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불길’ 삼성 넘어 車·조선·IT로 번진다

삼성전자 노조가 촉발한 '성과급 불길'이 국내 자동차·조선·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물론 정보기술(IT) 업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업 실적 개선에 따른 '성과 공유' 요구가 주요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 거세지면서 성과급 지급 문제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산업별 노조들은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인상과 함께 성과급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를 중심으로 조선·철강 등 강성 노조가 포진한 업종에서 성과급 요구가 노사 협상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먼저, 삼성전자 노조가 불씨를 놓은 성과급 이슈는 완성차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최근까지 사측과 5차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성과급과 신규 채용, 정년 연장 등 핵심 현안을 놓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상여금 800% 지급, 정년 연장과 함께 전년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생산 현장 로봇 도입 확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고용 안정과 신규 채용 확대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10조3648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성과급 규모는 약 3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현대차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2조5000억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기아 노조도 최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요구안에는 기본급 인상 외에도 전년도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자사주 지급 확대, 출산장려금 인상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통상 기아가 현대차 임단협 진행 상황을 참고해 협상에 나서는 만큼 최종 협상 결과 역시 현대차와 유사한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국지엠 노조 역시 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함께 총매출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상견례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르노코리아와 KG모빌리티(KGM)도 선두 업체들의 교섭 상황을 지켜보며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업계에서도 성과 공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고수익 선박 수주 물량이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면서 노조를 중심으로 성과급 확대 요구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 상여금 100% 인상과 함께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증권가에서는 HD현대중공업의 올해 영업이익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노조 요구가 수용될 경우 성과급 규모는 1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HD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화오션 노조는 향후 성과급 지급 체계 개선안을 회사 측에 제출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 노조는 아직 구체적인 요구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오는 6월 말~7월 초 노사 상견례를 앞두고 있어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철강산업도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산업인 만큼 올해 임단협도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8일 노사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해 임단협을 세 차례 진행했다. 올해는 노조가 150% 수준의 성과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측은 내수 부진과 보호무역 등 시황 부진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제철 노사는 2년 전 임단협 때 각각 파업과 직장 폐쇄로 맞설 정도로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해를 넘겨 협상을 타결했다. 다만 지난해는 부진한 철강 시황 등을 고려해 노사가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포스코는 하청 노동자 직고용과 교섭 단위 분리 문제가 얽혀 사정이 더 복잡하다. 포스코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개선한다는 목표로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일하는 생산·조업 협력사 직원 7000여명을 직고용하는 계획을 내놨다. 기존 직군(E직군)과 임금·승진 체계가 다른 S(시너지)직군을 별도로 신설한다는 것이 큰 틀이다. 노조들은 포스코가 하청 직고용 계획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반발했다. 정규직 중심의 포스코노동조합은 하청 직고용으로 정규직이 늘어나면 복지 혜택 등 기존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노위 중재 3차 시한이 28일까지지만 노사 입장 차이를 못 좁힌 만큼 향후 진행될 임단협에서 주요 쟁점으로 가져갈 예정이다. IT 업계에서도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최근 성과급 체계와 고용 안정 문제를 지적하며 경영 책임론을 제기했다. 노조는 공정한 성과 보상과 이익 분배, 경영 쇄신, 고용 안정 및 공동체 안전망 구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의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직원 1인당 성과급은 약 2000만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 등 카카오 계열 4개 법인은 노사 조정이 결렬되면서 이미 쟁의권을 확보했다. 카카오 본사 역시 이날 노동위원회 조정 결과에 따라 쟁의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실시된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5개 법인 모두 파업 찬성이 가결돼 그룹 차원의 공동 파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LG유플러스 노조도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사측과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임단협 4차 교섭에서 노조는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임금 총액을 8%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8900억원과 임직원 수 약 9800명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1인당 성과급은 약 2700만원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이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기업 이익 배분 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산되고 있다"며 “기업 실적이 개선되는 상황에서 노조의 성과 공유 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들의 실적 회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노조들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어 올해 산업계 전반의 임단협은 예년보다 더욱 치열한 협상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성과가 곧바로 성과급으로 연결되는 것이 마치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며 “원래 기업 이익은 투자와 연구개발, 사내유보, 주주 환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돼야 하지만 최근에는 성과가 나면 직원들과 우선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산업계는 노조의 영향력이 큰 만큼 다른 기업의 성과급 사례가 나오면 이를 기준으로 추가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자동차·조선·철강·IT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성과급 요구가 확산되는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무조건 성과급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 이익은 주주 환원과 미래 투자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성과급 확대 요구와 기업의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향후 노사 협상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항공보안학회, ‘2026년 제2회 항공 보안 논문 공모전’ 개최

