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영환 교수 “탄소중립법에 ‘선형 경로’ 담고, 세부 목표는 유연하게 대응해야”

[인터뷰] 안영환 교수 “탄소중립법에 ‘선형 경로’ 담고, 세부 목표는 유연하게 대응해야”

“탄소중립기본법에는 2050년까지의 선형 감축경로를 하한선(최소감축 기준)으로 명시하고, 감축 진행 경과와 기술 발전에 따라 2040년과 2045년 목표를 결정해야 합니다."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22일 에너지경제신문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의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현재 국회와 정부가 2031~2049년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탄소중립법에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안 교수는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탄소중립법 개정 논의는 헌법재판소가..

[기자의 눈] 채권자 메리츠와 대주주 MBK, 의무의 무게도 달라야

홈플러스 자금 지원 과정에서 불거진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채권자 메리츠증권 간의 이견,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관심은 자본시장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채권자 역시 기업의 회생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주주에 준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이면서, 채권자와 주주에게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주와 채권자는 기업과 맺고 있는 계약의 본질과 감수하는 위험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주주는 기업의 소유주로서 경영진을 감시하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회사가 청산될 때는 가장 늦게 자산을 돌려받는 취약한 위치에 있지만, 기업이 성장할 때는 배당과 주가 상승을 통해 제한 없는 보상을 누릴 수 있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수익을 기대하는 주체다. 채권자는 기업의 주인이 아닌 계약 상대방에 가깝다.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할 권리가 없고, 회사가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두더라도 정해진 이자와 원금만을 돌려받는다. 보상이 제한되는 구조 속 주주보다 먼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선순위 청구권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이처럼 권한과 보상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집단에게 일률적인 수준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자본시장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채권자들은 늘어난 리스크와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투자 위축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관계자 간 책임 분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다만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지원할 책임을 채권자에게 무리하게 지우려 한다면, 각 이해관계자가 지닌 고유의 특성과 역할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 채권자에게 주주 수준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는 순간 시장의 자율적 메커니즘은 작동하기 어렵다. 자본시장의 장점은 각자의 조건에 맞춰 주식이나 채권 등 다양한 투자 수단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데 있다. 투자 주체의 본질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길이 아닐까. 김태환 기자 kth@ekn.kr

[이슈&인사이트] 워시의 연준 2.0: 5대 TF와 포워드 가이던스의 종말

2011년 연준을 떠난 케빈 워시가 15년 만에 연준의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연준의 근본적인 개혁을 예고하며 “체제 전환(regime change)"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재검토하고, 새로운 원칙에 따라 통화 정책을 운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포워드 가이던스도 없애고 점도표도 없애고 연준이 그동안 했던 양적완화와 오퍼레이션 트위스톨 인해 불어난 대차대조표도 축소하려고 하고 있다. 연준이 전통적으로 그동안 하지 않았던 프로그램들을 마구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금의환향한 케빈 워시는 이 레거시를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그의 개혁안은 크게 소통 방식의 혁신과 통화 정책 운용의 전면 재검토라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준 내에 5개의 TF를 가동할 것을 밝혔다. 그 5개 TF는 1. 연준의 소통(Fed Communications): 향후 발표할 경제 전망 요약(SEP)의 내용과 방식, 기자회견 개최 빈도 등 연준의 모든 대외 소통 채널을 재검토. 2. 연준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불어난 6조 7천억 달러 규모의 대차대조표 축소 방안의 연구. 3. 데이터 의존도 및 활용(Data Sources): 연준이 정책 결정에 사용하는 기존 데이터(특히 정부 발표 지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방법을 도입하는 방안의 검토. 4. 생산성과 일자리(Productivity and Jobs): 급격히 발전하는 AI와 같은 신기술이 생산성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것이 연준의 물가 및 고용 목표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연구. 