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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보호한도 1억원으로 올리자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요약>예금보호한도는 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다. 경제규모, 소득, 예금액 증가 등을 고려하면 손질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보듯 디지털 시대 뱅크런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내 돈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관련 법안도 다수 국회에 발의돼 있다.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예금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올 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순식간에 파산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뱅크런은 디지털런으로 진화했다. 이젠 자기 돈을 찾으러 은행까지 뛰어갈 필요도 없다. 불안하면 스마트폰에서 몇 번 클릭만 하면 된다. 예금보호한도를 높이면 뱅크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은행 등 금융사는 부정적이다. 예금보험료를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재무건전성이 낮지만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으로 예금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예금보험료 부담이 커지면 은행 등은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부담은 고객에게 돌아간다. 예금보호한도를 올릴지 말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는지 등을 살펴보자.◇ 지금은 어떻게 보호하나예금보호제도는 1995년 제정된 예금자보호법에 근거를 둔다. 이듬해인 1996년 예금보험공사가 출범했다. 처음엔 2000만원까지 보호했다. 은행 등이 망해도 2000만원까지는 예보가 대신 지급했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에 보호한도가 5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이 금액이 23년째 그대로다. 은행,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금융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예보에 예금보험료를 낸다. 이런 금융사를 부보(附保) 금융사라 부른다. 보험료율은 업종마다 다르다. 재무 구조가 탄탄한 은행은 예금액 대비 0.08%만 낸다. 보험사와 증권사는 0.15%, 저축은행은 0.4%를 낸다. 예금보호한도 5000만원은 개별 금융사별로 본점·지점 금액을 합친 금액이다. 예컨대 A은행 (가)지점에 4000만원, (나)지점에 6000만원을 예금했다면 A은행 예금액 1억원 중 5000만원만 보호한다. 예외도 있다.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예금과 별도로 보호한다. 여기에 더해 금융위원회는 최근 연금저축과 사고 시 받는 보험금에 대해서도 별도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우체국, 농·수협 지역조합에서 가입한 예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개별 법에 따라 자체 기금 등으로 보호를 받는다.◇ 한도를 올리자는 게 중론예금보호한도를 높이자는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2001년 5000만원으로 높인 이래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 1인당 소득과 예금액도 몇 배로 불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1년 약 1만1500달러에서 2021년 약 3만5000달러로 늘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작년 2월 당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GDP(국내총생산) 규모 등을 보면 한도를 상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예금보험료율 등 부담이 커지는 부분도 있어 15년간 얘기가 돼왔던 것인데, 충분히 검토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예보는 연구 용역과 민관합동 TF 논의 등을 거쳐 올 8월까지 예금보험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상 드라이브를 거는 와중에 중견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트위터 등으로 SVB가 불안하다는 소문이 돌자 이른바 디지털런이 발생했다. SVB는 36시간만에 문을 닫았다. 불길이 다른 금융사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미국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은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최대 25만달러(약 3억27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한다. 하지만 25만달러도 디지털런 광풍 속에 맥을 추지 못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월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SVB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면 뱅크런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한은과 당국의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이미 국회에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대다수는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예보가 손질하는 개선안이 8월에 국회에 보고되면 예금보호한도를 높이자는 논의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롤 모델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1930년대 초 대공황이 미국을 짓눌렀다. 은행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망했다. 뱅크런은 수시로 일어났다. FDIC는 은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1933년 출범했다. 초기 예금보호한도는 2500달러였다. 이 금액은 여러차례 바뀌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25만달러로 높아졌다.FDIC는 정부 예산 지원 없이 회원(부보) 금융사한테 보험료를 걷어서 예금보험기금(DIF)를 쌓는다. 보험료율은 업권별 예금 규모, 위험도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FDIC는 전체 예금의 1.35%를 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2020년의 경우 예금의 1.35%는 1200억달러(약 156조원)에 해당한다.