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고환율 정부 대책 변명만 남았다

서울 외환시장의 숫자는 바뀌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구간에서 출발했고, 정부 설명도 익숙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 미·중 갈등, 중동 불안, 무역수지 변동성, 그리고 개인의 해외 투자 증가 등… 고환율의 원인 목록은 길다. 문제는 이 많은 이유가 정부의 정책으로 연결되는 순간, 늘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달러가 새는 구멍부터 막자'로 귀결된다. 맞는 말이지만 방법은 산으로 간다. 구멍으로 자주 지목되는 대상이 서학개미라는 지점이 상징적이다. 개인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사들이며 환율을 끌어올렸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다른 이유들도 덧붙이긴 한다. 미국과의 금리 차, 수입 물가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 이 모든 요인을 나열한다.결국 손대는 곳은 늘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다. 가장 통제하기 쉬운 변수이기 때문이다.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증권사 영업점에서 만나는 개인 투자자들은 “달러를 벌려고 미국 주식을 샀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장기 투자할 만한 종목이 잘 안 보인다"고 말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책은 계속 빗나간다. 환율은 단기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 신뢰의 가격이다. 정부가 말하는 고환율의 또 다른 원인은 금리 차다. 미국의 고금리가 달러를 끌어 당긴다는 설명이다. 맞다. 하지만 금리 차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같은 금리 환경에서도 통화 가치가 덜 흔들리는 나라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장에 대한 신뢰다. 지난 10년간 S&P 500이 보여준 성과는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숫자로 증명했다. 반면 코스피는 장기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는 데 실패했다. 무역수지 역시 자주 거론된다. 수출이 주춤하니 환율이 오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출 부진의 이유를 들여다보면 다시 구조 문제로 돌아온다. 산업의 세대교체가 더디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 반도체 한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경기 사이클에 환율이 과도하게 흔들린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수치는 반복된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빠지지 않는다. 글로벌 불안은 달러를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같은 충격을 받아도 어떤 나라는 덜 흔들리고, 어떤 나라는 크게 흔들린다. 차이는 체력이다. 자본시장의 깊이, 기업의 경쟁력, 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환율 방어력을 좌우한다. 이 체력을 키우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개인의 해외 투자를 막는다고 생기지는 않는다. 일본은 엔저 국면에서도 개인의 해외 투자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NISA(개인 투자 비과세 계좌) 제도를 확대해 미국 주식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 투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해외에서 벌어온 수익이 결국 국내 소비와 투자로 돌아온다는 판단이었다. 환율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한국은 반대다. 고환율이 나타나면 개인의 손부터 본다. 해외 주식을 팔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식의 정책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처방은 숫자를 잠시 움직일 수는 있어도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구조가 그대로라면 자금은 다시 빠져나간다. 시장은 기억력이 길다. 결국 문제는 한국 증시의 구조다. 기업이 커질수록 규제가 늘어나고, 중소기업이 중견이 되는 순간 부담이 급증한다. 신산업은 허용보다 금지가 먼저다. 이런 환경에서 장기 성장 스토리는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투자자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서학개미의 출발점이다. 이 상태에서 코스피 5000을 말하는 건 현실 인식과 거리가 멀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숫자는 따라오지 않는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환율을 잡고 싶다면 달러를 막을 게 아니라, '원화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과 국내 자본 모두에게 굳이 달러 대신 원화를 들고 있어야 할 근거를 말한다. 다시 묻는다. 고환율의 이유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으면서, 왜 해법은 늘 같은가. 서학개미는 원인이 아니다. 정부가 나열한 고환율의 이유들 역시 원인이 아닌 결과가 대부분이다. 원인은 하나다. 성장과 신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제 구조다. 2026년 새해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환율 대책이 아니라, 구조개혁부터다.

