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부응 ‘아이온2’…엔씨소프트 ‘2조 클럽’ 재진입 기대감

기대 부응 ‘아이온2’…엔씨소프트 ‘2조 클럽’ 재진입 기대감

엔씨소프트(엔씨)의 신작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이온2'가 초기 흥행 지표를 확인하며 시장 안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용자 친화적 게임 환경 구축에 속도를 내며 장기 흥행의 포석을 다지고 있다는 점에서, 엔씨가 내년 '매출 2조 클럽'에 재입성해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한국과 대만에 동시 출시된 아이온2는 초반 이용자 지표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출시 3일 만에 일간활성이용자(DAU) 150만명을 돌파했고, 출시 첫 일주일 누적 캐릭터 생성 수는 253만..

LG-벤츠 동맹 더 단단해진다···LG엔솔 2조원대 배터리 공급 ‘잭팟’

“LG 같은 글로벌 챔피언들과 협력을 강화해 고객에게 월드클래스 수준의 경험을 제공하려 합니다." 한국을 찾은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이 지난달 14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벤츠 미래 전략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행사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 LG그룹 경영진들과 만나 양사 협력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LG그룹과 메르세데스-벤츠의 동맹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벤츠 프리미엄 자동차에 LG가 만든 전장·부품 등이 들어가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2조원대 '수주 잭팟'을 소식을 전했다. LG엔솔은 벤츠와 2조600억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8일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회사 매출(25조6196억원) 대비 8%에 해당하는 규모다. 공급 지역은 북미와 유럽이다. 계약 기간은 2028년 3월1일부터 2035년 6월30일까지다. 계약 금액 및 기간 등 조건은 추후 양측 협의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LG엔솔은 벤츠와 협의에 따라 이외 추가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에 제공하는 이차전지가 벤츠의 중저가형 모델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벤츠는 2027년까지 글로벌 시장에 40종 이상 신차를 출시하겠다는 전동화 전략을 지난 9월 발표했다. 프리미엄급부터 엔트리급 모델까지 다양한 차급에 전기차 라인업을 추가하겠다는 선언이다. 양사는 최근 2년간 4차례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으며 '전기차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북미 및 기타지역 내 총 50.5GWh, 올해 9월에는 미국과 유럽 지역 내 각각 75GWh, 32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체결했다.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3건 모두 고성능 전기차에 들어갈 최고급 이차전지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이날 공시한 2조원대 '잭팟' 수주가 중소형 모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LG엔솔은 하이엔드 고성능 모델에 원통형 46시리즈, 표준형과 중저가형 모델에 고전압 중니켈(Mid-Ni) 파우치형 배터리 및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칼레니우스 회장 방한 당시 '여의도 회동' 이후 한달여만에 대규모 계약 소식이 전해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당시 “LG와 함께 혁신, 품질, 그리고 지속가능한 기반으로 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며 “양사의 강점을 결합해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갈 차량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LG그룹과 벤츠의 협업은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026년형 메르세데스-벤츠 GLC EV(전기차)에 40인치 초대형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츠 GLC EV는 내년 상반기 북미·유럽 시장에 출시된다. LG디스플레이가 벤츠에 공급하는 제품은 '옥사이드 박막 트랜지스터'(TFT) 기반 액정표시장치(LCD) 40인치 디스플레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옥사이드 TFT는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고해상도, 대형화, 저전력 소비 등을 충족하는 차세대 기술 중 하나다. 벤츠 차량에 해당 제품이 적용될 경우 이를 기반으로 한 차량용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는 사례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04년부터 벤츠에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LGD, 디스플레이 업계 최초 車 사이버 보안 인증 획득

