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EU ETS 규정 따라 온실 가스 배출권 첫 제출

유럽연합(EU)의 해운업 배출권 거래제(ETS)가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국내 해운업계가 첫 온실가스 배출권 제출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EU 역내 항해 선박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권 제출 의무가 처음으로 부과된 가운데 선제적으로 친환경 전환에 투자해 온 기업과 당장의 비용 부담에 직면한 기업 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친환경 경쟁력 격차가 실제 재무 부담의 차이로 이어지는 '탄소 비용' 시대가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EU는 ETS 규제 대상에 해운업종을 포함하기로 했다. 때문에 역내를 기항하는 5000톤 이상 모든 선박은 연간 온실 가스 배출량에 상응하는 배출권을 구매해 이달 30일까지 관리 당국에 제출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이번 제출은 규제 이행의 첫걸음으로, 올해는 총배출량의 40%에 해당하는 배출권만 제출하면 되지만 의무량은 2025년 70%를 거쳐 2026년부터는 100%로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는 해운사들이 마주할 재무적 부담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첫 제출을 기점으로 향후 규제 대응 능력이 선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격변 속에서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은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HMM은 지난 5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ESG 평가기관 '서스테이널리틱스'로부터 2년 연속 글로벌 선사 1위로 평가받으며 객관적인 친환경 경쟁력을 입증했다. 특히 온실 가스 감축 목표 수립·관리와 기후 관련 재무 영향 분석 등 환경(E)·기업 지배 구조(G)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주효했다. 이러한 평가는 구체적인 친환경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HMM은 9000TEU급 메탄올 추진선 9척을 발주하는 등 친환경 선대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선박들은 폐자원을 활용한 바이오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할 경우 기존 화석 연료 대비 탄소 배출을 65% 이상 줄일 수 있다. EU ETS 규정상 탄소 감축량이 65% 이상인 연료는 탄소 발생량을 '0'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HMM은 실질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국내 대표 벌크선사로 꼽히는 팬오션은 상당한 규모의 재무적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팬오션은 구체적인 배출권 구매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올해 발간한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통해 EU ETS 준수를 위한 배출권 비용이 올해에만 약 1800만 달러(약 24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팬오션이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2023년 온실 가스 원단위 배출량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현실화된 비용 압박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팬오션 역시 ESG 경영 고도화를 위해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협력사 행동규범을 마련하는 등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선대 전환에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적인 비용 부담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첫 배출권 제출을 기점으로 각 선사의 친환경 기술 투자 격차가 재무 성과로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무안공항 찾은 김윤덕 장관 “항철위 조사 중단 검토”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무안공항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의 조사 활동 중단을 공식 검토하겠다고 4일 밝혔다. 이해당사자인 국토부 산하 기관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유가족들 요구에 따른 것이다. 김 장관은 이날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조문한 뒤 유가족들과 면담했다. 유가족들은 “항철위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조사 중단을 요구했고, 김 장관은 “유가족 전체 의견으로 항철위 조사 중단을 요청한다면 법과 규정상 가능한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법적으로 어렵다면 행정적인 조치가 가능한지도 따져보겠다"고 했다. 항철위가 국제 규정에 따라 공개해야 할 정보를 비공개로 하고 있다는 지적에 김 장관은 “항철위를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근거해 공개가 가능한지 얘기를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며 “항철위 입장이 타당하지 않다면 공개하도록 하고, 타당하면 왜 그런지 제가 다시 찾아와 설명하겠다"고 했다. 항철위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국무총리실로 이관하는 논의에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 장관은 “(국회 논의 결과) 항철위가 다시 국토부로 내려온다면 장관을 그만두겠다"며 “조금 늦어지더라도 항철위는 총리실로 넘어가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구성해 사고조사위원회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면담 후 김 장관과 사고기 꼬리날개가 보관된 격납고 인근을 찾아 “증거물이 방치돼 있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후 성명을 내고 “장관은 유가족 앞에서 한 약속을 즉시 이행해야 한다"며 “국토부 책임이 확인되는 즉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中 북극항로 운항·유럽 탄소거래제 도입…K-해운 ‘운명의 10월’

