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철강산업 탈탄소화, 값싼 수소가 필요하다

열역학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열역학 제 2법칙은 에너지 이동에 대한 법칙으로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방향으로만 에너지는 이동한다.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한다'는 대표적인 원리가 제 2법칙이며 이는 비가역적 현상이다. 그래서 제 2법칙을 어기는 에너지 전환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위배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100%이다. 운동을 시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를 만드는 대부분의 방법은 열에너지를 만들어서 운동을 시켜서 무언가를 생산하고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탄소(C)+산소(O2), 그리고 불꽃 정도만 가지고 거의 공짜로 열에너지를 만들고 그 열에너지로 물을 끓이고 증기터빈을 돌리고 기계를 움직여서 무언가를 생산하며 발전한 게 인류의 역사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지상 최대의 글로벌 문제가 되면서 이제는 이렇게 값싼 방식으로 열에너지를 얻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탄소중립의 핵심이다. 새로운 열을 만들어줄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무탄소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이거나 원자력이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으나 이는 모두 전기에너지로 변환해야만 사용이 가능하고 1,600℃가 넘는 고온을 이용하는 산업분야를 청정화 하는 것은 새로운 열원을 찾는 과정이며 결국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된다. 전통적인 철강생산 방식은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해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한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며, 철강산업이 탄소 다배출 산업으로 분류되는 주된 이유다. 글로벌 탄소중립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철강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14~18%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에게 2050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도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궁극적으로는 탄소(C)를 태워서 열을 내지 않고 환원작용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수소(H2)가 있어야만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이 가능하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할 경우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이 생성되어 탄소배출을 85~95%까지 줄일 수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2030년까지 8천억 원을 투입해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2050년까지 국내 철강업계의 '녹색 철강' 생산에는 연간 포스코만 해도 350만 톤, 현대제철은 150만 톤 규모의 수소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 세계 철강산업은 이런 상황에서 값싸고 청정한 수소를 찾아다니고 있다. 단일 산업군이 필요로 하는 규모로는 압도적으로 크며, 단순한 실험적 도입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수소의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공급 체계 마련이 철강산업 탈탄소 전환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현재 원자력 발전의 무탄소 전력과 열을 활용해 생산되는 수소를 핑크수소라고 부른다. 글로벌 핑크수소 시장은 2024년 270억 달러에서 2033년 2,870억 달러로 연평균 3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원자력 전기를 활용하면 현재 국내 기술 기준으로 kg당 약 5,000원 수준에서 생산이 가능하지만 추가적인 정부의 지원을 통하여 3,000원까지 가격을 인하해야만 국내 철강사는 해외랑 경쟁이 가능해진다. 이미 울진 등을 중심으로 핑크수소와 철강산업을 연결하는 클러스터 구축이 시도되고 있다. 송전망보다는 쉬운 수소 파이프라인 인프라 구축, 이미 실증이 진행 중인 기술적 성숙도, 수소 생산지와 산업단지와의 클러스터화 등을 통해 충분히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철강의 탈탄소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국내 철강산업의 탈탄소화는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국가 산업 경쟁력과 산업의 생존 문제다. 이는 탄소 배출 감축뿐 아니라 고품질 강재 생산이라는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안정적 공급, 경제성, 환경성을 모두 갖춘 저렴한 수소공급을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해야만 한국 철강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공장을 유지하면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글로벌 저탄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조홍종

[EE칼럼] 금융투자자가 바라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관세, 비자 같은 시급하고 중대한 현안이 마구 밀려왔는데, 그 와중에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이 눈앞에 와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에 따라 기후 위기와 국제 협약에 적극 대응한다는 긍정적 시각과, 에너지 분야의 부처 간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중국의 제조업 굴기에 따라 국내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중후장대 산업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정책과 산업정책의 분리가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고민을 하고 있겠지만, 금융투자자들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녹색금융에 기여하고 정부 정책의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하고 있다. 전 정부 시기에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매우 도전적이며, 소형모듈형원전(SMR)이나 대형 원전이 본격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점은 2035년 이후다. 