그리고 마지막 5. 인플레이션 체계(Inflation Frameworks):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재점검하고,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물가 안정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 케빈 워시의 취임으로 이제 세계, 특히 자산을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워시가 들어서자마자 모든 걸 없앨 수는 없기에 일단은 점도표 찍는 것을 거부하고 포워드 가이던스 부분은 많이 축소했다. 케빈 워시는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대차대조표도 축소하고 싶어하고, 기존의 근원 PCE 말고 절사평균물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데이터의 기준 역시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AI가 물가상승 없는 이상적 성장을 가져다주리라 믿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인플레이션 관리 실패를 보여준 현재의 프레임워크를 송두리째 교체하려고 하고 있다. 그 방법을 위시는 TF를 통해서 각 주제에 대한 연준 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내부의 저항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 기존 연준 의원들이 반발을 염려하여 TF를 통해서 하나하나씩 변화의 과정을 빌드업하려고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단순히 혼자서 연준 이사들을 설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TF를 통해 우회적으로 그리고 논리로 연준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어느 TF가 먼저 결과를 낼지 모른다. 아니면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지금의 연준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쨌든 워시의 연준이라는 배가 출항을 했다. 이제 시장은 친절한 연준씨가 없어졌다. 향후 금리에 대한 예고편인 점도표도 경기 전망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도 사라졌다. 시장은 이제 각자도생하면서 스스로 금리와 경제를 전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위시에게는 트럼프의 압력과 기존 연준 내부의 인사들과도 싸워야 한다. 우리 또한 이제 미국의 경제 전망과 금리 전망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하는 워시의 시대가 열렸다. bienns@ekn.kr

[EE칼럼] 500년 ‘장마’의 퇴장, 이제 장마를 장마라 부를 수 없다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 기록이 전해지는 '장마'는 최소 500년 넘게 우리 민족의 여름철 삶을 규정해 온 공식이었다. 6월 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한 달 남짓 지루하게 비를 뿌리던 전통적인 장마. 성질이 다른 두 거대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팽팽하게 힘겨루기하며 만들어낸 정체전선은, 비록 수해를 발생시키고 생활의 불편을 주었을지언정 우리가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익숙한 불청객'이었다. 전통적인 장마의 핵심은 '대우(大雨)', 즉 일정 기간 지속해서 비가 내리며 누적 강수량이 늘어나는 형태였다. 정체전선의 위치에 따라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전국이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우리 삶도 장마 전과 중, 후로 나뉘어 움직였다. 방재 당국은 장마 정보를 나침반 삼아 대책을 세웠고, 도시의 배수 관리와 농사일의 순서도 이에 따랐다. 전력 수급 계획은 물론 가정의 살림, 아이들의 방학, 직장인의 휴가 일정까지 장마가 기준이었다. 장마는 단지 비가 오는 기간이 아니라, 한국인의 여름 생활을 조직해 온 하나의 거대한 질서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여름은 어떤가.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알던 500년 역사의 '장마'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기후변화는 여름의 공식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기상학적으로 이제 한반도 장마의 대표적 상징인 정체전선은 뚜렷한 형태를 찾기조차 어렵다. 장마의 시작과 끝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약 10년 전부터 이러한 징후는 뚜렷해졌다. 가까스로 전선이 형성되더라도 과거처럼 넓은 지역에 길게 비를 뿌리지 않는다. 대신 좁은 구역에서 대기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마치 팝콘이 튀어 오르듯 동시다발적으로 강한 비구름대가 발달했다가 순식간에 소멸한다. 극도의 불확실성을 갖는 국지성 폭우, 즉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새로운 주류가 된 것이다. 심지어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장마 종료를 선언한 이후에 오히려 더 치명적인 호우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기현상이 이제는 새로운 표준(뉴노멀)이 되었다. 이 급격한 변화는 단순히 기상학적 용어의 수정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뿌리째 바꿔야 한다는 경고등이다. 우리는 먼저 과거의 장마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올해 장마는 언제 끝나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장마 기간의 시종(始終)에 매달리기보다, 여름철 내내 언제든 재난급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상시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당장 국가의 방재 시스템부터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장마를 비중있게 고려하여 만들어진 과거의 강수량 통계와 배수 용량 기준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단 몇 시간 만에 한 달 치 비가 쏟아지는 기습 폭우에 견딜 수 있도록 도시의 빗물 수용 능력을 재설계해야 하고, 산사태와 하천 범람 경보 시스템도 실시간 국지성 예측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산업과 일상도 달라져야 한다. 