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7일(금)
에너지경제 포토

정훈식

poongnue@ekn.kr

정훈식기자 기사모음




[이슈&인사이트] 한국 반도체 장비 유예는 윤 정부 외교 성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10 14:42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2023101101000369300018291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을 무기한 유예했다. 두 회사의 중국 내 반도체공장을 미국 수출관리 규정에 따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앞으로 별도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전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종전처럼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내 공장에 들여보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 쑤저우에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 다롄에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고, 자국우선주의의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 일련의 정책과 입법을 추진해 왔다. 특히 상무부는 안보 전략 차원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과 기술 절취 등을 막고자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18nm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 등을 초과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multinationals)이 소유한 경우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시 한미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중국에서 운영 중인 삼성반도체, SK하이닉스 반도체 등 한국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1년 동안 수출 통제 유예를 받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조치의 유예 연장을 호소해 왔고 한국 정부도 추가 연장을 목표로 협상을 벌여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출통제 유예 조치가 중국 내 공장의 안정적 운영을 좌우할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장비를 상시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장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반도체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걷히게됐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번 결정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며 "우리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 운영과 투자 관련 불확실성이 크게 완화됐고 장기적으로 차분하게 글로벌 경영 전략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중 대결 과정에서 굳어지고 있는 디커플링과 그에 따른 두 개의 공급망 체제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안보 전략의 중요한 과제다. 경제와 안보가 연결된 상황에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운명을 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벅차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생존과 대한민국의 안녕이 걸린 문제다. 정부가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치열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

이번 반도체 장비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은 정부의 전략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작년 바이든 대통령 방한, 올해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공급망과 수출 통제와 관련, 긴밀한 공조 의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왔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반도체 수출 통제 무기한 유예하는 결실을 보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다방면의 영역에서의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한국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인 만큼 치밀한 전략과 민관협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