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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중국인 단체관광, 한중 교류 마중물 삼아야

지난달 중국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가 한국을 포함한 78개국에 중국인의 단체관광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2017년 3월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이 6년 5개월만에 물꼬를 터게 됐다.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이 허용되면서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관련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다. 중국의존도가 높았지만 한중 관계 악화 이후 대체 시장을 찾지 못했던 화장품, 호텔, 면세점, 여행사 등 유관 업종의 주가가 빠른 회복세를 타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첫 중국 단체관광객이 방한하면서 면세점과 명동거리 등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달 말부터 내달 초까지 이어지는 추석과 국경절 연휴를 계기로 방한 중국 단체관광이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단체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들은 중국어 가능 직원을 뽑기 위해 분주하다. 중국의 단체관광 허용을 계기로 관광교류는 물론이고 한중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해 정부 당국과 기업들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겪어왔듯이 중국은 공식적인 조치 외에 비공식적인 조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나라다. 실제로 한국 단체관광 금지조치를 공식적으로 취한 것은 코로나19와 방역이 명분이지만, 사실상 불허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이후부터다. 표면적으로는 단체간광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특정 상황이나 사건을 계기로 언제든지 비공식적으로 단체관광을 가로막는다. 특정국에 대해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중국인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면서 일본 단체관광 취소와 중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만으로 중국 관광객이 사드 배치 결정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그다지 높지 않으며, 한중 관계가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더 많은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 여행사들과 협력은 물론이고 수천, 수만의 직원을 해외관광 보내는 기업들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항공편도 늘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세계 각국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상당한 비호감도를 가지게 됐다. 한국인 역시 한한령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 비호감도가 대폭 상승했다. 방한 중국인은 적어도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한국을 찾지 않은 중국인에 대해서도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비우호적으로 대하는 국가를 방문하고 물건을 구매할 중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단체관광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게임, 드라마, 영화, 공연 등 한류 콘텐츠에 대한 제한을 풀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류가 한국 제품에 대한 구매 열기로 확장되도록 해 더 커진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경직된 사고로 한국의 안보를 위해 스스로 밥그릇을 걷어차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와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중국을 방문해 극단적인 충돌을 피하고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이 지나치게 중국과 거리를 둘 경우 미중, 미일 관계가 회복된 후에도 한중 관계가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주원 칼럼] 중국 디플레이션, 쉽게 볼 일 아니다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바로 중국 경제의 부동산시장발 디플레이션이다. 이 이슈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경기 동조성 때문이다. 우리의 대 중국 수출의존도는 2022년 기준 22.8%(홍콩 포함 땐 26.8%)로 수출 대상국 중 비중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인 미국은 16.1%에 불과하다.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도 함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러한 중국발 경제 위기의 전이효과는 유럽 재정위기 직후에 경험한 바 있다. 2013~2015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5% 안팎으로 안정세를 유지했지만,같은 기간 중국은 7.8%에서 7.0%로 하락했다. 당시는 경제 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내부적인 조정 과정에 따른 경착륙을 경험했다. 이 여파로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도 2013년 3.2%에서 2015년 2.8%로 둔화됐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감안할 때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은 0.5% 포인트 하락압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금은 한국 경제가 중국 시장에 대한 교역과 투자 의존도가 그때보다는 낮아져 당시 만큼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연쇄적인 경기 둔화 압력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최근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중국 경제성장률을 올해와 내년에 큰 폭으로 하향조정하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실물 경제의 동조성보다는 금융시장이다. 실물경제의 위기 전이는 그나마 다소 시차를 두기 때문에 최소한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거의 시차 없이 위기가 전이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위기가 인터넷을 통해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전이효과가 우려되는 이유는 금융지표가 한 국가 경제에 대한 대외적인 평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발 디플레 쓰나미의 첫 번째 파도가 금융시장을 통해서 밀려 들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다소 진정되는 듯이 보이지만 주식시장에서의 동조성이 매우 높아졌다. 나아가 위안화와 원화도 최근에 부쩍 동조화가 강화되는 모습니다. 