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Energy&Environment]

더보기 +
[EE칼럼] 이념의 껍질을 깨고, 에너지 ‘실용’의 시대로

이념의 껍질을 깨고, 에너지 ‘실용’의 시대로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수많은 논쟁을 지켜봐 왔지만, 에너지 정책만큼 뜨겁고도 안타까운 전장은 드문 것 같습니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 과학과 경제의 영역을 넘어, 어느덧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신념'의 영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잠시 서로를 향한 날 선 비판을 내려놓고, 우리 에너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크게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해 왔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낙수효과(Trickle-down)'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솟..

[EE칼럼] 다자외교의 장에서 재부상한 원자력과 한국의 역할

다자외교의 장에서 재부상한 원자력과 한국의 역할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올가을 한국 외교는 '중견국 외교'라는 표현이 공허한 수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우선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단순한 개최국을 넘어 지역 질서의 의제를 설정하는 국가로 부상했음을 상징했다. 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이 남아프리가공화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참석하고, 이를 계기로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튀르키예까지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순방한 것은 한국 외교가 다자외교의 주변부가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려는 행위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기화하는 전쟁과 서방 대...

이슈&인사이트

[Issue&Insight]

더보기 +
[이슈&인사이트] 예금자 보호 1억원 시대, 금융 안전망의 진화와 과제

예금자 보호 1억원 시대, 금융 안전망의 진화와 과제

예금자 보호 한도가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된 것은 24년 만의 변화이다. 금융시장에서 예금자 보호의 범위가 두 배로 확대되면서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신뢰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예금자 입장에서는 한 금융회사에서 1억 원까지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어 분산 예치의 번거로움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고액 예금자들은 더 이상 여러 은행에 예금을 쪼개어 넣을 필요가 없어져 자산운용의 자유도가 대폭 증가했다. 중산층 이하 일반 소비자도 본인 자산의 상당 부분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심리적...

[이슈&인사이트] 급격히 확산하는 국제사회 반이민·반난민 정서

급격히 확산하는 국제사회 반이민·반난민 정서

올해 영국의 현충일은 11월 9일이었다. 이날은 약 300만 명 이상의 영국군 사상자가 발생한 제1차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엄숙한 날이다. 이날 행사에는 100세 이상의 제2차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 참석해 더 의미가 컸다. 이날 한 참전 노병이 영국 인기 아침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현재 영국의 모습이 자신과 전우들이 전쟁에서 싸워 지켜낸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이 100세 노병의 주장은 많은 영국인을 불편하게 했다. 이들은 늘어나기만 하는 이민자와 난민들 때문에 이제 영국은 과거와는 다른 나라가 되었다..