전력 수요 예측이 생명인 에너지 수급 계획은 장마의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 커진 여름철 하늘상태, 기온과 습도에 맞춰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의 물류망 관리, 농가의 재배 타이밍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의 여름휴가 계획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과거의 장마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에 입각한 준비가 필요하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 집중되던 일률적인 휴가 문화도 분산되어야 안전과 휴식의 질을 모두 담보할 수 있다. 다행히 기상청과 기상학계는 이러한 위기를 엄중히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 왔다. 지난 2023년부터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로 다변화된 장마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 그 일차적인 청사진이 도출되었다. 아마도 내년 여름부터는 이렇게 새롭게 정립된 강수 개념과 예보 체계를 바탕으로, 국가 방재부터 국민 일상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의 구체적인 대응 방향이 현장에서 실천될 것이라 기대한다. 기후위기는 500년 이상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계절 감각과 삶의 방식을 강제로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 인간은 무력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역사적 전환기마다 닥쳐온 숱한 위기를 늘 지혜롭게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바꾸어 낸 저력이 있다. 비록 익숙했던 장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장마를 장마로 부를 수 없는 당황스러운 현실을 마주했지만, 우리가 바뀐 기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사회적 지혜를 모은다면, 이 변화된 여름 역시 가장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다스려 낼 것이라 확신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이재명의 시간은 진영이 아닌 국민이다

'문조털래유'와 '한강새똥 돼주길'까지 등장했다. 같은 깃발 아래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특정 정치인들의 이름을 조롱 섞인 암호처럼 부른다. 내부 전선이 만들어지는 순간, 집권 세력의 위험은 시작된다. 말이 거칠어지면 정치는 더욱 좁아진다. 논쟁은 사라지고 낙인만 남는다. 같은 당 안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대통령을 돕겠다는 명분만 내세우며 오히려 대통령의 공간을 줄이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부를 흔드는 과잉 선명성은 진짜 위기를 부르고 있다. 검찰개혁, 보완수사권 폐지, 민정수석 인사 논란까지 모든 사안이 양갈래로 나눠져 각자의 충성도 시험으로 변한다. 이건 개혁이 아니다. 개혁의 이름을 빌린 권력 게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보수도, 중도도, 무당층도 아우르는 모두의 대통령이다. 정부는 국민이 잘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정책에 진보 딱지, 보수 딱지를 붙일 이유가 없다. 대통령의 책무는 진영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앞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특히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의 언어는 완전히 거꾸로 간다. 김어준, 조국, 유시민 등 여권 지지층에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강한 메시지를 던질 때마다 지지층은 달아오른다. 그러나 그 열기가 곧 국정 동력은 아니다. 선거판의 언어와 집권의 언어는 다르다. 바깥에서 북을 치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가 진다. 정청래 대표의 행보도 그래서 더 무겁게 봐야 한다. 강한 개혁 의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말은 거리의 구호가 아니라 국정의 신호다. “권력은 짧다"는 식의 말, 내 편과 상대편을 가르는 말, 보완수사권 폐지를 절대선처럼 밀어붙이는 말등은 대통령에게 힘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잘못된 말은 사과 제스처로 끝낼 일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정해야 한다. 집권 여당의 대표라면 지지층의 박수보다 국민 전체의 신뢰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세계 정치사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미국 민주당은 2016년 버니 샌더스과 힐러리 클린턴 대선 경선 리래 한동안 진보 선명성과 중도 확장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영국 노동당도 2015년부터 2020년 제러미 코빈 체제 동안 비슷한 고민을 겪었다. 강한 진보 노선은 당원과 젊은 지지층의 열정을 끌어냈지만, 2019년 총선 패배 이후 집권을 위해서는 중도층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었다. 정치는 두 개의 심장으로 뛴다. 하나는 지지층의 열정. 다른 하나는 국민 다수의 신뢰다. 열정만 있으면 뜨겁지만 한계가 있다. 여당은 내부 함성만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해준다.문제는 균형이다. 지방선거 이후 정부 여당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선관위 논란, 지지율 하락, 민심의 피로감이 겹쳐 있다. 