이러한 동조성은 시장에서의 단순한 공포 심리의 전이효과만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중요한 정보를 가진 대규모 글로벌 자금들이 먼저 움직이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 중국 경제의 위기를 ‘강 건너 불 구경’식으로 취급해선 안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한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비상조직을 가동하는 등 비상계획 마련이 급선무다. 정부가 지난 8월 20일 기획재정부 주도로 산업통상자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주요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중국경제상황반’을 운영계획을 밝힌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 차원을 넘어 민·관 합동의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해 협업 체제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위험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국발 위기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 이후 다양한 중국발 리스크가 하도 많이 부상하면서, 중국 경제의 변동성에 한국 경제가 강한 내성이 생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시작되는 차이나 리스크는 그런 내성으로 감당할 수준을 훨씬 넘어설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이슈&인사이트]휴대폰 시장에 ‘공짜폰’은 없다

오래 전부터 정부는 이동통신 서비스 요금 인하와 소비자권익 향상을 위한 경쟁적 시장환경 조성 정책을 펴왔다. 대표적인 경쟁촉진 정책이 알뜰폰으로 불리는 MVNO사업자(가상이동망사업자)제도의 도입이다. 알뜰폰은 이동통신망을 가지지 못한 사업자가 기존 통신3사의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MVNO 사업자들은 네트워크 투자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반값 요금제’를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알뜰폰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말 기준 알뜰폰 시장점유율은 16.7%에 달한다. 정부는 알뜰폰 도입 외에도 5G 중간요금제 확대와 제4통신사 설립 등을 추진 중이고,이동통신 사업자들도 어르신·청년 요금제 출시, 중간 가격대 요금제 추가 등을 추진하며 값싼 요금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들어 가계 통신비가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가구당 통신비가 13만원을 넘어섰고 저소득층의 통신비 지출 비중도 15% 늘었다. 5G(5세대) 이동통신 가입자가 늘어나면서다. 여전히 이동통신요금제의 시장 가격이 높아 기본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가계 통신비 인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데이터 단가를 낮추고, 공공 와이파이 설치를 늘리고, 사용한 만큼 요금을 내는 후불 요금제를 도입하는 한편 데이터 단가 공개를 의무화해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데이터 단가 후불 요금제를 도입하면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만큼 요금이 줄어 결과적으로 통신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3000만명이 가입한 5G 요금제의 하한선을 현행 월 4만원대에서 3만원대로 낮추라고 통신사에게 주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5G 요금제의 기본 단가를 내려야 가계 통신비 부담을 확실하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와이파이의 경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을 받은 통신사가 공익 목적으로 제공하지만 품질이 낮고 유지보수가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기간통신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무엇보다 이동통신시장에 경쟁 구조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 변화도 중요하다.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경쟁적 경쟁적 시장구조 형성, 요금 인하, 다양한 서비스 도입, 기업 혁신, 품질 향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시장을 들여다보면 소비행태는 여전히 무제한요금제를 선호,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자주 바꾼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5G 서비스 가입자의 85%가 데이터 제공량보다 적은 데이터를 사용한다. 결국 이 같은 소비자들의 소비행태로는 요금 인하와 경쟁적 시장환경 조성은 요원하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요금할인 받아 기기 할부금 없는 자급제폰 사용. 가족 결합 할인제 이용 등 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리점에서 비싼 요금제를 가입하면 지원금을 더 준다는 말에 24개월이나 36개월 할부로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할부로 구입하면 할부 종료까지 통신사 이동이 불가능하며 무조건 해당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요금제만을 사용해야 한다. 다른 이통 통신사에서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해도 약정 때문에 옮기지 못한다. 이에 비해 제조사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하면 카드 혜택을 통해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구매 후 기존에 사용하던 유심칩을 넣어 사용하면 할부 이자를 줄일 수 있다. 다른 이동통신사에서 좋은 요금제가 나오면 쉽게 옮겨 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요금제 혜택을 바라기에 앞서 자신의 휴대폰 사용 행태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거품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휴대폰 시장에서 공짜폰은 없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정부가 지난달 첨단전략기술 보호 강화 방안을 내놨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기업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첨단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전문 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골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 제도가 법의 취지에 맞춰 제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은 이를 근거로 해당 전문인력과 해외 동종 업종으로의 이직 제한, 전략기술 관련 비밀유출 방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전략기술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기업이 정부에 해당 전문 인력의 출입국 정보 제공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잘 운용한다면 ‘산업스파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상 ‘전문 인력 지정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김성원 의원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 간첩죄 적용 등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산업스파이 철퇴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 양향자 의원은 기존의 특허법원을 ‘기술특허법원’으로 확대 개편해 지재권 분쟁 소송 전문성 확보를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기술보호법ㆍ첨단산업법 개정안 등 ‘기술탈취방지 3법’ 발의를 예고했다. 