그 사이 AI 데이터센터, 전기차·자율주행차 산업은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울 텐데, 전력 부족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제철이나 석유화학 업종의 부진으로 전력 수요를 상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기에 무리하게 기존 계획을 뒤엎기보다는 로드맵을 유지하되 재생에너지 목표의 조기 달성을 모색하는 편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실에 기반한 정책이 요구된다. 전체 발전을 100% 재생에너지로 바꾸어 RE100을 달성하더라도, 철강·금속 등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열 에너지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기술과 역량으로는 2050년에 전체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Net-Zero)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 및 실증에 힘써야 한다. 따라서 현재 관점에서 경제성이 낮아 보이는 수소, 암모니아, 탄소포집·이용·저장(CCUS) 기술 개발 및 실증, 사업화에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른바 '기후테크' 기업에 대한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공공 및 민간 벤처캐피털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편 위기에 놓인 철강·석유화학산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저탄소 녹색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녹색금융(특히 녹색채권과 녹색여신)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대선 공약에서 강조된 2040년 석탄화력발전 폐지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보다는, 시장의 힘을 활용해 무탄소 발전으로의 전환과 전력망 확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모든 일을 공공만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 민간 금융과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 및 에너지 전환에 투자할 수 있도록 녹색금융에 대한 정책적 재정 지원과 인센티브를 신속히 제공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확신과 신호를 주어야 한다. 금융투자자는 구호보다 구체적인 결과, 정치보다 안정적인 정책, 돌풍 같은 인기보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선호한다. 양대 강대국이 한국에 경제적·산업적으로 막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어 모두가 위기를 말한다. 바로 이 시기에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한다. 전환과 혼란의 시대에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할 만큼, 공공과 민간 자본을 조직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순발력 있는 전략 수립과 이행이 절실하다. 그것이야말로 금융투자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모습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김성우 시평]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함의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 매년 9월 미국 뉴욕에서 UN총회와 함께 열리는 '기후주간(Climate Week NYC)'가 어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로이터는 행사 시작 직전인 20일(현지시각) 역대 최다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고, 진행되는 행사가 지난해 보다 10% 늘어난 1000건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는 2009년부터 유엔 총회 기간에 맞춰 열리는 세계 최대 민간 주도의 기후행사로, 각 국가의 정부는 물론 기업이나 시민사회가 모여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다양한 글로벌 기후정책 및 시장 변화를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에 필자도 트럼프 1기 시절 KPMG 기후부문 아시아태평양 대표 및 국제배출권거래협회(IETA) 이사 자격으로 여러 차례 발표 및 토론에 참여했었다. 올해는 기후변화 심각성이 가중되면서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와 미국의 반기후 정책 기조가 교차하는 가운데, 기후주간내 UN 기후 정상회의에서 발표되는 NDC포함 국가별 기후대응계획에 시선이 쏠렸다. 이는 각 국이 오는 11월 브라질에서 개최하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30)에서 협상할 내용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4일(현지시간)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오는 2035년까지 고점 대비 7∼10% 감축하겠다고 밝힌 것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 전세계 온실가스의 30%를 넘게 배출하는 중국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원단위 감축이 아닌 절대량 감축 수치로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또한, 2035년까지 전체 에너지 소비 중 화석연료 비중을 30% 이상으로 증가시킬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이를 위해 풍력·태양광 발전 설치 용량을 2020년 수준의 6배 이상으로 늘리고, 전기·수소·하이브리드차가 신규차의 주가 되도록 만들 것이라고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목표가 지구를 살리기에 충분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재생에너지 및 전기차 등 청정기술 시장확대와 연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정산업 육성 및 글로벌시장 확대가 아니라면 디플레이션 압력 등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굳이 기후정책 목표를 강화할 이유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가 정한 2035년 NDC 제출 기한인 9월24일을 맞추지 못했는데, 이는 2035년 NDC와 연동되어 있는 2040년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1990년 대비 90% 감축) 대해 회원국들간 합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EU는 2035년 NDC를 확정하진 못했지만, UN 기후 정상회의를 통해 의향서(Statement of Intent) 수준의 감축 계획을 발표했고, 그 범위는 1990년 대비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66.3~72.5% 감축하는 것이다. 