중국이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북극항로의 상업운항을 본격화하며 지정학적 지각 변동을 예고한 가운데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운업계의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강력한 탄소 규제 최종안을 채택할 예정이어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해운사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북극항로의 부상과 피할 수 없는 환경 규제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면서 해운업계가 생존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중국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릿지'호는 지난 9월 22일 닝보-저우산항에서 출항했다. 이는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 구상이 현실화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는 평가다. 이 선박은 북극항로를 통해 기존 수에즈 운하 노선보다 운송 기간을 절반 가까이 단축한 약 18일 만에 영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운송 시간 단축을 넘어 말라카 해협이나 수에즈 운하 등 지정학적 위험이 상존하는 길목을 회피하는 새로운 전략적 물류 경로의 등장을 의미한다. 중국은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북극항로를 선점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판도를 바꾸려 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리샤오빈 하이제(海傑)해운 수석 운영관은 “기존 중국·유럽 간 화물 열차는 25일 이상, 수에즈 운하 항로는 40일 이상, 희망봉 경유 시 50일 이상 소요되는 만큼 북극 항로 경쟁력이 뛰어나다"며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열에 민감한 리튬 배터리·태양광 상품·전기차 등의 운송에 적절하다"고 밝혔다.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 파도에 이어 영국 런던 소재 IMO 본부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미래를 결정할 또 다른 중대 사안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달 열리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IMO가 최종 채택할 새로운 온실가스 규제는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조치로 평가된다. 오는 2027년부터 선박 연료의 탄소 집약도를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Well-to-Wake)에서 평가하는 '온실가스 연료 집약도(GFI)' 기준이 도입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선박에는 막대한 '탄소 부담금'을 부과하는게 골자이다. 이는 사실상 친환경 연료 사용을 강제하는 것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친환경 선박을 확보하지 못한 선사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예고한다. 이처럼 북극항로가 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강력한 글로벌 규제가 압박해 오면서 해운사들의 전략도 엇갈리고 있다. 중국은 '더 짧은 것이 더 친환경적'이라는 논리로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하는 반면, 머스크 등 유럽 선사들은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북극항로를 거부하고 고가의 친환경 연료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국내 해운업계다. HMM을 포함한 해운사들은 막대한 투자 비용과 지정학적 리스크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운명의 10월'을 기점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바다 위 경쟁의 규칙 속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내리느냐가 향후 생존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노력을 넘어 △선대 현대화 전략의 가속화 △전폭적인 정부 지원 △북극 항로에 대한 전략적 접근 명확한 해양 전략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파라타항공, 김포-제주 노선 첫 운항…탑승률 97%

파라타항공은 전날 김포-제주 노선 첫 운항에 나섰다고 3일 밝혔다. 이날 오후 4시 50분 김포를 출발한 WE6501편(A330-200, 294석)은 18시 5분 제주에 도착했고, 첫 편 탑승률은 97%로 집계됐다. 파라타항공 관계자는 “추석 연휴 귀성객과 여행객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김포-제주 노선 첫 취항편에서는 윤철민 대표이사와 임직원들이 직접 탑승객들을 환송하며 추석 인사와 함께 기념품을 전달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기내 시그니처 음료 '피치 온 보드(Peach on board)'는 김포-제주 노선에서도 고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파라타항공은 최대 10일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 기간을 포함해 10월 22일까지 총 18편의 특별편을 운항할 예정으로, 귀성객과 국내 여행객들의 편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후 10월 26일부터는 김포-제주 제주에 매일 1회 다니며 국내 대표 노선에서 합리적인 요금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파라타항공 관계자는 “안전 운항과 진심이 담긴 서비스로 고객 신뢰를 쌓아가고, 국내 항공업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획] 대한항공이 운영하고 진에어가 후원하고…한진그룹의 쌍끌이 스포츠 마케팅 전략

배구단에서 시작해 e스포츠 경기장을 거쳐 F1 서킷까지 한진그룹의 스포츠를 향한 투자가 또 한 번의 고공 비행을 시작했다. 그룹의 맏형 대한항공이 V-리그 4연패 신화를 쓰며 '최고'의 이미지를 다지는 동안 진에어는 리그 전체의 타이틀 스폰서로 나서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는 각기 다른 브랜드 정체성을 활용한 정교한 '쌍끌이 전략'이자 그룹 총수가 직접 리그의 구원 투수로 등판하며 만들어 낸 강력한 시너지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일 체육계에 따르면 한진그룹 스포츠 마케팅의 뿌리는 1969년 창단된 대한항공 남자 배구단과 1973년 창단된 여자 탁구단에 기원한다. 이 두 팀의 존재는 한진그룹이 스포츠를 일시적인 홍보 수단이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장기적 가치 창출의 일환으로 여겨왔음을 보여준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은 1972년 석유 파동으로 잠시 해체됐다가 1986년 재창단되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2005년 V-리그 출범과 함께 프로팀으로 전환하며 한국 프로 배구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V-리그 출범 이전에는 우승 경력이 없을 정도로 약체였던 팀이 V-리그 최초 4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은 대한항공이 추구하는 '최고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사다. 