이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잘 조율하고 세밀하게 연구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추가해 법률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업스파이가 준동하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이 한 몫 했다. 산업기술보호법 제36조는 산업기술을 유출한 자는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는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서 3년 반, 그마저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산업스파이에 대한 무죄 선고율이 20%에 달한다. 최저 형량을 지금보다 크게 높이고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되도록 법률을 뜯어 고쳐야 한다.산업스파이에 대해서는 ‘산업기술보호법’과 함께 형법 제98조의 ‘간첩죄’ 범위에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포함시켜 간첩죄로 다스려야 한다. 전 산업 분야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산업 기술이 국가안보와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군사기밀 유출행위만을 간첩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에 동떨어진 제도다. 외국으로의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 미국은 산업스파이를 ‘간첩죄’로 가중처벌하고 있고 일본은 공급망 강화, 기간산업 물자 확보,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산업스파이가 노리는 것은 결국 돈이다. 첨단기술 전문 인력 지정제 역시 전문 인력으로 지정만하고,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만을 강요해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이 협력해 전문인력을 최고의 기술 전문가에 걸맞은 합당한 명예와 처우를 약속하고 실행할 때 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기업은 성과보수체계를 바꿔 그들의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국가는 전문 인력의 퇴직 후 생활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퇴직 엔지니어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주는 등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대한민국 학술원’이라는 곳이 있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면 종신임기를 누린다. 정회원은 매달 180만 원의 회원수당을 지원받고, 회당 10만 원의 회의 참석수당도 받는다. 연구 논문을 쓰면 연 1000만원 정도의 학술 연구비를 지급받는다. 정회원은 대부분 교수들이어서 기본적으로 은퇴 후 수당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으며, 위에서 말한 회원 수당은 별도다. 첨단기술 인력을 학술원 회원에 준해 대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 인력은 학술원 회원 못지않은 중요한 인재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회복세 탄 주택시장,낙관하긴 이르다

올해 초 정부가 부동산 관련 여러 규제를 풀면서 주택거래가 꾸준히 늘어나고, 미분양도 증가세가 꺾이는 주택시장이 반등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집값 동향을 보면 서울에 이어 최근 들어서는 지방도 하락세에서 벗어났다. 서울·수도권 청약시장은 고분양가 논란 속에서도 수십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되고, 경매시장도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동반 상승세다. 이처럼 주택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시장에서는 반등에 성공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인지, 아니면 다시 꺾일 것인 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미국이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금융권의 의견을 반영해 금리인상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상당부분 해소된 데다 상반기 부동산시장을 뒤흔들었던 역전세와 깡통전세 문제도 최근 전셋값 회복으로 큰 고비는 넘겼다는 분위기인 만큼 집값이 다시 꺾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오히려 입주물량 감소와 매수 심리회복에 따라 상승흐름이 더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다. 다른 한 켠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전반적인 경기 상황이 부진한 데다 전세시장도 여전히 약세인 상황에서,무엇보다 2020∼2021년 집값 급등기의 버블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기술적 반등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내다본다. 필자는 장기적으로 집값이 우상향 한다는 견해에는 공감한다. 다만 과거 사례에서 주택시장 위기 이후 3∼4년의 조정기를 거친 점에 비춰볼 때 현재의 집값 상승세가 바로 전고점을 넘어 대세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견해는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주택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금리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집값은 떨어지고, 반대로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매수세가 몰리면서 집값은 오르게 된다. 이 같은 ‘금리 장세’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이어졌다. 지난해 사상 초유의 고금리 행진으로 집값이 급락한 뒤 올해는 금리가 잇따라 동결되면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은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급격한 변화는 표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을 원한다. 가뜩이나 경기마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더라고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금리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상황에 따라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 변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중국의 2위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는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1위인 비구이위안은 달러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다. 