데스크 칼럼

더보기 +
[이슈&인사이트] 예금자 보호 1억원 시대, 금융 안전망의 진화와 과제

예금자 보호 한도가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된 것은 24년 만의 변화이다. 금융시장에서 예금자 보호의 범위가 두 배로 확대되면서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신뢰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예금자 입장에서는 한 금융회사에서 1억 원까지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어 분산 예치의 번거로움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고액 예금자들은 더 이상 여러 은행에 예금을 쪼개어 넣을 필요가 없어져 자산운용의 자유도가 대폭 증가했다. 중산층 이하 일반 소비자도 본인 자산의 상당 부분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어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저축은행 이용자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변화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에 안심하고 최대 1억 원까지 예치할 수 있게 되면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이로인해 금융소비자들은 금융기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간 합리적 비교를 통해 본인의 재무 목표에 맞는 최적의 금융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예금보호 한도 1억 원 상향은 2금융권의 수신상품 다양화와 소비자 선택 폭 확대를 통해 경쟁 촉진에 기여하고 있다. 보호한도 상향 시행 직후 저축은행 예수금이 올해 9월 말 기준 전월 대비 2.6% 증가하며 105조 원 규모로 확대되었고, 중소형 저축은행들은 자금 이탈 방지를 위해 수신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업권의 경쟁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이로써, 최근 저축은행은 타 업권 대비 3%대 금리를 유지하며 상품 차별화에 나섰고, 이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2금융권 내 경쟁 심화를 촉진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성도 강화되었다.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으로 인해 위기 상황 발생 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험이 줄어들어 금융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이 완화된다. 특히, 2금융권인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조합 등에서도 동일한 보호 한도가 적용됨에 따라 이들 금융기관에 대한 고객 신뢰가 올라가고 향후에도 자금 유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금융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2금융권에 자금을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해졌다는 인식을 갖게 돼 금융시장 내 자본배분 효율성도 개선될 전망이다.​ 예금보호 한도 1억 원 상향으로 금융소비자들이 2금융권에 자금을 맡길 수 있게 되면서 시장 내 자본 배분 효율성이 개선되고 있다. 이는 기존처럼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대출을 위주로 취급하는 시중은행으로의 자금이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을 제한해, 중소기업 대출이나 혁신 산업 등 생산적 금융 영역으로 자금이 더 고르게 분배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자원 배분 비효율성을 완화해 생산성 높은 기업 및 산업분야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고객 신뢰가 상승하면서 예금 유치가 증가하고 금융기관의 유동성 확보가 용이해졌다. 이는 안정적인 자금 조달 확보에 기여할 것이다. 현재, 예금보험공사 및 금융당국은 예금 보호 범위 확대로 인한 보험료율 재조정을 준비 중이며, 이를 통해 금융회사의 부담과 리스크가 적절히 관리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예금보호한도 상향조정에도 불구하고, 2금융권의 안정적 자금조달로 인한 유동성 제고 등 경영 안전성이 개선되어 오히려 보험료율의 인상폭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예금자 보호 한도 1억 원 상향은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이는 경영이 부실한 소규모 금융기관으로 예금이 몰리면서 위험 자산 운용이 확대되고, 예금보험료 부담 증가로 대출금리 상승 및 소비자 비용 전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예금자들이 금리만 보고 고위험 금융사에 자금을 맡기는 소비자 측의 도덕적 해이도 심화될 수 있어 금융시장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는 정교한 위험 기반 예금보험료율 산정 체계 도입, 금융기관 건전성 감독 강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 1억 원 상향은 금융시장 안정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크게 강화하는 긍정적인 변화이다. 예금자들이 더 많은 금액을 안전하게 보호받음으로써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확산되고, 시장 내 자금의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의 효율적 이동과 금융시장 건전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정책 효과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서지용

[EE칼럼] 이념의 껍질을 깨고, 에너지 ‘실용’의 시대로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수많은 논쟁을 지켜봐 왔지만, 에너지 정책만큼 뜨겁고도 안타까운 전장은 드문 것 같습니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 과학과 경제의 영역을 넘어, 어느덧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신념'의 영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잠시 서로를 향한 날 선 비판을 내려놓고, 우리 에너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크게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해 왔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낙수효과(Trickle-down)'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분수효과(Fountain Effect)'입니다. 먼저 낙수효과를 돌아봅시다. 이는 정부가 주도하여 원전과 석탄으로 전기를 대량 생산하고, 이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방식이 과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싼 전기를 공급해 준 덕분에 삼성전자나 포스코 같은 기업들은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고, 이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이 성공 방정식에도 균열이 생겼습니다. 기업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며 발생한 비용은 한국전력의 천문학적인 적자로 쌓였고, 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 즉 '낙수효과의 청구서'가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세계 시장의 변화입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만 구매하겠다는 'RE100'을 선언하면서, 싼 원전과 화석연료 전기만 고집하다가는 수출길이 막힐 위기에 처했습니다. 싼 전기요금 탓에 기업들이 에너지 효율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 '에너지 다소비 구조'가 고착화된 것도 뼈아픈 대목입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분수효과, 즉 에너지 전환 정책이었습니다. 대규모 발전소 대신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시민들이 직접 전기를 생산하며 이익을 공유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실제로 아파트 베란다나 농촌 태양광을 통해 참여 가구의 전기요금을 낮추고, 소외계층에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며 '에너지 기본권'을 세운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탓일까요. 급격한 속도전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보조금을 노린 사기나 산림 훼손 문제가 불거졌고, 우후죽순 생겨난 작은 발전소들을 전력망이 감당하지 못해 정전 위험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지역 주민의 참여 없이 민간 사업자 주도로 개발이 난립하면서, 지역 갈등과 민원이 10배 이상 폭증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태양광마저 특정 진영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비극은 '변동성'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180도 뒤집힙니다. 보수 정권은 '원전 만능론'을, 진보 정권은 '탈원전 성역화'를 외치며 서로 전임 정부의 정책을 지우기에 급급합니다. 5년마다 바뀌는 정책 앞에서 기업들은 장기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고, 대한민국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점차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이 쓰는 전기보다 가정이 쓰는 전기가 더 비싼 기형적인 가격 구조는 “왜 기업 비용을 국민이 떠안나"라는 불신을 키우며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이분법적 싸움을 끝내야 합니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라는 낡은 틀을 넘어, '에너지 실용주의'라는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첫째, '가격의 정상화'가 시급합니다. 기업 경쟁력을 위해 인위적으로 요금을 누르는 가짜 낙수효과는 폐기해야 합니다. 쓴 만큼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원가주의'를 도입해야 기업도 절전 기술에 투자하고, 에너지 신산업을 싹틔울 수 있습니다. 둘째,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적이 아니라 동반자입니다.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처럼 24시간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곳은 원전이 '기저부하'를 담당하고, RE100이 필요한 수출 기업과 지역 소득 증대에는 재생에너지를 집중하는 '현명한 믹스(Mix)' 전략이 필요합니다. 셋째, 분수효과는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싼 전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을 받되 그 재원으로 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타겟형 복지'로 전환해야 합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시설 주변 주민들에게 이익을 확실히 공유하여 지역 수용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까지 도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제안을 드립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금리를 결정하듯, 우리에게도 '독립된 에너지 규제 위원회'가 필요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에너지 정책 틀을 법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에너지는 이념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이자 '생존'입니다. 과거의 공(功)은 인정하고 과(過)는 반면교사 삼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손을 맞잡은 때입니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빚더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빛을 물려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윤태환