항공 보안과 안전 분야의 발전과 제도 개선, 차세대 보안 기술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논문 공모전이 열린다. 27일 한국항공보안학회는 '2026년 제2회 항공 보안 논문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참가 자격은 주저자를 기준으로 일반인·석사 이상 대학원생이 참여하는 '일반부'와 학부생 대상의 '학생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공모 분야는 총 5개 부문으로 △항공 보안 법제·제도 개선 △공항·항공 보안 검색·경비 △항공사·항공기 내·항공 화물 보안 △차세대 항공 보안 장비 기술 개발 및 드론·UAM 보안 △기타 항공 보안·항공안전 분야 등이다. 제출 논문은 공모전에 내는 시점을 기준으로 국내외 학술지에 발간(발간 예정 포함)되지 않은 미발표 순수 연구 성과여야 한다. 논문 접수 기간은 오는 6월 1일 9시부터 22일 17시까지다. 참가자는 논문 투고 신청서·투고용 논문(저자명 제외)·KCI 논문 유사도 검사 결과 보고서(유사율 10% 이하)를 제출해야 하며, 학생부 지원자의 경우 재학 증명서를 추가로 구비해 항공보안학회 공식 이메일로 접수하면 된다. 주최 측은 연구 윤리를 엄격히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생성형 AI의 생성 결과물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은 연구 윤리 위반으로 간주해 자동 탈락 처리한다. 논문의 가독성 향상과 언어 교정을 위한 제한적인 생성형 AI 활용은 허용한다. 접수된 논문은 투명하고 체계적인 심사 과정을 거친다.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유사도 점검·양식 준수 여부·자격 기준 등을 살피는 1차 정량 평가가 진행되며,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독창성·적합성·적절성·적용성·논문 완성도 등 10개 항목을 심층 평가하는 2차 정성 평가가 이어진다. 시상 규모는 총 20편, 총상금은 1000만 원에 달한다. 최우수상(총 6편, 일반·학생 각 3편)은 한국공항공사장상, 인천국제공항공사장상, 항공안전기술원장상과 각 5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우수상(총 4편, 일반·학생 각 2편)은 인천공항보안·한국공항보안 사장상과 각 50만 원, 장려상(총 5편, 일반부 2편·학생부 3편)은 한국항공보안학회장상과 각 40만 원, 특별상(총 4편, 일반부 2편·학생부 2편)은 테러보안대책협의회 의장상과 각 50만 원을 수여한다. 최종 수상작은 7월 3일 심사위원회를 거쳐 7월 6일 학회 홈페이지 공지·개별 통보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7월 8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열리는 '항공 보안 주간 개막식' 행사와 연계해 진행된다. 아울러 본 공모전에 제출한 논문 중 저자가 희망할 경우, 오는 8월 31일 발간 예정인 학회 학술지 '항공보안·안전 거버넌스'(제8권 제2호)에 투고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공모전에 관한 자세한 사항 문의는 학회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HD현대重, KDDX 상세 설계·선도함 건조 입찰 등록…‘보안 감점 연장 금지’ 가처분 신청도

HD현대중공업이 대한민국 해군의 숙원 사업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 입찰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와 동시에 입찰의 최대 쟁점인 '보안 감점'의 부당한 연장을 막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서며 정면 돌파 의지를 확고히 했다. 27일 HD현대중공업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 참여를 위한 입찰 참가 등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KDDX 사업은 △선체 △전투 체계 △대형 통합 마스트 등 주요 구성품을 순수 국내 기술로 연구·개발하는 동시에 국내 최초로 '통합 전기식 추진 체계'를 적용하는 초고난이도 국책 사업으로, 총 사업 규모는 7조8000억 원에 이른다. 앞서 KDDX의 '기본 설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는 HD현대중공업은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 강화와 국가 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이번 입찰 참여를 결정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국내 1위 함정 사업자로서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KDDX 사업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책임 있는 자세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KDDX 대전'의 핵심 아킬레스건, '보안 감점' 두고 법정 공방 예고 이날 HD현대중공업은 또한 법원에 '보안 감점 연장 적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KDDX 사업권을 두고 한화오션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수주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인 보안 감점의 부당함을 공론화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HD현대중공업이 법적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 방위사업청이 진행한 '해양 정보함(AGX, Auxiliary General Ocean Surveillance) 기본 설계' 제안서 평가 결과가 발단이 됐다. 당시 평가에서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적용한 보안 감점이 법적 근거 없이 부당하게 연장 적용됐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은 KDDX의 직전 단계인 기본 설계를 수행한 업체인 만큼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 역시 자신들이 맡는 것이 국방 전력 공백을 줄이는 순리라는 입장이다. 반면 경쟁사인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HD현대중공업 직원이 자사의 KDDX 개념 설계 자료를 불법 탈취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들어, 도덕성과 공정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HD현대중공업은 해당 사건으로 인해 군사 기밀 보호법 위반으로 방사청 입찰 시 1.8점의 보안 감점을 적용받아 왔다.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결정되는 방산 입찰 특성상 이 감점은 치명적인 페널티로 작용했다. 올해 초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부정당 업자 제재)' 안건을 심의했으나 대표나 임원이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다며 행정 지도로 마무리하고 입찰 참여 길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경쟁사 간의 고발전과 감사원 청구 등이 이어지며 감점 적용 기간과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이번 가처분 신청에 대해 “KDDX 사업의 공정하고 투명한 진행을 위한 정당한 조치"라며 기술력 중심의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국가 안보를 책임질 차세대 구축함 사업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만간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예정인 가운데 기술력 우위를 내세운 HD현대중공업과 감점 제도를 무기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한화오션 간의 KDDX 수주전은 법정 공방으로 번지며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Scope] 대한항공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의 명암과 ‘메가 캐리어’ 밸류업 승부수

올해 1분기 글로벌 거시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최악의 경제상황)'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지난 3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국지전에서 촉발된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 고조로 배럴당 100달러대의 고유가와 원·달러 환율 급등이 국내외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환율·고유가·고금리 등 '3고(高)의 노멀(일상화) 현상'은 유가와 환율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항공업계를 융단폭격했다. 그 여파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항공사들은 필연적으로 원가 압박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최근 공시한 1분기 보고서와 기업가치 제고 계획안을 면밀히 뜯어보면, 대외악재를 오히려 수익 극대화의 지렛대로 뒤바꾸는 압도적인 펀더멘털과 위기 관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종속회사 실적이 모두 반영된 대한항공 연결재무제표의 행간을 교차검증해 보면 외형성장의 이면에 똬리를 튼 거대한 '재무적 뇌관'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과정의 험난한 과제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 악재를 호재로 만든 '운영의 묘'와 막강한 현금 창출 능력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매출 4조5151억원, 영업이익 516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 매출은 14.1%, 영업이익은 47.3% 폭증했고, 영업이익률도 11.4% 늘어 항공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항공기노선 계획에 따라 기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대한항공의 전략적 유연성의 결과다. 1분기 여객사업본부 노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2조6131억원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양적 성장을 넘어선 질적 성장이다. 국제선 탑승률(L/F)은 84.9%에서 88.5%로 3.5%포인트(p) 상승했고, 수익성의 핵심 지표인 1㎞당 운임(Yield) 역시 124원에서 128원으로 올랐다. 실적 증가의 결정적 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중동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였다. 