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발트 3국과 한국: 안보·방산·디지털 협력의 전략적 가능성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HUFS-Jean Monnet EU Centre 소장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는 흔히 '발트 3국'으로 불린다. 이들 국가는 1990년대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이후 유럽 통합 체제에 편입되었으며, 2004년 EU와 NATO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탈러시아화(de-Russification)' 그리고 '유럽화(Europeanization)'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후 발트 3국은 에너지 자립, 디지털 전환, 안보 기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축적하며 EU 내부에서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는 EU 내 소국에 속하지만, 정치적 안정성, 제도 개혁 성과, 그리고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를 바탕으로 오늘날 EU와 NATO의 전략적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발트 3국은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 부패 방지, 언론의 자유 보장 등에서 유럽에서 모범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들 국가가 EU 가치 체계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지정학적으로 발트 3국은 NATO의 동부 전선에 위치하며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위치한 수왈키 갭(Suwalki Gap)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와 벨라루스(Belarus) 사이를 잇는 전략적 회랑으로, 이 지역이 차단된다면 발트 3국은 EU 및 NATO로부터 지상 연결이 단절되는 위험에 직면한다. 이러한 안보 환경에서 발트 3국은 NATO 사이버방위협력센터 유치, 공중감시 체계 참여 등 적극적인 기여를 통해 단순한 안보 수요국을 넘어 안보 제공국이자 기여국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전략적 자율성과 집단안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EU의 안보 기조와도 부합한다. 경제·기술 분야에서도 유럽에서 발트 3국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Rail Baltica, Baltic Connector 등 탈러시아·친유럽형 초국경 인프라 및 에너지 연계망 구축을 통해 EU의 구조적 통합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전자정부, e-Residency와 같은 디지털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전환과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했으며, 이는 EU의 디지털 주권 전략 수립에 있어 제도적 참고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발트 3국이 더 이상 EU의 단순한 수혜국이 아니라, 정책 형성과 집행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행위자로 전환되었음을 증명한다. 발트 3국의 위상 변화는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을 확대한다. 발트 3국은 NATO 무기체계와의 상호운용성 확보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며, 이미 폴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에 도입되어 성능과 신뢰성이 입증된 한국의 무기체계에 관심을 보인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한국산 K9 자주포를 이미 도입한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발트 3국은 한국의 무기체계가 자국군 현대화와 NATO 신속대응군 운용을 위한 고기동·정밀 타격 전력 확보에 있어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 방산기업의 발트 지역 진출 가능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럽방위기금(EDF) 참여를 기반으로 한 공동 기술 개발, 현지 생산, 기술 이전과 같은 중·장기적 파트너십 모델로의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발트 3국 모두 전투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공군 전력 전반에 대한 구조적 보완 필요성을 의미하며, 이 분야에서 한국과의 장기적 협력 여지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이버 안보와 디지털 분야에서도 협력 잠재력이 크다. 한국은 AI 기반 전자정부, 디지털 보안, 정보 인프라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발트 3국은 디지털 주권과 사이버 방어 전략의 실증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양측은 플랫폼 연계, 제3국 공동 진출, NATO 사이버 훈련 참여 등을 통해 디지털 협력 외교의 다자화를 추진할 수 있다. 한편, Rail Baltica 프로젝트는 한국의 스마트 인프라, 물류 자동화, 방산 수출망 구축 기술과 결합할 수 있는 전략적 접점으로, 디지털 물류 체계와 군사 기동성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 모델을 창출할 가능성을 지닌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2026년  ‘K자 지갑’의 한국: 금리·부채·초저가가 변수

