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연필조차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레너드 리드가 약 70년 전 선보인 에세이집 에는 “나는 읽고 쓸 줄 아는 모든 소년과 소녀, 어른에게 친숙한 나무 연필이다. (…) 그러나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명도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언론인 출신 영국 작가 에드 콘웨이는 리드의 에세이에서 소개한 연필 이야기 덕분에 수백만 명의 경제학도가 연필 공급망을 이해하고, 연필 부족 문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작은 연필 하나라도 원자재 조달과 가공 과정을 낱낱이 알아야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공급망 위기를 넘어설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연필 이야기를 꺼내든 건 최근 한국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불안해질 조짐 때문이다. 중국은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을 최근 일본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했다.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인 셈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수출 통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4년여 전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통제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차량 운전자들이 요소수를 구하느라 한동안 진땀을 뺐다. 그보다 앞선 2019년에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 필수 소재의 수출을 막아 우리 반도체기업들에 불안감을 안겨준 바 있다.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주요 교역국들이 핵심 원료 및 소재 등을 외교 및 통상의 압박 도구로 들고 나올 경우 대응력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 자원 뿐만 아니라 리튬·니켈 같은 핵심 광물까지 정·제련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공급망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 과정에서도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미국 견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국내외 악조건에서 지난해 수출 700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올해 연초부터 베네수엘라·이란 사태 등 국제정세 불확실성이 끊이지 않은 탓에 '공급망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럴수록 우리 산업계는 '연필이 주는 메시지'를 되새길 때다. AI산업의 쌀인 반도체부터 전통적인 제조업의 쌀인 철강, 제조업 핵심공정 곳곳에 쓰이는 석유화학 등 국내외 산업의 공급망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응해야 '부족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LS그룹 “에식스솔루션즈 상장, 생존 위한 선택”

LS그룹이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특수 권선 사업에 대한 대규모 설비 투자'"라며 “이는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자이며, 전력 슈퍼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LS그룹은 13일 입장문을 내고 에식스솔루션즈의 이른바 '쪼개기 상장(물적분할)'으로 주식회사 LS의 주가가 부진하다는 주장에 관해 “과거 인수한 해외 자산을 한국 자본시장에 소개하고 그 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평가받는 '재상장' 또는 '인바운드 상장'의 성격을 띤다"며 이 같이 반박했다. 에식스솔루션즈는 전기자동차 구동모터용 권선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LS그룹은 2008년 약 1조 원을 투자해 슈페리어 에식스(SPSX) 지분 100%를 공개매수 방식으로 사들였다. 이후 2024년 4월 에식스 후루카와 마그넷 와이어의 후루카와 전기 지분 전량을 인수한 뒤 그룹 내 권선 법인을 수직 계열화해 에식스솔루션즈를 출범했다. 테슬라와 토요타 등 글로벌 전기차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LS그룹은 “에식스솔루션즈는 고객사들의 변압기용 특수 권선(CTC) 주문이 밀려들어 리드타임(주문 후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이 4~5년을 넘어가고 있다"며 “특수 권선 제조시설 확충을 위해 5000억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적기(골든타임)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리아 마그넷 와이어, 독일의 엘렉트리솔라 등 경쟁사들도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투자를 실기(失機)하면, 현재의 '글로벌 1위' 지위는 순식간에 역전될 수 있다"며 “LS와 같은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영위하는 곳은 투자금액이 수천억에서 수조원대에 이를 정도로 크고, 낮은 영업 이익율로 상대적으로 투자 회수기간이 길어 차입으로 인한 재무구조의 악화보다는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에식스솔루션즈는 상장으로 5000억원을 조달해 미국에 설비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미국 전력망 인프라 등에 30억 달러(한화 약 4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관해 LS그룹은 “계획대로 설비 투자가 완료되면 기업가치는 2030년 3배 이상 증가하고, 이는 모회사인 LS 기업가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LS 주가의 저평가에 관해서는 “자회사들에 대한 과도한 지급보증과 자금 지원 부담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며 “이번 IPO는 이러한 '모회사 의존 고리'를 끊는 결단으로 에식스솔루션즈가 자체 주식을 발행하여 자본을 조달하면, LS는 추가적인 지급보증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S는 전체 발행 주식의 3.1% 규모인 자사주 100만주 소각 계획에 따라 그 절반인 50만주 소각을 완료했다. 