부동산발 위기는 중국 경제 전반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내수 경기침체,수출감소,청년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며 총체적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 미국 역시 긴축 통화정책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모기지 금리가 21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의 주택시장 둔화는 모기지 금융기관들에게 타격을 주면서 고용감소, 경제성장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의 금리동결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빅2’를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며 환율과 금리의 변동성은 여전히 커질 수 있다. 정부도 최근 집값 안정을 시사했다. 따라서 단순히 현재의 국내 상황만을 고려한 섣부른 부동산 투자는 금물이다. 금리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의 부동산 투자는 자금여력이 충분한 실수요 위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의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영혼까지 끌어들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

최근 유럽연합(EU)과 그 회원국을 중심으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지구에 나타나는 급격한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위기에 대응하는 환경규제의 강화로 기존 산업 구조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담을 사회에서 분담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하자는 의미다. ‘공정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개념은, 원래 1970년대 노동운동 과정에서 사용됐다. 그런데 사회 변화에 따라서 이 용어는 점차 기후와 환경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했고 유엔환경계획과 기후변화협약 등 기후와 환경에 관한 국제사회의 공식 문서에서도 반영됐다. 지금은 공정, 평등, 민주, 다양성 등 이전보다 더 넓은 사회적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포용과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한다는 의미로 확장됐다. EU가 추진하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여러 실천 방향이 있다. 그중에서 ‘유럽 그린딜 투자 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은 10년 동안 1조 유로(약 1425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친환경의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EU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을 조성해 유럽 경제의 전환에 큰 영향을 받는 지역에 우선 175억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며,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의 근로자와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2027년까지 1000억유로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EU 회원국인 스웨덴은 금속, 광물, 시멘트,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탄소 집약적인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의 정의로운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이 같은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제거하고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스웨덴은 순환 경제 그리고 수소 등 원자재에 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에서 약 94%가 경제 전략에 투입되고 있다. 이 자금의 일부를 금속 산업 인력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거나, 청소년들을 해당 지역으로 유치하면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스마트 에너지 시스템(Smart Energy System) 개발 등에 투자하고자 한다. 한국 정부도 2020년 수립한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을 정책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정책에 반영했다. 이어 2021년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생성장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피해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이라고 정의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47조부터 제53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 마련,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의 설립, 지역 현황조사 등 정의로운 전환을 구현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에 따라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환경과 인권, 지속가능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경제개념의 전환은, 무역이나 국제투자 등 국제경제 무대에서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0년에 체결된 한-EU FTA 제13장은 무역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조항들을 묶었고, 이 내용들은 결국 경제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이후 EU가 아시아 국가들과 체결한 FTA에서도 유사한 내용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한-EU FTA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교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은 개도국에게 가혹하고 선진국이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친화적이지 못한 산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개도국에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역과 국제경제의 현실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국제경제 무대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가지는 복잡한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개념이 현재 무엇이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든, 한국 경제는 올바르게 적응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장