[김병헌의 체인지] 대통령, 반도체 앞에서 원칙을 묻다

금산분리는 한국 경제의 오랜 원칙이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금융 지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기능해 왔다. 쉽게 손대기 어려운 규범으로 인식돼 왔지만 반도체와 AI 같은 첨단산업의 시간표 앞에서 이 원칙은 점점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수십조 원이 단번에 투입돼야 하는 산업에서 투자 시기를 놓치면 기술 격차는 순식간에 벌어진다. “돈을 벌어서 투자하려면 장비를 들여오고 세팅하는 데만 3년이 걸린다"는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의 말은,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산업의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를 보여주는 현실 진단이었다. 지난 10일 열린 '인공지능(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곽 사장이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가로막는 금산분리 규제를 언급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원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방향을 틀었다. “일리가 있다"는 대통령의 한마디는 정치적 수사라기보다 현장을 전제로 한 실질적 판단이었다. 대통령은 규칙을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산업은 멈출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확히 짚었다. 최근 이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념이나 진영의 언어보다 지금 무엇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원칙은 지키되, 원칙이 만들어진 목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세다. 금산분리라는 오래된 규범 앞에서 대통령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지금의 규제가 독점을 막고 있는가, 아니면 첨단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를 물었다. 대통령의 생각은 간단명료하면서 단순했다. 독점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면 손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법은 유연하게 '예외적 완화'다. 반도체라는 국가전략산업에 한해, 지주회사 증손회사 지분율을 100%에서 50%로 낮추고 외부 자본을 끌어올 수 있게 하자는 구상이다.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조정하는 선택이다. 새로운 실험은 아니다. 미국 인텔은 이미 글로벌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와 합작사를 만들어 반도체 팹 투자를 진행했다. 인텔이 경영권을 유지한 채 외부 자본을 활용한 구조다. 일본 역시 정부와 민간 금융이 함께 반도체 산업을 떠받치고 있고, 대만 TSMC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적극 활용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가 직접 보조금을 쏟아붓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에서, 규제 완화는 '돈 안 드는 산업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우려가 없을순 없다. 핵심 사업을 분리해 외부 투자를 받을 경우, 주주 이익이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 LG에너지솔루션 분사 당시의 논란이 다시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특정 기업, 특히 SK하이닉스를 위한 '맞춤형 정책' 아니냐는 시선마저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다. 이 대통령은 모든 완화를 공정위 심사와 승인이라는 안전장치 안에 두겠다고 했다. 무제한 특혜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범위에서의 '개방'이다. 삼성전자가 이미 누리고 있던 구조적 자유를 SK하이닉스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점에서, 역차별 해소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 미국에 원자력 잠수함 건조 협력을 요청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과거 보수 진영의 의제로 여겨졌고, 동시에 진보 진영에서 경계하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수가 원해온 요구도, 보수가 반대해온 영역도 동시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태도. 이재명식 실용주의의 핵심이다. 정치는 선택의 예술이다. 모든 원칙을 지키면서 모든 성과를 얻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조정하느냐다.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안보이자 미래 성장의 축이다. 그 사실 앞에서 대통령은 규칙을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두지 않았다. 이재명식 실용주의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 경쟁력을 본다. 이번 금산분리 예외 완화는 그 철학이 구체적 정책으로 드러난 사례다. 논란은 남겠지만, 변화는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변화다.

[김병헌의 체인지] 성장통인가 위기인가···롯데 대전환의 시작

서프라이즈였다. 12월 초 롯데그룹이 내놓은 인사 발표를 보고 재계는 잠시 술렁였다. 4명의 부회장단 전원 용퇴, CEO 20명 교체 등 한 번도 본 적 없던 '파격'이었다. 수십 년간 안정과 관료적 체계를 상징했던 롯데가, 스스로의 피부를 벗겨내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방향은 옳고 정확하다. 롯데그룹은 오랜 기간 '보수적이고 신중한 조직'으로 인식돼 왔다. 1960~199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이 꼼꼼함이 강점이었다. 껌 몇 개에서 출발해 재계 5위 기업으로 올라선 신격호 창업주의 DNA는, 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관리형 경영이었다. 그 철저함 덕분에 롯데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비교적 흔들림이 적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에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세운 것도, 신중하지만 확실한 추진력의 산물이었다. 세계의 속도는 더 빨랐다. AI·양자·신에너지 산업이 역사를 다시 쓰는 시대,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늦어진 롯데는 미래로 가는 시계가 잠시 멈춰 있었을 따름이다. 이번 인사는 그 시간을 되돌리는 '빅뱅'이었다. 특히 화학군에서 13명 중 10명을 교체하고, 9년 지속된 HQ(헤드쿼터) 체제를 폐지한 것은 단순한 인사 조정이 아니다.