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하정우 “고향에 AI 생태계 만들 것…검사 출신은 못해”

[단독 인터뷰] 하정우 “고향에 AI 생태계 만들 것…검사 출신은 못해”

16일 오전 7시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부산 북구갑 후보는 이른 아침 산책객이 찾는 구포 무장애숲길 입구를 찾았다. 검정색 경찰 단화를 신고 나타난 하 후보는 팔각정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성큼 올라가 인사를 돌렸다. 데크길에서 마주치는 주민은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길을 틀어서라도 쫓아가 악수를 건넸다. 하 후보는 이번 선거운동을 “지상전"이라고 했다. 하루 걸음 수는 2만 보다. 구포 무장애숲길에서만 7200보를 찍었다. 이날 아침은 선식으로 때웠다. “살 빼야 한다, 뱃살도 많다"고 스스로 웃었다. 이동 중에는 방울토마토로 끼니..

삼성전자 파업 피해 100조로 끝날까

삼성전자 노조는 파업 피해액 100조 원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노조를 겁박하려는 목적에 피해액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경제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경쟁국들의 기민한 움직임 등을 생각하면 100조 원은 오히려 과소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18일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정밀 미세장비에 해당하는 반도체 시설의 경우 설비가 한번 손상되면 수리를 거쳐 재가동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쟁의행위 기간 중이라 해도 시설 손상 방지를 위한 작업은 평상시와 같은 정도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채권자(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시설 손상 및 원료·제품의 변질 내지 부패로 인한 생산 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관련 산업의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손해나 위험은 사후적인 금전 배상 등을 통해 회복될 수 없는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에 해당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17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봐도 파업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됐을 때 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다. 담화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은 단 하루만 정지돼도 최대 1조 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손실이 발생한다. 법원 설명대로 잠시만 멈춰도 수개월의 생산 마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매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매출 비중이 12.5%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수출의 22.8%, 전체 시가총액의 26%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주주는 460만 명이고 임직원은 12만 명, 협력사는 1700개가 넘는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사실은 김 총리 지적대로 파업으로 인해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에서 어렵게 확보한 전략적 우위를 경쟁국들에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해액이 100조 원을 넘어 수백조 원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금액으로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적 손실이 심각할 수 있다. 불과 7만 여명에 불과한 고소득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느라 희생하기에는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정부가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 파업을 막기 위한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사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현행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파업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이 파업을 반대하고 있고,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에 이어 법원도 파업의 위법성을 일부 인정한 만큼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2차 사후 조성 회의를 통해 노사가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합의점을 찾지 못해도 파업은 유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조가 공언한 대로 오는 21일 파업에 들어가면 국가적 손실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법원이 인용한 위법성을 피해 연성 파업을 한다고 해도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커질 게 분명하다. 파업은 회사와 주주, 협력사만 치명상을 입는 게 아니다. 가장 큰 타격은 노조가 받게 될 것이다. 파업으로 영업이익이 줄면 노조가 요구한 만큼 성과급을 받을 수 없다. 이런 경우를 두고 '소탐대실'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도 파업을 강행한다면 이솝우화의 '욕심 많은 개'와 호리병 안에 든 먹이를 포기하지 못해 사냥감이 되는 원숭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화와 다른 점은 본인만 당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 권리인 노동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 전체를 몰보로 하는 파업은 단순 파업이 아니라 민폐일 뿐이다. 삼성전자 노조를 보며 가스통을 들고 모두 죽자고 위협하는 조폭이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과도한 상상일까.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기름 파는 정유사에 AI가 필요한 이유