이런 때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내부 선명 전쟁이 아니다. 민생 안전, 경제 회복, 청년 일자리, 부동산 안정, AI 산업 경쟁력 같은 국가 의제를 앞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국민은 매일 검찰제도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장바구니 물가를 본다. 월세를 걱정한다. 아이 교육비를 계산한다. 노후를 불안해한다. 개혁도 이 삶과 만나야 힘을 얻는다. 8월 전당대회마저 정청래식 선명성 경쟁으로 흐른다면 민주당은 더 뜨거워질 수는 있다. 반면 국민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의 국정 성공을 중심에 놓고 개혁과 민생을 함께 설계한다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대통령은 진영의 깃발 아래 갇혀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중심이어야 한다. 여당은 대통령을 앞세워 자기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 전체를 향해 걸어갈 길을 열어야 한다. 권력이 짧다는 말은 맞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짧은 권력을 편 가르기에 쓰면 후회만 남는다. 그 시간을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쓰면 역사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센 말이 아니다. 더 넓은 정치다. 민주당 전당대회도 진영의 전사를 뽑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불안을 줄일 책임자를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국민은 싸움꾼을 기다리지 않는다. 성공한 정부를 기다린다.결국 정치의 최종 목적지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다. 개혁도 통합 위에서 완성되고, 권력도 책임 속에서 빛난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내부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공을 만드는 더 큰 정치다.

[기자의 눈] 李, 하이에나를 탓하기 전에 먹이부터 치워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 질 낮은 화폐가 시장에서 진짜 화폐를 쫓아낸다는 경제학의 '그레샴의 법칙'이다. 본질보다 껍데기가, 선보다 자극이 앞서는 구조적 왜곡을 설명하는 이 명제는 현재 한국 정치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최근 정국을 집어삼킨 '명·청 갈등'과 당무 개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직접 유럽 순방 성과 브리핑에 나섰다. 교황의 방북 요청과 유럽연합(EU)의 철강 무관세 수입 쿼터 대응 등 굵직한 성과들을 국민 앞에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다. 평소 '일잘러'와 '실용주의'를 브랜드로 내세웠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국정 동력을 끌어올릴 기회가 될 법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온통 '당청 갈등설'에 쏠렸다. 브리핑 직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순방 성과 대신 정청래 대표와의 불화설과 당무 개입 의혹에 집중됐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을 한층 자극적으로 인용하며 갈등의 전선을 부추겼다. 외교·민생 의제는 사라지고, 소모적인 권력 투쟁만 남는 '의제의 왜곡' 현상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소모적인 권력 투쟁이라는 '악화'가 대통령의 외교 성과라는 '양화'를 압도한 결과로 해석된다.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지난주, 당대표 도전이 확실시되는 송영길 의원과 비공개 만찬을 가진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정무적 민감성이 극에 달한 시점에 오해를 살 만한 행보를 자진해서 밟은 셈이다. 야당과 언론에 비판의 '먹이'를 던져준 주체는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이었다.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한 듯하다. 지지율 하락에 대해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선거 전후로 국정 운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공개 발언과 X 등에서 정청래 대표를 겨냥해 내놓는 비판 역시 국민의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영민하던 대통령의 정무적 감각이 흐려진 것 같다"는 우려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정치는 결과론이다. 그림자를 좇는 언론과 야권의 본능을 탓해봐야 소용없다. 그들이 몰려들 만한 '먹이'를 먼저 치우는 것이 순리이자, 이재명식 '실용주의'에 걸맞은 정무 감각이다. 대통령 스스로 갈등의 싹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결국 처참한 지지율 청구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이슈&인사이트] 모아타운에 거는 기대와 우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 당시 경쟁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았던 오세훈 시장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점차 지지율이 상승했다. 선거 후 출구조사에서는 5% 차이로 패배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밤새 진행된 개표 결과 역전해 최종적으로 당선되었다. 