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중동 발 지정학적 단층선: 장기전의 늪과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의 파고

2026년 2월 28일 발발한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한 달을 넘어서며 전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지정학적 단층선' 위에 서 있다. 당초 단기 정밀 타격으로 끝날 것이라던 낙관론은 이미 사라졌고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인 봉쇄와 전쟁 장기화 전망,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상호 보복으로 글로벌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5일간의 공격 유예' 발표로 시장은 일시적으로 안도감과 함께 오랜만에 온기가 도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번 유예는 이는 종전에 대한 신호라기보다 전술적 재정비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미 비대칭 전력을 활용한 소모전을 택했으며 그 핵심은 중동의 에너지 공급망을 통해 장기적으로 모든 국가들을 인질로 잡는 전략이다. 현재로써 전쟁이 6개월 이상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양측의 요구 조건이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제시하는 '우라늄 농축 전면 포기'와 이란의 '중동 내 미군 전면적 철수'는 타협의 여지가 희박하다. 양측 모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있는 가운데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높게 치솟았으며, 장기전 전망으로 인한 불확실성 고착화는 기업의 투자 위축, 금융시장 불안, 공급망 리스크 프리미엄을 상시화하여 글로벌 잠재 성장률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또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2022년 이후 30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던 인플레이션은 2024~25년 간 안정세를 지속하던 중에 이번 전쟁을 빌미로 다시 가속화될 전망이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을 넘어 현재 우리가 수입하는 유가는 실질적으로 160 달러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당장 주유소 휘발유, 경유 가격이 급등한 것은 물론이다. 원유는 모든 제조업의 원자재이므로 생산자물가(PPI)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며 소비자물가(CPI)로 전이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의 기대는 이 전이과정의 시차를 급격히 단축시키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대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다.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공포는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향후 있을 물가상승을 선반영하게 유도한다. 일각에서는 비록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감소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일부 상쇄할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에너지 비용의 상승이라는 공급요인이 이를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미연준은 명확한 '매파적 인내'를 선택했다. 파월 의장은 지정학적 위기가 가져온 인플레이션 상방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인하 시점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는 달러 패권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으려는 정책적 의도이지만, 글로벌 자본유출과 신흥국 부채위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더욱 가혹한 외줄 타기를 해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구조상 고유가는 곧 무역수지 악화로 직결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내수부진과 가계부채 임계점이 발목을 잡고, 동결하자니 내외금리 격차에 따른 자본유출과 원화 가치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행은 '관리된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시장은 이미 우리의 통화정책이 연준의 행보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알고 있다. 이에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넘어선 것은 단순히 심리적 저항선의 붕괴를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경제여건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펀더멘털을 반영한다. 에너지 수입 결제를 위한 달러 수요는 폭증하는데, 수출 경쟁력은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둔화되고 있고, 한은의 발목은 묶여있다는 것이다. 만약 전쟁이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환율은 1,600원 선을 테스트하는 극단적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국내 금융 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재평가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 상황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결합된 복합 위기다. 전쟁의 장기화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으며, 인플레이션과 환율 변동성은 우리 경제가 맞이하는 뉴노멀이 되었다. 결국 이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다. 일련의 지정학적 위험들이 반복되는 현재, 지정학적 단층선이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가동해야 한다. 이는 1997년 당시 우리가 놓쳤던 펀더멘털의 재점검에서 시작해야 한다. 당시 “우리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외쳤던 정책당국의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귓가에 메아리 치는 듯하다. 2026년의 봄은 혹독하지만, 이 위기를 통해 우리 경제가 체질 개선을 이뤄낸다면 그것만이 장기화된 전쟁의 늪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kn@ekn.kr