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5명으로 구성한다. 당연직 2명을 빼고 3인은 상원 인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명직 3인의 임기는 6년이다. 대통령은 3인 가운데 한 명을 위원장(임기 5년)으로 임명한다. 큰 틀에서 예금보험공사는 FDIC 체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사회 구성에서 보듯 FDIC는 권한이 훨씬 세다. 예보 내 예금보험위원회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데 예보 사장이 자동으로 위원장을 맡는다. ◇ 금융안정계정 신설은 또다른 이슈정부는 작년 12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예금보험기금 계정에 금융안정계정을 설치하는 게 핵심이다. 여태껏 금융사 구제금융은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정부는 이걸 사전 대응으로 바꾸려 한다. 금융사가 부실 낌새를 보이면 그 회사가 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미리 금융안정계정을 통해 ‘실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예보 기금 안에는 업권별 고유계정과 저축은행 특별계정이 있다.미국 FDIC는 2008년 금융위기 때 DGP, 곧 ‘부채 보증 프로그램(Debt Guarantee Program)’을 가동했다. 금융사가 발행한 채권에 사실상 정부가 보증을 선 셈이다. 이는 금융 불안정을 잠재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본 예금보험공사는 위기대응계정을 신설했다. 우리나라 예금보험제도는 크게 두 번 홍역을 치렀다. 외환위기 때는 공적자금을 통해 금융사 부실을 국민이 온전히 떠안았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는 은행 등 다른 업권에 구조조정 비용이 전가됐다. 둘 다 사후 대응이다. 금융안정계정 신설은 사전 대응 장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억원으로 올리자예금보호한도는 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다. 소득과 물가 등을 고려하면 손을 볼 때가 됐다. 더구나 SVB 파산에서 보듯 디지털 시대에 금융사 파산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진다.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산다. 그 어느 때보다 "내 예금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1억원으로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 부작용이 우려된다지만 고객 신뢰 확보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다. 만약 한도 상향으로 예금 쏠림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업권별로 한도를 차등 적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내가 맡긴 예금을 철통같이 지키려면 금융사가 내는 예금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 여파로 대출금리가 높아지거나 예금금리가 낮아질 수 있다. 이는 고객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경제칼럼니스트>미국 중견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 3월 뱅크런으로 순식간에 문을 달았다. 사진은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입구. 사진=연합뉴스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로고

[EE칼럼]세월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진다

‘탈진실(post-truth)’은 사실보다는 감정이나 개인의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가 오늘날에 비해 더 진실에 가까운 시대였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과거에 비해 거짓말이 심해졌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게 옳겠다. 정도의 문제지 인류의 역사는 거짓말의 역사다. 거짓말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성공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성경의 베드로는 스승인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회개하고 복음 전파에 힘써 초대 교황이 됐다. 유명한 ‘베드로의 부인’이다. 망한 사례도 있다. 닉슨은 재선을 위해 벌인 민주당 전국위를 도청한 사실을 부인했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톰 필립스는 그의 저서 ‘진실의 흑역사(TRUTH)’에서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썼다. 그는 저서에서 거짓말의 역사와 사례를 통해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은 어떻게 확산되는가, 대중은 왜 거짓말에 현혹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설명이 흡족하지는 않지만(번역본을 읽은 탓도 있음) 흥미로운 주제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매스컴은 거짓말의 생산과 확산의 주인공이다. 1833년 창간된 뉴욕의 ‘선’지는 1835년 ‘달나라 이야기’를 일주일 동안 연작으로 싣는다. "천문학자 존 허셜(영국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 달에서 날개가 달린 생명체의 존재를 관측했다. 달에는 숲과 호수, 사파이어로 쌓아 올린 신전이 있다….생태계가 유지되고 있으며 박쥐인간이 살고 있다"는 상상으로 쓰여진 이 연작기사는 충격과 동시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기사 내용 중 어느 하나도 사실이 아닌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창간 2년에 불과한 ‘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 됐다. 옛날 얘기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현대에도 언론을 포함한 이해집단의 ‘꾸며내기’, ‘과장 보도’는 계속 진행 중이며 정보 통신망의 발달에 힘입어 상상을 초월하는 파급력을 갖게됐다. 정보의 빠른 유통이 거짓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거짓말이 지구 반 바퀴를 돌 동안 진실은 신발 끈을 매고 있다’는 말로 비유된다. 거짓말이 늘다 보니 요즘에는 팩트 체크라며 거짓말을 기사로 내보내는 매스컴도 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전임 대통령이 했던 이 말은 어떤 일이 거짓으로 밝혀질 때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유머가 되었다. 