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개편이다. 지주사 공동대표 체제가 도입되고, 60대 임원의 절반이 물러나며 조직의 평균 연령도 크게 낮아졌다. 기업이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최대치에 가깝다. 지금은 경기 순환적 불황이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재편되는 국면이다. 미·중 패권 경쟁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물론이고 중국 제조업의 절대적 추격도 무섭다. 엔비디아·TPU 전쟁으로 더욱 두드러지는 AI 기술의 빅뱅 등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KFI) 분석에 따르면 한국 10대 주력산업 모두가 향후 5년 내 중국에 경쟁력에서 밀릴 위험이 있다고 한다. 롯데의 화학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 산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업종의 수익성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 중심의 수요 위축으로 지난 5년간 구조적으로 하락했다. 여기에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등 대규모 투자 부담이 겹치며 화학군 EBITDA도 흔들렸다. 유통도 쉽지 않다. 이커머스·플랫폼기업과의 경쟁은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오프라인 기반의 고정비 구조는 과감한 혁신 없이는 미래가 없다. 롯데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의 전면 등판이다. 롯데지주 미래성장·전략컨트롤을 총괄하며 롯데바이오로직스 공동대표까지 맡게 된 그는, 사실상 그룹 신성장동력의 선두에 섰다. 여기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롯데가 필요로 하는 리더는 '창업주의 DNA를 계승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산업 구조를 읽고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기업 생태계의 대표 주자가 되려면 AI, 바이오, 메타버스, 수소·전지 같은 미래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롯데는 이 4대 신성장 동력에 이미 1조~2조원대 투자를 진행 중이다. 송도 CDMO 바이오플랜트, BMS 시러큐스 공장 인수, 칼리버스 메타버스 플랫폼, 전기차·수소 인프라, 배터리 소재 사업 확장 등의 투자는 장기 미래를 향한 투자다. 성장통(成長痛)이다. 아프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몇 달간 롯데를 둘러싼 루머와 과장된 위기설이 떠돌았다. 그룹의 비상경영 체제, 유동성, 계열사 구조조정 등 여러 추측이 있었다. 대부분은 '불확실성 시대'가 만든 그림자였다. 기업이 큰 변화를 앞두고 있을 때 시장은 과민 반응한다. 삼성의 반도체 대전환기, 현대차의 전기차 전환기에도 비슷한 루머가 돌았다. 모두 미래로 가는 '통증의 구간'이었다. 지금 롯데도 마찬가지다. 2025년 겨울의 롯데는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실은 다시 질주하기 위해 무릎을 굽히는 단계다. 전례 없는 인적 쇄신, 조직구조 대개편, 젊은 리더십의 전면 배치 등 이 모든 변화는 기존의 롯데가 아니라 '미래 롯데'를 위한 준비로 여겨진다.롯데가 지금 겪는 흔들림을 위기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성장통이며, 더 큰 미래를 위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다시 비상을 꿈꾸는 롯데의 다음 페이지를 기대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12·3 계엄이 남긴 의미있는 역설

“권력은 책임의 무게로 존재하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순간 권력은 위험이 된다." 정치학에선 오랜기간 전해져온 문구이지만, 대한민국은 최근 짧은 시간에 이 문장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를 목격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은 특정 시점부터 균형을 잃었다. 흔들림은 조용히 시작됐고, 이후 국정 전체로 확산되었다. 국정은 일관성이 부족했다. 정책 결정 과정은 넓은 논의보다 좁은 회로에 의존했다. 전문가 조언보다 사적 인연이 우선했고, 공적 권위보다 비선의 존재가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는 점차 흐려졌고, 검찰 출신 인사들의 과도한 집중은 권력의 균형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국정의 무게추는 한쪽으로 기울었고, 시스템은 그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중심에 김건희씨가 있었다.그녀를 둘러싼 논란으로 더 흔들렸다. 주가 의혹, 협찬 논란, 의전 개입, 공천 개입 의혹 등은 사소한 해프닝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시험하는 사안들이었다. 이런 사안들이 수사·감찰 시스템의 독립성을 흔드는지 여부는 국가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국민이 “권력의 사적 영향력은 어디까지인가"라고 묻게 된 지점도 여기서부터였다. 특검이 시작되면서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료 확보 실패, 수사 지연 논란, 측근 인사의 조력 정황 등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이 현실적 검증 대상으로 넘어가고 있고 있다. 정권 내부의 작동 방식을 묻는 질문은 점차 구조문제로 확대됐고, 국정 운영의 중심부가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의 시작이 수면위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3일의 비상계엄 시도와 연관이 있다. 계엄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조치다. 그렇기에 더 신중해야 하고,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엄 시도 당시 논의된 문건과 실행 계획, 그리고 논의 참여자 구성은 이 조치가 왜 그 시점에 거론됐는지 의문을 남겼다. 언론을 통제하고 국회의 기능을 제약하며 시민 활동을 관리하는 계획들도 포함돼 있었다. 국가 전체의 비상이 아니라 정권 내부의 '그들만의 비상'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남겼다. 정치권과 학계의 분석은 계엄직전 여당 내 8표만 이탈해도 김건희 특검이 통과되는 구조라는 한 지점을 가리킨다. 도이치모터스 판결의 파장, 명태균 게이트의 확산, 공수처 수사, 검찰 조직 내 균열 등은 정권 핵심부가 체감할 수밖에 없는 압력이었다. 김건희씨에 대한 수사 가능성은 대통령의 통치력 약화로 이어졌고, 대통령의 방어적 대응은 다시 김건희 논란을 키우는 구조적 순환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사적·정치적 리스크가 상호 증폭되면서 국정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결국 당시 비상계엄 시도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두사람의 복합적 위기에서 비롯된 산물이었던 셈이다. 정권 내부에서 기인한 사적 리스크와 정치적 불안, 국가 시스템의 흔들림이 한 지점에서 모두 만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계엄이 논의된 시점의 배경에는 정권이 직면한 사법·정치적 압박이 있었다는 분석도 바로 이 구조적 맥락에서 나온다. 