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은행권 역대급 이자이익의 불편한 이면

최근 몇 년간 국내 은행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이자이익을 창출했다. 2024년 기준, 국내 은행권 이자이익은 60조원에 육박한다. 은행권 이자이익은 전체 은행 이익의 90%를 넘는 수준이다. 은행이 이자이익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자이익은 은행의 상품경쟁력에 따라 수익이 창출되는 비이자수익과 본질적 측면에서 다르다. 예대금리차에 의해 결정되는 이자이익은 은행의 노력보다는 금융환경 및 정책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지난 2022년에 이미 59.2조원의 이자이익을 기록했다. 2022년초 1.00%이던 기준금리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연말 3.25%까지 빠르게 인상되며,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도 본격화되었다. 2021년 1.43%였던 순이자마진(NIM)이 2022년에는 1.73%까지 상승하며, 이자이익이 전년대비 무려 21.6%나 급증했다. 2023년 들어서는 기준금리가 3.5% 수준을 유지하며, 은행의 대출이익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크게 둔화되었지만, 전년보다 소폭 높아진 대출금리를 이용하여, 은행들은 2023년에도 역시 59.2조원의 이자이익을 창출했다. 더욱이, 2023년에는 연초에 기준금리가 한차례 소폭(0.25%p) 인상된 후 무려 1년 8개월동안 기준금리가 3.5%로 동결되었다. 2023년 미국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여 2023년초 4.25~4.50%이던 연방기금금리가 2023년말에는 5.25~5.50%까지 인상되었다. 하지만, 금통위는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도 포워드가이던스를 통해 기준금리의 동결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시사했다. 이는 결정적으로 대출수요가 급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분간 금리가 높아지고 전에 은행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가수요까지 겹치면서, 2023년 상반기부터 주택담보대출은 2024년 상반기에 걸쳐 급증했다. 동 기간중 증가율은 6.0%이며, 금액은 61.5조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동기(2022년 상반기~2023년 상반기)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율(1.4%) 대비 무려 4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급증한 주택담보대출 억제를 위한 금융당국의 강한 대출 규제가 2024년 상반기 중 시행되었다. 우선, 금융당국은 기존에 대출한도를 연 단위로 관리했으나, 월·분기별로 대출공급을 관리하며, 일부 은행의 대출한도가 조기 소진되는 '대출 절벽'현상도 나타났다. 이로인해 사실상 은행권의 가계대출 공급은 축소되었지만, 높아진 대출수요를 이용하여, 은행들은 수익 보존을 위해 대출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24년 8월부터 4개월 연속 은행권 평균 가계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가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강한 대출 공급 규제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었음에도 은행권은 대출금리 인상을 토대로 오히려 전년대비 증가한 59.3조원의 이자이익을 거두었다. 2025년 들어서도 은행권의 이자이익 창출 기조는 멈추지 않는다. 올해 1분기 이자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3~4% 증가했다. 금통위의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2025년 1분기의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년동기 대비 상승하면서 고점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1분기 한국은행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수요지수(19)는 전년동기(10)에 비해 크게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3.5%수준이던 2024년 1분기의 기준금리가 최근 2.75%까지 낮아졌음에도 최근 은행권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오히려 전년동기대비 높은 편이다. 2025년 1분기의 은행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수준이 4.32%로 전년동기의 4.27%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올해에도 은행권은 최소한 지난해 59.3조원의 이자이익 이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에는 높아진 금리수준에 힘입어 대출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역대급 이자이익을 창출했다. 2023년부터는 기준금리 동결을 기회로 주택 구입을 염두에 둔 대출수요가 급증하며, 은행권은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두었다. 2024년에는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대출수요와 대출금리 인상을 통해 전년도 이자이익 이상의 역대급 실적을 창출했다. 올해에는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부동산 가격 상승, 대출 가수요 발생, 여전히 높은 대출금리를 기반으로 이자이익 창출을 위한 호재가 펼쳐지고 있다. 아마도 올해도 지난 2022년~2024년 이상의 이자이익을 훨씬 넘어서는 역대급 이자이익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은행의 역대급 이자이익 창출은 반대로 많은 금융소비자의 이자비용 지출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금융당국의 효과적이지 못한 대출 규제정책, 시장 예측력과 정책 전환의 한계점을 드러낸 통화정책의 문제점도 은행 이자이익 창출에 한몫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소비자 후생 제고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미 연준과 비교해서 시장 상황 대비 후행적 결정이 많고, 정책 전환 시점이 늦은 통화정책의 문제점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서지용

