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재이다. 하지만 에너지 시설은 배출물질을 과도하게 내뿜는다는 선입견으로 지역주민들로부터, 심지어는 국가로부터도 기피되고 있다. 이러한 선입견은 에너지의 실제에 대한 여러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에·바·다는 '에너지를 바로 보니 다르네'라는 의미로, 이 코너를 통해 독자들에게 에너지의 실제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다.
이재명 정부가 국토 남부에 쏠려 있는 재생에너지의 잉여 전력을 수도권까지 끌어오기 위해 대규모 송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른바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다. 하지만 최대 일백조 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송전탑 등 송전설비에 대한 주민수용성도 떨어지고 환경론자들의 반대도 심해 실제 건설로 이어지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미 에너지 고속도로가 구축돼 있다고 말한다. 바로 가스관이다. 잉여 전력은 수전해 기술을 통해 수소로 전환이 가능하고, 수소는 이미 깔려 있는 가스관에 혼입해 일반 가스 소비처에 공급할 수 있다. 10% 혼입 실증을 마쳤고, 20% 혼입 실증이 진행 중이다.
고속도로가 막힌다면 국도나 다른 고속도로를 이용하도록 유도해야지, 새로운 고속도로를 설치하는 것은 심각한 낭비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0조 비용, 정부와 한전은 돈이 없고 민간에 맡기면 전기요금 폭등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개념도.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자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일 첫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전력망위원회)를 열고 99개 송전선로·변전소 구축 사업을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해 전력망특별법에 따라 인허가 특례를 부여하고 도로와 함께 건설하는 방식을 적용해 전력망을 적기에 구축하기로 했다.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정부는 서해안을 시작으로 추후 남해안, 동해안까지 전국적으로 U자형 송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남부 등 해안쪽에 집중 설치됐거나 설치되는 재생에너지의 전력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수요지로 공급해 에너지 대전환과 RE100 및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적 제약이 너무 많다. 우선 총사업비용으로 100조원가량이 필요하다. 정부의 11차 장기 송변전 설치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전국 송전망 구축에 72조8000억원이 소요된다. 송전망에는 배전망이 따라 붙는데, 최근 한전이 발표한 1차 배전망 계획에 따르면 2028년까지 필요 비용은 10조2000억원이다.
현재 기준으로 전국 송배전망 구축에 드는 비용만 83조원이며,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이보다 확장된 개념인 것을 감안하면 총사업비는 100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국내 유일한 송배전망 사업자인 한전은 돈이 없다. 한전의 총부채는 206조원으로, 하루 이자비용만 120억원이 빠져나가고 있다. 결국 송배전망 구축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하는데, 정부도 세수부족으로 예산이 없다.
민간에 송배전망 구축을 맡기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전기요금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이를 허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송전탑 건설은 단 4개뿐

▲착공 6년 만인 2014년 12월 완공된 경남 밀양 765㎸ 송전탑이 시운전에 들어간 가운데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이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 고속도로는 2013년 밀양 송전탑 사태를 재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차 송전망 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송전선로 2만5587C-km를 새로 구축하고, 변전소도 391개나 신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전국 송전탑 수는 2015년 4만947개에서 2024년 4만951개로 10년 동안 단 4개밖에 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밀양 사태 이후로 송전탑 설치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토로했다. 변전소 건설 역시 최근 하남시의 불허 사태만 보더라도, 주민 민원에 부딪혀 단 한개조차 구축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도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신정훈 의원(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에너지가 있는 곳에 기업이 와야 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에너지 고속도로는 신중한 재검토를 요청합니다"라며 “데이터센터 유치해 놓고, 대기업이 들어설 RE100 산단을 지정해 놓고, 에너지 고속도로를 설치해서 전남이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가져간다? 이것은 이율배반이고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은 전기만 생산하고 수도권이 그 전기를 가져다 쓴다? 균형발전 없는 서울공화국을 계속하자는 다짐에 다름 아니다. 에너지 고속도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시각으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밀양 사태 이후 송전망 건설이 불가능해지면서 나온 게 분산에너지 정책이다. 즉,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라며 “그런데 에너지 고속도로는 다시 송전망을 건설하자는 계획이다. 밀양 사태를 재연하자는 것인지,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국 가스관 6만km, 도시가스 수소혼입 10% 실증 완료, 20% 진행 중

▲전국 가스 주배관망 위치도. 한국가스공사
에너지 전문가들은 굳이 송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에너지 고속도로는 이미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가스관을 말한다.
잉여 전력은 수전해 기술을 통해 수소로 전환이 가능하고, 이 수소는 가스관을 통해 전국 공급이 가능하다.
사람의 동맥에 해당하는 가스 주배관 길이만 5200km에 달하며,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공급관까지 하면 무려 6만km의 가스관이 전국에 깔려 있다.
한국가스공사 등 도시가스업계는 도시가스에 수소를 혼입하는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10% 혼입까지는 실증이 완료됐으며, 현재 가스공사 평택공급기지에서 20% 혼입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천연가스 사용량은 약 4000만톤 이상으로, 수소를 20% 혼입하면 연간 278만톤의 LNG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른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766만톤에 이른다. 이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의 2.63%에 해당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전력계통의 출력 제어량은 164.4GWh이다. 이는 전년 13.2GWh보다 무려 약 12.5배나 증가한 것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면 될수록 출력 제어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계획은 잉여 전력에 따른 출력제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이 정부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대규모 송전망 구축 계획인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비용문제, 송전탑 등 송전설비에 대한 주민수용성 문제, 환경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공사기간이 상당히 지연되거나 아예 좌초될 가능성이 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를 일치시키는 것이지만 이 방법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전해를 통한 수소 생산 방법을 함께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실제로 새만금에 구축될 예정인 RE100 산업단지에 이러한 하이브리드 방법이 추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어 “다만, 여기에 공급되는 전력과 수소에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화석연료도 일부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산업단지 이름을 굳이 'RE100'으로 한정시켜 에너지 사용을 제약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