[윤석헌 칼럼]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금융의 역할

지난 7월 한국은행은 지난해 한국경제 규모를 전세계 13위(명목GDP 기준)로 발표했다. 2020년과 2021년의 10위에서 다소 하락한 수준이다. 한국은 2018년 세계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구 5000만명 이상)에 이름을 올린 바 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을 ‘선진 경제권’으로 분류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훌륭한 성과를 이어가야 할텐데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저성장과 일자리 문제, 기후변화 등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이 밝지 만은 않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10위권 선진 경제에 걸맞은 금융부문 역할이 절실하다. 그간 실물경제의 고속성장에 힘입어 양적성장을 이룩한 금융부문이 이제 대내외 환경변화의 불확실성 속에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해 기여할 차례인데, 무슨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 지난 반세기 한국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은 IMF 위기를 전후로 확연히 구분된다. 위기 이전에 금융은 경제개발 지원을 위해 기업금융을 중시했으나, 관치금융 하에 위험과 비효율이 확대되면서 외환위기가 초래됐다. 위기 이후에는 소매금융에 주력했는데, 금융사 탐욕과 위험관리 부실이 사모펀드 사태를 초래했고 부동산 관련 가계부채 확대가 경제에 부담을 배가하고 있다. IMF 위기 전과 후 모두에 후한 평가가 어렵다. 최근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출이 10개월 넘게 내리막이고, 고물가와 고금리 속에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IMF는 지난 7월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전망치를 1.4%로 낮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해 금융의 역할이 절실한데, 국가 위험관리와 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원적 전략’이 바람직해 보인다. 한편으로 국가 위험관리에서 금융의 역할을 강화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경제의 강점인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벤처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이다. 이 두 가지 방향 각각에 걸맞은 금융과제들을 살펴보자. 우선 국가 위험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첫째, 가계부채 연착륙 유도가 절실하다. 과다한 가계부채 속에서 최근 금리상승세가 소비 수요를 위축시켜 경기침체 원인으로 작용하고, 저성장과 인구감소 추세는 부동산 시장 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가계부채 과다를 초래한 부동산 보유를 금융자산 보유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한 금융과제다. 둘째, 개방경제인 한국경제는 환율을 통한 해외 금융시장 위험 노출이 크다. 따라서 이를 관리하기 위한 국가 위험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대외적으로 원달러 스왑계약 체결, 원화 국제화 등을 추진할 수 있고, 대내적으로는 금융사의 기업 및 가계 금융활동에 대한 위험관리 강화, 내수확충을 위한 자영업자 지원 및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포용금융과 사회적금융 확대 등이 절실하다. 국가 위험관리체계는 기업과 가계의 보다 적극적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보험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첫째, 생산적 금융의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이 경쟁력 우위를 갖는 제조업 분야를 집중 지원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 및 강화해 나가야 한다. 단 자본시장에서 자금수요 충족이 용이한 대기업이나 재벌 지원보다 자금, 정보, 자문 등에서 금융권 지원이 절실한 중소벤처, 창업 및 자영업자 등에 맞춤형 금융서비스 제공을 통해 지원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디지털 전환 경제에서 핀테크 경쟁력 제고를 통해 고객 편의성 및 중개역할의 실효성 제고를 도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출관련 신용위험 분석 능력 함양을 통한 중개기능 효율화, 자산운용 역량 확충을 통한 고객 연금수익률 제고 등이 절실하다. 다만 금융발전은 첨단기술의 우수성보다 고객의 니즈 충족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 외에도 기후변화 대응에서 금융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산불, 홍수, 태풍 등 이상기후 징후 빈발로 금융권에 기후금융 관련 역할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신재생에너지(RE) 확보 경쟁에 뒤져 있어, 금융권의 신용공여시 기업의 탈탄소화 유도 노력이 절실하다. 규제완화가 금융발전을 가져온다는 일각의 견해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규제완화는 위험을 확대해 금융안정을 해치고 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은 올바른 역할을 수행해 수익을 창출하되 언제나 금융안정과 소비자보호를 우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감독체계를 정비하고 규제를 완화하되, 금융사 스스로가 혁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K-금융’의 과제다.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이슈&인사이트]과학, 비과학, 그리고 과학적 사기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재현성이 있을 때 과학이라고 하고, 없을 때는 비과학이라고 한다. 비과학을 과학으로 변조 또는 조작해서 정신적,물질적 이득을 취할 때는 과학적 사기라고 한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피어 리뷰가 없는 웹사이트 ‘아카이브’(2023년 7월22일자)를 통해 발표한 임계온도 섭씨 127도(400K)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 ‘LK-99’ 개발 소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언론은 노벨상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수천 조 원에 달하는 상업적 가치를 추정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초전도체 관련주로 거명된 주식 묻지마 투자가 몰리며 폭주했다. 초전도체 관련주로 거명된 기업들이 초전도체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공시를 하지만 묻지마 상한가 행진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리이론센터(CMTC)가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다’고 발표(8월9일) 하면서 주가는 폭락했다. 이후 김인기 보나사피엔스 대표가 SNS를 통해 "LK-99는 상온 초전도체도 맞고 새로운 강자성체도 맞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관련주의 상한가 행렬이 이어졌다. 