“항로와 물류비, 실시간 원유 가격 변화부터 상압증류 공정의 도입 유종, 석유제품 생산 비율 같은 내용을 빅데이터로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원유시장과 관련한 구축해 놓은 빅데이터를 AI에 적용해 트레이딩 최적화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거죠. 석유제품 품질이 크게 다르지 않아 얼마나 제조원가를 낮추고 수익성을 높이느냐가 정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AI)이 틀린 정보를 준다고 툴툴대며 'AI 흥선대원군' 노릇을 해온 기자를 향해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자기 회사의 AI 이용 방식을 이 같이 설명했다. 주요 산업군 중 AI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정유사들은 사실 누구보다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정관리를 AI에 맡기거나 업무 관련 정보를 빠르게 찾아 정리하는 단편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원유 확보 안정성과 시장 대비 낮은 도입 가격 등 정유사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 두 가지를 사례로 꼽았다. 정유업계 관계자가 강조한 AI 전환(AX)의 핵심은 빅데이터였다.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등장한지 20년이 지나 뒤늦은 얘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지만, 사실 AI에 투입할 정보가 잘 정제돼 있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I가 보여주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취하는 대신 AI가 정보 환각현상(할루시네이션)을 최소화하며 정밀한 검토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AI는 판단을 기계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떠먹여줘야 제기능을 다할 수 있다. AI가 사람인 척하는 티가 나서 독자·시청자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여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할루시네이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은 AI가 모르는 정보를 지어내 사용자에게 혼란을 일으킬 때가 있다. 어투와 수식어, 문장구조가 영어식으로 돼 있는 한국어 문장이나 AI 색깔 톤이 묘하게 드러나는 그림만 불쾌한 골짜기의 원인이 아니다. 산업계나 언론계나 직종에 관계없이 종사자들이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닌 진정한 AX를 성취하려면 '정확한 정보 모으기'에 더 많은 힘을 써야 할 때다. 테슬라가 로봇 품질을 높이기 위해 비슷한 신장과 체구를 가진 사람 여럿을 고용해 움직임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과 같은 습득원리다. AI를 잘 활용하고 싶다면 기업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용하는 'AX 통찰 시스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나무호 피격과 파병 압박, 외교에는 여야가 없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미국과 이란의 분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로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유가를 비롯한 각종 유류 관련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HMM 소속 나무호 피격 사건이다. 전자의 경우 6월 중·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나무호 문제는 현재 우리 정치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나무호가 피격당했을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선박이 공격당했다며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피격 여부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고 피격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피격 사실을 발표했다. 그런데도 아직 공격 주체는 '확인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미상의 비행 물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마치 '미확인 비행 물체(UFO)'를 연상하게 만든다. 선박 내부에서 '미상의 비행 물체'의 엔진이 발견됐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면 공격 주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에서 신중함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과거 이 대통령의 SNS 발언 사례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신중함의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인을 건들면 패가망신한다'는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좀 더 신중한 표현과 방식을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있다. 대통령의 이스라엘 인권 문제 지적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런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과거 사례가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나무호 피격과 관련해 정부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보는 이들은, 공격 당사자로 지목되는 측에 강한 어조로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공감할 수는 있으나, 공격 주체가 이란이라고 단정하고 강하게 항의할 경우에는, 자칫 트럼프 대통령의 파병 요구에 호응해야 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파병이 왜 안 되느냐는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선박 26척이 억류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파병한다면, 해당 해역에 있는 우리 선박들과 186명에 달하는 우리 선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이를 수긍하기는 어렵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이 다수 존재한다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즉, 우리 선박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투표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당은 현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의 태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의 이름이 거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적 불만은 불만대로 고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파병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여당을 비롯한 여권 전체는 해당 문제를 두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야당이 기억해야 할 점은 외교에는 여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야당도 해당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여당에 대한 지나친 공세는 자제해야 한다. 야당이 유념해야 할 점은, 자신들의 과도한 공세로 인해 호르무즈에 있는 우리 국민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풍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태양광은 전력 공급자원보다 수요자원에 가깝다