2025년 한국의 소비지표는 '회복'과 '불안'이 교차하는 장면을 반복했다. 하지만 경제는 “그 반등이 체질 개선인가, 착시인가"를 묻는다. 심리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실질 구매력은 별개다. 체감경기가 '바닥 탈출'에 성공해도, 가계와 자영업, 유통 생태계의 비용구조가 그대로라면 회복은 이어지지 않는다. 2026년 한국경제를 관통할 키워드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가계·기업의 현금흐름과 비용 구조의 충돌이다. 이 충돌은 세 갈래로 전개된다. 금융·부동산: 주거비·부채 압력 속 소비 양극화(=K자 지갑) 2026년 한국 소비의 첫 키워드는 '가처분소득의 양극화'다. 고금리의 충격은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수준'보다 '기간'이다.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누적된 이자 부담은 가계 현금흐름을 압박한다. 전세·월세 구조 변화, 주거비 부담의 고착화가 겹치면 소비는 더 경직된다.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본 계층은 소비를 유지하거나 프리미엄으로 이동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계층은 지출을 방어한다. 총소비가 늘기보다 소비의 구성이 바뀐다. 필수재 비중이 높아지고, 대체재·가성비 소비가 강화된다. 한쪽은 브랜드와 경험을 사고, 다른 한쪽은 할인·묶음·최저가를 탐색한다. 2026년 소비는 '증가'보다 '양극화된 재편'이 먼저 온다. 기업·자영업: 대위변제율 쇼크, '금융 연착륙'의 골든타임 두 번째 키워드는 '재무적 임계점'이다. 경기 회복이 통계에 잡히는 것과 현장 체력이 살아나는 것은 시차가 있다. 그 시차 동안 가장 먼저 터지는 것은 매출이 아니라 부채다. 금리 부담이 길어질수록 “버티는 힘"은 소진되고, 연체와 폐업은 늘어난다. 이때 위험 신호가 보증기관의 대위변제율이다. 보증기관이 빚을 대신 갚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건, 개별 사업자의 실패가 누적되어 지역·금융 시스템의 건전성 문제로 전이될 수 있음을 뜻한다. 2026년의 정책 목표는 무조건적인 구조조정보다는 '질서 있는 연착륙'이어야 한다. 핵심은 “살릴 기업을 살리는 것"이다. 소비심리가 개선될 때, 그 심리가 실제 매출로 이어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금리 악성부채를 저금리 대환으로 전환하는 장치를 확대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의 충격을 줄이고 흑자 도산을 막아야 한다. 지금은 응급처치가 아니라 금리 구조를 바꾸는 처방이 필요한 구간이다. 유통·산업: 초저가·플랫폼 경쟁의 일상화, 수익성 붕괴의 시작 세 번째 키워드는 '가격 하한선의 붕괴'다. 2026년은 C-커머스의 공세, 플랫폼 지배력이 가격 경쟁을 넘어 유통 생태계의 비용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소비자는 이미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더 싸도 된다"는 학습을 끝냈다. 이 환경에서 단기 쿠폰·판촉은 '진통제'일 뿐이다. 소비자는 동일 예산으로 효용을 극대화하는 체리피킹을 일상화한다. 그때 살아남는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플랫폼 종속을 줄이는 자체 브랜딩·직접 고객 기반(D2C) 역량. 둘째, 오프라인만이 제공하는 즉시성·체험·신뢰. 셋째, 출혈경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마진 구조. 이 세 가지를 확보하지 못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빨라질 것이다. 2026년의 유통 전쟁은 매출 경쟁이 아니라 수익성 전쟁이다. 소비자는 더 똑똑해지고, 공급자의 생존 경쟁은 더 거칠어진다. 맺음말: 2026년은 '회복'이 아니라 '룰 체인지'의 해 2026년 한국경제의 핵심 질문은 “얼마나 더 소비할까"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어떤 구조에서 소비할 것인가다. 가계는 이자와 주거비가 지갑을 누르고, 자영업은 대위변제율이 임계점을 알리며, 유통은 초저가와 플랫폼이 마진 구조를 흔든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낙관론도 비관론도 아니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한국의 소비는 K자형으로 재편되고, 정책의 역할은 '연착륙의 시간'을 확보하며, 산업은 '가격'이 아니라 '수익성'으로 승부를 다시 짜야 한다. 2026년은 소비가 단순히 회복되는 해가 아니라, 경제의 룰이 바뀌는 해다. 박주영

[김한성의 AI시대] 2026년, AI 거버넌스는 통제가 아니라 공존의 기술이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보고서를 대신 써주고, 상담을 도와주며, 복잡한 판단을 정리해 주는 일은 이미 일상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2026년을 막들어선 지금, AI 논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우리가 AI를 대하는 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질문은 의의로 간단하다. “AI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AI와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AI는 인간처럼 말한다. 질문을 이해하고, 맥락을 읽고, 때로는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이런 점에서 AI는 우리와 매우 가깝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의도를 갖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스스로 목적을 세우지 않고, 결과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AI는 분명히 우리와 다르다. 이 '가깝지만 다른 존재'라는 특성 때문에 AI는 늘 두 가지 극단 사이를 오간다. 너무 믿어서 모든 판단을 맡기거나, 반대로 아무 책임 없는 도구처럼 써버리는 것이다. 이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면, AI에 대한 논의는 낙관과 공포를 오가는 감정 싸움에 머물수 밖에 없다. 이제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뜻밖의 인물이 떠오른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이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도구를 사용하고, 무리를 이루고 나름의 사회적 위계도 갖으며, 배운 행동을 서로에게 전한다. 기쁨과 분노 같은 감정도 분명히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인간과 꽤 닮아 보인다. 그러나 침팬지는 인간이 아니다. 추상적이고 명문화된 법적 체계를 갖지 못하며, 행동에 대한 '자기 성찰적 책임'도 지지도 않는다. 제인 구달의 중요한 통찰은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침팬지를 인간처럼 대하지도 않았고, 단순한 실험 대상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대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자율성).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 (책임). 얼마만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가 (존중). 여기서 핵심은 통제냐 방임이 아니었다. 침팬지를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우하며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였다. 제인 구달의 질문은 우리가 AI를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자율성을 가진 에이전트'를 설계할 때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들과 맞닿아 있다. 