최근에 네이처(8월16일자)에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라는 확정적 표현의 기사가 나오자 다시 하한가를 쳤다. 부정적 기사와 긍정적 기사가 반복되면서 주가는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여기서 초전도체 개발 소식을 사기로 단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관계자들이 이 과정을 통해서 이득을 편취한 사실이 명확하다면 사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상온에서의 초전도체 개발은 과학기술계의 꿈이다. 1911년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카멜린 온네스 교수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은 이후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수많은 과학자가 밤낮으로 실험실을 지켜왔지만 모두 허사였다. 2019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미하일 에레메츠가 수소화 란타넘으로 영하 23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발표한 것이 상온에 가장 근접한 연구다. 연구는 무수한 실패 과정을 거치며 진보한다. 그래서 과학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할 때 과학계는 실패에 관용을 가진다. 연구 부정행위는 그 경중에 따라서 사기, 변조, 표절로 대별 된다. 사기는 명백하게 데이터를 날조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는 것이고 변조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문장이나 데이터를 적절한 인용처리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과학적 사기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오도와 편향, 그리고 의도적 왜곡이 있다. 골프에서 홀인원이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까운 것과 같이 과학도 필연보다는 우연에서 찾아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연구 전체가 가설검정처럼 정돈되고 엄정한 절차들에 따라 신중하게 기획되고 이뤄진 것처럼 편집된다. 편향의 문제는 과학자들의 문제보다는 연구비 지원자의 입김에 좌우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CA(Chemical Abstracts·화학 논문 요약)에 기술된 화학 논문의 80%가 기술된 대로 실험하면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사기보다는 지적재산권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이다. 식품의 경우 조리법을 곧이곧대로 공포하면, 바로 유사품이 출시되기 때문에 조리법을 약간 변조해서 발표하는 게 그 예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금까지 과학은 한 번도 진실인 적이 없었다. 모든 과학 이론은 후진 과학자에 의해서 부정된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부정됐다. 그러나 누구도 뉴턴의 사기성을 말하지 않는다. 뉴턴은 당시로 가장 과학적이었고,정직했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은 금전적 이득과 무관했다. 그러나 최근의 초전도체, 꿈의 신소재라고 하는 맥신 사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연구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식 시장에서 광풍을 일으키게 되면 과학의 사기성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 과학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에 상관없이 한국의 이름 없는 벤처가 초전도체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꿈과 열정 그리고 끈기에 주목한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해외직구의 허와 실

아주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홍콩의 백화점이 세일 기간에 맞춰 우리나라 주부들이 보따리 쇼핑을 위해 홍콩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부터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에 해외직구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60대 할머니도 해외직구를 배워 제품 구매에 나서고 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이같은 해외직구 특수룰 겨냥한 맞춤형 카드 상품 출시로 고객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가 소비 위축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해외 직구 시장은 여전히 ‘불황 무풍지대’다. 2013년 1조원 수준이던 해외직구 규모가 올해는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직구 방법은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통관 고유번호를 사용해 직접 구매하는 해외직접배송,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한 제품을 배송대행지(배대지)를 통해 국내 주소지로 배송 받는 해외배송대행, 그리고 최근 대세인 구매대행이 있다. 요즘 네이버, 쿠팡, 11번가 등 국내 온라인 쇼핑 업체들은 자사 사이트에 해외직구 상품을 올려 소비자가 결제만 하면 해외직구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명품 해외직구도 급성장해 올해 6월 전체 명품 매출중 해외직구 비중이 15%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해외직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 구매, 쇼핑 과정에서의 재미 등 복합적이다. 해외 직구는 유통경로가 길어 소비자 가격이 비싸지는 우리나라 유통산업 문제 해결과 지나치게 비싼 수입제품 가격 인하에 도움이 된다. 해외직구 시장의 성장과 함께 온라인 시장에서 해외직구를 둘러싼 국내 플랫폼 업체들의 경쟁이 날로 가열되고 있다. 로켓 해외직구 서비스, 3~5일의 빠른 배송, 편리한 통관절차 등을 내세우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는 국내 업체가 아마존과 연계해 대규모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가 하면, 해외 온라인 직구 플랫폼 업체들이 한국어 서비스는 물론 원화 표시, 한국어 상담 제공 등 한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전략으로 국내 소비자를 공략한다. 그러나 해외직구에는 ‘함정’도 많다. 제품자체는 가격이 싸지만 국제 배송비가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즉 국내 가격보다 비싸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해외 직구 제품중에는 우리 나라 소비자들의 체형과 선호 그리고 표시가 달라 구매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미국 신발의 경우 치수 표시가 우리와 다르고, 국내 소비자가 미국 신발 볼의 크기 표시, 바지 길이 및 통의 크기 등도 차이가 있어 제대로 맞는 제품을 구매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반품을 하려면 구입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한국 가격의 반값이라는 말에 가전제품을 구매할 경우 AS가 잘되지 않으며, 설치 비용을 별도로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110 볼트를 사용하는 국가의 가전제품을 해외 직구로 구매하면 곳곳에 전압기, 일명 ‘도란스’를 달고 살아야 한다. 