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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의 시대적 과제

욕래조 선수목(慾來鳥 先樹木). 새를 오게 하고 싶으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는 한자 성어다.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원자력이 바로 그 생생한 예다. 우리 원자력 역사의 출발점은 7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미국의 전기기술자 시슬러 박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고 소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었다. “그거 지금 시작하면 몇 년 뒤에 써먹을 수 있는 거요?" 시슬러 박사가 답했다. “한 20년쯤 걸립니다." 원자력의 잠재력에 주목한 81세의 이 대통령은 즉시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우수한 과학 인재를 모아서 1인당 6000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유학을 보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달러 남짓이었다. 4년간 8차례에 걸쳐 150여 명을 보냈다.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공포하고, 이듬해원자력 인력 양성과 기술개발 기반인 연구용원자로 도입을 결정했다. 이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위해,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인 35만 달러를 투자했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 운전이 시작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시슬러 박사를 만난 지 22년이고, 이 대통령의 서거 13년이 지난 때였다. 그 이후 31년이 지난 2009년 우리나라는 UAE에 원전을 수출했다. 혜안을 가진 선각자가 한 세대 앞을 보고 투자하고, 후임자가 계승하면서 지금의 우리나라 원자력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또다시 그러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기후위기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20~30년 후에나 결실을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에 따르면 2023년이 1850년 이후 가장 더운 해라고 한다. 2023년 지구 평균 기온은 14.98도로, 과거 가장 더웠던 2016년보다 0.17도높고, 1850~1900년 평균보다 1.48도 높다고 한다. 각국이 기후위기 원인으로 지목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당국의 통제가 비교적 쉬운 전력 부문 탄소배출 저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양이 여전히 많고, 이것을 줄이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가에너지통계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제품 도입량(100만 배럴)이 2017년 314, 2018년 341, 2019년, 352, 2020년 347로 줄어들 기세가 통 보이질 않는다. 석유는 차량 연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활용품 생산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유 사용량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경제‧사회 대전환이 가능한 현실적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한때 재생에너지가 그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간헐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재생에너지가 기후위기의 진정한 솔루션이 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언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원자력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원자력은 전력 생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필요한 열과 물질을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 대신 원자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이러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형모듈원자로(SMR)다. 기후변화 극복과 에너지 문제 해결의 게임 체인저로서 SMR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 SMR 개발이 완료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안전하게, 그리고 핵확산 위험 없이 사용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의 핵심이 SMR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을 기술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원자력 안전규제와 통제체계다. 그런데 아직 우리 원자력안전법은 SMR 안전규제와 통제 기준을 담고 있지 못하다. 대형 원전 위주의 안전기준 그대로다. 이대로라면 SMR을 SMR답게 활용할 수 없다. 원자력 통제 기준에는 설계단계부터 핵비확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 SMR 특성을 반영한 안전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안전규제 및 통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후세를 위한 시대적 과제다. 문주현