[기자의 눈] 高환율 주범이 된 ‘서학개미’를 위한 변명

최근 당국에서 고환율의 배경으로 개인 해외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를 지목하는 흐름이 있다. 실제로 개인들의 해외주식 매수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11월 두 달간 개인은 약 123억달러(18조699억원)를 순매수했다.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보관 금액도 작년 말 1587억1500만달러(233조1999억원)에서 최근 2221억9200만달러(326조4667억원)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 숫자만을 근거로 개인투자자를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비약이다. 환율은 다양한 주체의 움직임과 글로벌 환경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터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는 245억달러(35조9978억원)로, 개인 투자자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사실상 국민연금의 매수 규모를 뜻한다. 같은 기간 비금융기업의 해외투자도 지난해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단순 금액만 놓고 보면 환율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서학개미보다 국민연금과 기업 쪽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이 개인만을 향해 '과열', '유행', '쿨해서 한다'는 식의 언급을 내놓는 것은 책임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는 처사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해외투자를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국민연금의 규모는 국내 최대 수준이며, 이는 환율 상승 압력으로 연결된다. 환헤지는 이러한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도구다. 헤지 비율을 늘리면 선물환 매도나 달러 매도를 통해 시장에 달러가 공급돼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환헤지 확대가 항상 '국민연금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2015년 이후 장기적으로 '100% 환노출(언헤지)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전략적 환헤지를 0%로 유지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기적으로는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2015년 환율이 1100원대였던 시점과 비교하면 환차익만으로도 20% 이상의 추가 수익을 얻었다. 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 입장에서 환헤지는 비용이 발생하는 데 비해 기대수익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지금의 고환율이 일시적 과열인지, 새로운 기준선(뉴 노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환율이 일시적이라면 높은 환율에서 달러를 매입할 경우 향후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현 수준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과도한 헤지는 오히려 연금 수익률을 깎을 수 있다. 이 균형을 잡는 것이 최근 외환당국이 내놓은 '뉴 프레임워크' 논의의 핵심이다. 결국 고환율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 돌리는 방식으로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구조적 달러 수요, 기업의 해외투자 확대, 글로벌 통화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환율 안정은 개인 투자자나 특정 기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구조적 이해와 일관된 정책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뤄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주체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진단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EE칼럼] 다자외교의 장에서 재부상한 원자력과 한국의 역할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올가을 한국 외교는 '중견국 외교'라는 표현이 공허한 수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우선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단순한 개최국을 넘어 지역 질서의 의제를 설정하는 국가로 부상했음을 상징했다. 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이 남아프리가공화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참석하고, 이를 계기로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튀르키예까지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순방한 것은 한국 외교가 다자외교의 주변부가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려는 행위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기화하는 전쟁과 서방 대 러시아 간 대결,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미국의 일방주의 등으로 인해 국제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운 가운데, 양 진영 어느 쪽과도 대립하지 않고,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도 역사적 부채 없이 협력할 수 있는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또한 잇따른 다자 외교의 중심에 에너지가 주요 의제로 거론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와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 제재와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에너지는 산업정책적인 측면에 더해 경제안보, 나아가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사안으로 여겨지며 국제질서 재편의 국면에서 핵심적인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의제 설정의 변화가 아니라, 국제질서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가 재정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G20 요하네스버그 선언은 개발도상국의 부채 문제와 기후 재난, 에너지 전환을 더 이상 주변 의제가 아닌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심 과제로 격상시켰다. 앞서 경주 APEC 선언 역시 '연결·혁신·번영'이라는 주제 아래 공급망 재편과 기술 주권, 디지털 전환을 지역 협력의 핵심 언어로 공식화했다. 서로 다른 무대에서 채택되었지만, 두 선언은 모두 공통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국제질서의 재편에 있어 핵심적인 기제가 되는 것은, AI로 대변되는 미래 기술과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원자력이 있다. 이 맥락에서 이번 대통령 순방이 이집트와 튀르키예를 포함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국가는 모두 러시아와 깊이 얽힌 원자력 협력 구조를 형성해 온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튀르키예는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이 주도한 아쿠유 원전 프로젝트를 통해 운영·연료·유지보수까지 러시아에 구조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집트 역시 엘다바 원전 사업을 통해 러시아 중심의 원자력 공급망과 금융 구조에 편입돼 있다. 원자력은 건설, 운영, 폐로까지 전 주기를 고려하면 수십 년 단위의 장기 관계를 전제로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세대(世代)에 걸친 협력 구조를 형성한다. 수출 통제는 물론 연료 공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핵 비확산과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어느 나라와 원자력 협력을 맺느냐는 지정학적 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순방에서 튀르키예나 이집트가 모두 한국과의 원자력 협력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협력을 넘어, 장기적인 전략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튀르키예 방문에서는 구체적인 성과도 있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자력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규제·부지 평가·사업모델·기술 협력 등을 포괄하는 공동 작업 구조를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튀르키예가 한국을 러시아에 의존적인 구조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지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집트와의 정상외교에서는 원자력 협력이 주요 의제 중 하나로 거론되었으나, 사업 계약이나 협약 체결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역시 원자력 분야에서의 러시아의 대안을 탐색하고 있으며, 한국을 현실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가진 강점은 분명하다. 군사적 패권국도 아니고, 과거 식민 지배와 같은 역사적 부채도 없다. 기술 표준과 안전 문화를 국제 규범에 맞게 축적해 왔고, 원전 운영과 건설 경험을 동시에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경주 APEC이 강조한 '연결·혁신·번영'은 원자력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원자력을 단순한 수출 산업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외교·안보·기후 전략을 연결하는 전략 자산으로 스스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준비가 되어 있는 거의 유일한 중견국이다. 더 늦기 전에 이 역량을 전략으로 전환하고, 실행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임은정

