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글로벌 거시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최악의 경제상황)'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지난 3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국지전에서 촉발된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 고조로 배럴당 100달러대의 고유가와 원·달러 환율 급등이 국내외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환율·고유가·고금리 등 '3고(高)의 노멀(일상화) 현상'은 유가와 환율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항공업계를 융단폭격했다. 그 여파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항공사들은 필연적으로 원가 압박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최근 공시한 1분기 보고서와 기업가치 제고 계획안을 면밀히 뜯어보면, 대외악재를 오히려 수익 극대화의 지렛대로 뒤바꾸는 압도적인 펀더멘털과 위기 관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종속회사 실적이 모두 반영된 대한항공 연결재무제표의 행간을 교차검증해 보면 외형성장의 이면에 똬리를 튼 거대한 '재무적 뇌관'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과정의 험난한 과제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 악재를 호재로 만든 '운영의 묘'와 막강한 현금 창출 능력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매출 4조5151억원, 영업이익 516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 매출은 14.1%, 영업이익은 47.3% 폭증했고, 영업이익률도 11.4% 늘어 항공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항공기노선 계획에 따라 기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대한항공의 전략적 유연성의 결과다. 1분기 여객사업본부 노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2조6131억원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양적 성장을 넘어선 질적 성장이다. 국제선 탑승률(L/F)은 84.9%에서 88.5%로 3.5%포인트(p) 상승했고, 수익성의 핵심 지표인 1㎞당 운임(Yield) 역시 124원에서 128원으로 올랐다. 실적 증가의 결정적 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중동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였다. 전쟁 위험에 따른 중동지역 영공의 불안정성이 극에 달하자 기존에 두바이·도하 등 중동 허브를 경유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던 글로벌 환승객들이 중동 항공사 이용을 기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이탈 수요는 우회항로와 안전한 직항편을 제공하는 대한항공의 유럽·동남아시아 연결 노선으로 대거 몰려드는 반사이익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타노선 대비 수익성이 월등히 높은 유럽 노선 매출은 전년 대비 18%나 늘었다. 여기에 중국의 무비자 정책 안정화와 춘절 연휴 효과가 맞물리며 중국 노선 매출이 19% 뛰었고, 역대급 엔저 현상 장기화로 폭발한 일본 노선 수요에 선제적으로 공급(ASK)을 10% 늘린 '탄력적 기재 운영'이 적중해 일본 노선 매출 또한 12% 증가했다. 수요가 둔화되는 곳의 공급을 즉각 빼서 수요가 넘치는 곳에 꽂아 넣는 수익성 방어 전략이 통한 것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여객기 밸리 카고 공급 증가로 운임 하락이 우려됐던 화물사업은 1조90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3.5% 성장을 일궈냈다. 화물수송 실적(CTK)도 1.8% 올라 완연한 반등세를 보였고, 화물 운임은 516원에서 525원으로 오히려 1.7% 상승했다. 이와 관련, 글로벌 산업계에 불어닥친 '인공지능(AI) 혁명'이 일등공신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고가이면서 진동과 시간에 극도로 민감한 △반도체 △서버 랙 △첨단 배터리 등 하드웨어 장비의 항공수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불어 중동사태 여파로 홍해 항로가 막히는 등 글로벌 해운 물류망이 마비되자 촌각을 다투는 긴급 산업재와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발 전자상거래 초국경 물량이 해운을 포기하고 항공 화물로 대거 옮아왔다. 이 호기를 놓칠세라 대한항공은 글로벌 화주들과 고정계약 물량을 선제적으로 묶어두고 수요가 빗발치는 미주 노선 등에 전세기를 집중 투입해 화물단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 대한항공 1분기 성적표에서 눈여겨볼 또다른 대목은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실적이다. 분기 매출 2522억원을 기록하며 기타수익 부문에서 전년 대비 74.0%라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글로벌 방산 수요 증가 속에 중고도 무인기 양산 1호기 출고와 군용기 창정비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수주 잔고를 4조7172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면 대한항공의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건전하다. 