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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커지는 에너지 안보 위기, 내재적 리스크 최소화해야

2023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 국제적인 분쟁과 갈등이 심화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지난해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장기전으로 빠져 든 가운데 지난 10월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팔 전쟁이 터지면서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자원 부국인 러시아가 자국의 에너지를 무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은 크게 요동친 가운데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이 가장 큰 지역인 중동에서마저 전쟁이 발생하다 보니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이달 초에는 남미의 거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옆 나라인 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땅을 자국 영토에 편입하는 것을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 무려 90%가 넘는 지지를 획득했다면서 영유권을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가이아나는 2015년 에세퀴보 연안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이던 남미의 신흥 산유국이다.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이 14일 회담을 갖고 상대방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갈등 국면이 일시적으로나마 봉합되는 모양새이기는 하다. 그러나 유럽, 중동에 이어 남미에서까지 국가 간 갈등이 계속되고, 이런 갈등들이 직간접적으로 에너지 문제와 얽히게 되면서 최근 안정세로 접어든 국제 유가에 대해서도 상황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글로벌 정세가 이렇게까지 불안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리더십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쇠퇴하면서 미국이 주도해 오던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흔들리게 된 것을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더군다나 유엔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유엔 헌장을 위반하고 다른 주권국가의 영토를 침범한 행위는 유엔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글로벌 거버넌스 레짐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이렇다 할 리더십이 부재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요국들은 각자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정책은 물론 산업 및 금융정책까지 총동원해 경쟁적으로 자국의 기술과 산업을 보호하려 하고 있고,자원 보유국들은 자국의 자원과 에너지를 보호하려는 차원을 넘어서서 무기화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은 주지하다시피 국내에 부존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할 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과 이어지는 인프라가 부재해 물류를 전적으로 해상 수송에 의존하는 상황이어서 리스크 관리 차원에도 불리하다. 또한 수출에서 가공무역 비중이 큰 만큼, 원자재 수입이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출 역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는 구조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앞선 과제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EU(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사용을 극적으로 줄이면서 저탄소에너지원의 사용을 대폭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궁극적으로 에너지 안보에는 긍정적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들여와야 하는 핵심광물의 지리적 편재성을 생각할 때 석유·가스와는 또 다른 지정학적 경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것 역시 부담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Climate School의 제이슨 보르도프(Jason Bordoff) 교수와 부시 행정부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국가안보부 보좌관을 지낸 메건 오설리번(Meghan O‘sullivan)은 올 4월 Foreign Affairs誌 기고문을 통해 역사적으로 에너지 안보는 저렴한 가격에 충분한 공급이 가능한 상태로 정의되어 왔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의 개념을 다변화(diversification), 복원력(resilience), 통합(integration),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재정의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의 주장에 입각해 볼 때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는 에너지원을 최대한 다변화해 특정 에너지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복원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이런 목표를 지향하는 데 있어서 현재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분절된 거버넌스 체제와 경직된 에너지 시장 구조라 판단된다. 특히 한전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공기업들의 부채 수준은 국가 위험 부담을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다.2024년 새해 전망도 밝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가 안고 있는 내재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대외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복원력을 확보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기자의 눈] 中·日서 맥 못 추는 현대차,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유럽과 북미, 인도 등에서 들려온 현대자동차그룹의 활약 스토리는 눈부시다. 