이 상황을 설명하는 역설적인 이야기들이 정치권과 여론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이 정권의 작동 방식이 드러나지 않은 채 2년을 더 갔다면 더 큰 위험이 있었을 것" “계엄 시도로 정권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조기에 드러났고, 국가 시스템이 작동할 여지를 되찾았다" “역설적으로, 윤석열이 가장 잘한 일은 12.3 계엄이었다". 계엄을 긍정하고자하는 말은 아니다. 계엄 시도가 드러낸 정보와 구조적 문제가 한국 사회에 중요한 경고와 교훈을 남겼다는 의미다. 통치 구조의 취약성과 권력 운영 방식의 한계가 조기에 노출된 덕분에 더 큰 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권력의 무게를 견디는 능력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다. 그 무게가 흔들리면 국가의 축은 흔들린다. 권력이 사적 영향력과 혼합되기 시작하면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고, 혼란의 대가는 국민이 치르게 된다. 2025년 12월3일의 계엄 논란이 벌써 1년을 맞는다.지금 필요한 건 정쟁이 아니다. 시스템 재정비로 감시와 견제의 회복, 수사·감찰의 독립성 강화, 비선 영향력 차단, 제도적 균형의 복원부터 함께 서둘러야 한다.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로 나아갈 것인지 되묻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김병헌의 체인지] APEC, 한국의 외교적 주도권과 실질 성과

무대 위의 조명이 한곳에 모였다. 순간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경주, 그 낯익은 도시가 세계의 중심이 된 밤이었다. APEC 정상회의가 막이 오르자 시선은 곧 하나의 장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마주 앉은 그 순간이었다. 짧은 악수 뒤, 회담은 단숨에 본론으로 치달았다. 곧이어 발표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 숫자만 봐도 숨이 막히는 금액이지만, 의미는 따로 있었다. 연간 200억 달러 이하로 분할 투자한다는 방식이었다. 단기적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파트너십의 신호였다. 한국을 '일시적 거래상대'가 아니라 '미래의 시장이자 기술 동맹'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상징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우리는 당신의 시장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미국은 “그렇다면 당신은 신뢰할 만한 동맹이다"라고 답한 것이다. 한 문장의 교환이 이번 회담의 핵심이었다. 한미 협상의 진짜 성과였다. 이어진 안보 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숙원 사업인 '핵연료 추진 잠수함' 개발을 사실상 승인했다.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단순한 무기체계의 확보가 아니라, 미국이 핵심 군사기술을 공유하는 협력선에 한국을 올려놓았다는 의미였다. 이제 한국은 공조의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따라가는 안보'에서 '주도하는 안보'로의 변환점, 이번 승인에 담긴 진짜 의미였다. 거대 투자와 핵잠 승인은 APEC의 본회의보다 훨씬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세계가 주목한 건 회담장안 공동선언문이 아니고 회담장 밖에서 이어진 한국과 미·중·일의 연쇄 회담이었다. 실질적 약속, 구체적 행동, 한국이 그 중심에 있었다. 과거 APEC이나 ASEAN 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늘 미국과 중국, 혹은 일본의 움직임에 쏠렸다. 의장국은 진행자에 머물렀고, 회담의 무게중심은 늘 '외부'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경주는 외교의 지리적 무대가 아니라 외교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질적 조정자이자 협상가로 무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드물다. ASEAN이나 G20에서도 의장국이 일정한 존재감을 드러내긴 하지만, 양자·삼자 회담을 동시에 주재하며 경제와 안보의 양축을 모두 흔든 경우는 손에 꼽힌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에 전례 없는 방식을 만들어 다자와 양자를 동시에 이끄는 '무대의 연출자'로 바뀐 것이다. 물론 남은 과제가 없진않다. 먼저 이번에 발표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이 단순한 선언에 머물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거대한 합의를 구체적 산업 전략으로 연결해야 하고, 기업들은 이를 실행 가능한 사업계획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유치 실적이 아니라, 향후 10년 한국 산업의 지형을 다시 그릴 '구조적 약속'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 투자라는 숫자가 아니라 내용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도체, 인공지능, 방산, 청정에너지 같은 전략산업에 어떤 방식으로 그 자금이 흘러들지, 어떤 기업이 주도하고 어떤 지역이 중심이 될지가 중요하다. 외교가 현실경제로 연결될 때, 그것이 비로소 '국익'이 된다. 핵연료 추진 잠수함 사업도 그렇다. 미국의 승인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성과는 기술협력과 연료공급, 그리고 제작역량 확보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한국이 자주적 안보 역량을 갖추려면, 단순한 첨단 무기 도입을 넘어 자체 제작 체계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를 새로 짜고, 연구·인력·제조 라인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투명성 확보도 필수적이다. 핵 관련 기술은 언제나 국제 규범과 감시의 대상이다. 한국은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칙 위에서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은 투명성 위에서만 단단해진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성과들을 APEC 틀 안에서 제도화하는 일이다. 지금의 외교적 존재감이 일회성 이벤트로 소모된다면, 어떤 성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미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핵심국을 하나의 협력 구조로 묶어내는 경제·안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외교의 무게중심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에 있을 때 유지된다. 외교는 말보다 결과로 평가된다. 이번 회담은 '말'이 아니라 '실행'을 예고한 자리였다. 이제 남은 일은 분명하다. 합의를 현실로, 약속을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에게 남긴 진짜 과제이자, 앞으로의 도전이다.