마트나 커피숍에서는 현금 대신 포인트를 지급한다. 소비자는 뭔가 보상받는 기분이 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증가에 더 유리하다. 현금을 돌려주면 소비가 끝나지만, 포인트로 지급하면 고객은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포인트를 아끼기보다 그 매장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된다. “포인트도 있는데 하나 더 사자"라는 심리도 작동한다. 최근 자가용 태양광 상계거래 구조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상당수 자가용 태양광 사용자는 낮 시간 남는 전력을 계통으로 보내지만 이를 즉시 현금화하기보다 이후 전기요금 차감 형태로 상계받는다. 전기를 생산해 판매했지만 결국 다시 미래 전력 소비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유도되는 구조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부가가치세 문제까지 등장한다는 점이다. 상계거래 구조에서도 사용자가 생산한 전력을 판매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부가세는 부과된다. 즉 거래는 '판매'로 계산되지만 정작 수익은 현금처럼 자유롭게 활용하기보다 미래 전기요금 차감 안에 머무는 구조다. 포인트는 현금처럼 자유롭게 사용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판매 거래로 간주돼 별도 세금이 부과되지는 않는다. 반면 자가용 태양광은 판매 거래로 계산돼 세금은 발생하면서도 경제적 활용은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물론 전력망 안정성과 정산 효율 측면에서 일정한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에서는 수요자가 중앙 전력망 의존도를 실제로 줄이는 방향보다 다시 계통 안에서 소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구조는 현재 재생에너지 정책이 여전히 태양광을 중앙집중형 발전소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최근 봄철 한낮 전력시장에서 태양광 발전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숫자를 기존 화력발전소와 같은 관점으로만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오히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게 된다. 실제 전력망 관점에서 태양광은 기존 중앙집중형 발전소와는 다른 계통 효과를 가진다. 특히 산업단지, 공장, 건물, 데이터센터처럼 수요지 인근에 설치된 태양광은 장거리 송전을 위한 발전소라기보다 전력망이 감당해야 할 부하 자체를 줄이는 자원에 가깝다. 예를 들어 공장이 낮 시간 10MW의 전력을 사용할 예정인데 자체 태양광으로 4MW를 충당한다면, 계통 입장에서는 4MW 발전소가 새로 생긴 것이라기보다 4MW의 수요가 사라진 것에 더 가깝다. 송전 부담도 줄고 지역 계통 부하도 감소한다. 반면 산을 깎아 계통 말단에 대규모로 설치된 태양광은 자연 훼손 문제뿐 아니라 송전망 부담과 출력제어 문제까지 함께 증가시킬 수 있다. 낮 시간 발전량이 급증하면 계통은 과잉 공급을 감당해야 하고, 해가 지면 다시 대규모 전력을 빠르게 투입해야 한다. 이른바 덕커브(Duck Curve) 현상이다. 결국 송전망 증설, 예비력 확보, 출력제어 비용은 공공 계통이 부담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정책 구조가 이런 계통 부담을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전기요금은 단순 발전원가뿐 아니라 송전망 유지와 계통 안정화 비용까지 얼마나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것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확대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중앙 전력망 의존 비용이 현실적으로 반영될수록 산업단지와 기업들은 자체 소비를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기업은 ESS를 설치할 것이고, 어떤 공장은 열병합 발전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사업장은 전력 사용 시간 자체를 조정하는 수요관리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또 어떤 곳은 공정 효율 개선이 가장 저렴한 탄소감축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특정 기술의 승패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낮은 비용으로 전력망 부담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가를 경쟁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핵심은 단순 발전량 경쟁이 아니라 중앙 전력망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태양광 역시 기존 발전소의 대체재보다 분산형 수요자원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선거’에서 이기는 법

이번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 이름을 올린 후보는 모두 7829명이다. 평균 경쟁률은 1.8대 1. 숫자만 놓고 보면 싱거워 보인다. 실제로 기초단체장 3명과 지방의원 510명 등 513명은 무투표 당선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광역단체장과 재보선 경쟁률은 3.4대 1. 단 한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인 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다. 마치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연상케 한다. 후보들에겐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두고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절박함은 선거판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후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는 21일부터 선거 전날인 다음 달 2일까지 13일뿐이다. 