잠정 합의된 수치라도 72.5% 감축은, 러·우 전쟁 및 대미 협상 등 정치경제 위기를 감안하면 도전적인 수치다. 이는 글로벌 기후리더십과 청정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에너지 가격안정화 및 안보도 달성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필자가 올해 2월 파리에서 열린 청정산업 협력을 위한 전문가 회의에서 EU 집행위원회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에 기반한다. 이처럼 미국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해 미국은 더 이상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구조상 감축이 쉽지 않은 중국이나 회원국간 이견이 많은 EU가 강화된 감축 목표를 국제 사회에 발표한 이유는, 이를 산업정책과 연계해 자국내 청정산업 육성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기후리더십을 강화해 글로벌 청정산업을 선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달 세계자원연구소(WRI)는 EU, 중국 등 주요 배출국들의 목표가 글로벌 배출량 격차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새로 제출된 NDC들이 이행돼도 2035년까지 14억톤 추가 감축에 그쳐, 지구 온도를 1.5도 이내 상승으로 억제하려면 최소 260억톤 이상은 더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어쩌면 중국과 EU는 자신들이 리드하는 온실가스 감축과 산업정책이 잘 연계될 경우, 국제사회가 더 줄여야 할 260억톤은 자신들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장 많이 이 기술을 사야 하는 국가는 지금 감축을 뒤로 미루는 국가일 것 같다. 김성우

[EE칼럼] 블루수소 외면, 수소경제의 선순환도 멈춘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수소 사용 강제 정책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명분 면에서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인프라 확충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아직 경제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블루수소를 배제하고 그린수소만을 인정한다 해도, 수소 생태계의 성장은 지체되고 실질적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린수소와 블루수소를 인위적으로 구분해 차별하는 정책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조치들이 결국 값싼 중국산 그린수소 수입을 위한 '레드카펫'을 까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디젤 차량에 필수적인 요소수 공급이 중국 수출제한에 막혀 국가적 혼란을 겪었던 기억을 떠오른다. 어떠한 상품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유통–활용을 아우르는 선순환 구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저탄소 경제 전환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는 수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충전소, 생산시설, 운송망 등 인프라가 갖춰져야 수소차와 연료전지의 수요가 늘어나고, 확대된 수요는 다시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초기 투자비용은 막대하고 단기 수익성은 낮아 민간 기업의 자발적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를 풀기 위해, 탄소중립을 향한 과도기에서 블루수소는 반드시 거쳐야 할 가교적 대안이다.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가 충분히 확대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천연 혹은 부생가스 개질에 CCUS(탄소포집·저장기술)를 접목한 블루수소로 공급을 늘리는 전략이 가장 현실적이다. 특히 한국처럼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 입장에서, 제철·석유화학·정유 공정 등에서 부산물로 함께 발생하는 부생가스(by-product gas)는 정말 보물이나 다름없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수소가 각광받는 시대에서, 한국을 산유국 같은 자원 부국으로 만들어줄 유일한 수단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소경제를 향한 마중물로서의 블루수소는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 인프라 가동률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 수단이다. 실제로 과거 정부도 2030년까지 국내외 탄소저장소 확보를 전제로 연간 75만 톤의 블루수소 생산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고, 주요 기업들은 정부를 믿고 대규모 플랜트를 추진해왔다. 물론 최종 목표는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수소 생산 방식이 좋지만, 지금 단계에서 그린수소만을 고집하는 것은 경제성을 맞추지 못해 국내 수소 연관산업 생태계의 싹을 잘라버릴 위험이 크다. 아직 생산 단가가 높은 그린수소에만 정책이 집중된다면 자연히 관련 민간 투자는 움츠러들고, 인프라 확장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국제 경쟁이다. 중국은 이미 막대한 재생에너지 설비를 바탕으로 값싼 그린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만약 한국이 과도기를 버티지 못한 채 성급히 정책적으로 그린수소만을 고집한다면, 결국 값싼 중국산 수소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고, 이는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산업 주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수소경제의 뿌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값싸고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절실하다. 이전 정부는 이러한 과제를 인식하고, 초기에는 석유화학 공정의 부생수소와 천연가스 개질 수소에 의존하되 민간의 대규모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라도 했었다. 주요 기업들로부터 2030년까지 43조 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고, 정부는 연구개발 지원과 세제 혜택, 정책금융을 결합한 인센티브 패키지로 화답했다. 수소 기술을 신성장 산업으로 지정해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저리 융자와 보증을 제공했으며, 액화수소 플랜트 건설 지원과 안전기준 정비에도 나섰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정부가 공언한 수소충전소 구축 목표는 절반 수준에 그쳤고, 도심은 규제와 주민 반발로 설치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낮은 수요로 인한 만성 적자를 겪고 있다. 정부가 설치보조금과 운송 지원책을 내놨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2019년부터 추진한 개질 기반 생산기지 10곳 중 2021년까지 완공된 곳은 단 한 곳뿐이었고, 그마저도 후속 생태계 조성 미비로 기업들의 기존 투자가 모두 매몰비용으로 취착될 위기에 봉착했다.