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넷플릭스보다 재미있었던 이유

이강윤 정치평론가 “넷플릭스 보다 재미있다"는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 생중계가 끝났다. '환단고기'를 비롯해 몇몇 논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 기능이 훨씬 컸다. 가장 큰 성과는 공직자들의 기존 업무방식과 소통자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전 국민은 생중계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공유하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상당 수 공무원들의 업무방식에 공급자(정책결정 관료집단) 위주 관행이 뿌리깊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됐으며, 고쳐야 할 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대통령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것이었다. 구태가 왜 고쳐지지 않는지를 물었고, 사고방식 변화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넷플릭스 이상이었다는 재미의 원동력은 그런 '사이다'가 주는 속 시원함이었을 것이다. 답변자(공무원)들은 방어논리에 급급하거나, 왜 기존 방식대로 일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일쑤였다. A를 묻는데 B를 답하거나, 질문 핵심에 바로 다가가지 않고 에둘러 돌아가는 장황홤이 되풀이되었다. A를 물으면 일단 A에 대해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답한 뒤 상세 내용을 덧붙이는 게 효율적이고도 올바른 소통 자세다. A를 묻는데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얘기를 한참 하면 듣는 이들은 답답해지고 논점은 일탈되기 십상이다. 물론 안 그러는 보고자도 간혹 있었으나 정말 '간혹'에 그쳤다. 모르면 다른 소리 말고 그냥 모른다고 답하면 된다. “바로 확인해서 서면 답변하거나 추후 답변 드리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가 무슨 수치 암기력테스트장은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은 AI로봇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었으며, 국민들은 모든 보고자가 업무 전반을 달달 외우고 있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A를 물으면 일단 A에 대해 답하는 게 문답과 소통의 기본이다. 대부분 그런 기초 훈련이 안돼있다. 고쳐야 한다. 또 다른 성과는 권위주의 탈피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다. 그간은 정부나 공기관이 아니라고 하면, 또는 안 된다고 하면 국민들은 그저 안 되는 걸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친절 여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은, 뽑을 때는 머슴이었는데 얼마 지나면 처분권자가 돼버린다. 관료제의 가장 큰 문제다. 그게 이번에 낱낱이 체감됐다. 이 역시 고쳐져야 한다. 공무원들은 세금으로 월급 받는다. 밥값을 제대로 하는 길은 업무방식의 변화다. 관료들의 오랜 문제는, 어제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하고, 큰 문제나 저항이 없는 한 내일도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대과 없이'다. 공무원들 퇴임사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게 “임기중 대과 없어서 다행"이다. 어제까지 해온 방식대로 오늘도 하는 것이 타성이고 인습이다. 대과 없는 게 목표면 변화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이건 왜 안 되죠? 어제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하려고 합니까?" 국민들이 수 십년 간 해온 질문이지만 그간은 귓등으로도 안듣다가 대통령이 말하자 긴장하고 경청했다. 국민들의 '사이다 쾌감 수치'는 그래서 올라갔을 것이다. 변화와 개혁의 출발점은 질문이다. 공무원들의 근로감독관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대통령 눈에 들려 애쓰지 말고 국민들 눈치를 살펴야 한다. 대통령도 국민들의 평가 대상일 뿐이다. 대통령은 1호 공무원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시대 정신을 따라야 한다. 시대 정신에 따르지 못하는 공직자는 그 열차에서 내리면 된다. 열차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계속 악쓰거나 투덜댈 여가가 없다. 그게 국정 혁신이다. 논란이나 정치적 공방때문에 업무보고를 다시 비공개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구더기 무서우니 장 담그지 말자'는 소리이자 딴지걸기다. 모처럼 국민들의 알 권리가 충족되고 있다. 이강윤