나머지 50만주는 올해 1분기 중 소각할 예정이다. 아울러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경영 효율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를 2024년 말 기준 5.1%에서 8%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배당금도 2030년까지 30% 이상 늘리고 중간 배당도 검토 중이다. 특히 LS는 이달 중 에식스솔루션스 상장에 관한 2차 기업설명회를 연다. 주주·기관·애널리스트·언론 등과 직접 소통하고, 추가적인 주주 환원 및 밸류업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영풍 “KZ정밀이 주주 가치 훼손 주범…꼼수 상호주로 의결권 제한”

영풍이 경영 협력 계약서 공개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KZ정밀(구 영풍정밀)을 향해 “주주 가치를 훼손한 진짜 주범"이라며 역공을 펼쳤다. 영풍은 9일 입장문을 통해 “영풍의 기업 가치와 주주 권익에 실질적 손해를 입힌 것은 영풍의 소수 주주이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우군인 KZ정밀"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풍 측은 KZ정밀이 지난 1월 보유 중이던 영풍 주식을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SMC에 넘긴 것을 문제 삼았다. 이로 인해 '영풍→고려아연→SMC→영풍'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상호주 고리가 형성됐고, 결과적으로 지난 3월 정기 주주 총회 등에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영풍 관계자는 “당시 의결권 행사가 막히지 않았다면 당사와 MBK파트너스가 이사회 과반을 확보해 경영 정상화를 이뤘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행위로 최대 주주의 발목을 잡아놓고 이제 와서 경영 협력 계약을 문제 삼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장형진 고문의 계약서 제출 명령 불복(즉시 항고)에 대해서는 “비밀 유지 의무와 제3자 이해 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한 정당한 법적 권리 행사"라며 진실 은폐 의혹을 일축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CES 2026] 포스코 참관단, 그룹 미래 이끌 혁신기술 점검

포스코그룹의 주요 경영진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를 직접 찾았다. 8일 포스코그룹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포스코·포스코인터내셔널을 포함한 포스코그룹 주요 계열사 경영진 등 30여명이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8일까지 사흘간 CES를 참관했다. 참관단은 △인공지능(AI)·신(新)모빌리티·로봇 △이차전지 소재 △탄소중립·에너지 등 그룹 핵심 전략 분야의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면밀히 살폈다. 특히, 글로벌 주요 기업들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제조 현장 적용 가능성 △전기차 이후 시대를 대비한 차세대 배터리 소재 기술 △통합 에너지 인프라 시장의 중·장기 성장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향후 협력 가능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한편, 포스코그룹이 벤처플랫폼을 통해 투자·육성한 △고레로보틱스(건설용 자재운반 로봇) △웨어러블에이아이(실내용 다인승 자율주행 시스템) △옴니코트(산업용 건식 프린팅 기술) △하이보(라이다 기반 감지솔루션)가 CES 2026 혁신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포스코그룹은 “국내외 우수 벤처 캐피탈과 함께 결성한 2조9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활용, 그룹 신성장 전략과 연계된 벤처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 중"이라고 말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KZ정밀 “장형진 영풍 고문, ‘MBK 경영 협력 계약’ 공개 거부하고 항고…진실 은폐”

장형진 영풍 고문이 MBK파트너스와 체결한 경영 협력 계약서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해 즉시 항고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 우군인 KZ정밀(구 영풍정밀)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8일 KZ정밀은 입장문을 통해 “장형진 고문의 즉시 항고는 영풍의 기업 가치와 주주 권익 제고를 외면한 처사"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KZ정밀이 장 고문 등을 상대로 제기한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인용한 바 있다. 해당 문서는 지난해 9월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 공개 매수를 추진하며 맺은 경영 협력 계약서다. 이는 KZ정밀이 제기한 9300억 원 규모 주주 대표 소송의 핵심 증거로 꼽힌다. KZ정밀 측은 해당 계약에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MBK에 헐값에 넘길 수 있는 '콜 옵션' 조항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법원 역시 결정문에서 “특정 경영진에게만 이익이 되고 회사 전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주주의 감시 대상이 돼야 한다"며 공개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KZ정밀 관계자는 “영풍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고려아연 주식을 어떻게 넘기려 하는지 주주들은 알 권리가 있다"며 “계약서 공개를 통해 배임 여부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초고압 전력기기’ 생산 10조원 돌파