현대차그룹에 있어 2023년은 ‘역대 최다판매’, ‘올해의 차’ 등 믿기 힘든 성과를 달성했던 한 해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하듯 굴욕을 남긴 시장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시장에서의 스토리는 ‘생존기’에 가까울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분기 현대차 중국 판매(도매 기준)는 5만6000대로 전년대비 33.8% 감소했다. 현대차는 유럽, 한국, 북미 인도, 중남미 등 대부분 지역에서 판매가 늘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에선 판매량이 줄었다. 현대차·기아는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16년까지 현대차는 연간 판매량 100만대, 기아는 60만대 이상을 줄곧 유지하며 시장 입지를 다졌다. 2016년 현대차·기아는 중국에서 178만여대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3년 뒤인 2019년엔 90만대를 판매해 반토막이 났고 지난해엔 34만9000대까지 줄었다. 버티다 못한 현대차·기아는 현지 공장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극심한 판매부진에 빠져 다섯 개에 달했던 중국 공장을 두 개로 축소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 중국공장 가동률은 30%를 밑돌고 있다. 또 중국 내 판매 모델을 기존 13종에서 8종으로 줄였다. 기아 중국법인인 장쑤위에다기아는 두 번씩이나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현대차는 결국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 베이징 공장에서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의 중국 브랜드 수탁생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JAIA)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일본에서 518대(승용차 기준)를 판매했다. 지난해 등록된 전체 수입차 24만758대에서 점유율은 0.21%에 불과하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1~11월 누적 판매량은 41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461대) 대비 10%가량 감소했다. 현대차는 2001년 일본에 진출했지만 실적 부진을 겪고 2009년 8년 만에 현지시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13년 만인 지난해 2월 전기차 아이오닉5와 수소전기차 넥쏘 등 무공해 차량(ZEV)을 내세워 다시 일본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9월엔 경차 선호 특성을 고려해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 EV를 투입시켰다.이처럼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던 현대차·기아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동북아시아가 전기차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미래의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성과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일곱 번 도전한 끝에 롤드컵 우승을 거머쥔 ‘데프트’ 김혁규의 스토리가 내년 현대차·기아로 옮겨오길 바란다. kji01@ekn.kr김정인 산업부 기자

[이창호 칼럼] 전력산업기반기금은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한국전력 수행하던 전력사업 이외의 기능이 적지 않았다. 공익적 성격에서 단순 지원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에 달했다. 구조개편 이후에도 전력산업에서 발생하는 공익적 기능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 당시 한전의 ‘본업’인 전력사업과 관련이 없는 사업외적 비용을 합해 보니 대략 전기 판매수입의 4.6% 정도였고, 이것을 따로 분리해 조성한 것이 지금의 전력기금이다. 이미 구조개편을 시작한 미국 등에서도 공적기능이나 구조개편으로 인해 수반되는 비용조달을 위해 공공재부담금(Public Goods Charge) 또는 시스템편익부담금(System Benefit Charge)이라는 이름으로 조성해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에너지절약, 기술개발, 재생에너지, 저소득지원 등 공익적 용도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영국에서는 경쟁체제 도입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노후전원의 퇴출비용 즉, 좌초비용(stranded cost)에 주로 사용됐다. 기금의 용도는 국가마다 구조개편 당시의 여건과 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전력기금 규모는 설치 당시 1조원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기금부담율이 3.7%로 낮아졌음에도 2조 8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또 그동안 미사용 누적분이나 자금회수 등으로 지난해에는 기금편성 규모가 6조 5000억원에 달했다. 앞으로 계획안을 보더라도 매년 4조∼5조원의 기금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기금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적지 않은 전력기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고민과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기금이 조성되는 데도 여전히 쓸 곳은 많고, 기금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금 내역을 살펴보면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어떤 원칙과 기준에 의해 배분됐는 지도 도통 알아보기 어렵다. 전력기금 본래의 공적기능과 법적지원금은 물론, 여기저기 정책적 사업과 민원성 요구들이 쌓여가면서 수많은 사업들로 채워져 있다. 기금운영을 위해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겠지만, 이제는 기금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먼저 짚어 볼 것은 기금의 중요한 설치목적인 공익성이다. 