후쿠시마 오염물 처리수 방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쿄전력은 방류를 위해 해저터널 굴착공사를 끝내고 시운전을 시작했다. 7월 초 IAEA의 최종 평가보고서가 전달되면 방류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좀처럼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원자력학회가 모처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학회는 처리된 오염수가 무해하다며 주장이 다른 측에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어민과 수산업 보호 그리고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서다. 방류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수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판매량이 감소하니 점잔은 과학자들도 수수방관하기 어려웠을 거다. 방류 반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사실 오염 처리수 방류 반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들 내부로 향하는 시선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깨끗하면 너나 마셔라" 몇 번 외치고 끝날 줄 알았다. 무리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직후 처리되지 않은 고농도 오염수가 하루 300톤씩 방류됐지만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우리나라 바닷물과 수산물의 방사성 농도를 12년 동안 측정했는데도 아무 영향이 없었다. 그 사이 우리는 국내산 생선을 잘 먹었고 아무 이상도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을 통해 확인한 팩트다. 이른바 ‘내먹내확’(내가 먹고 내가 확인했다)이다. 거짓말의 성공 여부는 목표를 달성하는가에 있다.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는 생명을 유지함으로써, 달나라 이야기를 보도한 ‘선’지는 판매부수를 늘림으로써 성공했다. 오염수 방류 반대 주장의 목표가 시선 돌리기였다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의 유무해 판단이 언제, 어떻게 결론 내려질 지는 알 수 없다. 그 시기는 방류가 시작된 직후가 될 수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진다. 앞의 거짓기사를 썼던 ‘선’지의 로크는 달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폭음을 일삼다가 언론계를 떠났다. 진실이 밝혀진 뒤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의심부터 했기 때문이다.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이슈&인사이트] 이제는 글로벌 서비스 기업 육성할 때

한국 기업들은 6·25 전쟁으로 산업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이제 세계적인 기업, 세계 속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전자, 반도체, IT 등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뤘다. 최근 한국은 게임, K-팝, 드라마, 영화 등 문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냉정하게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폰이 보급되던 초기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에 비해 중국 게임사들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상품성 있는 게임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당시 게임이 없으면 스마트 폰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관련 회사들은 한국 게임사를 찾아 게임을 구매하기 바빴다. 그 중에 텐센트(Tencent)라는 기업은 한국 게임을 구매해 중국 전역에 배급하면서 고속성장을 이뤘다. 텐센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 게임사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면서 한국 게임사의 대주주로 등극했다. 텐센트는 게임을 단순히 유통하는 배급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접 게임을 제작해 배급하면서 아시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드라마는 중화권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 남미,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까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초기 반짝 흥행에 그칠 것이라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장기간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에 이어 한국 영화가 유럽과 미국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한국에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중 관계가 좋았을 때는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 드라마를 제작했는 데 , 중국 자본 덕분에 한국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아졌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셈을 해보면 중국 투자사는 한국 기획사의 10배 이상 수익을 챙겨갔다. 한한령 이후 새로운 후원자인 미국 넷플릭스가 등장했다. 거액을 투자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마찬가지로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챙겼다.’ 한한령 이후 K-팝이 전환위복이 되며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BTS가 빌보드를 석권했지만 과연 누군가 활동을 중단한 BTS를 이어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기우로 만들면서 K-팝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덕분에 기획사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심지어 대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획사들은 아이돌 그룹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무대에서 공연할 때 그 수익금 중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 훨씬 큰 수익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불러들인 현지 기획사들이다. K-콘텐츠는 언제까지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칠 수 있을까. K-콘텐츠의 대유행이 약해지면 K-콘텐츠 산업은 무너져야 하는가. 이제는 K-콘텐츠로 한국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텐센트, 한국의 넷플릭스, 한국의 세계적 공연기획사를 육성해야 한다. 정부는 일찍이 문화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떠 K-콘텐츠 산업이 잘 성장하도록 지원해 왔다. 이제는 정부가 콘텐츠 개발(제작) 기업을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콘텐츠 배급사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 K-콘텐츠가 언제까지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때는 미국 영화사가 알라딘, 뮬란 등 세계 각국의 소재를 끌어다 자신의 수익을 높이는 것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기자의 눈] 끊이지 않는 반도체 기술 유출, 솜방망이 처벌이 키운다

