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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금리와 환율, 韓과 다른 선택한 日·中

올들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몰두하는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곳곳에서 균열과 붕괴의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 발 빠른 주식시장은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거래소에 상장된 거의 모든 주가를 30% 넘게 끌어 내렸고 변동성은 두 배 이상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시장은 미 달러의 폭주를 견뎌내며 불안이 공포로 변하여 국경을 넘어설 지(spillover)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글로벌 외환시장은 주요 선진국의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한 기대 변화, 상품 가격 상승 및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 선진국이 금융긴축을 펼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국 통화의 약세를 감수하면서 완화적인 금융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다. 일본은 엔화(USD/JPY) 환율이 지난 9월 1일 큰 폭으로 상승하여 140엔을 기록한 한 이후 약세를 지속하다 마침내 지난달 20일에는 150엔마저 넘어섰다. 엔화 가치는 연초 대비 30% 하락하였고 엔화 수준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엔화 가치가 이처럼 크게 하락한 데에는 미국연준 및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기조 차이에 따른 미일간 금리차 확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리스크-오프 분위기에서 일본 엔화는 글로벌 주요통화 가운데 미국 달러화, 스위스 프랑화와 함께 안전한 통화(safe-haven currency)로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스위스 프랑화와는 달리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단순히 금리차라는 시장요인 외에 정책적 목표 또는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일본은 단기금리가 제로수준인 상황에서 장기금리인 10년만기 국채금리 목표수준을 0±0.25%로 유지하는 정책(Yield Curve Control)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금년들어 초장기물 국채(잔존만기 10년 초과)가 2배 이상 수준으로 상승함에 따라 일본은행(BOJ)은 공개시장조작을 통하여 잔존만기 10년초과 초장기물 국채에 대한 매입규모를 2배로 확대하는 계획(Rinban Operation)을 지난 9월말 발표하였고 이는 바로 엔달러화 환율 상승을 부추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현재 일본은 미·일 금리차 확대에 따른 엔화약세 지속을 견디어 내면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포함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기세이다. 즉 글로벌 금리상승에 따른 내수 침체와 수출중심 기업의 수익 악화를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미국은 달갑지 않겠지만 일본은 보유한 미국 국채를 팔고 그 자금으로 엔화를 사들이면서 환율의 변동성을 최대한 줄이려 할 것이다. 한편 중국은 위안화(USD/CNY) 환율이 금년 상반기에 6.3~6.6 위안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다 공격적인 미국 통화정책 긴축과 중국경제 둔화로 지난달 25일 7.30위안까지 올랐다. 위안화 가치도 금년 들어 13% 하락하여 일본 엔화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2007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국도 일본처럼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코로나가 강타한 내수경제를 되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가파른 위안화 하락을 막기 위해 국내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쉽게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돕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8월말 기준 3조 달러 수준으로 지난 2015년 경기침체 시기에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하여 1조 달러 상당을 소진한 바 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을 포괄적인 국력을 상징하는 지표로 강조하고 있어 과거 2015년과 같이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면서 환율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면에는 미국과의 신냉전에 대비하여 위안화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의 중앙은행이 참여한 국제간 CBDC 결제 파일럿에서 중국의 디지털 통화(e-CNY)가 성공적으로 가장 많이 발행되고 거래된 디지털 통화가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원화(USD/KRW)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와 1997년 외환위기 수준에 다가섰다. 2022년 시작된 금융경제 위기는 현재로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고 코로나 위기처럼 거의 모든 나라가 비숫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환율은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국의 기업을 위한, 자국의 국민을 위한 정책간 경쟁이고 승부의 결과로 결정될 것이다. 위기시에는 확고한 정책과 결단력 있는 정부가 중요하다. 가까운 나라 일본, 중국에 비추어 대한민국은 다가오는 대인내 시기(Great Endurance)에 대응해 정부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또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묻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기자의 눈] 폴란드 원전 수출 신중론