실업 여자 탁구단 역시 그룹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3회 연속 올림픽에서 소속 선수가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며 대한항공이 대한민국 국적 대표 항공사(Flag Carrier)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이름을 알리는 것을 넘어 국가적 영광의 순간에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소비자들에게 깊은 신뢰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효과를 낳았다. 비인기 종목 스포츠단 운영 철학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스피드 스케이팅팀도 두고 있는데 이는 사회 공헌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스포츠 발전을 넘어 향후 어떻게 스포츠가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지 체계적으로 살폈고, 스포츠인들의 미래까지 챙겼다. 이러한 철학은 특히 조양호 2대 회장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는 대한항공 배구단과 탁구단을 운영하는 것을 넘어, 2008년부터 별세 직전까지 12년 가까이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매년 10억 원 이상, 총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원하며 침체된 탁구계의 재도약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피스 앤 스포츠(Peace and Sport)' 대사 등 국제 직책을 수행하며 2011년 남북 단일팀 결성에 기여하는 등 스포츠 외교에도 힘썼다. 한진그룹의 스포츠에 대한 기여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와 성공적 개최 과정에서 정점을 찍었다. 조양호 선대 회장은 2009년부터 유치 위원장을 맡아 지구 16바퀴에 달하는 64만km를 이동하며 IOC 위원들을 설득했고,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는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 '삼수' 끝에 올림픽 유치를 성공시켰다. 이후 대한항공은 대회 최고 등급인 공식 파트너(Tier1)로서 테스트 이벤트에 필수적인 장비를 무상 수송하고,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를 래핑한 홍보 항공기를 운영하는 등 대회 성공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다. 한진그룹의 스포츠 마케팅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94년부터 포뮬러 1(F1)의 베네통, 르노 F1 팀 등을 후원한 것은 글로벌 시장을 향한 그룹의 야심과 선구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대한항공·한진 로고는 F1 경주 차량 외관은 물론, 팀 유니폼과 세계적인 드라이버 페르난도 알론소의 헬멧 바이저에까지 부착되며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눈뜨기 이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과감한 시도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대한항공은 2021년 10월부터 영국의 한국계 F1 선수 잭 앤서니 한 에이킨(Jack Anthony Han Aitken, 한국명 한세용)을 후원하고 있다. e스포츠 시장에 대한 선제적 투자도 주목할만 하다. 2010년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브랜드 및 광고 담당이 온게임넷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두 차례나 후원한 것은 당시로서는 재계에서 파격적인 행보였다. 특히 서울 강서구 공항동 본사 격납고에서 치러진 결승전은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고, 대한항공 브랜드를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와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성공 경험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아 이후 자회사인 진에어가 '진에어 그린윙스'라는 이름으로 e스포츠 프로 게임단을 창단하고 운영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처럼 한진그룹은 새로운 영역을 남들보다 앞서 개척하며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며 장기 투자를 해왔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스포츠가 단순한 비용 지출 항목이 아니라, 그룹의 철학과 비전을 담아내는 핵심적인 '무형 자산'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과 진에어라는 두 항공사 브랜드를 활용해 스포츠 마케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교한 이원화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각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과 목표 고객층에 맞춰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전체 소비자 스펙트럼에 걸쳐 그룹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대한항공의 스포츠 포트폴리오는 '최고', '신뢰', '국가 대표'라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V-리그 4연패를 달성한 남자 배구단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꾸준히 배출하는 여자 탁구단, 그리고 동계 스포츠의 핵심인 빙상 종목 후원은 모두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특히 점보스의 압도적인 성적은 대한항공 브랜드에 '승리'와 '안정성', '최고의 서비스'라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투영한다. 겨울철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로 높은 TV 시청률을 자랑하는 V-리그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다. 스포츠팀의 꾸준한 성공은 이러한 무형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것은 대한항공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 항공사로서의 위상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한 기업 홍보를 넘어 국민적 공감대와 자부심을 형성하며 브랜드에 대한 깊은 충성도를 구축하는 고차원적인 브랜딩 전략이다. 진에어의 스포츠 마케팅은 저비용 항공사(LCC)로서의 브랜드 정체성 변화와 성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초기 진에어는 모기업 대한항공이 성공적으로 개척한 e스포츠 시장을 이어받아 '진에어 그린윙스'를 창단하며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스타크래프트 2와 리그 오브 레전드(LoL) 팀을 운영하며 10대와 20대라는 명확한 타겟 고객층에게 진에어라는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렸다. 이는 당시 다른 LCC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접근으로, 진에어를 '젊고 트렌드에 민감한 항공사'로 포지셔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20년 e스포츠팀 해체 이후 진에어의 전략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다. 