한 번이라도 더 새벽 시장을 돌고, 출근길에 고개를 숙이고, 밤늦게까지 지역 곳곳을 훑는다. 선거는 결국 사람을 만나 마음을 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선거의 본질은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경쟁이어야 한다. 현실의 선거판은 늘 정책보다 감정이 먼저 앞서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 역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네거티브 공방이 전면에 등장했다. 서울시장 선거가 대표적이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무능 심판론'을 내세우고 있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부동산 실정론'으로 맞받고 있다. 양당 지도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내란 청산'을 외치며 지지층을 자극하고 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보수층 결집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전통적인 보수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대구·경북과 부울경 지역이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만 봐도 후보들마다 '철새', '손털기', '강남 도련님' 같은 꼬리표가 붙어 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언어는 거칠어지고, 민생은 뒤로 밀린다. 유권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작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폭등한 집값에 좌절하는 청년들, 고물가에 신음하는 서민들,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정치권은 삶의 문제보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선거라는 게임의 룰은 단순하다. 가장 많은 표를 얻는 사람이 이긴다. 선거는 상대를 탈락시키는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다. 누가 더 자극적인 말을 하는지보다 누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를 본다. 청년의 불안, 자영업자의 한숨을 읽고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는 후보에게 표심이 움직인다. 선거운동 기간 13일은 짧다. 하지만 민심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충분하다. 상대를 향한 설전보다 국민의 삶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보이는 선거. 그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만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진짜 승리의 조건은 유권자의 삶을 정확히 읽어내는 데 있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꿀 해법이다. 선거에서 최종 승자는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후보다. 오유신 기자 news@ekn.kr

[EE칼럼] 최고가격제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지난 3월 13일부터 시헹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사회 안정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최고가격제가 아니었다면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여당에게도 최고의 선거 전략이 된 셈이다. 그런데 최고가격제는 공짜도 아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제는 최고가격제의 연착륙을 걱정할 때다. 언제, 어떻게 종료할 것이고, 정유사에 무작정 떠넘겼던 최고가격제의 사회적 비용을 공정하게 정리할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기 국제 원유 공급망을 강타했다. 휘발유·경유·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의 가격이 치솟고, 공급이 불안해졌다. 우리나라 기름값의 기준인 싱가포르 석유 시장에서 휘발유는 배럴당 79.64달러에서 134.28달러로 68.6%나 올랐고, 경유는 배럴당 92.90달러에서 178.67달러로 92.3%나 뛰어버렸다. 미국의 기름값도 예외가 아니다. 휘발유는 35.6%가 올랐고, 경유는 47.1%나 뛰었다. 원유 공급의 7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받은 충격이 가장 심각하다. 지난 4월의 원유 도입량은 평소의 57%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름값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2월 말 리터당 1616원이었던 휘발유가 4월 말에는 1929원으로 19.3% 올랐고, 리터당 1545원이었던 경유가 1918원으로 24.1% 올랐을 뿐이다. 최고가격제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이 아니라 3000원을 넘어설 것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석유사업법 제23조에 명시된 최고가격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의 과정에서 등장한 제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던 낯선 비상조치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강제로 정지시키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공장도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극약 처방이다.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정부의 준비가 턱없이 어설펐다. 최고가격을 결정하는 원칙도 없었고, 비상조치의 종료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역시 석유사업법 23조에 명시된 최고가격제의 '손실 보전 규정'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지난 2달 동안 정유사가 주장하는 '손실'의 규모는 무려 3조1557억 원이나 된다. 등심·갈비와 똑같이 연상품(連商品)인 휘발유·경유의 회계학적 특성을 무시한 '원가'를 들먹일 때가 아니다. 휘발유의 '원가' 논란은 회계사 출신이라고 목청을 높였던 15년 전 최중경 산업부 장관에 의해 확실하게 정리된 일이다. 어설프게 '정제 마진'을 들먹일 때가 아니다. 정유사의 손실 보전은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애꿎은 '정제 마진'을 들먹일 일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물가 안정을 위해 엄청난 재정적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한 정유사에게 감사해야 하는 형편이다. 최고가격제의 부작용도 심각했다. 