LG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 업계 최초로 차량용 디스플레이의 사이버 보안 인증을 획득했다.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제품에 대해 글로벌 안전과학 검증기업 UL솔루션즈(UL Solutions)로부터 '자동차 사이버보안 엔지니어링 국제 표준(ISO/SAE 21434)'을 획득했다고 8일 밝혔다. 자동차 사이버보안 엔지니어링 국제 표준 인증은 자동차의 개발·생산·공급·폐기 등 전 생애주기에 대해 사이버 공격 위험을 관리하고 대응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제도다. LG디스플레이는 완성차 및 모빌리티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사이버 보안 인증을 선제적으로 획득했다. 디스플레이 개발 단계에서 해킹이 어렵도록 설계하고, 생산 단계에서 회로에 보안 강화 장치를 마련하여 인증 받았다. 이번 인증을 통해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제품·기술 경쟁력은 물론, 안정적인 공급 능력과 사용자 안전을 위한 사이버 보안 역량을 인정받은 셈이다. 자동차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자동차 보안 인증을 의무화하고, 부품 업계까지 확대하는 추세다. 특히 차량용 디스플레이는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운전자를 연결해주는 핵심 부품이라는 점에서 보안 인증에 대한 중요성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향후 LG디스플레이는 사이버 보안 인증을 충족하는 차량용 OLED 신제품 개발 및 생산 체계를 선제적으로 활용하여 자동차 시장에서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창출하며 글로벌 제품 수주 경쟁력을 한층 높여 나갈 계획이다. 권극상 LG디스플레이 Auto사업그룹장은 “고객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하며 차별화된 고객가치 창출을 위한 차원"이라며 “이를 통해 차량용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시장 내 선두 위상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HD현대, 인도에 ‘제2 울산’ 짓는다…타밀나두주와 신규 조선소 설립 MOU

HD현대가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인도를 글로벌 조선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 신규 조선소 설립을 추진하고, 현지 공기업과 크레인 사업 협력에 나서는 등 세계 5위 조선 강국 도약을 꿈꾸는 인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HD현대는 인도 타밀나두주 마두라이에서 타밀나두주 정부와 '신규 조선소 건설에 관한 배타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이날 협약식에는 최한내 HD한국조선해양 기획부문장과 스탈린(M.K Stalin) 타밀나두주 총리, 라자 주 산업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인도 정부가 추진 중인 '마리타임 암릿 칼 비전 2047(Maritime Amrit Kaal Vision 2047)'의 일환이다. 인도 정부는 2047년까지 세계 5위 해운·조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 아래 타밀나두·구자라트 등 5개 주를 신규 조선소 후보지로 선정하고 파트너를 물색해왔다. 이 과정에서 타밀나두주 정부는 인센티브와 인프라 지원을 약속하며 HD현대를 최종 파트너로 낙점했다. 유력 후보지인 타밀나두주 투투쿠디 지역은 기온과 강수량 등 기후 조건이 HD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과 유사해 조선업 최적지로 꼽힌다. 현대자동차·삼성전자 등 한국 대기업들이 이미 진출해 있어 산업 생태계가 조성돼 있고, 대규모 항만 시설 투자가 예정돼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HD현대는 조선소 설립 검토와 함께 현지 기자재 시장 공략도 병행한다. HD현대는 이달 초 인도 벵갈루루에서 인도 국방부 산하 국영기업 BEML(Bharat Earth Movers Limited)과 '크레인 사업협력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BEML은 국방·철도·건설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인도 주요 공기업이다. HD현대는 이번 협약을 통해 크레인 설계부터 생산, 품질 검증까지 전 과정에서 협력하며 인도 내 제조 역량을 확보할 방침이다. 향후에는 현지 조선소에 골리앗 크레인과 집(Jib) 크레인을 공급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앞서 계열사들이 쌓아온 성과와도 맞물린다. HD현대삼호는 지난 2월 인도 코친조선소에 6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을 납품했으며,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8월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HD현대에코비나를 인수하며 크레인 사업 경쟁력을 강화해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두고 HD현대가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 시장을 선점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7월 인도 최대 국영 조선사인 코친조선소와 기술 지원 및 함정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는 등 현지 입지를 넓혀오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인도는 조선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의지가 강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장"이라며 “인도와의 조선·해양 분야 협력을 지속 확대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아, 전 국민 참여형 캠페인 ‘기아 트레저 헌트’ 실시

기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아 트레저 헌트:80년의 유산을 찾아서'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8일 밝혔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성장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마련된 창립 80주년 기념 헤리티지 자산 발굴 및 수집 행사다. △초기형 모델, 콘셉트카 등 차량 및 부품 △오래된 책자, 기사, 메모 등의 문서 및 기록 자료 △역대 엠블럼과 로고, 스케치, 설계 도면 등 디자인 및 브랜드 자료를 포함해 역사성과 희소성을 가진 모든 자산을 대상으로 한다. 기아 차량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국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유한 자산의 사진과 관련 정보를 등록하면 된다. 