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성장률 2.0% 하회…물가상승률 2.2% 상회”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또다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중동전쟁으로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 하방압력이 함께 증대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도 확대됐다는 이유다. 한은은 금통위원 7명 모두가 동결에 찬성했다고 10일 밝혔다. 향후 통화정책은 대내·외 여건 변화와 이에 따른 물가·성장 흐름 및 금융안정 상황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국내 경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수출 호조와 소비 회복에 힘입은 개선세와 취업자수 증가 흐름이 있었으나, 중동전쟁 이후 경제심리가 약화되고 일부 업종이 생산 차질을 빚는 등 하방압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공급 차질 및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더해지면서 올해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2.0%)를 하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이후 성장경로는 중동 상황, 통상환경 변화, 반도체 경기, 내수 회복 흐름에 좌우될 것으로 봤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2%로 전월 보다 높아졌다. 석유류가격이 높아진 영향이다.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은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폭 둔화로 낮아졌으나,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 2.7%)의 경우 소폭 상승했다. 금통위는 물가 상방 압력이 더욱 강해지겠으나,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 효과가 일부 반영되면서 2%대 중후반 수준으로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월 전망치(2.2%)를 대폭 상회하고, 근원물가 상승률도 당초 전망(2.1%)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외환시장 주요 가격변수 변동성↑ 원/달러 환율은 미 달러화 강세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 등의 여파로 1500원대로 높아졌다가 미국-이란간 임시 휴전 이후 하락했다. 국고채 금리는 국내·외 인플레이션 우려 및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로 대폭 상승했다가 하락전환했고, 주가도 큰 폭의 등락을 반복했다. 가계대출은 정부의 거시건전성정책 강화 기조로 낮은 증가세를 이어갔고, 수도권 집값도 오름세가 둔화됐다. 가격 상승 기대도 약화됐으나, 추세적 안정 여부를 확정하기는 이르다는 설명이다. 금통위는 세계경제가 그간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및 주요국 재정 확대를 비롯한 요소 덕분에 양호한 성장세를 지속했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로 성장세가 약화되고 인플레이션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위험 회피 심리 강화는 글로벌 금융시장 주요 가격변수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국고채와 비슷하게 인플레이션 우려와 통화정책 기대 변화가 장기 국채금리를 끌어올리고, 미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섰다. 금통위는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하고,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계획이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인천시, 2조5000억 투입…서북부·강화·옹진 ‘도로 대전환’ 시동

인천=에너지경제신문 송인호 기자 인천 서북부와 강화·옹진의 도로 교통망이 대폭 개선된다. 인천시가 10일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해 대규모 도로망 확충에 나서기로 하면서 그간 '교통 소외지역'으로 지적돼 온 교통난이 해결될 전망이다. 특히 유정복 시장이 강조해온 '균형발전' 기조가 이번 인프라 투자로 본격적인 성과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유 시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검단신도시를 포함한 서북부와 강화·옹진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고 서울 및 수도권과의 연결성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급증하는 교통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핵심 전략으로 읽힌다. 우선 검단지역에는 총 1조6137억원이 투입돼 16개 도로사업이 추진된다. 검단양촌IC~봉수대로, 금곡동~대곡동 구간 등 총연장 40.73km 규모이며 사업은 올해 4개를 시작으로 2027년 5개, 2028년 4개 등 단계적으로 개통된다. 핵심은 단절된 간선도로를 연결해 교통 흐름을 재편하는 데 있다. 주요 축이 완성되면 상습 정체 구간 해소는 물론 검단신도시와 기존 도심 간 이동시간이 눈에 띄게 단축될 전망이다. 유 시장이 민선 8기 들어 강조해온 '체감형 교통 개선'이 가시화되는 대목이다. 강화·옹진 역시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다. 총 9217억원을 투입해 서해 남북평화도로, 국지도84호선(길상~선원) 등 7개 사업(31.93km)이 추진된다. 특히 계양~강화 고속도로와 연계한 광역시도60호선 사업이 타당성 조사에 착수하면서 광역 교통망 구축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내년에 국지도84호선이 개통되면 강화 내부의 동서·남북 간선축이 완성되고 영종~신도를 잇는 신도평화대교와 북도면 광역시도68호선도 연내 개통을 앞두고 있어 옹진 도서지역의 이동 여건 역시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유 시장은 이번 도로망 확충을 단순한 교통 개선을 넘어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폭제로 보고 있다. 접근성 제약에 묶여 있던 강화·옹진을 관광·경제 거점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유정복 시장은 “검단과 강화·옹진 등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지역을 촘촘한 교통망으로 연결해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며 “접근성 개선을 통해 지역경제와 정주환경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균형발전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송인호 기자 sih31@ekn.kr

