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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대기업에 의한 기술탈취와 기술유용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보여주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발생한 기술침해로 인한 피해액은 189억4000만 원에 이르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피해액은 총 2827억 원에 달한다. 이 같은 조사는 발생한 모든 사례를 반영한 것이 아니므로 실제 피해는 훨씬 더 클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등 문제에 대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을 지난해 개정하여 시행하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기술침해 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대기업에게 부담시키도록 전환했고,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하였다. 이 외에도 하도급법·특허법·부정경쟁방지법 등에서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정들을 두어 중소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의 피해가 줄어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 또는 경영상의 정보 침해 이후에 중소기업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에 대해 별도의 조치가 없었다는 답변이 10.5%에 이르고,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에 노력하였다는 답변도 15.8%에 이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왜 기술침해 등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합의 정도의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까. 이유는 소송이나 법률적 조치를 취한다고 하여도, 그 결과를 받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법률적 비용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그 기간동안 이미 중소기업은 빼앗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여 파산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특허침해심판에서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75%에 달했는데,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결과적으로 자본이 충분치 못한 중소기업은 피해보상마저 대기업에게 구걸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본이 충분하여 법률서비스의 접근이 용이한 대기업은 기술탈취의 방법을 더욱 고도화 한다. 실제로 기술자료의 공개를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것에 대해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되자, 모 대기업은 독점적인 용역계약을 줄 것처럼 달콤한 말로 접근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처럼 꾸미고, 중소기업의 독자적인 기술을 공동으로 연구 개발한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해 특허등록까지 마쳤다.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용역계약을 주지 않았고, 그 중소기업은 결국 회생절차에 들어가 도산의 위기를 겪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몰려 있다.
이처럼 대기업의 기술탈취 등 방법은 고도화되고 지능화되어 가는데 현실적인 제도는 변형된 형태를 방지하거나 구제해주기 어렵다. 물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적극적인 행정조사 또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적극적인 조사를 통한 협의유도 또는 처벌이 나름 ‘중소기업 수호천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H중공업과 SY기계 사이의 기술침해 분쟁을 행정조사를 통해 해결한 사례가 있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는 법률분쟁에 비해 조속히 협의점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대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하청업체들의 단물을 빨아먹는 기형적인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법률 규정은 그런대로 잘 갖춰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제도들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90.1%(2020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자료)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경제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 보다 능동적인 정부의 개입과 역할을 기대한다.
가뜩이나 경제환경이 어려운데 기술탈취까지 당해 억울하게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적극적인 행정 조사를 진행하여 중소기업을 보호하여야 한다.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의 용역 계약 제안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기 앞서 계약서에 대한 사전적 법률적 자문 등을 통해 기술탈취 등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예방조치에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