이 관점에서 각국의 AI 정책을 바라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한국, EU, 미국, 중국, 일본의 접근 방식은 제각각이다. 규제의 강도도, 표현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모두 닮아 있다. 어느 나라도 AI를 그냥 놔두지 않으며, 그렇다고 사람과 똑같이 취급하지도 않는다. 자율성과 영향력을 인정하되, 규칙과 책임의 틀 안에 두려 한다. 한국은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AI를 국정 차원의 문제로 다룬다. 기술, 산업뿐 아니라 윤리와 안전을 함께 논의하고 조정하며, AI를 단순한 기술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계 문제로 바라본다. EU는 AI 법을 통해 고위험 AI에 대한 책임과 감독을 명확히 한다. 인간의 개입과 기록을 요구함으로써, AI와 인간 사이의 경계를 법으로 그어 놓는다. 미국은 표준과 안전 기준, 인프라 투자를 통해 AI를 국가운영 능력의 일부로 흡수하여. 강한 단일 규제보다는 실질적 관리에 초점을 둔다. 한편 중국은 등록과 책임을 통해 AI를 예측 가능한 질서 안에 두려한다. 일본은 강한 규제 보다는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AI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다. 이들 정책은 방식은 달라도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다. “이 가깝지만 다른 존재를 사회 안에서 어디에 둘 것인가?" 각국의 AI 거버넌스는 제인 구달의 태도를 각자의 제도와 문화로 옮겨놓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흐름 속에서 AI와 공존하기 위한 원칙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첫째, AI를 사람처럼 대하기 보다 명확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둘째, 결과만 보지 말고 왜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셋째, 스스로 움직이는 기능이 강할수록 승인과 기록은 더 분명해야 한다. 넷째, AI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정확도보다 책임질 수 있는 구조인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원칙들은 AI를 두려워하자는 말도, 무작정 믿자는 말도 아니다. A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거리와 질서를 정하자는 제안이다. 결국 AI 거버넌스란 기술을 얼마나 세게 붙잡아 둘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자신과 닮았지만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오며 익혀 온 방식을, 오늘의 기술 환경에 맞추어 다시 다듬는 과정에 가깝다. AI는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라기보다, 우리가 타자와 어떤 거리에서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2026년의 AI 논의는 새로운 기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사회가 언제나 반복해 온 '공존의 질문'을 다시 한번 눈앞에 펼쳐 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김한성

[이슈&인사이트] 다크 팩토리와 어쩔수가 없다

2025년의 화제작 중 하나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는 제목부터 체념과 강박 정서를 드러낸다.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구직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중산층 가장의 폭주를 그린다. 예민한 관객이라면, 그 폭주보다 다른 데에 주목할 법하다. 주인공의 살의보다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산한 풍경에 등골이 서늘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해 인간의 숨결이 사라진 공간, 즉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를 연상시키는 곳을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거니는 묵시록적 마감에서 말이다. '다크 팩토리'는 '다크' 자체에서 뭔가 음울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다크'는 원래 '스마트'에서 시작했다.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다. 효율적이고 깨끗하며, 데이터가 흐르는 지능형 공장이다. 하지만 '스마트'는 종국에 '다크'를 지향한다. '스마트'의 본질은 '다크'이다. '다크 팩토리'는 “불 꺼진 공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말이다. 기계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조명이 필요 없다. 적외선 센서와 데이터 전송으로 움직이는 공장에서 조명은 불필요한 비용이다. 1980년대 GM의 로저 스미스 회장은 '라이츠 아웃(Lights-out)' 제조 공정을 꿈꾸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기계들끼리의 충돌을 막지 못해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반 세기가량이 지나면서 지금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은 그 '어둠'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마트'가 경영의 언어라면, '다크'는 실존의 언어다. 노동자의 눈을 위해 켜두었던 불이 꺼지는 상황은, 그 공간에서 인간의 자리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의미하는 섬뜩한 선언이다. 로봇은 야근이나 잔업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어둠도 상관하지 않는다. 한데 이 대목에서 다급한 문제는 철학이 아니라 생존이다. '다크 팩토리'는 인간 존재에 관한 첨예한 논쟁을 불러올 테지만, 당장은 에너지 충당을 발등에 불로 떨어뜨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어두운 공장은 전기라는 뜨거운 문제로 야기한다. 노동자는 밥을 먹지만, AI와 로봇은 전기를 먹어 치운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결합한 현대의 '다크 팩토리'는 과거의 공장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전력을 요구한다. 불 꺼진 공장이 불을 켠 공장보다 전기를 더 필요로 한다. 한국 경제의 곤란을 예감한다. 