[기자의 눈] 기본자본 킥스 도입, 늦더라도 현실성 높여야

2025년의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다. 금융당국이 연기했던 기본자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 도입 시기가 또다시 다가왔다는 의미다. 업계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다. 자본의 질 향상이라는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는 이유다. 본업 업황 등 펀더멘탈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다. 실제로 올 1~3분기 생명·손해·재보험사들의 보험손익은 8조5871억원으로 전년 동기(12조2833억원)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주력 상품군의 손해율 악화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업권별로 봐도 상반기 보다 3분기를 포함한 수치의 감소폭이 더 컸다. 기본자본의 뼈대를 이루는 이익잉여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보험사들의 기본자본 킥스 비율이 전분기 대비 소폭 올랐으나, 삼성전자 주가 상승을 비롯한 외부 요인을 빼면 낮아졌다는 인식이 강하다. 초대형사를 제외하면 자본성증권의 일부를 기본자본으로 인정 받는 것도 힘든 탓이다. 2023년 3월말과 비교하면 다수의 보험사에서 절반 가량 하락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업계에서 꾸준히 보험계약마진(CSM)을 기본자본에 반영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선 기본자본 확보 난이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는 보험사의 미래 이익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정 부분 정해진 현금흐름이라는 점에서 보험사의 체력으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IFRS17과 킥스 도입을 계기로 건강보험 등 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보험을 중심으로 판매를 집중하면서 불어난 보험금이 요구자본 확대를 가속화하는 점도 언급된다. 바뀐 규정으로 인해 생긴 변화인 만큼 '정상참작'을 해야하지 않냐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당국이 빠르게 노선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로 풀이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당 성향 축소 등 그간 정책적으로 추진했던 사안과 반대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선'을 어디에 두느냐도 관건이다.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초기 기준과 목표지점을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이를 맞추지 못하는 보험사들은 난관에 봉착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구조조정 및 초대형사로의 집중도 일어날 수 있다. 보험사 뿐 아니라 금융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보험 관련 정책은 특별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시행 후 '샤워실의 바보'처럼 오락가락하는 경우 현장의 혼란도 가중될 수 있는 만큼 타임라인에 집중하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드는데 힘쓰기를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이슈&인사이트] 급격히 확산하는 국제사회 반이민·반난민 정서