[이슈&인사이트] 관세로 흔들리는 미 달러의 위상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심지어는 달러 시대의 종말까지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 후 3개월간 달러 인덱스는 -8.2% 하락했고 지난 주에만 -2.8% 떨어졌다. 지난 30년 동안 7번째로 큰 주간 하락률이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12개월 내에 유로화 대비 달러 가치가 대략 6% 전후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파이넌셜 타임즈(FT)는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트럼프 쇼크'에 대해 2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첫째는, 트럼프 쇼크로 인한 달러 약세가 얼마나 더 진행될 것인가? 둘째는, 미국 시장에서 외국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의 지배력이 얼마나 약화될 것인가다. 4월초 아시아에서 미국 국채 매도가 나오면서 금리가 뛰고 머니 마켓이 흔들리자 놀란 트럼프가 부랴부랴 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하고 나라별 1대 1 개별 협상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금융 시장의 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있다. 관세 정책의 아킬레스건은 무역도 주식시장도 아닌 머니마켓과 외환시장이라는 게 드러났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르스텐 슬록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19조 달러의 미국 주식과 12조 달러의 미국 국채와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이 “고래들"의 31조 달러에 달하는 자산 투매가 나온다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거다. 한 나라가 통화의 패권국이 된다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관세를 통해 무역수지 적자를 축소하고 미국 국채의 이자 비용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근본적 개념의 무지함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기축통화를 인정하는 것은 세계 각국이 기축통화국에 물건을 팔고 다시 그 나라의 통화에 투자하면서 그 지위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기축 통화국의 적자는 발생하게 된다. 이게 트리핀 딜레마다. 만약 관세로 무역 장벽이 높아진다면 달러의 위상 또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달러를 발행해서 외국의 재화를 사다 쓰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종이 지폐를 발행해 손쉽게 물건을 사올 수 있기에 역사적으로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등 모든 패권 국가들의 제조업은 후퇴했었다. 하지만 관세론을 주장한 백악관 고문인 스티브 미란은 그의 연설에서 보듯이 “달러에 대한 높은 수요가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시켜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외환시장을 왜곡시켜 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과 근로자들은 지나친 부담을 져야만 했고 미국 제품과 노동력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어 관세 정책의 후퇴는 쉽지 않을 거다. 기축통화는 역사적으로 100년마다 바뀌었다. 그럼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얼마나 지속될까? 보통 국채에 대한 이자가 국방비를 넘어서는 순간이라고 얘기한다. 2024년 연방 정부의 순이자 비용이 8,817억 달러였는데요, 그해 국방 지출이 8,741억 달러였다. 그 분기점을 넘어섰다. 그럼 달러는 결국 기축통화 역할을 마감하는 걸까? 그럴 확률은 아직 낮다. 영국의 파운드가 수명을 다해갈 때 달러가 부상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달러 대안 통화가 부각되는 모습이 안 보인다. 시중에 거론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도 가상화폐도 아직은 달러를 대체할 수 없을 거다. 달러 종말론은 지난 수십년 동안 거래되는 단골 이슈였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달러는 대안을 만들어 살아 남았다. 달러의 몰락을 걱정하기 보다는 AI 산업에서 뒤쳐져 약해지는 원화의 위상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최용

