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이슈&인사이트] 비례대표제 재고할 때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24 08:59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년 총선은 여러모로 최악이다. 특히 긴 논란 끝에 유지하기로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해 위성정당이 창궐했다. 4월10일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기표할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60개나 되는 정당 이름이 인쇄될 예정이다. 이번 투표용지 길이는 4년 전보다 더 늘어나서 야구배트보다 길 거란다. 그 많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누구인지, 얼마나 검증이 이루어졌는지, 또 얼마나 대표성과 비례성을 갖추었는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꼼수와 우회 공천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를 목격하는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아마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자는 심정이 들지는 않을까. 나는 비례대표를 유지하느냐 또는 비례대표 의원정수를 늘리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지금까지 비례대표 의원의 역할, 위상, 실적에 대한 냉정한 평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례대표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에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필요성에 입각해서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공허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비례대표제도의 역사성과 의의가 이제는 소멸했다고 본다. 한국에 비례대표는 5·16쿠데타 이후 제5차 개헌으로 전국구 의원이라는 이름 아래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과거 중앙일보의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전국구의원 자리는 5·16쿠데타 세력 가운데 상당수였던 이북 출신 군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 이들은 민정 이양의 선결 조건인 개헌에 반대했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지역적 기반이 필요 없는 전국구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에 전국구 제도는 주지하듯이 박정희 대통령이 임명하는 의원이 포함된 유신정우회로 변질되었고 독재 유지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돈 많은 독재 부역자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둘째, 한국과 같은 비례대표제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서는 2004년 총선부터 1인 2표에 의한 비례대표로 바뀌면서 소선구제 지역구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소수당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인위적으로 이른바 정치적 소수자나 직능적 대표자를 공천하여 비례대표로 뽑게 하고 이를 통해 비례성이나 대표성의 보완이라는 명분을 채우려고 하는 사례는 외국에 없다.


셋째, 과거 비례대표라고 뽑힌 인물들이 실제로 4년 임기 동안 비례대표로서 얼마나 비례적이고 대표적인 의정활동과 입법활동을 했는지 평가해보면 답이 나온다. 비례대표는 자신을 공천해준 당대표나 대통령이나 또는 미래권력의 수족이 되어 극단적 정당정치의 대리인이나 정쟁의 친위대 역할에 전문적인 '자질'을 보여왔다. 4년 동안 이른바 정치적 소수자나 직능적 대표자로서 자신이 속한 국민을 대표하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실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재선을 위한 '지역구 쇼핑'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 비례대표가 그래도 소수파를 대변하고 개혁을 이끌며 새로운 인물을 등용시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표적으로 2020년 총선에서 많은 정치신인들이 정치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각종 비리에 수사나 재판을 받거나 당적 바꾸기를 거듭했으며 대선 때 합종연횡의 후진적 정치를 반복했다는 행적이다. 2020년 총선에는 애초 취지와 달리 비례대표가 초선이 아닌 인물들이 쉽게 국회로 진출하는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는 현역 의원이 재선을 쉽게 하기 위한 우회로나 수사와 재판을 기다리는 후보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통로로 변질됐다.


다섯째,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국민이 비례대표제도를 보는 시각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 2월 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조사에서는 당시 47석인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여야 한다는 대답이 55.9%로 압도적이었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겨우 13.1%에 불과했다. 이제는 시간이 변해서 비례대표 의원정수도 46명으로 줄었고 비례대표 공천 중에 온갖 눈살 찌푸리게하는 일이 이어졌다. 아마 지금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설문까지 포함시킨다면 국민의 여론은 단호한 것으로 확인될 것이다.


여섯째, 한국의 정당체계가 유동성이 크다는 문제를 갖는데 최근의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비연속성과 불안정성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비례대표제를 위해 준연동형제를 두 번씩이나 채택했는데 60개 정도씩 되는 정당이 4년마다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의석을 얻은 정당도 또 합당이네 뭐네 하면서 금세 흔적도 없어졌다. 양대 정당은 위성정당을 만들기 위해 의원을 꿔주고 선거가 끝나면 또 복귀시키는 꼼수를 편다. 민주화 이후 2000년대를 지나면서 정당의 수명이 평균 2년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안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비례대표제의 폐단이 더 뚜렷하게 확인됐다.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맞게 준연동형제를 철저히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비례대표제 자체의 폐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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