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도 상당 부분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으며, 산업 생태계는 자생력을 키우기보다 보조금에 연명하는 구조만 남겼다. 궁극적으로 에너지 산업의 실무자 관점에서 수소 인프라 투자는 철저히 정책 리스크와 경제성에 의해 좌우된다. 과거 정부의 경험은 분명하다. 초기 판을 정부가 깔아줄 수는 있지만, 민간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투자의 지속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앞으로 정부는 일관된 정책 신호와 보조금의 효율적 운용으로 민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선은 블루수소를 사용할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고, 운영비 지원 제도를 확충하며, 중국 의존 최소화를 위한 국내 자급률 목표 설정 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수소경제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유종민

[EE칼럼] 첫 단추

시작이 반이라 했다. 이재명 정부가 역주행하던 에너지 정책을 바로세우고 힘차게 전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정부 개편과 에너지 정책의 기본이 정해지는 올해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 10월 1일 출범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재명 정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체제는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가 중심이며 에너지 산업도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에 비중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신규 전력 투자에서 재생에너지가 선두로 올라선 상황에서 이제라도 뒤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니 출발은 희망적이다. 첫 번째 시금석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수립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이다. 2015년 세계는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을 영으로 하는 감축 목표(넷제로)를 세웠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각국이 자발적인 감축목표를 세워 5년마다 총회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 대비 30%를 감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녹색기후기금(GCF)을 인천 송도에 유치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파리협정 체결을 앞두고 2030년까지 배출 전망치 대비 25.7% 감축을 목표로 하였으나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해외 감축분 11.3%를 추가하여 37%를 감축하겠다는 NDC를 총회에 제출했다. 파리협정의 본격 시행을 앞둔 2020년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2017년 배출량 대비 24.4%를 감축 목표로 하는 NDC를 총회에 제출했다. 한국은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받고 감축 목표를 상향하라는 국제사회에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2021년 4월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을 2018년 총배출량의 40% 감축하는 것으로 NDC를 수정하여 총회에 재제출하였다. 이제 파리협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나 새로운 NDC를 작성하여 12월초 열리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출범 이후 '2035 NDC 대국민 공개논의 토론회'를 한 달 간 총 7회 개최한 뒤 11월 중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을 고려해 환경부가 지난 19일 첫 대국민 공개논의 총괄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재 논의에 오른 안은 산업계 요구를 반영한 48% 감축안에서 우리나라 누적감축량을 고려한 65%까지 4가지 안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7월23일 국회와 정부에 전달한 '탄소중립·지속가능성 정책 수립을 위한 경제계 건의'에서 “RE100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RE100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에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야 생존의 문제이니 도와달라고 하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미 시범 실시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화된 뒤 또다시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감축목표를 세우고 이를 법제화하여 안정적으로 추진되도록 하여야 한다. 두 번째 시금석은 올해 산자부에서 수립하는 '제6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이다. 지난 19일 국민토론회에서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용량 100GW, 2035년 150~200GW를 목표로 태양광 발전시설 등을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이니 다다익선이다. 혹자는 너무 많고 실제 보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그래봤자 OECD 꼴찌에서 중위권으로 진입하는 정도이고 우리 경제 수준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은 현대 산업사회를 이끈 규모의 경제로 풀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에너지는 소량이 전국의 모든 곳에 골고루 주어진다. 1MW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하려면 2,000~3,000평의 토지나 지붕 혹은 옥상이 필요하다. 주택과 공장 등 모든 시설물과 유휴 부지에 태양광 발전이 들어서려면 500kW 이하의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여야 한다.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여 시설을 하는 사업은 불필요한 규제만 제거해주면 많은 양이 필요한 RE100 관련 기업들과 전업 발전사업자들이 풀어 나갈 것이다. 정부에서 신경을 써야 할 곳은 전업 발전사업자가 아닌 부업이나 노후 연금으로 생각하며 참여하는 소생산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허가를 간소화하고 매년 적정 수준으로 정한 기준 가격으로 한전에서 일괄 구매하는 방식으로 판매에 대한 번거로움과 걱정을 해소해주어야 한다.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하면 그냥 전력시장의 구매가격으로 사주면 될 일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 수준에 이른 나라들도 있으니 말이다. 국제사회가 공감하는 감축 목표의 설정과 법제화 그리고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지원책 정립, 두 가지를 보면 이재명 정부 에너지 정책의 성패가 보일 것이다. 신동한