[이슈&인사이트] 유가 상승, 우리가 놓친 또 다른 전선: 신용경색 우려와 비료값 상승

이란과 미국의 전쟁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의 근심거리는 유가 상승이다. 유가의 상승으로 당장 각 국은 원유의 원활한 확보가 최우선 과제지만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걱정해야 할 잔짜 문제는 다음과 같을 거다. 첫째,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그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신용경색, 둘째, 비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에그플레이션이다. 금리 인상에 대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호주는 금리를 올렸고 영란은행 마저 금리 인상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고 일본도 4월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ECB도 4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고있는 상황이다. 유럽과 일본이 성장 둔화에서 인플레 걱정으로 정책의 시각이 바뀌어 가고 있다. 금리 인상 우려로 시중의 채권 시장은 벌써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호주의 경우 10년 금리가 5%를 넘어섰고 미국도 10년 금리가 4.4%를 넘보고 있다. 미국은 가뜩이나 재정 부담이 큰데 금리가 더 올라간다면 향후 전쟁을 위한 추경 예산을 밀어 부치기가 수월치는 않을 거다. 금리 상승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최근에 회자되는 사모펀드다. 고금리 자체도 문제지만 금리 상승으로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들고 안전 자산은 이자를 많이 주는 곳을 향할 것이니 시장의 약한 고리인 사모펀드 투자자는 투자금 회수에 나설 거다. 금리의 상승이 비유동성 자산, 특히 최근에 문제가 나타나는 사모 금융 자산을 옥죄면서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 전쟁 중인데도 safe haven이라고 불리는 금과 은의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도 이처럼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워튼 스쿨의 엘 에리언 교수와 BofA의 전략가 마이클 하트넷이다. 엘 에리언은 사모신용 위험이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과 유사한 평행이론이라 하면서 미 금융주가 사모신용 우려로 1분기 11% 급락, 이는 2020년 이후 최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BofA의 마이클 하트넷 또한 유가 급등과 사모신용 부문 대출펀드의 환매 사태 우려가 마치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닮아간다고 경고하고 있다. 둘 다 사모 신용의 위기를 보면서 2008년 서브프람인 사태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두 번째, 석유 추출물인 유황이 비료가 되는 인산염의 재료이고 이 유황의 50%를 중동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 봉쇄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비료 연구소(The Fertilizer Institute)의 말을 인용하면, “중동 지역은 세 가지 주요 인산염 제품의 글로벌 거래량 중 약 5분의 1만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유황(sulfur)의 세계 공급량 중 거의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취약한 중동 국가들에서 비롯되고 이 유황은 인산염 비료 가공에 사용되는 황산으로 전환된다." 상품 가격 플랫폼 ICIS에서 황산 시장을 담당하는 앤디 헴필(Andy Hemphill)은, “생산자들이 기존의 유황 및 황산 비축분을 소진한 이후에 갈등이 더 오래 지속되면 공급망을 따라 “기하급수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 사회는 모든 상품에 석유가 안 들어가는 제품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유가의 상승이 금리인상과 공산품 물가의 상승(inflation)만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먹어야 하는 식품 가격의 상승 즉, 에그플레이션(Agfltion)까지 올 수 있기에 전쟁이 조속히 끝나야 한다. 우리가 단지 석유 가격과 공급에만 모든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로 인한 금리 인상, 신용경색, 그리고 식량 생산의 주요 요소인 비료값도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ekn@ekn.kr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BTS, 그리고 K방산

말은 마음의 거울이자,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창이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의 언어는 개인 차원을 넘어 그 조직과 국가의 격조를 결정짓는다. 최근 전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새로울 게 없긴 하여도, 그 일관성에 재삼 놀라고 또 '경탄'하게 된다. CNN의 에런 블레이크 기자가 지적했듯,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가 금도를 넘은 지 오래다. 그는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의 사망 소식에 “죽어서 기쁘다"고 환호하는가 하면,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고인이 된 정적들을 향해 저급하고 몰지각한 비난을 쏟아냈다. 