사실 어떤 것이 공익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공익성의 개념부터가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시대적 상황이나 산업여건에 따라 공익성이 바뀔 수 있다. 기금조성 초기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국가재정이 담당하거나 전력수요를 유발한 사업자 비용이 전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아직도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발전소 주변지역지원은 법적 근거 때문에 지원하지만, 온전히 공익으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발전 및 송전사업자의 비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농어촌 지원이나 전기안전지원도 마찬가지다. 이렇다보니 사업자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나, 국가나 지자체의 기능에 해당하는 복지사업도 전력기금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전력기금이 생기면서 규모도 늘어나게 됐다. 지금은 대형 발전소 건설도 줄어들고 농어촌의 수요도 정체돼 단순지원금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단순 지원이나 정치적, 민원성 지원은 줄이거나 재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음으로 사업의 목적과 차별성 문제다. 기금 설계 당시에는 법적부담금, 연구개발, 수요관리, 신재생에너지 지원 등으로 분류체계와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연구개발비도 기술특성과 용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분해 관리했다. 그러나 근래들어 100여개에 달하는 사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름만 봐서는 사업간의 차별성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또 기반이나 지원이란 명분으로 이런저런 지원센터, 기반구축과 같은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난마처럼 어지럽게 걸쳐있는 사업들을 기준과 원칙에 맞춰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개발사업은 중복성도 심각하다. 국가가 관리하는 기금사업의 운영방식으로는 체계성과 시스템적 접근이 미흡해 보인다. 기금관리의 전문성과 객관성 확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력시장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시장실패에 따른 보완장치가 미흡하다. 전력산업은 시장과 정책여건에 따라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보완하는 것이 기금의 설치 목적중 하나다. 보급초기의 재생에너지나 분산전원, 에너지효율향상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특히 에너지효율향상은 고효율기기 설치나 효율기준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에너지절감, 전력설비 감소에 따른 편익이 설치자나 생산자에게 온전히 돌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합리적으로 보전해 주는 수단이 소위 ‘회피비용’이다. 전력기금 설치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시장실패의 보완이라는 점을 인식하다면 앞으로 이런 부분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한다. 아울러 구조개편의 취지에 따라 규제체계의 변동으로 발생하는 매몰비용이나 좌초비용의 반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업자 의사와 관계없이 발전소 수명을 감축하거나 운전을 제한한다면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규제가 강화되면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사업자에게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고 이는 기금의 용도에 부합된다.전력산업은 기본적으로 전기라는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유통하고 거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간접자본의 하나로 공익적인 속성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에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전력기금이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쌈짓돈’이 돼서는 안된다. 전력기금은 전력산업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활용돼야 한다.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EE칼럼] 원칙과 기다림의 미학

요즘 우리나라 에너지계는 다사다난하다. 우선 국내 기름 값은 국제유가의 하향안정 추세를 따르고 있다. 국제유가는 2년 가까운 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에도 지난 5개월 이래 최저 수준이다. 미국 서부텍사스(WTI)유는 한 때 배럴당 70달러 수준 아래로, 유럽 브렌트유는 70달러 중반 수준을 맴돌기도 했다. 소폭 상향추세로 유가 100달러 시대 걱정은 당분간 없는 것 같다. 이에 우리나라 주유소 휘발유가격도 전국평균으로 리터 당 1600원대, 경유는 1500원 대를 밑돌고 있다. 여기에다 전력도매가격의 하향 안정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LNG와 석탄 가격의 하락으로 지난 11월 한전의 전력도매가격(SMP)은 kWh당 122원으로 1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아직은 45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누적적자가 해결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와 경유·천연가스 유가연동보조금 지급을 연말까지 한시 연장했다. 이는 향후 국제유가 급등과 이로 인한 실물경제 및 금융·외환시장 등의 변동성에 사전대응하려는 거시경제 비상대책의 일환이다. 또한 지난 1일 시행된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에 대응해 우리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측정·보고·검증 컨설팅 등 대응역량 강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오랜만에 에너지 이슈가 거시경제정책의 중심과제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에너지부문 이슈는 지난 13일 두바이에서 끝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COP28)합의 도출이다.