서울시에서 최초로 5선 시장이 된 오세훈 시장은 부동산 표심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 분석 결과 드러난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지지층 중에는 오세훈 시장이 기존에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모아타운 대상지 주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부 언론사는 오세훈 시장이 상대 후보보다 적은 비율을 득표했던 자치구에서도 모아타운이 추진되고 있는 행정동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비율의 득표를 했다는 분석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신(속)통(합)기획뿐만 아니라 모아타운도 오세훈 시장을 다시 지지해 사업의 추진력을 얻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아타운은 주로 도심의 주거 환경이 노후화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을 모아 하나의 마을처럼 정비하는 사업이다. 서울시가 정비구역 지정 단계에서 공공지원을 하여 전체 정비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신통기획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모아타운은 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라 시행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소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지역에서는 기존의 낮은 사업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 재개발·재건축에 비해 소규모 정비사업은 추진위원회 단계가 생략되어 있고, 조합 설립 이후 사업시행계획인가에 관리처분계획을 포함해 받으면서 행정 업무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된다. 이런 절차적 완화는 정비사업 추진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금융비용을 구조적으로 줄이는 수단으로 기능하므로 상대적으로 큰 인센티브로 인식된다.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문제는 모아타운을 구성하는 모아주택이라는 소규모 정비사업들이 도시정비법에 따른 일반 재개발·재건축보다는 사업성이 낮다는 점에 있다. 물론 도심에서 대규모로 정비사업을 하려면 정비구역 지정 요건이나 동의율 충족에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일부 구역만 소규모로 사업을 시행하면 더 신속한 추진이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소규모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정비기반시설을 개선할 여지가 줄어들고, 일반 분양 물량 증가로 사업성 확보가 곤란하다. 실제로 2025. 8. 기준 서울시 모아타운 사업장 총 107곳 중 93%가 서울시 평균 공시지가보다 공시지가가 낮은 지역이다. 분양가는 일반적으로 지가에 비례하기 때문에 낮은 지가는 사업성에 제약 요인이다. 서울시는 이런 낮은 사업성을 해결하고자 소규모 정비사업의 경우 용적률을 완화하고, 보정계수를 도입해 임대주택 비율이나 기부채납 등 공공기여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에 모아타운 내 모아주택 간 건축협정이나 특별건축구역 지정으로 정비기반시설 통합 개발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아타운은 근본적으로 여러 소규모 정비사업의 집합체다. 모아타운 전체가 하나의 사업지가 아니다 보니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높아진 공사비로 분양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1군 건설사들은 참여를 꺼린다. 설령 중소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해도 공사비가 이미 높은 상황이라 미분양, 임대 수입 상실, 추가 분담금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최초 모아타운에 대해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던 정비업체나 조합 관계자가 실제 사업이 진행되면서 예상보다 많아진 추가 분담금을 조합원들에게 제시하는 순간 조합원들은 혼란에 빠진다.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등 임원 급여에 대한 불만이 더해 지면 조합은 극심한 내분을 겪게 된다. 여기에 사업비나 이주비 대출을 받은 상황이라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금융비용에 조합원들의 시름은 깊어 가고, 정비사업은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된다. 모아타운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지 않으려면, 최초 모아타운 지정 시부터 신중하게 대상지를 선정하고, 필요시 해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오세훈 시장의 연임에는 모아타운 정책을 지지하는 주민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성 확보가 가능한 구역은 공공지원 강화로 신속한 추진을 돕고, 그렇지 않다면 주민 의견을 수렴해 매몰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지지해 준 주민들을 위한 길일 것이다. 양희철

[EE칼럼] 산을 푸르게 만든 것은 식목일이 아니라 석탄이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약 63%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산림국가다. 오늘날의 울창한 산림은 흔히 식목일이나 산림녹화 정책의 성과로 설명되지만, 에너지 전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정용 연료의 대부분은 땔나무였으나, 태백 탄전 개발과 연탄 보급 확대에 따라 난방 연료가 나무에서 석탄으로 전환되었다. 산림이 회복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림 사업뿐 아니라,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널리 보급되면서 산림 훼손 압력이 감소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에너지 전환이 환경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는 해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지난 20년간 탄소배출량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발전 연료의 변화였다. 