올해 영국의 현충일은 11월 9일이었다. 이날은 약 300만 명 이상의 영국군 사상자가 발생한 제1차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엄숙한 날이다. 9일 행사에는 100세 이상의 제2차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 참석해 더 의미가 컸다. 이날 한 참전 노병이 영국 인기 아침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현재 영국의 모습이 자신과 전우들이 전쟁에서 싸워 지켜낸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이 100세 노병의 주장은 많은 영국인을 불편하게 했다. 이들은 늘어나기만 하는 이민자와 난민들 때문에 이제 영국은 과거와는 다른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열린사회를 지향하며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인도, 아프리카 등 과거 식민지에서 부족한 노동 인력을 조달하는 이민 정책을 시행했고, 이들은 제1, 2차세계대전 이후 동력을 상실한 영국 경제를 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줄지 않는 이민과 난민으로 정부 재정과 사회 복지가 위협받자 이에 반대하는 정서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영국이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고 2020년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한 이유도 이민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지지도 폭락에 시달리는 노동당 정부는 난민 관련 정책을 대폭 수정해 무조건적인 난민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화난 민심을 달랬다. 전형적 좌파 세력인 영국 노동당이 신념에 가까운 이민·난민 정책을 전면 개편하고 핸들을 틀어 급우회전했지만, 분노한 영국인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전 세계적인 반이민·반난민 정서 확산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격화될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미국은 10월 29일 기준 불법체류자 52만 명을 추방했고. 지금까지 200만 명이 미국을 떠났다고 확인했다. 너무 과격하다고 비판받는 현재의 반이민·반난민 정책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우파 미국민이 열정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유럽 최대 강국인 독일에서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대 정당으로 부상했다. 반유럽, 친러시아, 반이민·반난민 등의 정책을 채택한 AfD는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과거 나치즘의 망령을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정치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헝가리, 이탈리아는 물론 전통적으로 가장 이민과 난민에 관대했던 스페인마저도 반이민 정책을 고려할 만큼 유럽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특히 2050년이면 아프리카와 무슬림 인구가 50억 명이 넘고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유럽으로 향할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하며 유럽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웃인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엔저 현상과 함께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로 부상하며 2024년에만 3,687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방문했다. 이에 일본의 외국인에 대한 피로도가 급격하게 상승했고 동시에 반이민 정서도 확산했다. 신임 다카이치 총리가 최근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등 급발진하는 이유도 보기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행동일 수 있지만, 깊게는 일본의 외국인과 외국을 기피하는 고립주의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반이민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 70만 명을 포함해 110만 명 이상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높다. 최근 중국인 무비자 관광이 허용되면서 반중국인 정서가 급증하고 있다. 2025년 기준 한국에는 273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한국 체류 외국인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한국인의 반이민 여론도 함께 확대될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불법 이민과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는 이미 반이민·반난민 투쟁을 시작했다. 이를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극단적 국가주의, 전쟁, 환경, 자원 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인식을 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상호