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들이 합의됐다. 지난 13일 2주간의 협상 끝에 어렵사리 ‘화석연료 퇴출(phase-out)’이라는 표현을 대신해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 away)’ 가속 개념을 선택한 것이 가장 눈에 뛴다. 이런 표현은 COP개최 28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문에 포함됐다. 당연히 최대 현안이자 쟁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과 석탄 화력발전 비중이 큰 인도 등의 반발과 ‘로비’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런 데도 두바이 총리인 COP의장은 이번 합의안이 "과학이 주도하는 성격을 가지고, 배출 문제를 해결하고 적응의 격차를 해소하는 균형 잡힌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오일 파워’의 영향일 게다. 그러나 여러 저개발국들, 특히 저지대 도서 국가들과 많은 기후 활동가들은 크게 미흡하다고 불만이다.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의 내밀한 퇴출 저지조항들이 곳곳에 있다고 비난한다. 특히 천연가스를 ‘전환 기반’ 에너지로 규정한 점은 새로운 논란거리다. 석유감축 - 가스증대라는 화석에너지 원별 구조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교묘한(?) 산유국 책임회피책이란다. 물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3배로 늘렸고, 배출가스 저감이 미비한(unabated) 석탄 화력발전을 ‘단계적 축소(phase down)’하는 데도 합의했다. 비록 만장일치 합의로 귀결되었지만 여러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화석연료 퇴출’조항이 유야무야하게 되고, 재생에너지 확충의 구체적 목표가 제시되지 않고, 석탄 화력발전에 대한 퇴출 의지를 담지 못한 것은 그 대표 사례다. 기후변화나 지속가능한 성장 등 인류 공동선(善)에 대한 유엔의 글로벌 합의(Consensus)체재의 붕괴라는 의견마저 나온다. 결국 세계 기후변화 대응은 이번 총회를 계기로 제기된 다음과 같은 학계의 지적에 대한 실행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가 지구온난화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모든 UN 체재 아래서 진행되는 각종 회의와 협약들이 파리협정에서 합의된 참여국 및 주체들의 ‘이행여부 점검(global stocktake:GST)’ 결과들이 화석연료의 점진적 감축과 궁극적 퇴출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장분석 원칙을 정립하고 관련 대책 실행과정에서 각별한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껏 에너지 공급부족을 우려하는 가운데 단기적인 공급여건 변화에 주로 관심을 집중해 왔다. 그렇지만 요즘 세계 에너지시장과 정책체계는 좀 더 장기적 수요와 시장변화에 더욱 주목하는 것 같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망 단절로 천연 가스를 필두로 모든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을 야기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지속되지만 이제는 그 전쟁으로 인한 공급 왜곡과 가격 급등은 거의 없다. 기름 값은 경기 흐름과 미국산 셰일오일 생산동향과 각국의 전략비축 수준 등이 주된 시장구성요소이며 정책결정인자가 되고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 등 OPEC+의 동시 다발적 원유감산에도 국제유가의 하락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나라는 석유파동 등 우리가 겪은 공급애로에 대응한 공기업 위주, 국가주도 에너지전략의 재편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간 미진했던 전력원가의 가격 반영을 공급원가 하향조정기인 지금 과감하게 처리하고, 그 다음에는 민영화된 독립적 전기위원회에 시장운영을 맡기는 것을 검토할 때이다. 정부주도 전력정책의 헛된 망상을 버리기에 딱 좋은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정부와 관련 공기업은 언제까지 정치권을 대신해 헛발질을 계속할 것인가?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기자의 눈] ‘진퇴양난’ 서울 부동산시장…이대로 괜찮은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불며 아파트값이 바닥을 다지고 상승세로 접어들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언론을 가득 채웠다. 해당 기간 서울 아파트값 및 각종 부동산 관련 수치들은 수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며 향후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이 지난 현재 서울 부동산 시장은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상황이며 내년 전망 또한 어둡기만 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2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3% 내려가면서 2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특히 서울 집값 상승세를 견인하던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는 모두 하락 전환했다.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 또한 전월 대비 0.08% 떨어지며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하락 전환했다. 실거래가 지수가 내렸다는 것은 최근 직전 거래가 보다 낮은 가격에 팔린 하락 거래가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수치를 반증하듯 서울 곳곳에서는 ‘억대’ 하락 거래가 속출하고 있으며,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이 2021년 최고가 대비 30% 이상 떨어진 아파트 단지들도 어렵지 않게 목격되고 있다. 거래량 또한 급감했다.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313건으로 지난 1월(1412건) 이후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더해 매매수급지수가 하락하고 아파트 매물이 급증하는 등 각종 관련 수치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어두운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약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집값 상승에 대한 수요자들의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지며 제 2의 ‘거래절벽’ 사태가 올 것이고,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2차 하락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금리 등 근본적인 불안 요소가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 또한 이와 동시에 수요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앞서 정부가 1·3대책을 통해 한 차례 부동산 시장 위기를 극복했듯이, 내년에도 집 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되살릴 수 있는 묘수를 고안해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증명사진