효성중공업은 경남 창원공장이 초고압변압기 누적생산 10조원을 돌파했다고 7일 밝혔다. 단일공장에서 초고압변압기와 차단기 모두 생산액 10조원을 넘어선 국내 유일 사례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지난 1969년 국내 최초 154킬로볼트(kV) 초고압변압기를 개발해 생산에 나선 효성중공업은 2002년 초고압변압기 누적 생산액 1조원, 2014년 5조원에 이어 2026년 새해를 열면서 10조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효성중공업은 154kV와 345kV 초고압변압기에 이어 1992년 세계 6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765kV 초고압변압기를 독자 개발하는 등 지난 50여년간 초고압 전력기기 국산화를 이끌었다. 2022년에는 400kV 친환경 절연유 변압기 개발을 성공했다. 최근에는 전압형 초고압직류송전(HVDC)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 공급할 500kV HVDC 변환용 변압기를 개발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현재 전세계 70여 개국에 맞춤형 변압기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2010년대 초부터 765kV 변압기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과 노르웨이 등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은 유럽 주요 송전시장에서도 400kV 변압기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수주 확대에 힘입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은 2023년 이후 3년 연속 초고압변압기 단일품목 연간 수주 1조원 이상을 이어오고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초고압변압기 생산 10조원 달성은 그간 쌓아온 고객의 신뢰와 '최고 품질'을 향한 창원공장의 집념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앞으로도 변압기·차단기·HVDC 등 토털 솔루션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말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LS일렉트릭, 작년 日 ESS사업 612억 수주 ‘고공비행’

LS일렉트릭은 지난해 세계 4대 ESS 시장 중 한 곳인 일본에서 ESS 사업을 총 612억원 수주해 국내 기업 중 최대 수주를 기록했다고 8일 밝혔다. LS일렉트릭은 △설계·조달·시공(EPC) 사업 △ 전력변환장치(PCS) 등 단품 공급 △신재생발전소 투자 사업 등 ESS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해 온 현지화 전략과 신뢰를 기반으로 결실을 맺었다. LS일렉트릭은 지난 2017년 일본 최초 태양광-ESS 연계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인 홋카이도 '치토세 태양광 발전소'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며 현지 ESS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2024년 도쿄도 보조금 연계 ESS 사업을 절반 가까이 수주했고, 지난해 4월에는 사업비 360억원 규모의 PCS 20메가와트(MW)·배터리 90메가와트시(MWh)급 미야기현 와타리 ESS 사업을 땄다. 11월에는 PCS 등 사업개발과 전력 기자재를 일괄 공급하는 ESS 시스템통합(SI) 분야에서 190억원을 수주했다. LS일렉트릭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ESS 전략 시장을 중심으로 EPC, 전력기기 공급, 투자 사업 등 분야에서 쌓은 사업 신뢰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ESS 시장인 일본에서 국내 기업 최대 수주 실적을 기록한 것은 기술력과 사업 역량, 현지화 전략이 종합적으로 인정받은 결과" 라며 “맞춤형 솔루션을 통해 일본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 등 해외 ESS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CES 2026]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 급증…맞춤형 에너지 솔루션으로 승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현장을 찾아 AI 시대 에너지 시장 주도권 확보를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8일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이 박지원 그룹 부회장·정연인 두산에너빌리티 부회장·스캇박 두산밥캣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CES 2026 부스를 참관하고 미래 사업 전략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날 박 회장은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 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하며 “고객의 여건과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두산만의 '맞춤형 에너지 솔루션'으로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두산은 이번 CES에서 '파워드 바이 두산(Powered by Doosan)'을 주제로 AI 데이터 센터의 안정적인 운영을 돕는 핵심 에너지 라인업을 대거 선보였다. 부스 중앙에는 지난해 미국 빅테크 기업과 공급 계약을 맺은 380MW급 대형 가스 터빈 모형이 전시됐다. 이 모델은 365일 중단 없는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데이터 센터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차세대 전력원으로 주목받는 소형 모듈 원전(SMR)과 수소 연료 전지도 공개됐다. 