"LOI를 다 된 밥처럼 홍보하는 정부나 언론들도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기 바란다." 지난달 31일 한국과 폴란드 정부, 기업 간 투자의향서(LOI) 체결을 두고 원전업계의 기대가 부풀고 있다. 정부와 언론들은 ‘40조 잭팟’이라며 들뜬 분위기다. 원전 관련주들도 지난 1일 일제히 반등했다. 모처럼 활력이 도는 분위기다.다만 일각에서는 아직 다 된 것도 아닌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 아니냐는 저적도 나온다. 실제 해당 프로젝트의 자금조달 방법, 향후 운영계획 등 수익성이나 구체적인 수주 금액, 공사규모, 기간 등은 합의가 완료되지 않았다. 이번 LOI체결을 토대로 내년까지 양측이 협상을 지속할 예정이다.이번 원전 수주 발주를 주도하고 있는 폴란드 민간기업 제팍(ZE PAK)에 대해서도 순자산이 4000억원에 불과한 기업이고, 이번 건은 본 계약이 체결된다 해도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결국 우리 국책은행들이 동원돼 국가적인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탈원전 폐기, 원전 10기 수출 등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성과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지난 주 폴란드 정부가 발주한 원전 6기 프로젝트는 경쟁상대인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갔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에 원전 핵심기술 관련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창양 장관을 비롯한 원전 담당 공무원들의 교체설이 돌기도 했다.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에서는 "한수원이 폴란드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건설단가는 2009년 한수원이 아랍에미리트(UAE)에 ‘덤핑 가격’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수출할 때의 메가와트(㎿)당 건설단가(332만달러)보다 20% 적고, 당시 건설단가의 현재가치(452만달러)와 비교하면 41%나 적은 엄청난 ‘출혈 입찰’"이라며 "향후 막대한 손실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연구개발하고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폄하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 거기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나. 언론도 마찬가지"라며 "LOI를 다 된 밥처럼 홍보하는 정부나 언론들도 문제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불경기에 이런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잘 되기 바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에너지환경부 전지성 기자

[이슈&인사이트] 1기 신도시가 직면한 3중 위협요인

서울 PIR(가구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이 20에 육박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PIR은 10 정도였다. 일본 동경 PIR은 유엔 해비타트 권고치인 5 수준에 30여년간 머물고 있다. PIR로 볼때 서울의 주택가격은 거품이라고 평가된다. 주택가격의 급등과 급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거 공포의 시간’에 살고 있다. 1기 신도시도 그렇다. 30여 년간 시민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해 온 1기신도시, 많은 베이비 부머들이 이곳에서 중년기를 보냈다. 베이버 부머들이 후년기가 된 것처럼 1기 신도시도 구도시가 되었다. 현 정부는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국정 핵심과제로 선정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는 ‘신도시 정비기본방침’을 조속히 마련하여 2023년 2월까지 특별법안을 발의하고, 2024년까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예정이다. 2027년에 선도지구 5곳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 정부 임기 중에는 1기 신도시 전체 정비사업계획이 수립되고, 시범지구를 지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단위계획 수립과 인허가 등은 다음 정부에서 이루어지고, 2030년 이후에나 이 사업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정일 것이다. 주민들은 신속통합기획으로 빠르게 사업을 진행해 5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을 것이다. 수학적으로는 이 일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규모 주택 단지 정비사업의 경우 다수 이해관계자의 상충을 조정하는 시간 등으로 보통 10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유비무환이라고, 앞으로 10년 동안 예상되는 1기 신도시의 위협요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첫째, 단기적으로는 고금리의 직격탄을 받고 있다. 올해 대선 기간에 반짝하던 매수 심리가 현재 급냉상태다. 미국 기준 금리와 국내 기준금리의 쌍둥이 형태의 동조화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2022년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2023년 전반기까지 상승하다가 후반기에 약간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준금리도 2023년에 3%대를 유지하고 2024년에는 약간 하락하겠지만 그렇다고 중저금리 상태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 가격 버블 인식에 더하여 주담대 고금리 부담으로 인하여 2024년까지 1기 신도시 주택의 매수 심리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둘째, 지난달 26일에 발표한 앞으로 5년간 공공분양 50만호 공급계획은 1기 신도시로서는 ‘설상가상’이다. 임대주택이 아닌 무주택자 대상 분양주택을 공급하며, 그 공급 물량 자체(서울 6만호, 수도권 36만호)가 과거 5년 대비 3배 이상으로 엄청나다. 또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80%,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미적용, 저리 고정 금리(1.7%~3.0%)의 획기적 금융 지원책을 담고 있다. 