글로벌 시장은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며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를 강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AI와 '다크 팩토리' 시대를 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전력를 갈망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세계 수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숙제와, 폭증하는 산업용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해 화석 연료를 줄이면서도,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불 꺼진 공장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쥐어짜내야 하는 현실은 연극 같다. 박찬욱의 영화 속 주인공이 직장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일터가 결국 인간의 빛이 꺼진 '다크 팩토리'라는 설정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AI를 도입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을 지워내는 '다크 팩토리'를 건설한다. 국가적으로는 이 거대한 기계 장치를 돌리기 위해 에너지 전쟁을 벌인다. 전기 문제를 해결하고, AI 주권과 제조 경쟁력을 확보해 4차산업 혁명에서 살아남는 것은 국가의 과제다. 그러나 AI, 빅데이터, 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결합한 '다크 팩토리'에 더 없이 인간적인 전력인 재생에너지를 공급해 마주할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아름다운 곳일까. 당장은 공장의 불을 꺼야 하는 처지이긴 하다. 그것도 남보다 빨리.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일단 가야 하는 길일까. 안치용

AI 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고, 11월엔 미국 중간 선거가 있다. 정치적으로 작년 못지 않은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역시 경제이다. 올해가 '붉은 말'의 해인 만큼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회복하며 뜨겁게 타오르기를 모든 국민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수 침체의 장기화와 높아진 관세 장벽에 고환율까지 악재만 쌓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타개할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급성장하는 인공지능(AI)에 올라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AI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UP) 등 핵심 AI 기술은 주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지만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에 AI를 성공적으로 접목한다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2024년 2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5년 뒤인 2030년 세계 AI 시장은 지금보다 적게는 수배, 많게는 수십 배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거품론도 투자액 대비 수익 실현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나온 것이지, AI 시장의 성장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AI 시장에서 어느 한 분야에서만 주도권을 잡는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역폭 메모리반도체(HBM)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값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컴퓨팅에는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 낮은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 AI를 성장동력으로 삼기 힘들다는 뜻이다. AI 경제에서는 '에너지 집약'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게 분명하다. 챗GPT와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모델은 기존 포털 검색할 때와 비교해 최대 3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22년 약 460TWh(테라와트시)에서 올해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3년 약 300TWh였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30년에는 1500TWh로 5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12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AI 기술과 반도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이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전력이 '약한 고리'라고 조언했다. 옳은 지적이다. 한국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수입한다. 글로벌 물류가 마비되면 곧바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있지만 이것만으로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 등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계통의 불균형도 너무 심하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전국 전력의 40%를 소비하면서도 전력 자급률은 60%대에 불과하다. 