셰일혁명을 통해 공급된 저렴한 천연가스가 석탄 발전을 대체했고, 동시에 여러 주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향상 정책을 추진했다. 정책과 시장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사례는 탄소중립이 단일한 해법만으로 달성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환경단체들은 천연가스 역시 화석연료라는 한계를 지적했고, 반면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의 현실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기술, 정책 수단이 상호 경쟁하고 조정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의 경험은 탄소 감축이 이상적인 해법보다는 현실적인 선택과 점진적인 변화의 축적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의 사례는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인 동시에 세계 최대 태양광·배터리 생산국이다.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흐름이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점을 일찍 인식하고,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관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청정에너지 산업은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역할은 단순히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태양광 발전 비용이 크게 하락한 배경에는 중국의 대규모 생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국제사회가 정책을 통해 시장을 형성했다면, 중국은 제조 역량을 통해 기술 보급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는 에너지 전환이 환경정책인 동시에 산업정책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 역시 주목할 만하다. 유럽연합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을 추진해 온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산업 경쟁력 확보가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2024년 발표된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의 보고서는 높은 에너지 비용이 유럽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탈탄소화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탄소중립의 성공이 목표 선언 자체보다 실현 가능한 이행 경로를 마련하는 데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탄소중립은 환경정책인 동시에 산업정책이자 에너지정책이다. 그러나 국내 논의는 여전히 감축 목표나 특정 기술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탄소중립이 새로운 성장 기회보다는 비용과 규제로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 중국, 유럽의 경험은 공통적으로 탄소중립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기술, 공급망, 에너지 안보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전략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탄소를 얼마나 감축하느냐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떠한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있다. 지방정부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단순한 감축 사업의 나열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일자리, 에너지 체계와 연계된 발전 전략으로 설계해야 한다. 지역의 여건과 비용 부담, 산업 구조를 고려한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환 경로가 요구된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균형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 탄소중립 역시 이상과 현실, 환경과 산업, 규제와 성장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지속 가능하게 수용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는 데서 출발한다. bienns@ekn.kr

[데스크칼럼] ‘깜깜이 사후정산’ 깬 정유업계, 신뢰 회복의 첫발 뗐다

유가가 요동칠 때마다 국내 석유 시장에서는 어김없이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주유소 판매 가격이 치솟으면 소비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왜 올릴 때는 번개처럼 빠르고, 내릴 때는 거북이처럼 굼뜨냐"는 불만이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가 내놓는 해명은 늘 비슷하다. 국제 제품 가격의 변동성, 환율, 그리고 유통 시차 때문이라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수식과 설명은 정작 매일 기름을 넣는 소비자의 체감과는 거리가 멀다. 핵심은 가격의 절대적인 높고 낮음이 아니다. 그 가격이 도대체 어떤 경로와 기준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소비자 눈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 즉 '과정의 불투명성'에 있다. 시장은 가격의 등락은 견딜 수 있어도, 설명되지 않는 등락에는 참지 못하는 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SK에너지가 발표한 주 단위 공급가격 사전 확정과 사후정산 폐지 조치는 정유업계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로 눈여겨볼 만하다. 