소비자가 원유 공급망 붕괴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경유보다 종량제 봉투의 수급을 더 심각하게 걱정하는 현실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휘발유·경유의 적극적인 소비 억제에는 실패했다. 정부가 시늉이라도 내고 싶었던 자동차 5부제·2부제도 어정쩡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크게 치솟은 것도 걱정이다. 싱가포르 국제 석유시장에서 경유는 휘발유보다 33%나 더 비싸게 거래된다. 미국에서도 경유는 갤런당 5.46달러로 휘발유 4.18달러보다 31%나 더 비싸다. 지난 4월 6일에는 싱가포르 시장에서 경유가 국내보다 1000원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경유가 싸구려 기름이라는 우리의 낡은 인식은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이제 유류세로 시장을 왜곡하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정유사가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석유사업법에 따른 60일 치의 원유 재고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수익은 치솟은 원유 도입비를 충당하는 용도에 꼭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원유 2억7300만 배럴과 나프타 210만 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추가 수익 덕분이었다. 더욱이 국제 원유가가 떨어질 때는 정유사가 재고에 따른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제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된 정유산업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은 청산해야 한다. 최고가격제의 연착륙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길은 하나뿐이다. 휘발유와 경유의 최고가격을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에 점진적으로 근접시키는 것이다. 물론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고공 행진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외국인 통합계좌의 역설, 중소형사에 ‘강요된 속도전’

코스피지수가 8000선을 돌파하는 등 국내 증시에 유례없는 훈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이 기세를 몰아 '외국인 통합계좌(Omnibus Account)'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외국인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화려한 거대 담론의 이면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외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생존의 기로에 선 중소형 증권사들이다. 최근 삼성증권이 글로벌 대형 온라인 증권사인 인터랙티브 브로커스(IBKR)와 손잡고 통합계좌 서비스를 개시한 것은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부 대형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글로벌 브로커와 긴밀히 협력하며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그 결과로 '외국인 자금 유입'이라는 실질적인 열매를 가장 먼저 따내고 있다. 반면 대다수 중소형 증권사들에 이번 제도 변화는 '남의 잔치'에 내야 하는 비싼 축의금과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 통합계좌 체제의 구조적 소외다. 외국인 투자자는 본인이 원래 쓰던 현지 증권사를 통해 주문을 내는데, 이 주문을 받아낼 국내 파트너로 선택받으려면 막강한 자본력과 IT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해외 대형 브로커들이 파트너를 고를 때 국내 중소형 증권사를 우선순위에 둘 리 만무하다. 결국 중소형사 입장에서는 수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을 위해 인프라 비용만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 하자니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고, 하자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국내 거래 비중이 작고 수익성이 악화된 중소형사들에 이러한 비용 가중은 치명적이다. 금융당국이 보고 주기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 문턱을 낮췄다고는 하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전산망을 월 단위 데이터 축적 체계로 전환하고 검증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는 과정 자체가 인력이 부족한 중견 업체들에게는 숨 가쁜 과업일 뿐이다. 정부가 증시 활성화를 위해 속도를 내는 사이, 현업의 현실적인 보폭 차이는 무시된 채 '강요된 속도전'만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분명 옳다. 그러나 자본시장 선진화가 특정 대형사들만의 리그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대형사들이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동안 중소형사들이 인프라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도태된다면, 자본시장의 다양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증시 활성화를 원한다면 외국인 유입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중소형사들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거나 상생할 수 있는 세밀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낙수효과가 없는 개방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아닌 가혹한 생존 숙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통합’ 대한항공-아시아나의 꼴사나운 ‘조종사 감정 싸움’