[김병헌의 체인지] 12·3 계엄이 남긴 의미있는 역설

“권력은 책임의 무게로 존재하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순간 권력은 위험이 된다." 정치학에선 오랜기간 전해져온 문구이지만, 대한민국은 최근 짧은 시간에 이 문장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를 목격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은 특정 시점부터 균형을 잃었다. 흔들림은 조용히 시작됐고, 이후 국정 전체로 확산되었다. 국정은 일관성이 부족했다. 정책 결정 과정은 넓은 논의보다 좁은 회로에 의존했다. 전문가 조언보다 사적 인연이 우선했고, 공적 권위보다 비선의 존재가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는 점차 흐려졌고, 검찰 출신 인사들의 과도한 집중은 권력의 균형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국정의 무게추는 한쪽으로 기울었고, 시스템은 그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중심에 김건희씨가 있었다.그녀를 둘러싼 논란으로 더 흔들렸다. 주가 의혹, 협찬 논란, 의전 개입, 공천 개입 의혹 등은 사소한 해프닝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시험하는 사안들이었다. 이런 사안들이 수사·감찰 시스템의 독립성을 흔드는지 여부는 국가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국민이 “권력의 사적 영향력은 어디까지인가"라고 묻게 된 지점도 여기서부터였다. 특검이 시작되면서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료 확보 실패, 수사 지연 논란, 측근 인사의 조력 정황 등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이 현실적 검증 대상으로 넘어가고 있고 있다. 정권 내부의 작동 방식을 묻는 질문은 점차 구조문제로 확대됐고, 국정 운영의 중심부가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의 시작이 수면위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3일의 비상계엄 시도와 연관이 있다. 계엄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조치다. 그렇기에 더 신중해야 하고,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엄 시도 당시 논의된 문건과 실행 계획, 그리고 논의 참여자 구성은 이 조치가 왜 그 시점에 거론됐는지 의문을 남겼다. 언론을 통제하고 국회의 기능을 제약하며 시민 활동을 관리하는 계획들도 포함돼 있었다. 국가 전체의 비상이 아니라 정권 내부의 '그들만의 비상'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남겼다. 정치권과 학계의 분석은 계엄직전 여당 내 8표만 이탈해도 김건희 특검이 통과되는 구조라는 한 지점을 가리킨다. 도이치모터스 판결의 파장, 명태균 게이트의 확산, 공수처 수사, 검찰 조직 내 균열 등은 정권 핵심부가 체감할 수밖에 없는 압력이었다. 김건희씨에 대한 수사 가능성은 대통령의 통치력 약화로 이어졌고, 대통령의 방어적 대응은 다시 김건희 논란을 키우는 구조적 순환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사적·정치적 리스크가 상호 증폭되면서 국정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결국 당시 비상계엄 시도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두사람의 복합적 위기에서 비롯된 산물이었던 셈이다. 정권 내부에서 기인한 사적 리스크와 정치적 불안, 국가 시스템의 흔들림이 한 지점에서 모두 만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계엄이 논의된 시점의 배경에는 정권이 직면한 사법·정치적 압박이 있었다는 분석도 바로 이 구조적 맥락에서 나온다. 이 상황을 설명하는 역설적인 이야기들이 정치권과 여론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이 정권의 작동 방식이 드러나지 않은 채 2년을 더 갔다면 더 큰 위험이 있었을 것" “계엄 시도로 정권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조기에 드러났고, 국가 시스템이 작동할 여지를 되찾았다" “역설적으로, 윤석열이 가장 잘한 일은 12.3 계엄이었다". 계엄을 긍정하고자하는 말은 아니다. 계엄 시도가 드러낸 정보와 구조적 문제가 한국 사회에 중요한 경고와 교훈을 남겼다는 의미다. 통치 구조의 취약성과 권력 운영 방식의 한계가 조기에 노출된 덕분에 더 큰 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권력의 무게를 견디는 능력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다. 그 무게가 흔들리면 국가의 축은 흔들린다. 권력이 사적 영향력과 혼합되기 시작하면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고, 혼란의 대가는 국민이 치르게 된다. 2025년 12월3일의 계엄 논란이 벌써 1년을 맞는다.지금 필요한 건 정쟁이 아니다. 시스템 재정비로 감시와 견제의 회복, 수사·감찰의 독립성 강화, 비선 영향력 차단, 제도적 균형의 복원부터 함께 서둘러야 한다.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로 나아갈 것인지 되묻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E칼럼] 깐부에서 꼰대가 되어 버린 에너지 효율화 정책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깐부는 친한 친구나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이다. 깜보, 깐보라고도 불린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과 치맥을 함께 한 장소도 이 이름이며, '깜보'라는 영화가 2차 석유 위기가 끝나가던 1986년에 개봉하기도 하였다. 1986년의 국제 원유 가격은 OPEC의 감산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1979년 대비 10배나 넘게 상승해 있었다. 