[EE칼럼]뜨거웠던 지난 여름은 지구의 경고음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평균기온은 14.5℃로 평년(12.5℃)보다 2.0℃ 높아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던 2023년의 13.7℃를 다시 경신했다. 올해 여름철 평균기온 역시 25.7℃로, 작년 기록을 넘어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폭염과 열대야와 직결되는 일최고기온과 일최저기온의 여름철 평균도 각각 30.7℃, 21.9℃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을 감안하면, 올해도 전국 연평균기온 기록이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 연평균기온이 매년 연이어 갱신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기상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서도 기후 기록이 다시 쓰이고 있다. 특히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은 15.10℃로 2023년보다 0.12℃ 높아지며, 1850년 이후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다. 이는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만 년 이래 최고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제적 합의와 감축 노력이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며, 증가율조차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2024년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정한 1.5℃ 목표를 이미 넘어선 해로 기록되었고, 현재의 속도라면 2030년대에 1.5℃ 마저 안정적으로 지켜내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강수 패턴 역시 양극화가 뚜렷하다. 경북 의성의 대형 산불은 기록적인 가뭄에서 비롯되었고, 강릉과 강원 영동지역은 사상 최저 수준의 누적강수량으로 제한급수까지 시행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반대로 여름철에는 전국 곳곳에서 시간당 100mm를 넘는 극한강수가 13차례 이상 발생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에 4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국지적 폭우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불균형은 지구온난화와 직결된 현상이다. 강수의 공간적 편차와 강도의 쏠림은 농업과 생태계는 물론, 기후예측과 물관리, 재난대응 체계 전반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폭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현상이 '열돔(heat dome)'이다. 강력한 고기압이 장기간 머물며 공기를 가두는 현상으로, 낮 동안의 강한 일사와 하강기류에 의해 압축된 공기가 기온을 높이고, 밤에도 식지 않게 만든다. 지표면에 누적된 열이 되먹임 효과를 일으켜 폭염은 한층 심화된다. 최근 몇 년간 유럽, 북미, 중국, 중동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기록적 폭염의 배경에도 열돔이 자리하고 있다. 올여름 한반도의 폭염에는 여러 기후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북태평양고기압이 예년보다 일찍 발달해 장마를 방해했을 뿐 아니라 늦게까지 한반도를 지배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강화·확장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전형적 변화와 일치한다. 둘째, 티베트고기압의 확장이다. 히말라야와 티베트 지역의 적설 감소와 지표 가열 증가는 상층의 고온·건조 고기압을 강화시켰고, 그 세력이 한반도 상공까지 뻗어 오면서 북태평양고기압과 겹쳐 강력한 열돔을 형성했다. 셋째, 최근 수년간 이어진 고수온 해역의 확대 역시 한반도 폭염을 심화시켰다.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습도를 높여 불쾌지수를 키우고, 열대야 발생을 늘렸다. 결국 이러한 모든 현상의 밑바탕에는 지구온난화가 놓여 있다. 지표와 해수면의 온도 상승, 고산지대와 극지방의 눈과 얼음 감소, 그리고 그에 따른 대기 순환의 변화가 폭염과 폭우 같은 극단적 이상기상을 촉발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기록을 갈아치우며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적응 전략을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 대응은 단순한 과학적 과제가 아니라 세대 간 정의와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내일의 세대에게 안전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는지를 가른다. 지금의 무책임과 무관심은 미래 세대에게 되돌릴 수 없는 짐으로 남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는 단지 환경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존속을 시험하는 거대한 도전이다. 그렇기에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의무이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EE칼럼]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조건

지금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환경부와 산업부의 일부 기능을 통합해 기후·에너지·환경정책을 한 곳에서 다룰 수 있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구상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기후와 에너지를 통합하되 환경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외에서도 기후와 에너지를 묶는 경우가 많지만, 환경까지 포함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유는 규제 중심의 환경 정책과 산업·에너지 진흥 정책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식 실험이라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혼재되어 사회적으로 여러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기후정책은 환경부, 에너지정책은 산업부가 맡아 서로 엇박자를 내는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함께 조율하면 정책의 일관성이 높아지고, 국제사회에 한국의 기후 리더십을 보여주는 상징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예산과 조직이 커지는 만큼 정책 추진력도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크다. 