전쟁 위험에 따른 중동지역 영공의 불안정성이 극에 달하자 기존에 두바이·도하 등 중동 허브를 경유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던 글로벌 환승객들이 중동 항공사 이용을 기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이탈 수요는 우회항로와 안전한 직항편을 제공하는 대한항공의 유럽·동남아시아 연결 노선으로 대거 몰려드는 반사이익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타노선 대비 수익성이 월등히 높은 유럽 노선 매출은 전년 대비 18%나 늘었다. 여기에 중국의 무비자 정책 안정화와 춘절 연휴 효과가 맞물리며 중국 노선 매출이 19% 뛰었고, 역대급 엔저 현상 장기화로 폭발한 일본 노선 수요에 선제적으로 공급(ASK)을 10% 늘린 '탄력적 기재 운영'이 적중해 일본 노선 매출 또한 12% 증가했다. 수요가 둔화되는 곳의 공급을 즉각 빼서 수요가 넘치는 곳에 꽂아 넣는 수익성 방어 전략이 통한 것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여객기 밸리 카고 공급 증가로 운임 하락이 우려됐던 화물사업은 1조90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3.5% 성장을 일궈냈다. 화물수송 실적(CTK)도 1.8% 올라 완연한 반등세를 보였고, 화물 운임은 516원에서 525원으로 오히려 1.7% 상승했다. 이와 관련, 글로벌 산업계에 불어닥친 '인공지능(AI) 혁명'이 일등공신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고가이면서 진동과 시간에 극도로 민감한 △반도체 △서버 랙 △첨단 배터리 등 하드웨어 장비의 항공수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불어 중동사태 여파로 홍해 항로가 막히는 등 글로벌 해운 물류망이 마비되자 촌각을 다투는 긴급 산업재와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발 전자상거래 초국경 물량이 해운을 포기하고 항공 화물로 대거 옮아왔다. 이 호기를 놓칠세라 대한항공은 글로벌 화주들과 고정계약 물량을 선제적으로 묶어두고 수요가 빗발치는 미주 노선 등에 전세기를 집중 투입해 화물단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 대한항공 1분기 성적표에서 눈여겨볼 또다른 대목은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실적이다. 분기 매출 2522억원을 기록하며 기타수익 부문에서 전년 대비 74.0%라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글로벌 방산 수요 증가 속에 중고도 무인기 양산 1호기 출고와 군용기 창정비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수주 잔고를 4조7172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면 대한항공의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건전하다. 별도기준 현금성 자산은 2025년 말 3조4926억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 말 4조3648억원으로 불과 3개월 만에 25.0%(8722억원)가량 급격히 불어났다. 연결기준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무려 2조888억원에 이른다. 이는 매표 대가인 선수금이 늘어난 데에 기인한다. 별도기준 선수금은 5조6018억원에서 6조5524억원으로 17.0%(9506억 원) 급증했다. 연결재무제표 상 유동선수금·유동선수수익·유동성이연수익 등 계약부채 합계 역시 약 6조9397억원 규모로 막대한 수준이다. 고환율·고유가 기조 장기화로 향후 유류 할증료 인상을 우려한 승객들과 미주 등 여름 성수기를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항공권을 미리 발권한 결과다. 선수금은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며 승객이 탑승하는 순간 100% 매출로 치환되는 '착한 부채'로 평가받는다. 이 유동성은 향후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천문학적 비용을 방어할 든든한 실탄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연결 자회사의 늪과 환율의 저주, 통제 불능 고정비의 경고 그러나,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짙기 마련이다. 별도손익계산서의 화려한 숫자에 환호하기엔 종속회사를 아우르는 연결재무상태표의 하단이 보내는 경고음이 크게 들린다. 대한항공의 별도기준 1분기 영업이익은 5169억원이지만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337억원으로 곤두박질친다. 지난해 1월 당기순이익 3499억원과 비교해 무려 90.4%나 증발한 수치다. 이처럼 수익을 집어삼킨 첫 번째 주범은 '환율의 저주'다. 지난해 말 1434.9원이던 원·달러 평가환율은 올해 1분기 말 1513.4원으로 불과 석 달 만에 78.5원(5.47%)이나 치솟았다. 항공사는 대규모 기단을 구매하거나 리스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달러 빚'을 져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대한항공의 별도순외화부채만 55억 달러다. 결국 1분기에만 환율 폭등으로 연결손익계산서 상 무려 8651억원의 외화환산손실과 218억원의 외환차손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별도기준 외화환산차손은 3895억원이었다. 다행히 대한항공 재무본부는 통화·이자율 스왑과 유가 옵션 등 각종 헷징 수단을 빌어 연결기준 파생상품 평가이익 3511억원, 거래이익 395억원으로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연결당기순이익 337억원을 분해해 보면 더 뼈아픈 현실이 드러난다. 지배기업 소유주 귀속 순이익은 1218억원이었으나, 아시아나항공 등 기타주주 몫인 비지배 지분 순손실은 8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12월 종속기업으로 편입된 아시아나항공의 실적 때문이다. 1분기 연결감사보고서 주석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524억원, 분기 순손실 2517억원을 냈다. 노후기재 정비일수 증가로 인한 사업량 감소와 저수익 단거리 노선의 비운항, 환율·유가 타격을 독자 방어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영업이익 576억원을 낸 진에어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본체가 번 돈을 아시아나항공이 까먹고 있는 형국이다. 연말 물리적 합병 전까지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은 대한항공의 연결재무제표를 끊임없이 짓누를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의 별도부채 비율은 2025년 말 244%에서 266%로 소폭 늘었다. 하지만 진정한 우려는 연결재무상태표에 있다. 1분기 말 연결자산은 53조3102억원, 자본은 11조2751억원, 부채 총계는 42조350억원으로 연결부채비율은 372.8%에 육박한다. 본질적으로는 11조9832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합산과 금융부채의 팽창 때문이다. 에어버스 A350·A321neo나 보잉 787-10 등 고효율 친환경 항공기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연결기준 리스 부채가 13조8987억원에 이르고, 차입금과 사채를 합친 전체 금융차입 규모는 23조9576억원이다. 3고(高) 시대의 고금리 환경에서 불어난 이 빚은 1분기에만 2163억원의 막대한 연결이자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비용의 질적 측면에서도 고민이 깊다. 연료비 자체는 중동사태에 따른 단가(82억원)와 환율 상승의 악조건 속에서도 고효율 기재 운영을 통한 소모량 절감(328억원) 덕분에 별도기준 전년 대비 1.2%인 136억원 가량 줄었다. 그러나 인건비를 제외한 '연료비외 영업비용'이 별도기준 16.2%(4068억원) 늘었다. 연결기준 감가상각·무형 자산상각비는 7433억원으로 확인된다. 장기적인 연료비 절감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대응을 위해 대거 도입한 신형 항공기들이 역설적으로 감가상각비를 별도기준 15%(698억원)나 수직상승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해외 현지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전 세계 주요 공항의 지상조업 단가·조업사 인건비·시설이용료가 일제히 오르면서 별도 공항·화객비가 10%(617억 원) 급등했다는 점이다. 연결기준 공항 관련 지출은 5719억원을 차지한다. 또한,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제조원가 상승으로 별도 기타비용이 65%(2846억원) 치솟았다. 항공 수요가 팽창하며 매출이 느는 만큼 통제 범위를 벗어난 고정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구조적 압박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 '메가 캐리어' 출범과 자본 구조 혁신에 기반한 올해 기업 가치 제고 계획 단기적 재무 압박과 통합의 난관 속에서도 대한항공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통해 글로벌 톱티어 항공사로의 도약과 주주 가치 퀀텀 점프라는 마스터 플랜을 천명했다. 우선 과거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였던 배당 정책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혁신했다. 기존에는 매년 12월 31일에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확정하고 이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사후적으로 결정하는 기형적인 '깜깜이 배당' 구조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해 3월 정관을 변경해 이사회에서 배당안과 배당 기준일을 먼저 확정공시한 뒤 배당을 받을 주주를 확정하도록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투자자는 받을 배당금을 정확히 확인한 뒤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돼 주주 권익이 극대화됐다는 평가이다. 