전 세계가 석유 위기에 대응하고자 다양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일본의 혼다, 토요타 등 연비가 좋은 자동차가 엄청나게 잘 팔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내 유일 부존 에너지원인 석탄(연탄)의 증산에 나섰으며, 한 등 끄기는 물론 학교의 겨울방학 연장, 공장 자율 운영 등 고강도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내어놓았다. 또한 에너지관리공단이라는 공기관을 출범시켜 에너지 효율화 시책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 에너지 절약이 생활에 스며들어 일종의 깐부가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에너지정책 1번은 언제나 효율화였다. 그러나 지난 21세기 25년간 에너지 자급, 해외자원개발, 에너지전환 등 공급 부문의 정책은 꾸준히 발표되었지만 에너지 절약이나 효율화 정책은 점점 뒤로 밀려 이제는 논의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5년 전 에너지기본계획이 더 이상 법적 정부 계획이 아니게 되면서 에너지 효율화를 제대로 다룰 공간과 제도가 줄어들고 말았다. 여전히 에너지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내 정책에서 에너지 효율화나 이용 합리화 정책은 진부한 옛날 주제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책에 담기는 해야 하는 하나의 요식행위가 되었다. 에너지 효율화 정책이 깐부에서 꼰대로 변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정책 및 산업정책의 수립 과정에서 본받고 따라온 제조업 강국으로 독일과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모두 에너지 절약에 진심이다. 독일은 대표적인 산업 부문 에너지 절약 정책인 LEEN (learning energy efficiency network)를 21세기 들어서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2천여 개의 중견, 중소기업이 해당 정책의 혜택을 받고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에너지집약도(사용량/GDP)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에너지 효율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한국은 에너지집약도가 1980년 0.27, 2023년 0.16으로 크게 좋아졌으나 일본은 1980년 0.15, 2023년 0.08로 더 좋아졌다. 한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여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은 일본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으나 에너지 효율은 지난 40년간 일본의 절반 수준에서 전혀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에너지 효율 정책으로 선샤인(sunshine) 정책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매년 다양한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조사하여 순위를 발표하는 단순한 정책이다. 그런데 일본 국민은 이를 적극 참조하여 최고 효율을 가진 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한다. 그 구매 정도가 매우 높아 일본 기업들은 최고의 에너지 효율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고 말이다. 모두 에너지 효율화에 진심이다. 우리에게 이들 두 나라는 에너지 절약 정책에서는 넘사벽이 되어 버렸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구매 시 색상이나 크기에 더 고심한다. 건물 역시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다. 최근에도 우리나라 건물의 면적당 에너지사용량은 매년 증가 중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의 건물 정책이 에너지 효율화보다는 스마트시티, 혁신도시 등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도시 개발에 중점을 두어왔기 때문이다.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 이슈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도 구조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지금 짓는 건물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점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기에 잘못하면 수명이 되기도 전에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고 만다. 다행히 이번 새 정부에서는 에너지 효율화 분야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 히트펌프를 크게 육성하고자 한다거나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논의가 높아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에너지 효율 기술혁신,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통한 가정과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에너지 효율화를 다시 살리기 위한 첫발을 잘 디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만 다음은 국민과 기업이 실제로 절약과 효율화에 나서게 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할 차례이다. 정부는 민간단체와 함께 효율화 홍보활동을 활발히 시행하여 국민의 동참을 호소하고 인센티브 강화로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통하여 그 혜택이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허은녕