[에너지경제신문 여이레 기자] 최근 우리 반도체 기업에 대한 기술 유출 시도가 연이어 적발되면서 업계가 몸살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기술 유출에 대한 우리나라의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검찰청의 ‘기술 유출 범죄 양형기준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간 해당 범죄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496명 중 20%(73명)만 실형을 살았고 80%(292명)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형사 사건의 무죄 비율이 3%인 것과 비교하면 기술 유출 범죄의 무죄 비율은 높은 수준이다.2019년 9월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이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범죄는 징역 3년 이상 및 벌금 15억원 이하, 산업기술 국내 유출은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10억원 이하로 법정형을 대폭 상향했으나 정작 법정에서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한 예로 지난 4월 미국의 경쟁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최신 반도체 초미세 공정과 관련한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 수십 건의 파일을 유출한 A씨에 대한 선고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원에 불과했다.반면 전세계는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 영역이 아닌 경제·산업 분야의 기술 유출도 ‘간첩 행위’에 포함시키며 처벌 수위를 높였다. 미국의 경우 기술 유출은 6등급 범죄에 해당돼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 조정이 가능하다. 이 경우 최대 405개월(33년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양형 기준 미비 속 우리 기업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연구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이 중국 등으로 유출되는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이달에는 전 삼성전자 임원 출신에 의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가 통째로 중국에 넘어갈 뻔한 아찔한 일이 발생했다. 삼성전자에 수조원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건이었다. ‘기술 유출’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이에 걸맞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gore@ekn.kr▲여이레 산업부 기자.

[EE칼럼]ESG,나부터 실천하자

우리 사회에서 ‘ESG’라고 하면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나 하는 활동 쯤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민간기업과 공기업 등을 중심으로 환경문제와 투명경영, 공익활동 측면에서 ESG를 운운하다 보니 일반 시민들은 ‘그들만의 활동’으로만 오인하는 듯 하다. 이는 ESG가 왜,지금 대두됐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간과한 채 기업에 대한 의무사항만 강조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인 듯 싶다. 사실 ESG는 기후위기 극복과 배려·화합·정직·투명한 사회를 통해 인간다운 사회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게 근본 취지다. 따라서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자연인에게 해당되며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활동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ESG의 3요소 중에서 개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 바로 환경이다. 환경 문제는 기업과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노력을 빼놓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우리 국민의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몇 십 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이는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 증가로 이어지며 매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량 및 폐기물 증가의 주된 요인은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면서 포장비닐,포장용기 등의 사용이 덩달아 늘어나면서다. 우리나라의 1인당 택배건수가 세계 1위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배출되는 플라스틱 중 40%가량이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플라스틱 활용률은 62%에 불과하다. 그마저 민간에서의 폐플라스틱 처리에 대한 통계는 아예 이뤄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분리배출된 플라스틱에 대한 재활용률은 27%에 그치고 이중 일회용 플라스틱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계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16.4%에 불과하다. ‘Reduce(감축), Reuse, Recycle’ 이라고 하는 ‘3R 지침’과 재활용이라는 구호에 의지하기에는 플라스틱 오염과 이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는 등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플라스틱 생활을 너무 친숙하게 즐기고 받아들이니 총체적 난국이다. 화학물질을 포함한 인공물질과 천연물질은 근본적으로 다른데도 우리는 이를 동일시한다. 유럽인들은 의식주에서 값싸게 인식되는 인공재료는 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인식과 함께 천연재료를 쓰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무거나 가격만 싸면 된다’는 식이다. 