반면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해안 지역은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망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 반발과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력망 건설은 장기간 지연되기 일쑤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비와 주민 반발 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석 연료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 자원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싼값의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 센터에 공급할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구 폐쇄됐던 쓰리마일 섬 원전을 재가동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시대에는 에너지가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값싼 에너지 확보와 전력망 구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가격 경쟁력과 공급의 안정성, 탄소 감축 등 상충하는 목표를 모두 충족하는 에너지 믹스의 '황금 분할선'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신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을 포함해 모든 자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비상하는 AI의 날개를 달고 우리 경제가 붉은 말처럼 다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이슈&인사이트] 환율 불안 시대 스테이블코인의 도전

과거에는 화폐가 물건 또는 서비스 등을 주고받으면서 이에 따른 가치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스마트 머니(smart money)이자 국경을 초월하여 데이터와 가치를 동시에 전송하는 핵심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는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민간 기업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두 종류의 첨단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 통화에 1:1로 연동,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여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지칭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이 급등락하는 다른 암호 자산과 달리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목표다. 예를 들어 최초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1 USDT가 항상 미화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어디로든 직접 빠르게 전송할 수 있어 속도가 느리고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은행 대신 효율적인 해외 송금·결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마약 밀매, 해킹, 테러 자금 조달, 자금세탁 등 국제 불법 자금 거래에 사용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거래 확산은 다양한 암호 자산 간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안정된 투자 환경을 조성해 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주식시장에 못지않은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주도하는 게 미국 달러(USD) 표시 스테이블코인이다. 현재 국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0% 이상이 달러 기반으로 운용되며,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이에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법'을 입법하며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여러 국가의 통화를 잠식하여 이들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기축통화국 아닌 한국에 더 치명적이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외 자금 결제 및 송금 시장을 잠식할 경우, 원화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고 위기 시 급속한 자본 유출을 통제하지 못해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원화 가치가 급격히 절하되면서 과거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 만약 원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면 기업과 개인의 환전 욕구가 확대될 것이고, 금액 제한이 없고 빠른 구매가 가능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 수요가 쏠린다면 환율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이 원화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면 과거 IMF보다 더한 외환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국내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디지털 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현재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다. 디지털 통화의 국제적 확산은 단순한 금융 기술의 발전을 넘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안보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의 통화 정책과 경제 주권을 위협한다. 보유, 증여, 송금 등의 제한을 받지 않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대안 없이 방치한다면 국내 금융 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빠른 대규모 자본 유출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범국가적인 차원의 실존적 위협이다. 이는 금융, 기술, 안보가 융합된 복합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한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위상과 위력에 대항하기 쉽지 않더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원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등 자체적인 디지털 통화 역량을 확보하여 급변하는 국제 자본과 금융시장의 도전에 대응해야 할 때이다. 이상호

[이슈&인사이트] 넷플릭스보다 재미있었던 이유