[이슈&인사이트] 정보 보안에 대한 발상 전환

올해가 저물어 가던 11월 말 온라인 시장 지배력을 키우던 쿠팡에서 3,370만 명에 이르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와 온라인 쇼핑몰 이용에 곤란을 겪는 일부 고령층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이미 거대 이동통신 3사와 금융기관들의 연이은 개인정보 유출로 불안감이 커지던 국민을 더 큰 불안에 시달리게 만드는 기사들이었다. 세간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공공정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국민의 개인정보가 끊임없이 유출됐다. 이런 상황은 국민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소홀하게 보관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적법하게 수집하고 보관해야 할 개인정보처리자인 기업, 공공기관, 심지어 정부 부처들에 책임이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고민해 보면 결국 정보 보안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나 불필요한 비용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관념이 출발점이 아닌가 한다. 사실 변호사들의 업무인 법무도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기업에서는 반대를 일삼아 성장의 발목을 잡는 방해꾼으로 매도당한다. 정부 기관에서도 규제가 필요할 때는 관련 법무 전문가를 찾다가, 규제 완화 여론이 높아지면 같은 전문가에게 다른 해결책을 요구한다. 법무 검토도 단시간에, 저비용으로 끝내려 하지만 관계 법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상응하는 법적·경제적 불이익이란 후과를 직면하고서야 후회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최근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 역시 대한민국의 보안 관련 산업의 현황을 보면 그럴만하다고 수긍하게 된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에서 2025년 4월 발표한 '2024 정보보호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내 1,200개 기업 중 연간 정보보호 예산이 '500만 원 미만'이라는 답변이 무려 75.8%에 달한다. 심지어 개인정보나 기업 영업비밀에 대한 보안 위협은 더욱 커지는데도 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보 보안 예산을 편성한 기업이 2022년 67.9%에서 오히려 2024년에는 49.9%로 감소하기까지 했다. 정부 기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행정안전부 예산안을 보면 2025년 정부 정보보호 인프라는 2024년보다 44.8%, 정보시스템 소프트웨어 보안 체계 강화 사업은 30.2%, 사이버 침해사고 예방 예산은 3.8% 각 감소했다. 그나마 2026년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정보 보안 관련 예산을 포함해 7.7% 증가된 예산안이 편성되었다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나 정부의 온나라시스템이 무려 3년간 해킹을 당한 상황에서 안일한 인식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된다. 민간과 공공부문의 정보 보안 예산 경시는 국내 정보 보안 전문 기업들의 영세한 규모만이 아니라 업무에 종사하는 보안 인력의 양성과 숙련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따라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비도 미흡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더불어 특히 사이버 보안 관련하여 인공지능 기반 공격과 방어 수단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 기관들이 인공지능 기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상황에서 프롬프트 입력, 회피 공격, 인공지능 데이터 또는 모델 추출 공격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될 수 있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공지능 업무 시스템 이용자들에 대한 초맞춤형 피싱 공격을 발생할 수 있는데, 실제로 최근 오픈소스 형태의 모델뿐 아니라 상용모델인 앤트로픽사의 '클로드'가 해킹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항해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이상 데이터를 탐지하고, 인간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의 반복적인 공격을 방어하는 인공지능 보안 시스템도 구축되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 탑재 창과 방패의 확산이란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시스템 구축과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정보 보안을 비용 개념으로만 보아서는 향후 벌어질 보안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정보 보안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도록 공공부문 입찰 가산점, 투자 인센티브 등 세제 지원과 함께 정보 유출로 손해를 입은 정보 주체들이 직접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보 보안을 소비자 선택의 척도로 끌어 올려 비용이 아닌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로 보는 시각이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 양희철

