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정비를 마치고 출고되는 미군 F-15 전투기를 향해 대한항공 김해 테크센터 직원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이 부산 강서구 김해 테크센터에 군용기 전용 최첨단 도장 격납고(행거)를 신축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시설 확충으로 보이나 급변하는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 속에서 한미 군수 동맹을 강화하고, K-방산의 글로벌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고도의 전략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13일 본지 취재 결과 대한항공은 부산 강서구 소재 김해 테크센터 군용기 도장 행거 신축 공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프로젝트는 연면적 5698.64㎡ 규모의 지상 3층 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군용 항공기 도장은 위장색을 칠하는 것을 넘어 기체의 생존성과 직결되는 핵심 공정이다. 이는 성층권의 극한 저온과 지상의 고온·염분·자외선 등으로부터 기체 부식을 막는 첫 번째 방어막 역할을 한다. 특히 초음속 비행 시 빗방울이나 먼지와의 충돌로 인한 미세한 손상으로부터 부식이 시작될 수 있어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이 같은 최첨단 도장 작업은 온도·습도·공기 흐름이 정밀하게 제어되는 전용 시설을 필요로 하며, 항공기를 부품 단위까지 분해해 정비하는 최고 수준의 정비 단계인 '창정비'의 대미를 장식하는 과정이다. 대한항공이 자체적으로 최고 수준의 도장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미군 등 핵심 고객에게 정비의 전 과정을 일괄 제공하는 '원스톱 솔루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50년 동맹의 신뢰…미 국방부 “대한항공, 군용기 정비 교과서"
이번 투자는 대한항공이 지난 반세기 동안 쌓아온 군용기 유지·보수·정비(MRO) 역량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다. 대한항공은 1978년부터 주한·주일 미군 군용기 정비 사업에 참여해 F-15·F-16 전투기와 A-10 공격기, UH-60 헬기 등 약 4000대에 달하는 미군 항공기를 정비해온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2900억 원 규모의 미 공군 F-16 전투기 수명 연장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쌓은 신뢰는 독보적이다. 미 국방부는 앞서 국제 MRO 행사에서 “대한항공의 미군기 수리 프로젝트가 교과서와 같다"고 공개적으로 극찬한 바 있다.
이 투자의 배경에는 미 국방부의 전략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최근 '지역 정비 지원 체계(RSF, Regional Sustainment Framework)' 정책을 통해 분쟁 가능성이 있는 지역 인근의 동맹국에서 군용기나 군함 등 핵심 자산을 직접 수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산을 수리하기 위해 미국 본토까지 이송하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여 작전 준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것이다 .
이러한 미국의 수요에 한국은 최적의 파트너로 꼽힌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그리고 50년 간 증명된 신뢰는 다른 국가가 따라오기 힘든 강점이다. 대한항공의 이번 행거 신축은 미국의 전략적 수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선제적 투자로, 한미 국방 산업 기반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상징적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68조 시장 선점…미래 성장 동력 확보
글로벌 군용기 MRO 시장은 2030년 약 68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 시장이다 . 군용 자산은 수십 년간 운용되므로 MRO 사업은 경기 변동에 덜 민감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
대한항공은 이번 투자를 통해 MRO 사업을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무인기(UAV)나 도심 항공 교통(UAM) 등 미래 항공우주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플라이휠(Flywheel)' 효과를 노리고 있다. 미군 MRO 사업 수주로 확보한 재원과 기술력을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고, 미 국방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체 개발한 방산 제품의 수출길까지 여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산에 들어서게 될 신축 격납고는 단순한 공장을 넘어 한미 안보 동맹의 심화와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K-방산, 전통 항공사를 넘어 글로벌 항공우주·방산 기업으로 진화하는 대한항공의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핵심 주춧돌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