그동안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거래는 제품을 먼저 공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시장 시세를 반영해 뒤늦게 값을 매기는 '사후정산' 구조가 관행처럼 유지돼 왔다. 국제유가 변동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였다고는 하나, 유가 급등기에 주유소가 미래의 정산 리스크를 소비자 가격에 선반영해 가격을 빠르게 올리는 빌미로 지목돼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정유사 공급가격 사전 확정이라는 새로운 체계에서는 주유소들이 매입 가격을 미리 알고 판매가를 세울 수 있게 된다. 가격 결정 과정 자체가 시장과 소비자에게 한결 읽기 쉬워지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값을 직접 깎아주는 단기적 처방을 넘어, 값이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를 투명하게 여는 본질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정유사·주유소 간 체결된 상생협약의 후속 조치로서, 약속을 이행하려는 선제적 결단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도 있다. 원유라는 하나의 원자재에서 휘발유, 경유 등 여러 제품이 동시에 쏟아지는 정유 공정 특성상, 품목별 원가를 칼로 자르듯 완벽하게 공개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완전한 원가 공개가 차단되어 있다면, 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가격이 정해지는 규칙과 절차를 시장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바로 그 최선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세계 5위권의 정제 역량을 바탕으로 평시에는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위기시에는 국내 에너지 공급망을 사수하는 중추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함께 발표된 영세 운수 사업자를 위한 경유 리터당 50원 한시 할인이나, 중동산 원유 비중을 70%에서 50%로 낮추겠다는 도입선 다변화 계획 역시 민생 안정과 에너지 안보라는 책임감의 발로일 것이다. 번번이 불거지는 기름값 논란 앞에서 그동안 정유업계는 해명과 방어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거래 구조 자체를 손보겠다고 나선 것은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뚜렷한 첫걸음으로 평가할 만하다. '설명할 수 있는 가격'만이 소비자의 납득을 이끌어내고 정유업계를 향한 고질적인 색안경을 벗길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화려한 듯 초라한 이재명 정부 1년 경제 성적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5주 연속 하락하며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긍정보다 부정이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리얼미터가 이달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4.8%포인트 하락하며 46.7%, 부정 평가는 5.5% 포인트 상승해 49.7%를 기록했다. 오차 범위 내지만 추세를 되돌리지 못하면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정책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지율 하락의 표면적 이유는 6·3 지방선거 관리 부실과 여당 내 당권 싸움이 거론된다. 하지만 출범 1년이 지났는데도 고용 악화와 부동산 시장 불안, 자산 양극화, 내수 침체 등 먹고 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게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역대 정부가 하지 않았던 상법 개정을 추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 건 평가할 만하다. 그 결과 코스피 지수는 3000선 아래에서 1년 만에 9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반도체 시장 활황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으나 상법 개정 등을 통해 자본시장을 주주친화적으로 개혁한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화려한 증시 뒤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한국 경제의 민낯이 있다. 먼저 고용 참사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상용 근로자 수가 1년 전보다 7000명 줄었다. 정규직을 포함해 고용 안정성이 높은 상용 근로자 수가 감소한 건 외환위기 영향을 받았던 1999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무엇보다 고용 악화로 청년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지난달에만 20, 30대 청년 20만 명 가까이 상용직을 잃었다. 기업들이 경력자 위주로 채용하면서 취업 활동을 포기하는 사회 초년생이 계속 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약발도 떨어지고 있다. 규제 지역을 확대하고 대출을 조이면서 초고가 주택 상승세는 다소 꺾였으나 중저가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면서 서울 아파트값이 1년 새 13% 가까이 올랐다. 특히 15억 원 이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며 청년과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졌다. 