[이슈&인사이트] 부동산 PF부실위험과 캐피탈 업계의  위험관리

최근 우리 경제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가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속되는 고금리 여파로 가계의 채무부실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PF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PF는 이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돌입으로 추가적인 부동산 금융 부실의 가능성도 있다. PF는 기업 담보에 기초한 금융권 대출과 달리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현금흐름에 의한 금융지원방식으로 부동산 경기에 크게 연동된다. 국내 부동산 개발은 사업을 주관하는 시행사의 토지 매입과 사업 인허가 획득으로 시작되며, 초기 사업단계에 필요한 비용은 대체로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으로부터 조달된다. 조달된 자금은 분양과 착공절차가 진행되는 본 사업과 초기 사업을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브릿지론(bridge loan)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최근 A급 이하 캐피탈사의 부동산 PF 대출이 자기자본의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저축은행, 증권사와 달리 수신기능이 없는 캐피탈사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고금리 여파로 조달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적으로 회사채 등 시장성 수신에 의존하는 캐피탈사의 경우 브릿지론 부실이 확대되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피탈 업권은 자동차 할부금융 및 리스업에 주력하는 A급 이상 회사와 기업금융 및 PF 대출의 사업 비중이 높은 A급 이하 업체로 구분된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 브릿지론 보유 비중이 큰 관계로 건전성 악화 가능성이 큰 편이다. 따라서 향후 A급 이하 캐피탈사의 대출자산 부실화로 인한 고정이하자산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자산 부실화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현재 130% 수준의 대손충당금 요적립액 대비 실적립액 비율을 상향 조정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대손발생시 이를 감내할 자본확충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본적정성 지표로 많이 사용되는 레버리지 배율에는 문제가 있다. 현 레버리지 배율은 자기자본 대비 총자산의 배율을 의미하는데, 캐피탈업권의 경우 10배가 한도로 부여돼 있다. 레버리지 배율을 통해 캐피탈사의 부채위험 및 자본적정성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레버리지 배율 규제가 캐피탈사의 위험 발생에 따른 완충 수준을 판단하는 데 있지만, 현 레버리지 배율로는 정확한 자본확충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총자산의 경우 운용되는 자산종류별 위험 수준이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A급 이하 캐피탈사의 경우 PF 및 기업금융 등 위험자산 비중이 높지만, A급 이상의 캐피탈사는 자동차 할부금융 및 리스자산 비중이 높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 부실 가능성이 작고,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노출액도 적은 편이다. 따라서 자산종류별 위험 수준을 차별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명목 수준의 현 레버리지 배율은 규제지표로 활용이 제한된다. 이로써 레버리지 배율 지표의 개선을 위해 각각의 자산종류별로 적용되는 위험가중치를 곱한 후 이를 모두 합산하는 방식의 위험가중자산을 총자산 대신 사용해야 한다. 위험가중자산을 분자로 고려할 경우 A급 이상 캐피탈사의 레버리지 배율은 하락하고, A급 이하의 레버리지 배율은 분자의 금액 증가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명목 레버리지 배율의 경우 A급 이하 캐피탈사의 수치가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토대로 A급 이하 캐피탈사의 자본적정성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실상은 신용등급이 낮은 A급 이하 캐피탈사의 조달금액이 줄어들며 부채 축소에 따른 총자산 수치가 감소한 데 원인이 있다. 오히려 A급 이상 캐피탈사의 경우 중고차 할부금융 및 리스 이용 수요가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활용하여 자금조달 규모가 늘어났다. 따라서 오히려 A급 이상 캐피탈사의 레버리지 배율이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PF 대출 부실에 따른 캐피탈업권의 부채위험과 자본확충 수준을 가늠해줄 레버리지 배율이 위와 같은 착시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은 업권의 건전성과 자본적정성 수준의 판단에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PF 대출 부실로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제2금융권 중에서 수신기능이 부재해 유동성 위기 가능성에도 노출되어 있는 캐피탈 업권에 대한 위험관리 강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레버리지 배율의 개선이 시급하다. 아울러 자본력이 취약한 제2금융권 업체들의 무분별한 부동산 PF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금융사의 부실은 금융소비자의 손실로 귀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PF 채무보증, 브릿지론 등을 취급하는 제2금융사에 대한 위험노출액 수준을 제한하고, PF 대출 집중위험 규제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서지용