“왜 춘천에서 남이섬 못 가나”…구조를 뒤집는 700억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춘천=에너지경제신문 박에스더 기자 춘천시가 남산면 방하리 일원에 추진 중인 관광지 조성사업이 '끊어진 관광 동선'을 잇는 핵심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춘천에 위치한 대표 관광지인 남이섬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행정구역상 경기도 가평을 거쳐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해소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춘천시는 9일 남산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 주민설명회를 열고 방하리 관광지 지정 및 조성계획을 공개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비산먼지, 소음·진동, 오수 및 수질 영향 등 주요 환경 영향과 저감 대책이 집중적으로 제시됐다.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따르면 법정보호종 직접 영향은 제한적, 대기·수질 등 주요 환경 기준 충족, 공사 영향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분석됐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단순 관광지 개발이 아니라 접근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동안 관광객들은 춘천을 거치면서도 결국 가평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했다. 아지만 북한강 수변을 활용한 '선착장'이 조성되면 춘천에서 남이섬으로 직접 이동하는 관광 루트가 처음으로 열린다. 관광 흐름이 가평에 집중돼 있던 것을 춘천으로 분산시키는 것으로, 시 입장에서는 '관광주권 회복'에 가까운 전략이다. 총 사업비 700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남산면 방하리 281번지 일원 약 10만㎡에 숙박시설, 상가, 휴양·문화시설을 단계적으로 배치해 체류형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지금까지 남이섬 관광은 '관광은 춘천, 소비는 가평'이라는 구조였다. 관광객은 춘천을 지나지만 실제 소비는 가평에서 발생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방하리 사업은 이를 관광과 소비 모두 춘천에서 이뤄지는 구조로의 전환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남이섬 관광객은 연 수백만 명 수준으로, 이중 일부만 춘천으로 유입돼도 지역경제 판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 방문 관광에서 체류형 관광으로의 전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가평 입장에서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선착장과 주변 상권을 비롯해 숙박시설이 결합된 기존 관광 구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에 선착장이 들어설 경우 관광객 일부 이탈과 숙박·상권 매출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춘천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관광객 체류시간 증가 △지역 상권 소비 확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 단순히 선착장만 조성하는 수준이라면 관광객을 붙잡기 어렵다"며 “접근성보다 체류시간이 경쟁력의 핵심인 만큼 야간 콘텐츠와 숙박 매력, 수변 관광 활성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는 이날 설명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향후 본안 작성과 관계기관 협의에 반영할 계획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은 춘천시 관광개발과 남산면 행정복지센터 환경영향평가정보지원시스템(EIASS)에서 열람 가능하며, 공람 종료 후 7일 이내 의견 제출이 가능하다. 춘천시 관계자는 “방하리 관광지는 춘천과 남이섬을 연결하는 관광 동선을 완성하는 사업"이라며 “환경 보전과 개발이 균형을 이루도록 주민과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박에스더 기자 ess003@ekn.kr

가계 여윳돈 270조 ‘사상 최대’...기업 조달은 급감

가계가 지난해 벌어들인 소득이 지출 증가를 크게 앞지르면서 '여윳돈'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신규 입주 물량이 줄어든 영향까지 겹치며 가계의 자금 축적 속도가 한층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269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50조원 넘게 증가한 수치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순자금 운용액은 한 경제 주체가 운용한 자금에서 조달한 자금을 뺀 값이다. 일반적으로 가계는 이 지표에서 플러스를 기록하며, 기업이나 정부 등 자금 수요 주체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증가세는 소득 확대와 지출 증가 둔화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한국은행은 가계 소득이 지출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 데다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여유자금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자금 운용 총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계의 전체 운용 규모는 342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약 100조원 가까이 늘었다. 