[이슈&인사이트] 쿠팡 사태, 책임은 국경 밖으로, 피해는 국민에게

이번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다. 약 3,370만 명,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 상당수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초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태도는 무책임했고 오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의장은 사과는커녕 국회의 출석 요구조차 “국제적 비즈니스"라는 말로 회피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불출석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소비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범석이 진정으로 긴장하고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미국에서 쿠팡 투자자들을 원고로 한 집단소송이 지난 20일 제기되면서 김범석 개인의 경영 책임과 CEO 지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상장사 CEO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라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와 관리·감독 의무를 지는 책임자다. 핵심 자회사인 한국 쿠팡의 보안 관리 실패가 반복적으로 제기됐음에도 이를 방치했고, 그 결과 기업가치와 주가에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이번 개인정보 유출이 미국 증권법상 중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그리고 적시에 공시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단순한 민사 분쟁을 넘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사회가 '김범석 리스크'를 이유로 CEO 교체를 검토하는 상황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쯤 되면 김범석에게 이번 사태는 과징금이나 합의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경영권이 걸리게 된다. 그런데도 피해당사자인 한국 사회에서 쿠팡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놀라울 만큼 가볍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3%지만, 각종 감경을 거치면 기업 입장에선 '관리 가능한 비용'에 불과하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피해자가 직접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 2차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한 위자료는 미미한 수준에 머문다. 정부가 강조한 '영업정지'도 소비자·소상공인·노동자 피해를 이유로 실질적으로는 선택지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도 “과징금으로 끝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김범석 개인에 대한 국내 책임 추궁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 역시 국민적 분노를 키운다. 그는 미국 국적자이며 한국 법인 지분을 보유하지 않아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 재벌 총수들이 부담하는 각종 책임에서 자유롭다.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책임은 국경 너머로 넘겨버리는 이 구조를 과연 정상적인 기업 윤리라 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미국 소송 결과를 지켜보자"는 수동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 법원이 김범석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와 별개로, 행정부와 입법부는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제재 수단을 검토 추진해야 한다. 과징금의 실질적 상향, 반복 위반 기업에 대한 누진 처벌, 경영진 책임을 명확히 묻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 하한선 도입, 기업이 스스로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하도록 하는 입증 책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한 기업의 일탈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이 기업윤리마저 상실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데이터와 물류는 이미 국가 기간 인프라로 이번 사태는 국민적 재난수준이다. 이를 통제할 법과 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쿠팡은 반드시 등장한다. 국민의 분노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다시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최용

[박영범의 세무칼럼] 국세 탈세 제보, 최대 40억 원 포상금 받는 방법

최근 국세청은 수사 기관으로 받은 자료에 따라 탈루 세액을 추징했다며 탈세 제보자의 탈세 제보 포상금 지급을 거부하였으나, 조세심판원은 그 내용이 탈세 제보에 따른 고발·제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라며 탈세 제보 포상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결정하였다. 국세청은 다양한 탈세 및 위반 행위 제보를 받아서 실제 세무 조사 결과 추징 세액이 5천만 원 이상 있으면 최소 1천만 원에서 최대 40억 원까지 탈세 제보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체납자의 숨긴 재산을 발견하여 제보하면 최대 30억 원의 포상금을 현금 징수액에 따라 5~20% 지급률을 곱하여 지급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탈세 제보는 탈루 세액 등이 5천만 원 이상 납부되고, 국세기본법에 따른 불복 제기 기한 경과 또는 불복 청구 절차가 종료하여 부과 처분을 확정한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2개월 이내에 최소 1천만 원에서 최대 40억 원 한도로 지급한다. 형사처벌을 받는 조세범칙행위에 대한 탈세 제보는 통고의 이행 또는 재판에 의한 형이 확정된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2개월 이내에 지급한다. 탈세 제보는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탈루 세액 또는 부당하게 환급·공제받은 사실을 제보자의 인적 사항을 실명으로 기재하고 특정한 개인이나 법인의 구체적인 탈세 사실 등을 기술한 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빙을 첨부한 중요한 제보 자료를 국세청 및 각 지방국세청, 탈세 혐의자 주소지 또는 사업장 관할 세무관서 서면으로 접수하거나, 인터넷 국세청 홈택스(hometax.go.kr)–상담 제보–탈세 제보에 등록하면 된다. 탈세 포상금은 가명 또는 타인 명의로 제보하거나, 자료 제출 당시에 세무서에서 이미 확인 중인 자료 및 공무원이 그 직무와 관련하여 자료를 제공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 탈세 제보의 대표적 사례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명 음식점이 이중장부를 작성하여 비밀 장부에 기재된 현금 매출액을 탈루하고 아들 명의 계좌에 입금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비밀 장부는 업무시간에는 음식점 카운터 아래 서랍에 보관되어 있으며 퇴근 시 사장이 자택으로 가지고 출퇴근하고 있다는 제보와 계좌 명세서와 비밀 장부 일부 사본 증빙을 첨부하여 수천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법인이 '00년~'00년 기간 동안 거래처 모모 실업으로부터 실제 10억 원을 매입하였으나 20억 원을 매입한 것으로 세금계산서를 수취하여 대금을 지급한 후 차액 10억 원을 대표자 명의 계좌로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는 제보와 계좌 명세서와 (㈜법인의 실제 거래 내역 내부 엑셀 파일을 첨부하여 수억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탈세 제보가 채택되지 않은 사례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살고 있는 A 씨가 특별한 직업도 없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수억 원대 재산가라며 자랑하고 있으니, 자금출처를 철저히 조사하여 보면 탈세한 사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내용은 국세청이 막연한 풍문에 의한 제보로 판단 채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월까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휴대전화 가게에서 일용근로자로 근무하였으나 4대 보험 적용은 물론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부당해고 되었다며 악덕 업자에 대해서 철저한 세무조사를 바란다는 내용의 제보는 본인과 원한 관계에 의한 막연한 제보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처럼 국세와 관련이 없는 임금 체불, 의료보험 관련 사항, 개인의 원한 관계나 이해관계에 의한 고발, 막연한 심증과 풍문에 의한 탈세 혐의 제보와 구체적인 증빙 없는 추측성 제보는 채택하지 않고 세무조사 자료로 활용하지도 않는다. 탈세 제보는 실명으로 구체적인 탈세 상황과 증빙을 첨부하여야 채택되고 최대 40억 원 포상금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박영범