[기자의 눈] 공모주 수요예측, 이대론 위험하다

“이번에도 또 상단 초과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유독 확정 공모가가 희망 공모가 최상단을 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공모가격은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하거나 가격을 미제시한 기관 투자가 비율이 높으면 공모주의 기존 희망가 범위보다 높게 확정된다. 현대힘스, 우진엔텍, 포스뱅크 등 올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공모주 모두 밴드 상단을 초과한 공모가를 확정했다. 올해 첫 조단위 대어급 IPO로 기대를 모은 에이피알 역시 이달 초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공모가 밴드(14만7000원~20만원) 상단을 초과한 25만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매번 공모가가 밴드 상단을 초과하면 공모가 희망밴드가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고 수요예측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수요예측 제도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분석해 적정한 공모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진행되는 제도다. 하지만 최근 IPO 시장에서는 그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모가 최상단을 초과해 공모가가 확정되는 경우가 늘어나자 밴드 내에서 가격이 확정되면 오히려 흥행에 걸림돌이 되는 분위기다. 높은 공모가에도 IPO 시장으로 자금이 대거 몰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높은 공모가=따따블(공모가 대비 4배 상승)'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투자자들에게 각인되면서 투자 수요를 더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 들어 상장 첫날 따따블을 기록한 기업들은 모두 공모가가 밴드 최상단을 초과했다. 기업가치가 높고 주가도 높게 거래되는 사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 IPO 시장은 과열 양상으로 가면서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수요예측 흥행이 따따블을 기록해도 다음날 차익 실현 수요로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뒤늦게 매수한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는 상황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공모주를 상장 당일 매도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을 정도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세종대 최수미 교수 컴퓨터그래픽스학회장 취임

세종대학교(총장 배덕효)는 컴퓨터공학과 최수미 교수가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 제16대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13일 밝혔다. 임기는 오는 2025년 12월까지다. 최 교수는 지난 2006년부터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 이사, 논문지 편집위원장, 국제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최 신임 학회장은 “지난해 30주년을 맞이한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는 학계와 산업계의 연구자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고 평가한 뒤 “게임, 영화·방송특수효과, 가상·증강현실, 메타버스 등 핵심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는 컴퓨터그래픽스 분야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학ICT연구센터(ITRC) '초실감 XR 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 학회장은 2016~2021년 모바일 가상현실 연구센터를 이끌며 우수센터로 인정받아 과기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 과기부 ICT기술개발사업 심의위원, 법무부 국적심의위원, ACM SIGGRAPH 아시아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주원 칼럼] 미·중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최근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미묘하다. 1992년 수교 당시 우리나라의 대중국 교역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3.5%, 수입의 4.6%로 보잘 것 없었다. 그러던 것이 수출을 기준으로 보면 1997년 10%를 넘어선 데 이어 2005년에는 20%를 넘어섰다. 그리고 2018년에는 대중국 수출비중이 26.8%로 치고치를 찍으며, 같은해 대미국 수출 비중(12.0%)의 두배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그만큼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이는 양국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윈윈하는 국제 분업 구조가 잘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만 놓고 보면 대중국 수출 비중이 18.8%로 대미국 수출(19.6%)에 역전됐다. 다만 대중국 수입(비중 20.5%)은 대미국 수입(11.8%)보다는 높아 공급망 측면에서 대중 의존도는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출시장으로서의 중국 경제에 대한 위상이 약화되는 데는 중국 경제가 당면한 디플레이션(경기침체)이 가장 큰 원인이 이지만, 중국 기업의 경쟁력 상승으로 인한 우리 기업들의 중국 시장점유율 하락과 미·중 갈등에 따른 서방 세계의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의 원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 침체 요인은 단기적인 리스크여서 경기 순환 관점에서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나머지 두 개의 요인은 상당 기간 우리에게 불확실성으로 다가올 것이다. 미·중 간의 헤게모니 전쟁이 지속된다면, 결국 양국 간 무역, 투자, 기술 등의 관계에서 단절이 발생하면서 블록화가 진행될 것이고, 중국 시장은 더욱 폐쇄적으로 되는 것과 동시에 개방성을 잃어버린 중국 경제가 외부 혁신 동인을 상실하면서 저성장에 빠지게 돼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는 속도가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패권 전쟁에서 유래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라는 말이 지금의 중국이 처해 있는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는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는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패권국과 신흥국의 갈등이 해소되는 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승패가 갈려 명확히 서열이 정리가 돼야 끝났다는 경험이다. 이제 시작된 미·중 전쟁이 장기간 우리에게 불확실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가 이 갈등을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의 대응 방법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보기가 두 개인 이지선다(二枝選多)의 객관식 문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봐가며 가운데서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지도 아직 불확실하다. 일부에서는 중국 시장에 주력하면서 대체할 시장을 마련해 두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이나, 등거리 중립 외교적 접근 방식을 가져와 양국의 갈등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스윙보터(Swing Voter)' 전략이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단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은 시장 규모나 생산기지 입지 측면에서 중국을 대체할 국가는 거의 없다. 인도 시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면 인도 시장은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또한 가운데서 '스윙보터'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겠다는 전략도 과연 우리 생각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그럴싸해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할까?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제시되는 이러한 전략은 정부 차원의 대응에나 적용될 수 있는 제한적 용도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장의 대응은 이처럼 판에 박힌 것처럼 명확할 수 없다. 산업에 따라서, 기업에 따라서도 다양한 접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 난제에는 솔루션이 없다. 어떤 답도 틀릴 수 있고, 어떤 답도 맞을 수 있는 해답지가 존재하지 않는 주관식 문제다. 주원

