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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남북 경협은 재개돼야 한다

남북 경협은 재개돼야 한다

북한은 1984년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 합영법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자구적 조치를 취해 왔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을 통해 유엔 대북 제재가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로 남북 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 통일에 이러야 한다는 민족적 당위성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순수한 투자 측면에서 북한은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투자처이자 혁신적인 이머징 마켓이 될 수 있다. 북한은 다른 이머징 마켓들이 가지..

[EE칼럼] 한전홀딩스, 개혁을 가장한 시대역행

한전홀딩스, 개혁을 가장한 시대역행

최근 전력산업의 논의 지형에 가칭 한국통합발전공사 혹은 '한전홀딩스'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일부 관계자들이 ㈜한국전력(이하 한전)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한전과 발전 자회사의 역할을 재배열하자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발전 자회사들 사이의 역할 중복, 100% 모회사로서 한전이 행사해온 수직적 지배구조, 중복된 연구개발(R&D) 투자가 비효율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이를 지주회사라는 새로운 틀 아래서 단번에 정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뒷받침되고 있다. 얼핏 보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구조개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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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트럼프 3선론 해부

트럼프 3선론 해부

간을 보는 것인지 또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기 백악관 집무실 결단의 책상 위에 “TRUMP 2028" 문구가 새겨진 빨간색 모자를 올려놓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내가 2028년 미 대선에 다시 출마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미소로 보인다. 이른바 트럼프 3선론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대통령이 세 번씩 임기를 수행하는 것은 위헌이다. 애초 건국 당시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 제한 조항이 없었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첫 임기를 마치고 자신의 농장인 버지니아의 마운트 버논으로...

[이슈&인사이트] 길을 잃은 소상공인… 소진공 지원의 ‘구조적 피로’

길을 잃은 소상공인… 소진공 지원의 ‘구조적 피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전신을 20년 넘게 지켜봤다. 밖에서 보기엔 “예산도 늘고, 사업도 많고, 지원도 두터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진공이 소상공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먼저 공단 직원들이 구조적 행정과부하에 지쳐 있다. 새로운 사업이 쏟아지고, 공고·심사·정산·평가까지 겹치면서 하루 대부분을 서류와 시스템 입력에 쏟아 넣는다. “이 사업을 왜 하는지, 무엇이 효과가 있었는지"를 놓고 토론하고 실험할 여유가 없다. 창의적 기획 역량은 있지만 행정 과부하에 밀리기 쉽다. 소상공인은 또 어떠한가. 정책자료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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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산업용 전기요금 내린다면…‘파괴적 혁신’ 마중물 돼야

전기요금 때문에 산업계가 아우성이다. 지난해 말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h)당 185.5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2022년 1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75.8%나 올랐으니 불만이 나올 만하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산업용보다 더 비쌌던 구조도 어느 순간 역전된 상황이다. 전기요금에 쏟아지는 아우성은 업황 부진에 빠진 철강과 석유화학 업계에서 가장 크게 들린다. 유관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철강은 탄소 배출을 줄이려 석탄을 연료로 쓰는 고로 대신 도입한 전기로 가동으로 전기요금 부담이 늘고 있다. 석화도 설비 규모가 워낙 거대해 전체 매출의 5%가량(2025년 2분기 기준)이 전기료로 빠져나간다. 전기료를 한시적으로라도 깎아주면 철강 및 석화 기업들이 사업 체질을 개선하는 데 힘을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전기료 인하가 단순히 철강·석화업계의 '버티기용 수단'이 될 순 없다. 반대 논리가 만만치 않아서다. 당장 발전사들은 내년부터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부담이 커진다.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야 하기에 지출 요소가 크다. 또한, 미국 등 주요국가들이 전기료 지원을 국가 보조금 지원으로 간주해 자국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불공정 무역'을 핑계로 제재를 가할 경우 우리 정부와 업계에 통상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사실상 철강업계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효과와 같다는 논리로 무역 조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같은 전기요금 인하 반대 논리를 돌파할 만한 유인책으로 국내 철강·석화사들이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수퍼 을(乙)'이 되는 것을 떠올려 본다. 범용 메모리로 성장해 온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미국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반도체 장비 제조사들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현재 모습을 철강과 석화산업이 본보기 삼았으면 하는 '상상'이다. 전기료 감면으로 마련한 '버티기 체력'을 연구개발에 쓰고, 이를 통해 개발한 혁신소재를 해외시장에서 무역 제소를 피할 지렛대로 삼자는 것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속 생존법이 결국 '국내 공급망 강화'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철강과 석화업계는 '파괴적 혁신'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소재 연구개발은 당장에 바짝 투자한다고 성과를 낼 수 없다. 기초·응용 과학 같은 학문적 토대부터 복원하고, 어떤 소재 개발에 집중할 지를 민관이 판단해 과감히 투자하는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기료 감면 정책을 철강·석화산업의 단기성 버티기 수단이 아닌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소재 경쟁력을 강화하는 마중물로 일대 전환하는 '파괴적 혁신'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수퍼 을 전략'의 큰 그림 속에서 전기료 감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3선론 해부

