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애 의원 “‘부겸풍(風)’ 대구에서 경북까지”

임미애 의원 “‘부겸풍(風)’ 대구에서 경북까지”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가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할 때 바로 옆에서 눈물을 훔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경북도당 위원장인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작년 늦가을부터 수차례 김 후보의 출마를 설득해 온 당사자 중 한명이다. 임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그날을 떠올리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고 말했다. 미안함은 당선이 쉽지 않아서였고, 고마움은 그럼에도 결심해 줬기 때문이었다. 대구·경북(TK)에서 민주당 깃발을 드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의 감정이었다. 그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이슈&인사이트] 임대시장 정책 부재가 키운 매매가, 사각지대에 선 월세시민들

다음 달 9일로 다주택 양도세 중과 유예가 끝나고 4월 17일부터 다주택자의 수도권·규제 지역 아파트 담보대출 만기 연장이 전면 중단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정부의 규제로 서울 집값이 하락했을 거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실제 계약된 아파트 매매 사례를 전수 분석한 결과, 시장의 가격상승이 오히려 강해졌다. 20일 서울시가 공개한 한국부동산원의 '2월 서울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지수'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전월 대비 1.9% 상승했다. 이는 지난 1월의 상승 폭을 앞지른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부 규제의 직격탄을 월세 시장이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사철이 한창이지만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5427건으로 2년 전인 2024년 4월18일(3만750건) 대비 49.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실거주 의무가 부여되면서 갭투자가 차단된 영향이 컸다. 전세 품귀 속에서 기존 전세 계약 갱신을 택하는 세입자가 늘었고 전세 매물은 귀해진 상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3만1458건 가운데 갱신 계약은 1만5719건으로 그 비중이 49.9%에 이르렀다. 1년 전 같은 기간(38.8%)과 견줘 11%포인트 이상 늘어난 수치다. 게다가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6억149만원으로 6억원선을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상승세가 주춤한 가운데 전셋값이 오르자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지난달 52.1%로 11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다주택자가 매물을 많이 내놓으면 수요의 변동이 없다면 공급이 증가하기 때문에 매매가는 하락한다. 하지만 임차수요에서 매매수요로 전환된 이들이 매매시장으로 들어와 매매수요를 늘린다면 다시 매매가격은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고 수요가 좀더 급격하게 증가하면 매매가가 전보다 더 오른다. 정부의 규제와 전세 품귀로 인해 매매시장으로 넘어오는 임차수요는 중저가 매매시장에 좀 더 집중될 거라는 예상은 들어맞고 있다. 6억 정도 전세로 살던 사람이라면 그동안 저축을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7-8억 짜리 집은 일부 대출을 통해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다. 마찬가지로 그보다 싼 3-4억의 전세를 살던 사람도 6억 이하의 집을 사려고 할 것이다. 임대 물건 부족으로 중,저가 시장의 매매시장의 수요가 늘어났다. 그 결과 서울시 전수 조사에서 이 중저가 시장이 살아나면서 2월에 가격이 전월 대비 1.9%가 오른 결과치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전세가 아니라 월세 물건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 월세 물건은 1년 전 대비 24.9%, 2년 전 대비 16.9% 줄어든 1만5009건으로 집계됐다. 전세난 속에서 월셋집이라도 구하려는 임차인들이 늘어나면서 월세나 반전세 물건의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부동산원 시세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는 지난달 152만8천원으로, 월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민간 임대공급은 줄고, 공공임대나 사회주택도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중,저가의 전세를 살던 사람들은 매매시장으로 옮겨 갈 수 있겠지만 보증금이 없어 월세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깡통전세의 구렁텅이로 몰려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전세 보증금이 없어 월세를 선택해야만 하는 서민층의 주거 불안이 심해지는 상황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공공주택, 사회주택의 확충 등 정부의 임대시장 대책이 시급하다. bienns@ekn.kr