블레이크 기자는 “수년간 이어온 저급한 발언들의 정점"이며 “이제는 단순히 막말하는 수준을 넘어 죽음을 노골적으로 축하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더 큰 비극은 트럼프의 천박한 언어가 실제 행동과 일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권력자의 언어가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사악한 언행일치의 심각한 사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5년 3월 4일, 남북전쟁 막바지에 행한 제2차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으로(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트럼프는 모두에게 악의를, 자신에게만 자애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듯하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방산 수출 현장은 다른 의미에서 언어의 품격이 시험대에 오르는 곳이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유 공급 협상 과정을 설명하며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원유 수급과 방산을 계속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성과를 과시하기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한 태도다. 중동의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 우리 무기의 경이적인 요격률과 방산 대박을 찬양하는 보도가 자칫 초상집 옆에서 잔치를 벌이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한겨레신문의 관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겨레가 사실 확인의 어려움과 인도주의 관점을 들어 보도를 절제한 것은 언론의 기능과 품격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확인되지 않은 승전보를 옮기기보다,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침묵하거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은 보도가 될 수 있다. 보도하지 않은 이유를 보도하는 제3의 길이 언론에게 적절한 타협안이 된다. 대중문화 예술인으로서 BTS가 21일 공연에서 보여준 태도 또한 긍정적이다. 그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그들의 아미뿐 아니라, 슈가와 지민 등이 직접 언급했듯 공연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감사의 언어는 공동체에 대한 존중이자 품격의 발로다. 만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 트럼프가 천박한 말과 사악한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품격 있는 언어에도 상응하는 행동이 따라붙는다면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감사의 말을 넘어, 광화문이라는 공공의 장을 활용한 BTS가 공공의 가치를 위해 뭔가 실제적인 행동까지 보인다면 무대의 상업적 품격이 무대 밖에서 인격적이고 실천적인 품격으로 완성된다. 품격 있는 언어는 단순히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알고, 자신의 성과 앞에서 겸손하며, 보이지 않는 곳의 헌신을 기억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사회의 지도층이 내뱉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그만큼 의무가 따르지 않지만 스타들의 말에도 품격이 서리면 좋다. 내뱉는 말의 격이 곧 삶의 격이 되고, 그 격조가 다시 행동으로 순환하는 사람을 뉴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bienns@ekn.co.kr

[이슈&인사이트] 지진조기경보의 경제사회적 가치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약 2만 2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고, 40만 채 이상의 가옥이 소실되거나 파손되었다. 전체 경제 피해액만도 약 2300조 원에 이른다. 이렇듯 단 한 번의 지진으로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지진으로 발생하는 강한 땅의 흔들림을 견딜 수 있도록 건물과 시설물을 튼튼하게 짓는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 왔다. 그러나 건물을 단순히 더 튼튼하게 짓는 것이 지진 재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진 규모가 1 증가하면 방출되는 에너지는 약 32배 커진다. 다시 말해, 지진 규모가 0.2 증가할 때마다 에너지는 약 두 배씩 증가한다. 즉, 규모 6.2의 지진은 규모 6.0의 지진보다 두 배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는 건축물을 두 배 더 강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기존 건축물이 견딜 수 있는 지진 규모보다 규모 0.2 정도 더 큰 지진에 대응하는 수준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까지를 고려해야 하는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지진 규모가 커질수록 발생 주기는 길어진다. 수천 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지진을, 사용 기간이 100년 내외인 건축물 설계에 반영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따라서 건축물의 중요도와 사용 연한을 고려하여 내진 성능을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발생 주기가 긴 대규모 지진이 공교롭게도 오늘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내진 설계만으로는 지진 재해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딜레마를 보완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진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지진조기경보이다. 지진조기경보는 지진 발생 초기, 지진계에 기록된 지진파형을 바탕으로 수 초 이내에 지진의 위치와 규모를 추정하고, 지역별 예상 피해 정보를 신속하게 전파하는 시스템이다. 지진계의 고른 분포와 충분한 밀도는 신속한 지진 탐지와 정확한 정보 산출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지진파가 도달하기 전, 수 초에서 수십 초의 귀중한 대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경보를 받은 시민들은 강한 흔들림이 도달하기 전에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후 진동이 약해지면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다. 