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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
지난 6월 29일 유럽중앙은행(ECB) 연례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저금리와 저물가 시대가 끝났다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베일리 총재는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으며 코로나로 인한 고용감소와 임금상승 위험이 노동시장에 구조적 유산을 남겼다고 언급했고 라가르드 총재는 세계가 저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거대한 힘이 우리의 환경과 상황을 바꿀 것이라 말했다. 파월 의장은 저인플레이션 국면이 사라지면서 중앙은행의 운영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파월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예측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하며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해가 적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알고 있어야 할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파월이 역대급 물가상승에 대응할 지속적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하게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투자자들에게 30년간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했던 매크로 환경이 끝나고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는 대 격분기The Great Exasperation가 오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자 주식과 채권시장 모두 타격을 입고 투자기관 전략가들의 내러티브를 박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파월이 고백한 ‘낯선 인플레이션’를 유발한 요인 중 하나가 에너지 위기다. 지난해 영국의 풍력발전이 기대했던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에너지 위기로 천연가스 수요는 폭증한 반면 재고는 부족해 이를 사용하는 모든 산업에 전이되면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천연가스로 만드는 비료와 부산물인 이산화탄소가 모자라 식품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치면서 슈퍼마켓 매대는 비어가기 시작했고 식품 가격이 급등했다.
가격이 올라가면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톤당 1만 1000달러의 전력비용을 들여 만든 알루미늄이 시장에서 2800달러에 팔리자 프랑스 알루미늄 공장은 감산과 가동중단을 선택하며 가격은 올라가고 공급은 더욱 악화되었다.
때마침 이중통제로 석탄사용을 줄여가던 중국의 대정전으로 주요공장들이 멈춰 서면서 공급악화가 가중되었고 선진국들은 그해 11월부터 수십 년 만의 물가인상에 직면하게 되었다. 파월은 그 시점에서 ‘일시적’이라던 인플레이션 발언을 철회했고 독일은 2022년 1월부터 25.9% 상승한 생산자 물가가 현재까지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시적이라던 에너지 위기는 구조적 결함으로 지속되고 있다. 유럽은 전쟁 때문이라 러시아를 탓하고 있으나 이들의 위기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것이다. 에너지 위기로 전기와 난방가격이 치솟고 동일 제품 구매에 추가적인 돈을 내야 하는 시민들의 지갑은 얇아져 빈곤층부터 생활비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국민들이 매달 276달러를 추가 지불해야 한다고 추산했으며 G7 국가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영국에서는 6명 중 1명이 끼니를 거른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는데 청년층으로 좁히면 이 수치는 28%로 올라간다.
생활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 되었고 기업들은 에너지비용증가와 함께 추가 비용을 제품에 전가하면서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강화되고 있다. 반면 높은 천연가스 가격을 이기지 못한 유럽 공장들은 감산과 가동중단을 하며 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유럽의 구조조정과 실업이 증가할 것이나 물가상승의 근본 원인이 제거되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도 물가상승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화석연료가 전 세계에 언제 충분히 공급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드 매킨지는 2026년까지 LNG 공급이 타이트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 일본 경제산업성 회의에 참석한 니시자와 준 미쓰비시상사 천연가스부문 최고경영자는 중국 수요회복, 유럽의 러시아산 화석연료 탈피, LNG 프로젝트 투자감소 등으로 몇 년은 고사하고 2030년 이후에도 현물시장의 고공행진이 계속될 것이라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35년까지 에너지 믹스에서 가스발전 비중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통화정책이 없는 화석연료를 만들어낼 수 없고 급등하는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재정정책과 보조금은 금리 인상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파월이 고백한 낯선 인플레이션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