[박영범의 세무칼럼]사이버 레커, 엑셀 방송, 사이버 도박 업체의 탈세 방법

후원을 받기 위해 BJ들은 점점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엑셀 방송, 타인의 불행이 생기면 부리나케 달려와 사실무근의 극단적인 언어폭력을 늘어놓는다는 사이버 레커,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 결과 검거자 중 청소년이 절반에 가까웠다는 사이버 도박장은 유해 콘텐츠의 평가이다. 온라인을 퇴폐적 유흥문화로 물들이는 엑셀 방송은 출연 BJ들이 시청자 후원에 따라 선정적 행위 댄스와 포즈 등을 하고, 출연 BJ별 후원금 순위를 엑셀(Excel) 문서처럼 정리하여 보여주어 후원 경쟁을 유도하는 방송을 말하고, 가짜뉴스로 온라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이버 레커는 '사설 레커차'에 빗댄 신조어로, 타인의 사고 등을 자극적으로 왜곡하여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를 말한다. 이처럼 사회규범을 어지럽히고 건전한 법질서를 위배하는 유해 콘텐츠들은 온라인 생태계를 빠르게 잠식하고 자극적 콘텐츠로 단기간에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을 악용해 수익 내역을 숨기고 비용을 변칙적으로 부풀려 세금을 탈세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달 6일 유해 콘텐츠를 양산하여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고 납세의무는 회피한 탈세 혐의자 엑셀 방송 운영 BJ 등 9개, 딥페이크 악용 도박사이트 운영업자 5개, 사이버 레커 유튜버 3개 등 총 17개 업체에 대하여 세무조사 착수하여 조사 진행 중이다. 성 상품화로 1인 방송 시장을 오염시키는 엑셀 방송 운영 BJ들은 유흥업소를 연상케 하는 방송 내용으로 이른바 '사이버 룸살롱'이라 불리며 연 백억 원이 넘는 이익을 얻고 있으며, BJ에게 지급한 출연료를 사실과 달리 과다 신고하거나, 가족에게 가공 인건비를 지급하고, 고가 사치품 구매비용을 사업용 경비로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탈세하고 있다. 해외 성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 방송을 송출한 일부 성인 BJ들도 플랫폼으로부터 정산된 수익금을 가족 명의로 된 차명 계좌와 해외 위장 계좌로 받아서 숨겼다. 인공지능 기술(딥러닝)에 의해 실제처럼 보이도록 조작된 오디오, 사진, 비디오 등 딥페이크로 미성년자까지 유혹하는 사이버 도박사이트 운영자는 오프라인 도박판을 온라인 공간에 그대로 옮겨다 놓고, 유명인의 이미지를 도용한 딥페이크를 통해 성인은 물론 청소년까지 가리지 않고 사이버 도박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동남아 각지에 사무실을 운영하며 10만 명 이상으로부터 도박 자금을 받았으며, 이를 합법적 거래로 위장하기 위해 입․출금을 위한 '전용 앱'을 개발하고, 사회질서에 반하는 지출은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 온라인 도박장 운영 관련 비용을 마치 기업체의 정상 사업 비용인 것처럼 꾸며 세금을 탈세하였다. 도박 자금은 여러 개의 차명계좌로 쪼개어 받고, 배우자 명의로 다수의 부동산을 취득하여 소득과 재산을 은닉하였으며, 대형 상가와 고급 승용차, 고가 시계 구입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허위·비방 콘텐츠로 피해자를 갈취하는 사이버 레커 유튜버는 유튜브 플랫폼에서 신원을 은폐한 채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타인을 비방하고 약점을 빌미로 뒷돈을 뜯어내는 등 도를 넘는 비윤리적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의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에는 아랑곳없이, 오직 금전적 이득을 위해 미확인 사실이나 개인의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노출하면서도 그간 법적․도덕적 책임은 회피하고, 개인 계좌로 받은 후원금 및 광고 수익 등을 미신고한 후 이를 부동산 매입 등 재산 증식에 사용하고, 실체가 없는 외주 용역비와 임차료를 실제 지급한 것처럼 가장하거나, 다수의 고가 외제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업무용 차량으로 신고하는 등 거짓 비용 처리를 통해 세금을 탈세하였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서 포렌식과 금융 추적, 국가 간 정보교환, 외환 수취 자료, FIU 정보 및 수사기관의 수사자료 등 외부 정보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숨겨 놓은 수익 구조와 자금 흐름을 철저히 파헤쳐 과세한다고 한다. 세무조사 끝나기 전에 확정 전 보전 압류하여 세금을 제대로 받고, 세무조사 후에는 조세 범칙 행위가 있는 경우는 검찰에 통보하여 처벌도 받도록 할 예정이다. '일상에 만연한 범죄의 유혹', '증오와 혐오의 조장', '성 가치관의 왜곡' 등, 현대 사회의 수많은 병리적 현상은 온라인상의 유해 콘텐츠가 낳은 부작용을 국세청이 최선을 다해 막으려 한다. 박영범