간을 보는 것인지 또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기 백악관 집무실 결단의 책상 위에 “TRUMP 2028" 문구가 새겨진 빨간색 모자를 올려놓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내가 2028년 미 대선에 다시 출마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미소로 보인다. 이른바 트럼프 3선론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대통령이 세 번씩 임기를 수행하는 것은 위헌이다. 애초 건국 당시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 제한 조항이 없었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첫 임기를 마치고 자신의 농장인 버지니아의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독립전쟁을 이끄느라 지쳤는데 아무 준비가 안 된 미국의 새 정부까지 정비하느라 더 이상 수도에 남아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워싱턴의 희망과 반대로 돌아갔고 그 후 미국에서 대통령의 임기는 최대 두 번으로 굳어졌다. 흑백 갈등과 사회 분열이 심했던 1800년대에는 8년은커녕 4년으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적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를 이끌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무려 4번의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했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불문율 덕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전쟁 중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건강도 상할 만큼 상했다. 결국 1945년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40일 만에 사망했다. 그 후 1951년에 대통령의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하는 수정헌법이 통과되었다. 그 조항을 보면 누구도 두 번 이상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No person shall be elected to the office of the President more than twice)라고 적고 있다. 두 번 연달아서이건 아니면 트럼프같이 한번 쉬고서이건 무조건 두 번 이상은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2년 이상 대통령을 승계한 경우도 한 번의 임기를 마친 것으로 간주하여 한 번만 더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If a person has served as President or acted as President for more than two years of a term to which some other person was elected President, that person cannot be elected President more than once). 그래서 항간에는 2028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부통령으로 출마한 뒤 당선되어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미 헌법의 빈틈을 파고들겠다는 심산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임기 1년도 지나지 않아 40%대 아래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에 예견되었다. 트럼프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와 관세전쟁을 벌이면 당연히 소비자 물가가 오를 것이 뻔했다. 경제가 크게 악화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갈 리 만무하다. 내년 중간선거까지 위태롭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방향으로 개헌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개헌이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개헌절차는 상하 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고 또 3분의 2 이상의 주의회에서도 찬성을 얻어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200년 이상 동안 27개의 수정헌법을 추가하는 데 그친 바 있다. 현재 상하 양원에서 어느 한 당이 3분의 2정도 의석은커녕 과반수에서 조금 더 많은 의석을 겨우 확보하는 상황에서 개헌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트럼프는 3선론으로 시선을 끌고 자기 맘대로 대통령 놀이를 즐기려는 거로 보인다. 이준한

