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하나금융그룹이 때 아닌 KDB산업은행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산업은행이 무려 5번째로 시도하는 KDB생명 인수전에 하나금융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면서 KDB생명 매각전에도 청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리금융을 비롯한 굴지의 금융그룹들이 KDB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은 가운데 하나금융이 인수를 추진한 배경에는 당국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하나금융이 KDB생명을 인수할 경우 인수 시 기대되는 시너지보다는 그룹이 감당해야 하는 자본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번 인수전을 두고 업계에서는 하나금융의 승리가 아닌 산업은행의 승리로 보는 분위기다.◇ 하나금융, KDB생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유력 거론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칸서스자산운용은 이달 7일 기관들로부터 KDB생명 매각 관련 인수의향서를 접수받은 후 현재 우선협상대상자를 추리고 있다. 두 회사는 조만간 KDB생명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현장 실사를 거쳐 본계약을 체결한다.하나금융은 이번 인수전에 비구속적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고, 우선협상대상자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금융이 투자의향서에 ‘비구속적’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KDB생명이라는 회사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인수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일종의 방어막을 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사나 협상 과정에서 언제든지 거래가 무산될 수 있음을 내포한 것이다.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하나금융이 이번 인수전에 뛰어든 것을 두고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생명보험시장 내 KDB생명의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하나금융이 인수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2010년 금호그룹 부실로 KDB생명(옛 금호생명)을 떠안은 뒤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네 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2021년 6월에는 사모펀드(PEF)인 JC파트너스를 KDB생명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주식매매계약까지 체결했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 변경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또 다시 매각 시도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KDB생명을 두고 "애초에 인수하지 않았어야 할 회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다른 금융사는 'KDB생명' 떠안기 난색KDB생명 매각이 번번이 성사되지 않은 배경에는 인수시 당장의 득보다 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1분기 연결기준 부채는 16조6210억원으로 자본총계(5526억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 연금 상품 판매에 주력하면서 추가로 적립해야 할 책임준비금 규모가 커진 점이 KDB생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로 인해 KDB생명의 3월 말 신지급여력제도(K-ICS) 비율은 경과조치 전 47.7%, 경과조치 후 101.7%로 금융감독원 권고치(150%)를 큰 폭으로 하회한다. 당국은 올해 처음으로 적용되는 K-ICS의 유연한 적용을 위해 각종 경과조치를 마련했는데, 이러한 조치가 그나마 KDB생명에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나 하나금융은 이미 계열사로 하나생명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생명보험 라이선스가 절실하지도 않다. KDB생명을 인수한 후 하나생명과 합병하면 생명보험사 순위 10위권 내에 진입할 수 있고, KDB생명이 보유한 판매채널을 흡수하는 한편, 그룹 차원에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미래 막대한 자본 투입을 감수하면서까지 KDB생명 인수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인수 성사시 산은 재무구조 개선 노력 부각...하나금융 ‘자본부담’이로 인해 금융권 안팎에서는 KDB생명을 하루라도 빨리 매각하려는 정부의 압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KDB생명이 굴지의 금융그룹에 인수되는 것이 자본력이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각종 변수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의 총자산이 작년 말 기준 569조원인 점을 고려할 때, KDB생명의 매각가(약 2000억원대)는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닐 뿐더러 향후 KDB생명의 경영을 정상화시키는데도 무리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KDB생명의 재무구조 개선 내용을 언급하며 "매물로서의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하나금융이 KDB생명을 품게 되면 인수전 흥행에 대한 공은 강 회장을 비롯해 정부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KDB생명이 매력적인 매물이었다면 과거 네 차례나 매각이 유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KDB생명을 매각하는 것이 시급한 정부가 하나금융, 우리금융에 압력을 넣었는데, 결국 하나금융이 뛰어든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KDB생명을 인수하게 되면,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는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정부에 잘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당장 KDB생명의 자본 부담이 큰 상황에서 하나생명과 합쳤을 때 어떠한 시너지를 일으킬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이러한 설이 사실이라면 M&A 시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협상 결렬과 같은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극히 낮은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M&A는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하나금융의 KDB생명) 인수 완주 여부도 끝까지 가야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ys106@ekn.kr하나금융지주.KDB생명보험 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