특히 주식과 펀드 등 위험자산 투자와 보험·연금 적립이 동시에 확대된 점이 두드러졌다.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운용액은 106조2000억원, 보험·연금 준비금은 87조1000억원 각각 증가했다. 주가 상승 흐름 속에서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로의 자금 유입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편 가계의 자금 조달 규모 역시 확대됐다. 지난해 가계가 외부에서 끌어온 자금은 72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예금취급기관 차입이 크게 늘며 전체 증가를 이끌었다. 증권사나 여신전문사 등 기타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도 증가했는데, 이는 신용공여나 주식담보대출 확대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계부채 비율은 소폭 낮아졌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6%로, 전년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수준보다도 낮은 수치로, 대출 규제 영향으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률을 밑돈 결과로 분석된다. 기업 부문에서는 자금 조달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 비금융 법인기업의 순자금 조달액은 34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감소했다.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영향이다. 반면 정부는 재정 지출 확대에 따라 자금 조달 규모가 크게 늘었다. 일반정부의 순자금 조달액은 52조6000억원으로 증가해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재정 지출 증가 폭이 수입 증가를 상회한 데 따른 결과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규암 자온로, 부여군 1호 골목형상점가 지정… 지역상권 활성화 기대

부여=에너지경제신문 오근수기자 = 부여군이 지역 골목상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부여군은 규암면 자온로 일원을 '골목형상점가'로 지정하며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고 9일 밝혔다. 이번에 지정된 '규암 자온 골목형상점가'는 총면적 9,512.7㎡ 규모로, 50여 개의 소상공인 점포가 밀집해 자생적인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골목형상점가는 일정 구역 내 상점들이 집적된 지역을 지자체가 공식 인정하는 제도로, 지정 시 온누리상품권 가맹, 시설 현대화, 각종 공모사업 참여 등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해진다. 특히 자온로 일대는 백마강과 수북정 등 주요 관광자원과 인접해 있어 관광객 유입과 소비 확대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입지적 강점을 지닌다. 과거 교통 환경 변화로 상권이 위축되기도 했으나, 최근 독립서점과 카페, 공방, 로컬 식당, 게스트하우스 등이 잇따라 들어서며 문화·예술 감성이 결합된 골목상권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상권 회복을 넘어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로컬 브랜드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성 있는 점포들이 모여 형성한 자온로의 분위기는 대형 상업시설과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하며,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부여군은 이번 지정을 계기로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확대, 상권 특성화 사업 참여, 소상공인 역량 강화 교육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온로를 지속 가능한 골목상권 모델로 육성하고, 지역경제 전반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일궈온 자온로의 변화가 제도적 지원과 맞물리며 어떤 시너지를 낼지 주목된다. 골목의 작은 가게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상권이 부여의 새로운 경제·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근수 기자 yellowfnb@ekn.kr

점심도 미룬 李, 휴전도 못 믿는다…에너지 확보 ‘골든타임’ 사수령

9개국 40개 이상의 에너지 자산이 파괴되고, 외국인이 35조 원어치 우량주를 내다 팔았다. 2·30대 청년 70만 명이 '그냥 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 회의를 주재하며 마주한 중동발 위기의 숫자들이다. 그는 이날 점심 일정을 미뤄가며 예정된 90분을 넘겨 2시간을 채우고 “언제 이 상황이 정리될지 잘 알기 어렵다"며 단·중·장기 대비책을 모두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중동 상황의 불확실성을 직접 짚었다. 그는 “현재 상황이 곧 정리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도 휴전했다고 하면서 폭격이 있었다고 한다"며 “단기적으로, 중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잘 대비해서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고 희망적인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언제나 위기 국면이 되면 과거 '금 모으기'처럼 공동체 전체를 위해 함께하려 노력했다"며 “잘 준비하면 이 국면을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회의에서 자문위원들이 2주 휴전 기간을 에너지 물량 확보의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고 건의하자 이 대통령은 즉각 공감을 표했다. 