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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수년 전 미국케이블 TV HBO의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드라마 중 물불을 안 가리고 전투에 임하는 용감무쌍한 용병단이 등장했는데 그 이름이 차남용병단이었다. 영어명은 분명 차남들(Second Sons)이었다. 왜 용맹무쌍한 용병단에 차남들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차남들이 용맹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차남들이 다소 반항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나. 알아 보니 차남 용병단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어느 정도 근거하고 있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영주였던 바이킹의 후손 노르만공 윌리엄 1세는 1066년 영국에서 벌어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에게 승리하며 잉글랜드의 국왕이 된다. 노르만공 윌리엄 1세는 자신의 잉글랜드 왕위 쟁탈 원정에 동행한 노르만 부하들에게 잉글랜드의 영지를 분배했으나 토지를 상속받지 못하는 차남 이하의 노르만계 기사들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용병으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 위험한 세상에 몸을 던지는 중세 유럽의 차남 전통이 먼 훗날 서구 식민지 개척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차남, 정확히는 귀족집안에서 장남을 제외한 형제들은 성직자, 학자, 법률가, 군인, 사업가 혹은 식민지 경영자로 활약했다.
저명한 심리학자 아들러와 그 학파에 따르면 가족구도와 출생순위가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가 처하는 사회적 조건은 세상의 모든 권위와 칭송을 한 몸에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폐위된 왕이 바로 첫째 아이의 신세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책임감, 배려심 같은 긍정적 요소가 발달되기도 하지만 자신감 상실, 언제나 일이 나빠질 것을 두려워함, 적대적이며 비관적인 성향, 보수적이며 규칙을 중시하는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둘째는 언제나 위의 형제들이 모델이 되고 처음부터 애정을 형제들과 나누어 생활해야 하기에 야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반항적이며 질투가 심하고, 항상 이기려 하고 추종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막내는 항상 많은 자극과 많은 경쟁 속에 성장하게 되고 형제를 앞지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나, 누구에게나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고 과잉보호로 인한 부적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대로라면 둘째의 성향은 창업자가 되기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흔히 둘째의 부정적인 성향으로 간주되는 반항적이며 질투가 심하고, 항상 이기려 하고 추종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성향은 오히려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요구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조직에 예속돼 시키는 일만 복종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성향 중 야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난 점은 확실히 스타트업 창업자로서의 성격에 적합하다. 그렇다고 모든 창업자가 둘째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둘째 성향이 기업가정신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의미다.
기업가정신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부모의 기업가정신이 어린이들의 기업가정신을 60%까지 키운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친부모이건, 양부모이건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기업가정신은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후천적 영향을 두 배나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둘째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기업가정신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즉, 기업가정신은 환경적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얼마든지 우리 스스로 그러한 환경을 만들든지, 아니면 그런 환경에 들어가서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업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기업가정신, 창업문화와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 둘째의 특성을 반영한 시스템이나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창업관련 법·제도 역시 이러한 분위기가 창업 생태계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정비돼야 한다. 나아가 고성장 스타트업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오히려 반항적이고 질투가 심하고 항상 이기려고 하며 추종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비난을 받기보다는 관용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동시에 야심적이면서도 공동체 지향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난 인재로 키우는 조직이라면 전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차남 후손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