지 반환, 토양 정밀조사와 오염 정화, 인허가 절차 등을 고려하면 현 정부 임기 내 착공이 불가능하다며 본체 부지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용산공원 대신 훼손 그린벨트를 활용하자는 제안에는 공원 보존이라는 명분과 공급 확대라는 실리를 함께 확보하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탄천물재생센터 역시 즉시 공급할 수 있는 부지는 아니다. 약 2조4967억원 규모 시설현대화 민간투자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의 적격성 조사 단계에 있고, 상부 주택 개발은 현재 조사와 별도 사안이다. 시설 이전 부지와 악취·소음 대책, 구조 안전성, 추가 사업비와 공사 기간 등도 검토해야 한다. 결국 다음 주 3차 회동에서는 훼손 그린벨트가 용산공원 갈등을 풀고 서울 추가 공급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용산공원 본체 공급 구상을 어느 수준까지 조정할지, 서울시가 그 대가로 어느 후보지를 얼마나 내놓을지가 협상의 성패를 좌우한다. 다만 '훼손 그린벨트 활용'이라는 원칙만으로는 주택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 양측이 구체적인 후보지와 공급량, 공공주택 비율, 사업 일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린벨트 카드 역시 용산과 탄천에 이은 또 하나의 선언적 대안에 머물 수 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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