[EE칼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결과와 과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예정보다 하루를 더 넘기며 지난 13일 폐막됐다. 이번 COP28에는 198개 회원국은 물론 국제기구, 산업계, 시민사회에서 8만 7000여명이 참석하며 역대급 규모를 기록했다.이번 COP28은 파리협정의 이행을 5년마다 점검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 (GST)의 첫 회의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행중심의 파리협정 체제 아래서 이번 GST의 결과에 따라서는 향후 유엔 기후변화협약 체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 평균 온도 1.5도 상승 억제를 위해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에 대해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석연료 퇴출과 같은 좀 더 명확한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 사회의 모든 국가들이 화석연료 기반 국가별 에너지 체계를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재생에너지의 3배 확충과 에너지 효율 2배 증가와 함께 원자력, 탄소 포집 활용 저장(CCUS) 등 다양한 기술의 활용에 합의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국제사회의 합의를 바탕으로 2025년에 제출할 제2차 국가적 기여(NDC)에 더욱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 방안과 함께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방안을 담을 수 있도록 이제부터 바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파리협정 제6조에 관한 논의도 우리나라의 국외감축 목표 달성 차원에서는 중요하다. 파리협정 제6조의 이행을 위한 기술적 세부지침 마련을 논의한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는 합의된 전자적 양식 등 기술적 사항에 대해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협상 지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외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소위 국제감축사업이 대규모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협상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대규모 국외감축 활동 개발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대응이 필요하다. 산림, 해양,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단위가 아닌 국가나 준 국가 수준의 개도국은 물론 협력이 가능한 선진국과도 적극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국외감축 결과(ITMO)의 국내 이전 후에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비용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서도 필요한 국내 법제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COP28에서 논의된 재원 관련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파리협정에서는 개도국 기후재원 문제에 초점이 주어져 있는데, 이번 COP28에서는 최빈 개도국, 군서도서국가 등 기후변화 취약국의 지원에 초점이 있는 손실과 피해 기금(Loss and Damage Fund)을 지난해 설립에 합의한지 1년 만에 공식 재원기구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데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개최국인 UAE가 1억달러 공여를 약속하고 독일,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도 재원 공여에 동참함으로써 기금의 실질적인 이행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한편으로 2025년까지 1000억달러 기후재원 조성 목표를 조기 달성함에 따라서 2025년 이후 추가 기후재원 목표 달성을 위한 논의에 착수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대규모 국외감축을 추진하는 과정에 필요한 재원의 활용 차원, 그린 ODA의 획기적인 확충 추진, 대표적 기후재원 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본부 유치국 등의 맥락에서 앞으로 기후재원 논의에서 더욱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야한다. 인도태평양 전략 등 다양한 지역 외교전략과 연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구체적인 협상 전략의 마련이 필요하다. 향후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의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활동을 세계 표준화하면서 중요한 이슈별로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협상 대표단의 활동이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대표단의 운영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CSDLAP 소장

[이슈&인사이트] 관료ㆍ법조계가 대세인 사외이사 市場