박원주 전략경제협력 분과 자문위원은 “1·2차 석유 파동 때는 협상이 타결되면 밸브가 열리고 공급이 회복됐지만 이번에는 파이프를 끊고 공장을 태웠다"며 “인프라 복구에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9개국 40개 이상의 에너지 자산 파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고집, 핵 문제 미해결, 이스라엘의 독자 행동 가능성 등으로 공급 정상화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배경도 덧붙였다. 단기 대책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통 즉시 유조선 투입, 러시아·이란산 원유·LNG 긴급 확보, 원전 정비 일정 조정을 통한 최대 가동이 건의됐다. 설계 수명이 종료된 원전의 한시적 운전 근거 마련도 제안됐다. 위기 초반 시장 안정에 기여한 석유류 최고가격제에 대해서는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단계적으로 철회하고 취약계층은 에너지 복지로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도 제기됐다. 중기 과제로는 정유 설비 유연화가 핵심으로 꼽혔다. 박원주 자문위원은 “우리나라는 중질류 위주 처리 설비를 갖고 있어 미국 등 경질류 산유국 원유를 처리하는 데 불리하다"며 비중동산 원유 처리 설비 개조에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파격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호주 등 호르무즈를 완전히 우회하는 경로의 원유 확보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략비축은 120일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동맹은 원칙, 에너지는 예외'로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1973년 한국이 서방과 함께하면서도 친아랍 성명을 발표했고, 일본이 사할린 가스전을 동맹 협력 속에서도 끝까지 확보한 사례가 근거로 제시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선점이 논의됐다. 정인섭 경제안보 분과 자문위원은 “한국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 여건이 좋지 않다"며 “반도체에서 혁신을 이루었듯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기술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이 이미 15메가와트 이상 풍력 터빈을 상용화한 반면 한국은 8메가와트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해상풍력을 유일한 대안으로 꼽았다. 한전의 송배전망 독점 구조에 막혀 섬과 무인도 실험 수준에 그치고 있는 스마트 그리드 기술의 확대 적용과 에너지 저장장치(ESS)·양수 발전 확충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본시장에서는 김동환 자문위원이 “중동 전쟁 기간 외국인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량주 35 원어치를 매도했고 이를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전량 받아냈다"며 소액 투자자 대상 '배당소득세 한시 세제 혜택' 상품을 건의하자, 이 대통령은 “일리 있는 말씀"이라고 답했다. 이어 “소액 주주들만을 대상으로 장기 보유 세제 혜택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거래세와 양도세를 같은 수준에서 바꿔야 한다. 지금은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다 내는 역진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배당 소득으로 노후 대책을 세우거나 생계비를 보전하는 것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서도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왜 대규모로 갖고 있느냐"며 “대대적인 보유 부담을 안기는 방향으로 정책실에서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노동 분야에서는 이 대통령 특유의 '실용' 발언이 쏟아졌다. 그는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도가 오히려 1년 11개월에 고용을 끊게 하는 결과를 빚는다"며 “이런 얘기를 잘못하면 반노동적이라고 비난받을 가능성이 많아 아무도 말을 안 하는데, 나는 그렇게 평가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용감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실업급여 문제에 대해서도 “실업 수당 받으려고 실업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자발적 실업에 보상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권고사직이라는 편법·탈법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이것도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비정규직은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을 더 받아서 보수가 더 많아야 하는 게 상식인데, 오히려 덜 받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 내내 “집행을 담당하는 우리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끝으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경제는 변곡점에 서 있다"며 각 부처를 향해 “자문회의에서 제시된 내용들을 충분히 검토해서 되는 것, 안 되는 것 피드백을 해달라"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간장 원료 ‘수입 전환’ 논란…안전·공급망 우려 번진다