이 계획이 추진되면 1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수도권 주택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공분양 50만호는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보다 더 강하게 주택 시장 하향 안정화나 정상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주택 가격은 상당히 안정됐었다. 노무현 정부의 주택 정책 기조를 크게 흔들지 않고 유지하면서 여기에 더해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한 것이 주효했다. 이 정책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주택 정책이 될 것이다. 1기 신도시 주택 소유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5년간 큰 악재를 만난 셈이다. 셋째, 1기 신도시와 경쟁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3기 신도시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이다. 서울 접근성, 주거 쾌적성, 지원 기능 서비스 등 여러 측면에서 1기 신도시보다 더 낫다. 2025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입주가 시작되어 2030년이면 31.6만호 대부분 입주 완료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중장기적으로 3기 신도시가 1기 신도시의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1기 신도시에는 시차를 두고 ‘고금리’ ‘공공분양 50만호’ ‘3기신도시’ 이라는 삼중 위협 요인에 둘러싸여 있다. 정부는 마스터 플랜 후 재정비 트랙뿐만 아니라 주민 스스로가 재건축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주민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주택 가격의 정상화란 무엇일까. 보통 사람이 일하여 모은 돈에 부담가능한 주택담보대출을 보태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정상화일 것이다.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지속가능과학회 회장

[EE칼럼] 선진국 주도 환경운동과

삼성전자가 RE100 참여를 발표한 후 RE100은 우리 에너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을 고리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진영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유지, 나아가 생존 자체를 위해서라도 RE100 확대가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물론 해당 진영 내 강성 환경운동 세력이 견지해온 반기업·반산업적 태도에서 벗어 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부존자원·내수시장 규모 등에서 열위인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에 비추어, RE100이 국내 기업·산업에 불리함을 고려해 본다면, 재생에너지 이익공동체의 이익 추구를 위한 우회적인 레토릭처럼 들린다. 오히려 국내 기업·산업의 입장은 한국이 RE100 관련 글로벌 호구가 아니라고 일갈한 한 일간지의 최근 칼럼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해당 칼럼은 애초 자발적 민간 캠페인이었지만, 국내 기업에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비자발적 불공정한 수단으로 변질하여, RE100이 탄소 국경조정세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과 함께 미국·유럽 등 서구권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질타하였다.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발간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Apocalypse Never,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다.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대표적인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왜 스웨덴, 즉 과거 서구 제국주의 열강 국가 출신일까. 콩고·브라질·인도네시아 등에서 이들에게 식민·수탈을 당했고, 현재 저개발·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는 국가 출신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들 국가의 미래세대 목소리가 거세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화두는 두 가지 개념, 소위 ‘환경 쿠즈네츠 곡선’과 ‘사다리 걷어차기’를 소환한다. 우선 환경 쿠즈네츠 곡선은 국가의 소득수준과 환경의 질과의 역(逆) U자 관계, 쉽게 말해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환경질이 악화하지만, 임계수준을 넘어선 경제성장 단계에서는 환경 개선 노력으로 오히려 환경질이 양호해진다는 가설이다. 직관적으로나 역사적 경험적으로나 설득력 있는 교과서적 이론으로, 충분한 국민소득 수준에 도달한 툰베리의 고향 스웨덴 등 서구권 국가들이 환경·기후 위기를 인지, 적극적 대응에 나서는 현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반면 저개발·개도국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인간적인 삶을 위해 처참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발전을 하려면, 도로·항만 같은 사회간접 자본이나 기계화된 영농, 수력·석탄 화력 같은 값싸고 고품질의 전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서구권 국가들, 특히 그린피스 등 서구권 국제환경 운동 단체들은 이를 외면한 채, 환경파괴·기후 위기 등을 이유로 이를 방해·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구권 환경운동이 선진국들이 마치 사다리를 걷어차 저개발·개도국이 더는 추격 못 하게 하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더욱이 기후변화 대응 관련 저개발·개도국에 간헐성·에너지 밀도 면에서 저품질인 태양광·풍력 사용을 강요하는 것 역시 저개발·개도국보다 서구권 국가들의 이해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같은 소득일 때 콩고보다 과거 미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훨씬 많이 배출했다는 점을 들어 저자는 이들의 이기심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기후변화 대응 담론 역시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서구권 국가들의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결과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조금만 관점을 바꿔서 보면 그렇다.