[김병헌의 체인지] 협상은 끝났지만 계산은 시작됐다

교착 상태였던 협상이 한순간에 움직였다. 한·미 정상의 건배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긴 인내의 결실이었다. 외환시장 불안, 산업계의 긴장, 여야의 정치 공방 속에서 한 줄기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3 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와 함께, 우리는 보호무역의 높은 벽을 넘어 또 한 번의 '경제 안보의 줄타기'를 완성해냈다. 그러나 “극적 타결"이라는 말이 끝을 뜻하지 않는다. 이제 본격 시작이다. 협상의 핵심은 단순한 관세율 조정이 아니다. 협상 테이블 위에 오른 것은 우리의 외환 안정, 산업 구조, 대미 투자, 나아가 미래의 기술 주권이었다. 미국은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했지만 최종 합의안은 3 500억 달러 중 2 000억 달러 현금, 1 500억 달러 조선업 협력으로 정리됐다. 현금은 연간 200억 달러 한도,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포함됐다. 여기에 투자 손실 방지를 위한 공동위원회 구성, 상업적 합리성 검증, 20년 원리금 회수 조건이 붙었다. '협상'이 아니라 '공학' 수준의 계산이 들어간 타결에 가깝다. 조선업 협력 사업 1 500억 달러는 단순한 산업 지원이 아니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해양운송·방위 인프라 분야를 한국이 맡아 공동 개발하는 구조다. 현금은 줄이되 산업 동맹을 강화한 것이다. 협상단의 세밀한 전략이 돋보였다. 달러를 지키면서 신산업의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지만 최종합의까지 멀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 구성, 수익 배분 비율, 원금 보전 방식은 모두 추후 세부 협의로 남았기 때문이다. 완성본이 아니라 '설계도'만 마무리됐다. 추가 협의의 세부 쟁점은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연간 투자 시기 조정 조건이 있다. 외환시장이 요동칠 때 투자 일정을 얼마나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공동위원회의 구성 방식. 투자 대상을 결정할 실질적 권한이 한·미 어느 쪽에 있느냐는 협상의 핵심 줄기다. 원리금 상환 비율 문제도 상존한다. 20년 안에 회수되지 않을 경우 수익 배분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조항은 향후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또 조선업 협력 사업의 보증 구조도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가 보증을 얼마나 떠안고, 민간 기업이 어느 수준까지 참여할지가 시장 신뢰를 좌우한다. 마지막으로 환율 급등 시 긴급 중단 메커니즘이 남아있다. 자본 유출이 현실화될 경우 투자 집행을 얼마나 신속히 제어할 수 있느냐는 외환 방어의 결정적 변수다. 이번 협상의 숨은 뇌관이 이 다섯 축이며 타결의 완성도를 결정할 잔여 과제다. 겉으로는 합의의 틀이 갖춰졌지만, 세부 내용은 이제부터다. 외환·산업·통상·금융이 교차하는 다층 협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럼에도 이번 타결이 던지는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 주도의 보호무역주의 속에서도 한국은 자유무역의 잔존 공간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상호 관세율을 15%로 맞춘 것은 일본·EU와 동일한 수준이며, 이는 우리 수출 경쟁력의 방어선이기도 하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25%→15%로 하향되면서 현대자동차·기아 등 주요 수출기업은 숨통을 틔웠다. '15%'는 동시에 새로운 시험대다. 한국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10%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 부담은 여전히 버겁다. 미국 현지 생산이 늘면 국내 투자 여력이 줄고, 일자리의 국내 유지율은 떨어진다. 외교적 성공의 협상일지언정, 산업의 현장은 더 팽팽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과 EU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인프라 중심의 '제로 리스크 투자', 즉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부 보증형 프로젝트만 합의했다. 반면 한국은 산업 협력과 시장 개방을 병행했다. 일본은 방어형, 한국은 진출형 모델이다. EU 역시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세 상쇄 대신 기술 공동표준 제안을 통해 산업 주도권을 확보했다. 한국은 이번에 자금과 기술, 외교를 동시에 걸었다. 그만큼 리스크와 보상이 모두 크다. 결국 문제는 타결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합의가 단기적 안정을 주는 대신 중장기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첫째, 달러 유동성 방어선 구축이다. 미국 투자 집행이 시작되면 환율은 즉각 반응할 것이다.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보다 장기 스왑라인 확충 등 구조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산업 리디자인이다. 대미 투자로 빠져나갈 자본만큼 국내 산업에 신산업 펀드를 유입해야 한다. 조선, 반도체, 배터리, AI, 항공 등 핵심 전략산업의 내수 생태계도 단단히 세워야 한다. 셋째, 통상외교의 다변화 속도전이 더욱 절실해졌다. 미국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일본·EU, 나아가 아세안 시장의 경쟁력이 무너진다. 시대엔 한발 빠른 다변화가 생존 전략이다. 주목할 것은 반도체 부문의 불확실성이다. 정부는 “우리 측은 반도체 관세에서도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측 발표는 조금 온도가 달랐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번 합의에 반도체 관세 조정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SNS를 통해 주장했다. 명시적 품목관세 인하는 반도체에 대해 아직 잠정적이며, 품목별 리스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자동차 관세 인하는 구체화됐지만 “언제부터 적용하느냐"가 정부 절차에 달려 있다는 보완도 존재한다. 양국 발표 간의 차이는 단순한 어휘 차이가 아니다. 이는 산업계에 '신뢰의 시계'를 맞추는 문제다. 미국이 세부 문서 서명 전까지는 관세 부과 조정, 프로젝트 선정, 수익구조 변화 가능성 등을 열어두었음을 의미한다. 반도체가 품목관세 테이블 위에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 호재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의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협상 타결은 이제 첫 페이지다. 외환·산업·무역·기술이 교차하는 다층 협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녹록치 않다. 환율을 지키고, 산업을 재편하며, 통상외교를 재구성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 있는 지금, 한국 경제는 이제부터다.극적인 타결보다 더 어려운 것이, 냉정한 지속임을 알아야 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뜨거운 증시, 거품인가 회복인가

요즘 증시가 뜨겁다. 카카오톡 단체방마다 주가 이야기가 오가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요즘은 주식이 답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반도체, 조선, 방산을 중심으로 주요 종목이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투자심리가 한껏 달아올랐다. 올해 들어 코스피는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른바 '미친 장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지금의 상승이 실질적인 회복의 신호인지, 아니면 과도한 기대와 유동성이 만든 착시인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낙관론자들은 이번 상승을 '정당한 재평가(Re-rating)'로 본다. 그동안 저평가돼 왔던 한국 증시의 구조적 한계가 완화되고, 글로벌 투자자들이 다시 한국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과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이던 낮은 배당성향, 불투명한 지배구조, 정책 불확실성이 최근 개선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역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으며 시장의 체질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기대가 이익을 앞서간다"고 지적한다. 