[기고] 디지털 에너지 시대와 Quality 4.0... 품질은 전략이다

에너지 산업이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 시대로 전환하면서, 품질의 개념 또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 이제 품질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데이터 활용, 고객 경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조직의 디지털 역량 전반을 포괄하는 전략적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Quality 4.0'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품질관리 체계에 융합함으로써, 예측형 대응, 자율적 개선, 실시간 품질관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사후적 품질관리에서 벗어나, 오류를 사전에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능형 품질 혁신을 의미한다. 특히 에너지ICT 산업에서는 이와 같은 디지털 품질 역량이 곧 기업의 플랫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재생에너지 관리, 전력 계통 제어 등 모든 분야에서 정밀한 데이터 품질과 예측 기술이 요구되며, 이를 통해 사용자 경험(UX)과 ESG 관점의 품질 책임까지 실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주요국은 이미 품질의 디지털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은 '첨단 제조 파트너십(MEP)', 독일은 '하이테크 전략 2025', 일본은 'Connected Industries', 중국은 '품질강국 전략'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측정' 또는 '관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중소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품질 디지털화 수준은 낮은 실정이다. 이러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품질 역량 강화를 위한 인재 육성과 함께, 데이터 기반의 자율적 품질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품질은 더 이상 특정 부서의 몫이 아니라, 전사적 참여와 협업을 통해 완성되는 조직 문화의 결과물이다. 리더십 또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기술과 사람을 잇는 전략적 사고를 가진 융합형 리더십이 요구되며, 이는 에너지 산업이 지속 가능한 전환을 이뤄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디지털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기 속에서 품질은 단순한 관리 항목이 아닌, 생존과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지금이야말로, 품질경영의 패러다임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고,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선도하기 위한 담대한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남현

[이슈&인사이트] 관세, 손자병법의 가르침

트럼프는 그의 저서 『Think Like a Champion』에서 『손자병법』을 읽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국의 상호관세와 중국의 강경대응 이어지는 중국 고립전략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과 매우 닮아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라는 무기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휘둘렀다. 펭귄만 사는 섬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은 모든 나라와 싸우려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중국 하나만을 명확히 겨냥한 전략이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상황 하에서 적어도 중국만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알고, 예상했던 대로 중국이 전세계 연합의 선봉장 처럼 강하게 반발해오자 덫을 놓고 기다린 것이다. 트럼프의 전략에 걸려든 중국은 트럼프의 작전대로 보복관세를 연이어 부과했고, 그 결과 미국이 부과한 중국산 수입품 관세는 100%를 훌쩍 뛰어넘는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 트럼프는 중국의 보복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세를 유예하였고, 전 세계 무역 상대국들 사이에서 중국만이 높은 관세의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이는 전형적인 『손자병법』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공격하겠다는 기세를 드러내며 실제로는 중국 한 곳만을 정밀타격한 것이다. 혼비백산했던 국가들은 트럼프의 공격대상이 실제로는 중국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내심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동시에 미국-중국의 치열한 싸움에는 뛰어들기보다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전과 실리를 챙기는 구도로 흘러가게 되었다. 트럼프의 이러한 전략적 결정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의 무역전쟁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미국과 중국이라는 경제 강국 두 나라가 치열하게 충돌했고, 글로벌 공급망은 재편성되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그 여파를 실감했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한 번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모두가 한 발 물러나버린 평원에 미국과 중국만 남아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미국에 굴욕적인 협상에 나서지 않는 이상 중국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는 암울한 소식이다. 트럼프 1기 미중무역분쟁 영향으로 2017년~2018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3.2%에서 2.9%로 하락하였고 2019년에는 반도체, 전자기기, 철강,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약 16% 감소하며 성장률은 2.2%로 떨어졌다. 당시에는 무역분쟁을 제외하면 성장세를 견고한 수준이었으나, 성장세가 잠재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는 정말 바닥을 뚫고 내려가야하는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의 '2차 미중무역분쟁' 반드시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미국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중국에 사전 주문한 물량을 대거 취소할 경우 중국 제조업체들은 생산비라도 회수하기 위해 남은 재고를 전 세계 시장에 저가로 내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저가 중국 제품의 물결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에게는 일시적이나마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고 한은이 금리인하를 단행할 여력이 생긴다. 최근 경기둔화의 조짐이 점차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한은도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은의 금리인하가 실제로 몇 개월 내에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금리인하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은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과의 내외금리차는 여전히 금융시장의 우려로 남을 수 있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트럼프 정부로부터 금리인하 요구를 받고 있으며 미국 재무부는 약(弱)달러를 원하는 상황이므로 금리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격렬한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우리와 같은 국가들은 중요한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분쟁이 심화될수록 연쇄적 충격이 가해질 수는 있지만, 반대로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면 장기적 산업경쟁력 강화 및 시장 다변화를 통해 긍정적인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1기의 무역분쟁 당시에도 나타났지만, 미중무역분쟁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발생시킨다. 중국과의 경쟁관계에 있거나, 중국의 공세에 힘을 받지 못하던 산업분야에서는 이러한 분쟁상황 속에서 기회를 찾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가 손자병법을 활용하였듯이, 우리도 이를 전환점으로 기회삼아 전략과 전술을 활용하여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제질서의 재편에 중장기적 안목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시간으로 24일 저녁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는 우리 대표단에 기대를 걸어본다. 김수현