별도기준 현금성 자산은 2025년 말 3조4926억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 말 4조3648억원으로 불과 3개월 만에 25.0%(8722억원)가량 급격히 불어났다. 연결기준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무려 2조888억원에 이른다. 이는 매표 대가인 선수금이 늘어난 데에 기인한다. 별도기준 선수금은 5조6018억원에서 6조5524억원으로 17.0%(9506억 원) 급증했다. 연결재무제표 상 유동선수금·유동선수수익·유동성이연수익 등 계약부채 합계 역시 약 6조9397억원 규모로 막대한 수준이다. 고환율·고유가 기조 장기화로 향후 유류 할증료 인상을 우려한 승객들과 미주 등 여름 성수기를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항공권을 미리 발권한 결과다. 선수금은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며 승객이 탑승하는 순간 100% 매출로 치환되는 '착한 부채'로 평가받는다. 이 유동성은 향후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천문학적 비용을 방어할 든든한 실탄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연결 자회사의 늪과 환율의 저주, 통제 불능 고정비의 경고 그러나,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짙기 마련이다. 별도손익계산서의 화려한 숫자에 환호하기엔 종속회사를 아우르는 연결재무상태표의 하단이 보내는 경고음이 크게 들린다. 대한항공의 별도기준 1분기 영업이익은 5169억원이지만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337억원으로 곤두박질친다. 지난해 1월 당기순이익 3499억원과 비교해 무려 90.4%나 증발한 수치다. 이처럼 수익을 집어삼킨 첫 번째 주범은 '환율의 저주'다. 지난해 말 1434.9원이던 원·달러 평가환율은 올해 1분기 말 1513.4원으로 불과 석 달 만에 78.5원(5.47%)이나 치솟았다. 항공사는 대규모 기단을 구매하거나 리스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달러 빚'을 져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대한항공의 별도순외화부채만 55억 달러다. 결국 1분기에만 환율 폭등으로 연결손익계산서 상 무려 8651억원의 외화환산손실과 218억원의 외환차손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별도기준 외화환산차손은 3895억원이었다. 다행히 대한항공 재무본부는 통화·이자율 스왑과 유가 옵션 등 각종 헷징 수단을 빌어 연결기준 파생상품 평가이익 3511억원, 거래이익 395억원으로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연결당기순이익 337억원을 분해해 보면 더 뼈아픈 현실이 드러난다. 지배기업 소유주 귀속 순이익은 1218억원이었으나, 아시아나항공 등 기타주주 몫인 비지배 지분 순손실은 8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12월 종속기업으로 편입된 아시아나항공의 실적 때문이다. 1분기 연결감사보고서 주석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524억원, 분기 순손실 2517억원을 냈다. 노후기재 정비일수 증가로 인한 사업량 감소와 저수익 단거리 노선의 비운항, 환율·유가 타격을 독자 방어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영업이익 576억원을 낸 진에어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본체가 번 돈을 아시아나항공이 까먹고 있는 형국이다. 연말 물리적 합병 전까지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은 대한항공의 연결재무제표를 끊임없이 짓누를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의 별도부채 비율은 2025년 말 244%에서 266%로 소폭 늘었다. 하지만 진정한 우려는 연결재무상태표에 있다. 1분기 말 연결자산은 53조3102억원, 자본은 11조2751억원, 부채 총계는 42조350억원으로 연결부채비율은 372.8%에 육박한다. 본질적으로는 11조9832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합산과 금융부채의 팽창 때문이다. 에어버스 A350·A321neo나 보잉 787-10 등 고효율 친환경 항공기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연결기준 리스 부채가 13조8987억원에 이르고, 차입금과 사채를 합친 전체 금융차입 규모는 23조9576억원이다. 3고(高) 시대의 고금리 환경에서 불어난 이 빚은 1분기에만 2163억원의 막대한 연결이자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비용의 질적 측면에서도 고민이 깊다. 연료비 자체는 중동사태에 따른 단가(82억원)와 환율 상승의 악조건 속에서도 고효율 기재 운영을 통한 소모량 절감(328억원) 덕분에 별도기준 전년 대비 1.2%인 136억원 가량 줄었다. 그러나 인건비를 제외한 '연료비외 영업비용'이 별도기준 16.2%(4068억원) 늘었다. 연결기준 감가상각·무형 자산상각비는 7433억원으로 확인된다. 장기적인 연료비 절감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대응을 위해 대거 도입한 신형 항공기들이 역설적으로 감가상각비를 별도기준 15%(698억원)나 수직상승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해외 현지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전 세계 주요 공항의 지상조업 단가·조업사 인건비·시설이용료가 일제히 오르면서 별도 공항·화객비가 10%(617억 원) 급등했다는 점이다. 연결기준 공항 관련 지출은 5719억원을 차지한다. 또한,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제조원가 상승으로 별도 기타비용이 65%(2846억원) 치솟았다. 