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9일(목)



[EE칼럼] 석유 붐과 ‘돈쭐’ 내는 국내 대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21 08:27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근 국내 에너지 시장에 두 가지 큰 이슈가 등장했다. 먼저 국제유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4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수준을 넘었다. 올해 들어서만 50%나 뛰었다. 영국 북해 브렌트유도 배럴당 85달러를 웃돌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세계 원유가격 상승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여름 휴가철 단기적인 수송 연료 상승이나 러시아 원유 정제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 이슈를 넘는 중장기적인 시장추세에 주목하는 것 같다.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2021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의 고유가 상황을 넘어서는 '새로운 석유 붐(Boom)'에 주목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영향은 이제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이슈는 우리 정책금융기관, 5대 시중은행이 민관 합동으로 2030년까지 452조 원의 '미래 에너지 펀드'를 조성해 신재생발전시설 증설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능력 제고에 힘쓰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자금은 지난 5년 연 평균 투자액(36조 원)보다 67% 늘어난 연 60조 원에 달한다. 이를 통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약 8597만t 감축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30년까지 국가 감축 목표의 29.5% 수준이다. 이에 따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현행 9.2%에서 2030년 21.6%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조치들은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조정제도'와 글로벌 탄소배출 규제강화 등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35년 재생에너지 비중 40%로 확대하고 내연(內燃)차 판매 중단을 4·10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국가 실현을 위해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키겠다고 밝혔다. 전기·수소차 보조금을 확대하고, '무제한 교통패스'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2035년에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52% 감축하며,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검토한단다.


밖에서는 '원자재 붐'으로 에너지 시장이 들썩이는 데, 안으로는 '돈쭐'(돈+혼쭐) 내는 에너지-기후정책(안)이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 단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제원유 시장변화를 살펴보면 그 가격 상승은 세계 원자재시장 상승 기조(commodity bull market)의 일환이다. 지금 세계 원자재시장에서 원유뿐 아니라 리튬, 구리 등 첨단 청정소재와 커피 등 소재 곡물 가격까지 급등세를 보인다. 관련 기관들은 경제가 '디플레이션'(deflation)을 벗어난 상태에서 심각한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유발하지 않을 수준의 통화 재(re-)팽창인 '리플레이션(reflation)' 상태의 특징으로 보고 있다. 사실 여러 국가에서 어느 정도 물가상승을 용인하는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1970년대 석유파동이나 2000년대 중국 경제급등 이후 새로운 석유 '붐'이 왔다고도 한다. 여기다 BRIC (Brazil, Russia, India and China) 국가들의 성장 추세도 원자재시장에 지속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판국에서도 공급여건 확대에는 많은 자본과 원자재 투입이 요구되어 장기적인 시설 확충 수익보장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급격한 원자재 '붐'이 오래 지속되지 못 한다는 평범한 시장 논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금융자본 투입을 통한 신재생 확대. 기후대책 강화, 그리고 국제경쟁력 강화시도는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특히 관련 기술 확산과 성숙화 '사이클' 효율화 차원에서 장기 측면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경쟁적 정책대안 제시로 오해될 수 있는 에너지-기후대책은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정치의 계절에는 '타이밍' 맞게 제시되는 '자칭' 전문가 조언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핵(脫核) 정책이 다시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선포하며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재생 중심 시대'를 선언했다. 당시 24기의 운용 원전을 2030년과 2040년 각각 18기와 14기로 줄이고, 전체 전력설비에서 원전설비 비중을 2017년 19.3%에서 2030년 11.7%, 2040년 7.6%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규건설취소(4기)와 건설 중단(2기) 등을 포함하여 원전 13기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원전 감소는 발전사업자인 한전의 적자와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졌다. LNG 등 대체연료 수입증가와 온실가스 배출증가 때문이다. 원전산업계를 비롯한 전후방 관련 산업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특히 매출 및 고용 감소, 수출 기회상실 등의 여파도 크다. 관련 연구기관 분석으로는 2035년까지 연간 8조 원의 국민부담(과학기술한림원) 유발과 2030년까지 한전 전력 구입비용 146조 원 증가(입법조사처)를 전망했다. 탈원전 정책은 과학적 계량 논리가 미비해 미완(未完)의 이념정책으로 남았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미래세대로의 부담 전가를 두려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신재생 확대, 기후변화 대응 전략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과학적 재검증이 필수적이다. 특히 지금 계량 불가능한 미래 위험통제비용은 갈수록 심각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갈성자원 논리와 기술혁신 논리가 지배하는 에너지-기후변화 시장은 항상 불완전하다. 미래 시장실패 비용은 완전한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시장 논리가 여기서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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