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금주 기자의 일달일 영화] 한 달에 영화 1편, 1년에 영화 12편으로 바라보는 세상 물과 불·불과 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도시에서 물불이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은 불을 꺼뜨리고, 불은 물을 끓게 할까요? 지난달 14일 개봉한 픽사의 27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이 질문들에 힘차고 유쾌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답해줍니다. 영화의 배경은 물, 불, 흙, 공기 4개 원소가 복작복작 살아가는 도시 엘리멘트입니다. 이 곳은 불의 모습을 한 여주인공 앰버와 남주인공인 물 웨이드가 운명적으로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열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앰버와 잔정은 많지만 매사에 물 흐르듯 임하는 웨이드는 약간의 사고를 통해서 조우합니다. 앰버가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는 가게의 행사날 지하실 배수관이 터지는데, 그 일로 웨이드는 의도치 않게 지하실 파이프로 빨려 들어온 거죠. 엘리멘트 도시의 수도 검침원인 웨이드의 눈에 가게 지하실은 시가 정한 상가 기준을 한참이나 어겼습니다. 웨이드는 가게에 벌점을 매기고 시청으로 가 보고를 하려하죠. 하지만 이 가게는 앰버 아버지가 엘리멘트로 이민을 온 후부터 직접 손으로 일군 특별한 공간이기에 앰버에게도 의미가 큽니다. 아버지의 가게를 지키려는 앰버는 웨이드를 막으려 하고 서로 쫓고 쫓기는 가운데 몇몇 의혹들을 마주합니다. 그 때 시청에 근무하는 공기 관료 게일은 앰버와 웨이드가 의혹을 해소하면 가게에 폐업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고 말하죠. 어쩔 수 없이 둘은 답을 찾기 위해 불편한 동행을 시작합니다. 영화는 ‘그렇게 동행한 둘이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단순한 결론으로 관객을 안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과 물의 존재인 앰버와 웨이드가 서로 다름을 어떻게 마주하고 적절히 보완하며 융화해 가는지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드러나기도 하고 상대와 가까이 하면서 일어나는 심리, 신체 변화들이 고스란히 등장하죠. 앰버는 웨이드를 만나며 그간 스스로 알던 모습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과 원하는 바를 알게 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겁 많은 웨이드는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에도 앰버 아버지가 직접 달궈 만든 숯과자를 꿋꿋이 삼킵니다. 앰버 곁에 서면 보글보글 살갗이 끓기도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죠. 이러한 변화들이 불과 물의 특성으로 재치있게 등장하는 게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한 마디로 눈이 너무 즐겁습니다! 앰버는 감정에 따라 불꽃이 커지거나 작아지고, 때로 폭발 직전이 되면 보라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웨이드는 벽에 붙은 수증기부터 근육질의 물보라까지 몸을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앰버 가족이 사는 불 지역과 웨이드가 사는 물 지역의 질감, 온도, 색채가 완전히 정반대라 차이를 살피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눈만 즐겁다면 픽사 작품이라 할 수 없겠죠. 픽사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공감 높은 스토리텔링은 ‘엘리멘탈’에도 진하게 담겨있습니다. 앰버와 웨이드의 사랑 아래에는 다름이 있고 그 다름은 서로 사는 곳, 생김새, 문화, 생활방식 등 모든 부분이 해당합니다. 이에 따라 물, 불, 흙, 공기 4개 원소인 엘리먼트(Element)들은 서로에게 무지하고 섞이지 않은 채로 살아갑니다. 앰버의 아버지가 처음 엘리멘트로 이주했을 때 흙, 공기, 물과 같은 주민들이 곁을 내주지 않은 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극 중 웨이드의 가족은 대놓고 차별을 가하는 악랄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이들 또한 앰버에게 무지한 건 사실입니다. 엘리멘트 토박이인 웨이드의 외삼촌 헤롤드가 앰버에게 ‘어떻게 우리 말을 잘 하냐’고 말한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생김새가 다른 것만 보고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했지만, 앰버도 엘리멘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악의 없는 농담임을 안 앰버는 "평생 써온 말이니까 당연히 잘할 수밖에"라고 받아치지만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특정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지만 당사자만 아는 미묘한 차별과 고립감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엘리멘탈’을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이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에서 직접 이민자로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들을 잘 포착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피터 손 감독의 부모는 196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로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그 위에 픽사 특유의 휴머니즘과 따뜻함이 담긴 시선이 더해지면서 둘의 융화와 모험은 더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꼭 감독만의 이야기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낯선 세계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우리조차도 누군게에게는 이방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삶의 역사와 배경, 성향까지도 각각 다른 속성을 견디고 기다리며 알아가자고 말합니다. 이민자의 서사를 개인 간의 사랑과 우정, 한 개인의 성장으로 마무리하는 점은 분명 아쉬울 수 있지만 피터 손 감독이 한 영화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우리가 찾는 답은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한 걸음에 있다. 작은 변화가 모이면 사회는 달라진다." ‘엘리멘탈’은 5월 열린 제 76회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업’, ‘인사이드 아웃’, ‘소울’에 이어 4번째로 칸에 소개된 픽사 애니메이션입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합니다. 6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는 260만 5690명을 기록했습니다. 영화 관람 당시 제 뒤에 앉았던 여고생들은 하나 같이 울음을 터뜨린 채 상영관을 나왔습니다. ‘너희한테 잘할게’, ‘내가 순대 싫어해도 너가 좋아하면 같이 시킬게’라며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분명 이들 사이에서는 감독의 말처럼 작게나마 변화가 나타난 것 아닐까요? ① 피트 닥터 ‘소울’(2021) : 지구에 오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세상에서 영혼이 된 ‘조’와 태어나고 싶지 않은 영혼 ‘22’가 함께 떠나는 특별한 모험 → 디즈니플러스 ② 피트 닥터 ‘업’(2009) : 부인과 사별한 78세 노인 ‘칼’이 풍선을 이용해 집을 비행선으로 만들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 디즈니플러스 kjuit@ekn.krclip20230706151028 픽사의 28번째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의 주인공 웨이드와 앰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clip20230706151205 물, 불, 흙, 공기 네 개 원소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공존, 영화 ‘엘리멘탈’.월트 디즈니 컴퍼니 clip20230707130959 ‘엘리멘탈’의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