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반그룹에 한진칼 최대 주주 자리를 내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370억 원 규모의 주식 매입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룹 지주회사의 최대 주주가 외부 기업으로 바뀌면서 구겨진 체면을 되찾겠다는 행보다. 조 회장 측이 해외 항공사·국내 기업·사모펀드를 통해 구축한 우호 관계를 고려하면 호반이 넘어야 할 문턱은 최대 주주 등극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호반이 실제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추가 지분 매입과 함께 기존 경영진을 지지해 온 주주들을 설득해야 한다. 산업은행 지분을 전량 인수하더라도 다른 주주의 지원이 필요하고, 급등한 주가는 추가 매입 비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현재의 주주 구도와 제휴 관계가 유지되는 한 호반의 단독 경영권 인수는 현실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 7만5134주로 갈린 최대 주주…조원태, 370억 원으로 재역전 추진 8일 한진칼의 공시에 따르면 호반건설과 계열사 3곳은 보통주 1381만4053주, 지분 20.69%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과 특수 관계인 18명의 보유량은 1373만8919주, 20.58%다. 양측 격차는 7만5134주로, 공시된 지분율 기준 0.11%포인트(p)다. 순위를 바꾼 계열사는 호반산업이다. 호반건설과 호반호텔앤리조트, 호반의 보유량은 유지된 반면 호반산업이 장내에서 35만9379주를 추가 매수하면서 그룹 합산 지분이 조 회장 측을 넘어섰다. 한진칼은 호반 측 통보를 받아 최대 주주 변경을 공식 확인했다. 조 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 2일 보통주 32만5000주를 주당 11만4000원, 총 370억5000만 원에 취득하는 거래 계획을 공시했다. 예정된 물량이 특수 관계인 외부에서 유입되고 다른 지분 변동이 없다면 조 회장 측 보유량은 1406만3919주, 약 21.07%로 늘어난다. 호반을 다시 앞설 수 있는 규모다. 거래 계획 기간은 12월 3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다. 조 회장 측은 이번 대응으로 지주회사 최대 주주라는 상징성을 되찾을 수 있다. 직접 보유 지분의 근소한 우위와 그룹을 움직이는 지배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호반이 최대 주주라는 이름을 얻었다면, 조 회장 측은 기존 이사회와 주요 주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는 구도다. ◇ 델타에서 국내 대기업까지…사업 협력으로 다져진 우호 관계 한진 측 방어력의 핵심은 지분 14.90%를 보유한 델타항공이다. 조 회장 측 20.58%와 델타 지분을 합치면 35.48%로 호반보다 14.79%p 높다. 델타가 현 경영진을 지지한다는 전제 아래 두 주주의 합계만으로도 호반의 직접 보유 지분을 크게 웃돈다. 델타는 대한항공과 2018년부터 태평양 노선 조인트 벤처를 운영하는 핵심 사업 파트너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새로운 경영 주체를 지지할 때에도 주식 매매 차익과 함께 노선 협력과 연결망, 공동 사업의 안정성을 고려할 유인이 있다. 호반이 델타의 선택을 바꾸려면 경영권 변화가 델타에 어떤 추가 이익을 줄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기존 협력 관계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뛰어넘는 제안이 필요한 셈이다. 주식을 사들일 자금에 더해 항공 사업의 파트너를 설득할 전략까지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들이 출자한 사모펀드도 한진 측 방어력을 뒷받침한다. 대신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두 펀드는 한진칼 주식 약 602만 주를 보유해 왔다. 지분 약 9%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현대차·기아·SK에너지·효성·이마트·HD현대오일뱅크 등이 출자 기업으로 거론된다. 두 펀드는 2023~2025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가 제안한 안건에 찬성표를 행사해 왔다. 이들 출자 기업은 항공유 공급과 물류, 시설관리 등에서 한진그룹과 사업적 접점이 있다. 주가 상승에 따른 투자 수익과 기존 거래 관계의 실익이 함께 작용하는 구조다. 호반으로서는 여러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힌 주주 구도를 상대해야 한다. 직접 주식을 보유한 기업으로는 LX판토스·이마트·GS리테일·네이버 등이 있다. 이들 기업과 해외 항공사, 산업은행 등을 포함한 조 회장 측 우호 지분은 53.98% 이상으로 추산된다. 우호 주주들이 같은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가정한 수치다. 호반이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해당 주주들의 선택을 바꿔야 한다. 조 회장 측 직접 보유 지분을 0.11%p 앞서는 데 필요한 자금과 사업 관계로 연결된 주주들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비용·전략은 규모부터 다르다. ◇ 산은 지분 사들여도 31.27%…이사회 확보까지 남은 문턱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 10.58%는 중장기적으로 가장 큰 변수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 유상증자에 5000억 원을 투입했다. 