부산=에너지경제신문 조탁만 기자 간장 원료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문제를 두고 식품업계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업체들이 간장의 핵심 원료인 '산분해 간장 원액'을 수입 제품으로 대체했다. 산분해 간장은 콩에서 기름을 제거한 뒤 화학 처리를 거쳐 짧은 시간에 만드는 방식으로, 맛이 강해 진간장뿐 아니라 각종 소스와 라면 스프 등 시장 전반에 널리 사용되는 필수 원료다. 그동안 이 원액은 업체들이 자체 생산하거나 국내 공급망을 통해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 수입 원료 사용이 늘면서 안전 관리와 산업 영향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가장 큰 쟁점은 유해물질 관리다. 산분해 과정에서 생성될 수 있는 '3-MCPD'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 생산 제품은 정기적인 검사를 거치지만, 수입 제품은 통관 단계에서 일부만 검사하는 방식이어서 관리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입 식품도 국내 제품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논란의 한 축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해외 상황에 따라 원료 수급이 흔들릴 수 있고, 가격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원가가 낮아졌는데도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가격 인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원료와 제조 방식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탁만 기자 hpeting@ekn.kr

[이슈&인사이트]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온다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중앙아시아의 현대 지정학적 구조는 단순한 강대국 경쟁의 장에 머물지 않고 점차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러시아의 전통적 안보 영향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다양한 협력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진출은 군사력이나 부채 기반 개발이 아니라 '소프트 거버넌스'의 수출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신북방정책'과 'K-실크로드 전략' 등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도시 및 산업 전환을 위한 기술 협력 파트너십 구축을 의미한다. 한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단순한 하드웨어 제공자가 아니라, 모델을 제안하며 새로운 발전 경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한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은 기존의 자원외교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기술 플러스(Technology-Plus)' 프레임워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자원 확보와 디지털 인프라를 결합하는 미래 지향적 전략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6년 약 24억 6천만 달러 규모의 ODA 예산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는 재정적 기반이다.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같은 준정부 기관은 정부 정책과 민간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부 간 협력(G2G)으로 스마트시티 설계 단계부터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형 기술 표준을 대상국에 심는다.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한국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알마티 인근의 알라타우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약 8만 8천 헥타르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중앙회랑(Middle Corridor)' 물류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은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 구축과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여 카자흐스탄이 내륙국에서 '연결국(land-linked state)'으로 전환하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2026년 고위급 물류 통합 논의로 더욱 깊어졌고, 스마트시티는 유라시아 공급망의 핵심 노드로 발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협력은 물류 중심의 카자흐스탄과 달리 인간 중심적 도시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 타슈켄트(New Tashkent)' 프로젝트는 보건의료,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포괄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이며, 한국은 의료 스마트시티 구축과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 도입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약 50억 달러 규모의 의료 스마트시티 투자와 현대로템의 고속철 사업은 산업과 기술 협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사례이다. 녹색 수소와 친환경 난방 시스템 도입은 탈탄소 도시 전환을 촉진하며, 이는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더욱 특화된 형태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아르카닥 스마트시티는 국제 전시회 수상을 통해 한국 기술의 상징적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으며, 폐쇄적인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스마트 빌리지' 모델을 통해서 농촌과 산악 지역에 적합한 기술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약 5억 달러 규모의 경제개발협력기금(EDCF)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한국 기술이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향한 한국의 이러한 전략에는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와의 경쟁으로, 비교적 저렴한 중국 기술이 이미 해당 지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미비함도 스마트시티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데이터 관리,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규제 등 법·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스마트시티는 고립된 기술적 성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한 기술 제공을 넘어, 관련 법제도 구축과 인력 양성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접근으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올해 9월에는 서울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모여 협력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핵심 광물 공급망, 에너지,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K-실크로드' 협력 모델을 강화할 계획이다. 