항공 수요가 팽창하며 매출이 느는 만큼 통제 범위를 벗어난 고정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구조적 압박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 '메가 캐리어' 출범과 자본 구조 혁신에 기반한 올해 기업 가치 제고 계획 단기적 재무 압박과 통합의 난관 속에서도 대한항공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통해 글로벌 톱티어 항공사로의 도약과 주주 가치 퀀텀 점프라는 마스터 플랜을 천명했다. 우선 과거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였던 배당 정책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혁신했다. 기존에는 매년 12월 31일에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확정하고 이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사후적으로 결정하는 기형적인 '깜깜이 배당' 구조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해 3월 정관을 변경해 이사회에서 배당안과 배당 기준일을 먼저 확정공시한 뒤 배당을 받을 주주를 확정하도록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투자자는 받을 배당금을 정확히 확인한 뒤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돼 주주 권익이 극대화됐다는 평가이다. 나아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합병 과정 속에서도 주주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미실현 손익과 일회성 비경상 손익을 제외한 '별도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30% 이내 주주 환원'이라는 중장기 배당 정책을 아시아나항공 합병 완료 시점인 2026년 회계연도까지 흔들림 없이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기관 투자자들이 이번 밸류 업 공시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점은 올해 12월 17일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과의 최종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적 마법'이다. 대한항공은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63.9%를 인수해 이미 자회사 편입을 마쳤다. 올해 말 합병 비율 1대 0.2736432로 두 회사가 법적으로 완전히 통합될 때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따라 대한항공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주식에 대해서는 합병 신주가 전혀 발행되지 않는다. 통상 대규모 흡수 합병은 피합병 법인의 주식만큼 막대한 신주가 쏟아져 나와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극심하게 희석되는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전체 아시아나항공 보유주식에 대해 신주를 찍어내지 않음으로써 시장에 유통될 주식 수를 원천 차단했다. 이는 회사 자본으로 시장의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영구 소각하는 것과 동일한 '대규모 자사주 소각 효과'를 창출한다. 합병 리스크가 오히려 기존 주주들의 주당 순이익(EPS)과 주당 가치를 상승시키는 구조적 안전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2026년 말 통합 항공사가 출범하면 연 매출 23조원 이상, 보유기재 230여 대, 운항 도시 120개를 아우르는 '글로벌 메가 캐리어'가 탄생한다. 통합 대한항공의 인천국제공항 슬롯 점유율은 37%로 올라 환승 수송객을 70% 이상 증대시키고, 아시아-북미 노선 좌석 공급력 2위로 올라서 여객 공급을 55% 이상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대한항공은 글로벌 탄소규제라는 경영 리스크에 대응해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을 단행한다. 동급 기종 대비 좌석당 탄소 배출량을 최대 25% 줄이는 고효율 친환경 항공기 138대를 오는 2033년까지 대거 도입한다. 특히, 항공업계의 차세대 생존 필수재인 지속가능 항공유(SAF) 확보를 위해 삼성E&A와 전략적 협력(MOU)을 맺고 해외 SAF 생산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한다. 또한, 지난해부터 적용된 유럽연합(EU)·영국 출발편 SAF 2% 의무 혼합규제를 차질 없이 이행하며 글로벌 환경 페널티를 피해가고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 통합 등급 A를 획득하며 ESG를 최우선 척도로 삼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해자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 역시 지난해 5월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A0(안정적)로 상향하며 이러한 체질 개선을 공인했다. 류연주 한국신용평가 수석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의 연결 편입 이후 대한항공의 차입 부담이 크게 증가했고, 이 외에도 항공기 도입·영종도 엔진정비공장 설립·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웨스트 젯 등 해외 항공사 지분 매입과 같은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도 계획돼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류 애널리스트는 “대한항공이 수년 간 확충해 온 재무 여력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비용 부담 절감과 통합 시너지 기반의 영업 현금 창출력 제고 등을 감안하면 순차입금 의존도 30% 내외의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