우여곡절 끝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 계약을 체결해 통합의 진짜 9부 능선을 넘었다. 올해 12월 17일 '메가 캐리어(Carrier)'의 출범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국가항공산업의 경쟁력이 도약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항공기의 심장부인 칵핏(조종실)에서는 참담하고 볼썽사나운 파열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양사 조종사 노동조합을 비롯한 비행 자원들 사이에서 출신을 따지며 서로를 배척하는 '꼴 사나운' 감정싸움이 임계점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양사 조종사들 간에 “상대방과는 같은 조종석에 앉기도 싫다"는 노골적인 적대감마저 공공연히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직급 산정과 임금 격차 등을 둘러싼 이해 다툼이 극단적인 기 싸움으로 번진 결과다. 이를 거대기업 통합 과정에서 흔히 겪는 '노노 갈등'이나 직장인들의 텃세 정도로 가볍게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고도 3만피트 상공, 성인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폐쇄된 콕핏 안에서 벌어지는 조종사 간 반목은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만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화약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위험천만한 밥그릇 싸움이 얼마나 끔찍한 대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지는 학계의 연구 결과들이 과학적으로 명백히 경고하고 있다. 먼저 '국내 헬리콥터 조종사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인적 오류와 잠재적 사고 및 준사고 조건 간 관계에 관한 연구(염경진·김규왕, 2024)'에 따르면, 조직 내 갈등이나 대인관계에서 유발되는 조종사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이로 인해 의도적으로 소통을 단절하는 '조직 침묵'은 치명적인 '인적 오류(Human Error)'를 낳고, 이는 잠재적 대형 사고로 직결된다. 출신성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좁은 조종실에서 서로 입을 닫고 필수적인 크로스 체크를 방기한다면 관제탑의 중요 지시를 놓치거나 기체의 이상징후를 무시하는 가능성을 높여 결국 추락의 뇌관을 건드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대 항공 안전의 뼈대인 '조종실 자원 관리(CRM)' 시스템 역시 이들의 감정 싸움 앞에 무용지물이 될 위기다. '국내 항공사 운항 승무원 안전 문화 인식도 비교 연구(김현덕, 2024)'는 대형 항공사(FSC) 비행 안전의 핵심 척도로 '동료의 안전 수행(Colleague commitment to safety)'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조종사 간의 '협력 및 참여'를 꼽았다. 내가 혐오하고 믿지 못하는 동료와 비상 상황에서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겠는가. 상호 불신이 팽배한 조종석에서 안전을 위한 능동적 소통과 위기 대처 능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더욱 개탄스러운 사실은 이 살벌한 편 가르기의 독버섯이 객실 승무원들에게까지 깊숙이 번져 있다는 점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의 요란한 기 싸움에 조명받지 못하고 가려져 있을 뿐, 객실 내부의 알력 다툼도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블라인드와 같은 익명 직장인 게시판 등에서는 벌써부터 양사 승무원들이 서로의 사내 문화를 조롱하며 원색적인 비방전을 쏟아내고 있다. 기내 화재나 비상 착륙 상황 시 승객을 90초 이내에 탈출시켜야 하는 찰나의 순간은 전적으로 객실 승무원들의 일사불란한 팀워크에 달려 있다. 유니폼과 기수를 따지며 평소에도 으르렁대는 조직이 비상 시 내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완벽한 호흡을 보여줄 리 만무하다. 화려한 제복 속에 감춰진 이들의 옹졸한 민낯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에게 전문가로서의 윤리는 남아 있는가. '공군 공중 근무자의 소명 의식과 비행 안전 행동의 관계(송민성 등, 2023)' 연구는 비행 안전을 담보하는 가장 강력한 내적 동기로 투철한 '소명 의식(Calling)'과 이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의무감(Moral Duty)'을 강조한다. 타인의 생명을 온전히 목적지까지 지켜내겠다는 숭고한 소명의식은 온데간데없이 내 밥그릇과 알량한 자존심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작금의 행태는 명백한 직무 유기이자 도덕적 해이다. 기업 합병은 해외 경쟁 당국의 서류 승인 도장만 받아내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섞이는 진정한 화학적 결합(PMI) 없이 물리적 합병만 강행한다면 '통합 대한항공'은 위태로운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양사 임직원들은 제복의 명예를 걸고 이 소아적 감정싸움을 당장 멈춰야 한다. 당신들이 조종실과 갤리에서 서로 삿대질하고 패를 갈라 싸우는 동안 도대체 승객의 비행 안전이라는 진짜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비싼 항공권료를 지불하는 승객들은 운항에 투입되는 조종사·객실 승무원들의 출신이 대한항공 또는 아시아나항공 출신인지, 그대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다쳤는지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다. 승객의 생명을 볼모로 한 위태롭고 꼴 사나운 감정 싸움을 당장 접어야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삼성전자 노조는 왜 ‘국민 밉상’ 됐나

“적당히들 좀 해라." “그냥 노조가 징글징글하다." “이기주의자들!"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면 노조에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최근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7명은 파업을 반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경제를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는 대표 기업인데 이 회사 노조는 칭찬받기는커녕 '국민 밉상'이 됐다. 왜 이런 서글픈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두환 군사 정권을 끌어내린 1987년 6월 항쟁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했다. 그해 7월 이후 많은 기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됐고, 연대를 통해 노동계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태동과 성장도 민주화 운동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측면을 고려했을 때 영업이익의 15%를, 그것도 상한선 없는 성과급을 고집하는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초기업노조)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 약자를 위한 배려와 연대라는 한국 노동운동의 핵심 가치는 뒷전이고 이기적인 목표에만 매달리고 있어서다. 