프로 배구 V-리그의 타이틀 스폰서로 나선 것은 브랜드의 목표가 특정 팬덤을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의 주류 시장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LCC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젊은 층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고객 등 더 넓은 소비자층에게 브랜드를 어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진에어는 국내 LCC 중 유일하게 장애인 스포츠 선수단을 창단하고 지원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이는 '합리적인 가격'을 넘어 '사랑받는 항공사'로 발전하고자 하는 진에어의 의지를 보여주는 행보로 풀이된다. 진에어 관계자는 “특정 계층을 넘어 전 연령층으로 팬들을 확대하고자 V-리그의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이로써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가고자 한다"며 “선수단과 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문화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통해 그룹 전체의 품격과 신뢰라는 '상징 자본'을 축적하고, 진에어를 통해 특정 시장을 공략하고 대중적 인지도를 확장하는 '실행 부대' 역할을 부여하는 이원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다음 표는 이러한 전략적 분업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진그룹의 스포츠 마케팅 전략의 정점은 '배구'라는 단일 종목을 중심으로 대한항공·진에어, 그리고 그룹 오너십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합 시너지 구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스폰서십을 넘어 그룹이 한국 프로 배구 생태계 자체를 주도하며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다. 현재 V-리그는 대한항공이 리그 최강팀인 '점보스'를 보유하고, 자회사인 진에어가 리그 전체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V-리그와 관련된 모든 미디어 노출에서 한진그룹이 이중으로 조명받는 강력한 효과를 창출한다. 요컨대 '진에어 V-리그'에서 '대한항공 점보스'가 우승하는 장면이 방송될 때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한진그룹의 두 브랜드를 동시에, 그리고 긍정적인 맥락에서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한진그룹이 단순한 리그 참여자나 후원사를 넘어 한국 프로배구의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반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리그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소속팀은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선순환 구조는 그룹 전체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V-리그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감을 높인다. 배구 시너지 전략의 중심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조 회장은 그룹의 총수임과 동시에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직과 대한항공 점보스 구단주를 겸하고 있다. 진에어가 V-리그의 새로운 타이틀 스폰서가 된 배경에는 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KOVO는 지난 8년 간 함께했던 타이틀 스폰서 '도드람'과의 계약이 종료된 후 새로운 후원사를 찾는 데 심각한 난항을 겪어왔다는 게 체육계 안팎의 공통된 전언이다. 배구 인기에 대한 우려와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었고, 리그 출범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타이틀 스폰서가 공석일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바로 이 시점에 조원태 총재가 이끄는 한진그룹의 계열사인 진에어가 개막을 2주 앞둔 지난달 30일 구원 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이 결정은 한진그룹이 남자부의 팬 인기 침체와 파리 올림픽 예선 실패, 여자부의 VNL 강등 위기와 선수 수급 문제 등 각종 위기에 처한 한국 배구를 외면하지 않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리그를 안정시키고, 동시에 한진그룹에게는 막대한 마케팅 효과와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안겨주는 '윈-윈'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 LCC들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면 제주항공은 유명 모델과 유튜브 콘텐츠에 집중하고 티웨이항공은 포켓몬스터와 같은 인기 캐릭터와의 협업을, 에어부산은 승무원 브이로그 등 자체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는 양상을 보인다. 주로 젊은 층이나 특정 관심사를 가진 고객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진에어의 스포츠 리그 후원은 전 연령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대중적 파급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는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지만 성공할 경우 단숨에 브랜드 인지도를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이다. 막대한 재정적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이 전략은 한진그룹이라는 든든한 뒷배 덕에 경쟁 LCC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진입 장벽을 구축하는 효과도 가진다. 진에어의 스포츠 마케팅 강화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합병 이후 재편될 항공 시장을 염두에 둔 선제적인 투자라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은 '통합 진에어'로 재탄생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업 이미지(CI)를 갖게 된다. V-리그 타이틀 스폰서십은 신규 CI를 홍보하는 핵심 수단이자 자산이 될 수 있다. '진에어 V-리그'라는 명칭을 통해 이미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상태에서 통합 LCC가 'V-리그를 후원하는 그 항공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어서다. 