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7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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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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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온플법, 서두를 일 아니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11 08:40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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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얼마 전 ‘글로벌 디지털 전쟁, 플랫폼 자율규제가 해법’이라는 글에서 "급변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모든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은 국내 플랫폼의 혁신 동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민간 주도의 플랫폼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하고 있으며 …"라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작 단계인 플랫폼 자율규제의 성공을 위해 법ㆍ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플랫폼 자율기구 설립ㆍ지원 근거와 참여 인센티브 등을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같은 자율규제방식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국내 빅테크 기업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미 8월 자율규제 방안 마련을 위한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공정위는 본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라는 단행법을 제정할 계획이었으나 근래에 입장을 바꿔 단행법 제정보다는 기존의 공정거래법 개정과 자율규제 제도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율규제에 초점을 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온플법은 유럽연합(EU)의 DSA(디지털서비스법)과 DMA(디지털시장법)과 유사한 규제방식을 취하기로 해 시장 관계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DSA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대형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사전규제 도입이 목적이고, DMA는 EU 단일 시장의 디지털 부분에서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거나 시장지배력보유가 예견되는 게이트 키퍼에 대한 사전규제 도입이 목적이다. 이처럼 DSA와 DMA는 사전규제방식을 취하는데, 온플법 역시 사전규제방식을 취할 예정이다.이에 업계에선 자율규제와 사전규제 원칙이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 내 독과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내 온플법의 도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EU의 DSAㆍDMA 도입 배경이 한국과 한참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EU는 EU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애플, 구글, MS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견제하고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DSA와 DMA를 제정한 것이지, 자국 기업을 규제하려는 목적에서 제정한 게 아니다. 이에 반해 온플법은 한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목적이다.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등 토종 자생 플랫폼이 자국 시장을 선점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들이 국내 시장을 독식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국제사회에서 한국 플랫폼 기업은 스타트업 수준이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온플법 제정은 플랫폼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악화시켜 국가 경제 성장을 발목잡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온라인 플랫폼 관련 글로벌 스탠다드가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온플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가뜩이나 온플법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 규제들은 이미 공정거래법, 대규모 유통법, 전기사업법 등 기존 법령으로도 충분히 제재가 가능해 이중규제 여지도 있다.

지금 이 순간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 소통, 검색, 쇼핑, 문화생활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슈퍼앱’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SNS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고,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보다가 인상 깊었던 OST를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바로 들을 수 있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사업 확장 목적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측면이 크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도 이같은 세계적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한 노력을 규제로 옭아매어 한국형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싹을 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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