[EE칼럼] 탄소중립형 AI 데이터 센터

필자가 유학 시절 학생 가족이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인도계 가족이 있었는데 나름 엘리트 의식이 있고 서구 문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자신들 가족이 모두 채식주의자들이라고 해서 조금 놀랜 적이 있었는데 인도인이 채식주의여서가 아니라 체형이 채식주의자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상인 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체형인데 그런 채식주의자들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가 물어보니 주식이 감자 튀김이었다. 감자가 채소임에는 틀림없으니 채식주의자는 맞는 셈이다. 반대로 카니보어 다이어트(Carnivore Diet)라는 고기만 먹는 다이어트가 있는데 육류만을 섭취하여 체중감량, 혈당조절, 소화기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탄소중립 정책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탄소중립은 '배출을 줄인 결과'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이 단순한 정의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탄소중립은 결과가 아니라 특정 수단, 즉 재생에너지로 치환되었다. 그 결과 정책은 목표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전제는 어디에서도 검증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정책은 이 전제를 사실상 교리처럼 취급하고, 다른 선택지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정책이 아니라 신념에 가깝다. 목표를 수단으로 환원하는 순간, 정책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스스로 경직된다. 이러한 전제의 취약성은 AIDC(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24시간 끊김 없는 공급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조달만을 허용하겠다는 접근은 현실 조건을 무시한 채 이상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과학기술부가 LNG 등 다양한 발전원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현실 인식에 가깝다. 반면 이를 배제하려는 입장은 정책 목표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설정된 전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에 가깝다. 더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LNG 발전이 경제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가장 현실적인 전력 공급 수단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계통 제약으로 인해 대규모 상시 부하를 단독으로 감당할 수 없고, 저장 기술 역시 아직 비용과 규모 측면에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반면 LNG는 비교적 낮은 비용과 높은 운용 유연성을 바탕으로 실제로 작동하는 전력 공급 수단이다. 그럼에도 이를 배제한다는 것은, 정책이 현실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전원을 제거한 채 이상적인 구조만을 강제하면 결과는 명확하다. 기업은 비용 상승을 감수하거나, 불확실한 전력 환경을 떠안거나, 아예 다른 국가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장 반응이 아니라 정책 설계 실패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다. 결국 탄소중립을 내세운 정책이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전력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로 설계의 부재다. 배출을 얼마나, 어떤 속도로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계획 없이 특정 수단만을 앞세우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선언은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 공백을 시장은 불신과 회피로 채우게 된다. 탄소중립은 수단이 아니라 결과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결과를 관리하기보다 수단을 강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정책은 점점 더 많은 예외를 만들고, 더 많은 갈등을 유발하며, 더 낮은 신뢰를 낳는다. 전제가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은 수정되지 않는다. 충돌할 뿐이다. 고기를 끊는 것만으로 건강이 보장되지 않듯,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이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수단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만 해법을 찾는 접근은 결국 목표를 왜곡한다. 탄소중립을 진정으로 달성하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강제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설계다. 지금의 방식은 전환을 가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연시키고 있다. 뚱뚱한 인도인 채식주의자들을 생각나게 하는 이유이다. ekn@ekn.kr

[기자의 눈] ‘에너지안보 = 재생에너지’라는 함정

최근 중동 정세 불안이 확대되면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는 수입 연료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태양과 바람은 특정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자원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에너지 안보는 '발전원'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일까. 재생에너지는 연료를 수입하지 않는 대신, 설비와 소재를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 에너지저장장치에는 희토류와 리튬 등 핵심 광물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이들 자원의 가공과 정제는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연료 의존도가 줄어드는 대신 설비와 소재 측면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의존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번 이란 사태처럼 주요 해상 물류 경로가 흔들릴 경우, 원유뿐 아니라 이러한 부품과 소재의 수급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력 시스템 운영 측면에서도 고민은 이어진다.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전원이 필요하다. 실제로는 원전이나 LNG 발전, 혹은 에너지저장장치가 함께 운영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과 설비 투자 역시 에너지 정책을 논의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할 요소다. 송전망 문제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재생에너지는 입지 특성상 발전지와 수요지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발전 설비 확대와 동시에 송전망 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생산된 전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송전 제약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점을 종합해 보면,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어떤 에너지원이 더 안전한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연료, 설비, 공급망, 계통, 비용이 모두 얽힌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재생에너지는 분명 중요한 축이다. 다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전의 안정성, LNG의 유연성, 재생에너지의 환경성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정책은 특정 방향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큰 환경 속에서 리스크를 나누는 작업에 가깝다. 이번 이란 사태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K-패션 키운 무신사, 어디까지 진화할까