과거 한진그룹은 총수 일가와 관련된 여러 논란으로 인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바 있고, 이는 소비자 선호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오너 리스크'를 극복하고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그룹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 마케팅은 매우 효과적인 평판 관리 도구로 기능한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이미지의 프로 배구를 꾸준히 후원하고, 소속팀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모습은 대중에게 한진그룹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팀 워크·페어 플레이·승리를 향한 열정과 같은 스포츠 고유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기업 이미지에 투영돼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한진그룹 스포츠 마케팅의 투자 수익률은 단순한 광고 효과 환산 가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V-리그 타이틀 스폰서십을 통해 얻는 △TV 중계 노출 △경기장 내 광고권 △각종 마케팅 권리 등은 직접적이고 측정 가능한 성과다. 하지만 이 전략의 진정한 가치는 측정하기 어려운 네 가지 무형의 자산에 있다. 우선 '배구를 사랑하는 항공사'라는 독보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고, 그룹 총수가 직접 나서 리그의 위기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리더십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점이다. 또 대한항공 점보스의 연이은 우승은 임직원들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조직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낳았고, 배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정부·지방 자치 단체·스포츠 커뮤니티와의 유대 관계를 강화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기적인 재무 성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점보스가 4연속 우승했다는 점은 한진그룹 임직원들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ALPA-K, 국내 첫 여성 조종사 세미나 개최…“성별 넘어 근무 환경 개선 모색”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는 지난 9월 23일 국립항공박물관 대강당에서 국내 첫 여성 조종사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여성 조종사들이 직무 수행 중 겪는 다양한 문제와 개선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첫 공식 행사다. 행사에는 협회 관계자와 외부 강연자 등 총 55명이 참석했으며, 김경오 대한민항공회 명예 총재가 축사를 했다. 세미나에서는 △싱가포르 FPWG(2024) 사례 공유 △항공 산업 내 모성 보호 3법 적용 방안 △현장 경험 기반 자유 토론 등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를 통해 조종사들이 겪는 신체적·제도적 차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관련 규정 개선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협회는 이번 세미나가 단순히 여성 조종사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모든 조종사의 복지 증진과 근무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육아 휴직 제도가 여성에게서 남성으로 확대 적용된 것처럼 이번 논의가 전체 조종사의 제도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향후 협회는 여성 조종사 세미나를 정례화하고 모성 보호 3법의 제도화를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전 구성원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통합 앞둔 대한항공·아시아나, 교관 150명 합동 워크숍…‘안전 운항’ 한뜻 모아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비행 안전 시스템 통합과 표준화를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대한항공은 전날 양사 소속 운항 교관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5 후반기 교관 회의 겸 통합 워크숍'을 공동 개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통합 항공사의 안전 운항을 책임질 핵심 인력인 교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운항 훈련 정책과 비행 교육 체계의 표준화 방안을 논의하고 상호 간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워크숍에는 비행 훈련을 직접 지도하는 운항 교관(LIP, Line Instructor Pilot)을 비롯해 지상 학술 교육·인적 요인(CRM, Crew Resource Management)·항공기 시스템 등 각 분야의 전문 교관들이 모두 참석해 통합 항공사의 안전 철학을 공유했다.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교관 회의는 김해룡 대한항공 운항본부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최근 발생한 특이 운항 사례의 경위와 조치 절차를 심도 있게 분석하며 안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되새겼다. 이어 기종별 간담회를 통해 양사가 보유한 항공기의 차이점과 교육 노하우를 공유하고, 통합 후 적용될 표준 비행 교육 체계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진행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한 학술 심포지엄과 교수법·CRM 강연 등 전문적인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오후에는 인천 계양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겨 소통과 화합을 위한 통합 워크숍이 진행됐다. 양사 교관들은 OX퀴즈·풍선 기둥 올리기·줄다리기·대형 윷놀이·박 터트리기 등 다채로운 팀워크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며 어색함을 허물고 동료애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통합 대한항공은 단순히 두 회사의 자원을 합치는 것을 넘어 양사의 강점을 결집해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새로운 기회"라며 “이번 워크숍을 통해 양사 교관들이 안전 운항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함께 협력하며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이번 워크숍 외에도 안전 운항 체계 통합을 위한 실질적인 협력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회사는 안전 운항을 최우선 목표로 최근 5년간 모든 보유 기종의 정상·비정상 절차에 대한 교육용 영상을 제작하고 교안을 전면 개편하는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운항 교육 콘텐츠 개발에 매진해왔다. 또한 최근엔 조종사들이 언제 어디서든 학습할 수 있도록 운항훈련원 전용 사이트를 구축하고, 지난 8월에는 2026년부터 적용할 모의 비행 장치(FFS, Full Flight Simulaton) 훈련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등 통합 항공사의 정기 훈련 교육 체계 마련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섬에어, 2026년 상반기 중 첫 취항 예고…운항·정비 인력 공개 채용