[윤석헌 시평] 주가 5000시대, 빚투와 위험의 외주화

11월 6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가 무너져 노동자 9명을 덮쳤는데, 사고 직후 2명은 구조되었으나 나머지 7명은 모두 사망한 애통한 사건이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반복되는 유사한 재난사고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강도 높은 질책이 이어졌으나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안전관리 소홀과 위기 불감증 치유엔 역부족인가 싶다. 대규모 공사를 발주하는 원청업체가 관련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발생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된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금융권에도 빈번한데, 비근한 예가 은행과 증권사의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다. 금융사는 국내외에서 고위험 상품을 도입하여 고객에게 판매하고 수수료를 취하는데, 손실 위험은 오롯이 고객의 부담이다. 따라서 많이 팔수록 판매사는 수입이 증가하지만 고객은 위험이 커진다. 위험의 외주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DLF, 사모펀드, 홍콩ELS 사태 및 벨기에펀드 판매 등을 거치면서 대규모 불완전판매가 고객의 위험을 확대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빚투(대출받아 주식투자)에서도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발생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주가 5000시대' 대선 공약을 배경으로 APEC의 성공적 개최와 한미 관세협상 타결 등이 이어지면서 최근 코스피가 일시적으로 4200을 넘었다. 그러나 AI 산업의 미래에 대한 논란, 향후 10년간 연 200억달러 대미투자 부담 및 원달러 환율 불안정 등으로 다시 하락하여 3800~4000 구간에서 오르내린다. 주가 움직임은 대체로 세 가지 요인이 중요하다. 첫째는 기업의 가치 창출이다. 기업이 신성장산업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수출이 활성화되고 내수경기가 살아나 매출과 이익이 늘면 주가가 상승한다. ESG 혁신이나 국내 소비 활성화도 주가상승에 기여할 것이다. 둘째는 창출한 가치를 보다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간 거론되었던 금투세, 주주환원, 주가조작 척결 등 자본시장 관련 제도와 정책의 개선이 해당된다. 셋째는 단기적으로 빚투와 해외 투자를 포함하여 유동성의 불쏘시개 역할이다. 다만 유동성은 거품과 같아서 주가상승을 이끌지만 변동성을 함께 키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빚투는 주가상승을 이끄는데 기여하지만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주가하락시 손실위험을 증폭시킨다. 주가 하락시 재무적 손실이 오롯이 투자자 몫인 상황에서, 빚투 투자자의 손실이 증폭되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요즘 첨단전략산업의 국가 경쟁력, 대미투자 부담, 기후위기 대응 등 한국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주가 5000시대를 향한 정부의 약속,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와 믿음이 코스피를 유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와 믿음은 불안정성이 크고, 특히 빚투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오래 견디기 어렵다. 결국 앞서 첫째와 둘째 요인으로 언급한 실질가치의 개선이 절실하고 시급하다. 설혹 주가지수가 급등하여 5000을 넘어선다 해도 실질가치 상승으로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런(run)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한 후 금융위원회 권대영 부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빚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적정 수준의 포트폴리오 관리와 감내 가능한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빚투를 유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정부가 코스피 5000을 밀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여 신용거래 잔고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식 투자 자금을 부채로 조달하면 레버리지 효과로 위험이 증폭된다. 따라서 지급여력이 제한적인 개인 투자자들에게 빚투는 권유할 사항이 못된다. 아무리 자본시장 육성이 절실하고 주가지수 5000 달성이 중요할지라도 빚투를 주가상승 소재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수일 후인 지난달 12일 이번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최근 신용대출 증가(는) ... 전체적인 가계부채 증가를 견인한다든지, 건전성에 위협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빚투 지지 발언을 되풀이 했다. 요즘 빚투를 접하면서 과거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사라' 정책이 생각난다. 이번 정책의 배경에 한국경제가 부동산 쏠림을 탈피해 금융자산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가 읽히지만, 자칫 빚투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윤석헌

[데스크칼럼] ‘AI 기본사회’로 가는 제3의 길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급속하게 진화하는 AI 산업 생태계에서 한국이 앞장서 주도해 나가겠다는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동시에 AI 산업 발달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모든 국가와 사람들이 고르게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최근 폐막한 G20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밝힌 '글로벌 AI 기본사회'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글로벌 AI 기본사회는 AI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보고, 모든 국가와 계층이 공평하게 혜택을 누리도록 국제 협력과 포용적 정책을 추진하자는 비전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AI 기본사회는 AI산업의 고도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량의 에너지원을 요구로 한다. 기후 위기와 탈탄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AI 기본사회는 오히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시계침을 더 빨리 돌리는 작용만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경쟁력은 세계 산업선진국에서 가장 취약하다. 지난 2022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 94%에 에너지 자립도는 0.18 수준이다. 에너지 소비 규모는 1억8100만toe(석유환산톤)으로 세계 10위이며, 세계 평균(6000만toe)의 3배에 이른다. 따라서, 한국의 AI 기반 성장론이 실현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우리보다 AI와 기후대응 산업 정책이 앞선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주요기업들이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생산 효율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슬라는 스마트 제조와 데이터 기반 공급망 관리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통해 탈탄소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아마존도 물류 자동화와 AI 기반 수요 예측으로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며, 대량소비 구조 속에서도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그린딜'을 통해 순환경제와 탈탄소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동원해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세 도입으로 산업 구조 자체를 저탄소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들은 소비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제품을 장려하고, 재활용·재사용을 제도화하여 대량소비의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이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결합하는 정책이라면, 유럽은 생산과 소비 전 과정에서 녹색 전환을 제도화하는 보다 근원적 해법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을 참고로 두 가지 모델을 결합하는 '제 3의 길'을 채택하는게 현실적이라는 전문가 견해가 많다. AI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순환경제와 탈탄소 정책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포용적 성격의 '모두의 AI'가 구현되기 위해선 AI산업 육성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AI혁명의 포용성이 인류 삶의 토대인 지구 생존보다 우선할 수 없다. 결국 글로벌 AI 기본사회의 성립은 '성장과 환경'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조화로운 양립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가 향후 어떤 '공존의 해법'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