기아는 홈페이지에 접수된 자산 중 내부 평가위원단의 검토 및 심사를 거쳐 보존 가치가 인정되는 자산을 기증 또는 대여 등 후속 절차에 따라 기아의 소중한 헤리티지 유산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보존 대상으로 선정된 자산을 등록한 참여자에게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소정의 상품을 증정할 예정이다. 기아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은 전문가나 소장가만이 아닌 기아와 인연이 있는 모든 국민 여러분과 브랜드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라며 “한국 산업사의 의미 있는 장을 함께 완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한컴, 내년부터 전사 모든 직무에 AI 에이전트 활용 의무화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가 2026년을 전사적 인공지능(AI) 내재화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기업 체질을 뿌리부터 바꾸는 고강도 혁신에 나선다. 한컴은 내년부터 개발 직군은 물론 기획, 마케팅, 인사(HR), 재무 등 비개발 직군을 포함한 전사 모든 직무에 AI 에이전트(Agent)의 상시 활용을 의무화하고, 실제 업무 프로세스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한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전략은 단순히 업무 편의를 돕는 도구 도입 차원을 넘어선다. 고객에게 AI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임직원부터가 가장 까다롭고 능숙한 AI 사용자가 돼야 한다는 김연수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국내 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특정 개발 부서나 일부 시범 조직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컴처럼 일반 지원 부서까지 포함해 각 직무별로 최적화된 버티컬(Vertical) AI 툴을 발굴하고, 이를 전사 시스템에 이식해 AI 체질화를 시도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한컴은 이를 위해 지난 수개월간 각 현업 부서와 별도의 전담 조직이 협력해 실제 업무 적용 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직무별 최적의 AI 솔루션 선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운영 단계에 돌입했다. △재무·회계 부서는 복잡한 세법 검토와 자금 흐름 예측에 AI를 활용하고, △기획·마케팅은 시장 조사와 콘텐츠 생성에 생성형 AI를 투입한다. △인사(HR) 부서 또한 AI 기반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조직 문화를 진단하는 등 회사의 모든 밸류체인이 AI와 결합해 돌아가게 된다. 한컴은 스스로를 거대한 AI 테스트베드로 삼아 내부에서 철저히 검증된 활용 노하우와 데이터만을 토대로 고객에게 실패 없는 실전형 AI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데이터 처리 계약(DPA) 검증 등 보호가 전제된 혁신 가이드라인도 완비했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우리가 하려는 것은 단순한 도구 설치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AX(AI 전환) 실증 실험"이라며 “AI가 업무 전반에 스며들어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게 되면, 이에 맞춰 기업 문화 역시 임직원들이 더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가치 창출에 몰입할 수 있는 형태로 유연하게 진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컴 구성원 모두가 AI를 공기처럼 활용하는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자산화해, 2026년 AI 시장을 공략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한국타이어, 워터펌프 설치로 인도네시아 주민에 식수공급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는 지난 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수자원 인프라 지원사업인 '워터펌프 설치 프로젝트'를 마치고 기증식을 열었다고 7일 밝혔다.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이번 워터펌프 설치 프로젝트는 한국타이어의 인도네시아 공장이 있는 자카르타 동쪽 브카시 지역에 깨끗하고 안전한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해외 사회공헌사업이다. 브카시 지역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건기 기간에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 사태를 겪는 곳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타이어 현지 공장이 있는 나가 십타 마을에는 공장 임직원을 포함한 300여 가구가 거주 중이며, 이 가운데 50여 가구는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수자원 인프라 설치를 통해 생활용수 구입 비용을 낮춰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인프라가 열악한 현지 생활 여건을 개선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한국타이어는 기대했다. 앞서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8월 브카시군의 다른 마을에 워터펌프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올해 8월 기준 230여 가구 주민 1100여 명이 약 280만 리터(L)의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 “비행 안전은 수많은 협력의 산물”…국립항공박물관 ‘Cleared for Take-off’展