[EE칼럼] 전력산업 선진화에 사활걸어야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2023년은 역사상 지구 온도가 가장 높은 한해로 기록됐다. 더불어 기상재난으로 개발도상국은 매년 GDP의 1%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며 선진국도 0.1-0.3% 퍼센트까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미래는 저탄소이든, 무탄소이든 탄소배출이 없는 전력을 통한 전기화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20세기의 전기화는 석탄이나 석유 등을 이용하여 전기를 공급하는 중앙집권적 공급방식이었다면, 21세기는 태양, 바람, 물 등을 이용한 지역할거형 자급자족 분산형 형태로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전기를 필요로 하는 지역의 수요가 많이 늘면서 송배전의 문제, 지역 회피의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기차, 인공지능 컴퓨터, 자동화 등도 전기를 더 필요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태양광과 육상 및 해상 풍력, 지열 등이 지역 기반으로 되면서 쓰고 남으면 외부에 판매하는 '선 자력갱생, 후 판매갱생'을 시행하고 있다. 제주도는 예전에는 전기가 부족해 육지에서 공급받다가, 이제는 역전돼 육지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기화가 어려운 곳은 다른 대안을 찾는다. 벙커 C유를 쓰던 선박에서는 연료전지 선박이나 바이오 디젤로 대체하고 있다. 유럽내 모든 항공기는 바이오 항공유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상업용 건물의 전기화도 초기 단계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매우 활발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연방건물성능기준(The Federal Building Performance Standard)'에 근거해 2030년까지 연방 정부 소유 건물 공간의 30%를 100% 전기화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려고 한다. 이 기준에 맞춰 연방 건물은 2025년부터 건물의 에너지 소비와 관련된 현장 배출량을 2003년 배출량의 90%까지 줄여야 한다. 미국환경청은 매년 105억원을 절약하고, 30년간 탄소 186만톤, 메탄 2280만톤 감축효과를 예상한다. 이는 약 30만 가구가 1년동안 배출하는 양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도 건물 성능기준을 만족하는 건축물 소유주와 개발자, 계약자에게 세금공제 해택을 준다. 0.09㎡당 약 2400원이었던 세금공제를 3배인 약 6600원으로 인상된다. 저소득층 지역 건물 전기화를 확대하기 위해 리베이트 인센티브, 저금리 또는 무이자 대출, 지출비 완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국가건물성능기준 연합도 결성돼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로주 등과 워싱턴 D.C., 보스턴, 덴버,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애틀 등 지방도시 30곳이 가입하고 있다. 캐나다 BC 주 빅토리아시는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신축 건물에 대해 화석연료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2025년 7월까지 모든 신축 건물에 '제로 탄소'를 도입하려 한다. 미국은 2040년까지 약 163조원 정도가 건물 전기화와 건설산업에 투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건물에서 LNG 사용을 금지하면서 30개 이상의 도시와 카운티에서 완전 전기식 신규 건설을 요구하거나 권장하는 정책을 시행중이다. 뉴욕시는 지방법 97조에 따라 뉴욕 공공주택청이 관리·소유하는 건물의 규모에 상관없이, 올해 1월 1일부터 7층 이하의 신축 건물, 2027년 7월 1일 이후에는 고층 건물 전기화법 적용을 시작한다. 건물의 거래제도 시행한다. 교통부분 전기화도 중요하다. 핀란드 헬싱키는 2021년부터 142대의 e-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체버스의 약 30%인 400대를 전기화한다. 칠레 산티아고는 2020년 말 현재 2400대의 전기버스를 운행중인데 2040년까지 전역을 전기화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터 마스다르시는 '석유 이후의 시대'라는 전략으로 '탄소 배출, 폐기물 배출, 내연기관 차량'이 없는 3무(蕪)를 지향하면서 모든 교통을 전기화할 계획이다. 대중교통수단은 PRT(Personal Rapid Transit), 오토넘(Autonom) 셔틀, 저상버스 인데 모두 전기차다. 미국 시애틀은 2030년까지 모든 공유 차량뿐만 아니라 배달차량의 3분의 1이 전기차로 전환된다. 또 '주요 도심 지역'은 대부분 자동차 통행이 제한되며 전기차 충전소는 누구나 쉽게 이용하도록 대폭 설치한다. 프랑스 우체국 라 포스테(La Poste)는 4만대의 전기트럭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안에는 USPS에 탄소제로배출 차량 및 충전소 구매에 쓰도록 4조원을 지원한다. USPS는 물류 운송 트럭의 40%를 전기화하는 계획을 발표 했다. 폭스바겐 자회사인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는 2018년부터 미국에 3500개의 충전소를 설치했으며, 2026년까지 미국과 캐나다에 총 1만 개의 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옛날 역사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듯이 미래의 길은 모두 전기로 통한다. 누가 먼저 싸게, 깨끗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미래의 선도자가 될 것이다. 한국도 미래의 선도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세상에 나만 변화지 않는다면 도태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김정인