따라서 이번 가을은 한국이 새로운 모습의 중앙아시아를 맞이하고, 그들에게 기술·제도·가치가 결합한 한국형 모델에 기반한 미래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비록 지정학적 경쟁과 제도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최근 한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협력 기반은 이미 구축되고 있으며, 이는 중앙아시아가 21세기 글로벌 경제에서 자율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봉철

정부, 피해지원금 해외 사례 공개…‘포퓰리즘’ 논란 의식했나

정부가 해외 국가의 고유가 취약계층 지원 사례를 공개한 것을 두고 포퓰리즘 논란을 의식한 '무마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8일 “이 시점에 정부가 해외 주요국들의 고유가 지원 사례를 들고 나온 의도가 있다고 본다"며 “다른 나라들의 고유가 대응 정책이 효과가 있었는지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지원 사례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7일 이재명 대통령이 여야정 민생경제 협의체 회담에서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포퓰리즘이 아니다"라고 언급했고, 기획예산처가 같은 날 해외 사례를 들며 “고유가 피해 취약계층 지원에 총력 대응하고 있다"고 밝힌 배경에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기획처는 '월간 해외재정동향'을 소개하며 “주요국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민생피해 최소화 방안도 병행하고 있다"며 “주요 내용으로 우선 연료비 상승에 취약한 소비자들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 사례로 영국은 등유 가격 상승으로 부담이 가중된 취약가정을 위해 총 5240만 파운드(1036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저소득 가구에 매주 50뉴질랜드달러(4만3000원) 지원을, 스웨덴은 전기·가스 소비량에 비례해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처는 “우리 정부도 고유가 피해지원금, 농어민유가연동보조금 등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총 26조2000억원 규모의 '전쟁 추경안' 중 직접 현금성 지원인 고유가 피해지원금에 4조8000억원을 편성했다. 추경 총액의 18%로 단일 사업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1인당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60만원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지방에 거주하고,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더 많이 지원하는 구조다. 당초 상대적으로 고유가 부담이 큰 취약계층 중심의 '핀셋 지원'이 예상됐지만 중산층으로 직접 지원금이 확대됐다. 사실상 30% 고소득층을 제외한 국민에게 나눠주는 현금성 지원이란 비판 속에 포퓰리즘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포퓰리즘을 부인한 대통령 발언이 있던 날, 정부가 고유가 지원금 해외 사례를 공개하자 논란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양 교수는 “유가 상승으로 어려움에 처한 취약계층만이 아닌 사실상 대부분 국민을 현금 지원한다는 건데 대상 범위가 넓어지면 재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국민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했고, 나중에 혜택을 보지 못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시안적 현금성 지원보다 위기 상황이니 고통 분담을 위해 아껴 쓰자 같은 대국민 캠페인으로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며 “에너지 절약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면서 요금 동결, 연료비 보전 등의 지원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취약계층 지원이라 하지만 정작 지원이 필요한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돼 버린 전형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돈 풀기식 단기책보다 물량 부족에 대비해 대체 수입선을 찾고, 나프타 대신 종이를 활용하는 등 탈(脫) 나프타 방식의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주요국 고유가 대응 사례 발표가 포퓰리즘 논란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개인에 따라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며 “고유가 대응 관련 여러 정책을 모니터링 중에 민생 지원과 에너지 보조금 등도 있어 국민들 참고 차원으로 소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이슈&인사이트] 인공지능(AI) 기본법의 미비점과 세부적 보완 필요성