[EE칼럼] 남북 경협은 재개돼야 한다

북한은 1984년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 합영법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자구적 조치를 취해 왔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을 통해 유엔 대북 제재가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로 남북 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 통일에 이러야 한다는 민족적 당위성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순수한 투자 측면에서 북한은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투자처이자 혁신적인 이머징 마켓이 될 수 있다. 북한은 다른 이머징 마켓들이 가지고 있는 저렴한 노동력과 임대료라는 장점 외에도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인구의 대부분이 중고등 교육 이상을 수료하여 양질의 노동력 공급이 용이하다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북한은 2,500만의 북한 시장 뿐만 아니라 1억 4천만 명에 이르는 중국 동북 3성(요녕. 길림. 흑룡강성) 시장 및 러시아 연해주, 중앙아시아 시장 등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던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는 중국 동북러시아 극동지역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남북 경제 공동체를 구현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 있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의 북한 투자 방식은 주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북한 투자가 다시 재기될 경우 다수의 기업들이 동일하게 채택할 방식으로예상된다. 그러나 남북 관계 악화 시 지난 5.24조치와 같은 전면적인 교류 금지 조치가 다시 취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한 후 북한에 투자하는 아웃 바운드 업무를 포함한 북한 투자 방식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남과 북한 사이의 특수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져 북한이 남한 기업들에게 다른 외국 투자자들보다 더 많은 투자 혜택을 부여하는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 기업들이 투자하는 경우 일반적인 외국인 투자법이 아닌 북남경제협력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을 적용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주로 진출할 지하자원 개발에 대해선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황해도 연안군 정촌 흑연광산 개발은 북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특구에 북한은 남한에 외국인 투자법 외 별도의 혜택을 부여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외국 기업의 북한 투자 시 직접 투자보다는 이미 관련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국제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한국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한 후 이를 통해 북한에 투자하는 인바운드 업무를 포함한 북한 투자자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경우 한국 기업과 동일하게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만약 남북 간 교류가 재개되거나, 아니면 북미 간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유엔 제재가 해제된다면 우리 정부는 어떤 협력 사업을 진행할 지 생각해야 한다. 남북 교류가 잘 진행되었던 2006년 6월 남과 북은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에 관한 합의“를 체결했다. 북한의 아연, 마그네사이트 등 남북이 합의한 광물 및 광산에 대해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남과 북은 합의에 따라 2007년 7~12월까지 6개월간 북한 함경남도 단천지역 3개 광산(검덕 아연, 대흥 및 룡양 마그네사이트 광산)에 대해 3차례 공동조사를 했다. 남과 북 교류가 재개된다면 이것부터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2011년 11월 필자가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개발지원 본부장(실무단장)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한 민족경제협력련합회 산하 명지총회사로부터 북한산 희토류 샘플 4개를 받았는데 이는 희토류 개발을 남한과 같이 하자는 의미였다. 그 날 광물자원공사와 북한 명지총회사는 “남북 자원개발 합의서"를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북측에 부존되어 있는 광물 중에서 “희토류, 흑연, 마그네사이트, 연아연, 석회석, 석탄, 철광석" 등 7가지 광물과 북측에서 제공하는 광물(광산)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 적극 협력키로 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합의 사항은 이행되지 못했다. 결론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정책이 북한과의 교류 협력에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이를 잘 실행할 수 있는 통일부 산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의 업무가 강화돼야 한다. 2007년 설립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북한 지하자원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지하자원 관련 각종 현황 정보를 모니터링하여 제공하고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일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라"라는 말이 있다. 강천구