물론 당면한 기후 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에는 이처럼 각자가 처한 정치·경제적 이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서구권 국가들이 만든 자료나 해당 국가들에 유학한 인사들에 의존하며, 서구권 국가들의 이해가 반영된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내면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더욱이 RE100을 넘어 탄소 중립 정책 수립에서도 이제는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함께 심도 있게 고민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앞으로 현 정부에서 새롭게 수립하게 될 탄소 중립 정책은 이런 고민이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기자의 눈] 이자로 돈 버는 은행들,

은행권이 3분기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3분기에는 예대금리차 축소 등에 따라 순이익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기우였던 셈이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은 3분기 누적 9조760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18.1% 성장한 규모다. 3분기에만 총 3조4268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6.5% 증가한 수치다. 특히 이자이익을 기반으로 한 실적 상승이 지속됐다. 4대 은행의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23조7761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23.3%나 늘었다. 3분기에만 8조4396억원의 이자이익을 내며 한 분기 동안 8조원 이상을 이자이익을 벌어들였다. 전분기의 7조9761억원에 비해서도 5.8% 증가해 3분기에 더 많은 이자이익을 거뒀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권의 순이자마진(NIM) 상승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고, 은행에서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권이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만큼 시선이 곱지 않다. 은행들이 이자로 돈을 벌어들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은행권의 이자장사 비판에 힘을 더한다. 은행권의 대출 가산금리 산정 체계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지난달 24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은행들이 대출 이자에 예금보험료, 지급준비금 등을 넣어 대출 차주에게 부당하게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예금보험료, 지급준비금은 가산금리에서 빼서 산정하는 것을 새로운 정책방향으로 잡고 있다"며 은행의 대출 이자 산정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은행권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다. 금리 인상기에 대출금리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가산금리 체계를 수정해 금리 수준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마다 대출 가산금리 산정 방식이 다르기는 한데, 금융소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한 부분이 있는 만큼 일부 수정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은행권이 공공기관이 아닌 만큼 과도한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고객 돈으로 수익을 내는 업의 특성상 은행들에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이 존재한다. 정부의 정책 금융 참여 등의 공통된 노력뿐 아니라 취약차주 지원, 일자리 창출, 환경보호 등 개별 은행들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한 지금의 노력이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이 은행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은행들이 벌어들인 수익을 그대로 환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더라도 사회에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면서 지금의 수익을 은행들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dsk@ekn.kr

[이슈&인사이트] 중소기업의 디지털전환 성공조건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으로 경제·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과정에서 생산, 소비, 유통 방식 등이 대면 중심에서 비대면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글로벌 디지털 전환으로의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는 모습이며,팬데믹을 계기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되면서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기업규모 제약의 극복 가능성 증대, 거래비용 절감 및 비용요인 감소, 글로벌 시장 접근성 제고 등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전환(DX)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수의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을 위한 촉진제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디지털 전환은 기업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그리고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면서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전환하고 