2026년 상반기 첫 취항을 준비 중인 지역 항공 모빌리티 기업 섬에어(SUM Air)가 1호 신조기 운영을 위한 운항·정비 부문 신입 및 경력 사원 공개 채용에 나섰다. ​섬에어는 오는 12일까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채용 지원서를 접수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채용은 상업 운항에 앞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채용 규모는 두 자릿수다. ​모집 부문은 △운항 관리사 △객실사 무장 △정비 기획 △정비 자재 △품질 보증 △정비 기술 △운항 정비 등 총 7개 분야다. 최종 합격자는 오는 12월 초 도입되는 ATR 72-600 신조기 운영에 투입될 예정이다. ​섬에어는 안정적인 안전 운항 체계 구축을 위해 해당 분야에서 3~5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인력을 중심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특히 기내 안전을 책임지는 객실 승무원의 경우 간호사·응급 구조사 등 의료 기관 종사자나 특수 부대(UDT·707) 출신 또는 소방 공무원, 무술 유단자 등 응급 구조 역량을 갖춘 인재를 우대한다. ​섬에어 관계자는 “기존 대형 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를 보완하는 지역 항공사로서 도시와 섬, 동서 지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공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며 “도전적인 인재들의 많은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채용 절차는 서류 전형→면접 전형→신체 검사 순으로 진행되며, 최종 합격자는 11월 중 입사하게 된다. ​2022년 11월 설립된 섬에어는 내년 상반기 김포-사천, 김포-울산 노선 첫 취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울릉도·흑산도·백령도·대마도(쓰시마) 등 국내외 소형 공항으로 노선을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7.8조 사업’ KDDX, 또 표류 위기…방사청 입장 번복에 ‘K-방산 혼선’

감점 기간 만료를 불과 한 달 반 앞둔 시점에서 방위사업청이 내린 결정이 대한민국 방위 산업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2030년까지 6000톤급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데에 총 사업비 7조8000억원이 소요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Korea Destroyer Next Generation) 사업의 향방을 결정지을 HD현대중공업의 보안 감점 기간을 돌연 1년 이상 연장한 것이다. 방사청은 '새로운 법률 검토' 결과를 내세웠지만 HD현대중공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부당한 조치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단순한 행정 해석 변경으로 보기 힘든 이번 결정의 이면에는 KDDX 사업을 둘러싼 두 거대 기업의 사활을 건 대결과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가 얽혀있다. KDDX 사업은 대한민국 해군 미래 함대의 초석이다. 이 함정들은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 취역 함령이 25년을 초과한 노후한 광개토대왕급(DDH-I) 구축함을 대체하기 위해 지정됐다. 광개토대왕급은 성능 개량을 거쳤으나, 선체의 수명과 플랫폼 자체의 근본적인 능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미 최초 작전 능력 확보 목표 시점이 당초 2030년에서 최소 2032년으로 지연된 이 사업의 표류는 해군력의 공백이라는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이 같은 공백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해양 강국들이 공격적으로 함대를 증강하는 시점에 발생해 전략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KDDX는 센서·전투 체계·무장에 이르는 거의 모든 핵심 체계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최초의 구축함으로, 한국 해군 기술의 비약적인 도약을 상징한다. 때문에 KDDX 사업은 단순한 함정 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해군의 전략적 방향성을 바꾸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꼽힌다. 국산 전투 체계와 플랫폼 설계를 통해 완전한 기술 자립을 추구하는 것은 미국 이지스 시스템에 의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최상위 해군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국가적 목표를 반영한다. 따라서 현재의 사업 정체는 단순한 일정 지연이 아니라 이러한 국가 전략 목표에 대한 심각한 차질을 의미한다. 함정 건조 사업은 통상 개념 설계→기본 설계→상세 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KDDX 사업에서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개념 설계를,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2023년 12월 기본 설계를 완료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기본설계 완료 직후부터 핵심 단계인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로 나아가지 못한 채 거의 2년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는 해군과 방산 생태계 전반에 막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5년 사이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19차례에 걸쳐 군사 기밀 문건을 불법 취득해 사내에 공유했다. 유출된 자료에는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이 수행하던 KDDX 개념 설계도와 잠수함 관련 문건 등 매우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경쟁사의 지적 재산과 기밀에 해당하는 해군의 요구 사항을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확보해 경쟁 우위를 점하려는 능동적인 범죄 행위였다. 이에 연루된 직원 9명은 군사 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법적 절차는 두 단계로 나뉘어 종결됐다. 먼저 직원 8명에 대한 유죄가 2022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나머지 1명에 대한 유죄 판결은 2023년 12월에야 확정됐다. 애초 동일한 사건 번호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이 이렇게 시차를 두고 확정된 사실은 훗날 방사청이 기존 입장을 뒤집는 핵심 빌미가 됐다. 방사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기소는 9명이 같이 됐는데 8명에 대한 1심 판결만 났고, 나머지 1명에 대해선 검찰이 항소해 2심으로 넘어가 사건이 2개로 쪼개진 것으로 법무 검토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군사 기밀 유출 사건으로 인해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에 대해 모든 경쟁 입찰에서 1.8점의 보안 감점을 부과했다. 