[신연수 칼럼] 치솟는 집값, 수도 이전이 답이다

정부 규제 때문에 대출을 거의 못 받는 데다 갭투자도 불가능해 당장 필요한 현금만 20억~25억 원이었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청약은 이런 상황 때문에 경쟁률이 높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놀라웠다.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 가족 수 5명 이상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가점 70점 이상인 신청자가 5만 4631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238대 1을 기록했다. 당첨되면 20억~40억 원의 시세 차익이 그냥 생기니, 묵혀둔 청약통장과 돈가방을 싸들고 몰려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벌써 세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의 신축 아파트 25평형(59㎡)이 50억 원, 34평형(84㎡)이 70억 원이니 “집값이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지금 서울 부동산 시장은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분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활화산 같다. 사실 땔감은 윤석열 정부가 제공했다. 부동산 세금의 대폭 완화, 전 전부보다 크게 줄어든 공동주택 인허가와 착공이 시장 불안을 예고했다. 이재명 정부도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집권하자마자 13조 원의 소비 쿠폰을 풀고 확장재정을 선언하면서 시중 유동성 확대와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집값이 오르자 정부는 10·15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곳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의 3중 규제로 묶었다. 사상 최강의 규제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별 효과 없음이 드러났다. 강남북을 불문하고 매매가에 이어 전월세 가격까지 뛰고 있다. 이번 달에는 공급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서울에 새로 집 지을 땅이 별로 없는 데다 재건축·재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려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다. 서울 집값은 이미 경제 정책으로 풀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모든 것이 서울로 몰리는 '수도권 집중'을 끊어내지 않고는 서울도, 지방도 살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 정점을 찍고 줄고 있지만,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 아무리 집을 더 지어도 집값이 오르고 교통난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수치들은 모두 강한 경보음을 울린다. 지난주 국가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사한 인구 10명 중 7명이 청년이었다. 2025년 3월 기준 국민의 자산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이 부동산 가격 상승이었다. 청년 일자리 부족, 자산 양극화,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절망 사회', 수도권 교통과 주거난, 저출산 같은 많은 문제가 수도권 집중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 비대화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수도 이전을 추진했던 2003년 전체 인구의 47%가 수도권에 살았는데 지금은 50%가 넘는다. 반면 비수도권은 한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였던 부산마저 해마다 인구가 줄어 소멸을 걱정할 지경이다. 집의 노예가 된 서울 사람들을 살리고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시급한 정책은 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 이동이 효과가 크겠지만, 민간을 강제로 보낼 수 없으니 공공이 모범을 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국회, 법원 등 힘 있는 기관들은 전부 세종으로 가야 한다. 미국 뉴욕이 경제 수도, 워싱턴DC가 정치 수도인 것처럼 서울은 경제 수도, 세종을 정치 수도로 만들자.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각 지역을 광역으로 묶어 경쟁력을 높이고, 농가 기본소득을 주는 등 여러가지 정책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을 멈추고 지역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정책은 역시 수도 이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 균형발전은 국가 생존전략"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정작 정부 여당이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굵직한 정책이 없다. 지금 민생에서 가장 심각한 과제는 수도권 주거 안정과 지역 균형발전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 이전과 헌법 개정을 국민투표에 부치자. 수도 이전이 성공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가장 뚜렷한 치적으로 남을 것이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기자의 눈] 초고령 사회 진입, 건설업계 대안 있나