환경부는 규제 중심 부처다. 여기에 에너지산업 진흥 기능이 결합되면 '규제와 진흥'이라는 상반된 목표가 충돌할 수 있다. 산업계는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맡으면 규제가 더 강해질 것이라 걱정한다. 전문성 확보와 갈등 조율 능력 역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후에너지환경부라는 통합형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까?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정부는 대기오염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당시 취사・난방의 주 에너지원 이었던 연탄을 도시가스로 전환하면서 고체연료사용금지, 청정연료사용의무화라는 강력한 연료사용규제를 도입하였다. 이 규제는 초반에는 산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 그리고 자동차와 정유 산업의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규제가 새로운 산업 성장을 촉진한 셈이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다. 급격한 연탄 사용 감소로 탄광촌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도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도시가스 공급의 지역독점이라는 특혜를 당시 연탄회사에 부여하여 도시가스회사로 전환하도록 함과 동시에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통해 폐광지역을 지원했다. 하지만 규제의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기에는 부족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분명하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충격 완화 장치가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지혜롭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은 단순한 간판 교체나 부처 통합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시험이자 도전이다. 성공의 열쇠는 규제와 진흥의 균형 외에도 정책 충격을 흡수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실행력이다. 특히 여야합의를 통해 어렵게 기반을 다진 에너지3법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하위법령과 시행령을 시급히 제정하여 해상풍력 확대, 사용후핵연료 관리 그리고 전력망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에너지3법의 집행력을 높이고, 중앙정부·지자체·산업계·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을 도모한다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국적 실험을 넘어 국제적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과거의 교훈을 살리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여 갈등의 진앙지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EE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 외교, AI와 원자력 함께 말해야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유엔 총회에서의 기조연설 및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 주재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출국했다. 유엔 무대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을 “국가 경쟁력과 미래 변혁을 좌우하는 핵심동력"으로 규정하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디지털 전환과 산업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번 유엔 무대에서도 AI와 국제 평화·안보를 주요 의제로 다룰 것이라 전해진다. 그러나 AI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 없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 초거대 AI 모델이 요구하는 전력은 재생에너지로만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은 국토가 좁은 것은 물론 지형 및 기후조건이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에 유리하지 못하다. AI 시대의 안정적 전력 공급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현실적 해답은 원자력이라는 것은 이미 글로벌한 수준에서 상식이 되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이번 유엔 외교를 통해 “AI와 원자력은 분리할 수 없는 미래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바란다. 이재명 정부는 국내 원전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신규 원전 건설은 착공에서 상업 운전까지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인 전력 수급 대책으로는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의 확대냐 축소냐 이전에 현재 대한민국 전력 공급의 약 3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원자력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문제의 본질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핵심이 되는 부분은 국내 전력 수급을 넘어서 글로벌 차원에서의 원자력 수요 확대와 핵연료 공급망 불안에 있다. 여러 나라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자력 회귀 내지 신규 도입을 선택하면서, 앞으로 핵연료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원자력 시장에서 뒤처질 뿐만 아니라, 국내 원전 가동에도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연료봉 제작(fabrication)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핵연료주기의 선행 부분인 변환(conversion)과 농축(enrichment) 부문에서는 역량이 매우 최약하다. 현재 전 세계 전환·농축 역량은 캐나다의 카메코(Cameco), 프랑스의 오라노(Orano), 유럽의 유렌코(Urenco), 그리고 러시아의 로사톰(Rosatom) 등에 집중돼 있는데, 특히 러시아의 비중이 크다. 이 구조가 바로 글로벌 핵연료 공급망 불안의 근원이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연대하지 않는다면, 원자력 분야의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연료 확보라는 근본 과제에서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연료봉 제작에서의 비교 우위를 넘어,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에까지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23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가 결성한 '삿포로5(Sapporo-5)'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 간 핵연료 공급망 강화를 선언했다. 