기업이 이익을 노동자와 나누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삼성전자 같은 한국 대표 기업은 성과급을 책정할 때도 국민 수용성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460만 명 이상이 투자하는 국민기업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6억'은 반도체 사업부에 속한 7만 여명의 조합원을 제외하고 모든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영업이익이 아무리 많아도 일반 국민이 수긍하기 어려운 거액이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중에 평균 연봉이 1억 원 넘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협력업체 직원들도 반도체 최대 실적의 공로자들이다. 협력업체 외에도 성과를 공유해야 할 기여자는 많다. 노조의 요구는 이들의 몫까지 챙기겠다는 심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과도한 이익 배분은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일회성 비용인 성과급에 너무 많은 재원을 쓰면 투자 여력이 줄게 마련이다. 삼성전자가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는 기술 경쟁에서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다. 몇 년 전 삼성전자는 고대역메모리(HBM) 반도체 투자 시기를 놓친 탓에 SK하이닉스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삼성전자 주주들이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우려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제때 투자하지 못해 기술력이 떨어지면 기업가치와 주가 추락은 불가피하다. 초기업노조의 더 한심한 작태는 같은 회사의 다른 노조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2대 노조는 전국삼성전자노조이고, 3대 노조는 삼성전자노조동행이다. 두 노조는 반도체 사업부 성과급에만 집중하는 초기업노조에 반발하고 있다. 이미 많은 조합원이 초기업노조가 주도하는 공동 투쟁에서 이탈하고 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겠다며 노조끼리 이렇게 반목하고 갈등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결국 삼성전자 노조가 '국민 밉상'이 된 이유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는 이익 단체의 지대 추구이자 기득권 지키기와 다를 바 없다. 연대와 약자 존중이라는 노동운동의 핵심 가치를 외면한 채 파업이라는 물리력만으로 뜻을 관철하겠다는 전략은 결코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삼성전자 실적은 반도체 사업부 직원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다른 사업부 동료들과 협력업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주주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협력해 이룬 결실이다. 이를 노조가 독차지하려는 것은 과욕이며 정의롭지 못하다. 박승흡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한 언론 기고문에서 이런 노조를 향해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성과를 사유화하는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성과급 6억'을 고집할수록 삼성전자 노조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무리한 요구와 파업 위협을 접고 협력업체 노동자 등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로 투쟁 방향을 틀어야 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AI국민배당금보다 시급한 보건의료 데이터 기여분 논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AI 국민배당금' 제안이 논란이다. 반도체 기업이 벌어들인 초과 이윤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를 국민에 환원하자는 의견으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잇따르며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다. 김 정책실장의 정책제안 배경엔 '설계의 정당성'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창출된 것이므로, 과실의 일부가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국민배당금의 정수는 '국민 기여분' 산정에 따른 정당한 수익 배분이다. 이 같은 김 정책실장의 제안은 국내 바이오헬스산업의 한 가지 정책 동향과도 맞닿아 있다. 전 국민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바이오헬스산업, 특히 AI 신약개발에 활용하자는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논의가 그것이다. 이 정책은 현재 공론화를 거쳐 국회에서 입법 논의 중이다. 보건의료 데이터 기반 AI 신약개발은 반도체 사례에 비해 '국민 기여분 산정→정당한 수익 배분'이라는 구조가 더 명확하다. 이 산업을 본격화하기 위해선 보건의료 데이터의 주체인 국민의 데이터 제공 동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SK텔레콤과 쿠팡 사태로 한층 민감해진 국민의 '개인정보 감수성'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덤이다. 즉, 보건의료 데이터 기반 AI 신약개발 산업은 반도체 사례에 비해 국민 기여라는 절대적 가치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다. 문제는 '기여분 산정 기준'에 있다. 전 국민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개발된 'A신약'이 연매출 1조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해보자. 국민배당금과 같은 국민 기여 배분 논의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이 때, 만약 돌연변이적 생체지표(바이오마커)를 지닌 특정 개인의 보건의료 데이터가 A신약의 개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 해당 개인의 기여분은 일반적 생체지표를 가진 국민 대비 얼마만큼 가산 적용할텐가? 보다 근본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기여분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해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배분할텐가? 전 세계 유일무이한 수준의 국민 건강보험 제도로 축적된 보건의료 데이터가 한국만의 차별화된 글로벌 경쟁 포인트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반면, 현재 국민 수익배분 논의는 구호 수준에 그친다.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논의와 함께, 정부·국회 차원의 국민 기여분 산정 논의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후에 논의된다면 또다시 포퓰리즘으로 치부될 지도 모를 일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