동시에 조직, 기업 문화, 풍토도 개혁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문화의 변화를 유도했고,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에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모두 디지털 기술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디지털 전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대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전환을 위해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고 있으며 일부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그러나,대다수의 중소·중견기업들은디지털 전환 추진을 위한 기술,인력, 투자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대부분 기업들은 어떤 기술을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중소·중견기업들은 산업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놓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소·중견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전환하며 동시에 조직 및 기업 문화 풍토를 개혁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기를 희망한다.그러나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기업 내부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자원과 역량 그리고 인식의 부족 등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의 한계점에 봉착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기업의 전환 활동 및 지원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즉 디지털 전환을 통해 변화하는 비즈니스 및 시장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기존의 고객 경험을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전환하며 동시에 조직, 기업 문화, 풍토도 개혁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디지털 전환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중견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할 전담 인력과 조직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기대효과의 불확실과 비용부담 등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가 저조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울러 현재 디지털 전환을 추진중인 기업들도,기업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디지털 전환 보다는 일부 생산공정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디지털 전환에 선도적인 글로벌 선진기업들이 산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한 디지털 전환을 통한 경쟁우위 확보에 노력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중소·중견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빨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특히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디지털 신기술 도입 지연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인해 선도 기업과 격차가 발생하고,디지털 전환에 대한 경영자의 인식 부족,추진 방법에 대한 정보의 부재 등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늦춰지는 일들이 발생되는 점은 안타까울 뿐이다.그렇다면, 성공적인 중소기업 디지털 전환 전략은 어떻게 수립해야 할 것인가.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 기술로 기존 비즈니스의 프로세스 및 인프라를 전환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여 사회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업무 활동의 전반에 걸쳐 디지털로 전환함으로써 사회에 미치는 변화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효과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먼저,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 수준을 진단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도입하고, 활용해야 중소기업의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무턱대고 디지털 기술을 도입할 경우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매출데이터와 상권 등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디지털 기술 도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 방법이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들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가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정확한 진단은 현실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에너지위기 시대 ESG 바로 세우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뜨거워지는 만큼 이에 대한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미주리주, 루이지애나주, 텍사스주의 연금펀드는 ESG의 대명사격인 블랙록으로부터 그들의 펀드를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미국 최대규모의 공적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의 캘퍼스(Calpers)는 지난 10년간 타 펀드와 비교하여 현저히 낮은 수익률을 기록함으로써 연금에 의존하는 은퇴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캘퍼스는 ESG 중심의 이데올로기화된 투자방식이 2백여만 명의 은퇴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주가가 치솟긴 하였지만 사실 수년 전부터 누적되어 온 탄소중립발 에너지 분야의 투자위축으로 인하여 ESG 투자성과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투자라 할지라도 투자자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투자자 관점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해악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ESG 투자의 수탁자가 이행해야 할 ‘신인의무(fiduciary duty) 준수’의 요구도 증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정치적 올바름을 이데올로기화한 이른 바 워크(Woke) 운동의 반작용으로 안티 워크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다. 