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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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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닥친 열대화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01 08:03
CLIMATE-CHANGE/SWITZERLAND-CLIMBER

▲이달 초 스위스 테오둘 빙하에서 발견된 독일 등반가의 등산화. 등산가는 37년 전인 1986년 실종됐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등산화가 드러났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대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살인적 폭염’이란 말이 올해처럼 실감난 적이 또 있을까.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주말새 전국에서 최소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다수는 온열질환에 취약한 고령자로 대부분 밭일을 하러 나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남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선 사막에 강한 선인장마저 말라죽어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상에, 어쩌다 선인장마저.

유엔도 비상이 걸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7월27일 기자회견에서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온난화는 워밍(Warming)이다. 열대화는? 보일링(Boiling)이다. 보일링은 물이 펄펄 끓을 때 사용한다. 열대화보다 어감이 더 세다.

지구 온난화, 아니 열대화는 얼마나 심각한 걸까?


◇‘코페르니쿠스’와 WMO의 경고


지난 7월27일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와 세계기상기구(WMO)는 공동성명을 냈다. 코페르니쿠스는 "7월의 첫 3주가 역사상 가장 더웠다"면서 올 7월이 가장 더운 7월인 동시에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3S는 유럽연합(EU)이 운영하는 지구관찰프로그램 6개 가운데 하나다.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며 "기후 행동은 사치(Luxury)가 아니라 필수(Must)"라고 힘주어 말했다. WMO는 "향후 5년 가운데 적어도 한 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이 98%"라고 말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는 공동성명을 배경으로 나왔다.


◇기후변화 정책 주도하는 유엔


지난 1992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 모임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UNFCCC)이 만들어졌다. 협약은 154개국의 서명을 받아 1994년 발효됐다. 한국은 오리지널 멤버다. UNFCCC는 글로벌 기후변화 정책을 총괄하는 최상위 시스템이다.

그 아래 COP, 곧 당사국 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가 있다. 기후변화 정책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장치다. UNFCCC 서명국이 곧 당사국이다.

COP1, 곧 제1차 당사국총회는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COP3, 곧 제3차 당사국총회에선 교토의정서가 타결됐다. 교토의정서는 2005~2020년 기간 중 회원국들의 기후변화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COP21, 곧 제21차 당사국총회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바로 이때 파리기후변화협약이 타결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했다. 파리협약은 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 지구 평균온도가 가능한 한 1.5℃ 이상을 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COP28, 곧 제28차 당사국총회는 오는 11월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다. COP28에선 각국이 탄소감축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첫 점검이 이뤄질 전망이다. 각자 채점표를 받아드는 셈이다. UAE는 중동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2050 넷제로를 약속하는 등 탄소감축 정책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은 소극적 동참

파리협약을 실천하려면 탄소배출 감축이 필수다. 2050 탄소중립(넷제로)은 장기 목표다. ‘국가온실가스 관리 목표’ 곧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는 중기 목표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오는 2030년까지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년)을 발표하면서 이 목표를 유지했다. 다만 산업계 불만을 수용해 부문별 감축량을 조절했다. 산업부문 감축량을 줄이는 대신 원전 등 청정 에너지를 확대하고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 등을 활용하는 걸로 정리됐다.

한국은 주요국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탄소배출을 급격하게 줄이면 당장은 철강, 정유, 자동차 등 주력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이같은 사정을 배려했다. 물론 환경단체 등은 보수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이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기후는 ‘공유지의 비극’


양을 키우는 마을이 있다. 양들이 풀을 뜯는 공동 목초지도 있다. 그냥 두면 풀밭은 금방 엉망이 된다. 서로 자기 양한테만 풀을 먹이려고 난리를 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진국들은 이미 지구라는 풀밭을 실컷 뜯어먹었다. 나아가 지금도 풀밭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개도국, 후진국들은 자기들도 풀밭을 뜯어먹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러다 지구라는 풀밭이 황폐해진다고 경고하지만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다.

심지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파리협약에서 탈퇴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이 발을 빼자 협약 자체가 흔들렸다. 다행히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초 취임과 동시에 파리협약에 재가입했다.


◇ 이러다 큰코 다친다

경제학에 민스키 모먼트라는 용어가 있다. 시장 붕괴를 부르는 결정적인 순간을 말한다. 미국 경제학자 하이만 민스키(1919~1996년)의 이름에서 땄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말도 있다. 나뭇잎 하나를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얘기다. 무슨 일이든 사전에 징조가 보인다.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위기에 대비할 수 없다.

한국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1인당 전력 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훌쩍 웃돈다. ‘기후악당’이란 비아냥을 받을 만큼 온실가스도 많이 배출한다.

미래 세대는 2023년을 지구촌 열대화 원년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훗날 후손이 "그때 어른들은 뭘 하셨느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열대화 경고음은 ‘감춰진 축복’(Disguised Blessing)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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