당초 이 감점은 올해 11월까지 적용될 예정이었다. 이 페널티의 실질적인 파급력은 2023년 7월 울산급 배치-III 호위함 5·6번함 입찰에서 증명됐다. 당시 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은 기술능력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그러나 1.8점의 보안 감점이 적용되자 최종 점수에서 한화오션이 0.1422점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사업을 수주했다. 이 사건은 보안 감점이 명목상의 징벌이 아니라 수주 당락을 결정하는 치명적인 요소임을 입증했다. 이는 양사의 입장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갔다. 한화오션은 경쟁 입찰이 정당한 승리의 길임을 확인했고, HD현대중공업은 경쟁 입찰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규정하며 감점이 적용되지 않는 수의 계약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울산급 호위함 수주 실패는 KDDX 분쟁의 성격을 단순한 사업 경쟁에서 '존망을 건 기업 전쟁'으로 변질시킨 촉매제였다. 이전까지 감점의 영향은 이론적인 논쟁에 머물렀지만 이 사건 이후 HD현대중공업에게 KDDX 경쟁 입찰은 승리가 불가능한 싸움이라는 현실이 됐다. 이는 수의계약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굳히게 만들었고, 타협의 여지를 없애며 갈등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 설계 수행사로서 관례와 효율성에 따라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수의 계약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군이 원하는 '적기 전력화'를 달성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저지른 군사 기밀 탈취는 전례가 없는 범죄여서 수의 계약이라는 특혜를 받을 자격을 상실케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연유로 한화오션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입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애초부터 경쟁 입찰을 염두에 둬 준비는 이미 다 해둬 사업자 재선정이 이뤄져도 충분히 빠르게 사업을 진행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두 회사 사이에서 방사청은 초기에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 계약에 무게를 두면서도 한화오션을 달래기 위해 공동 설계나 후속함 물량 분할 같은 '상생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은 양측 모두로부터 사실상의 하청 관계라며 거부당했다. 방사청의 어설픈 중재 시도는 결단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만 드러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종전까지 방사청은 1년 넘게 군사 기밀 유출 사건을 단일 사건으로 간주하며 1.8점의 보안 감점이 2022년 11월부터 3년인 2025년 11월까지 적용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랬던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돌연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새로운 법률 검토 결과 2022년과 2023년의 유죄 판결은 별개의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 1.8점 감점은 2025년 11월에 만료되지만 2023년 12월 판결을 근거로 한 새로운 1.2점의 감점이 2026년 12월까지 3년이 추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은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이 막바지 결정 단계에 이른 시점과 기존 감점 기간 만료를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에 내려졌다. HD현대중공업은 이 결정의 시점에 강한 의구심을 표하며 이는 자사가 경쟁 입찰에서 승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를 가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조치라고 맹비난했다. 또 당국의 결정에 대해 행정 소송을 포함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즉각 발표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사청은 어떤 근거와 이유를 갖고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통지하지도 않았다"며 “아직 당국이 법적 효력이 있는 공문을 보내거나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이고, 실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이 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전했다. 핵심 법적 논거는 국내 행정법의 기본 원칙인 '신뢰 보호의 원칙' 위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주장이 인용되려면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이 '감점은 2025년 11월에 종료된다'는 공적 견해를 표명했다는 점과 국가 방위 사업 총괄 기관인 방사청의 발표는 신뢰할 가치가 있었다는 점, 이 발표를 믿고 사업과 법적 전략을 수립했다는 점, 방사청의 입장 선회가 그 신뢰를 침해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법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방사청이 입장 번복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인 기밀 유출 처벌 강화가 HD현대중공업의 신뢰 이익 침해보다 더 큰지를 가려보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사청의 입장 번복은 정치적 문제를 행정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다 법적 위기를 자초한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군사 기밀 유출 전력이 있는 기업과 수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에 대한 여론과 정치적 부담이 문제였다. 방사청은 타협안 도출에 실패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감점 연장이라는 행정적 조치를 통해 HD현대중공업을 비판하는 여론을 무마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묘수'는 행정의 일관성이라는 법치주의의 대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스스로를 소송의 피고가 되는 길을 면치 못하게 만들었다. 