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7일(금)
에너지경제 포토

정훈식

poongnue@ekn.kr

정훈식기자 기사모음




[이슈&인사이트] AI 춘추전국시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05 08:33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2023100601000166600008021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필자의 어렸을 적 바나나는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국민소득이 오르고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제는 마트에서도 국산 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값에 팔리지만 보드랍고 뽀얀 과육과 달콤하고 향긋한 향으로 인기가 많다. 이렇게 많이 재배되고 팔리는 바나나가 멸종 위기를 겪는다는 소식은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바나나는 캐번디시 품종인데, 무성생식을 통해 동일한 맛을 낸다고 한다. 결국 품질관리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 단일 품종이 재배되는 것이다. 그런데 1960년대 널리 재배됐던 그로미셸 종을 멸종시킬 뻔한 파나마병의 변종이 이번에는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유전적 단일성은 19세기 필록세라 진딧물로 멸종 위기에 처했던 와인 주조용 포도나무처럼 돌발적인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알파고’ 충격 이후 인공지능이 특정 영역이나 기능에서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 이후 오픈 AI에서 출시한 챗GPT는 인공지능이 단지 특정 영역만이 아니라 보편적 영역에서 인간처럼 혹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출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이후 개발된 GPT-4 모델은 글짓기 뿐 아니라 프로그램 코드를 작성하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이런 기반 모델(Foundation Model)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한다.

인공지능 진화하더라도 경제적 이유에서 단순한 기능과 능력치를 갖춘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 주목받고 있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 경쟁이 가열되면서 그만큼 인공지능 이용 비용도 저렴해져 더 발달된 인공지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인공지능의 성능만큼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의 다양성이 중요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업무 자동화의 기초가 되어 미래 시장을 주도할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많이 알려진 오픈AI의 GPT나 구글의 바드(Bard), 메타의 라마(LLAMA)와 이 보다 매개 변수를 줄인 소규모모델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의 엑사원 등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있는데, 오픈AI나 구글 등 글로벌 모델에 비해 학습한 한국어 데이터가 많아 한국어에 기반한 기능에 강점을 갖고 있다.

인간처럼 사고능력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가 나와도, 이미 경쟁의 선두에 서 있는 국가나 기업들이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선전이라는 의심을 사기도 하다.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기에 현재 주도권을 쥔 국가나 기업들이 그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후발 주자의 싹을 자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런 경쟁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가 소수의 인공지능 모델만을 사용했을 때의 잠재적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 회장은 최근 투자자들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네트워크의 상호 연결성이 증가된 상태에서 동일한 정보에 의존하게 돼 집단행동을 하면 금융의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소수의 인공지능 플랫폼이 금융을 지배하면 동일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는 인공지능이 대규모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선도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해 보유한 국가나 기업은 그 정보와 데이터가 핵심 자산인 국가기밀이나 영업비밀로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발된 수많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시스템은 내재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국제경쟁력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구축할 디지털 세계의 안전성을 위해서도 근시안적으로 해외의 인공지능 활용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다양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 수천 년간 인류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던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처럼 다양한 인공지능의 백가쟁명을 통해 안전성을 갖춘 미래의 세계를 꿈꿔 본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