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모든 항공 규정은 피로 쓰여졌다). 모든 항공 안전 규정은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생겨난 다음에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미국연방항공청(FAA)이 항공사고 사망자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선언적 격언이기도 하다. 평소 이 섬뜩하고도 비장한 문구를 알고 있었지만 최근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기체 결함·난기류 부상 등 각종 항공 안전 사고 소식과 겹쳐지며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항공 안전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립항공박물관이 마련한 기획전시 'Cleared for Take-off: 비행을 만드는 순간들'이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국립항공박물관 3층에서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가 한 번의 비행을 위한 수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모든 절차들이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7일 기자가 찾은 전시장 프로그램은 비행기가 뜨기 전, 가장 먼저 선행되는 '하늘 읽기'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00년대 항공기상청에서 실제 사용했던 시정계(RVR, Runway Visual Rangingmeter)와 초음파 풍향 풍속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특히 활주로 가시거리를 측정하는 시정계가 조종사의 평균 눈높이인 '2.5m'를 기준으로 설계됐다는 설명에서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안전 시스템의 디테일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보안 검색 구역에서는 엑스레이 검색 장비와 2025년형 최신 휴대용 금속 탐지기를 통해 우리가 공항에서 겪는 번거로운 과정이 실은 '모두의 하늘길을 지키는 약속'임을 보여주었다. 창밖으로 무심코 지나쳤던 활주로와 계류장의 풍경도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실제 항공 현장에서 쓰이는 터그 카·항공기용 탑재 용기(ULD, Unit Load Device)와 진입각 지시등(PAPI, Precision Approach Path Indicator)이 전시돼 현장감을 더했다. 특히 소음 속에서 오직 수신호로 거대한 비행기를 지휘하는 '마샬러(Marshaller)'의 형광색 작업복과 신호봉은 조종석 밖에서 안전을 지원하는 든든한 조력자들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가장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기내 안전장비 섹션이었다. 최근 기내 보조 배터리 화재 사고 등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기내 격리 보관백(Fire Containment Bags)'의 실물 전시는 매우 시의적절했다. 소방 제품 전문 브랜드 '119레오'가 제작한 이 특수 가방은 화재 위험 물질을 격리해 확산을 막는 장비로, 국토교통부가 올해 9월부터 모든 항공기에 2개 이상 탑재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항공 안전 규정이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위협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화장실 쓰레기통 온도가 오르면 색이 변하는 온도 감지기 같은 세심한 장치들도 흥미로웠다. 전시는 인천국제공항 소방대의 방화복과 헬멧, 1997년 객실 승무원 비상 훈련 교본 등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화재 시 승무원의 호흡을 15분간 지켜주는 보호 호흡 장비(PBE, Protective Breathing Equipment)와 24시간 공항을 지키는 소방대원들의 장비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이들의 헌신을 대변하고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남가연 국립항공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일상처럼 누리는 항공 여행 뒤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장비, 절차가 움직이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마련됐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장을 나서며 'Cleared for Take-off(이륙 허가)'라는 짧은 교신 용어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확인과 점검이 담겨 있는지 실감했다. 각종 항공 사고 뉴스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은 지금, 이번 전시는 우리가 누리는 비행이 수많은 전문가들의 노력과 견고한 시스템 위에 세워진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승객들의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요즘, 이번 전시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우리가 누리는 비행이 얼마나 치열한 과정 끝에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편 이 기획 전시는 내년 5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항공기상청·한국공항보안·JAS·골든코리아의 자문과 자료 대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어서울·전일본공수(ANA)·유나이티드항공의 협조로 이뤄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요동치는 美 자동차 시장···현대차그룹 ‘유연성’ 빛 볼까