최근 기자가 주변에 가장 많이 한 말을 생각해보니 “무신사에서 샀어"와 “무신사에 팔던데"였다. 무신사로 시작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패션과 뷰티를 아우르는 모든 트렌드를 무신사를 통해 향유하고 있다. 무신사에서 한 번도 구매를 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구매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연 무신사는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무신사의 출발점을 보면 지금의 매머드급 기업으로 성장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2001년 창업자 조만호 대표가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로 시작해 스니커즈 마니아를 위한 놀이터의 성격이 강했다. 이후 2009년 온라인 스토어 무신사를 론칭하고 본격적으로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는 스니커즈를 기본으로 옷, 화장품, 디지털·생활용품, 키즈, 명품(부티크) 등 거의 모든 카테고리를 다루고 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표현에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무신사는 소비자들의 높은 충성도를 등에 업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2024년 처음으로 매출 1조원를 돌파했고, 작년에는 영업이익이 2년 연속 1000억원을 넘는 실적을 냈다. 국내를 넘어 해외 MZ세대에서도 트렌드의 성지로 여겨져 오프라인 매장이 위치한 서울 성수, 강남, 홍대, 명동 주변에서 무신사 쇼핑백을 든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기자의 일본인 지인도 “오프라인으로 무신사를 즐기고 싶다"며 무신사 매장을 서울 관광코스 1순위로 꼽는다. 무신사의 역량은 유통 플랫폼을 넘어 패션산업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부분이 가장 놀라운 점이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생태계를 구축해 이들이 유명 브랜드와 경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신사를 연결고리로 한국 패션산업의 수준이 오르고 K-트렌드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무신사가 한국 패션산업과 K-트렌드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이어가려면 입점 브랜드의 이탈과 경쟁 플랫폼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차별화 전략은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국내외 경영환경 악화 속에서 물류·마케팅 비용 효율화 및 성장·수익성 균형 전략도 필요하다. 한국 패션산업의 성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신사가 올해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안전’ 챙겼더니 사용자… 산업 발목잡는 ‘책임의 역설’

