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과 골드바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등 주요 기축통화 가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금·은·비트코인 등 대체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이른바 '디베이스먼트(통화 가치 하락) 트레이드'가 확산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정치 불안과 재정 우려가 고조되자 투자자들이 위험 회피(헤지) 차원에서 국가 리스크가 없는 자산으로 피신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 가치 반등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금과 비트코인 등 대체자산의 추가 상승 전망도 제기된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주요국들의 재정 불안이 커지면서 통화가치 하락에 대비하는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금, 은 등으로 몰리는 이른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국 정부가 급증하는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자 금과 비트코인 등의 투자매력도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날 국제 금 12월물 서물 가격은 온스당 3976.3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은 가격은 온스당 48.45달러로 신고가에 근접했다.
비트코인 시세 역시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한국시간 7일 오후 12시 25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12만4235달러를 기록 중이다. 이날 새벽엔 12만6000달러선을 잠시 돌파하기도 했다.
페퍼스톤그룹의 크리스 웨스턴 리서치 총괄은 “각국의 정치 상황이 금과 비트코인을 디베이스먼트 헤지 수단으로 매수할 명분을 준다"며 “지금은 완전히 모멘텀 트레이드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최근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집권 자민당 신임 총재에 선출되자 엔화 가치가 급락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전날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전장대비 2% 가까이 급등한 달러당 150.37엔에 거래를 마감했다. 엔화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을 돌파한 것은 지난 8월 1일 이후 처음이다.
'아베노믹스'를 지지해온 다카이치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을 억제하고 경기부양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란 전망이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달 열릴 일본은행(BOJ) 금융정책회의에서도 금리 인상 기대감이 낮아졌으며, 금과 비트코인은 엔화 기준으로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일본 엔화(사진=로이터/연합)
유로화 역시 달러 대비 0.6% 하락했다. 예산안 문제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임하면서 프랑스 정국이 혼란에 빠지면서다.
르코르뉘는 엘리자베트 보른, 가브리엘 아탈,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이루에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집권 2기의 5번째 총리였다. 특히 프랑스는 지난해 9월 아탈 총리 사임 이후 1년 사이에 4명의 총리를 맞을 정도로 정국 혼란이 극심하다.
프랑스 정계는 특히 예산안을 두고 좀처럼 타협하지 못하며 대치하고 있다. 바르니에와 바이루 등 두 전임 총리도 사실상 재정 계획을 둘러싼 갈등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프랑스는 2분기 말 기준 공공부채가 3조4163억유로(약 5630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6%에 달할 만큼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중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 높은 정부 부채 수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달러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들어 '블룸버그 달러 현물 지수'는 8% 가량 하락하면서 달러 대비 비트코인 가격이 약 30% 급등했다.
이런 와중에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중지) 장기화가 달러 가치에 하방 압박을 가하는 새로운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JP모건체이스의 미라 찬단 등 분석가들은 최근 보고서를 내고 “미국의 혼란 속에서 달러 가치가 대체자산 대비 절하되는 익숙한 패턴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며 “금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다른 귀금속도 전반적으로 양적완화 시기와 유사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 모멘텀 속에 금·비트코인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씨티그룹의 알렉스 사운더스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이 이제 디지털 금의 한 형태로 여겨지고 있다며 12개월 목표 가격을 18만1000달러로 제시했다.
글로벌 자산관리사 TCW 그룹에서 수석 글로벌 전략가로 지냈던 코말 스리쿠마르는 “현재는 어느 통화에도 피신할 곳이 없어 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며 “금값이 올 연말까지 4000달러를 넘어설 것이 확실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여러 통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선 달러 역시 안전자산으로서의 이점을 잃는다"며 “셧다운이 빠르게 해결되든 장기화하든 금값 상승세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