우리나라가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20%가 고령층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인 2045년엔 고령층 비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령층인 '노인 국가'가 되는 셈이다. 평균 수명은 증가하는 반면, 출산율은 곤두박질 치면서 갈수록 우리나라 고령화는 속도를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늙어가면 사회 전반적으로 타격이 크지만 특히 건설업계 입장에서 초고령 사회는 '재앙'이나 다름 없다. 실제로 공사 현장에선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들었던 공사 현장의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신들린 '막노동(노가다)' 노하우는 반드시 현장에서 필요하다. 요즘도 60세를 훌쩍 넘긴 '노인 어벤져스'들이 여전히 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눈 감고도 척척 건물을 올리던 현장의 숙련공들도 결국 세월이 지나면 은퇴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들에게 공사 현장을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노련한 현장의 베테랑들이 가지고 있는 건설 기술과 노하우는 후임들에게 전수되야 한다. 문제는 이미 공사 현장에 이들의 노하우를 이어받을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3D 일자리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청년 현장 근로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가 사라진 공사 현장의 빈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말도 안 통하는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노련한 베테랑급 숙련도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들은 K-건설 신화를 써온 건설 숙련공들이 수십 년간 공사 현장에서 익히고, 노하우가 녹아든 '감'이 아닌, FM 메뉴얼을 보며 일을 배우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겨우 노하우를 습득할 때 쯤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공사비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베테랑 숙련공들이 은퇴하고, 빈 자리가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지면서 작업 완성도가 떨어지고 부실 공사가 난무하고 있다. 공사기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 공사비 증가로 이어진다. 고령화가 건설사의 수익 악화·성장 동력·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K-건설의 신화를 지속하기 위해선 신기술과 로봇, 인공지능(AI) 등 외에도 환경개선·인력 양성·소재 및 첨단 공법 등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이슈&인사이트] 길을 잃은 소상공인… 소진공 지원의 ‘구조적 피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전신을 20년 넘게 지켜봤다. 밖에서 보기엔 “예산도 늘고, 사업도 많고, 지원도 두터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진공이 소상공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먼저 공단 직원들이 구조적 행정과부하에 지쳐 있다. 새로운 사업이 쏟아지고, 공고·심사·정산·평가까지 겹치면서 하루 대부분을 서류와 시스템 입력에 쏟아 넣는다. “이 사업을 왜 하는지, 무엇이 효과가 있었는지"를 놓고 토론하고 실험할 여유가 없다. 창의적 기획 역량은 있지만 행정 과부하에 밀리기 쉽다. 소상공인은 또 어떠한가. 정책자료집에는 사업 이름이 빼곡하다.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디지털 전환', '상권활성화' 같은 정책용어는 넘쳐나는데, 정작 소상공인들은 “나는 뭘 받아야 가게를 살릴지, 아니면 안전하게 정리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고가 나가도 신청자 채우기에 급급하고, 모집을 마쳐도 참여자 상당수는 사업 취지와 요구를 잘 모른 채 끌려온다. 컨설턴트의 질도 들쭉날쭉하다. 현장을 꿰뚫고 매출 개선에 기여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서류용 보고서만 양산하는 컨설팅도 적지 않다. 이는 컨설턴트 성의 부족만이 아니라, 컨설팅이 매출과 생존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숫자와 이야기로 추적하지 않는 현재 사업 구조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답답한 대목은 “소상공인 여정이 없다"는 점이다. 소상공인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사업 목록이 아니라 경로다. 한 번 진단을 받고, “사장님은 지금 '버티기 단계'이니 1번 사업이 우선이고, 이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단계에서 2번·3번 지원으로 넘어갑시다"라고 안내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실의 지원사업은 잘게 쪼개진 칸막이 속에 흩어져 있을 뿐, 소상공인의 생애주기와 위험도에 따라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 사실 소진공은 전국에 촘촘히 깔린 지역센터망, 상권정보와 기금 데이터를 한 손에 쥐고 있고, 컨설턴트와 전문가 네트워크도 이미 갖추고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렇게 다양한 인프라와 데이터를 한 기관이 동시에 가진 사례는 드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사업 목록' 중심이 아니라 '소상공인 여정' 중심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 이제 소진공이 바꿔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사업을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부서·예산 단위가 아니라 소상공인의 삶 기준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창업·초기, 성장·혁신, 수출·도약, 위기·재기'처럼 몇 개의 굵은 코스로 나누고, 소상공인이 어느 코스에 있는지 진단을 해야 한다. 이 진단이야말로 소진공의 핵심역량이 되어야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제대로 나오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창구를 진짜 원스톱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원스톱 서비스"는 구호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지역센터·온라인(소상공인24)·콜센터· 지자체 창구가 제각각이다. 어느 창구를 먼저 찾아가도 한 장짜리 '통합 상담카드'로 상황을 파악하고, 과거 상담·지원 이력이 한 번에 보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출발점이다. 셋째, 위기·폐업·재기·재난을 하나의 경로로 묶어야 한다. 연체가 시작되고, 임대료가 밀리고, 결국 폐업을 고민하게 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정책은 재난, 채무조정, 폐업정리, 재창업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시기에 여러 기관을 전전하며 행정 절차까지 견뎌야 한다. 핵심은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흩어진 제도를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와 표준 시나리오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는 보고서가 아니라 행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소진공은 이미 BSI, 상권정보, 기금 데이터 등 많은 숫자를 모으고 있다. 이제는 이를 업종·지역별 '위험등급 지도'로 바꾸고, 경보 수준에 따라 어떤 지원을 앞당길지 룰을 만들어야 한다. 위기가 심한 지역에는 상권 활성화와 디지털 전환, 컨설팅과 정책금융이 먼저 들어가게 하는 선제적 개입이 필요하다. 소진공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복잡한 제도를 정리해, 소상공인들이 자기 여정을 따라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제 지원사업의 숫자가 아니라, 경로의 단순화와 여정 설계를 중심에 두는 거버넌스 전환이 소상공인 정책의 다음 단계가 되어야 한다. 박주영