이들 제품은 모듈형 설계를 적용해 설치 제약을 줄이고, 데이터 센터의 주 전력·보조 전력으로 활용 가능한 유연성을 갖췄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발전 기자재와 건설 기계, 로봇 분야에서 축적한 방대한 하드웨어 데이터와 제조 역량은 '피지컬 AI' 시대를 이끌어갈 두산의 강력한 무기"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영풍 “美 법원, 이그니오 조사 중단 기각” vs 고려아연 “절차일 뿐…신사업 훼손 멈춰라”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영풍·MBK파트너스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갈등이 미국 법원의 소송 절차를 두고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영풍이 미국 법원에서 고려아연의 자회사 이그니오(Igneo) 투자 의혹 관련 증거 조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히자 고려아연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사업 흔들기"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7일 영풍은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이 현지시각 6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페달포인트)이 제기한 '증거 제출 명령 집행 정지 요청(Motion for Stay Pending Appeal)'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영풍은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중단 없이 이그니오 인수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영풍 측은 “항소법원도 1심과 마찬가지로 증거 확보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라며 “페달포인트 측의 절차 지연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2021년 자본잠식 상태였던 신생 기업 이그니오를 약 5800억 원이라는 고가에 인수한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영풍 관계자는 “국내외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해 의사결정 과정과 자금 흐름 등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이날 오후 반박 자료를 내고 영풍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고려아연 측은 “미국의 증거 수집 절차는 관할과 관련성 등 기본 요건만 충족되면 인용되는 절차적 제도일 뿐"이라며 “항소 절차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부당한 요구에 맞서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고려아연은 영풍과 MBK가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에 이어 신사업 핵심 계열사의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이그니오를 운영하는 페달포인트는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한 축인 자원순환 사업의 핵심 계열사로, AI와 전력망의 필수 소재인 구리 원료 수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페달포인트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매출 약 10억7600만 달러(약 1조5804억 원)를 달성하고 영업이익 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설립 후 첫 흑자를 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인수 당시 기업가치는 글로벌 IB 보고서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산정됐으며, 영풍 장형진 고문 역시 당시 설립 및 유상증자에 찬성했었다"며 “적대적 M&A 국면에 들어서자 갑자기 가치를 폄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미국 소송의 절차적 결정을 두고 아전인수격 해석과 비방을 이어가면서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둔 경영권 분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영풍 vs 고려아연, 美선 ‘고가 인수’ 韓선 ‘헐값 매각’…이어지는 상호 저격전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분쟁이 해를 넘겨서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윤범 회장 주도로 이루어진 '이그니오 홀딩스' 인수와 관련해 영풍이 제기한 증거 조사가 탄력을 받게 된 반면, 국내에서는 영풍과 MBK가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서 공개를 두고 장형진 고문이 법원 명령에 불복하면서 '이중 잣대' 논란과 함께 배임 의혹 공방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7일 영풍에 따르면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은 미 동부 현지시각으로 지난 1월 6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페달포인트)이 제기한 '증거 제출 명령 집행 정지 요청(Motion for Stay Pending Appeal)'을 기각했다. 이번 결정은 영풍이 제기한 이그니오 투자 의혹 관련 증거수집 절차를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멈춰달라는 페달포인트 측의 요구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영풍은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중단 없이 미국 내에서 이그니오 인수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앞서 1심인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영풍의 증거수집 신청이 한국에서 진행 중인 주주 대표 소송 등 법적 절차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자료 확보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증거 제출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항소법원 역시 이러한 하급심의 판단을 전제로 페달포인트 측의 집행 정지 신청이 이를 뒤집을 만큼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통상 항소를 이유로 증거 수집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요건이 요구되는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중단 요청이 기각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영풍 측은 이번 결정으로 페달포인트 측이 시도해 온 '절차 지연 전략'에 사실상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영풍이 문제 삼고 있는 '이그니오'는 2021년 설립된 미국의 신생 전자 폐기물 재활용 기업이다. 