[이슈&인사이트] 강남 불패 신화와 ‘똘똘한 한 채’가 만든 부동산 왜곡

10·15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구를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토지거래허가제를 확대했다.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했으며, 스트레스 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강력한 규제로 집값 급등세는 진정되었지만, 한국부동산원에 의하면 10·15대책 한 달 서울 아파트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투기와의 전쟁'과 유사성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대출 제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부활 등 강력한 26번의 규제책들을 잇달아 쏟아냈지만,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 한국 부동산 투기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진보정권에서 심하다. 지가 상승이 보수정권인 김영삼 3%, 이명박 16%, 박근혜 10%, 윤석열 11% 등 평균 8%이다. 이에 비하여 진보정권의 지가 상승은 김대중 38%, 노무현 34%, 문재인 38% 등 평균 36.7%로 3배 이상 높다. 진보정권에서 투기가 심한 것은 한국 부동산 속성에 기인한다. 한국 부동산 문제의 속성을 요약하면, 첫째 한국인들의 부동산 투자엔 지금 아니면 집을 못 살 것 같다는 불안 심리가 무차별 구매를 유도한다. 둘째는 원활한 공급 없는 규제는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가중한다. 셋째는 강남 불패 신화다. 주변에 주식으로 망한 사람은 많으나 강남 부동산으로 망한 사례는 없다. 넷째, 진보정권의 무차별 규제가 보수정권의 규제 완화의 빌미를 제공한다. 진보정권의 규제로 부동산 투기가 잡힐 만하면 보수정권에서 규제를 완화한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에서 26번의 온갖 규제를 다 동원했다. 그대로 5년만 계속되었다면 부동산 투기는 근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26번의 무차별 규제로 투기뿐 아니라 선량한 실수요자 희생양을 양산했다. 이를 빌미로 윤석열 정부는 규제를 완화했다. 진보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은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유일한 생산재이며 자본가는 노동을 착취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슘페터는 자본가는 기술 혁신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창조하는 것을 밝혔다. 이는 자본가가 기술 혁신을 통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불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한다면 노동을 착취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권이 극소수의 투기를 막기 위해서 다수의 희생을 초래한다면 그 또한 정의가 아니다. 진보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소수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 너무 많은 선량한 실수요자를 희생시켰다. 투기의 시발점인 강남 4구를 핀셋 규제로 막으면 되는데 서울 전역과 경기도로 토지거래허가제를 확대함으로써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했다. 결과적으로 야당에 빌미를 주고 선거를 앞두고 규제를 해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강남 4구에 투기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강남 불패 신화 때문이다. 불패 신화는 8학군이라는 교육적 요인도 있지만, '똘똘한 한 채'에 대한 무차별 선호에 기인한다.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 현상은 '다주택을 보유는 악이고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은 선'이라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만든 기형아다. 수십억 원의 똘똘한 한 채는 1주택 세제 혜택이 주어 지는데, 시가 수억 원의 다주택자는 다주택의 불이익이 주어진다. 결과적으로 비강남권의 수채 아파트를 처분하여 강남 4구의 똘똘한 한 채로 전환하는 무차별 구매가 일어난다. 이로써 다른 지역 부동산은 폭락하는 데 강남 4구만 독야청청하는 이유다. 이의 해결책은 소득세와 유사하게 주택 수가 아닌 보유 주택합산으로 세제를 운영해야 한다. 1가구·1주택의 세제 혜택은 1가구·일정 금액, 예를 들면, 서울 아파트 가격의 중위수인 10억 원의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이다. 부동산 정책은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고 핀셋 규제와 같은 지속 가능한 섬세한 디테일이 중요하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연준의 ‘스텔스 QE’와 한국은행의 딜레마

