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산업이 지난 19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 당시보다 길었던 '수요 감소의 터널'을 벗어나 내년에 '5년 만의 턴 어라운드'를 맞이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중국의 공급과잉 해소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탈탄소기술의 상용화 등이 맞물린 '구조적 대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예고로서 지난 4년간의 글로벌 철강산업 침체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전망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도 그동안 정부의 강력한 수입규제 조치에 따른 수입재 재고 조정, 열연강판 국내가격의 상승세가 기대되는 만큼 실적회복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현대차증권이 17일 발표한 '2026년 철강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전 세계 철강 수요가 전년 대비 1.4% 증가하며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과 미국의 회복세뿐만 아니라, 인도가 6~7%의 고성장을 지속하고 유럽(EU) 역시 기저 효과에 힘입어 3%대 반등에 성공하며 글로벌 회복세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 시장의 게임 체인저는 단연 중국이다. 박현욱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25년이 중국 철강 수출의 '구조적 정점'이었다고 진단했다. 2025년 1억1000만 톤에 달했던 중국의 철강 순수출은 2026년 9800만 톤으로 약 10% 감소할 전망이다. 박 연구원은 “중국 내 철강사 중 34%가 적자 상태이며, 적자 기업 수만 2000여 개에 달해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며 “제15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환경 규제와 맞물린 공급 측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서 2026년에도 감산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과거 '밀어내기식' 저가 수출이 줄어들고, 글로벌 철강 가격 결정권이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넘어오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가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보고서는 2026년 철광석(FOB) 가격이 톤당 평균 84달러로 하향 안정화되는 반면, 원료탄은 187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품 가격 반등과 원재료 가격 안정이 맞물려 철강사들의 판매가와 원가 차이인 '마진 스프레드'가 개선될 수 있는 환경이다. 부동산 침체는 여전하지만 바닥은 확인했다는 분석이다. 2025년 중국 부동산 착공 면적은 5억㎡로 전년 대비 20% 급감했으나 이는 잠재 수요인 8억㎡를 크게 밑도는 과매도 구간이다. 2026년에는 기저효과와 함께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생산이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전체 철강 수요가 하방 경직성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은 철저히 '닫힌 시장'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2025년 3월 25%와 6월 50%에 단행된 고율의 철강 관세 조치로 수입산 진입이 차단되면서 2025년 9월 기준 미국 내수 출하량은 전년 대비 13% 급증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대제철의 행보는 공격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 총 260억 달러(약 36조 원)를 투자하며, 이 중 58억 달러(약 8조 원)가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의 신규 제철소인 리버 플렉스 메가 파크 건설에 투입된다. 이는 현대제철의 첫 북미 생산 기지로, 연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설비를 갖추고 2026년 이후 가동될 예정이다. 이 투자는 현대차·기아의 북미 전기차 생산 기지에 철강을 직공급해 관세 리스크를 원천 봉쇄하고 공급망 안보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신용 평가사 S&P는 지난 5월 “미국 투자가 2026년 후반부터 재무 지표에 압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현대제철의 'BBB' 신용등급과 '안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이는 단기 재무 부담보다 시장 지배력 강화라는 장기적 이익을 높게 평가한 결과다. 국내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수입 규제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일본·중국산 열연강판에 약 30%의 잠정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하며 10월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51% 급감했다. 박 연구원은 “수입재 재고 조정이 마무리되는 2026년 상반기, 국내 열연강판 가격은 상승세로 전환될 것"이라며 “수입산 급감에 따른 국내 철강사들의 가격 협상력 회복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철근 시장도 숨통이 트인다. 2026년 국내 주택 분양 물량이 25만 가구로 전년 대비 8%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철근 수요 또한 767만 톤(+7%)으로 소폭 회복될 전망이다. 비철금속 시장에서도 '슈퍼 사이클'의 징후가 포착된다. 현대차증권은 2026년 달러 약세 전환과 함께 비철금속 가격의 완만한 상승을 예고했다. 특히 박 연구원은 “AI 데이터 센터와 전력망 확충으로 구조적 수요 성장이 예상되는 구리가 아연보다 투자 매력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2026년은 기술적으로도 중요한 변곡점이다. 시장 조사 업체 리서치앤마켓은 2026년이 수소환원제철과 탄소 포집·저장(CCUS) 기술이 파일럿 단계를 넘어 상용화로 진입하는 원년이라고 언급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시장에서는 노후 고로를 친환경 전기로로 교체하는 투자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그린 스틸' 프리미엄 가격 시장의 형성을 예고한다. 박 연구원은 “2026년은 철강 산업이 '굴뚝 산업'의 오명을 벗고 성장 산업으로 재평가받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