정부는 보유세 등 부동산 세금을 인상해 집값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진보 정부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실질적인 주택 공급이 뒷받침돼 시장 신뢰를 쌓지 못하면 어떤 부동산 정책도 백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급등은 양극화를 심화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반도체 종목과 그 외 종목, 서울 강남 주택과 지방 부동산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등 자산시장 자체의 쏠림 현상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구조적 불평등까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양극화를 방치하면 민주주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 양극화는 극단주의자들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3고)의 역습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3고는 내수 산업을 황폐화한다는 측면에서 신속한 처방이 필요하다. 내수 침체가 얼마나 심한지는 몇 가지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올해 1~4월 개인파산 신청이 급증하며 코로나19 영향이 있었던 202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환율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높은 금리를 버티지 못해 문을 닫는 중소 제조업체와 소상공인들이 늘고 있다. 장사를 할수록 적자만 쌓인다고 푸념하는 골목상권 사장님이 한둘이 아니다. 사업 자금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금융권 연체율도 치솟고 있다. 수출 실적과 코스피만 보면 폭죽이 터지듯 화려하지만 실물 경제는 살얼음판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실상이 이런데도 정부는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태평하기만 하다.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수출과 증시가 동시에 내리막길을 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수출과 증시의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노동 개혁과 양극화 해소 등 진짜 중요한 과제를 방치하면 이재명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더 초라해질 것이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반도체 머니로 뜬 집값도 규제로 잡겠다고?

최근 경기 남부권 부동산 시장이 무섭게 끓어오르고 있다. 화성 동탄의 주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2%를 돌파하며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분당선 라인인 용인 수지와 성복 일대 역시 '갈아타기' 수요가 몰리며 전용 84㎡ 호가가 17억~18억 원을 넘나든다. 서울 강남과 한강벨트에서 시작된 불길이 경기 남부의 '반도체 산업벨트'를 따라 급격히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번 상승장의 시동을 건 동력은 명확하다. 세계적인 반도체 호황에 따른 막대한 성과급과 유동성, 즉 '반도체 머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흘러나올 유동성만 수십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 속에, 시장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주택가격전망지수가 5개월 만에 최고치(120)를 기록한 점은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는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가 다시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정부의 진단과 처방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인상을 골자로 한 '부동산 과세 정상화'를 예고했다. 비거주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축소하고 똘똘한 한 채의 보유세를 높여 투기 심리를 꺾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성장의 과실이 미래 산업이 아닌 부동산으로만 쏠리는 현상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집값을 잡기 위해 다시 '세금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과거 실패했던 규제 일변도 정책의 기시감을 지우기 어렵다. 세금 인상을 통한 수요 억제책은 언제나 치명적인 부작용을 동반했다. 첫째는 '매물 잠김'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된 상황에서 양도세를 더 올리면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버티기에 들어간다.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은 외려 더 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둘째는 '조세 전가'다. 늘어난 보유세 부담은 고스란히 세입자의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전가되어 무주택 서민과 실수요자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반도체 호황의 온기를 전혀 누리지 못한 지방이나 미분양 지역의 실수요자들까지 전국적인 규제 강화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 기자가 취재 중 만난 복수의 수요자들은 “반도체 돈은 구경도 못 했는데 왜 전 국민이 증세 폭탄을 맞아야 하느냐"는 불만과 함께, “보유세를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 중심으로만 자산이 압축되는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동산 시장은 징벌적 과세로 통제할 수 있는 통계학적 그래프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유동성이 결합한 살아있는 생명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의 멱살을 잡는 세금 규제가 아니다. 규제의 사각지대를 정교하게 짚어내는 '핀셋 금융 규제'와 함께, 수요가 몰리는 수도권 핵심지에 질 좋은 주택을 원활하게 공급하겠다는 '명확한 공급 로드맵'을 보여주는 정공법(正攻法)이다. 정부가 7월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때 공급 확대와 임대시장 안정화 대책을 동시에 발표해야 하는 이유다. 시장에 오기를 부리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