[기자의 눈]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생각

정부가 주가 부양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증시 개장식을 찾더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금융당국이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가를 올리라며 기업들 팔까지 비트는 모양새다. 약발이 있는지 증시도 나름 들썩이고 있다. 이 와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자꾸 걸린다. 새마을 운동 구호를 외치듯 모두가 이 말을 쓰고 있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접근법이 문제다. 우리나라 증시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큰 게 '정상'이라고 믿는 듯하다. 공부를 한 번도 한적 없는 학생이 시험에서 '0'점을 맞고 '성적이 잠깐 내려간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국 증시는 저평가 받은 적이 없다. 지금 주가가 실력이다. 지주사, 중간지주사, 사업회사, 자회사 모두를 상장시켜주는 게 우리다. 기업은 온갖 규제에 발목이 묶여있다.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제조업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늪에 빠졌다. 3류급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강성노조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나라다. 경영 능력 없는 총수 일가 아들·딸이 회사를 망치는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국민적 사랑을 받던 기업도 '묻지마 무한 계열사 상장'을 하더니 탐욕스러운 경영진과 함께 몰락해버린다. 북한이 각종 미사일을 쏴대며 전쟁을 준비한다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있다. 주주환원 강화 등을 요구하는 정부의 노력이 헛수고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다만 자꾸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생각을 하면 증시 부양의 초점이 단순히 수급에만 맞춰지게 된다. 공부 안 하는 학생에게 문제집만 잔뜩 사주는 꼴이다. 우리나라 증시에 당장 필요한 건 수급이 아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계속해서 진통제만 놓아줄 수는 없다. 이마트가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까? 일요일에 문을 열지 말라는 황당 규제를 10년 넘게 받았다. 경제 체질을 구조조정하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정부는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은 지배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징벌적 상속세는 손보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가능한 공정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투자하고 싶은 기업들이 많이 생겨야 돈이 모이는 법이다. 한국 증시 몸값이 글로벌 표준까지 올라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슈&인사이트] 사과 그리고 유감