나아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합병 과정 속에서도 주주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미실현 손익과 일회성 비경상 손익을 제외한 '별도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30% 이내 주주 환원'이라는 중장기 배당 정책을 아시아나항공 합병 완료 시점인 2026년 회계연도까지 흔들림 없이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기관 투자자들이 이번 밸류 업 공시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점은 올해 12월 17일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과의 최종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적 마법'이다. 대한항공은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63.9%를 인수해 이미 자회사 편입을 마쳤다. 올해 말 합병 비율 1대 0.2736432로 두 회사가 법적으로 완전히 통합될 때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따라 대한항공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주식에 대해서는 합병 신주가 전혀 발행되지 않는다. 통상 대규모 흡수 합병은 피합병 법인의 주식만큼 막대한 신주가 쏟아져 나와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극심하게 희석되는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전체 아시아나항공 보유주식에 대해 신주를 찍어내지 않음으로써 시장에 유통될 주식 수를 원천 차단했다. 이는 회사 자본으로 시장의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영구 소각하는 것과 동일한 '대규모 자사주 소각 효과'를 창출한다. 합병 리스크가 오히려 기존 주주들의 주당 순이익(EPS)과 주당 가치를 상승시키는 구조적 안전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2026년 말 통합 항공사가 출범하면 연 매출 23조원 이상, 보유기재 230여 대, 운항 도시 120개를 아우르는 '글로벌 메가 캐리어'가 탄생한다. 통합 대한항공의 인천국제공항 슬롯 점유율은 37%로 올라 환승 수송객을 70% 이상 증대시키고, 아시아-북미 노선 좌석 공급력 2위로 올라서 여객 공급을 55% 이상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대한항공은 글로벌 탄소규제라는 경영 리스크에 대응해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을 단행한다. 동급 기종 대비 좌석당 탄소 배출량을 최대 25% 줄이는 고효율 친환경 항공기 138대를 오는 2033년까지 대거 도입한다. 특히, 항공업계의 차세대 생존 필수재인 지속가능 항공유(SAF) 확보를 위해 삼성E&A와 전략적 협력(MOU)을 맺고 해외 SAF 생산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한다. 또한, 지난해부터 적용된 유럽연합(EU)·영국 출발편 SAF 2% 의무 혼합규제를 차질 없이 이행하며 글로벌 환경 페널티를 피해가고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 통합 등급 A를 획득하며 ESG를 최우선 척도로 삼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해자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 역시 지난해 5월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A0(안정적)로 상향하며 이러한 체질 개선을 공인했다. 류연주 한국신용평가 수석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의 연결 편입 이후 대한항공의 차입 부담이 크게 증가했고, 이 외에도 항공기 도입·영종도 엔진정비공장 설립·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웨스트 젯 등 해외 항공사 지분 매입과 같은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도 계획돼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류 애널리스트는 “대한항공이 수년 간 확충해 온 재무 여력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비용 부담 절감과 통합 시너지 기반의 영업 현금 창출력 제고 등을 감안하면 순차입금 의존도 30% 내외의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제주항공, B737-8 2대 추가 도입…기단 현대화 가속

제주항공이 미국 보잉사의 차세대 항공기 2대를 추가 도입하며 기단 현대화와 지속가능 성장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주항공은 B737-8 11·12호기를 도입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제주항공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가장 많은 12대의 B737-8 기단을 보유하게 됐다. 이번 도입으로 제주항공의 전체 여객기 44대 가운데 차세대 항공기 비중은 27.3%로 확대됐다. 구매 항공기는 B737-800NG 4대와 B737-8 12대 등 총 16대로 전체 기단의 36.4%를 차지한다. 평균 기령은 11.3년이다. 제주항공은 기존 B737-800NG 중심 기단을 연료 효율이 높은 B737-8으로 전환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신형 항공기는 연료 절감과 함께 부품 교체 주기 연장, MRO 비용 절감 등의 장점이 있으며 구매기의 경우 자산 운영 측면에서도 유연성이 높다. 제주항공은 2023년부터 B737-8 구매 도입을 본격화했으며 노후 리스기 반납과 경년 기체 매각 등을 병행하며 기단 효율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신조기 도입과 기단 효율화로 핵심 운항 인프라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파라타항공, 여객 이어 화물도 순항…수익 다변화 속도

파라타항공이 국제선 여객 사업에 이어 화물 사업에서도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26일 파라타항공은 올해 1~4월 국제선 노선에서 총 2821톤의 화물을 수송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4월 실적은 약 883톤으로 올해 들어 월간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노선별로는 일본 나리타(NRT) 노선이 누적 약 1862톤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베트남 다낭(DAD) 노선도 약 928톤을 기록했다. 오사카 간사이(KIX) 노선 역시 물동량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파라타항공은 일본·베트남 중심의 국제선 여객 수요 확대와 함께 항공기 하부 화물칸을 활용한 화물 운송을 강화하며 수익 구조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A330 광동체 항공기를 투입한 나리타·다낭 노선에서는 여객과 화물 수요가 동반 성장하며 운영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 파라타항공 관계자는 “앞으로도 노선별 특성에 맞춘 화물 운영 경쟁력을 강화해 안정적인 수익 기반 확보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르포] 보법이 다른 중국의 드론 산업…선전 UASE서 목도한 ‘저공 경제 굴기’

[중국 선전(심천)=박규빈 기자] 지난 21일, 아침부터 가늘게 이어지던 빗줄기가 선전 컨벤션 센터(SZCEC) 광장을 적셨다. 그러나 악천후가 거대한 폭풍처럼 몰아치는 중국의 '저공 경제(Low-Altitude Economy)' 열풍은 잠재우지 못했다. 전시장 정문 앞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각국 드론 협회장들을 비롯, 군·경 관계자·방산 바이어·정부 기술 관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유리벽 너머에는 '2026 세계 무인기 대회-국제 저고도 경제·무인 시스템 박람회(UASE, Unmanned Aircraft Systems Expo)'의 막이 올랐음을 알리는 문구가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이 박람회는 민간 드론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미래 국가 전략 산업이자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의 핵심 기둥으로 추진 중인 저공 경제의 가공할 군사적·상용화 전력화를 총망라한 무대여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코엑스 A·B·C·D 4개 홀을 모두 합친 넓이의 10배에 달하는 전관을 가득 채운 부스들에서는 중국 기술의 무서운 독주를 증명하는 강연과 글로벌 바이어들의 상담 목소리가 쉼 없이 터져 나왔다. ◇“하늘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저공 경제 10년의 집대성 이날 오전 개막식에서는 양진차이 세계무인기연맹(WUAVF) 회장 겸 선전무인기산업협회장의 선언을 시작으로 중국 저공 산업을 이끄는 거두들의 거침없는 발언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양 회장은 10주년을 맞이한 소회와 글로벌 플랫폼으로의 성장세를 강하게 피력했다. 양 회장은 “올해로 세계드론대회(WDC)와 선전 국제 드론 전시회가 10주년을 맞이했는데 초창기 고작 100여 개 기업으로 시작했던 작은 행사가 이제는 전 세계 120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총 전시 면적만 11만㎡에 달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규모의 무인 시스템 박람회로 성장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끊임없이 깊이 다지고 멀리 내다보며 전 세계 혁신 자원을 모으고 산업 표준을 함께 구축하는 글로벌 이정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저고도 경제의 국가 전략화와 상용화 비전을 명확히 제시했다. 양 회장은 “저고도 경제는 이미 3년 연속 정부 업무 보고에 등장했으며, 국가전략성 신흥 산업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며 "공역 개혁이 심화되고 법적 규제 체계가 완비됨에 따라 이제 우리 산업은 개념 검증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대규모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며 우렁찬 목소리로 박람회의 공식 개막을 선언했다. 