2025년 12월 10일, 우리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또다시 밤잠을 설쳐야 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사실상 마지막 임기 중 열린 이번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전 세계 금융시장의 이목이 쏠린 '슈퍼 위크'의 정점이었다.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는 3.75~4.00%에서 3.50~3.75%로 25bp(0.25%포인트) 인하되었다. 하지만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금리인하가 아니었다. 3명의 위원이 반대표를 던지는 이례적인 내부분열 속에서, 연준이 조용히 꺼내든 '준비금 관리 매입(Reserve Management Purchases, RMP)'이라는 낯선 카드가 등장한 것이다. 연준은 12월 12일부터 매월 400억 달러 규모의 단기 국채(T-bills)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였던 200억~3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양적 완화(QE)가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변했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장기국채나 모기지담보증권(MBS)을 사들여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던 것과는 달리, 단기 자금시장의 유동성을 충분한(ample)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기술적 관리'일 뿐이라는 논지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연준이 매월 4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민간에서 사들이면, 그만큼 민간의 무위험 자산(국채) 비중은 줄고 현금(지급준비금)은 늘어난다. 넘쳐나는 현금을 쥔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주식이나 회사채 등 위험 자산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포트폴리오 재조정 효과'이며, 사실상의 양적완화다. 실제로 FOMC 발표 직후 미국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 20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시장이 이를 '유동성 파티의 재개'로 받아들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연준의 이와 같은 '스텔스 돈 풀기'는 한국은행에 양날의 검이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은 한미 금리 역전폭의 축소다. 미국의 금리 인하로 양국 간 금리차는 기존 1.50%포인트에서 1.25%포인트(미국 상단 3.75% - 한국 2.50%)로 줄어들었다. 1,400원대 중반에 고착화된 환율과 자본유출 압력에 시달리던 한국은행으로서는 숨통이 트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연준이 공급한 막대한 달러 유동성이 글로벌 자산시장을 타고 일부 국내증시로 유입된다면, 환율안정과 자산가격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현재 우리나라 유동성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5년 9월 기준 광의통화(M2)는 전년 대비 8.5%나 급증하며 사상 최대인 4,430조 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2월 초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시장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선언하며 단기유동성을 대거 공급하고 있다. 이미 내부에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외부발 유동성까지 더해질 경우, 물가불안과 부동산 재과열을 자극할 위험이 크다. 이번 FOMC에서 연준은 2026년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3%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반면 한국은행이 제시한 한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은 1.8%에 그친다. 성장률 역전은 통화가치 차별화로 이어진다. 미국경제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미국 예외주의(US Exceptionalism)'가 지속되는 한 연준이 돈을 풀어도 달러약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미국 자산시장의 활황은 국내 투자자들의 '서학개미' 행렬을 가속화해, 무역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다시 금융계정을 통해 빠져나가는 구조적 환율상승 압력을 부추길 것이다. 결국 미연준의 돈풀기가 우리 경제에 '약'이 되게 하려면 정교한 정책 대응이 필수적이다. 첫째,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 연준이 내린다고 해서 섣불리 따라 내렸다간, 좁혀진 금리차가 다시 무색해지고 집값 불안만 키울 수 있다. 현재의 2.50% 금리를 당분간 유지하며, RP 매입 등 미세 조정을 통해 필요한 곳에만 유동성을 공급하는 '핀셋 지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둘째, 환율 방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2026년 1월부터 도입되는 원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KRW FX Bonds)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외국인의 원화채권 투자를 구조적으로 유도하여, 단순히 달러를 팔아 환율을 막는 소극적 개입에서 벗어나 원화수요 자체를 늘리는 적극적 전략으로 선회해야 한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와 연계하여 원화자산의 매력도를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셋째, 과잉유동성이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 부문으로 흐르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가계대출에 대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는 한편, AI나 반도체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기업금융 지원은 확대해야 한다. 2025년의 끝자락, 파월의 임기내 마지막 실질적인 FOMC회의에서 연준은 다시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것이 우리 경제에 단비가 될지 아니면 인플레이션과 투기라는 홍수가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대응에 달려 있다고 본다. 돈잔치라는 환상에 취하기보다, 그 뒤에 날아들 수 있는 청구서를 대비하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수현