건설 현장에서 안전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청 기업은 사고가 나면 형사 책임까지 져야 한다. 그래서 달라졌다. 대형 건설사들은 현장 통제력을 강화했고, 안전 관리 시스템을 더 촘촘하게 구축했다. 관리하지 않으면 책임을 진다.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그렇게 강화한 '안전 관리'가 이제는 또 다른 책임을 부른다. 노란봉투법 체계에서는 그 관리 자체가 '사용자성'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안전을 챙겼더니, 사용자로 인정되는 구조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SK에코플랜트 판단은 이 충돌을 그대로 보여준다. 형식은 하청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원청이 작업 방식과 안전 절차를 통합 관리한다면, 실질적 사용자라는 판단이다. 안전관리 애플리케이션, 작업 프로세스 통제, 위반 시 제재. 근거는 충분했다. 결론은 명확하다. 안전을 지배하면, 노동도 지배한다.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판단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플랜트·건설 산업은 다층적 하도급 구조 위에서 돌아간다. 원청은 공정을 관리하고, 하청은 고용을 맡는다. 구조적으로 분리돼 있다. 그런데 안전 책임이 강화되면 상황이 바뀐다. 원청의 개입은 깊어지고 개입이 더할수록 통제는 강해진다. 그 통제는 다시 사용자 책임으로 돌아온다. 결국 선택지는 줄어든다. 현장의 말은 단순하다. 안전을 강화하면 노조 교섭 의무가 생긴다. 안전을 느슨하게 하면 형사 처벌 위험이 커진다. 어느 쪽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있다. “움직일수록 더 얽히는 구조." 지금 현장은 그 구조 안에 있다. 법은 각각의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하나는 안전을, 하나는 노동권을 보호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충돌한다. 그 충돌은 새로운 리스크를 만든다. 이 문제가 더 큰 이유는 산업의 위치 때문이다. SK에코플랜트가 맡은 사업은 단순한 건설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 인프라다. 용인과 청주에서 진행되는 공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의 핵심 거점이다. 지금은 속도의 싸움이다. 먼저 짓고 먼저 생산하는 쪽이 시장을 가져가는 무한경쟁이다. 늦으면 기회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사 지연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다. 노사 교섭이 길어지면 일정이 밀린다. 일정이 밀리면 생산이 늦어진다. 생산이 늦어지면 고객이 떠난다. 결국 시장이 이동한다. 개별 기업 한곳의 손실이 아니다. 산업 전체의 손실이다. 물론 노동권 보호는 중요하다. 하청 구조 속에서 노동자가 실질적 의사결정 주체와 교섭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타당하다.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방식이 산업의 작동 자체를 늦춘다면, 그것은 올바른 설계인가라는 지점에 봉착한다. 법은 현실을 교정해야 하며 동시에 현실과 작동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맞으면 시스템은 흔들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정밀함이다. 안전 책임과 사용자 책임을 같은 선 위에 놓는 것이 아니라, 개입의 수준과 성격에 따라 나눠야 한다. 기준이 정교해질수록 충돌은 줄어든다. 반대로 지금같은 일이 이어진다면 결과는 명확하다. 기업은 방어적으로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 만약 현장은 느려진다면 산업은 위축될수 밖에 없다. 이번 사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대목이다. 안전을 확보하려 만든 제도가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설계다. 균형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다. 노동자도 아니다. 산업 그 자체다. 본질은 하나다. 안전을 관리하는 순간 사용자로 간주되는 구조, 그 구조가 지속 가능하냐는 질문이다. 답은 아직 찾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움직이고 있고 기업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공사 현장에서는 같거나 유사한 리스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봐야 한다. 지금의 충돌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고 한국 산업이 '책임의 경계'를 다시 설정하는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속도다. 제도의 속도가 산업의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균형 없는 전환은 혁신이 아니라 비용이 된다. 결론은 하나다. 책임을 넓힐수록, 기준 또한 더 정밀해져야 한다.