'사과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 혹은 대중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자신의 진정성을 잘 표현해 사과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법칙'이다. '사과의 법칙'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 중 공통적인 요소 네 가지를 꼽자면 첫째, 사과는 빠르고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다만'이나 '그러나' 등의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밝히고,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실행 계획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사과의 법칙'을 강조한 이유는 최근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대담 때문이다. 대통령의 신년 대담은, 방영되기 이전부터 다양한 논란이 있었다. 일단 여론의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왜 생방송이 아니고 녹화로 방송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20년 넘게 방송 MC를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정치 관련 인터뷰나 토론은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한다. 녹화를 하면 불필요한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치인 측에서 왜 그 부분은 편집했느냐, 혹은 편집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왜 안 해줬느냐는 항의가 빗발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토론의 경우는 더하다. 상대방은 편집해 줬는데, 왜 나는 편집해 주지 않았느냐는 항의가 쇄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꼴사나운 상황을 보지 않기 위해 현재 대부분의 정치인 출연 시사 프로그램은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대담은 녹화로 방영됐기 때문에 뒷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지적할 부분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라면서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과는 그 타이밍과 진솔함이 중요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사과는 타이밍을 놓친 감이 있다. 해당 사안의 파장을 줄이려 했다면, 진작에 사과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놓쳐 지지율이 급기야 20%대로 추락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은 지지율 29%를 기록했다. 이런 지지율 저하는 전적으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서 비롯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해당 논란이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만일 윤 대통령이 재빠르게 대응했더라면, 상황은 조금 나아졌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과의 시기도 놓쳤지만, 사과의 진정성 부분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라는 부분이 바로 “사과"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인데, 사과는 해석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의 진정성을 자연스럽게 느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송구하게 됐다"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다. 더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윤 대통령은 “정치공작이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 안 하게 조금 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며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때는 선을 그어가면서 처신해야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언급 속에는 앞서 사과의 법칙에서 언급한 '재발 방지 의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은 우리 비서실에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이런 일을 예방하는 데는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다“라고 언급한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음을 자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제2부속실을 설치하기도 전에 별 의미 없음을 말하는 것은, 대통령이 제2부속실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인상을 여론에게 주기에 충분하다. 거기다가 다른 대안 제시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대담은 '사과'라는 측면에 보자면, 의미 부여가 쉽지 않다. 필자는 후보 시절의 윤 대통령을 두 번 본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대선 후보 TV 토론 MC를 하면서다. 당시 윤 대통령에게서 받은 인상은 상당히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솔직함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런 윤 대통령의 매력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신율

