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의 핵심 전력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DDG-51)이 정비하느라 전체 수명의 3분의 1은 작전 해역에 나가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당초 정비 시간보다 2배 이상 긴 시간을 정비를 위해 조선소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미 해군의 심각한 정비 동맥 경화 때문이다. 미국 조선소의 정비 역량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전력 공백이 우려되는 가운데 나온 CBO의 진단은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등 한국 조선업계에 반사이익을 누릴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올해부터 가시화될 한·미 양국의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도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을 위시해 SK오션플랜트·HJ중공업 등 '납기'와 '가성비'를 겸비한 국내 조선사들이 미 해군의 정비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한 'K-조선 4각편대 구축' 초읽기에 들어갔다. ◇ 35년 수명 중 9년이 '정비 중'…CBO “전력 공백 위험 수위" 8일 본지가 입수한 CBO의 최신 보고서 '재래식 해군 함정의 정비 지연(Maintenance Delays for Conventional Navy Ships, Dec 2025)'에 따르면 미 해군 주력 전투함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이 총 수명 35~40년 중 약 27%에 해당하는 9년 이상을 정비와 유지·보수에 소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 해군이 지난 2012년 수립했던 '함정 정비계획'의 예상치인 약 4년(수명의 12%)보다 2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사실상 구축함 4척 중 1척은 상시 도크에 묶여 있는 셈으로, 전 세계 대양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할 미 해군의 가용 전력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정비 기간 폭증의 원인으로 △함정 노후화에 따른 돌발 정비 소요 급증 △부품 공급망 지연 △숙련공 부족 등을 지목했다. 실제로 선령 10년 차 구축함의 정비 기간은 평균 250일 수준이었으나 30년 차 노후 함정은 500일 이상 소요되는 등 '고령화'에 따른 전력 누수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 하루 기회 비용만 8억5000만 원…美, '가성비·납기' 갖춘 대안 절실 함정이 제때 수리를 마치지 못해 발생하는 '기회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CBO는 구축함 1척의 구매·운용 유지비를 역산했을 때 함정이 하루 동안 작전에 투입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가치 손실을 약 60만 달러(한화 약 8억5000만 원)로 추산했다. 단순 계산으로 정비가 한 달만 지연돼도 30일 기준 약 255억 원, 1년이면 3060억 원이 넘는 국방 예산 가치가 증발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지연이 일상화되며 미 해군 전력 전체의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비가 늦어진 함정 대신 가동 중인 함정이 무리하게 작전에 투입되고, 이는 다시 해당 함정의 피로도를 높여 정비 소요를 늘리는 식이다. 결국 미 해군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확한 납기'와 '비용 효율성'을 갖춘 외부 파트너가 절실하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이 한국 조선소를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라고 극찬하며 러브 콜을 보낸 배경에는 이러한 절박함이 깔려 있다. 이러한 미 해군의 수요에 발맞춰 국내 중견 조선사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대형 함정에 강점이 있는 HD현대중공과 한화오션에 이어 특수선과 중소형 함정에 특화된 SK오션플랜트와 HJ중공업이 미 해군 MRO 시장 진입의 최종 관문을 넘어서고 있다. ◇ SK·HJ까지 가세…전투함 직접 고치는 MRO 자격 획득 '눈앞' 조선업계에 따르면, SK오션플랜트는 지난 7일 미 해군 MRO 자격 획득의 필수 조건인 '항만 보안 평가(Port Security Assessment)'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다고 밝혔다. 보안 평가 통과는 사실상 자격 획득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올 1분기 내 함정 정비 협약(MSRA) 체결이 확실시된다. HJ중공업 역시 지난 5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미 해군 범죄수사국(NCIS) 보안 전문가들이 주관한 항만 보안 평가를 완료했다. 이미 지난해 미 해군 군수 지원함의 MRO 시범 사업을 따낸 바 있는 HJ중공업은 이번 평가 통과로 이르면 이달 중 MSRA를 정식 체결할 전망이다. MSRA를 체결하면 미 해군 보급함뿐만 아니라 구축함 등 '전투함'을 직접 수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게 된다. CBO 보고서는 “미국 내 조선소들은 노동력 부족과 비효율로 정비 일정을 평균 30~60% 초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비 물량은 쏟아지는데 이를 소화할 도크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조선업계는 미 해군의 정비 병목을 해소할 완벽한 '4각 편대'를 구축하게 됐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항공 모함·이지스 구축함 등 대형 함정의 대규모 창정비와 성능 개량을 주도하고, SK오션플랜트·HJ중공업이 중소형 전투함·지원함·특수 목적선·긴급 수리 물량을 분담하는 구조다. 이는 미 해군 7함대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력을 운용함에 있어 한국을 핵심적인 '해상 정비 기지'로 활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