[데스크 칼럼] AI 시대, ‘한국형 ODA’의 새 기회

지난달 정부가 주관한 '2025 개발협력주간' 행사에서 한 국내 벤처창업가는 대표적 저개발국인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깜짝 놀랐던 경험을 전했다. 1인당 GDP가 세계 150위권인 이 나라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한 마을을 방문했는데 농업용 관개수로나 식수용 상하수도 시설은 없어도 현지 주민의 스마트폰과 이를 위한 통신망 인프라는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식수 및 위생 개선사업을 하는 이 창업가는 높은 현지 스마트폰 보급률을 활용해 비용은 물론 시간, 공간, 인간의 제약조건을 극복한 새로운 개발협력 사업 기회를 봤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자리바꿈한 모범적인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무상원조 규모는 미국, 독일, 일본 등 기존 공여국(선진국)에 비해 10~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고안한 원조 방식이 '프로젝트 원조'였다. 선진국처럼 도로, 철도, 항만, 발전소 등 대규모 원조(공적개발원조·ODA)를 무상으로 제공할 순 없지만, 학교, 병원 등 비교적 소규모 시설을 무상으로 지어주면서 동시에 한국의 강점인 '맨 파워'를 결합해 교사, 의사 등 봉사자를 파견하고 현지인을 국내로 초청 연수해 주는 '물적+인적 결합 패키지' 원조 방식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는 교육, 의료, 위생 등 저개발국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한국 봉사자와 현지 주민간 스킨십을 가능케 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우리나라와 지리적·역사적 연관이 별로 없던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에서도 '글로벌 프렌드 코리아'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가성비 좋은' 무상 ODA 사업방식에 또다른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ODA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저개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는 식량부족이다. 이는 저개발국의 높은 인구증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증가와 농작물 수확량 감소가 더 큰 요인으로 꼽힌다. 기후위기 대응은 글로벌 공통 과제지만 특히 저개발국은 대응 능력이 부족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상 ODA 대표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AI를 활용한 기후위기 대응 사업을 미래 ODA의 핵심 사업으로 꼽고 있다. 저개발국의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한국의 IT 및 AI 역량을 결합해 막대한 원조자금을 들이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기후변화 피해를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라오스의 특정 농경지역에서 단기(10일) 및 중장기(3개월) 강수량 예보, 지하수 정보, 토양수분 실시간 정보 등을 AI로 분석해 현지 농민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제공함으로써 가뭄·홍수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 개발 및 보급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이 아이디어는 코이카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공동 주관하는 AI 기반 기술 공모전인 'AI for Climate Action Awards 2025(2025 AICA 어워즈)'에서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된 바 있다. 나아가 코이카는 기존 코이카가 직접 주도하던 원조 방식을 넘어, 민간 대기업, 스타트업, 소셜벤처, 수혜국 현지기업들이 서로 협업해 개발협력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플랫폼' 역할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BS)' 등 신개념 개발협력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코이카의 새로운 ODA 전략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 한국형 AI 모델을 보급하고 현지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우리 AI 기업이 활용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내걸은 '세계 3대 AI 강국'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AI 시대에 다시 한번 ODA 모범 국가로 자리잡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아직도 요원한 윤석열 청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이 오는 14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윤석열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상식적 차원에서 너무나도 명백한 위헌, 위법적인 범죄다. 그런데 내란 재판은 1년 넘게 어이지고 있다. 이러다가 윤석열이 다시 풀려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책임이 막중한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반성과 사과는커녕 모든 잘못이 민주당에 있다고 강변한다. '친윤'이 말려도 막무가내다. 국민의힘 당원 중에는 불법 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은 대다수 국민에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남긴 폐단은 한둘이 아니다. 부자 감세로 세수 부족 사태를 유발했고, 연구개발(R&D) 예산을 깎는 바람에 인재가 이탈하며 과학기술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국가 공동체를 위협하는 극우 세력의 발호다. 예전엔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극우주의자들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주류 행세를 하고 있다. 무자격자가 권력을 잡아 국가 위기를 초래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은 주나라(서주) 말기 여왕, 유왕과 많이 닮았다. 여왕은 '입틀막'의 고사를 남겼고 유왕은 애첩을 위해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여왕은 비밀경찰을 대거 풀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마구 잡아들여 죽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길에서도 입을 열지 않고 눈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도로이목(道路以目)'이라는 고사가 나온 연유다. 지난해 2월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에서 윤석열이 축사하는 도중에 한 졸업생이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했다. 경호원은 그의 입을 손으로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 '입틀막' 장면은 윤석열의 불통과 언론 탄압의 상징이 됐다. 김건희 방탄을 위한 '권력 사유화'는 더 심각한 문제다. 이는 서주를 망하게 한 유왕을 연상케 한다. 유왕은 후궁인 포사를 위해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웃지 않는 포사를 웃기려고 봉화를 올렸다. 당시 봉화는 국가 존립의 최후 보루였다. 이민족이 침입했을 때 지방에 있는 제후국 군대를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귀중한 공적 자산을 연인의 미소를 보려고 남용한 것이다. 윤석열은 구치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변호인에게 김건희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특검은 불법 계엄의 동기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뇌물 수수 등으로 처벌 위기에 처한 김건희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비상계엄은 유왕이 포사를 웃게 하려고 봉화를 올린 것과 다름없다. 유왕은 또 후궁인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적장자를 제거하려 했다. 이는 윤석열이 정권 초기에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을 몰아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당대표를 바꾼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여왕과 유왕의 말로는 비참했다. 여왕의 폭정에 백성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주나라판 '빛의 혁명'이었다. 여왕은 수도에서 탈출해 '체'라는 지역으로 도주했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감했다. 유왕은 전쟁 중에 비명횡사했다. 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의 군대는 오지 않았다. 포사를 위해 봉화를 올린 장난이 부메랑이 됐다. 주나라판 '양치기 소년'이 된 셈이다. 윤석열의 끝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도자의 몰락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왕이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 주나라는 14년 동안 군주가 없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다. 중국 역사에서 이 시기를 '공화'라고 한다. 이때 주나라의 정통성과 국력은 급격히 추락했다. 그 이후 여왕의 아들 선왕이 쇠락한 국가를 다시 살리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가 죽고 권력을 잡은 이가 바로 유왕이다. 우리 국민은 목숨을 걸고 불법 계엄을 막았다. 하지만 내란의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두고두고 국가를 쇠락시키는 독소가 될 게 분명하다. 윤석열 청산은 사법적 심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 사회,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친 개혁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놓아야 가능하다. 정파적 이익을 앞세워 극단적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 낡은 규제와 제도에 포획된 경제 체제를 극복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개미 1500만명 시대, 증권사 규제·처벌은 구시대