이들은 향후 HALEU (High-Assay Low-Enriched Uranium: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과 같은 차세대 원자로 연료까지 염두에 두고 협력 구상을 넓히려 하고 있다. 한국이 이 협력에 연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핵연료 공급망 안정화와 선진화를 선도한다면, 원전 수출국의 지위를 넘어 글로벌 핵연료 질서의 규범 제시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유엔 무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AI와 원자력을 함께 언급할 수 있다면 국내 전력 정책 논란을 넘어서 한국이 세계적 과제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원자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 에너지', AI 혁신을 위한 '전력 기반', 그리고 국제적 규범을 존중하는 '평화적 이용 모델'일 뿐만 아니라,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을 준비해야 할 국제 협력의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설사 이번 유엔 무대에서 당장 이러한 의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한국은 향후에도 국제무대에서 AI와 원자력, 그리고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을 결합한 비전을 주도적으로 제시해야만 한다. 그것이 글로벌 수요 확대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이 국제적 신뢰와 리더십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임은정

[EE칼럼] 황소를 끌고 올 에너지 정책

소꼬리인 줄 알고 덥석 잡았는데, 그 뒤에 집채만 한 황소가 통째로 딸려 나오는 격이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바로 이와 같다. 산업을 도외시한 환경 위주의 정부 조직 개편이나 특정 에너지원 육성 정책이 우리 경제와 산업 전반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치우친 현재의 에너지 정책은 결국 막대한 비용을 국민과 기업에 떠넘기고,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수순이라 설명하지만, 이는 더 큰 문제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판단에 불과하다.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 경제의 연쇄적인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모든 산업 활동의 기초 동력인 전기 에너지가 비싸지면, 원자재 가격부터 공장 기계 가동 비용까지 오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제품 생산 원가에 반영되고, 복잡한 물류와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최종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상승 폭은 훨씬 더 커진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전기요금 인상은 결국 우리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라는 '황소'를 끌고 올 것이다. 지속적인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을 뿌리부터 흔들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90.4원으로, 미국(121.5원)이나 중국(129.4원)보다 월등히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을 더 올리는 것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육상선수에게 족쇄까지 채우는 격이다. 특히 AI, 반도체, 철강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국가 핵심 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이는 수출 부진, 투자 위축,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높은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에너지 정책의 본질은 국민과 기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단 없이 공급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특정 '수단'을 정책의 '목표' 그 자체인 듯이 착각하고 있다.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면서, 정책은 방향을 잃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고, 비상용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계속 가동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꼬리(수단)가 몸통(목표)을 흔드는 격의 정책은 우리 경제를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는 마치 항로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와 같다. 이제는 '소꼬리'만 보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 뒤에 험악한 인상을 하고 선 '황소'의 전체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에너지 정책은 특정 이념이나 단기적 성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원자력을 포함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통해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기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공급 불안정과 가격 변동성의 위험을 키울 뿐이다. 둘째, 전기요금 인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산업계와 국민에게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요금 조정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고려하는 고차원적 정책 설계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공급 안정성',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이라는 4대 핵심 가치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 에너지 전략의 목표를 명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이 네 가지 가치가 바로 우리 에너지 정책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꼬리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결정이다. 우리 경제와 산업,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해야 할 때다. 문주현