이러한 대응 과정은 이어지는 큰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6년 경주지진 예에서 보듯이, 규모 5.1의 지진이 먼저 발생하고, 약 48분 뒤 더 큰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처럼 하나의 지진이 더 큰 지진의 전조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진조기경보를 통한 신속한 대응과 대피는 후속 지진 피해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지진조기경보는 경제·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한 지진동이 도달하기 전에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키거나, 철도·공장·전력 시설 등 주요 산업 시스템의 가동을 사전에 중단함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일본은 지진조기경보를 활용하여 고속열차를 감속하거나 정지시켜, 열차 탈선과 같은 대형 사고를 예방하고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줄인 바 있다. 이처럼 몇 초의 시간 차이는 대형 시설이나 인구 밀집 지역에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러한 피해 감소는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 감소뿐 아니라, 의료비 절감, 생산성 손실 감소 등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도 이어진다. 특히 현대 산업 구조의 특성상 이러한 영향은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 결국 지진조기경보시스템은 단순한 재난 알림 기술을 넘어, 지진 위험을 관리하고 경제적 손실을 줄이며 사회적 회복력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상청 주관으로 2017년부터 지진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관측 기술과 데이터 처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지진조기경보의 정확성과 활용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피할 수 없는 지진이라도 우리의 대응에 따라 피해의 크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슈&인사이트] “전쟁의 이유는 누구의 것 : 호르무즈 앞에서의 선택”

전쟁은 언제나 '명분'이라는 얼굴을 쓰고 다가온다. 그러나 그 얼굴이 얼마나 자주 거짓이었는지,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왔다. 지금 중동을 둘러싼 긴장 역시 다르지 않다. 네타냐후의 정권 연장 계산과, 엡스타인 파일 공개 등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공명심이 겹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금 전쟁의 무대로 호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그 바다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가야 하는가. 강대국은 자신들이 아쉬우면 언제나 동맹을 말한다. 그러나 그 동맹이 과연 대등했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정 국가의 전략적 이해를 위해 다른 나라의 청년들이 위험에 내몰리는 구조는 정상적인 국제 질서라고 보기 어렵다. “파병하라"는 요구는 외교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압박이며, 선택지를 좁히는 방식이다. 결국 판단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국익이라는 이름이 아무리 거창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바꿀 만큼 절박한 것인지 우리는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의 관문이다. 그래서 늘 긴장의 중심에 놓여왔다. 그러나 그 긴장은 바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 바다를 둘러싼 힘의 정치, 그리고 각국 권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만들어낸 결과다. 바다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 바다를 전쟁의 이유로 삼는 정치적 계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세계 질서 유지"라는 이름 아래 그 갈등에 개입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한다. 명분 없는 개입은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확대하는 선택이다. 촛불 이후, 우리 사회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권력이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시민의 힘으로 증명해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촛불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정당성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이었다. 이 원칙은 외교와 전쟁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전쟁, 명분이 불분명한 파병, 외부 압력에 의해 내려진 결정... 이 모든 것은 촛불이 거부했던 방식이다. 선례는 반복된다. 파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선례가 된다. “그때도 했으니 이번에도 가능하다"는 논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지금의 선택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다. 앞으로의 기준을 만드는 결정이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하고, 그래서 더 단호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구호가 아니다. 냉정하고 성숙한 시민의 판단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판단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은 정치가 결정하지만, 그 대가는 시민이 감당한다. 그렇다면 시민은 침묵할 수 없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이 전쟁은 정당한가. 이 파병은 불가피한가. 이 선택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아니라면,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숫자가 아니다. 그들의 삶은 전략적 계산의 일부가 아니다. 명분 없는 전쟁에 그들을 보내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죄가 없다. 그 바다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촛불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원칙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 말한다. 일어나라. 그리고 다시 묻자. 정말 이 전쟁에 우리가 있어야 하는가.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원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관련 당사국들에 조기 종전을 촉구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선택을 떠받치는 힘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다. 이재명 정부의 결정은 이같은 시민의식의 결의에서 가늠되어야 한다. ekn@ekn.kr