주문이 먹지 않고, 잔고가 갑자기 수천만원씩 튀어 오르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체결 내역이 내 휴대폰에 뜨는 일. 증권사 전산사고 얘기다. 이제는 놀라울 것도 없다. 개인투자자 1500만명 시대라고 하지만, 이 거대한 투자 기반을 받쳐줄 '인프라와 규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달에만 벌써 두 건의 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지난 2일 메리츠증권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타인의 미국 주식 체결 알림이 사용자들에게 그대로 전송됐다. 실명부터 종목, 수량, 매수가, 체결 시각까지 고스란히 노출됐다. 회사는 '단순 오발송'이라고 설명했지만, 알림을 받은 투자자들에게는 '내 정보도 누군가에게 넘어갔을지 모른다'는 근본적 불신만 남겼다. 이어 4일에는 한화투자증권 퇴직연금 계좌에서 잔고와 수익률이 비정상적으로 부풀려 표시되는 오류가 발생했다. 최대 수천만원 단위로 잔고가 늘어났고, 회사는 과대 계산된 이자를 수정하면서 “실제 손실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손실 발생 여부가 아니라, 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다. 증권사 전산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집계된 증권사 전산장애는 497건. 사실상 '월 10건' 꼴이다. 증권사들이 자체 산정한 피해액은 267억여원에 달한다. 특히 한국투자증권(65억5472만원), 키움증권(60억8105만원), 미래에셋증권(41억672만원) 등 대형사에 피해가 집중됐다. 장애 원인을 뜯어보면 문제는 더 구조적이다. 프로그램 오류가 194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진짜 리스크는 시스템·설비 장애였다. 건수는 128건이었지만 피해액은 무려 145억4640만원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드웨어·인프라 차원의 문제가 한번 터지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가 드러난다. 이처럼 사고는 누적되는데 정작 감독당국의 제재는 미미하다. 최근 5년간 금융감독원이 내린 제재는 7건. 대부분 '주의' 또는 '견책' 수준이었다. 과태료 총액도 5억원 남짓으로 수백억원대 피해 규모와 괴리가 크다. 심지어 제재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나치게 길다. 미래에셋증권 전산사고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확정까지 5년 가까이 걸렸다. 모바일 거래는 초 단위로 움직이는데, 감독의 시계는 여전히 연 단위로 돌아간다. 보상 체계도 허점투성이다. 시스템이 멈춘 순간에는 로그인 기록조차 남지 않아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 잔고·체결 정보 오류는 더 복잡하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보상 기준도 모호하다. '전산 장애 가이드라인'만으로는 1500만 투자자를 지키기 어려운 이유다. 투자자 기반이 커진 만큼 시스템과 규제도 그 규모에 맞게 확장돼야 한다. 문제를 설명하는 데서 끝낼 것이 아니라, 사고를 막는 구조와 책임 체계부터 다시 짜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사건 처리'가 아니라 '시스템 개혁'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무안공항참사 조사위’ 독립성을 흔드는 건 누구인가