유럽연합에 이어 포괄적인 인공지능 기본법을 제정하려는 우리정부는 한편으로는 막 새싹을 틔우고 있는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우려와 막강한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의 고삐가 풀릴까 경계하는 입장 사이에서 어렵게 중심을 잡으려 노력해 왔다. 인공지능 관련 산업 생태계가 도약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인공지능 기본법의 조문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제어하기 위한 많은 고민의 흔적도 엿보인다. 이런 고난의 결과물임에도 인공지능 영역에서는 시시각각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다 보니 새로운 제도의 시행과 더불어 여전히 보완이 요구된다.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에 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마련한 인공지능 기본법 지원데스크에는 최근까지 550여 건 이상의 상담이 접수됐는데 과반수가 투명성 표시 의무 관련 내용이고, 고영향 인공지능 해당 여부가 그다음을 차지했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에 따른 책임 부담에 대한 관련 업계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이다. 실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시스템 설계와 구축을 자문하다 보니 일단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주체가 인공지능 기본법에서 정의된 인공지능 사업자인지, 아니면 이용자인지부터 명확하지 않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주체가 작성된 문서를 시스템에 접속한 이용자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모호한 지위에 있는 경우 규제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파운데이션 모델로 구축된 시스템에서 나오는 생성물만 제공하는데 이용자 아닌 인공지능 이용사업자로 보아야 하는지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런 혼란은 인공지능 기본법의 초안이 논의된 이후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세계적 거대 기술기업들의 파운데이션 모델 성능이 압도적으로 향상돼 인공지능 산업 생태계가 변화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런 변화를 수용해 EU 인공지능 법은 Distributor와 Deployer 개념을 구분해 각자 역할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게 했는데, 우리는 Deployer에 해당하는 역할을 모두 이용자에 포함하여 구분이 어렵게 규정하였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역시 인공지능 개발사업자가 제공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인공지능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인공지능 이용사업자라면서도 인공지능 생성물만을 제공하면 단순 이용자로 본다고 설명해 더욱 혼란을 일으킨다. 인공지능 이용사업자인지, 아니면 이용자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 생성물에 대한 책임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용사업자라면 당장 상담이 집중되고 있는 표시의무, 고영향 인공지능 해당 여부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 규제의 대상인 이용사업자의 범위를 축소해 인공지능을 이용한 콘텐츠 제작자 등 산업을 육성하려는 취지가 반영되었다고도 하나, 법 시행 직후 주무 부처에서 Deployer 개념을 신설하는 법률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만일 인공지능 이용사업자에 해당한다고 하면 생성물에 어떤 방식으로 표시할지도 정해야 한다. 가시적 방법만이 아니라 비가시적 방법인 기계 판독형 방식도 허용되는데 이미지나 동영상의 경우 딥페이크의 가능성이 있어 가시적 방법이 더 우선할 것이지만, 문서를 생성물로 하는 경우 텍스트에 머리말이나 워터마크, 메타데이터로 표시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인공지능 생성물 표시도 여러 연구에서 지적된 것처럼 다양한 기술적 방법으로 표시 자체를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안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글로벌 기술 표준인 C2PA 방식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문서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 신뢰성이 낮아진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용자가 인공지능 생성물이라는 표시를 삭제할 가능성도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방식만을 사용하는 경우 이용자에게 최소 1회 이상 별도의 안내 문구나 음성 고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어 비가시성 워터마크로는 충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없음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결국 시스템 외부로 다운로드나 공유될 수 있는 인공지능 생성물은 해당 단계에서의 인공지능 사업자의 표시의무 이행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용 단계까지 인공지능 생성물이란 표시를 보장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고영향 인공지능에 관해서도 인간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도록 제도를 구축하면 위험도가 낮아진다고 하지만, 현재 전장에서 활용되는 인공지능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인간이 인공지능의 결정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완벽한 제도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계속 등장함에 따라 법제도 역시 적절히 변화에 대응해야 하고, 달성될 수는 없는 목표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일 수밖에 없다. 양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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