[이슈&인사이트] 미국 건국 250주년과 트럼프 대통령

4월 1일 미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비행사 4명을 태운 아르테미스 2호가 솟구쳤다. 2022년 아르테미스 1호는 마네킹을 태워 안전성을 시험했는데 이번에 2호는 달의 뒤쪽까지 돌아보고 열흘 만에 귀환했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을 탐사한 지 무려 54년 만이다. 인류의 역사에 또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하지만 미국 영광의 빛이 가려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란 전쟁 때문에 반미정서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미 국무부가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집권 초에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을 닫았던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우호적인 홍보를 위하여 다시 열었다. 국내적으로 트럼프 반대도 최고조다. 3월 28일 미 전역 3천여 건의 노 킹스(No Kings) 집회에 약 8백만 명이 모였다. 미국 역사상 단일 시위로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민 단속 반대에 그치지 않고 제왕적 대통령을 성토했다. 트럼프는 법 위에 군림하려고 해왔다. 그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제한적 관세 부과를 추진했다. 그는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한법에 나오는 규제(regulate)와 수입(importation)이라는 단어에 근거해 대통령이 어떤 국가의 어떤 제품이든 원하는 세율과 기간으로 관세를 부과할 독자적 권한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2월 말 대법원은 독립혁명이 대표 없는 과세에 반발해 일어났고 과세권은 오직 의회에만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대법관도 위법이라고 본 판결은 “대통령이 관세 부과라는 비상한 권한을 정당화하려면 명확한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3월 말에는 백악관 이스트윙 철거 뒤 1천 명 수용 초대형 연회장을 건설하려던 트럼프의 계획도 법원에 의하여 막혔다. 지난해 이스트윙을 부순 뒤 기초공사까지 진행했는데 연방지방법원은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 연회장을 건설할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불 만한 어떤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제동을 걸었다. 곧 트럼프의 출생시민권 제한 관련 대법원 결정도 나올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출생시민권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취임 첫날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이 제도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헌법적 출생시민권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제한하려는 시도였다. 마가렛 맥밀런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트럼프처럼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모두 파괴적인 대통령은 찾기 어렵다"라고 단언한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동맹국을 무시하고 통용되는 외교 문법을 외면한다. 이란 전쟁은 자신이 일으켰는데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려면 남들이 알아서 나오라는 한다. 휴전 협상을 앞두고선 이란과 함께 호르무즈 통행료를 징수하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다. 트럼프는 지난해부터 “7월 4일에 세계 최대 규모 생일 파티를 열" 것이라고 하면서 전담 부서도 만들었다. 미국에 없는 개선문도 최고로 건설하겠단다. 지난 250년 동안 13개 주의 농업국가에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약 26%(28조 달러)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 국가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만으로도 인도(5위)나 영국(6위) 국내총생산을 앞선다. 그런데 트럼프 시대의 이란 전쟁으로 팍스 아메리카가 흔들리는 듯하다.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하나인 토마스 제퍼슨는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했다. 그의 묘비명에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저자이며,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안의 저자이고,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다"라고 적혀있다. 신형전함도 트럼프급이라 만들고 고액 이민 프로그램 카드 이름도 트럼프라고 쓰고 케네디 센터도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바꾸었다. 과연 그의 묘비명에는 뭐라 쓰일까. bienns@ekn.co.kr

[EE칼럼] 전력감독원 신설, ‘옥상옥’보다 거버넌스 개편이 먼저다

지난 4월 13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력망 안정 확보 위해 기술기준 고도화 및 전력감독체계 개선 공감대 형성'이란 긴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결론은 '전력감독원' 신설이 필요하다는 점인데 굳이 에둘러 길게 표현했다. 지난 30여 년간 전력산업을 참관해 온 필자가 제목을 받아들고 먼저 든 생각은, 새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전력 기득권'이 새로운 환경을 핑계로 또 무슨 일을 벌이는구나 하는 우려였다. 여기서 전력 기득권은 전력산업 정책 결정에 관여하면서 시대변화의 수용을 거부하는 기관이나 관련 종사자를 뜻한다. 보도자료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뀐 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재생에너지 100GW' 에너지 시대를 앞두고 전력망 운영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그 예로 2024년 대비 2025년 출력제어 횟수가 3배(27회→82회), 제어량이 9배(12.4→109.4GWh) 증가했다고 했다. 따라서 '전력감독원을 신설'해 '선수와 심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전력감독원의 역할은 크게 전력망 감독과 전력시장 감시 두 축으로 구성하고, 전력망 감독 측면에서는 '전력망 기술기준(그리드코드)'의 고도화 및 이행 관리, 출력제어ㆍ비상조치 등 전력망 운영 조치의 적절성 평가, 주요 설비 고장 원인의 체계적 조사, 재생에너지 등 분산전원 통합관제 체계 확립을 위한 기관 간 협조체계 마련에 역점을 둘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전력시장 감시 측면에서는 △시장 내외의 부당거래 감시, △시장 가격ㆍ집중도ㆍ지배력 분석을 통한 경쟁구조 평가, △신규ㆍ소규모 사업자의 시장 진입 장벽 점검, △전력시장과 장외거래 간 연계 적정성 및 거래 효율성 평가와 함께 △전기사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 조정 절차 지원 등 소비자보호 업무를 주요한 역할로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도자료에서 제시된 전력감독원을 신설하고자 하는 이유 자체도 적절하지 못하고, 제시된 역할들이 필요하기는 하나 전력시장 및 산업의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출력제어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전력감독 역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송배전망 등 계통 안정화 투자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다. 이는 전력감독원 신설에 앞서 미래지향적인 전력시장 구조 개편과 이를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더 시급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불행히도 이번 보도자료에는 이러한 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전력감독원은 기후에너지환경부 및 전기위원회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유지하되, 기관 자체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관련 근거를 법률에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옥상옥'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러-우 전쟁과 중동 전쟁을 거치며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기반이 되는 전력산업으로의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필요하고, 또한 AI 시대를 맞아 전력이 AI를 뒷받침하고 AI가 전력산업을 꽃피우도록 이끄는 정책 역시 절실하다. 다시 말해서 탈탄소화(De-carbonization), 지역 분산화(Decentraliz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통해 마주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함과 동시에 전력 신산업이 자리잡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당장의 모양뿐인 전력감독원 신설에 앞서 최소 세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 첫째, 전기요금 결정의 독립성이 필요다. 전기요금이 '비합리적 규제 요금'에서 벗어나 '실시간 시장 가격'이 되어야 한다. 둘째, 계통 투자가 적기에 이루어지도록 대대적인 거버넌스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송전 부문은 전력거래소와 통합하여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중립적인 배전 운영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전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전력감독원 설립에 앞서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전력산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플랫폼 수수료 인하, ‘소비자’ 빠져선 안 된다