매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오기 전에 항상 사외이사 장(場)이 선다. 올해 10월 말 현재 대기업 집단 상장사 전체 사외이사 1111명 중 내년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인원은 전체의 39.4%(438명)에 달한다. 그런데 기업은 사외이사를 어디서 찾을까?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지난달 ‘대기업집단 상장사 사외이사 10명 중 3명이 관료ㆍ법조 출신’이라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이 자료를 통해 사외이사 시장은 관료ㆍ법조계 인사가 대세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대기업집단 상장사 전체 사외이사 1111명 중 34.8%인 387명이 관료ㆍ법조 출신으로 조사됐다. 호반건설, 장금상선, 고려에이치씨, 반도홀딩스 등 4개 기업집단은 사외이사 전원을 전직 관료와 법조인으로 꾸렸다고 한다. 동원(71.4%), 신세계(69.6%), 중흥건설(66.7%), 삼표(66.7%), 삼천리(60.0%) 등 5개 그룹은 공무원과 법조인 비중이 60%를 넘는다. 관료·법조계 사외이사 비중이 50% 이상인 그룹은 17곳에 달한다. 관료 출신 사외이사 중에서는 국세청 출신이 48명(21.3%)으로 가장 많고, 공정거래위원회 25명(11.1%), 산업통상자원부 20명(8.9%), 기획재정부 16명(7.1%), 금융감독원 14명(6.2%), 금융위원회 12명(5.3%), 감사원 10명(4.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필자가 여러 기업인들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이처럼 관료 출신이 사외이사로 선호되는 까닭은 기업에서 고위직 직업 공무원의 쓸모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런 세무조사가 들이닥치면 참으로 곤혹스러운데 국세청 출신이 앞장서 해결해 주거나 조언을 해준다면 기업과 기업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 외에 젊어서 행정고시 등을 통해 바로 중견 공무원으로 임명된 후 정부 각 부처를 두루 거치면서 실력과 인맥을 쌓은 차관과 국장 등 고위 공무원은 기업의 대관업무에 적격일 것이다. 혹시나 기업이 공정위와 트러블이 있거나, 금융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 있는 경우라면 그 분야에 오래 종사했던 고위 공무원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고 잡으려 할텐데, 회사의 녹을 먹는 임원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경우는 다르다고 한다. 장관과 같이 정치인 어공은 한국에서는 장관 재직 기간이 워낙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짧은 기간 내에 인맥 구축도 어렵고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교체되기 때문에 늘공(늘 공무원을 했던 분)보다 쓸모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한다. 장관 출신이 사외이사가 된 경우는 인품과 식견이 훌륭한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법조계 인사가 많은 것은 기업인들은 언제든지 갑자기 수사를 받거나 기소 또는 구속 등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것은 한국의 엄격한 배임죄 또는 업무상 배임죄 때문인데 이 배임죄라는 것이 아주 고약해서 업무처리가 조금만 잘못되어 회사가 손해를 입으면 민사적 손해배상청구와 형사적 고발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발은 주주, 직원, 거래처 등 누구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돼 형사사고 발생 가능성은 몇 배나 높아졌다. 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회사 임원으로서는 전직 판ㆍ검사나 현직 변호사의 법적 조언은 매우 유익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현실이 이렇다. 그러므로 기업인들은 관료와 법조 위 두 직군에서 사외이사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CEO 스코어’의 분석에 따른 경험적이고 현실적 조언이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데스크 칼럼]

상생이라는 채찍으로 금융사들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금융당국의 행태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당국의 메시지는 또렷하고 분명하다. 고금리, 고물가 등으로 서민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만큼 금융사들이 나서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이자부담을 낮추기 위한 충분한 수준의 지원방안을 내놓으라는 게 요지다. 상생금융은 금융사들의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여야 한다는데 방점이 찍혔다.과거에도 오늘날에도 금융당국 주문의 첫번째 타깃인 시중은행들은 국민이 아닌 ‘당국’이 납득할 만한 상생금융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 의중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 말 기준 금리가 5%를 초과하는 기업대출을 보유한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내년 중 납부할 이자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이자 캐시백’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대략적인 윤곽만 나왔을 뿐이다. 다만 2조원에 달하는 캐시백을 은행들이 어떤 기준으로 분담할지에 대해서는 3차례에 걸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8개 은행 가운데 당기순이익, 개인사업자 대출 비중 등 어느 조건을 적용해도 특정 은행들의 부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경제 위기 속 심기일전의 각오로 내년도 사업계획 마련에 분주한 은행권이 상생금융 강화 방안에만 힘을 쏟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국의 압박이 1차 원인이다. 그리고 당국이 은행권을 향해 상생금융을 내놓으라고 채찍질하는 뒷배경에는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버티고 있다. 금융당국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추진하는 횡재세 법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그으면서도 횡재세에 버금가는 상생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상생금융이나 횡재세나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당국이 상생금융이 아닌 횡재세를 들이댄다고 해도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는 은행권의 행보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총선, 대선만 다가오면 마치 은행을 자신의 호주머니 다루듯이 휘어잡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동은 분명 불편하다. 