[이슈&인사이트]이재명 대통령 발언과 한국식 라이시테의 시작

한국 정치의 무대에서 “정교분리"라는 단어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법 종교단체는 해산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단순한 원칙 확인 이상의 정치적 신호다. 한국 사회의 갈등 지형—특히 특정 종교 세력이 정치·행정의 영역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해온 지난 수년간의 풍경—을 고려하면, 이 발언은 프랑스의 라이시테(laïcité) 개념과 비교했을 때 더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식 라이시테는 흔히 “세속주의"로 번역되지만, 그 본질은 종교를 배척하는 국가가 아니라 종교를 우대하지도, 종속되지도 않는 공화국을 만드는 데 있다. 1905년 제정된 '교회와 국가 분리법'은 두 가지 원칙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양심의 자유, 즉 믿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중립성, 즉 국가는 어떤 종교에도 급여를 지급하거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단순한 제도 설계가 아니라, 프랑스가 오랫동안 교권과 맞서 싸우며 쌓아온 역사적 축적의 결과이다. 왕정과 가톨릭의 동맹 속에서 억압되고 배제된 시민사회가, 공화국의 이름으로 종교적 권력을 정치의 바깥으로 밀어낸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라이시테는 언제나 정치적 장치이자 사회적 투쟁의 결과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이 프랑스적 맥락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한국식 라이시테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장면처럼 보인다. 한국은 헌법에 이미 “정교분리"가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종교가 정치 네트워크, 복지사업, 언론,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비공식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정교분리는 선언되었으나 제도적 관철은 이루어지지 않은, 말하자면 비완성의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한국적 맥락에서 정교분리는 더 이상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정치·행정의 투명성, 시민의 평등권, 국가 권력의 독립성을 둘러싼 실질적 문제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를 종교적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라이시테가 과거 교황권의 정치 간섭을 차단하며 공화국을 재건했던 과정과 겹쳐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례가 말해주듯, 정교분리는 법률 조항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라이시테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쟁적이다.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 학교에서의 종교 상징 문제, 정체성 정치에 종교가 결합하는 극우의 전략 등, 라이시테는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쟁점화된다. 국가의 중립성은 언제나 새로운 사회적 균열 앞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한국 정치에 내재된 종교 권력의 비공식 네트워크를 어떻게 투명화하고 해체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정교분리란 단지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거나, 종교 활동을 공적 공간에서 제한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정치, 그리고 역으로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종교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장치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특정 종교 세력이 정치 권력과 결합하여 형성한 비가시적 영향력, 즉 종교적 사적 권력이 민주주의의 공적 영역을 침식해온 오랜 구조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공화국적 의미를 갖는다. 그는 프랑스의 1905년 법이 그랬던 것처럼, 종교와 국가 사이의 새로운 경계 설정을 요구하는 시대적 압력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한국식 라이시테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프랑스의 모델을 단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국가 권력과 종교 권력 사이의 균형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종교 다원주의와 시민권의 확대 속에서 새로운 정교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프랑스의 라이시테가 12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정교분리는 완결된 제도가 아니라, 지속적 실천의 과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선언이 공화국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이제 한국 시민사회와 정치가 어떤 실천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일권