먹거리도 각종 인공가공식품을 아무렇지 않게 마구 즐기고, 화학물질 덩어리인 집에서 매일 거주하면서 국민의 절반이상이 도시에 살면서 화학물질로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신다. 요즘 보기 드물게 3대에 걸친 6명의 대가족이 한집에 사는 필자는 과거 어려웠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검소하고 자연적인 생활행태와 MZ세대의 풍족하고 인공적인 문화를 즐기는 이질적인 두 문화와 매일 접하며 그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면서 어느 쪽이 지구위기를 구하기 위한 삶의 방식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하찮은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고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재활용해서 쓰레기 배출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우리 부모님들의 생활방식이 더 점수를 받는다. 이에 비해 자손들은 3R 교육을 받았음에도 모든 포장지는 쓰레기라는 생각으로 무분별하게 버린다. 환경적 측면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으로 에너지원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데도 요즘 세태는 에너지를 함부로 팡팡 쓴다. 가계에서는 정책은 물론이고 가격에 의한 통제가 어렵다 보니 절약을 모르는 신세대들은 여름과 겨울에 난방과 냉방기기를 팡팡 돌린다. 이러니 다가오는 미래에는 얼마나 많은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지,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될지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조명, 가전제품, 냉난방 등 가정용전기 사용비율은 20%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앞으로는 전기차를 충전해야 하고 챗GPT 등 인공지능 기술 활용도 크게 늘어나 전기사용량은 급증할 것이다. 국가적으로 ESG를 잘 실행하는 길은 국가, 기업, 가계의 각 경제주체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리더십과 정책 결정 아래 관련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국민 교육 및 인식 제고를 위한 계몽할동을 펴야 한다. 국민들은 자발적인 에너지 절감 인식 아래 생활습관으로 무장해야 기업들의 ESG 활동이 비로소 조기에 빛을 보게될 것이다.류덕기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연구교수/대한민국ESG메타버스포럼 사무총장

[이슈&인사이트] 유니콘 성장 발목잡는 낡은 규제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최근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도 글로벌 경기의 영향을 받아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반기에 반등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대기업들이 이러한데 재정적으로 취약한 벤처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할 것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활발한 투자는 벤처생태계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최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벤처업계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금액은 8815억 원으로,지난해 동기(2조2214억 원)에 비해 거의 3분의 1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2022년에도 한해동안 벤처 누적 투자 금액이 6조7640억원으로 전년(전년 7조 6802억원)에 비해 11.9% 감소하며 벤처·스타트업 시장에서의 투자 경색 기조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규 투자 뿐만 아니라 미래에 신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니콘 기업 상황도 좋지 않다.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세다. 2019년 447개였던 유니콘 기업수는 올해는 현재까지 1209개로 2.7배 증가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19년 10개에서 올해 14개로 1.4배 증가하는데 그쳐 세계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이 유니콘 기업의 증가를 주도한다.미국은 유니콘기업이 2019년 218개에서 올해 655개로 3배 늘었다. 기업가치 측면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는데, 전 세계 유니콘 기업 가치는 2019년 1조 3546억 달러에서 올해 3조 8451억 달러로 2.8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90억 달러에서 325억 달러로 1.1배 증가하는데 그쳐 역시 세계 평균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유니콘 기업 가치 상승도 역시 미국 선도한다. 미국 유니콘 기업가치는 2019년 6615억 달러에서 2023년 2조 523억 달러로 3.1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유니콘 기업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지적하는 구조적 문제는 업종 편중 현상이다. 이커머스, 인터넛 서비스 등의 업종에 유니콘기업의 절반 이상이 쏠려 있는 데 비해 최근 주목받는 AI, 헬스케어 업종에는 단 1개도 없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유니콘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적으로 외부요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의 개수와 가치의 증가 속도가 우리나라 보다 더 높은 것을 볼 때 외부요인 만은 아닌 것 같다.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유니콘 기업과 같이 혁신적인 벤처기업이 탄생해 국가 경제의 중심이 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왕성한 기업가 정신과 함께 기업을 지원하는 제도적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대기업으로 키우는데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규제, 상법상 지배구조 규제다. 이런 규제들은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더 강해지고 더 많아진다. 대기업으로 성장할 제도적 유인이 없다 보니 전체 기업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주요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이제는 유니콘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기업규모별로 차등적용되는 규제를 최소해야 한다. 대기업이 되면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파급력도 커지기 때문에 규제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과도하거나 국가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그 의미를 잃은 낡은 규제들은 과감하게 개선하거나 철폐해야 한다. 이는 대기업 특혜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환경을 정상화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과거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보면 어떠한 개선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현실을 즉시하고 대담한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유정주 팀장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곽인찬 칼럼] 엘리엇에 배상 판정, 그냥 물러서지 마라

