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전략정비구역 조감도.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북 최대 재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성수1지구가 시공사 선정 첫 단계부터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 유력 후보였던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현장설명회에 불참하며 사실상 '조건부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조합의 입찰 조건이 수정되어야 참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합은 다수 조합원의 반발과 건설사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설명회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막상 도시정비 현장에선 조합-업체간 갈등으로 주택 공급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성수1지구 재개발 조합은 지난 29일 오후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문제는 그동안 입찰 참여 의사를 밝혀 온 현대건설, HDC현산 등 두 대형건설사가 '보이콧'을 선언하고 불참했다는 것이다. 대신 GS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호반건설, 금호건설, SK에코플랜트, BS한양 등 7개사가 참석했다.
불참한 두 대형사는 조합의 입찰 조건이 편파적이고 지나치게 불리하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성수1지구는 제안 준비가 모두 돼 있지만 조합의 행보를 본 뒤 참여 여부를 정리할 수밖에 없다"며 “오는 4일 대의원회에서 지침이 수정된다면 입찰 참여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HDC현산 관계자 역시 “현장설명회에는 불참했지만 추후 상황을 보면서 검토할 계획"이라며 “현행 지침은 자유경쟁 원칙에 맞지 않는 후진적 발상"이라고 직격했다. 양사는 공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입찰 조건 수정을 요청했지만 조합 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과 HDC현산이 문제 삼은 지침은 △조합원 로열층 우선 분양 제안 금지 △분양가 할인·프리미엄 보장 금지 △금융조건 제한 △천재지변·전쟁 등을 제외한 책임준공 확약 △대안설계 등 추가 아이디어 제시 금지 조항 등이다. 여기에 1000억원 입찰보증금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조건까지 붙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특정 업체만을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입찰보증금만 수백억 원 이상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건까지 막혀 있다면 정상적인 경쟁이 성립하기 어렵다"며 “결국 조합 스스로 후보군을 좁히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성수2지구와의 대조도 눈길을 끈다. 성수2지구는 9월 3일 대의원회를 통해 입찰 지침을 확정할 예정인데, 논란이 된 조항이 포함되지 않아 삼성물산, 포스코이앤씨 등 대형사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성수권인데 1지구는 파행, 2지구는 흥행 구도가 뚜렷하다"며 “결국 조합의 의사결정이 사업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조합은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수1지구 조합 관계자는 “현장설명회는 애초 계획된 일정에 따라 진행했다"며 “지침 수정 여부는 오는 4일 대의원회에서 결정될 사안"이라고 밝혔다. 수의계약 논란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성수1지구는 지하 4층~지상 69층, 3014가구, 총 공사비 2조1540억 원 규모로, 하반기 서울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힌다. 그러나 조합이 입찰 조건을 고수한다면 본입찰 성립조차 불투명하다. 특히 정부와 서울시가 공급 확대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조건부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시장이 조합의 과도한 요구로 왜곡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전체 사업 속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오는 4일 성수1지구 조합 대의원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 지에 따라 현대건설과 HDC현산의 향후 행보와 수주전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