지난 4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개최할 예정이던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중간보고·공청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가족협의회와 국회 12·29 특별위원회의 공식적인 연기 요청과 공청회장의 안전 우려였다. 그러나, 사조위의 연기 결정은 독립성이 생명인 조사기구가 스스로 정치권의 압박과 피해자단체의 실력행사에 백기투항한 것이자 대한민국 항공안전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연기 사태의 비판점은 명확하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더십 부재가 사조위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 유가족과 정치권의 '선 넘는 개입'이 공청회를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대상은 국토부 장관이다. 참사 초기부터 콘크리트 둔덕 설치·관리 등 국토부 책임론이 불거졌음에도 장관은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사조위가 '셀프 조사' 논란에 휩싸이도록 방치했다. 주무부서의 비겁한 회피는 유가족들에게 '국토부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결과적으로 사조위를 여론의 광장 한복판에 고립시켜 동네북이 되도록 만든 꼴이 됐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유가족 협의회와 국회 12·29 특위의 행보다. 이들은 현재 △공청회·중간 보고 중단 △참사 진상 규명 과정에서의 피해자 참여 보장 △이재명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조위의 소속을 총리실로 옮기는 법 개정 논의는 입법부의 권한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요구 사항들은 명백히 국제 기준을 위반하고 과학적 조사를 무력화하는 '외압'이다.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하는 움직임은 결국 이 사고를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유가족들은 대놓고 “우리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조사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슬픔은 이해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ICAO Annex) 13과 사조위 운영 규정 제29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해당 규정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해 관계자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오직 데이터에 기반해 원인을 분석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조사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유가족이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작금의 상황은 과거 농민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리는 전문가인 의사의 의학적 판단인 사망 진단서가 정치적 외압과 여론에 의해 수정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 방향이 옳았든 틀렸든, 전문가의 영역이 '목소리 큰 진영'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무안공항 참사 조사에서도 유가족들은 블랙박스가 가리키는 '잘못된 엔진을 정지한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만약 유가족의 압력에 밀려 사조위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진실을 외면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잉의 기체 시스템 결함'이나 '시설 책임'으로 결론을 수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2의 백남기 진단서 사태'가 될 것이다. 과거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 사고나 아시아나항공 214편 샌프란시스코 사고 때도 유가족들은 기체 결함을 주장하며 조종사 과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가족의 눈물 대신 차가운 팩트를 선택했기에 전 세계 항공업계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더 안전한 하늘을 만들 수 있었다. 국회 12·29 특위와 유가족에게 묻는다. 사조위가 국무총리실로 가든 대통령 직속이 되든, 사고 당시 조종사가 멀쩡한 엔진을 껐다는 블랙박스의 기록이 바뀔 수 있는가? 국내 항공 사고 처리 인력풀은 매우 협소한데 그 어디에도 전문가가 없어 결국 국토부에서 조사관들을 파견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생겨났던 항공사고 조사 결과들은 어떻게 수긍해 왔나? 사조위의 상급 기관이 바뀐다고 해서 과학적 사실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사고 조사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의 영역이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사조위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배가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할까 우려스럽다. 유가족이 사건사고의 재판관이 될 순 없지 않은가. 전문가를 배척하고 감성이 과학을 지배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사조위의 독립성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가장 원한다는 유가족들과 그들 곁에 선 정치인들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