영풍 측 주장에 따르면 이그니오는 설립 초기부터 자본 잠식 상태였고 인수 당시 매출 규모가 수십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윤범 회장 측은 이 회사를 초기 자본금 대비 최대 100배에 달하는 약 5800억 원을 투입해 인수했다. 영풍은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 및 회사 손실 초래 가능성을 제기하며 주주 대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미국 법원의 결정으로 영풍은 △이그니오 투자 당시의 의사 결정 과정 △구체적인 자금 흐름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산정 근거 등 핵심 자료를 확보해 고가 인수 의혹을 본격적으로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영풍 관계자는 “미국 항소법원의 기각 결정은 영풍의 증거 수집 요청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는 점을 재확인해 준 것"이라며 “국내외 모든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해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밝히고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영풍이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승기를 잡은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영풍과 장형진 고문이 MBK와 맺은 경영 협력 계약서의 실체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측에 따르면 장형진 영풍 고문은 최근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에 불복해 즉시 항고를 제기했다. 앞서 KZ정밀(옛 영풍정밀)은 영풍과 장 고문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면서 지난해 9월 영풍 측이 MBK 계열사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체결한 경영 협력 계약을 제출하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인용했지만, 장 고문 측이 이에 반발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구체적인 계약 내용의 공개는 당분간 미뤄지게 됐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MBK에 넘기는 조건과 관련된 '콜옵션' 조항이다. 시장과 언론에서는 영풍이 고려아연 주식 일부를 MBK에 넘길 때 MBK가 특정 가격으로 이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장해 줬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KZ정밀 측은 이 콜옵션의 행사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만약 행사 가격이 시세보다 현저히 낮게 설정되어 있다면, 영풍이라는 회사의 핵심 자산인 고려아연 지분을 헐값에 넘기는 셈이 되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KZ정밀은 이를 근거로 약 9300억 원 규모의 주주 대표 손해 배상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특히 영풍이 최근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현금 창출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매년 1000억 원 안팎의 배당금을 안겨주는 고려아연 지분은 회사 생존에 필수적인 재원이다. 이러한 알짜 자산을 특정 사모펀드(MBK)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넘기는 약정을 맺었다면 이는 영풍 이사진과 장 고문에게 심각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 된다. 업계에서는 법원 결정대로 경영 협력 계약 내용이 공개될 경우 영풍과 MBK가 내세워 온 적대적 M&A의 명분인 '주주가치 제고' 논리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콜옵션 가격 등 세부 계약 조건에 따라 이번 분쟁의 성격이 '경영 정상화'가 아닌 '특정 세력의 이익 챙기기'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는 3월 예정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영풍·MBK 연합의 도덕성과 법적 정당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풍과 MBK 측이 파장을 우려해 계약서 공개를 끝까지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문서 송달을 거부할 경우 법원이 취할 수 있는 강제 수단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 이를 이용해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MBK 측은 과거 불거진 의혹에 대해 일부 해명한 바 있다. 지난 2024년 10월 자료를 통해 MBK는 “콜옵션 행사 가격은 고려아연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합의된 고정 가격"이라며 “공개 매수가가 오른다고 해서 콜옵션 행사 가격이 낮아진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제출 명령까지 불복하며 계약서를 숨기는 태도는 오히려 시장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영풍·MBK의 경영협력계약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의혹이나 불필요한 논란이 있다면, 계약 내용을 직접 공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해법"이라며 “반대로 공개를 계속 거부할 경우 의혹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에서는 '고가 인수' 의혹을, 한국에서는 '헐값 매각' 의혹을 서로 겨누며 진행 중인 이번 쌍방 법적 공방은 다가올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양측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드는 '폭로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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