셰링 위펑웨이라이 대표는 “중국의 드론 산업 규모와 기술 수준은 이미 세계 최전열에 서 있다"며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 지역 최초로 2톤급 전기 수직 이착륙기(eVTOL) 'M1' 유인 항공기 실물을 독점 공개하는 등 글로벌 저고도 경제를 선도하는 제조 역량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혈액 배송부터 차량 분리형 eVTOL까지…보법이 다르다 현장에서 직접 들은 중국 드론 산업계의 강연과 미래 구상은 한국의 상식과 기술적 '보법'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규제와 스펙 테스트 단계에 머물러 있는 드론 물류가 이곳에서는 이미 '혈액 배송'과 같은 극도의 정밀함과 신속성을 요구하는 응급 의료 영역까지 실전 배치되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미래 모빌리티의 패러다임을 깨부수는 구체적인 하이브리드 전기 수직 이착륙기(eVTOL) 운송 구상이었다. 탑승객이 탄 차량의 바퀴와 시트가 포함된 하부 플랫폼을 분리한 뒤 엘리베이터와 같은 기구를 통해 상태 그대로 상공의 eVTOL과 물리적으로 직접 연결해 즉시 날아가게 만들겠다는 과감한 메커니즘이 이미 상세 설계 단계에서 발표됐다. 도로 주행과 공중 비행의 한계를 공급망 전체의 구조적 융합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민수 분야의 진화도 매서웠다. 농업 분야 드론이라면 넓은 논밭에 약제를 뿌리는 대형 방제 드론을 떠올리기 쉽다. 현장에서는 드론 하단에 탑재된 초고해상도 AI 카메라를 바탕으로 농산물의 생육 상태를 실시간 스캔해 '가장 상품 가치가 높은 양질의 개체'만을 콕 집어 골라내 수확하는 지능형 농업 솔루션이 제시됐다. ◇2666만 시간 날아오른 중국 하늘…3.5조 위안 '블루 오션' 이면의 그늘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며 기자가 느낀 감정은 감탄을 넘어선 거대한 위기감이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중국의 저공 경제는 이미 다가올 미래 예측이 아니라 수치로 증명되는 정량적 실체였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중국 전역의 무인기 총 비행시간은 2666.7만 시간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15.4퍼센트라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와 산업계는 각 지역의 저공 경제 시범 사업이 가속화됨에 따라 오는 2035년에는 관련 시장 규모가 무려 3조5000억 위안(한화 약 780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 단위의 메가 블루오션이 중국 주도로 활짝 열린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눈부신 고속 성장 이면에는 새로운 안보·공공 안전 위협이라는 무거운 과제도 공존하고 있었고, 이는 곧바로 또 다른 방산 시장의 기회가 되고 있었다. 불법 비행을 뜻하는 '흑비(黑飛·헤이페이)' 난맥상이 도심과 산업 기지 전반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수동적 공중 감시 모델로는 사방으로 열린 전 공역의 민간 개방 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저공 방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불법 드론을 사전에 '보지 못하고, 위험 기체를 날지 못하게 막지 못하며, 위협 상황을 관리 통제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안보 공백'이 발생하고 있어 역설적으로 중국 내 '안티(대) 드론' 산업이 군용 테러 대응 스펙으로 급부상하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전언이다. ◇국산 방산 무기 무색하게 만든 '10분의 1' 가격표와 과감한 제원 공개 국내 방산·항공 박람회에서나 최고 기밀로 취급되던 기술들이 이곳에서는 이미 전시장 바닥에 널려 있었다.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치열하게 경쟁 중인 무인기(UAV) 기술이나 무인 표적기 형태의 기체들은 중국에서 양산화 단계의 상품으로 널려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한화시스템이나 LIG D&A(구 LIG넥스원)이 자랑하는 레이저 무기·대 드론 레이더·재밍 장비들도 중국 업체들이 제작해 현장에 전면 배치한 상태였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수직 계열화와 규모의 경제에서 나오는 '가격'"이라며 “한국이나 서방 국가 제품과 비교했을 때 제작 단가가 많게는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대량 생산과 군집 보급이 너무나도 쉽다"고 귀띔했다. 시쳇말로 '뻥 스펙'도 있었겠지만 중국 기업들의 마케팅 방식은 공격적이다 못해 대담하기까지 했다. 국내 방산 기업들은 대외비나 군사 보안 등을 이유로 항속 거리나 체공 시간 등 상세 제원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편이어서 '000km', '00시간'으로 표기해두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민·군 겸용으로 즉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기체와 방산 장비의 마이크로파 제원을 배너와 브로셔를 통해 과감하게 공개하며 전 세계 바이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야간 작전의 판도를 바꾼다...차세대 AI 방산 기술 '풀 컬러 나이트 비전' 전시장 곳곳에서는 무인기 기체뿐만 아니라 현대 정찰 방산 무기 체계의 핵심 눈 역할을 하는 영상 감시 센서 기술의 대격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공 지능(AI)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을 기반으로 전장 밤하늘을 낮처럼 밝히는 '드론용 AI 풀 컬러 나이트 비전 솔루션' 기업들은 K-방산 관계자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기술이었다. 야간이나 악천후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시야를 완벽히 확보하는 게 군사 작전과 방산 정찰 무기 체계의 성패를 가르는 차세대 안보 핵심 기술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하이테크 기업 '심지미래(Deepthink·深知未来)'는 독자 개발한 '지영 AI ISP(知影 AI ISP)' 연산 기술을 공개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AI 신경망 계산을 통해 실시간으로 노이즈를 제거하고 복잡한 날씨 환경의 화질을 극적으로 개선하는 '소프트웨어 정의형 야시 카메라' 생태계를 입증했다. 지영 AI ISP 엔진의 핵심은 야간과 악천후라는 극한 환경을 극복하는 6대 알고리즘 기술이다. 빛을 강제 증폭시켜 화질이 깨지던 기존 카메라와 달리 달빛조차 없는 0.003룩스 조도에서도 노이즈를 실시간 보정하는 'AI 야시 증강'을 구현했다. 여기에 실시간 명암비를 최적화하는 'AI HDR', 저해상도 영상을 선명하게 확대하는 'AI 초해상도', 적의 서치라이트 공격을 차단하는 '강광 억제', 가시광과 적외선 열화상을 가려내는 '쌍광 융합'이 유기적으로 결합됐다. 특히 폭우나 안개 속에서 빗방울과 안개 입자만 컴퓨터 연산으로 완전히 지워내는 'AI 제거·비 교정' 기술은 현대 전술 정찰의 판도를 바꿀 차세대 방산 기술로 평가받는다. 중국 공안이 담당하는 사회 안전 부문의 핵심 자산으로 소개된 '차량 탑재형 무인기 시스템'도 볼 수 있었는데 한 손으로 들 수 있을만큼 가벼웠다. 이는 지상 관제·충전 기지인 드론 스테이션을 4륜 구동 차량의 후방 적재함에 일체형으로 통합한 형태다. 요원이 주행 중에도 복잡한 조립 없이 즉각 임무 배치를 할 수 있어 작전 반응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며, 광역 감시와 정찰 작전을 동시에 지원하는 이동형 지상 지원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공식 카탈로그에 따르면 이 플랫폼에 탑재되는 무인기들은 VTOL 기능을 갖춰 험지나 도심 등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한 대의 차량으로 여러 대의 무인기를 동시에 제어하는 군집 협동 작전을 지원해 넓은 구역을 촘촘히 덮는 영역 커버리지와 장거리 통신 릴레이 미션, 실시간 태스크 할당도 가능하다. 장비 전체가 완전 모듈화 설계 구조로 제작돼 신속한 해체와 긴급 재배치도 용이하다. 이는 실제 국경 순찰·실시간 보안 모니터링·대형 재난 시 비상 대응·국가 핵심 인프라 고속 진단·원거리 사전 정찰 등 치안 다목적 시나리오에 전방위로 전력화돼 있었다. 안티 드론 부문의 또 다른 강자인 에프사인(FSAIN·凡双科技) 역시 고도화된 무선 주파수(RF)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론트 엔드 장비와 백 엔드 스마트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감지-분석-처치' 일체화 관리 제어 체계를 구현했다. 이 회사는 공공 안전·발전소·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맞춤형 통합 솔루션을 공급 중이고, 탐색 주파수 대역이 촘촘한 다차원 융합 일체형 시스템과 배낭형 멀티 미션 디펜더가 주력 제품군이다. 대드론·소재 기업들의 라인업도 있었다. 베이징이공대학교 연구실 창업 기업인 이공전성(理工全盛)은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정의 무선(SDR) 기술 기반의 '플러그인 지능형 방공 플랫폼'을 선보이며 미지의 신종 드론 전파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재밍 라이브러리를 즉석에서 업데이트하는 기술력을 과시했다. 장거리 광학 탐지 분야의 강자인 광궁정진(HOPEWISH)는 AI 딥러닝 기반의 자동 추적 알고리즘을 탑재해 DJI 팬텀 4 기종 기준 소형 드론을 최대 5km 밖에서 포착하고 노이즈를 99.8퍼센트의 정확도로 가려내는 레이저 감시 카메라를 제안했다. 중천해상항공장비는 시속 400km의 속도로 비행해 전방 그물망 포획이나 직접 충돌로 적 드론을 격추하는 물리적 파괴 방식의 '요격용 자살 드론' 체계로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대기업인 길림화섬(Jilin Chemical Fiber)이 무인기 본체 뼈대가 되는 탄소 섬유 원사부터 가공재까지의 공급망을 수직 계열화해 고강도 원사 제조 단가를 기존 서방재 대비 30퍼센트 이상 절감하는 등 중국 드론 산업 전체의 단가 공습을 아래에서 탄탄히 받쳐주고 있었다. 전시장 정중앙에 대규모 부스를 꾸린 연합비기(联合飞机, United Aircraft)는 중국의 무인 항공 기술이 이미 상용화와 대량 양산 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란잉(Lanying) R6000은 최대 이륙 중량 6000kg, 최대 탑재 중량 2000kg에 최고 순항 속도 시속 550km, 최대 항속 거리 4000km를 자랑하는 대형 6톤급 틸트로터 무인 항공기다. 