엘런 머스크는 ESG는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젊은 행동주의 투자가인 비벡 라마스웨이는 앤티 ESG 투자를 표방하는 ‘스트라이브자산운용(Strive Asset Management)’이라는 펀드사를 설립하였다. 라마스웨이의 앤티 ESG 펀드는 몇 차례 라운드를 거쳐 그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ESG의 불분명한 정체성 역시 논란거리다. 탄소중립형 친환경 투자를 표방한다고는 하지만 블랙록의 에너지 ETF를 보면 ESG 반대 진영의 대표 펀드인 스트라이브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와 비교했을 때에 큰 차이가 없다. 엑슨모빌, 쉐브론, 코노코필립스와 같은 화석연료 회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유사하여 두 펀드 사이에 차별성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화석연료 투자를 지양한다고 하였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대부분의 ESG 펀드는 화석연료 비즈니스의 투자 역시 꾸준히 유지하거나 오히려 증대시켰다. 우리나라의 ESG 펀드 역시 그 포트폴리오 구성을 보면 대부분의 대기업은 다 포함되어 특별한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미국 일부 법계에서는 ESG 그룹의 반트러스트 위반 여부도 검토 중이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ESG의 명암을 둘러 싼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많은 영역이 회색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ESG는 분명히 이 시대의 추세이긴 하지만 좌우의 이념적 논쟁과 결부되어 특정 그룹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술, 담배, 도박과 같은 이른 바 죄악주(sin stock)의 구분은 비교적 선명한 편이지만,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의 대부분 지표는 상당히 주관적이며 정성적이기 때문에 이념적 수단화될 경우 이는 결국 투자자의 손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ESG의 명분을 넘어선 심각한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상당수 정부 정책이 탑다운으로 이루어지는 거버넌스 하에서는 국책은행이나 국민연금이 이처럼 이념화된 ESG에 접근할 때에는 더욱 더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릇된 투자로 인한 손실은 국민의 세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백만 연금은퇴자의 생계에 영향을 주는 미국 캘퍼스 연금펀드의 부실성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ESG는 사적이면서도 이념적 영역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집행을 의무화할 경우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부실 정책금융의 부담은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변동성과 초연결성의 시대에서는 한 번의 잘못된 결정으로 천문학적인 손실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화된 ESG의 무리한 확장 보다는 ESG 바로 세우기에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시중은행, ‘이자장사 무조건적 비판’ 의미있나

주요 시중은행장들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호통에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중은행이 고금리 시대에 서민들의 이자장사로 수익을 챙기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도 횡령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게 국회의원들 비판의 요지였다. 은행권에 내부통제 강화, 횡령 사고 방지 등은 끝없는 숙제와도 같다. 아무리 직원들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두 번, 세 번 손질한다고 해도 앞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100%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은행권을 향한 ‘이자장사’ 비난은 무리한 부분도 없지 않다. 예대마진이 커지고, 이자수익이 증가한 것은 은행권이 ‘이자수익’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은행권의 이자수익 증가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당국은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은행권 간에 자율 경쟁을 촉진해 금리 운용의 투명성,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예대금리차 공시, 금리인하요구권 운영 실적 공시 등의 제도를 구축한 상태다. 시중은행들 입장에서는 과거 기준금리 인상 폭만큼 순이자마진(NIM)을 거둘 수 있는 소지가 다소 차단된 셈이다.은행권을 비롯한 금융지주사는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성장한다는 공식은, 글로벌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특히나 최근과 같이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금융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금융위원회가 27일 금융지주사와 시장안정 점검회의를 개최한 것도 금융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지주사의 책임을 당부하기 위한 것 아닌가. 