미국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대신 내연기관차 보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급선회하면서다. 바이든 체제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며 전기차 제조·보급에 돈을 퍼붓던 게 불과 3년 전 일이다. 갑작스럽게 판도가 바뀌자 제조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새로운 자동차 규제안을 발표했다. 제조사들이 준수해야 하는 최저 연비인 기업평균연비제(CAFE)를 기존 1갤런당 50마일에서 1갤런당 34.5마일로 낮추는 게 골자다. CAFE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 연비를 개선하고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 생산을 확대하도록 하는 유인이었다. 제조사가 판매하는 모든 차량의 평균 연비를 측정해 기준을 준수했는지 확인하기 때문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해당 규제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연기관차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인해 일반적인 소비자가 신차 가격에서 최소 1000달러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노력 중 하나를 제거했고 자동차 산업을 더 큰 불확실성으로 몰아넣었다"고 논평했다. 수혜는 미국 업체들이 볼 전망이다.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포드 등은 연비가 떨어지는 대형차 판매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동안 CAFE 기준을 준수하지 못해 벌금을 내오기도 했다. 미국 브랜드들은 한국·유럽 경쟁사들과 비교해 전동화 전환을 늦게 시작했다. 뒤쳐진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이차전지 제조사들과 합작사를 만드는 전략 등을 구사해왔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 포드와 SK온 등이 손을 잡는 식이다. 이들은 이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탓에 전기차 생산에 속도조절을 하던 와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CAFE 규제 완화로 이들은 내연기관차 보급 쪽에 더욱 무게추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IRA 등을 통해 지원되던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지난 9월부터 끊긴 상태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빅4는 GM, 토요타, 포드, 현대차·기아이다. GM과 토요타가 10%대 후반, 포드와 현대차·기아가 10% 초반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혼다, 스텔란티스 등은 한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며 이들을 뒤쫓고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GM(268만9346대), 토요타(233만2623대), 포드(206만5161대), 현대차·기아(170만8293대) 순이었다. 이 중 GM과 포드 등 미국 제조사들은 연비 향상 등에 비용을 투입하지 않는 대신 기존 내연기관차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방'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 등 라인업도 늘릴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토요타는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하이브리드차에 계속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달에는 북미 지역 하이브리드차 생산 확대를 위해 1조원대 자금을 투자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혼다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 등에 대응해 하이브리드차의 미국 생산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현대차·기아는 '유연성'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해왔다. 엑셀 수출을 시작하고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가 인기를 끌 때부터 현대차는 '세단 명가'로 유명했다. 이후 쏘나타를 거쳐 투싼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아의 대형 SUV 텔라루이드는 한때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로 각광받기도 했다. 현대차·기아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기차 전용 공장도 만들었다. 현대자동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서 지난해부터 전기차 양산을 시작했다. 추가 투자를 통해 연간 생산 규모도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동시에 하이브리드차 판매도 확장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친환경차 누적판매는 올해 8월 기준 150만대를 돌파했다. 최다 판매 차종은 현대차 투싼과 기아 니로의 하이브리드 버전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 덕분에 현대차·기아는 관세 장벽 등 악재도 잘 이겨내고 있다. 최근 보조금이 끊기며 전기차 판매가 급감했지만 다른 차종들이 선전하며 전체 규모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지난달 미국 판매는 15만4308대로 전년 동월 대비 0.1% 증가했다. 차종별로 보면 전기차 판매가 4618대로 58.9% 급감했다. 대신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3만6172대로 48.9% 급증하며 이를 상쇄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3405대), 엘란트라 하이브리드(2208대) 등 다양한 차급이 골고루 팔리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 정부가 CAFE 등 '오락가락 규제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정책이 또 다시 급변할 경우 특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성된다. GM·포드 등이 이번 조치 이후 전기차 기술 개발을 멈출 경우 '제2의 바이든 시대'가 열렸을 때 현대차그룹과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불확실성'도 제거한 상태다. 미국은 한-미 무역협상 합의에 따라 이달 4일 자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공식 인하했다. 앞으로 관심사는 대형차를 선호하는 미국이지만 소형차 시장이 열릴 수 있을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CAFE 규제 완화를 발표하며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이들 나라를 가보면 비틀같은 작은 차들이 있다. 