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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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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금융위기 위험 일깨운 레고랜드 사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2.13 10:09

손종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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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지난 몇 달 사이에 우리는 두 차례의 기이한 ‘사태’를 경험했다. 하나는 영국의 리즈 전 총리의 대규모 감세 정책이 불러온 영국 파운드화의 폭락과 금융시장의 혼란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명 ‘레고랜드 사태’로, 지방 공기업 채권의 채무불이행이 가져온 채권시장의 급작스러운 경색 현상이었다.

결국 영국의 감세 정책은 철회되었고 리즈 총리는 영국의 최단임 총리로 50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레고랜드 사태를 촉발한 지방 공기업 채권은 전액 다시 상환하기로 했으며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은 43조 원의 유동성 지원을 공표하며 우선 급한 대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두 차례의 사태에서 놀라운 점은 정책당국의 일반적인 정책 발표에도 발작에 가까운 시장의 반응이었다. 레고랜드 사태를 촉발한 공기업 채권 금액은 불과 2050억 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왜 시장은 이렇게 발작을 일으킨 것일까.

이럴 때는 숲에서 빠져나와 먼 산을 바라보듯이, 좀 더 긴 통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태의 기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유로 재정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위기까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불과 10여 년의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세 차례의 국제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세 차례의 위기 대처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했으며 정부는 지출확대를 통해 경제성장률의 급격한 하락을 방어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대부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및 사회보장기구를 합한 일반정부 기준으로 2021년 말 영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146%로 매우 높은 수준을 기록하였다. 특히 2008~2021년 기간에 영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92%포인트 상승했는데, 이 증가 속도를 넘어선 나라는 자료 이용이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가운데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세 나라였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나라는 모두 유로재정위기의 당사국으로서 실제 금융위기를 겪었다. 리즈 전 총리는 고요한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그 연못 밑에서는 지난 십여 년에 걸쳐서 정부 부채의 급격한 누증 등 금융 기초여건의 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어떠한가. 정책당국의 유동성 공급 및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 등으로 채권시장은 일단 한숨을 돌렸으나 그 파장이 지방 중견 건설사 등 부동산프로젝트 사업 전반에 걸친 자금 경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미국 등 OECD 주요국보다 정부 부채비율도 낮은 편인데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보다는 민간 부채비율의 누증이 금융 불안의 기저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십여 년 동안 가계를 중심으로 차입투자(레버리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특히 2019~2021년 기준 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이 14.1%포인트 증가하는 등 자료 이용이 가능한 28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였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1950~2016년 기간에 대해 가계와 기업의 직전 3년간의 부채비율과 해당 자산가격이 동시에 크게 상승하는 경우 향후 3년 이내에 금융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40%로 예측된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평상시의 7% 금융위기 도래 가능성과 큰 대비를 이루는 결과이다. 여기서 기업부문의 자산가격은 주식가격, 가계부문의 자산가격은 주택가격을 각각 의미한다.

특히 직전 3년간의 레버리지 상승 및 자산가격 증가율이 국가그룹에서 상위 20% 이내에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를 레드존(R-zone)에 진입했다고 진단하였다. 동일한 방법론을 우리나라 가계부문에 적용하는 경우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OECD 28개 국가 중 부채비율 증가와 실질 주택가격 증가율 모두 상위 20% 이내에 속해 레드존에 포함되는 유일한 나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경제 기초여건을 벗어나 높아진 민간 레버리지가 금융위기로 종종 이어졌던 사례를 볼 때, 레고랜드 발 채권시장의 경색에는 이러한 금융 기초여건의 악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가계 부채비율의 누증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다시 찾아온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과 주택가격의 하락이 이어지며 이제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내년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국내외 주요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1.7~2.0%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 초반 정도라고 한다면 이 정도 성장률이 실제 실현된다면 여러 하방 리스크가 혼재하는 대내외 여건 속에서 비교적 선방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경제 전망의 전제는 제2, 제3의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며, 발생하더라도 금융위기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따라서 향후 잠재성장률 경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금융 불안 요소의 완화 등 금융 기초여건을 더욱 튼튼히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민간 부채비율이 적절한 수준으로 안정화되는 것이 긴요한 이유이다. 가계를 중심으로 민간 부채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고려할 때 향후 가계 레버리지의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이와 밀접히 관련된 자산가격의 안정에도 함께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금융 불안 요소가 해소될 때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금융기관의 자금공급이 원활해지고 기업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도 제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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