이날 회의에서 각 금융지주사는 단기자금시장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 금융시장 안전판 역할을 강화하고, 계열사들의 자금조달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계열사 발행 자본증권 인수 등 지주사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금융당국은 하루가 다르게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다. 모두가 비상인 이런 시국에서는 금융사에 해묵은 이자장사 비판을 꺼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국의 시장안정조치가 빛을 보기 위해서는 금융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은행권을 향한 비판이 낡고, 오래된 이슈가 아닌 건전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시기다. ys106@ekn.kr

[이슈&인사이트] 규제개혁 흔들림 없게 법제화해야

미국 트럼트 전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던 2019년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분담금의 10배 정도인 6조원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우리 국민의 눈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미국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고,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캐릭터와 결합되면서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게 되었다. 한번은 택시에서 기사가 트럼프 정부가 저렇게 과도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미국이 아니라 차라리 중국과 더 친해지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해 필자와 약간의 논쟁을 벌인 일도 있다. 반면, 규제개혁 분야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법인세 인하, 기업 활동 관련 규제 개선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으로 취임 첫해인 2017년 행정명령 제13771호를 제정하여 이른바 ‘two for one rule’ 이라는 규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제도의 주요 내용은 규제비용과 규제 수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된다. 규제 수 측면에서는 규제 1개가 만들어지면 기존 규제 2개를 폐지해야 한다. 동시에 규제비용 측면에서는 최소한 신설·강화 규제로 발생하는 규제비용만큼 기존 규제의 폐지로 상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로 인한 성과는 과거 어느 행정부보다 우수했다. ‘two for one rule’로 대표되는 규제개혁 시스템을 시행한 2017년부터 2021년 4년간 감축한 규제비용, 즉 신설·강화 규제로 발생한 규제비용에서 규제폐지로 절감한 규제비용을 뺀 순규제비용이 1986억 달러로 당초 목표 793억 달러를 초과하였다. 같은 기간 규제 수에 있어서도 당초 목표 1개 신설·강화 규제당 2개의 규제 폐지였지만 실제는 1개 신설·강화 규제당 5개의 규제를 폐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문제는 ‘two for one rule’의 법적인 근거가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의해 규제개혁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행정명령(Executive Order) 우리나라의 시행령, 고시와 유사한 것으로 정부가 교체되거나 정책이 변경되면 행정부의 재량으로 언제든지 쉽게 폐지가 가능하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개혁 시스템 관련 행정명령을 폐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개혁 시스템 폐지 이후 규제 수와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먼저, 제도가 시행된 4년간 규제로 인해 발생한 총 규제비용은 648억 달러였지만, 제도가 폐지된 직후 2021년 한해에만 총 규제비용이 2015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4년간 발생한 규제비용 총액의 3배가 넘는 규제비용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첫해에 발생한 것이다. 규제 수 측면에서도 바이든 정부 1년차에 신설된 경제규제 건수는 69건으로 트럼트 행정부 1년차 22건의 3배가 넘고, 2년차 경제규제 신설 계획도 트럼프 행정부 139개, 바이든 행정부 294개로 바이든 행정부 2년차 경제규제 신설 계획이 트럼프 행정부의 2배가 넘는다. 규제개혁에 있어 정부의 의지와 규제개혁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two for one rule’과 유사한 규제비용관리제가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다른 점은 신설·강화 규제로 인해 발생한 비용만큼 기존규제의 폐지·개선으로 상쇄해야 한다. 규제 수는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 공통점도 있는데 법적인 근거가 약하는 것이다. 총리 훈령인 ‘국민부담 경감을 위한 행정규제 업무처리 지침’에 법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행정규칙인 총리 훈령으로 운영하는 것은 정부 교체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폐지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정부는 규제비용관리제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신설·강화 규제비용의 2배에 해당하는 기존규제를 폐지·개선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러한 내용적 개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법적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정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규제비용관리제의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EE칼럼] 자금시장 위기 부추긴 에너지정책 실패의 교훈