[이슈&인사이트]트럼프 관세의 득실과 협상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관세 폭탄을 퍼부으면서 세계 각국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WTO와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상호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만연해지고 있다. 심지어 자유무역주의가 쇠퇴하고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여 1930년 대공황 직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큰 흐름에 주목할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비하느라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품목별 관세, 보편관세, 상호관세 등 다양한 종류의 관세 부과를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과연 어느 나라(지역)가 미국의 우방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캐나다, 멕시코에서 시작하여 EU, 한국, 일본 등에 대해서도 가혹한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들 국가의 주력 수출품인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였으며, 향후 반도체, 바이오 등 그 동안 관세에서 제외한 품목에 대해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 4월 2일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상호관세는 전 세계 주식시장을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별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리라 기대했던 우리나라도 예상보다 높은 25% 관세 부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일찍부터 미국과 정상회담, 기업인의 투자 약속 등을 통해 낮은 관세를 기대했던 일본도 24%라는 관세에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개도국도 30~40%대의 상호관세에 경악하였다. 베트남은 서둘러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0%로 낮추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상호관세는 지난 4월 9일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보편관세 10%만 부과하겠다고 하면서 각국은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34% 상호관세에 대해 중국이 같은 수준의 대응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은 50%를 추가하고 중국도 50%를 추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럼트 정부는 21% 관세를 추가하여 기존 관세율과 펜타닐 관련 관세 20%를 포함하여 최종 145%(후에 245%로 수정)의 관세를 부과하였다. 결국 트럼프는 관세 전쟁 중에 우군을 확보하면서 중국과의 관세 전쟁에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품목별 관세는 미국에 수출하는 경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로컬 기업에 비해 우리나라에 불리하다. 보편관세를 포함한 상호관세는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미국 로컬 기업에 비해 우리나라에 불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에 245%의 가공할만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품목에서 미국 내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제3국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다. 3개월 유예기간에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최대한 낮추어야 할 것이다. 관세율을 낮추면서 지나치게 내어주지 않도록 관세율 인하와 양보안 사이에서 득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너무 서두르다 졸속 합의에 이르지 않도록 다른 국가들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며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해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구기보