함께 전시된 T1400은 자체 중량 450kg에 최대 650kg의 화물을 싣고 시속 100km로 비행하는 고중량 화물 수송용 탠덤 로터 드론이다. TD550 무인 소방 드론은 최대 이륙 중량 550kg에 최대 6500m 고고도 정찰과 200km 거리의 데이터 링크를 지원하며 영하 40도부터 영상 55도까지 견디는 외장 내구성을 증명했다. 전시장 한켠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나 LIG D&A의 로봇 자회사 고스트 로보틱스가 만들 법한 4족 보행 로봇 개도 있었고, 그 옆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아리온 스멧과 현대로템 HR 셰르파와 같은 무인 차량(UGV)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AI 기반의 고도화된 딥러닝 강화 학습 알고리즘을 내장해 험지 보행 성능을 실시간으로 보정한다. 무엇보다 공중의 드론과 상호 연결돼 인간의 개입 없이 대형을 유지하고 목표를 타격하는 '공지 무인 군집 협동 자율 합동 작전 기능' 수행도 가능하다는 말도 들었다. ◇K-항공·방산 기업들, 도취될 때가 아니었다 이번 UASE 전시회 현장의 공기는 무거운 습기를 머금어 매우 덥고 습했지만 마주한 진실은 차가웠다. 과거 국내 언론 매체들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무인 시스템 산업을 두고 '보안성이 떨어지는 조잡함의 조립체' 따위로 치부하며 괄시·멸시·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랬던 중국의 관련 업계는 소재 원사부터 AI 연산 칩, 자율 군집 소프트웨어까지 전 단계 공급망을 완벽히 독점한 '생태계 포식자'로 진화했다. 분명 국내 항공·방산 기업들이 과거 대비 큰 발전을 이룬 건 맞다. 그러나 기술력의 우위를 과신하며 좁은 내수 시장과 촘촘한 국방 규제의 틀 안에서 안주하며 도취돼 있는 사이 중국은 '상상하는 시나리오는 무엇이든 양산한다'는 속도로 세계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다. 현장에서 목도한 중국 기업들의 거대한 라인업은 K-방산이 풀어내야 할 무인화·저공 방공망의 숙제가 무엇인지 매서운 경고장을 던지고 있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르포] “전고체 배터리로 비행 시간 45분 확보, 2배↑”…‘글로벌 UAM 1황’ 中 이항 R&D 센터에 가다

[중국 광둥성 둥관=박규빈 기자] “이곳은 전 세계 도심 항공 교통(UAM) 산업의 미래가 대량 생산되는 심장부입니다. 하드웨어 기체 제조부터 지상 관제 시스템까지 상업 운항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완비한 현장을 오늘 직접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이항 관계자가 기자를 포함한 방문객을 맞이하며 던진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다. 지난 22일 찾은 중국 광둥성 둥관의 이항 스마트 설비 유한공사(亿航智能设备有限公司, EHang) 연구·개발(R&D) 센터는 UAM 청사진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무인 항공 생태계의 중심지였다. 저고도 경제(Low-Altitude Economy)라는 인류의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인 '글로벌 UAM 1황'인 이곳의 로비에 발을 디디자마자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사방의 화이트 벽면을 빈틈없이 메운 1200장 이상의 공식 특허 증서들이다. 이항 관계자는 “우리는 혁신과 꿈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승객용 자율 운항 항공기(AAV)를 창조했다"며 “현재 전 세계 특허 중 약 12%를 우리가 차지하고 있을 만큼 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고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항의 독보적인 위치는 특허들과 전시장 초입에 나란히 걸린 '4대 인증'을 담은 4개의 붉은색 액자에서 고스란히 증명된다. 이항은 기체 전반의 시스템 안전성을 증명하는 형식 인증(TC, Type Certificate)을 시작으로 대량 생산 능력을 인정받는 생산 면허(PC, Production Certificate), 개별 기체의 운항 기준을 보장하는 감항성 인증(AC, Airworthiness Certificate), 그리고 항공 운항 증명(AOC, Air Operator Certificate)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두 완비했다. 액자 속 선명하게 찍힌 각 승인 날짜들은 이항이 이미 상업화 단계에 진입해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항 관계자는 “우리는 개념 단계를 넘어 기체를 대량 생산하고 전 세계 고객에게 인도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최초의 기업"이라며 “현재 이곳 공장에서는 전 세계 고객을 위해 연간 1000대의 대형 전기 수직 이착륙(eVTOL) 항공기를 찍어낼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췄다"고 전했다. ◇초기 혁신 모델부터 소방·물류·장거리 고정익까지 갖춘 '독보적 라인업' 전시장은 관광·의료 구조·물류·대중교통 등 다양한 산업군에 맞춤형으로 개발된 이항의 자율 운항기 전 라인업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이항의 첫걸음을 상징하는 'EH 184'였다. 안내판을 보니 2016년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16'을 통해 글로벌 무대에 데뷔한 세계 최초의 전기식 무인 승객 운송 항공기라는 기록이 명시돼있었다. 이어 안내받은 이항 상용화의 주역 'EH216-S' 앞에 서자 비로소 미래 기술의 실물이 고스란히 체감됐다. 육중한 걸윙 도어가 위로 열리자 조종석이 없는 매끄러운 2인승 가죽 시트가 눈앞에 나타난다. 계기판과 복잡한 아날로그 버튼, 조종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전면 대시보드 한가운데 자리한 대형 태블릿 디스플레이가 기체가 '스스로 날아갈 것'임을 묵묵히 알릴 뿐이었다. 그 옆으로는 이를 특수 목적용으로 파생시킨 산업별 기체들이 상세 제원표와 함께 나란히 진열돼 있어 이항의 폭넓은 기술 확장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색 외관이 강렬한 소방용 모델 'EH216-F'는 기체 상단에 튜브형 특수 약제 발사관을 장착해 고층 빌딩 화재를 진압하는 전문 방재 솔루션이다. 최대 속도 130km/h와 최대 항속거리 35km의 기동성을 갖췄고, 하단에 100L 용량의 소방용 소화 용액 탱크를 탑재해 21분간 비행하며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제원을 자랑한다. 이날 방문한 실증 센터 현장에서는 이 소방용 UAM 기체에 사람이 직접 탑승해 기동을 시연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특수 목적용 무인 항공기로 알려진 기체에 사람이 탑승해 실제 운용되는 현장은 이항의 자율 운항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대목이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바로 옆에 자리한 물류 운송용 모델 'EH216-L'은 하단에 육중한 대형 카고 박스를 장착해 공중 운송을 전담하는 기체였다. 최고 속도 130km/h와 35km의 비행 거리는 앞서 본 소방용과 유사하지만 무거운 화물을 안정적으로 견뎌야 하는 물류의 특성을 고려해 최대 250kg에 달하는 압도적인 탑재 중량(Payload)을 확보한 점이 기억에 남았다. 드론이 하늘을 나는 이동 수단에 그치지 않고 복잡한 도심 속에서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물류 패러다임을 바꿀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인프라 순찰을 위해 날렵하게 뻗은 날개 길이(윙스팬) 4.3m의 복합익 VTOL 'VT-20'도 눈길을 끌었다. 최고 속도 120km/h, 항속 거리는 300km로 최대 180분 간 체공 가능한 성능을 지녀 광범위한 지역의 순찰·매핑 임무에 최적화된 듯한 기체였다. 이어 도시 간 이동을 책임질 장거리 모델 'VT-35'의 문을 열고 직접 내부에 탑승해 봤다. 좁고 갑갑할 것이라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졌다. 성인 남성이 다리를 편안하게 앞으로 뻗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레그룸이 확보됐고, 고급스러운 베이지와 그레이 톤의 2인승 가죽 시트가 아늑하게 몸을 감싼다. 전면 유리창 너머 탁 트인 시야와 승객 중심으로 정돈된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이동의 스트레스를 제로로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항 관계자는 “최근 도입된 전고체 배터리 기술 테스트를 통해 기존 25분 안팎이던 비행 시간을 45분 이상으로 대폭 늘리는 데 성공했다"며 “향후 전 기종에 이를 확대 적용해 비행 거리를 2배 이상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파노라마 커브드 스크린의 위용…“조종사 탑승보다 지상 관제가 더 안전" 이항 기술의 진짜 '심장'은 기체가 아닌 통신과 제어에 있었다. 이항 R&D 센터의 핵심인 '스마트 시티 지상 관제 센터(Smart City Command & Control Center)'에 들어서자 전면 벽면 전체를 타원형으로 길게 감싸 안은 초대형 파노라마 커브드 스크린의 위용이 시선을 완전히 압도했다. 스크린 앞쪽으로는 지상 관제 요원이 실시간 모니터링 레이 아웃을 통제할 수 있는 긴 콘솔 테이블들이 배치돼 정적이고도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실시간 비행 통제 화면에서는 정부가 승인한 비행 가능 구역(블루 존)과 공항·학교 주변 등 제한 구역(레드 존), 그리고 완충 구역(그린 존)이 입체적인 3D 원기둥 형태로 도심 지도 위에 명확하게 시각화 돼 관제 안전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줬다. 현장 안내 팻말에 명시된 '智慧城市(지혜 도시(스마트 시티)) 기술 우세' 설명에 따르면 이항의 무인 항공기 교통 관리 시스템(UTM, Unmanned Aircraft System Traffic Management)은 △지리적 특성에 맞춘 분산형 배치 △다수 기체의 동시 협동 작업 △인력 배치를 극소화한 원격 자동 제어 △실시간 데이터 공유 및 교환 시스템을 고루 갖추고 있다. 5G 네트워크 기반으로 연동된 이 시스템은 미확인 비행 물체나 조류까지 탐지해 자동으로 회피 경로를 생성하는 고도의 이중화 성능을 자랑한다. 