금융당국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 중개 수수료 인하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저축은행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다만 정책이 의도한 방향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금융당국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대출 중개 플랫폼이 부과하는 2금융권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은행 대비 대출 중개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수수료를 은행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요 플랫폼인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에서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 부과하는 대환대출 중개 수수료는 0.8~1.3% 수준이다. 반면 시중은행은 0.08~0.18%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금융당국은 수수료 격차를 줄이면 저축은행이 절감한 비용을 금리에 반영해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도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수료율을 1.0% 안팎으로 낮추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금리는 차주의 신용 위험과 조달 비용 등 여러 요소가 반영돼 형성된다. 일반적으로 2금융권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1금융권 이용자 대비 신용등급이 낮아 리스크가 그만큼 크다고 평가되며, 2금융권은 이를 감안해 1금융권보다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책정한다. 핀테크 업계도 비슷한 시각이다. 2금융권 금리가 1금융권 보다 구조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중개 수수료만 1금융권 수준에 가깝게 낮추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중개 수수료는 저축은행이 지급하는 일회성 비용에 가깝고, 금리 산정 체계에 비중 있게 반영되지 않는 요소라 금리가 유의미하게 조정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결국 줄어든 비용은 금융회사 이익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반면 저축은행 업계는 연간 2200억~2300억원에 이르는 중개 수수료가 줄어들면 금리 인하 여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비용 절감이 금리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결국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지가 중요하다. 수수료 인하가 '금융소비자 이자 부담 완화'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리 산정 체계나 비용 절감분 반영 공시 등 세부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란 출발점을 잃게 되면 이번 논쟁은 핀테크 업계와 2금융권 간 이익 구조를 둘러싼 숫자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 호르무즈의 불길, 한국 통화정책을 옥죄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 연합의 군사작전 개시로 촉발된 중동 전쟁은, 불과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제 우리 경제의 심장부를 조준하기에 이르렀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봉쇄와 역봉쇄의 충돌은 단순한 에너지 위기를 넘어, 한국은행이 구사할 수 있는 통화정책의 선택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은 구조적이다. 수입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고,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에너지 자급률이 4% 수준에 불과한 나라에서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수로가 막힌다는 것은, 경제시스템 전체의 산소 공급이 차단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봉쇄 선언 직후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이 70% 급감했으며, 호르무즈에 발이 묶인 유조선 7척은 국내 항구 도착까지 항해하는 데만 최소 22~23일이 소요된다. 정부는 대통령 특사를 카자흐스탄·오만·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에 파견해 연말까지 원유 2억 7,300만 배럴과 나프타 최대 210만 톤을 확보했고, 현재 비축유 208일치를 앞세워 진화에 나섰지만, 봉쇄 장기화 시나리오에서 이 방어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산 원유 확대도 검토 중이지만, 국내 정유시설의 설비 최적화 조정과 블렌딩, 높은 물류비 등 장애요인이 만만하지 않다. 호르무즈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최대 50~80% 뛰고 보험료는 과거 분쟁 사례에서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전례가 있다. 물량 확보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조달 비용 급등이라는 현실은 피할 수 없다. 이 에너지 충격이 국내 물가에 파급되는 경로는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1차 충격은 직접적이다. 배럴당 유가가 20달러 오를 때마다 우리나라의 연간 석유 수입 비용은 약 10조 원 증가하는 구조다. 유가 상승이 휘발유·경유 가격을 밀어 올리고 전기·가스 요금 인상 압력으로 전이된다. 오래 3월 공업제품 소비자물가지수는 118.80(2020=100)으로, 1985년 1월 통계 시작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내구재·섬유제품·가공식품 물가지수 역시 역대 최고 또는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연간 인플레이션은 3월 2.2%로 한국은행의 목표치 2%를 이미 상회하기 시작했다. 더 위협적인 것은 2차 파급효과다. 