[기고] 74년 안보 희생 대가 0원…정부, 동두천 외면

박형덕 동두천시장 동두천시에는 '육지의 섬'이라 불리는 걸산마을이 있다. 분명 대한민국 땅 위에 존재하지만 미군 기지 안에 있다는 이유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마을이다. 1951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마을 주민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입과 거주, 이동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도무지 지금 대한민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2014년, 한-미 양국은 걸산마을이 포함된 캠프 케이시 기지를 2020년경까지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금껏 지켜지지 않았고, 반환 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지 사령부는 2022년 6월부터 신규 전입 주민에 대한 출입 패스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주민등록은 돼있는데, 실제로는 마을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최소한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다. 동두천시장 취임 이후, 걸산마을 패스 문제를 비롯해 지난 74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온 동두천에 대해 정부가 마땅한 보상과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속 요구해 왔다. 지역발전 범시민대책위원회와 시민도 다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궐기대회를 진행하며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시는 전체 면적 중 42%에 해당하는 40.63㎢의 땅을 미군에 제공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한미군과 그 가족, 관련 종사자 등 약 2만명이 거주해 경제가 활기를 띠었지만, 대규모 병력의 평택 이전 이후 미군이 급감하며 지역경제는 점점 침체됐다. 대신 지속적인 반환 요청으로 23.21㎢의 공여지를 돌려받았지만 99%가 산지여서 개발이 불가하다. 반면 평지로 활용 가치가 높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등 17.42㎢는 반환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기지의 장기 미반환으로 동두천 경제는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 피해 수치를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 미군 관련 자영업체 중 70% 이상이 폐업했고, 공여지 반환 지연으로 인해 연간 300억원에 달하는 지방세 손실, 도시 개발 차질에 따른 매년 5278억원 규모의 경제 손실 등 누적 피해는 25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여파로 2024년 상반기 실업률 전국 1위, 재정 자립도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때 10만에 육박했던 인구도 현재는 8만대로 줄어들어 이제는 동두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에 필자는 74년간 지속된 안보 희생에 대한 최소한 보상으로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미군 기지 이전을 이유로 제정된 '미군 이전 평택 지원법'을 통해 평택은 삼성 반도체 유치, 기반 시설 조성 등 약 19조원 지원을 받아 인구 60만 도시로 성장했다. 평택 선례에 비춰볼 때, 동두천도 이에 상응하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5월, 김성원 국회의원이 '주한미군 장기 미반환 공여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동두천이 입은 피해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또한 2014년, 미군의 동두천 한시 잔류 결정에 따라 정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약 30만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러나 조성 이후 분양과 기업 유치는 온전히 지자체 몫으로 떠넘겨진 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조성만 국가가 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떠넘기는 방식이라면 과연 그것을 '국가산업단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는 정부의 책임 회피이며, 사실상 보상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동두천시민과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기업 유치와 2단계 사업 추진에 있어 분명한 책임을 지고 실질적인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 더불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도 강력히 희망한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 국가산업단지 조성,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여부는 동두천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다. 이제라도 정부는 동두천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고, 정당한 보상을 시작해야 한다. 박형덕 동두천시장 kkjoo0912@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개헌의 그림자, 권력의 계산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당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반발이 이어지자, 우 의장은 자신의 개헌 주장을 철회했다. 그의 개헌 제안은 타당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1987년 개헌 당시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현행 헌법은 그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윤 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역대 국회는 모두 개헌 특위를 가동한 바 있기 때문에,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장애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투표 절차에 있다. 현행법상 개헌 관련 국민투표는 본 투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선 투표는 사전 투표까지 실시하고, 개헌 관련 투표만 본 투표 당일에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개정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개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과연 이런 이유에서 개헌에 반대했던 것일까?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되짚어 보면, 개헌론이 주로 부상하는 시기는 정권 말기와 대선 시기다. 이는 거의 예외가 없는 한국 정치의 '비공식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어 온 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개헌론의 등장은 권력, 그리고 세력의 불균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권 말기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개헌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권력 말기의 레임덕 현상으로 인한 권력 누수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선 시기에도 개헌론이 제기되곤 하는데, 이는 대개 대선에서 열세에 놓인 쪽에서 주도한다. 레임덕 방지든,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한 전략이든, 공통된 점은 개헌이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이다. 개헌이 이처럼 효과적인 카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블랙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헌 이슈가 부상하면, 다른 모든 정치적 이슈는 그 앞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는 자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자신이 설정한 선거 구도도 흐트러지게 된다. 따라서 강세를 보이는 후보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결코 반가울 리 없다. 임기 말에 레임덕에 시달리는 대통령도 개헌론을 꺼내 듦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나 책임을 일시적으로 무대 뒤로 물릴 수 있고, 이에 따라 권력 누수 현상을 일부 완화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전략을 모를 리 없는 야당은, 정권이 제기하는 개헌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나 정권 말기의 야당은 개헌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정치에서 개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개헌이 성공하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1987년 체제, 즉 6공화국의 틀 속에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에게 하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정치인의 출현인 것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〇〇은 누렇고, 끈적끈적한, 이제 막 발효되기 시작한 포도주처럼 담벼락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감각적인 문장은 200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 나온다. (퀴즈. '〇〇'에 해당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20세기 소설의 이정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대낮의 반사광이 그 노란 날개를 스며들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나비가 꽃 위에 앉듯 덧문 문살과 유리창 사이 구석진 곳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두 문장에는 직접은 아니지만 내용상 태양이 개입한다. 만일 태양이 문학에 미친 흔적만으로 글을 쓰면 아마 전집이 가능할 법하다. 21세기 들어 태양은 문학뿐 아니라 삶 전반을 장악하는 중이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32%였고, 그중 태양광발전이 6.9%포인트였다. 풍력 8.1%포인트, 수력은 14%포인트로 아직 태양광의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 태양광은 20년 연속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전력원이며, 최근 3년 사이 발전량이 두 배로 증가해 2024년에는 2,000TWh를 돌파했다. 기술발전과 비용하락으로 앞으로 태양광발전이 에너지 전환의 엔진 역할을 하리라는 데에 거의 이견이 없다. 이런 상황이 마뜩잖은 세력은 화석연료 진영으로, 대표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월 20일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발표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행정명령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에너지'에서 제외했다.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 안보의 기본 요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가 원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 11가지라고 분명하게 정의하며 태양광, 풍력 등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에너지에서 제외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석탄 산업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치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석탄 발전이 현재 미국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미만으로, 2000년(50%)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석탄을 더 때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게 트럼프 생각이다. 이런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석탄발전소가 화려하게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미국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보면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반대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2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한 해 동안 추가된 미국 총 발전용량의 90% 이상이 태양광, 풍력, 지열, 수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특히 태양광은 전체 신규 발전용량의 81% 이상을 차지하며, 2024년 12월까지 16개월 연속 가장 큰 신규 전력원의 위치를 지켰다. 2024년에 추가된 새로운 태양광 발전용량은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합친 것의 거의 9배에 달한다.세계 흐름도 마찬가지다. 전기에너지 중 세계 재생에너지 비중은 2030년에 46%로 확대되고 태양광발전은 34.9%포인트를 차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9% 미만으로 세계 평균의 3분의1에 못 미친다. 2030년 목표는 고작 20%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가 해야 할 많은 과제 중에 재생에너지 강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꼭 민주주의에 국한한 게 아닐 터이니, 누가 되든 트럼프 같은 역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퀴즈의 답은 '석양'이다. 안치용