기자가 사이버 보안과 통신 지연 우려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이항 관계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는 “모든 기체는 지상 관제 시스템을 통해 제어되고 안전 성능은 완벽한 이중화를 이뤄냈다"며 인간 조종사가 탑승해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시스템에 의한 제어가 통계적·기술적으로 훨씬 더 안전하다“고 답했다. 초대형 스크린의 좌측에는 위성 지도를 기반으로 실제 기체들의 비행 궤적과 상공에 떠 있는 기체 정보가 촘촘히 표시되고 있었고, 중앙과 우측 화면에는 현재 원격 테스트 중인 EH216-S 기체의 전면 1인칭 시점(FPV) 비행 영상과 함께 고도, 속도(지속 7.243km/h 등), 자세각 등을 정밀하게 나타내는 디지털 계기판 화면, 그리고 이착륙장의 실시간 CCTV 피드가 유기적으로 분할 표출되고 있었다. 하늘을 지배한 이항의 기술력은 바다로도 확장되고 있었다. 관제 센터 화면 한편에는 이항이 개발한 대형 자율 운항 무인 요트인 'YP' 모델의 제어 현황도 모니터링되고 있었다. 복층 구조에 침실과 거실을 갖춘 이 스마트 요트 제어 화면은 이항이 향후 하늘과 바다를 하나의 유기적인 관제 시스템으로 묶어 통합 무인 교통 커넥션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광저우·허페이에선 이미 실제 티켓 판매…한국 시장도 사정권 한국 시장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항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선 규제 장벽을 앞세우는 게 사실이지만 한국·일본·중동 지역 국가들과는 매우 긴밀하게 사업이 진행 중"이라며 “이미 제주도에서도 관광 목적의 테스트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바 있다"고 답변했다. 전 세계 31개국에서 9만 회 이상의 무사고 비행을 기록한 이항은 중국 내 12개 도시, 40개 이상의 운영 거점을 확보하며 폭발적인 속도로 실적을 쌓고 있다. 놀라운 점은 관람용 시연을 넘어 광저우와 허페이 등 2개 지역에서는 이미 일반 승객을 대상으로 실제 티켓을 판매하는 완전한 상업 운영 단계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미 누군가는 돈을 내고 이항의 에어 택시를 이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 했다. 양진차이 세계무인기연맹 회장 겸 선전무인기산업협회장이 예측한 '올해 말 유인 드론 시대의 개막'이 기체 인증을 바탕으로 한 상용화의 첫 신호탄이라면 이항 측은 이를 도시 전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이항은 미래에 도심 전역 2~3km마다 이착륙장인 '버티포트'를 촘촘히 깔고 무인 관제를 완전히 안착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기술적 개막을 넘어 실질적인 매스 마켓 생태계가 무르익는 시점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항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 덕분에 상용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며 “앞으로 2~3년 내에 국내 도심에서는 '에어 택시'를 버스나 일반 택시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타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훌륭한 K-UAM 로드맵을 지닌 한국의 하늘 위에서도 조만간 무인 항공 생태계의 놀라운 잠재력을 함께 확인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조선, ‘무탄소 항해’로 글로벌 해상 룰 바꾼다 [창간기획]

검은 매연을 뿜어내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화석연료 선박의 시대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저물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국제해운 탄소 순배출 제로를 선언한 이후 글로벌 해운업계에 불어닥친 탈탄소화 규제 파고는 이제 선택이 아닌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절대적인 생존 조건이 됐다. 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기는 오랜 기간 뼈를 깎는 기술 개발을 거듭해 온 대한민국 조선 산업에 전례 없는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줬다. 기존의 친환경 전환기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액화 천연 가스(LNG)를 넘어 이제 바다의 패권은 연소 과정에서 온실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암모니아'와 '수소'를 동력으로 삼는 궁극의 '무탄소 선박' 기술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HD현대, 세계 최초 암모니아 추진선 건조·'지능형 선박' 생태계 완성 미래 무탄소 선박의 핵심이자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암모니아 추진선 분야에서 HD현대의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다. HD현대는 올해 4월, 대한민국 조선업의 심장인 울산 조선소에서 세계 최초로 이중 연료(DF) 엔진 기반의 암모니아 추진 가스 운반선 2척을 건조해내며 글로벌 조선 역사에 굵직한 이정표를 세웠다. 암모니아(NH3)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궁극의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지만 맹독성과 금속을 부식시키는 성질 때문에 이를 견디는 엔진과 정밀한 연료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극도의 고난도 선박 공학 기술을 요한다. HD현대는 오랜 연구 끝에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고, 기존 화석 연료와 친환경 암모니아를 혼용할 수 있는 DF 엔진 선박의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글로벌 선주들에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혁신적인 탄소 중립 솔루션을 제시했다. 하드웨어의 눈부신 진화는 첨단 소프트웨어의 혁신과 만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HD현대는 자사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 자회사인 '아비커스(Avikus)'를 통해 선박 자율 운항 형식 승인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인공지능(AI)과 첨단 센서가 해상의 △기상 상태 △조류 △파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스스로 최적의 경제 항로를 계산해 내는 기술이다. 값비싼 친환경 연료의 소모를 최소화해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전체 해양 사고의 80%를 차지하는 인적 과실을 차단해 운항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다. HD현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지능형 선박' 생태계를 선점하며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벌리고 있다. ◇한화오션,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과 신소재 혁신 한화그룹 품에 안긴 이후 방산·에너지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글로벌 친환경 해양 에너지 선도 기업'으로 성공적인 환골탈태를 이룬 한화오션은 다가올 글로벌 암모니아 경제 시대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수소 경제로 빠르게 전환함에 따라 수소의 가장 효율적인 운반체 역할을 하는 암모니아의 해상 물동량은 향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글로벌 메가 트렌드를 정조준해 한 번에 막대한 양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15만 CBM(입방미터)급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개발에 본격 착수하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업과 더불어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선박 설계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부순 한화오션만의 파격적인 혁신 설계도 전 세계 선박 공학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선미에 위치하던 선원들의 거주구와 조타실 등을 선수 방향으로 이동 배치한 것이다. 공기 역학적 설계는 항해 중 발생하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 선박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동시에 독성 가스인 암모니아 화물창과 선원들의 생활 공간을 물리적으로 멀찌감치 분리함으로써 승조원의 안전성을 극대화하고 추가적인 화물 적재 공간까지 확보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뒀다. 또한 극저온의 액화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싣고 거친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연료 탱크·화물창에는 '고망간강(High Manganese Steel)' 소재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했다. 고망간강은 기존에 쓰이던 값비싼 니켈 합금강 등과 비교해 원가 경쟁력이 우수하면서도 극저온 환경에서 탁월한 강도와 인성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값비싼 친환경 선박의 건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인 무탄소 선박 대중화 시기를 크게 앞당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중공업, 수소 연료 전지와 크래킹 결합…밸류 체인의 확장 삼성중공업은 무탄소 에너지의 최종 진화형으로 불리는 '수소 연료 전지' 추진 선박이라는 강력한 카드로 궁극의 친환경 해양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선급(BV)으로부터 '암모니아 기반 수소 연료전지 추진 원유 운반선'의 기본 설계 인증(AIP)을 획득했다. 이는 그동안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 의존도가 높았던 선박용 핵심 친환경 장비와 제어 시스템의 국산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쾌거로 평가받는다. 