이강윤 정치평론가 “넷플릭스 보다 재미있다"는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 생중계가 끝났다. '환단고기'를 비롯해 몇몇 논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 기능이 훨씬 컸다. 가장 큰 성과는 공직자들의 기존 업무방식과 소통자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전 국민은 생중계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공유하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상당 수 공무원들의 업무방식에 공급자(정책결정 관료집단) 위주 관행이 뿌리깊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됐으며, 고쳐야 할 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대통령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것이었다. 구태가 왜 고쳐지지 않는지를 물었고, 사고방식 변화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넷플릭스 이상이었다는 재미의 원동력은 그런 '사이다'가 주는 속 시원함이었을 것이다. 답변자(공무원)들은 방어논리에 급급하거나, 왜 기존 방식대로 일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일쑤였다. A를 묻는데 B를 답하거나, 질문 핵심에 바로 다가가지 않고 에둘러 돌아가는 장황홤이 되풀이되었다. A를 물으면 일단 A에 대해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답한 뒤 상세 내용을 덧붙이는 게 효율적이고도 올바른 소통 자세다. A를 묻는데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얘기를 한참 하면 듣는 이들은 답답해지고 논점은 일탈되기 십상이다. 물론 안 그러는 보고자도 간혹 있었으나 정말 '간혹'에 그쳤다. 모르면 다른 소리 말고 그냥 모른다고 답하면 된다. “바로 확인해서 서면 답변하거나 추후 답변 드리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가 무슨 수치 암기력테스트장은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은 AI로봇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었으며, 국민들은 모든 보고자가 업무 전반을 달달 외우고 있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A를 물으면 일단 A에 대해 답하는 게 문답과 소통의 기본이다. 대부분 그런 기초 훈련이 안돼있다. 고쳐야 한다. 또 다른 성과는 권위주의 탈피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다. 그간은 정부나 공기관이 아니라고 하면, 또는 안 된다고 하면 국민들은 그저 안 되는 걸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친절 여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은, 뽑을 때는 머슴이었는데 얼마 지나면 처분권자가 돼버린다. 관료제의 가장 큰 문제다. 그게 이번에 낱낱이 체감됐다. 이 역시 고쳐져야 한다. 공무원들은 세금으로 월급 받는다. 밥값을 제대로 하는 길은 업무방식의 변화다. 관료들의 오랜 문제는, 어제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하고, 큰 문제나 저항이 없는 한 내일도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대과 없이'다. 공무원들 퇴임사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게 “임기중 대과 없어서 다행"이다. 어제까지 해온 방식대로 오늘도 하는 것이 타성이고 인습이다. 대과 없는 게 목표면 변화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이건 왜 안 되죠? 어제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하려고 합니까?" 국민들이 수 십년 간 해온 질문이지만 그간은 귓등으로도 안듣다가 대통령이 말하자 긴장하고 경청했다. 국민들의 '사이다 쾌감 수치'는 그래서 올라갔을 것이다. 변화와 개혁의 출발점은 질문이다. 공무원들의 근로감독관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대통령 눈에 들려 애쓰지 말고 국민들 눈치를 살펴야 한다. 대통령도 국민들의 평가 대상일 뿐이다. 대통령은 1호 공무원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시대 정신을 따라야 한다. 시대 정신에 따르지 못하는 공직자는 그 열차에서 내리면 된다. 열차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계속 악쓰거나 투덜댈 여가가 없다. 그게 국정 혁신이다. 논란이나 정치적 공방때문에 업무보고를 다시 비공개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구더기 무서우니 장 담그지 말자'는 소리이자 딴지걸기다. 모처럼 국민들의 알 권리가 충족되고 있다. 이강윤

[이슈&인사이트] 정보 보안에 대한 발상 전환

올해가 저물어 가던 11월 말 온라인 시장 지배력을 키우던 쿠팡에서 3,370만 명에 이르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와 온라인 쇼핑몰 이용에 곤란을 겪는 일부 고령층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이미 거대 이동통신 3사와 금융기관들의 연이은 개인정보 유출로 불안감이 커지던 국민을 더 큰 불안에 시달리게 만드는 기사들이었다. 세간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공공정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국민의 개인정보가 끊임없이 유출됐다. 이런 상황은 국민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소홀하게 보관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적법하게 수집하고 보관해야 할 개인정보처리자인 기업, 공공기관, 심지어 정부 부처들에 책임이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고민해 보면 결국 정보 보안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나 불필요한 비용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관념이 출발점이 아닌가 한다. 사실 변호사들의 업무인 법무도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기업에서는 반대를 일삼아 성장의 발목을 잡는 방해꾼으로 매도당한다. 정부 기관에서도 규제가 필요할 때는 관련 법무 전문가를 찾다가, 규제 완화 여론이 높아지면 같은 전문가에게 다른 해결책을 요구한다. 법무 검토도 단시간에, 저비용으로 끝내려 하지만 관계 법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상응하는 법적·경제적 불이익이란 후과를 직면하고서야 후회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최근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 역시 대한민국의 보안 관련 산업의 현황을 보면 그럴만하다고 수긍하게 된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에서 2025년 4월 발표한 '2024 정보보호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내 1,200개 기업 중 연간 정보보호 예산이 '500만 원 미만'이라는 답변이 무려 75.8%에 달한다. 