[이슈&인사이트] 가계부채 부실과 소비 부진 초래하는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

최근 국내 은행들은 가계대출 공급규제에 대응해 가산금리를 인상하며 대출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가계의 이자 부담을 폭증시켜 은행 건전성과 경제 활력을 동시에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당국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2025년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4.35%로, 11월 대비 0.03%포인트 상승하며 3개월 연속 인상되었다. 올해 들어서도 금리 인상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1월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4.50%로 4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가 2.5%로 계속 동결되고 있음에도,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지속 인상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가계 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와 관련이 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관리와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수도권 주담대 스트레스 가산금리가 1.2%에서 1.5%로 상향되며 대출 한도가 축소됐고, 6·27 부동산 대책으로 하반기 가계대출 목표치가 50% 줄었다. 이로 인해 가계대출 총량 감소가 불가피해지자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안으로 이자이익을 보전하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은 가계 이자 부담을 급증시켜 은행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된다. 스페인의 금융경제학자인 Belen Salas는 2023년 연구를 통해 대출금리 상승을 통한 금융비용 증가가 차주의 상환 부담을 높여 무수익여신비율(NPL)을 상승시킨다고 보고했다. 세계 111개국 1,600여개 은행을 대상으로 한 해당 연구는 차주의 채무상환 부담 확대가 금융시스템의 신용위험 증가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산금리 인상은 가계의 소비 위축도 가져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연구보고서(2023)에 따르면 가계대출 금리 1%포인트 상승시 소비 0.49%의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특히, 대출금리 상승 시 자영업자와 저연령층의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즉, 자영업자와 30대 이하 연령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 내수부진 심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확인된다. 영국의 금융감독당국인 FCA는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MCOB 11.6.18R : Mortgages and Home Finance: Conduct of Business Sourcebook, Chapter 11, Rule 6.18R)를 운영한다. 동 제도는 주택담보대출 시 은행으로 하여금 차주의 현재 소득으로 5년간 금리 3%포인트 상승 가정 시 상환 가능성을 검증하도록 한다. 이는 고금리 도래 시 연체 위험을 사전 차단하고, 은행의 임의적 가산금리 인상 여지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영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는 한국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처럼 대출 한도를 직접 제한하지 않고 차주의 상환 능력 중심으로 평가해 가산금리 경쟁을 억제한다. 국내에서 시행 중인 DSR은 현재+미래 스트레스 금리를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직접 제한해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려 수요를 자율 조절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영국은 고정 스트레스 기준(기준금리+3%포인트)으로 모든 은행이 동일 조건에서 상환 능력을 검증한다. 이로써 영국의 경우 국내 은행처럼 은행별 가산금리 차별화가 어려워 가산금리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다. 국내 은행들은 DSR 규제에 맞서 대출 한도를 줄이는 명분으로 가산금리를 올린다는 점이 문제인데, 영국은 차주의 월 소득으로 특정 수준의 고금리도 버틸 수 있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영국의 경우 대출 한도를 직접 제한하지 않아 영국의 은행은 차주가 고금리에도 상환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가산금리 경쟁으로 규제를 우회할 이유가 없다. 결국, 한국은 대출 총량 제한으로 은행이 가격(가산금리)을 올려 수요를 조절하지만, 영국은 차주의 체력 테스트를 토대로 가산금리 인상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영국 FCA 정책의 핵심 효과는 예측 가능한 스트레스 금리 기준으로 은행의 임의적 가산금리 인상 여지를 없애는 데 있다. 국내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은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며 은행의 건전성 악화와 소비 위축을 유발하고 있다. 영국 FCA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은행의 임의적 가산금리 경쟁을 원천 차단하는 등 한국의 총량규제 방식과 달리 차주의 상환능력을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금융당국은 획일적 총량규제를 완화하고, 영국식 차주별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 도입을 검토함으로써,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 ekn@ekn.co.kr