[EE칼럼] ‘착한 성장’이 아닌 ‘똑똑한 성장’

세계 전력시장이 대세 전환의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92.5%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으며, 이 중 태양광과 풍력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태양광은 2022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50.6%로 처음 절반을 넘어선 이후, 2023년 61.9%, 2024년 69.3%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풍력은 2020년 34.4%로 정점을 찍은 후 2024년 17.4%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신규 설비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누적 발전설비 용량을 보면 2024년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46.4%에 달했고, 2024년 증가율 정도만 기록해도 2025년에는 화석연료 발전설비와 비슷하거나 역전하게 된다. 2025년은 재생 발전설비 용량이 화석연료를 추월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재생 발전량 점유율도 2024년 31.8%에서 2025년 34%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국의 싱크 탱크 엠버(Ember)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8월까지 재생 점유율은 34.0%, 태양광 9.1%. 풍력 8.6%, 태양광+풍력은 17.7%였다. 태양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력원이다. 2025년 상반기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전년 대비 64% 급증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5년 연간 신규 용량은 700~800GW에 이를 것이다. 이는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 원자력 발전설비 용량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발표된 Ember의 한 연구가 화제가 되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1억 달러로 천연가스를 수입해 1년간 1.5TWh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과 비교해, 같은 금액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면 30년간 매년 1.5T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태양광이 천연가스보다 약 30배의 비용 효율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화석연료 수입은 국가에 반복적인 경제적 부담을 안기지만, 태양광은 일회성 투자로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보장한다. 그럼에도 태양광의 확산 속도가 더딘 현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기관의 시나리오를 종합하면 2050년 전력 수요는 지금의 2~2.5배 수준 즉, 발전량 기준으로 2024년 30PWh에서 2050년 60~75PWh가 될 것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 산업 부문의 전기화, 데이터센터 및 AI 관련 수요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여기서 태양광은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24년 전 세계 전력생산에서 태양광 점유율은 7%, 발전량 2PWh 수준이지만, 2050년에는 최대 50%, 30~37PWh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도 최대 14TW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태양광은 2030년 이전에 원자력, 풍력, 수력을 제치고, 2033년에는 석탄을 넘어 세계 최대 단일 발전원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조직개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 2030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 재생에너지 생산 세액공제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여전히 재생에너지 발전량 점유율은 몇 년째 OECD 최하위이며 아시아에서도 하위권, 아프리카 주요국에도 뒤진다, 태양광 발전량 점유율 순위도 2023년 OECD 24위에서 2024년 26위로 오히려 두 계단이나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다. 한국이 갖고 있는 반도체·이차전지·정밀화학·기계·조선·철강 등에서 축적된 능력과 세계적인 레버리지는 더딘 탄소중립 이행과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과소 평가받고 있다. 탄소중립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도덕 프레임으로 볼 때 생기는 허상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과 수출, 일자리,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잡는 국가 산업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똑똑한 성장'이란 탄소중립으로 가는 성장이 착하냐, 나쁘냐라는 '착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길이 국익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똑똑한 성장의 경로이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은 이미 '탈탄소 프리미엄'을 가격과 정책, 공급망 규칙에 내재했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유럽의 탄소국경조정, 중국의 규모 공세까지 겹치며, 저탄소·고효율 기술을 내재화하지 못한 산업, 기업, 국가는 수출 문턱에서 비용과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며, 반대로,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은 우리 제조업의 구조적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게 됐으니 탄소중립 및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특히 태양광, 풍력 보급에 속도 높이기 위해 인허가 절차 간소화,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지역 주민과의 협력 강화 등을 서둘러 추진할 할 때다. 탄소중립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착한 에너지'라는 도덕적 프레임을 넘어 국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정책이자 '똑똑한 성장'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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