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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
올 한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만 올해 에너지 분야에는 정말 큰 일이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2월 24일 러시아의 키이우 미사일 공습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원유가격을 100달러대로 끌어 올렸다. 국내에서는 3월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탈원전 에너지 전환’에서 ‘친원전 재생에너지 축소’로 에너지 정책의 기조를 틀었다.
다시 찾아온 고유가 시대는 당장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액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올 8월까지 에너지 수입액은 1444억 4100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에너지 수입액 1372억 200만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12월 현재 국제 유가는 8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올해 에너지 수입액은 2천억 달러를 넘어서 총 수입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1차에너지의 93%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1차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전력 생산가도 끌어올려 한국전력은 최대의 적자를 기록하며 부채도 크게 늘었다.
고유가는 에너지 수입국들로 하여금 새삼 에너지 자립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불러일으켰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석유와 가스의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한편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고 목표 연도를 앞당기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로 했다. 미국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한 축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확대를 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양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나라에 고루 주어지는 자주적인 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도 감축하여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재생에너지 목표를 축소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어렵다.
3월에는 역대급 박빙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신승한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는 예고한 대로 ‘친원전, 재생에너지 축소’를 에너지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2030년 발전량 비중 목표는 원전이 23.9%에서 32.8%로 확대된 반면 재생에너지는 30~35%에서 21.5%로 축소되었다.
정부가 앞장선 원전 수출은 발주국의 정치적 목표에 따라 미·일연합이나 러시아, 중국으로 좁혀지고 있는데다 독자적인 수출권을 갖지 못한 우리나라는 한국형 원자로에 대해 원천기술권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소송까지 제기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최근 산자부가 폐로 분야에 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 진일보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세계 각국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오히려 목표를 줄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 보급 상황은 남아도는 것이 아니라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엄중한 현실이다. 당장 RE100을 요구하는 구매자들을 위해 삼성전자 등 수출 대기업들이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는 상황이다.
내년 유럽연합의 탄소 국경조정세 시행을 앞두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중국의 철강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은 제품에 대해 탄소 국경조정세를 부과하는 것이 구체화되면 우리나라도 집중 공격 대상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문제가 과도하게 정파화 되어 민주당 정부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국민의힘 정부가 궤도 수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점점 더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립적이고 청정한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 문제가 과도하게 정파화되어 정책이 역주행하는 매우 안타깝고 불행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과 시급한 대처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며칠 전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다. 공자가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많은 교수들이 이 말을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추천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에너지 정책 분야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한해를 보내며 내년에는 잘못인 줄 알면 고쳐 나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