[이슈&인사이트] 다문화가정 장애아동 교육, 통합적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

우리는 급속도로 진전되는 세계화로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혼과 취업, 그리고 교육 등의 다양한 이유로 외국인의 국내 이주가 활발해지면서 점점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22년 외국인 유학생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유학생 수는 166,892명으로 전년 대비 14.6% 증가하였고, 「2024 외국인 근로자 현황」에 따르면 일반 고용허가제(E-9)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24년 기준 225,307명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하였다. 그리고 「2022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다문화 혼인(17,428건)은 전년 대비 25.1%(3,502건) 증가하였다. 이에따라 다문화 가구는 39.9만 가구, 다문화 가구원 수는 115만 명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와 언어, 그리고 생활 방식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문화 가구에서 주목할 것은 점점 늘어나는 장애 아동의 수다. 다문화 가구의 등록 장애인이 있는 비율은 2021년 기준 7.3%(약 25,269명)로 2018년보다 5.8% 증가하였다. 다문화가정에서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들은 언어적·문화적 장벽,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것은 양육 부담과 스트레스가 과중하다. 즉, 이들은 아동 양육에 대해 의사소통 장애와 양육 문화에 대한 부적응 등 많은 문화적 장벽을 느끼고 있다. 특히 의사소통 장애로 인해 소극적인 양육 활동이 아동의 학습에 도움을 주지못하게 되어 아동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의 능숙하지 못한 학습 지원으로 자녀의 지적 성장과 언어 발달에 장애를 주는 것, 그리고 이에 따라 학습이 뒤처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또한 그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또래와의 다툼, 외모로 인한 놀림과 같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더 위축되는 것을 본다. 다문화가정의 장애 학생은 장애 특성으로 인해 학교생활 외의 환경을 접하는 데 제한이 있고, 학교생활에서도 다문화가정의 일반 가정의 장애 학생보다 더 많은 문제를 경험한다. 「2020 교육 통계 분석 자료」에 의하면 장애가 있는 아동이 있는 가정은 교육, 의료 등에 있어 이중적 어려움과 더 심각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나 장애 아동 또는 장애 위험 아동을 양육하는 다문화 가정의 경우 다문화 가족 지원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을 위한 지원책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의 장애로 인한 교육적 지원 요구뿐 아니라 언어적 장벽, 문화적 차이, 교육 정보 부족 등 다양한 어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학교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언어적 한계와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은 자녀의 교육 참여와 지원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다문화 가정 장애아동의 통합교육 지원이 단순한 특수교육 지원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통합적 지원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의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즉 학교 차원에서는 다문화 감수성을 고려한 특수교육 지원과 부모 상담 체계를 강화할 필요하고, 지역사회와 사회복지 기관은 부모 교육 프로그램, 언어 지원 서비스, 가족 상담 등을 제공하여 부모가 자녀의 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의 교육 지원은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 포용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복지 정책의 중요한 과제임이 확인되었다.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지원 부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향후 정책적으로는 다문화 가족 지원 정책과 장애인 복지 정책을 연계한 통합적 서비스 체계를 마련하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다학문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언어 지원을 포함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 학교와 연계한 학습 지원 서비스, 심리·정서 상담, 지역사회 돌봄 체계 등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실질적인 도움이 가능하다. 이러한 노력이 이루어질 때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은 교육과 사회 참여의 기회를 더욱 공평하게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율의 정치 내시경] 주민소환제 완화, 신중해야 하는 이유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은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란 선출직 지방 공직자를 임기 중에도 끌어 내릴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선출직 지방 공직자를 소환하려면,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는 주민소환투표 청구권자 총수의 10% 이상,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이상, 시·도의회 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받아 소환투표를 실시한 뒤, 유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국회의원들은 주민소환제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그 