정말 작고 귀엽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생각했고 모두가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에서는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숀 더피 교통부) 장관에게 이런 차의 생산을 즉시 승인하라고 지시했고, 여러분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차·기아는 캐스퍼, 레이, 모닝 등 경차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상태다. 다만 시장이 열릴 경우 해당 분야에서 보다 더 강점을 지닌 일본 브랜드들과 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SK 겸직, LG 세대교체, 롯데 유임…석화3사 CEO 인사 ‘3색’

석유화학 기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황 부진을 돌파하고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내년도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와 석유화학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겸직을 택했고, LG화학은 7년만에 첨단소재 전문가로 수장을 교체했다. 지난해 쇄신인사를 단행한 롯데케미칼은 '유임'으로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낸다. 7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롯데케미칼과 LG화학에 이어 이달 SK이노베이션 까지 임원 인사를 단행하며 내년 석화사업 구조 개편을 이끌 진용을 갖췄다. 석화사들은 기초소재 사업을 효율화하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와 석화사업의 수장을 통합해 양사의 정유-화학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힘을 실었다. 원유 정제부터 에틸렌 같은 기초 소재 생산, 고분자 소재를 뽑아내는 작업까지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이 사업군별로 운영 개선(OI) 작업을 이어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 SK지오센트릭 CEO에 김종화 SK에너지 대표이사(사장)를 선임하며 이 같은 의도를 드러냈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은 운영개선(OI) 추진단 내 SK이노베이션 계열의 공급망 최적화 기능을 강화했다. 이를 계기로 SK이노베이션이 울산에서 운영해온 정유·석유화학 단지 '울산 콤플렉스(CLX)' 차원에서 생산구조 효율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사장은 SK에너지와 SK지오센트릭를 두루 경험하며 SK의 정유와 석유화학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다. 김 사장은 SK에너지 엔지니어링본부장, SK이노베이션 안전보건환경(SHE)부문장, 년 SK지오센트릭 최고안전책임자(CSO) 겸 생산본부장, 울산CLX 총괄을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SK에너지 대표를 맡았다. 김 사장은 취임 일성부터 이 같은 의지를 보였다. 김 사장은 “석유화학 업황 부진과 구조적 변화라는 큰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OI 추진을 통해 실행력을 키우고, 정유와 화학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7년 만에 새 CEO를 선임하며 조직 세대 교체와 첨단 소재 중심 사업 재편을 택했다. LG화학의 새 사령탑은 첨단소재 중심으로 경험을 쌓아온 김동춘 첨단소재사업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맡게 됐다. 김 사장은 LG화학에서 반도체소재사업담당, 전자소재사업부장, 첨단소재사업본부장을 거쳤고, 주식회사 LG에서 경영전략과 신사업 개발을 담당하기도 했다. LG화학은 김 신임 사장에 대해 “첨단소재 사업의 고수익화, 미래 성장동력 발굴, 글로벌 고객 확대 등에서 성과를 창출하며 사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며 “김 사장이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사업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미래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 선임 직후 내놓은 신성장 동력 개편 방향도 인공지능(AI)과 전동화(electrification)에 초점을 맞췄다. 첨단사업은 전기차용 양극재 사업을 이어가며 전자·반도체 소재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 석유화학 사업도 기존의 수소화 식물성 기름(HVO)과 재활용 소재 등 지속 가능한 소재 뿐만 아니라 전기차·전지·가전·반도체·의료용 고부가 석화소재 공급처를 넓힌다는 목표다. 롯데케미칼은 이영준 기초소재 대표이사 겸 롯데 화학군 총괄이 계속 이끈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롯데그룹 화학군은 지난해 정기 인사에서 총 13명의 CEO 중 10명을 교체했다. 이 총괄은 첨단소재 PC사업본부장과 첨단소재 대표이사를 맡은 경험도 있다. 기초화학 중심 사업을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소재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을 맡았다. 화학사업 내 시너지 창출과 효율화라는 과제도 풀어야 한다. 그룹이 도입 3년여만에 헤드쿼터(HQ) 체제를 폐지하는 가운데서도 화학군 HQ를 포트폴리오 전략실(PSO)로 개편해 사실상 총괄 체제를 남겨두기도 했다. 석화사들별로 다른 인사 초점이 향하는 목표는 부진한 시황 극복이다. 석화사들은 이달 말까지 울산과 전남 여수, 충남 대산 석화단지별로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 규모를 감축하는 등의 사업 재편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해야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충남 대산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지난달 말 산업통상부에 재편안을 제출했고, 5일 채권단이 금융 지원 내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여수산단에서 GS칼텍스와 사업 재편안을 찾고 있고, SK지오센트릭은 울산에서 대한유화·에쓰오일과 논의 중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무안공항참사 조사위’ 독립성을 흔드는 건 누구인가