최근 국내 자금시장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자 정부가 ‘50조원+α’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등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시중의 돈가뭄은 여전하고 회사채와 기업어음(CP) 금리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다간 자금 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중의 자금난이 심화된 것은 대내외 금융환경이 급속히 나빠진 가운데 강원도가 레고랜드 발행 채권에 대해 지급보증을 거부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올 하반기 들어 한국은행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회사채금리가 치솟으면서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경기악화와 부동산경기 침체로 회사채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디폴트 위험이 커져 자금이 안전자산 쪽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됐다. 3년물 기준으로 국채와 회사채(AA-)의 금리차(스프레드)가 1.3%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은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 쪽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금융시장이 가뜩이나 불안한 가운데 지방정부마저 지급보증을 거부하니 시중자금이 더욱 안전한 곳으로 흐를 수 밖에 없게 됐다. 여기서 주목할게 있다. 바로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고신용·고금리 회사채를 찍어내며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전은 막대한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운용자금으로 매월 2조원대 회사채(한전채)를 발행하고 있다. 한전은 신용등급이 최고(AAA)여서 투자자들이 한전채를 다른 하위 등급 기업의 회사채보다 선호한다. 더구나 최근 한전이 회사채 발행 물량을 늘리면서 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금리를 6%대까지 올리는 바람에 저신용·저금리 회사채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올해 들어 한전채 발행규모는 23여조원으로 지난해 10조 4300억원의 두배를 넘었다. 한전의 대규모 자금조달 필요성과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맞아떨어지면서 자금이 한전채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의 영업적자와 부채가 한동안 증가세를 지속해 한전채 발행 물량 증가와 자금 싹쓸이 현상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영업적자는 지난해 5조 8601억원에서 올해 상반기에 14조 3033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연간으로는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의 부채는 올해 6월 말 현재 연결기준으로 1년 전보다 28조 5000억원 늘어난 165조 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기업들중 1위다. 한전의 적자와 부채증가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아무리 내놓아도 ‘백약이 무효’일 수 있다. 금융당국이 한전의 회사채 발행물량을 제한하고 대신 은행대출을 늘려주도록 하는 조치를 황급히 발표했지만 이는 직접금융시장을 규제하는 임시방편적 조치에 불과하다. 한전이 시중자금의 블랙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부실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전이 부실의 늪에 빠진 것은 한마디로 정부의 에너지정책 실패 때문이다. 불합리한 전원믹스와 전기요금 정상화 지연이 부실을 심화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가스발전이 늘면서 연료비가 증가하고 특히 러·우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전의 전력구입금액이 급증했다. 발전원별 전력구입단가를 볼 때 LNG복합화력은 지난해 1~8월 kWh당 108.79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에 213.31원으로 96.1% 늘었지만, 원자력발전은 같은 기간 64.7원에서 54,26원으로 오히려 16.1% 줄었다. 원전축소와 가스발전 증가가 전력요금 인상압력을 키운 것이다. 한전의 전력구입금액은 올해 1~8월에 55조 7987억원으로 전년동기 34조 185억원보다 64% 늘었다. 반면 전력판매수입은 올해 1~8월에 43조 1517억원으로 전년동기 38조 7156억원보다 11.5% 늘어나는데 그쳤다. 전력구입금액과 전력판매수입의 격차만큼 한전의 적자는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전력구입금액이 늘어나는데 맞춰 전력요금을 실효성 있게 인상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전의 부실 심화를 막고 전력소비도 줄이며 탄소중립도 실현할 수 있다. 물가안정을 우선시 해 전력요금 정상화를 미룰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을 정책당국이 인식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현재 전력도매가격을 결정하는 계통한계가격(SMP)에 상한제 를 적용한다든지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 대해 적용하는 정산조정계수를 0으로 한다는 것과 같은 반시장적 조치만을 취하려 하고 있다. 이는 정공법이 아니며,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할 뿐이다. 이제라도 잘못된 에너지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 비용절감과 에너지안보를 위해 원전을 충분히 활용하며, 연료비연동제를 실효성 있게 운용해야 한다. 올해 들어 연료비 조정단가와 기준연료비 등을 올리긴 했지만 누적된 요금 인상 압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5원인 분기별 연료비 조정폭을 확대하고 정부의 유보권한도 축소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연료비만을 반영하는 변동비반영시장(CBP)을 환경비용 등 제반비용까지 포괄적으로 반영하는 가격입찰빙식(PBP)으로 바꿔야 한다. 전력요금의 ‘정치화’를 막는 것은 전력시장 정상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온기운 에교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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