[이슈&인사이트]美 관세 폭탄이 부른 또 다른 위기

미국의 대규모 관세폭탄이 대기업에게 해저 지진이라면, 트럼프의 '소액 면세' 폐지는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도 곧 이어 몰려올 거대한 쓰나미다. 소액 면세 기준을 활용해 미국에서 급성장한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알·테·쉬) 등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판매하던 물량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 거세게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판촉공세를 펴는 중국산 제품의 상륙에 진정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중국발 C-커머스가 이름들이 낯설게 들렸던 건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이들은 초저가와 광속 배송을 무기로 국내 소비자의 '합리적 욕망'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자국은 선명하다. 바로 소상공인의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4년 하반기, 유통 생태계에 또 하나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티몬과 위메프. 한때 쿠팡의 아성에 도전했던 이들 플랫폼에서 정산 지연 사태가 터졌다. 수개월 동안 대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고, 환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온라인을 뒤덮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자금을 풀고 정산 주기 단축을 약속했지만, 상처는 깊고 복구는 더뎠다. 이 역시 알테쉬의 공세에 밀린 온라인발 위기의 전조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어떻게 이 파고를 넘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에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초저가 전쟁은 더 이상 우리의 무대가 아니다. '싸고 많은 것'은 이제 중국의 강점이다. 우리가 갈 길은 분명하다. 중가 시장으로의 도약, 즉 가성비에서 가치비(Value-for-Money)로의 전환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싼 것'이 아닌 '좋은 것을 합리적으로' 찾는다. 이제는 품질,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에 담긴 철학과 손끝의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 둘째, D2C(Direct to Consumer) 모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유통의 중간 단계를 줄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소통하는 구조. 이는 단순한 유통 효율을 넘어, 브랜드의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다.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었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가 담긴 제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산다. 셋째, 이제는 혼자가 아닌 함께 싸워야 한다. 공동 물류, 공동 구매, 공동 마케팅, 공동 R&D. 연합과 협업 없이는 거대한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생존이 어렵다. 생존을 위한 '연대의 경제'가 절실한 시점이다. 넷째,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1인 가구, 개인 맞춤형 소비 등 소비자의 니즈는 급변하고 있다. 소상공인은 오히려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감성화. 단순히 '좋은 제품'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담은 제품이 중요하다. 감정에 호소하는 콘텐츠와 리뷰, 브랜드 스토리가 '가격'보다 강력한 설득력이 된다. 이제 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기부 산하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한유원)은 단순한 지원기관이 아니라, 생존 플랫폼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소상공인 전용 D2C 플랫폼, 공동 물류 시스템, 중가 브랜드화 지원,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교육… 이 모든 것들이 한유원의 새로운 임무가 되어야 한다. 중국발 초저가 공습과 플랫폼의 신뢰 붕괴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유통 생태계 전체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지금 이 판을 읽고, 대응하고, 반격하지 않으면, 다음 생존자는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소상공인은 생존하기 위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지원을 넘어 소상공인이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설계하는 연출자이자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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