이유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국회의원들 '자신들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민소환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선출직 지방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인 반면, 국민소환제는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는 국민소환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의원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소환제를 실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발의로 소환할 수 있겠지만, 비례대표 의원들의 경우에는 서명 발의의 주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에 대한 소환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의원들이 노출하는 문제가, 지방의 선출직 공직자들보다 덜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주민소환제 적용 요건의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와 관련돼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 가지 기둥은 책임성, 책임 귀속성, 그리고 대응성이다. 이 가운데 대응성이란 특정 지역의 사정을 체감하고 반응하는 정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소환제와의 직접적 연관성은 크지 않다. 핵심은 책임성과 책임 귀속성이다. 책임성이란 선출직 공직자가 자신의 임기 동안 책임을 지고 정치적 행위, 즉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즉 자신이 책임을 지되, 옳다고 판단하는 정책을 소신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책임성의 핵심이다. 책임 귀속성이란, 임기 동안 공직자가 책임을 지고 정책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주민소환제를 실시하게 되면 이 두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즉 당위론적으로는 타당한 정책을 추진한 선출직 공직자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면 주민소환을 당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시장이 자신의 지역에 화장장을 유치하려다 주민소환을 당할 뻔한 사례가 있었다. 화장장 건설은 공익적 차원에서 분명히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주민소환 위기에까지 몰렸던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책임성이 훼손될 경우 공직자가 주민들이 당장 원하는 것만 하는, 이른바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님비(NIMBY)에 충실한 공직자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점이 있기에 주민소환제든 국민소환제든, 임기 내에 선출직 공직자를 끌어내리는 문제는 신중히 다뤄야 한다. 물론 선출직 공직자 중에는 파렴치범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기존 법률에 따라 직무를 정지시키면 된다. 오히려 현행법을 개정해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되면 보수 지급을 정지시키는 방향으로 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정서상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기를 바라지만, 기다릴 줄 아는 태도가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kn@ekn.kr

[이슈&인사이트] 봄학기가 시작되면서 AI 시대를 생각한다

3월 9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 사이 역사적 대국이 펼쳐진 지 10년이다. 수백 년 동안 가로와 세로 19줄이 그어진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전략 게임에서 쌓여온 인간의 지성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에 의하여 충격적인 도전을 받았다. 알파고는 과거 인간이 경험하지 못했던 기발한 수를 보여주면서 세계 최고의 이세돌 9단을 극한까지 괴롭혔다. 평소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라는 명언을 남긴 이세돌은 세기의 다섯 판 대국에서 세 번을 내리 진 뒤 딱 한 판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AI를 마지막으로 이긴 사람인 이세돌은 “몇백 년 동안 쌓아온 바둑의 발전보다 10년 동안의 발전이 훨씬 극적"이라고 한다. 이세돌은 세기의 대국 3년 만에 바둑돌을 내려놓고 울산과학기술원 특임교수로 변신했다. 그는 AI가 바둑을 만난 뒤 “지금껏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석이 다 사라지고 거의 남은 게 없다"라고 진단한다. 이세돌은 미래 사회도 예측한다. “AI로 기사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AI를 잘 활용하는 상위 랭커와 그렇지 못한 이들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란다. 이러한 양극화는 “AI 때문에 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AI로 정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개돼도 이 격차는 줄지 않는다"라고 경고한다. 언제나 신선한 새 학기이지만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전혀 편하지 않다. “지금 다섯 살짜리 아이는 15년 뒤엔 생계를 위해 직업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라는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성공적인 벤처 투자자이자 억만장자 비노드 코슬라의 진단이 틀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도 인간은 애초에 일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고 AI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산하기 때문에 인간이 일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3학년 정치외교학과 학생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강의실에 앉아 있지만 나는 이 학생들이 졸업해서 마주하게 될 미래가 걱정이다. 