현재 주요 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글로벌 경쟁사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조선주는 미국의 기술주보다, 방산주는 글로벌 방산 대기업보다 비싸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아직 기술력이나 시장 확장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이번 상승이 실적이 아닌 기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실물의 성장 없이 오르는 주가는 언제든 조정받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회복 중이다. 주요 기관들은 내년 성장률을 1.6~1.9%로 전망한다.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이지만, 그 안에서 구조적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 회복과 AI 수요 확대의 수혜를 받고 있고, 조선과 방산 업종은 수주 경쟁력 강화를 통해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2차전지, AI, 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으로의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실물은 더디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다만 유동성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저금리 기조와 풍부한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며 상승세를 키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돈의 피난처' 역할을 주식이 대신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거품의 잠재 위험을 내포한다. 실물보다 빠르게 오른 주가는 언제든 되돌림이 가능하다. 결국 지금의 장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와 '유동성 버블의 팽창'이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환율과 물가 또한 증시 흐름의 중요한 변수다. 원화는 2022년 이후 주요국 통화 중 가장 약세를 보였고, 수입 물가 상승으로 체감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다. 그러나 환율 약세를 단순히 경제 취약성의 신호로만 해석하긴 어렵다. 엔저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고부가 산업 중심의 구조로 재편 중이다. 원화 약세는 수출기업의 수익성 개선을 도와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구조적 과제는 분명하다. 국내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외국인 자금이 충분히 유입되지 않는 현상은 여전하다. 2012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한국의 해외 증권투자는 7917억 달러에 달하는 반면,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는 2900억 달러 수준에 그쳤다. 이처럼 내국인끼리 사고파는 '내수형 증시' 구조는 시장의 깊이를 제한한다. 결국 글로벌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상승세의 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지금의 증시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분명 과열의 조짐은 있지만, 그 안에 깃든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단기 상승이나 하락의 방향이 아니라 그 상승이 무엇에 기반하느냐이다. 실적과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승은 허상으로 끝나지만, 산업 경쟁력과 제도 개선이 동반된 상승은 진짜 회복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시장 모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오르게 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왜 오르는가"를 냉정히 분석하는 일이다. 산업 혁신 없이는 성장의 바닥을 깰 수 없고, 금융정책의 정상화 없이 자산시장의 균형도 불가능하다. 단기 부양보다 체질 개선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기술, 인력, 제도 — 어느 하나 혁신 없이 버티려는 경제는 결국 정체된다. 지금의 한국 증시는 불안한 거품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문턱에 서 있다. 이 상승이 허상으로 꺼질지, 아니면 진짜 회복의 서막이 될지는 결국 실물경제가 답할 것이다. 결국 시장은 언제나 냉정하다. 실물보다 앞서간 주가는 결국 현실을 따라 내려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하강을 충격이 아닌 조정으로 만드는 것이 진짜 경제의 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도, 맹목적 낙관도 아닌 냉정한 균형감이다.

[김병헌의 체인지] 캄보디아 사태···기회의 문이 닫히면, 청년은 국경 밖으로 떠난다

서울 강남의 밤은 여전히 환하다. 하지만 그 불빛 속에 앉은 청년의 얼굴엔 그림자가 짙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그의 눈에 '월수입 1000만 원 가능'이라는 문장이 반짝인다. 마지막 희망을 거는 손끝이 '지원하기'를 눌렀다. 그 선택이 인생의 경계선을 바꾸어 놓았다. 몇 달 뒤, 그는 캄보디아의 범죄단지에서 구조 요청 메일을 보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어디 있습니까." 그 짧은 문장이 지금 이 나라 청년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이자, 한 사회의 무관심이 낳은 기록이었다. 캄보디아 사태는 단순한 외교 실패가 아니다. 그건 국가가 청년의 절박함을 외면해온 세월의 결과다. 정부는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말에는 한국 사회의 무책임과 체념이 응축돼 있다. 외교의 실패는 사건으로 남지만, 청년의 방치는 구조로 남는다. 우리는 이 사건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흘려보내고 있지만, 그들의 절규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도 들려오고 있었다. 청년 취업자는 1년 새 10만 명 넘게 줄었고, 비정규직 비율은 38%를 넘어섰다. 제조업 일자리는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청년 네 명 중 한 명이 계약직으로 사회에 들어선다. 면접장은 점점 좁아지고, 합격 통보는 희귀해졌다. “경험이 없어서 탈락했습니다."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경험할 기회를 얻지 못한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기회를 막아온 사회의 책임이다. 우리는 청년에게 언제까지 '스스로의 무능'을 증명하라 강요할 것인가. 대학은 여전히 이론의 섬 위에 있고, 기업은 즉시 쓸 수 있는 인재만 원한다. 정규직은 과보호되고, 비정규직은 버려진다. 청년이 정규직 문을 두드릴수록 그 문틈은 더 좁아진다. 정부는 매년 '청년 일자리 종합대책'을 발표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름만 달라질 뿐 본질은 늘 제자리다. 정책은 소리만 요란하고,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 정년 연장과 주4.5일제는 이미 자리를 가진 세대의 안락을 위한 제도일 뿐, 아직 자리를 얻지 못한 세대의 구명줄이 아니다. 캄보디아로 떠난 청년들이 그토록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이 땅에 남아 있을 이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사람들, 더 이상 시도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불안이 남고, 그 불안은 다시 누군가의 절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 한 세대 전체가 '패배의 감정'에 익숙해진다. 독일은 대학과 기업이 함께 설계한 도제 시스템으로 청년이 졸업과 동시에 '현장 경험자'로 사회에 들어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스위스는 청년 인턴의 임금을 정부가 일정 부분 보조하고, 정규직 전환 시 세제 혜택을 준다. 일본은 지방 중소도시에 청년 고용과 창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수도권 집중을 완화했다. 그들은 청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경제의 주체'로 다뤘다. 청년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국가가 설계해준 것이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단기 알바성 대책과 공허한 구호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구조다. 청년이 졸업과 동시에 사회와 이어지는 통로, 기업이 청년을 채용할 이유가 생기는 인센티브, 지역이 청년을 품을 수 있는 생태계,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일자리 정책의 일관성이다. 