삼성중공업이 제시한 혁신적인 무탄소 선박 솔루션의 핵심 기술은 바로 '크래킹(분해)'이다. 영하 253도의 극한의 극저온 보관이 필요한 액화수소는 선박에 싣고 다니기에 기술적 제약과 비용 부담이 크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비교적 보관과 해상 운송이 용이한 액화 암모니아(영하 33도)를 연료로 싣고 다니며, 선상에서 화학 반응을 통해 수소와 질소로 분해(크래킹)해 이를 대용량 연료 전지에 공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시스템은 100년 넘게 선박의 심장 역할을 해온 거대한 기계식 내연 기관 엔진을 대체한다. 연소 과정 자체가 없어 탄소 배출을 원천적으로 100% 차단하는 것은 물론, 피스톤 운동 등 엔진 구동으로 인해 발생하던 거대한 소음과 진동까지 없앴다. 선원들의 승선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해양 수중 생태계에 미치는 소음 공해마저 지워낸 진정한 무탄소 항해 시대를 연 것이다. 나아가 삼성중공업의 시선은 선박 건조 그 이상을 향해 있다. 바다 위에서 직접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부유식 블루 암모니아 생산 설비'를 비롯, 이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재기화하는 해양 플랜트 설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함으로써 '에너지 밸류체인' 전체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우주산업, ‘뉴 스페이스 시대’ 쏘아올리다 [창간기획]

인류의 시선이 다시 우주로 향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 국가의 위상과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정부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던 안보 중심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 시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로 대변되는 민간 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우주 개발을 주도하며 막대한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확고히 대체했다. 모건 스탠리 등 글로벌 주요 투자 은행들은 다가오는 2040년 글로벌 우주 산업 시장 규모가 1조 달러(한화 약 1350조 원)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며 우주가 21세기 최대의 미래 먹거리 시장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글로벌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대한민국 역시 우주항공청 출범을 기점으로 강력한 '민간 주도 K-우주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치열한 글로벌 우주상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우선 필수 조건으로, 단순히 위성 부품을 만들거나 발사체만 쏘아 올리는 단편적 접근을 넘어 발사체 제작부터 위성 개발, 그리고 발사 서비스와 데이터 활용까지 한 번에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 확보가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대두되고 있다. ◇ 한화그룹·KAI, 발사체와 위성의 운명적 결합…닻 올린 'K-스페이스X' 현재 국내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에 있어 가장 파급력이 크고 굵직한 지각변동은 단연 한화그룹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우주 밸류체인 통합 전략'에서 시작됐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의 지분 5%를 넘게 확보한 것은 한국 우주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거대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의 KAI 지분 인수는 곧 발사체를 만드는 기업과 위성을 만드는 기업이 더욱 가까워져 고객의 위성을 직접 설계·제작하고 자사의 로켓에 실어 우주 궤도에 올려놓는 '한국판 스페이스X' 모델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체계 종합기업으로서 고도화 사업을 이끌며 '우주 발사체(수송 수단)'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반면에 KAI는 다목적 실용 위성과 차세대 중형 위성 등 다수의 굵직한 국책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위성 체계(탑재체)' 제조 역량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두 기업은 이 통합 플랫폼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저궤도(LEO) 위성 통신 서비스망 구축부터 향후 본격화될 달·화성 등 심우주 탐사 프로젝트까지 아우르는 '종합 우주 솔루션 패키지'를 선제적으로 마련했다. 이를 무기로 글로벌 상업우주 발사·위성 서비스 시장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지고 해외 수주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포석이다. 특히 두 회사의 밀착 협력은 거대한 지리적 시너지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발사체 단조립장 및 엔진 생산 거점인 전남 순천·경남 창원과 KAI의 본진인 경남 사천을 하나로 잇는 거대한 '우주항공 클러스터' 조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두 앵커 기업을 중심으로 첨단 연구·개발(R&D) 인프라가 확충되고 수백여 개의 지역 중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이 집적되며 첨단 기술 국산화는 물론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전반에 걸친 막대한 낙수 효과도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 현대로템, '우주 경제 혁명의 마법 열쇠' 재사용 '메탄 엔진'으로 차세대 수송 주도 뉴 스페이스 시대의 상업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단연 '발사 비용의 획기적 절감'이다. 한 번 쓰고 버려 수백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기존의 일회성 발사체 대신, 우주로 날아간 1단 로켓이 지상으로 안전하게 귀환해 정비를 거쳐 여러 번 우주 비행 임무를 수행하는 '재사용 발사체' 기술은 우주로 가는 운송 단가를 파괴할 필수 관문이다. 이 혁신적인 K-우주 수송 생태계의 선봉에는 현대로템이 당당히 서 있다. 현대로템은 최근 재사용 발사체의 핵심이자 심장이라 불리는 '35톤급 메탄엔진' 개발 과제를 전격 수주하며 차세대 우주 수송 수단 확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재사용 로켓에 메탄엔진이 글로벌 표준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 누리호 등 널리 쓰이던 케로신(항공유) 기반 엔진은 연소 과정에서 내부에 찌꺼기인 그을음을 만든다. 이 때문에 비행을 마친 엔진을 재사용하려면 이를 복잡하게 분해하고 세척하며 부품을 교체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하지만 액화천연가스(LNG)의 주성분인 메탄을 활용하는 메탄엔진은 친환경적인 연료 특성상 연소 시 그을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궤도비행 후 귀환한 발사체 엔진을 간단한 점검만으로 바로 다음 발사에 재투입할 수 있게 만들어 발사체의 경제성과 운용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극대화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현대로템은 오는 2030년까지 메탄 엔진의 핵심 기술 확보와 연소 시험을 완료해 한국형 재사용 발사체 시대의 포문을 연다는 구체적인 도전 로드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현대로템은 마하 6(음속의 6배) 수준의 속도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비행체인 '하이코어(HyCore)' 개발 사업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기권 내 초고속 비행과 우주 궤도 진입을 아우르는 램제트·스크램제트 등 차세대 추진기술을 축적하며 향후 지상과 우주를 최단 시간에 잇는 미래 우주 비행기 개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 LIG D&A, '우주의 눈' 초고해상도 LIG SAT으로 공간 제약 초월 LIG D&A는 국가 우주 전장 감시·정찰 수요는 물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민간 상업용 지구관측 데이터 시장을 동시에 타깃으로 삼아 자체 개발 중인 초고해상도 영상레이다(SAR) 위성 'LIG SAT(가칭)'을 통해 글로벌 위성 서비스 시장에 진출한다. 광학 렌즈에 의존하는 일반위성과 달리 SAR 위성은 마이크로파 레이더 전파를 지상으로 쏴 반사되는 신호를 합성해 지형도를 만든다. 이 때문에 짙은 구름이 낀 악천후나 칠흑 같은 야간에도 지상의 물체를 센티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는 전천후 능력을 자랑한다. 글로벌 업계가 'LIG SAT'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적용된 독자적이고 혁신적인 기계 구조 설계 기술에 있다. 통상적으로 레이더의 해상도 성능을 높이려면 안테나의 크기가 커져야 하지만 이는 발사체 상단(페어링) 내부의 좁은 탑재 공간 제약에 부딪히는 딜레마를 낳는다. LIG D&A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사 시에는 안테나 부피를 극한으로 접어 최소화하고, 목표 우주 궤도에 진입한 직후에는 탑재된 '그물형 안테나(Mesh Antenna)'를 거대한 우산이나 종이접기처럼 넓게 펼치는 첨단 전개형 구조 기술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소형·경량화 위성체이면서도 대형 위성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관측 성능과 전력 운용 효율을 극대화하는 솔루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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