심지어 개인정보나 기업 영업비밀에 대한 보안 위협은 더욱 커지는데도 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보 보안 예산을 편성한 기업이 2022년 67.9%에서 오히려 2024년에는 49.9%로 감소하기까지 했다. 정부 기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행정안전부 예산안을 보면 2025년 정부 정보보호 인프라는 2024년보다 44.8%, 정보시스템 소프트웨어 보안 체계 강화 사업은 30.2%, 사이버 침해사고 예방 예산은 3.8% 각 감소했다. 그나마 2026년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정보 보안 관련 예산을 포함해 7.7% 증가된 예산안이 편성되었다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나 정부의 온나라시스템이 무려 3년간 해킹을 당한 상황에서 안일한 인식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된다. 민간과 공공부문의 정보 보안 예산 경시는 국내 정보 보안 전문 기업들의 영세한 규모만이 아니라 업무에 종사하는 보안 인력의 양성과 숙련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따라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비도 미흡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더불어 특히 사이버 보안 관련하여 인공지능 기반 공격과 방어 수단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 기관들이 인공지능 기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상황에서 프롬프트 입력, 회피 공격, 인공지능 데이터 또는 모델 추출 공격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될 수 있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공지능 업무 시스템 이용자들에 대한 초맞춤형 피싱 공격을 발생할 수 있는데, 실제로 최근 오픈소스 형태의 모델뿐 아니라 상용모델인 앤트로픽사의 '클로드'가 해킹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항해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이상 데이터를 탐지하고, 인간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의 반복적인 공격을 방어하는 인공지능 보안 시스템도 구축되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 탑재 창과 방패의 확산이란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시스템 구축과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정보 보안을 비용 개념으로만 보아서는 향후 벌어질 보안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정보 보안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도록 공공부문 입찰 가산점, 투자 인센티브 등 세제 지원과 함께 정보 유출로 손해를 입은 정보 주체들이 직접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보 보안을 소비자 선택의 척도로 끌어 올려 비용이 아닌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로 보는 시각이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 양희철

[이슈&인사이트] 쿠팡 사태, 책임은 국경 밖으로, 피해는 국민에게

이번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다. 약 3,370만 명,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 상당수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초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태도는 무책임했고 오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의장은 사과는커녕 국회의 출석 요구조차 “국제적 비즈니스"라는 말로 회피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불출석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소비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범석이 진정으로 긴장하고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미국에서 쿠팡 투자자들을 원고로 한 집단소송이 지난 20일 제기되면서 김범석 개인의 경영 책임과 CEO 지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상장사 CEO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라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와 관리·감독 의무를 지는 책임자다. 핵심 자회사인 한국 쿠팡의 보안 관리 실패가 반복적으로 제기됐음에도 이를 방치했고, 그 결과 기업가치와 주가에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이번 개인정보 유출이 미국 증권법상 중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그리고 적시에 공시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단순한 민사 분쟁을 넘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사회가 '김범석 리스크'를 이유로 CEO 교체를 검토하는 상황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쯤 되면 김범석에게 이번 사태는 과징금이나 합의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경영권이 걸리게 된다. 그런데도 피해당사자인 한국 사회에서 쿠팡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놀라울 만큼 가볍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3%지만, 각종 감경을 거치면 기업 입장에선 '관리 가능한 비용'에 불과하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피해자가 직접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 2차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한 위자료는 미미한 수준에 머문다. 정부가 강조한 '영업정지'도 소비자·소상공인·노동자 피해를 이유로 실질적으로는 선택지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도 “과징금으로 끝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김범석 개인에 대한 국내 책임 추궁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 역시 국민적 분노를 키운다. 