기회의 문을 여는 일은 거창한 혁신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상식을 실행으로 옮기는 용기다. 캄보디아에서 죽어간 청년의 메일은 외교부의 스팸함에 묻혔다. 지금 이 땅에서도 수많은 청년이 매일 이력서라는 이름의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절박한 신호에 국가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직접 신고하라"는 말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가. 청년의 절망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무능이 낳은 결과다. 기회의 문이 닫히면 청년은 국경 밖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엔 언제나 위험이 기다린다.우리가 외면한 청년의 메일이 캄보디아의 비극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그 메일을 읽을 시간이다. 그리고 응답할 시간이다. 청년을 구조하지 못하는 사회는 스스로의 미래를 구조할 수 없다. 변화는 제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타인의 절망을 읽어내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국정감사와 권력분립의 충돌··· 헌정의 선을 그을 때

정치는 언제나 권력의 경계 위를 걷는다. 국정감사도 그중 하나다. 감사라는 이름 아래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필수 장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개입'과 '간섭'의 경계로 흐려진다. 13일 시작된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대법원장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놓고 충돌 논란을 빚는게 그 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사법부를 감시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법원은 사법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고 반발한다.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지만, 헌법이 말하는 삼권분립의 정신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완결되지 않는다.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가 규정한 국회의 권한이다. 국정 전반에 대한 감사와 조사, 국민을 대신한 통제의 기능을 수행한다. 여당은 이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권력을 감시한다"고 말하고, 야당은 “행정부뿐 아니라 사법부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에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법원 내 인사 문제나 특정 판결의 배경이 정치적 이해와 얽혀 있다는 의혹이 불거질 때, 국회의 '확인권'은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사법부라고 해서 성역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헌법이 규정한 권력분립은 단순히 권한의 분배가 아니라, 상호 간섭을 금지하는 질서의 합의다. 법원은 법률의 해석과 판결을 통해 최종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다. 입법부가 그 내부 판단 구조를 증인석에서 따지기 시작하면, 그 순간 사법부의 독립은 흔들린다. 비슷한 논쟁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1950년대 미국 의회는 연방대법관 몇 명을 증인으로 소환하려 했다. 특정 판결이 의회의 입장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와 법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반대했다. 결국 대법관들은 의회 출석을 거부했고, 이후 미국에서는 사법부 수장을 청문회나 감사 자리에 세운 전례가 사라졌다. 대신, 연방대법원은 '윤리 보고서'와 '행정 투명성 문건'을 매년 의회에 제출하면서, 제도적으로 설명 책임을 다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접 심문 대신 제도적 투명성으로 신뢰를 회복한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연방헌법재판소의 소장이나 판사들은 국회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사법평의회와 헌법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법원 행정이 통제된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사법부에 대한 국정감사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는 모두 '견제는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통해 권력분립을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만든다. 우리의 경우, 국회가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부르려는 시도는 헌법상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헌정의 역사에서 “할 수 있다"가 곧 “해야 한다"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절제가 있어야 지속된다. 여당은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국민 여론을 배경으로, 사법권을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반면 야당은 “정권이 사법부를 길들이려 한다"고 반발하며, 대법원장의 출석은 '정치적 압박'으로 본다. 결국 한쪽은 투명성을, 다른 한쪽은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문제는 이 논쟁의 밑바닥에 '사법 불신'이라는 공통된 뿌리가 있다는 대목이다. 정치가 법원을 신뢰하지 못하고, 국민이 판결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견제와 개입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진다. 국회가 대법원장을 불러 세워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신뢰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가 정치의 무대에 서는 순간, 재판의 권위는 정치적 해석에 잠식된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 당시 사법부의 일부 인사들이 정치적 책임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대법원장 출석 요구를 끝내 철회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사법부를 국회의 증인석에 세우는 순간, 권력분립의 마지막 선이 무너진다."그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헌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판의 투명성,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 판사 인사제도의 폐쇄성 등은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기 위한 방식이 '정치적 청문회'가 되어선 안 된다. 미국처럼, 사법부가 스스로 국민 앞에 행정 보고를 제출하고, 윤리 감시 제도를 강화하는 방식이 보다 지속 가능하다. 국정감사와 권력분립의 충돌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국회가 사법부를 감시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사법부도 정치로부터 독립할 권리가 있다. 양쪽 모두 헌법의 일부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이 요구하는 것은 '모두의 권리'보다 '각자의 절제'다. 견제는 필요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개입은 유혹적이지만, 헌정의 질서는 그것을 금한다. 민주주의의 품격은 힘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어디서 멈추느냐로 판가름난다. 국정감사는 감시의 눈이지만, 그 눈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헌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법부가 독립을 잃는 순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도 함께 흔들린다. 오늘의 논란은 단지 대법원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헌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다. 견제의 힘과 절제의 미학, 그 중용의 지점이 지금은 어딘지 정확히 알 수없지만 모두의 노력과 연구,시행착오를 통하면 적절한 지점은 반드시 나올것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민주주의는 자란다.