지난 4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개최할 예정이던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중간보고·공청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가족협의회와 국회 12·29 특별위원회의 공식적인 연기 요청과 공청회장의 안전 우려였다. 그러나, 사조위의 연기 결정은 독립성이 생명인 조사기구가 스스로 정치권의 압박과 피해자단체의 실력행사에 백기투항한 것이자 대한민국 항공안전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연기 사태의 비판점은 명확하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더십 부재가 사조위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 유가족과 정치권의 '선 넘는 개입'이 공청회를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대상은 국토부 장관이다. 참사 초기부터 콘크리트 둔덕 설치·관리 등 국토부 책임론이 불거졌음에도 장관은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사조위가 '셀프 조사' 논란에 휩싸이도록 방치했다. 주무부서의 비겁한 회피는 유가족들에게 '국토부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결과적으로 사조위를 여론의 광장 한복판에 고립시켜 동네북이 되도록 만든 꼴이 됐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유가족 협의회와 국회 12·29 특위의 행보다. 이들은 현재 △공청회·중간 보고 중단 △참사 진상 규명 과정에서의 피해자 참여 보장 △이재명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조위의 소속을 총리실로 옮기는 법 개정 논의는 입법부의 권한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요구 사항들은 명백히 국제 기준을 위반하고 과학적 조사를 무력화하는 '외압'이다.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하는 움직임은 결국 이 사고를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유가족들은 대놓고 “우리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조사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슬픔은 이해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ICAO Annex) 13과 사조위 운영 규정 제29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해당 규정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해 관계자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오직 데이터에 기반해 원인을 분석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조사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유가족이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작금의 상황은 과거 농민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리는 전문가인 의사의 의학적 판단인 사망 진단서가 정치적 외압과 여론에 의해 수정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 방향이 옳았든 틀렸든, 전문가의 영역이 '목소리 큰 진영'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무안공항 참사 조사에서도 유가족들은 블랙박스가 가리키는 '잘못된 엔진을 정지한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만약 유가족의 압력에 밀려 사조위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진실을 외면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잉의 기체 시스템 결함'이나 '시설 책임'으로 결론을 수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2의 백남기 진단서 사태'가 될 것이다. 과거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 사고나 아시아나항공 214편 샌프란시스코 사고 때도 유가족들은 기체 결함을 주장하며 조종사 과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가족의 눈물 대신 차가운 팩트를 선택했기에 전 세계 항공업계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더 안전한 하늘을 만들 수 있었다. 국회 12·29 특위와 유가족에게 묻는다. 사조위가 국무총리실로 가든 대통령 직속이 되든, 사고 당시 조종사가 멀쩡한 엔진을 껐다는 블랙박스의 기록이 바뀔 수 있는가? 국내 항공 사고 처리 인력풀은 매우 협소한데 그 어디에도 전문가가 없어 결국 국토부에서 조사관들을 파견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생겨났던 항공사고 조사 결과들은 어떻게 수긍해 왔나? 사조위의 상급 기관이 바뀐다고 해서 과학적 사실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사고 조사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의 영역이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사조위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배가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할까 우려스럽다. 유가족이 사건사고의 재판관이 될 순 없지 않은가. 전문가를 배척하고 감성이 과학을 지배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사조위의 독립성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가장 원한다는 유가족들과 그들 곁에 선 정치인들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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