그는 미국 국적자이며 한국 법인 지분을 보유하지 않아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 재벌 총수들이 부담하는 각종 책임에서 자유롭다.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책임은 국경 너머로 넘겨버리는 이 구조를 과연 정상적인 기업 윤리라 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미국 소송 결과를 지켜보자"는 수동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 법원이 김범석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와 별개로, 행정부와 입법부는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제재 수단을 검토 추진해야 한다. 과징금의 실질적 상향, 반복 위반 기업에 대한 누진 처벌, 경영진 책임을 명확히 묻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 하한선 도입, 기업이 스스로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하도록 하는 입증 책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한 기업의 일탈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이 기업윤리마저 상실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데이터와 물류는 이미 국가 기간 인프라로 이번 사태는 국민적 재난수준이다. 이를 통제할 법과 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쿠팡은 반드시 등장한다. 국민의 분노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다시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최용

[박영범의 세무칼럼] 국세 탈세 제보, 최대 40억 원 포상금 받는 방법

최근 국세청은 수사 기관으로 받은 자료에 따라 탈루 세액을 추징했다며 탈세 제보자의 탈세 제보 포상금 지급을 거부하였으나, 조세심판원은 그 내용이 탈세 제보에 따른 고발·제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라며 탈세 제보 포상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결정하였다. 국세청은 다양한 탈세 및 위반 행위 제보를 받아서 실제 세무 조사 결과 추징 세액이 5천만 원 이상 있으면 최소 1천만 원에서 최대 40억 원까지 탈세 제보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체납자의 숨긴 재산을 발견하여 제보하면 최대 30억 원의 포상금을 현금 징수액에 따라 5~20% 지급률을 곱하여 지급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탈세 제보는 탈루 세액 등이 5천만 원 이상 납부되고, 국세기본법에 따른 불복 제기 기한 경과 또는 불복 청구 절차가 종료하여 부과 처분을 확정한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2개월 이내에 최소 1천만 원에서 최대 40억 원 한도로 지급한다. 형사처벌을 받는 조세범칙행위에 대한 탈세 제보는 통고의 이행 또는 재판에 의한 형이 확정된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2개월 이내에 지급한다. 탈세 제보는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탈루 세액 또는 부당하게 환급·공제받은 사실을 제보자의 인적 사항을 실명으로 기재하고 특정한 개인이나 법인의 구체적인 탈세 사실 등을 기술한 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빙을 첨부한 중요한 제보 자료를 국세청 및 각 지방국세청, 탈세 혐의자 주소지 또는 사업장 관할 세무관서 서면으로 접수하거나, 인터넷 국세청 홈택스(hometax.go.kr)–상담 제보–탈세 제보에 등록하면 된다. 탈세 포상금은 가명 또는 타인 명의로 제보하거나, 자료 제출 당시에 세무서에서 이미 확인 중인 자료 및 공무원이 그 직무와 관련하여 자료를 제공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 탈세 제보의 대표적 사례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명 음식점이 이중장부를 작성하여 비밀 장부에 기재된 현금 매출액을 탈루하고 아들 명의 계좌에 입금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비밀 장부는 업무시간에는 음식점 카운터 아래 서랍에 보관되어 있으며 퇴근 시 사장이 자택으로 가지고 출퇴근하고 있다는 제보와 계좌 명세서와 비밀 장부 일부 사본 증빙을 첨부하여 수천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법인이 '00년~'00년 기간 동안 거래처 모모 실업으로부터 실제 10억 원을 매입하였으나 20억 원을 매입한 것으로 세금계산서를 수취하여 대금을 지급한 후 차액 10억 원을 대표자 명의 계좌로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는 제보와 계좌 명세서와 (㈜법인의 실제 거래 내역 내부 엑셀 파일을 첨부하여 수억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탈세 제보가 채택되지 않은 사례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살고 있는 A 씨가 특별한 직업도 없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수억 원대 재산가라며 자랑하고 있으니, 자금출처를 철저히 조사하여 보면 탈세한 사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내용은 국세청이 막연한 풍문에 의한 제보로 판단 채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월까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휴대전화 가게에서 일용근로자로 근무하였으나 4대 보험 적용은 물론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부당해고 되었다며 악덕 업자에 대해서 철저한 세무조사를 바란다는 내용의 제보는 본인과 원한 관계에 의한 막연한 제보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처럼 국세와 관련이 없는 임금 체불, 의료보험 관련 사항, 개인의 원한 관계나 이해관계에 의한 고발, 막연한 심증과 풍문에 의한 탈세 혐의 제보와 구체적인 증빙 없는 추측성 제보는 채택하지 않고 세무조사 자료로 활용하지도 않는다. 탈세 제보는 실명으로 구체적인 탈세 상황과 증빙을 첨부하여야 채택되고 최대 40억 원 포상금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박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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