[김병헌의 체인지] 이재명 정부, ‘실용’의 끝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어느날 밤 서울 도심의 한 카페. 스무 살 청년들 서넛이 유튜브 정치 채널을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누군가는 대법원장을 조롱하는 밈을 공유하고, 또 다른 이는 “이번 부동산 대책으로 무조건 집값은 떨어진다"며 장담한다.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그들의 스마트폰 속 세계는 한 편의 쇼처럼 흘러간다. 문제는 이 환상과 흥분이 점점 더 사회의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원래 제도와 법, 차가운 숫자와 데이터에 근거해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감정과 영상, 팬덤과 음모론이 제도를 압도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둘러싼 의혹이 국회의 의제가 되고, 사실 확인보다 유튜브 채널의 해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합리적 토론은 자취를 감추고, 여론조사 수치만이 진실인 것처럼 소비된다. 결국 정치가 냉정한 판단을 잃고 흥분의 무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경제와 외교도 걱정스럽다. 지금도 지지부진한 한미 관세 협상을 보자. 정부는 3500억 달러 투자와 관세 15% 인하를 성과라고 홍보했지만, 따져 보면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 한국은 이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었고, 투자 규모는 GDP 대비 일본이나 유럽보다 훨씬 무겁다. 투자 성격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합의서 한 장 없이 “성공"이라 포장한 것은 현실을 가린 자화자찬일 뿐이다. 국가 재정을 담보로 한 거대한 모험을 “성과"라 부르는 것은 책임 있는 협상이 아니라 눈속임에 가깝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 정책은 더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28번 대책을 쏟아내고도 실패했던 이유는 수요 억제와 공공임대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주택담보 대출을 제한하고, LH 중심의 공급 확대를 내세웠지만, 정작 민간 건설사들은 움츠러들었다. 서울의 아파트 공급은 오히려 줄고, 청년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멀어졌다. 공공임대 확대가 근본 해법이 될 수 없음은 이미 입증됐다. 하지만 집권 세력은 여전히 민간 공급보다는 표심 관리에 유리한 방식에만 집착한다. 시장은 더 왜곡되고 집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커져만 간다. 에너지 정책 역시 불안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실험으로 원전 생태계가 붕괴된 뒤 이제야 회복 기미를 보이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원전 건설 백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생에너지가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15년이 걸린다'는 이유만로 원전 포기 가능성에 자락을 깔아놓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가 에너지 안보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업계도 투자를 멈추고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을 흔드는 선택이 되는 셈이다. 정치도 과거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반대 진영을 몰아붙였다면, 이재명 정부는 내란 청산을 내세우며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국회는 합의와 타협 대신 거대 여당의 단독 처리가 일상화되었고, 관행은 무너지고 있다. 제도와 규칙이 무너진 자리에는 선동과 진영 논리뿐이다. 국민은 점점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대립과 갈등이 깊어진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시민들이 이런 정치 속에서 오히려 '힘을 가졌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대목이다. 유튜브와 SNS는 짜릿한 정치적 흥분을 제공한다. 지지자들은 자신이 국가의 주인공이 된 듯한 환상을 맛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검찰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범죄자들은 무죄를 받기 쉬워졌고, 피해자들은 변호사비 부담에 시달릴 일만 남았다. 정치적 흥분은 달콤하지만, 실제 삶은 더 고단해진다. 결국 손해는 국민이 본다. 이재명 정부의 문제는 몇 가지 정책 실패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환상에 기대려 한다는 것이가장 큰 문제다. 관세 협상에서 포장된 성과, 부동산과 에너지 정책에서 반복되는 오류, 청산 정치라는 이름의 대립과 갈등, 팬덤 정치와 음모론이 제도를 압도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눈앞의 환상에 취한 결과다. 정치는 흥분과 쇼의 무대가 아니다. 차가운 이성과 냉정한 계산 위에서만 나라가 굴러갈 수 있다. 지금처럼 환상과 감정에 기대는 정치가 계속된다면,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단순히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고 심각한 위기로 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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