해외 직구로 가전제품을 구매 한 후 수입업체로 AS를 요청하면 구매한 곳으로 문의하라는 답변이 오기도 한다는데, 독일어도 모르는데 독일 판매처에 문의할 수 있을까? 어떤 소비자는 부품만 주문할 수 있게 해 달라로 요청하는데 "회사 정책상 안 된다"는 답이 들려온다는 지적이다. 어린이 장난감, 스케이트보드, 와플기기 등 해외 인기 직구 제품 중에는 국내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제품이 종종 있다. 13세 이하 어린이용 제품의 경우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KC미인증 제품의 유통은 불법이다. 해외 직구 어린이용 제품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납, 카드뮴 등의 기준치가 초과 검출된 제품, 유아가 삼킬 위험이 있는 작은 부품들이 포함된 제품, 낙하시험 도중 파손돼 내구력이 기준치에 부적합한 제품도 발견된다. 전성분표시제를 지키지 않은 화장품 유통은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불법이다. 국내에서 의사 처방이나 약사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 국내에서는 위해 성분으로 취급되는 여러 성분들이 들어간 해외 직구 건강보조식품, 항우울제, 케톤뇨증치료제 등의 안전성 문제도 커지고 있다. 해외직구 증가와 함께 구매자의 개인통관 고유부호 도용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해외 직구에서 농수산물, 짝퉁, 장난감 총, 칼 등은 반입 불가이며, 6개를 넘긴 건강보조식품은 과세 또는 반품되며 배송비 포함 해외직구 액수가 15만원이 넘으면 과세 대상이 된다. 사업자가 실수요자인 것처럼 명의룰 도용해 면세로 통과 후 제품을 판매하면 밀수입에 해당하고, 특송물품을 원래 주소지가 아닌 곳에 배달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해외직구에 대한 맹종은 국내 제조산업과 유통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져 고용감소로 연결된다. 최근 해외직구 과소비를 빗대어 ‘예쓰(예쁜 쓰레기)’라는 신조어 마저 등장했다. ‘과유불급’(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이라는 말이 요즘 해외직구 광풍에 딱 맞는 말이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유럽과 중국의 경제 침체가 주는 교훈

최근 유럽과 중국의 경기 침체가 심상치 않다. 유럽의 경제부진은 영국, 독일과 같은 중추 국가의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EU탈퇴) 이후 경제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올해 1월 국제통화기금은 영국의 올해 GDP 증가율이 -0.6%로, G7 국가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은 다소 개선돼 -0.3%로 예상하지만 여전히 경치침체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생활도 덩달아 어려워지고 있다. 영국 가구의 40%가 생필품 구입비용이 부족하고, 24%는 전기비, 난방비 등을 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일부 기관에서는 이대로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2024년 에는 3000만 명의 영국인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기준 영국 인구가 6774만 명 정도이니 절반에 가까운 44%가 빈곤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독일도 최근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는다. 독일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에너지 소비가 많다. 독일은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2배 수준이다. 독일은 이런 전력다소비 산업구조를 외면한 채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를 장려했다. 그런데 태양광·풍력으로는 전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졌다. 우크라이나전쟁 이전에는 러시아에서 싼 천연가스를 수입해 에너지 수요를 충당했지만 전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막히자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는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결국 모자라는 전력을 이웃국가인 프랑스에서,그것도 원전에서 만든 전력을 구입하는 웃지못할 일이 빚어지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발 경제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GDP에서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그런데 경기 부진과 고금리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식으면서 그 동안 감추어져 있던 잠재적 부실이 수면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2021년 헝다 사태와 최근의 부동산개발 1위 업체인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위기 등 몇 몇 대형 부동산개발 업체의 위기가 중국경제 전체를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들 국가가 겪는 위기는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고금리, 전쟁, 코로나19 사태 등이 지목되지만 좀 더 파고들면 자유민주주의 부재와 시장경제 원리의 부정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의 경제위기는 브렉시트가 가장 큰 원인이다. 불법이민자를 막겠다는 이유로 다른 유럽 국가와의 자유로운 상품과 자본의 이동을 막아버린 것이다. 영국 국민들은 EU를 탈퇴해 불법 이민자를 막고 EU에 지불하는 분담금을 국내에 투자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무역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불법이민, EU 분담금 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영국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브렉시트의 대가는 자본의 해외 탈출, 수출 부진, 물가 상승 등으로 돌아왔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이전 친 러시아 정책을 펼쳐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높인 것이 패착이 됐다. 더구나 러시아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정책결정에서 자유민주주의적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 독일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중국도 공산당 일당 체제로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하고 기업을 정책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결정이 국가 경제의 침체를 불러온 근원이다. 영국, 독일, 중국의 사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은 정치적ㆍ철학적 관념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삶과 국가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은 우리가 소중이 지켜야 할 큰 자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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