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7개월 차에 진입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출구전략을 찾지 못한 채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동정세 악화 여파로 국제유가가 100달러선을 재차 넘기면서다. 정책으로 눌러둔 기름값의 청구서가 계속 불어나면서 국민 혈세투입 부담을 키우는 상황에서, 정유업계의 내수 사업 적자 우려까지 가중시키며 최고가격제가 존폐 딜레마에 빠져든 모양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고가격제는 지난 13일 오전 0시를 기해 시행 7개월 차에 들어섰다. 산업통상부가 중동사태 초기인 지난 3월 13일 석유제품 가격 급등에 대응해 제도를 한시적으로 도입했는데, 이 같은 비상조치가 반년을 넘긴 셈이다. 최고가격제는 정부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의 판매가격 상한선을 설정해 국제유가 급등분이 국내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전가되는 것을 막는 제도다. 유가가 비교적 안정됐던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중단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이달 초 중동정세가 급격히 악화한 데 따라 유가 역시 급등세를 보이며 종료 시점이 요원해졌다는 평가다. 최고가격제는 적어도 올 4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2일 설정된 9차 최고가격의 적용기간(4주)이 오는 19일을 전후해 종료될 예정인 가운데, 산업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4분기 최고가격제 손실보전을 명목으로 1조4497억원 규모 예산을 편성해뒀기 때문이다. 당장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최고가격제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X(구 트위터)를 통해 “원유와 국제 정제유가는 폭등 중이지만, 국내 정제유는 최고가격제와 수출물량 통제로 무리없이 안정적 가격과 공급물량을 유지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유가에 관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최고가격제 지속에 따른 구조적 비용부담 확대 현상이다. 제도를 통해 내수 석유제품 가격 상단을 강제로 눌러둔 만큼 제도 시행기간이 길어질수록 정부가 정유업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 규모도 누적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당초 정부는 6개월(2~3분기) 최고가격제 운영으로 발생하는 정유업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4조2000억원 규모 예산을 추가경정(추경)했다. 업계는 이 기간 손실액만 5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업부가 4분기 손실보전 몫으로 내년 예산을 1조5000억원 가까이 편성해 둔 가운데, 최고가격제가 내년 이후까지 운영되면 실제 보전 규모에 따라 내년에도 추경을 통해 예산을 확보해야 할 수 있다. 누적 확대되는 재정 지출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부담이다. 조세를 기반으로 마련된 국가 재정을 투입해 내수 석유제품 가격을 할인하면서, 재정 수혜가 차량 보유자 혹은 석유제품 다소비자 등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역진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이홍 산업연구원 산업경제데이터분석실 부연구위원은 한국법제연구원이 지난 6월 발간한 '법연 91호'를 통해 “현행 최고가격제는 유가 급등 초기 패닉 국면에서 기대인플레이션 확산을 막기 위한 단기 조치로서 일정한 합리성이 있었다"면서도 “제도를 지속할수록 재정 비용과 수혜의 역진성, 가격 신호 왜곡, 종료 시 반등 이라는 비용이 누적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책의 초점은 최고가격제를 연장하는 데서, 이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대안수단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했다. 비용 부담은 제도 적용 당사자인 정유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고가격제로 내수 사업 손실이 꾸준히 누적되는 가운데, 호르무즈·홍해 양대 노선의 통항 차질로 원유 도입비가 증가하고, 손실보전 지연까지 겹치며 고충이 누적되는 까닭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고가격제로 내수 시장에 석유제품을 원가 수준으로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이익은 수출에서 발생하는데, 최고가격제 수출 제한과 매점매석 고시 영향으로 이마저도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실보전도 당초 예정 시점보다 늦어져 불확실성을 키우는 구조"라고 했다. 당초 정부 손실보전(2·3분기)은 지난 6월 말과 이달 말 각각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정산 기준 등에 대한 정부·업계 의견차이가 지속되며 1차 정산(2분기)조차 아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처럼 최고가격제로 내수 사업여건이 경색된 상황에서 중동정세마저 악화하며 시장에서는 국내 정유업계의 내수 영업실적 적자 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오는 19일 10차 최고가격에서 상한 가격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내수 가격의 비탄력적 특성을 감안하면 중동 혼란이 지속되는 경우 업계의 내수 적자폭은 향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