참 질기다. 고래심줄이 따로 없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라는 미국 헤지펀드 얘기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는 지난주 대한민국 정부더러 엘리엇에 원금 기준 약 69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자까지 더하면 1300억원 규모다. 판정은 5년만에 나왔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약 1조원 배상을 요구하는 중재신청서를 냈다. 2015년 가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PCA는 청구액의 7%만 인정했다. 겉으론 우리 정부가 선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얼마가 됐든 다 세금이다. 1원도 아깝다. 1977년에 설립된 엘리엇은 대표적인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2018년엔 현대차가 과녁에 올랐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지분을 일부 매입한 엘리엇은 정의선 회장이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안에 어깃장을 놓았다. 수조원에 달하는 고액 배당을 요구했다. 결국 정 회장은 개편안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주총에선 현대차가 완승했다. 현대차가 제시한 배당안, 사외이사 선임안은 모두 통과됐다. 엘리엇은 2020년 초 지분을 모두 털고 나갔다. 사실 아르헨티나가 엘리엇한테 당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약과다. 2001년 아르헨티나는 외채 930억달러에 대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이후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채무 구조조정안을 내놨고 채권자 대부분이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엘리엇을 비롯해 일부 헤지펀드가 이를 거부하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엘리엇은 해외에 있는 아르헨티나 자산을 노렸다. 2012년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이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했다. 옳거니, 엘리엇은 가나 법원을 움직여 이 배를 억류했다. 함정은 국제해양법재판소의 도움으로 10주만에 간신히 풀려났다. 2007년엔 아르헨티나가 대통령 전용기를 수리차 미국에 보내려다 억류가 무서워 포기한 적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엘리엇을 ‘벌처펀드’라고 부르며 반발했다. 벌처(Vulture)는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대머리독수리를 말한다. 사실 엘리엇은 디폴트 선언이 나온 뒤 아르헨티나 부실채권을 헐값에 샀다. 그러곤 액면가대로 다 갚으라고 밀어붙였다. 미국 법원이 엘리엇 편을 드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는 국제 채권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2016년 채무조정안을 거부한 4개 헤지펀드에 47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채권액의 약 75%에 해당하는 액수다. 역시 미국 헤지펀드인 론스타는 엘리엇과 난형난제다. 지난해 여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 정부에 대해 2억1650만달러(원금)를 론스타에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는 론스타가 청구한 배상액의 4.6%에 해당한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에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 분쟁은 10년을 끌었다. 헤지펀드는 알음알음 투자자를 모아 고수익을 추구한다. 돈이 된다면 지옥이라도 쫓아갈 태세다. 특히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자기들의 돈 욕심을 근사한 명분으로 치장하는 데 도가 텄다. "주주 이익에 반한다"거나 "배당을 더 늘리라"고 목청을 높이면 소액주주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보자. 엘리엇 등은 사모펀드로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한 끈질긴 소송전은 고객을 향해 "봐라, 우리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이처럼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과시할 수 있는 기회다. 질긴 사모펀드를 상대할 땐 우리도 만만찮은 상대라는 걸 끈질기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며칠전 "(엘리엇) 결정문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며 "어떤 추가적 조치를 할지를 숙고한 다음 책임 있는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23일 법무부는 "국민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대리 로펌 및 전문가들과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판정에 불복하면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엘리엇은 보도자료에서 ‘승리’(Victory)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중재재판소 결정에 불복해 ‘근거 없는’(Baseless) 법률 절차를 밟아봤자 소송비용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만하다. 한 장관에 당부한다. 약간이라도 근거가 있다면 과감하게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 바란다. 설사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벌처펀드에 본때를 보일 수 있다면 그 돈은 아깝지 않다.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김성우 칼럼]그린워싱 방지, 선택 아닌 필수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은 친환경(green)과 세탁(white washing)의 합성어로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을 친환경적인 것처럼 표시·광고하는 행위를 뜻한다. 