[신율의 정치 내시경] 비상계엄 미화와 품격 상실의 길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1년 즈음에 옥중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해당 담화에서 “12.3 비상계엄은 국정을 마비시키고 자유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체제 전복 기도에 맞서, 국민의 자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한 헌법 수호책무의 결연한 이행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는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비상계엄 선포와 이른바 '의회 폭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두 가지 사안이라는 점이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권한이긴 하나, 말 그대로 '비상'한 상황에서만 발동되는 예외적 조치다. 일반적으로 '비상 상황'이란 대규모 테러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국가 안보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반면, '의회 폭거'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일부가 주장하는 '의회 폭거'는 '비상 상황'의 요건에 해당할 수 없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스스로도 이를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드론을 보낸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이는 북한의 반응을 유도함으로써 외부 위협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만약 이러한 시도가 사실이라면, 그는 국내 정치 상황만으로는 '비상 상황'을 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셈이 된다. 설령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폭주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치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이므로, 정치적 방식으로 해결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윤 전 대통령이 야당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여야는 평행선을 달리며 정치 자체가 실종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정치 실패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진솔한 사과를 했어야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사안은 이뿐만 아니라 더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해서도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영부인이었던 김건희 씨는 '방어권' 행사라는 명목으로 수차례 사실과 다른 허위 발언을 하며, 영부인으로서의 품격을 스스로 실추시켰다. 그는 마치 진실을 말하듯 화려한 수사를 동원했지만, 정작 증거나 증언이 드러나면 말을 바꾸는 모습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태도에서는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품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이 이러한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자신의 행동만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려 한다면, 결국 그 역시 '품격 상실'이라는 진흙탕 속으로 스스로를 끌어들이는 셈이 된다. 더 나아가,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보수의 위기'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가 진정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면, 더는 보수 진영을 위기에 빠뜨리지 말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주장을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역시 탄핵 경험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탄핵당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중요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여전히 법리적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국민 다수가 직접 목격한 명백한 사건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처럼 자신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미화하려 들지 않았다. 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려는 태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 바로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은 더욱 거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제라도 한때나마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자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3선론 해부

간을 보는 것인지 또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기 백악관 집무실 결단의 책상 위에 “TRUMP 2028" 문구가 새겨진 빨간색 모자를 올려놓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내가 2028년 미 대선에 다시 출마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미소로 보인다. 이른바 트럼프 3선론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대통령이 세 번씩 임기를 수행하는 것은 위헌이다. 애초 건국 당시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 제한 조항이 없었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첫 임기를 마치고 자신의 농장인 버지니아의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독립전쟁을 이끄느라 지쳤는데 아무 준비가 안 된 미국의 새 정부까지 정비하느라 더 이상 수도에 남아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워싱턴의 희망과 반대로 돌아갔고 그 후 미국에서 대통령의 임기는 최대 두 번으로 굳어졌다. 흑백 갈등과 사회 분열이 심했던 1800년대에는 8년은커녕 4년으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적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를 이끌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무려 4번의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했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불문율 덕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전쟁 중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건강도 상할 만큼 상했다. 결국 1945년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40일 만에 사망했다. 그 후 1951년에 대통령의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하는 수정헌법이 통과되었다. 그 조항을 보면 누구도 두 번 이상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No person shall be elected to the office of the President more than twice)라고 적고 있다. 두 번 연달아서이건 아니면 트럼프같이 한번 쉬고서이건 무조건 두 번 이상은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2년 이상 대통령을 승계한 경우도 한 번의 임기를 마친 것으로 간주하여 한 번만 더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If a person has served as President or acted as President for more than two years of a term to which some other person was elected President, that person cannot be elected President more than once). 그래서 항간에는 2028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부통령으로 출마한 뒤 당선되어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미 헌법의 빈틈을 파고들겠다는 심산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임기 1년도 지나지 않아 40%대 아래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에 예견되었다. 트럼프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와 관세전쟁을 벌이면 당연히 소비자 물가가 오를 것이 뻔했다. 경제가 크게 악화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갈 리 만무하다. 내년 중간선거까지 위태롭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방향으로 개헌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개헌이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개헌절차는 상하 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고 또 3분의 2 이상의 주의회에서도 찬성을 얻어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200년 이상 동안 27개의 수정헌법을 추가하는 데 그친 바 있다. 현재 상하 양원에서 어느 한 당이 3분의 2정도 의석은커녕 과반수에서 조금 더 많은 의석을 겨우 확보하는 상황에서 개헌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트럼프는 3선론으로 시선을 끌고 자기 맘대로 대통령 놀이를 즐기려는 거로 보인다. 이준한