에너지 비용 상승이 기업 원가에 녹아든 뒤, 시차를 두고 최종 소비재 가격으로 전가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5월 이후 도미노식 물가 상승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행은 4월 “물가상승률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되었다"고 명시했고, 향후 인플레이션은 중상위 2% 범위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대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성장 둔화 속에서 금리 인상은 독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는 지점이다. 산업 충격의 최전선에 석유화학 부문이 서 있다. 이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어지는 탄화수소로, 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 등 현대 산업의 기초를 떠받친다. 과자 봉지에서 의료용 장갑까지, 나프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제품들이다. 문제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수입 나프타의 54%를 중동에서 조달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전쟁 발발 이후 나프타 현물 가격은 전쟁 직전 대비 84% 가까이 뛰었고, 연초 대비로는 100% 이상 상승했다. 국내 주요 NCC(나프타분해설비) 가동률은 60% 이하로 추락했으며, LG화학은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롯데케미칼은 정기 보수를 앞당겼다. 업계에서는 4월 중순을 지나면 NCC 가동률이 30~4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온다. 정부는 나프타를 공급망법상 위기품목으로 지정하고 5개월간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 조치를 시행했지만, 원유 공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제한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 충격은 석유화학에서 자동차·전자·섬유 전방 산업 전반으로 번지며 기업 이익을 잠식하고, 고용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경로를 열어놓고 있다.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자리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서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수석이코노미스트로서 글로벌 금융 불안정성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통화정책 철학을 비교적 명확하게 피력했다. 현재 기준금리 연 2.50%를 “중립금리 추정 범위의 중간 정도 수준"으로 평가하면서도, “경기 흐름과 크레딧 리스크를 고려하면 금리 인상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못 박았다. 중동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근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전이되고 2차 파급효과가 있으면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고 밝히며, 1차 공급 충격에 대한 금리 대응보다 2차 전이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환율에 대해서는 이창용 전 총재와 마찬가지로 절대 수준보다 변동성 관리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특히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차가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는, 원화 절하를 막기 위한 금리 인상보다 달러 유동성 확보와 시장 개입이라는 수단을 선호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다면 향후 통화정책의 향방은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한국은행은 4월 10일 금통위에서 7회 연속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했다. 이번 결정은 인플레이션 상승과 외환시장 변동성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내려진 것이다. 관건은 중동 전쟁이 단기 공급 충격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근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2차 효과로 번질 것인지다. 전자의 시나리오에서 한국은행은 동결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이란 협상 타결을 기다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0~21일경 2차 협상 재개를 예고한 만큼, 외교적 돌파구가 열린다면 유가는 급격히 안정될 수 있다. 후자의 시나리오는 훨씬 까다롭다. 기업 원가 상승이 소비자 가격으로 본격 전가되고 임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은행은 성장 둔화를 감수하고도 선제적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하는 기로에 설 수 있다. 동시에,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수입 물가를 통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악순환도 경계해야 한다. 4월 말 영국 국왕의 미국 방문, 5월 중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이 대기 중인 만큼, 당분간은 협상 재개 국면을 중심으로 시장 변동성이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미국-이란 전쟁이 한국 통화정책에 던지는 핵심 과제는, 공급 충격발 인플레이션과 수요 위축발 경기 하강이라는 두 개의 함정 사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통과하느냐다. 신현송 체제의 한국은행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 앞에는 교과서가 상정하지 않은 지형이 펼쳐져 있다. 호르무즈의 불길이 어느 방향으로 번지느냐가, 당분간 한국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외생변수가 될 것이다. ekn@ekn.kr