전세계적으로 ESG 중요성이 부각되며 환경친화적 기업과 관련 제품에 관한 표방이 늘어나면서 그린워싱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의 친환경 제품이 증가하며 그린워싱 대상이 늘어난 배경도 있고, 친환경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기업이 친환경 마케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영국의 경우 소비자 보호 규정이 정한 허위·과장 정보 기준과는 별도로 친환경을 주장할 때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물론이고 객관적이고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정보 등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지침을 2021년에 발표했다. 영국 광고표준위원회는 이 달에만 3개 석유회사를 대상으로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등을 담은 친환경 광고가 회사 전체의 사업계획 중 일부만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회사 전체가 친환경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며 광고 금지를 결정했다. 지난 3월에도 항공사의 미래 보호 및 친환경 항공 광고가 비행이 전반적으로 친환경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며 경고 조치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은행의 기후변화대응 투자 광고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는 반영하지 않아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다며 광고 금지를 결정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그린워싱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진성준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그린워싱 지적 건수는 4940건이다. 주목할 점은 지적 건수가 2022년 4558건으로 2021년 272건에 비해 16.7배나 폭증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린워싱을 판단하는 기준인데 마침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일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28일까지 행정예고 중이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에 2016년 이후로 개정되지 않았던 심사지침을 환경부 고시와 해외 그린워싱 가이드라인 등 국내외 입법례를 반영하고, 최근에 사용되는 표시·광고 용어 등으로 대체하는 등 현행화를 이뤘다. 또 환경관련 표시·광고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그린워싱의 세부 판단기준을 마련하였다. 이번 개정에 따라 그린워싱에 대해 보다 선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부당성 심사의 일반원칙에 명확성, 구체성, 완전성이 보강됐고 전과정성의 원칙도 명확히 했다. 예컨대 동종의 다른 제품에 비해 유통, 폐기 단계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함에도 제품 생산 단계에서 탄소배출이 감소된 사실만 광고한 경우, 기만 광고에 해당할 수 있다. 또 거짓·과장, 기만, 부당 비교, 비방 등 대표적으로 금지되는 환경 관련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에 대한 예시를 신설해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상품의 생애주기를 원재료나 자원의 구성, 생산 및 사용, 폐기 및 재활용 등 3단계로 구분해 구체화했다. 한편으로 사업자 자신에 관한 표시·광고 기준도 포함됐는 데, 환경 목표나 계획을 표시·광고시 구체적인 이행계획과 이를 뒷받침할 인력, 자원 등의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측정 가능한 목표와 기한 등도 밝히도록 했다. 기업은 이번 개정안 내용을 사전에 숙지하고 향후 시행되는 경우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기업이 하고 있는 표시·광고에서 개정안이 예시로 들고 있는 위반행위 등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점검하고 향후 그린워싱에 대한 법 집행 동향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이 실증할 수 있는 것인지, 입증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지, 오인할 우려는 없는지, 제품의 전과정에서 볼 때 과장은 없는지 등의 점검이 필요하다. 그린워싱은 기업의 평판리스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ESG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외 규정이 구체화·명확화되는 방향을 고려할 때 이러한 평판리스크는 규정 위반 위험이 더해지면서 차원이 다른 리스크로 변할 수 있다. 그린워싱 방지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이유다.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기자의 눈] 닻 올린 민주당 혁신위 한계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회가 지난 20일 첫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혁신위원회 지휘봉을 잡은 일성으로 ‘가죽을 벗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민주당을 전면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역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공천제도의 혁파도 약속했다. 당초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지명됐다가 9시간만에 낙마한 뒤끝이라 각오와 의지가 남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김은경 위원장에 대해 벌써부터 ‘허수아비 위원장’에 그칠 것이란 관측들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친문재인 인사로 분류되는 것을 의식한 듯 자신이 정치권에 빚이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친명·비명·친문·비문 등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만큼 특정 계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민주당을 과감하게 혁신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당내 최대 이슈인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해결은 개혁 문제에서 배제했다. 