최근 포천지와 인터뷰에서 코슬라는 “2034년부터 4년 뒤까지 모든 일자리의 80%가 AI에 대체될 수 있다"라고 예측했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그 시간에 대신 AI로봇이 청소나 빨래 또는 음식 준비를 하는 시대를 그려왔다. 하지만 AI로봇이 고도의 전문적인 일뿐 아니라 단순 반복의 육체노동까지 대체하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코슬라는 “AI와 로봇 역할 확대로 15년 뒤에는 생존과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직업을 고를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기실 인간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중이다. 빌 게이츠도 AI가 10년내에 인간을 대체해서 인간이 대부분의 직종에서 불필요하다고 한다. 2025년 미국 아마존에서는 인사팀과 총무팀 빼고 다 해고해서 60만 명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세상은 빨리 변해서 미래에 앞서고자 AI를 만드는 개발자가 되려고 컴퓨터공학 계열 학과에 진학했는데 그사이에 AI가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개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컴퓨터공학보다 인문학 전공자의 실업률이 더 낮다고 한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바뀐다. 정보격차(digital divide)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 만에 이제 AI 양극화를 걱정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주산에 암산도 배우고 코딩이 필수였는데 이제 AI 프롬프터 앞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 노트북과 태블릿 등에 의존한 교육부터 받은 Z세대(1997-2010년대 초반 출생)는 부모 세대보다 주의력이나 기억력, 독해 능력이나 문제 해결력 등이 떨어진다고 한다. 인지 능력도 낮아지고 AI로봇 때문에 일자리도 빼앗긴다. 미래세대의 앞날이다. 먼 미래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ekn@ekn.co.kr

[기고]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와 수산물

도쿄전력이 보관해 왔던 후쿠시마 ALPS 처리수 방류를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수산물 방사능을 걱정하기에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살상목적인 핵무기가 아닌 평화 목적인 원자력 발전소인데도, 또 병원에서 방사능 검사와 치료를 받고 있지만,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들 머리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 몇 달 동안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들어갔던 방사능과 비교하면 지금 방류중인 처리수는 그 방사능 양이 매우 적기에 그 유해 여부를 따지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왜 걱정할 필요가 없는지는 바다 '희석'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생물에게 아무런 영향을 안 미칠 정도로 방사능 오염물질 농도가 낮아지는 과정은 크게 방사선 붕괴와 희석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반감기를 결정하는 방사선 붕괴는 육상에서도 일어나지만, 바닷물속 희석 과정은 육상과 다르다. 물컵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잉크 분자 퍼져나가면서 시간이 지나면 물 전체에 골고루 섞이게 되는 과정을 확산이라고 한다. 퍼져 나간 잉크가 다시 원래대로 모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이를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한다. 후쿠시마에서 유출되었던 방사능물질은 기하급수적으로 처음에는 빨리, 시간이 갈수록 천천히 농도가 줄어드는데 대략 10 km 정도 나가면 1만분의 1로, 100 km 정도만 나가면 1천만분의 1로 희석이 되며,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 우리 바다로 올 무렵이면 1조분의 1로 희석이 된다. 따라서 방류중인 ALPS 처리수 130만t이 지구 바다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조분의 1인데, 올림픽 수영경기장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보다 적은 양이다. 1945년 인류가 원자력을 쓰기 시작한 이후 지난 80년 동안 전 세계에서 2천 번 이상 핵실험을 하고 크고 작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났지만, 바다에서 난 수산물을 먹고 사람이 피해를 보았거나 어떤 해양생물이 죽었다는 보고는 단 1건도 없다. 방사능 기준치를 초과하는 물고기가 간혹 채집되기도 했지만, 그 기준치라는 것은 사람이 1년 매일 먹었을 때 엑스레이 1번 찍을 때 받는 피폭량 정도이지 바다생물이 어떤 피해를 입는 것과는 무관하다. 바다는 물이라는 액체로 이루어져 있어 같은 액체인 처리수가 육상보다 희석이 훨씬 더 잘 된다. 육상에서는 나무나 풀과 같은 일차생산자가 토양에 고정되어 있지만 바다 식물플랑크톤은 해류를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주변보다 특별히 농도가 높은 오염물질에 노출될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또 바다에는 동물 이동을 가로막는 산이나 하천이 없어 물고기들은 육상동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를 헤엄치며 돌아다닌다. 따라서 바다에서는 물과 생물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후쿠시마 원전이라는 오염원에 노출될 확률이 육상에 비교하면 거리에 따라 너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일본산 수산물도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것이다. 한 때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를 그렇게 반대했던 지금 정부도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야만 하는 엄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유럽이나 미국이 이미 했던 것처럼 우리정부도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를 해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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