향후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이 지분이 누구에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주주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호반이 산은 지분 전량을 확보하면 지분율은 31.27%로 높아진다. 조 회장 측과 델타가 함께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가정한 35.48%보다 4.21%p 낮다. 국내 기업이나 펀드가 기존 경영진 지지를 유지한다면 넘어야 할 격차는 더 커진다. 산은 지분 인수에는 매각 결정과 매수자 선정이라는 선행 절차가 필요하다. 산은은 투자금 회수와 절차의 공정성, 항공산업 재편 상황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호반으로서는 매입 자금 확보에 앞서 거래 기회부터 기다려야 하는 구조다. 이사회 진입도 별도 과제다. 호반은 주주총회에서 이사 후보를 내세워 필요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 집중 투표를 활용하더라도 선임 인원과 후보 수, 다른 주주들의 투표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감사위원 선출에는 일반 이사와 다른 의결권 제한도 적용된다. 일부 이사의 선임과 이사회 전반의 지배력 확보는 다른 단계다. 이사회에 진입한 뒤에도 주요 의사 결정을 주도하려면 추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현재 우호 관계가 유지된다면 호반은 지분 확보와 주총 표 대결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 주가 오를수록 비싸지는 인수…평가 이익과 현금화 사이의 간극 주가 급등도 호반의 추가 지분 확보에 부담이다. 한진칼은 지난 3일 종가 17만5200원 기준 보통주 시가총액이 약 11조7000억 원에 달했다. 이 가격으로 보통주 지분 1%를 추가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약 1170억 원이다. 산은 보유 주식 706만2146주의 평가액도 약 1조2373억 원이다. 대량 매입 과정에서 가격이 오르거나 별도의 프리미엄이 붙으면 필요한 자금은 더 늘어난다. 호반은 기존 투자에서 얻은 평가이익과 별개로 추가 매입에 투입할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 가치와 주가의 괴리를 지적하는 분석도 나온다. iM증권의 사업 부문별 가치평가에 따르면 한진칼의 적정 시가 총액 추정치는 약 3조3000억 원이다. 대한항공과 한진 등 상장 계열사 지분, 비상장 계열사와 기타 자산·부채를 반영한 값이다. 이 추정치와 시장 가격의 격차는 최근 주가에 반영된 지분 경쟁 기대의 크기를 보여 준다. 호반이 지분을 더 늘리려면 높아진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 주요 주주들이 물량을 유지할 경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주식도 제한된다. 대규모 매각에 나설 때에는 매수 수요와 거래 가격이 문제가 된다. 실제 회수 금액은 매각 규모와 매수 수요, 거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호반의 20%대 지분을 장내에서 처분할 때에는 시장의 물량 소화 능력도 따져야 한다. 매도 규모와 속도에 따라 상당한 시장 충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딜이나 전략적 투자자와의 협상을 추진하더라도 대규모 물량을 받아 줄 상대방과 가격 조건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수 부담을 줄이는 대안으로는 장기 투자와 사업 협력, 지분 매각이 거론된다. 지분을 보유하며 일부 경영 참여나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호텔·리조트 사업과 항공·여행 수요를 연결하는 협력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투자금 회수를 택한다면 기존 우호 주주나 새로운 투자자와의 협상이 관건이다. 호반은 현재 단순 투자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대 주주 변경 공시에도 구체적인 임원 선임·해임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향후 경영 참여로 전환한다면 이사 후보 추천과 의결권 확보, 항공·물류 사업의 운영 구상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조 회장이 되찾으려는 최대 주주라는 지위와 호반이 실제 인수를 위해 확보해야 할 지배력은 다르다. 한진칼을 위시한 한진그룹 조 회장은 최대 주주 자리를 내주며 체면을 구겼지만 호반그룹의 김상열 회장은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기존 제휴 관계와 주주들의 선택을 바꾸고 막대한 추가 자금까지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지분 구도와 우호 관계가 유지되는 한 최대 주주 등극에서 한진그룹 인수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는 평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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