[EE칼럼] 전기요금, 체계 자체를 손봐야 한다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있기에 적어도 상반기에는 전기요금이 오를 일은 없어 보이지만, 한전의 누적 적자가 여전히 45조 원을 넘는 상황이어서 하반기에는 다시 전기요금 조정과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 자회사로부터 중간배당을 통해 3조2000억 원을 받아 총 채권발행액이 한전채 발행 한도를 초과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송배전망 확충 등 향후 필요한 신규 투자 비용을 고려한다면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2년부터 2023년 2분기까지 전기요금은 kWh당 총 40원이 올랐으며, 2023년 11월에는 산업용 일부에 대해 10.6원 인상한 바 있다. 누적 부채가 200조 원이 넘는 한전의 자금난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필요한 인상 수준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요금 인상 폭을 기록하였기에 정부와 정치권은 전기요금 추가 인상에 대해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정작 더 중요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관련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람직한 전기요금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요금규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한전을 비롯한 전력산업 전반에 걸쳐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 중이기 때문에 거버넌스 체계 정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독립적으로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춘 규제위원회가 설립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총괄원가에 따른 전기요금 조정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총괄원가에 따른 요금조정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것은 2013년 11월이니, 벌써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전기요금 산정원칙과는 별개로 전기요금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후에는 중장기 과제로 총괄원가 규제를 유인규제 체계와 접목하여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연도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전의 전기요금 총괄원가 중 전력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85% 내외이다. 미국 전력회사의 총괄원가 중 발전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비중이 다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전의 총괄원가 중 발전비용의 비중이 높은 것은 국토가 좁고 대다수의 인구가 도시에 밀집돼 있어 송배전 비용이 낮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비용은 한전이 통제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모든 전력거래는 전력시장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한전은 전력시장의 가격결정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한전이 거래비용을 낮춰 총괄원가를 낮추고 싶어도 낮출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러한 발전비용은 대부분 국제 연료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한전의 총괄원가는 국제 연료가격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연료비용은 총괄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사업자가 통제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료비용은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그 외의 비용은 사업자가 어떻게 경영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즉 사업자가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은 별도의 유인규제 체계를 적용하여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의 전력산업을 둘러싼 환경에 주요한 변화가 발생함에 따라 정책당국은 안정적 전력공급뿐만 아니라 에너지효율 향상,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등을 추가적인 목표로 설정하게 됐다. 전통적인 전력산업의 목표는 전력공급사 본연의 역할에 기초를 두고 있어 관련 비용이 일반적인 총괄원가의 요건에 부합하면 전력공급을 통해 회수가능한 성격을 지니는 반면, 새로운 정책목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의 경우 유틸리티의 일반적인 원가와 성격을 달리 해당 비용의 규모도 커졌다. 이제 우리 전기요금 규제체계도 선진국 처럼 이원화해 한전이 책임질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해 정말 한전과 한전 직원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도록 바꿔야 할 것이다. 반대로 최근 몇 년의 상황처럼 외부의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적자가 발생했더라도, 내부적으로 통제 가능한 부분에서는 비용효율화를 달성했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해야한다. 또한 전력산업 환경변화로 인해 발생한 추가적인 비용을 적절히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요금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전기요금과 관련한 대부분의 논의는 단순히 요금 인상 폭을 얼마로 할 것이냐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요금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금을 규제하는 전반적인 체계를 손질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연제

[기자의 눈] 글로벌 선거의 해, 탄소중립 갈림길

2024년은 '글로벌 선거의 해'다. 전 세계 76개국의 나라에서 치러지는 각종 선거에 지구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42억 명의 인구가 투표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유럽연합(EU)의회 선거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가 집권하고 유럽의회도 최근 득세하고 있는 극우세력이 장악할 경우 현재의 탄소중립, 기후위기 대응 등에 대한 각국의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선거를 앞둔 글로벌 민심은 탄소중립에 우호적이지 않다. 유럽연합(EU)은 기업들의 탄소 중립 실현을 강제하기 위해 2022년 제안한 법안의 규제 대상에서 금융 기업을 제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덴마크과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을 늘리기 위해 1998년 체결된 에너지헌장조약(Energy Charter Treaty) 탈퇴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지난해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루고, 이후에도 휘발유·경유차 중고차 거래를 허용하는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유지하겠지만 가계의 생활비 부담 등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취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낵 총리는 미국이 모두에게, 특히 스스로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터무니없는 '기후 의무'를 매우 실질적으로 되돌렸다"고 평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에서 날아온 전혀 처리되지 않은 더러운 공기 속에 숨 쉬면서 불가능한 것에 수조 달러를 쓰며 즐겁게 굴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 모두는 매년 석탄화력발전소를 수백개씩 짓고 있으며 독일도 막 여기에 동참했다"면서 “수낵 총리가 너무 늦기 전에 이런 사기를 알아챈 것을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측은 이같은 변화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을 공격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부터 기후변화를 중국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2019년에는 미국을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시키기도 했다. 유럽 의회도 6월 선거에서 우파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최근 수년 동안 에너지 위기와 생활고 등으로 극우 정당들의 세력이 커지고 시민들의 각종 보조금 요구 시위가 빗발치는 등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계에서도 이같은 글로벌 정세 변화에 따라 탄소국경세 등 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안들의 변동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업들의 실적둔화는 물론 한전 적자, 민생고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총선 전후로 에너지안보를 고려해 탄소중립과 에너지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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