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한국화이자제약 등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제약사들이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을 제한하려는 우리 국회의 입법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27일 논평을 내고, 지난 6일 정일영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8명이 공동발의한 특허법 개정안이 우리 국민의 신약 접근성을 훼손하고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KRPIA는 한국화이자제약, 한국로슈, 한국안센 등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빅파마(다국적제약사) 49개사를 회원사로 둔 단체로,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세계 5대 지식재산강국(한국, 미국, EU, 일본, 중국) 중 크게 낮은 수준인 국내 의약품 특허권 보호 수준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특허법 개정안은 의약품의 유효성, 안전성 등 시험을 위해 소요한 시간만큼 특허권 존속기간을 연장해 주되, 연장기간을 포함한 전체 특허권 존속기간(유효 특허권 존속기간)을 의약품 허가일로부터 최대 14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의약품의 경우, 물질 또는 기술에 대해 특허를 받은 후 임상시험을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규제기관으로부터 사용승인(품목허가)를 받는 데까지 10년 안팎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임상시험 등에 사용된 시간만큼 특허 기간을 연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개정안은 연장기간을 포함한 전체 유효 특허권 존속기간 상한을 따로 규정하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 상한(14년)을 명문화한 것이 특징이며, 여기에 더해 연장가능한 특허권 수도 하나의 허가 등에 대해 기존 2개 이상에서 1개로 제한했다. 정일영 의원 등은 개정안 발의 이유를 ‘신약에 대한 국민의 조기 접근성 확보’라고 밝혔다. 즉, 특허기간 상한을 명문화해 제네릭(복제약) 출시가 지연되는 것을 막고 국민의 의약품 조기 접근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특허권 존속기간 14년은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수준을 반영해 설정한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다국적제약사들은 그동안 국내에 특허권 존속기간 상한이 따로 명시돼 있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세계 5대 지식재산강국 중 특허권 연장기간이 가장 짧게 운영되고 있었으며, 보호 범위 등을 모두 고려하면 국내 특허 보호수준은 외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KRPIA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전체 임상기간의 절반과 전체 식품의약국(FDA) 검토 기간을 연장기간으로 인정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의약품 특허권 연장기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상시험기간’ 중 해외 임상기간은 연장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은 유효특허기간을 이번 특허법 개정안과 같이 14년 또는 15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연장된 기간 동안 특허권의 효력을 넓게 인정해 주고 있다. 일본은 연장된 특허권의 효력을 좁게 해석하는 대신 여러 개의 특허를 여러 번 연장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복제약 출시를 촉진시켜 국민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지를 약화시키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최근 글로벌 제약사 못지않게 국내 제약사들의 혁신신약 개발 노력도 활발한 만큼 이 개정안은 글로벌 제약사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의지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KRPIA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한국에서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고 출시할 동력을 떨어뜨려 결국 국내 환자의 혁신신약 접근성을 훼손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연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 2개를 개발하고 바이오·헬스 글로벌 6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바이오·헬스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업계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는 의약품 특허권 정책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kch0054@ekn.kr다국적제약사 특허 지난해 1월 13일 화이자의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가 인천공항에 들어오는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