[EE칼럼] 지구의 날, 다시 생각하는 환경의 의미

4월 22일 오후 8시,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하여 주요 랜드마크와 공공기관의 조명이 꺼진다. 1970년 시작된 지구의 날(Earth Day)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부터 우리나라가 시작한 소등행사다. 이 행사를 통해 얻는 전력 절감 효과는 작지만, 그보다 도시의 불빛이 잠시 멈추는 장면은 평소 당연하게 사용하던 에너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원유유출 사고를 계기로 시작된 지구의 날은 레이첼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과 함께 근대 환경운동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발표된 “지구의 날 선언문"은 인간이 환경파괴와 자원 낭비로 인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던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의 생활 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UN이 정한 환경의 날(6월 5일)은 국가와 정부 중심의 하향식(top-down) 성격을 가진 반면, 지구의 날은 시민이 중심이 되어 환경 문제를 국가 및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상향식(bottom-up) 운동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해외에서는 해변 청소, 나무 심기, 학교 교육, 지역 장터, 기후행진 같은 시민참여형 활동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 지구의 날 주제는 “Our Power, Our Planet"이다. 여기서 Power는 전기와 에너지 외에 시민의 힘을 뜻한다. 이 주제를 선정한 배경에는 전쟁과 경기 침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세계의 관심이 당장의 경제와 안보 문제에 집중되면서 환경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밀리고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반영되어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1,900만~2,300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강과 호수,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권고 기준을 넘는 오염된 대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해외 주요 언론들도 지구의 날을 맞아 환경문제의 현실적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로이터(Reuters)는 물 부족과 생물다양성 문제가 농업과 생활비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 가디언(Guardian)은 자연생태계 훼손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재난 대응 능력과 식량 및 물 공급 안정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결국 환경은 식량과 물 공급, 에너지 안정처럼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중요한 조건이자 기반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물론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자원 관리, 산업 규제, 에너지 전환, 폐기물 제도는 제도적 설계 없이는 작동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너지 사용, 소비 습관, 이동 방식, 생활 속 선택은 결국 시민의 행동에서 결정된다. 결국 올해, 지구의 날 주제어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지구를 지키는 일은 정부만의 일이 아니라 시민의 작은 실천과 지속적인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소등이라는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의 폭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지역 단위 청소 활동, 학교 중심 환경교육, 생활 속 자원순환 실천 같은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함께할 때 지구의 날은 더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환경은 거대한 선언보다 반복되는 생활의 변화 속에서 오래 남는다. 미국에서 도시 녹화와 생활환경 개선 운동을 이끌었던 전 영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은 “환경은 우리 모두가 만나는 곳이며,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2일, 전국의 불빛이 10분간 잠시 줄어드는 시간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다. 그 짧은 시간은 환경을 정부의 과제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시민 각자가 생활 속에서 먼저 실천할 것인지를 묻는다. 결국 환경은 누군가 대신 책임질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삶의 기본 조건이다. ek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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