김 위원장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해 "사법판단 분야로 넘어갔다"며 "그 문제를 관리할 이유가 없을 것 같고 민주당의 제도적 쇄신 과제, 혁신 과제 협업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인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는 민주당의 이미지를 ‘방탄정당’으로 만든 가장 큰 주범이다. 또 민주당이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사건에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논란까지 겹악재를 맞으면서도 이 대표의 현재진행 중인 ‘사법리스크’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민주당 내부가 흔들리는 위기만 강해졌을 뿐이다. 또 의지와 현실은 다르다. 김 위원장의 혁신 의지가 아무리 높더라도 그 의지가 당내 주류인 친명계 이해와 어긋나면 그 혁신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혁신위 구성원 중 상당수가 과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몸 담았거나 대놓고 이 후보를 지지를 선언한 인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상 혁신위는 ‘이재명 아바타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역 의원으로 유일하게 참여한 초선 이해식 의원도 대표적인 이해찬계이자 친명계 의원으로 분류되면서 비명계 반발도 예상된다. 그간 혁신위와 비대위가 성공했던 적은 거의 없다. 새롭게 닻을 올린 ‘김은경 호’가 최소한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가진 기득권과 ‘내로남불’의 상징을 탈피할 수 있다. 혁신위는 민주당의 추락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모른 척 해선 안 된다. 민주당의 혁신은 이재명 체제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혁신위원장이 ‘허수아비 조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할 때다. ysh@ekn.kr윤수현 증명사진

[EE칼럼] 희망고문 아닌 비전을 주는 전기요금 정책이 필요하다

3분기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당국은 상반기에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이 떨어져 이를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계속 이런 추세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TTF 가격은 이달 초부터 2주 사이에 MWh당 23유로에서 46유로로 두 배 올랐다. 천연가스 비축 시즌과 하절기 무더위에 따른 수요 증가가 한 몫 했다. 여기에 유럽 최대 규모의 그로닝겐 가스전이 오는 10월부터 영구 폐쇄되면 TTF의 상승 압력은 더해질 것이다. 미국의 헨리 허브 가격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mmBtu당 2달러 초반의 저점대 지지 구간을 확인한 후 상승추세다. 천연가스 채굴장비 리그 수도 상반기에 꾸준히 줄어들었고 프리포트 기지도 정상 가동되면서 미국 천연가스 수급이 빡빡해 지고 있다. 그리고 엘니뇨 현상이 글로벌 천연가스 수요를 더 한층 끌어올릴 중요 변수로 등장했다. 이미 경험했듯이 유럽과 미국 천연가스 가격의 스프레드 확대는 아시아 천연시장에도 충격을 분다. 유가는 현재 배럴 당 70달러대로 지난해의 110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하향 안정화돼 있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금리와 경기부양 정책이 변수다. 촘촘하게 연결된 글로벌 시장에서는 하나의 이벤트로 인한 연쇄효과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프리포트 화재가 발생하자 헨리허브 가격이 뛰었고, 비료값과 밀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가격이 저점이나 고점 구간대에 있을 때는 국지적으로 작은 이벤트에도 국제 시장에서는 큰 폭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는 게 에너지시장의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한국의 전력시장 상황을 따로 봐주지 않는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가격의 급등 이유가 다양할 수 있겠고 이들 중 상당수는 가격 변동 이후 사후약방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천연가스 시장에서는 그동안 거래 규모가 확대된 소매투자 역시 가격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이나믹한 시장에서 하반기 에너지 가격이 하향 내지 안정화될 것이라 데 희망을 걸고 국내 전기요금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플랜B’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불리한 여건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완충장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대로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화 되지 않고 상승 국면으로 돌아서게 되면 그나마 남은 카드조차도 다 소진한 우리 전력시장 상황은 더욱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올 상반기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했을지라도 한전은 역마진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한전은 누적적자 45조 원에 하루 100억 원의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반기나 내년에 국제 에너지 시장이 들썩인다면 한전 부채만 해도 정부 예산의 10%를 넘어서게 될 것이고, 여기에 가스공사 등 여타 에너지 공기업 부채뿐만 아니라 이들 공기업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단행하는 여러 조치로 인한 민간기업의 적자와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게 된다. 미국은 그동안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꾸준히 단행했다. 아직 인플레 우려를 완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용률 증가를 동시에 구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승한 전기요금으로 단기간에 고통은 있었지만 에너지 신산업의 장기전략 토대 구축의 계기가 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전력시장 상황은 에너지 가격 하향 안정화에 베팅한 희망고문을 받고 있고 유사 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도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자칫하면 금융위기로까지 번질 상황이다. 가계부채가 2000조원을 넘은 상황에서 한 가구당 앞주머니로 4000원 정도 전기요금을 덜 낼지라도 뒷주머니로 수십 만원의 금리상승 비용 부담을 더 질지도 모른다. 희망이 아니라 비전을 주는 에너지요금 정책이 절실하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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