[이슈&인사이트] 길을 잃은 소상공인… 소진공 지원의 ‘구조적 피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전신을 20년 넘게 지켜봤다. 밖에서 보기엔 “예산도 늘고, 사업도 많고, 지원도 두터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진공이 소상공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먼저 공단 직원들이 구조적 행정과부하에 지쳐 있다. 새로운 사업이 쏟아지고, 공고·심사·정산·평가까지 겹치면서 하루 대부분을 서류와 시스템 입력에 쏟아 넣는다. “이 사업을 왜 하는지, 무엇이 효과가 있었는지"를 놓고 토론하고 실험할 여유가 없다. 창의적 기획 역량은 있지만 행정 과부하에 밀리기 쉽다. 소상공인은 또 어떠한가. 정책자료집에는 사업 이름이 빼곡하다.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디지털 전환', '상권활성화' 같은 정책용어는 넘쳐나는데, 정작 소상공인들은 “나는 뭘 받아야 가게를 살릴지, 아니면 안전하게 정리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고가 나가도 신청자 채우기에 급급하고, 모집을 마쳐도 참여자 상당수는 사업 취지와 요구를 잘 모른 채 끌려온다. 컨설턴트의 질도 들쭉날쭉하다. 현장을 꿰뚫고 매출 개선에 기여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서류용 보고서만 양산하는 컨설팅도 적지 않다. 이는 컨설턴트 성의 부족만이 아니라, 컨설팅이 매출과 생존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숫자와 이야기로 추적하지 않는 현재 사업 구조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답답한 대목은 “소상공인 여정이 없다"는 점이다. 소상공인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사업 목록이 아니라 경로다. 한 번 진단을 받고, “사장님은 지금 '버티기 단계'이니 1번 사업이 우선이고, 이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단계에서 2번·3번 지원으로 넘어갑시다"라고 안내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실의 지원사업은 잘게 쪼개진 칸막이 속에 흩어져 있을 뿐, 소상공인의 생애주기와 위험도에 따라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 사실 소진공은 전국에 촘촘히 깔린 지역센터망, 상권정보와 기금 데이터를 한 손에 쥐고 있고, 컨설턴트와 전문가 네트워크도 이미 갖추고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렇게 다양한 인프라와 데이터를 한 기관이 동시에 가진 사례는 드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사업 목록' 중심이 아니라 '소상공인 여정' 중심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 이제 소진공이 바꿔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사업을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부서·예산 단위가 아니라 소상공인의 삶 기준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창업·초기, 성장·혁신, 수출·도약, 위기·재기'처럼 몇 개의 굵은 코스로 나누고, 소상공인이 어느 코스에 있는지 진단을 해야 한다. 이 진단이야말로 소진공의 핵심역량이 되어야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제대로 나오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창구를 진짜 원스톱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원스톱 서비스"는 구호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지역센터·온라인(소상공인24)·콜센터· 지자체 창구가 제각각이다. 어느 창구를 먼저 찾아가도 한 장짜리 '통합 상담카드'로 상황을 파악하고, 과거 상담·지원 이력이 한 번에 보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출발점이다. 셋째, 위기·폐업·재기·재난을 하나의 경로로 묶어야 한다. 연체가 시작되고, 임대료가 밀리고, 결국 폐업을 고민하게 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정책은 재난, 채무조정, 폐업정리, 재창업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시기에 여러 기관을 전전하며 행정 절차까지 견뎌야 한다. 핵심은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흩어진 제도를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와 표준 시나리오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는 보고서가 아니라 행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소진공은 이미 BSI, 상권정보, 기금 데이터 등 많은 숫자를 모으고 있다. 이제는 이를 업종·지역별 '위험등급 지도'로 바꾸고, 경보 수준에 따라 어떤 지원을 앞당길지 룰을 만들어야 한다. 위기가 심한 지역에는 상권 활성화와 디지털 전환, 컨설팅과 정책금융이 먼저 들어가게 하는 선제적 개입이 필요하다. 소진공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복잡한 제도를 정리해, 소상공인들이 자기 여정을 따라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제 지원사업의 숫자가 아니라, 경로의 단순화와 여정 설계를 중심에 두는 거버넌스 전환이 소상공인 정책의 다음 단계가 되어야 한다. 박주영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