방사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과 수의 계약까지 하려 했던 것과 두 개로 나뉘어진 군사 기밀 보호법 위반 사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느냐"며 “신뢰 보호 원칙이라는 건 처음 들어본다"고 답변했다. KDDX 분쟁은 국회 국방위원회로까지 확산됐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의 기반인 울산과 한화오션의 기반인 거제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각자의 지역 산업을 대변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방위는 청문회를 열고 방사청의 우유부단함과 기존 약속 불이행을 질타했지만 최근 열린 당정 협의회에서도 수의 계약과 경쟁 입찰, 상생안 모두 법적·현실적 문제점만 확인했을 뿐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는 정치권 역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HD현대중공업과 방사청 간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사업 지연은 수년 더 길어질 수 있다. 이는 역내 불안정이 고조되는 결정적인 시기에 해군이 노후 함정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거나 축소된 구축함 함대를 운용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곧 북한과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대양 작전 능력을 약화시키는 실질적인 국가 안보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사업 지연은 '기술 진부화'의 위험을 낳는다. KDDX를 위해 개발된 최첨단 기술들이 함정이 실전 배치될 때쯤에는 더 이상 최신 기술이 아니게 될 수 있다. 방사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해군의 전력 공백과 기술 진부화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KDDX 전력화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며 “현 시점에서 갈등 해결 방안이나 출구 전략이 있다면 HD현대중공업과 논의해봐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신뢰성 있고 신속하며 고품질의 첨단 무기 체계 공급 국가로서 'K-방산'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했다. KDDX 사태는 이러한 이미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공개적인 내부 다툼과 스파이 행위 비난, 정부의 정책 혼선은 잠재적인 해외 고객들에게 혼란과 불안정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정부는 대규모 해외 수주를 위해 국내 기업들이 협력하는 '원팀' 전략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국가 핵심 사업인 KDDX를 두고 벌이는 극심한 국내 분쟁은 이 전략을 위선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국내에서조차 '원팀'을 이루지 못하면서 해외에서 '원팀'을 구성하자는 주장은 △33조원 규모 캐나다 잠수함 사업 △미 해군 MRO·함정 건조 △호주 호위함 수주 실패 사례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KDDX 위기는 'K-방산' 수출 모델에 대한 실전 스트레스 테스트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모델은 치열한 국내 경쟁이 혁신과 가격 경쟁력을 이끈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승자 독식' 프로젝트에서는 그 경쟁이 상호 파괴적으로 변질돼 수출 시장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사업 추가 지연은 두 거대 조선사뿐만 아니라 부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수백 개의 중소 협력사들에도 타격을 준다. 이들 기업은 수년 간의 불확실성을 견딜 자본이 부족하다. 프로젝트의 마비는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자리를 위협하고 K-방산 생태계 전반의 특화된 기술력과 역량을 잠식시킬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소송을 진행하고, 법원이 최종 판결까지 수년이 걸릴 경우 KDDX 사업은 사실상 동결될 수 있어 이는 해군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법과 정치적 압박에 직면한 방사청이 감점 연장 결정을 철회하고 기존의 2025년 11월 만료 입장으로 회귀하는 입장 재번복이 이뤄지면 이는 수의 계약 대 경쟁 입찰이라는 원래의 교착 상태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국가 안보에 미치는 심각성을 인지한 대통령실이나 국회가 개입해 해결책을 강제할 수 있다. 이는 6척의 건조 물량을 3척씩 분할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상생안'일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편리하지만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는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최우선 과제는 신속하고 투명하며 법적으로 완결성 있는 사업 방식 결정이다. 현재의 불확실한 상태는 어떤 단일 결정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외부 법률 조달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방사청과 국방부에 구속력 있는 권고안을 제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결정을 탈정치화하고 방사청이 결단력 있게 행동할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해양방산 경쟁력 강화”…한화오션-포스코, 미래 함정용 특수강 R&D 맞손

한화오션과 포스코가 미래 해상 무기 체계 성능을 대폭 향상시킬 차세대 함정용 특수강 공동 개발에 나선다. 1일 한화오션은 국내 최대 철강사 포스코와 '차세대 함정용 초고강도강(기가급) 강재'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강재 개발·이용 기술·용접 기술·선체 적용 기술 개발 등 총 6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양사가 개발에 나서는 기가급 강재는 일반 강재보다 강도가 약 4배 높은 압연 강판이다. 이 특수강을 함정에 적용하면 무게는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방탄 성능은 크게 향상시켜 전투 함정의 기동성과 승조원의 생존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선체가 수면 위로 노출되는 수상함의 경우 상부 구조물 경량화와 중요 구역 방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양사는 향후 2~3년 내 연구·개발(R&D)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일홍 한화오션 특수선설계담당 상무는 “이번 협력으로 포스코와 함께 글로벌 첨단 함정 시장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을 제공하는 '특수선 종합 솔루션 프로바이더'가 되겠다"고 언급했다. 송연균 포스코 철강솔루션연구소장은 “양사의 긴밀한 협력으로 차세대 함정용 기가급 강재 개발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며 “K-해양방산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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