은행권을 향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업 모델을 요구하면서도, 그런 은행을 대하는 이들의 인식은 구태의연하고 고루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일부에서는 은행들이 사회공헌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 중 하나로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 은행들이 공적자금을 투입받아 위기를 극복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은행들이 어려울 때 국민의 도움을 받아 되살아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은혜를 갚으라는 취지다.‘천수답식 경영’도 당국이 은행을 휘어잡는 무기 중 하나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에 이자를 붙여 다른 고객들에게 대출해주는 은행의 사업구조가 특권이자 특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은행, 증권사처럼 입출금 계좌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업’을 허용해달라고 수년째 건의 중인 것을 보면, 은행의 여수신 기능은 다른 업권도 탐낼 만한 특수한 사업구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신사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금융정책당국이 은행의 사업 구조를 인질 삼아 소상공인 지원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하는 행보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은행권을 향해 지원책을 요구하는 당국의 행보와 이에 복종하는 은행권의 모습이 미래에도 고착화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금융당국의 방침이라면 작은 손짓이라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현 은행의 모습이다. 당국의 회초리에 의구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금융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당국이 치(治)를 가동해서 하느냐,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하느냐 등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지난달 20일 금융지주사와 만난 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무너지는 상태에서는 은행 산업에도 미래가 없다. 지속 가능한 영업의 관점에서 봐도 이들의 이자비용을 낮춰주는 게 필요하다"고 발언한 점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관치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금융사의 사회공헌을 정부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노력은 분명 근절돼야 한다. 동시에 은행들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자발적으로 사회공헌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살고 은행도 살 수 있는 길이다.mediasong@ekn.kr

[기자의 눈] 공매도 제도 수백 번 고친다 한들

[에너지경제신문 성우창 기자] 지난 4일 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종 증권 유관기관이 공동 주최한 ‘공매도 제도개선 토론회’가 중계됐다. 공매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안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개편에 앞서 투자자들의 이해를 얻고 부정적인 여론을 달래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이다.공매도 제도 개선안은 △중도 상환 요구가 있는 기관의 대차 거래 상환기간을 개인의 대주 서비스와 똑같이 90일로 하고 연장 가능하도록 하고 △개인의 대주담보비율(현행 120%)을 기관과 외국인의 대차와 동일하게 105%로 낮추는 방안으로 구성됐다.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보였지만, 취재를 위해 현장에 있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개편을 위한 개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실상 개선 없이 현행 제도대로 한다고 해도 큰 변화가 없는 부분들이었으며, 실제로 유튜브 실시간 채팅창에서의 반응도 최악에 가까웠다.공매도를 비판하던 개인투자자들은,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던 공매도가 존재하는 한 주가 하락의 원인을 공매도에 돌릴 것이다. 실제로 ‘공매도 반대론자’들이 요구했던 사항들은 글로벌 스탠다드나 현실성에서 크게 벗어나 제도에 반영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게다가 이 토론회에서는 박순혁 작가와 함께 공매도 폐지를 주창하던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가 불참해 ‘투자자들에 대한 설득’이라는 취지가 빛이 바랬다. 유튜브를 시청하던 투자자들도 제도에 대한 이해보다는 토론회 참가자들을 ‘카르텔’로 규정하며 원색적 비난을 쏟는 데 열중할 뿐이었다.당국은 이제 의미없는 제도 개선보다는 투자자들이 왜 공매도를 비판하는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다 효과적인 설득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로 보인다. 최근 유관기관 측은 지난번 토론회가 다소 부족했다고 판단했는지 조만간 박순혁 작가 등이 참여하는 새 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여론이 조금이나마 이성적으로 바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suc@ekn.kr

[EE칼럼] 미국 전기차 판매 100만대 돌파의 ‘빛과 그림자’

미국의 전기차 판매 대수가 올해 10월 말 기준 120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EV Adoption에서 예측한 올해 연간 판매 대수인 115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유럽자동차공업협회가 발표한 8월 말 기준 유럽전체 전기차 판매대수인 128만4920대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이 고속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전 세계시장에서 미국의 비중도 가늠해 볼 수 있다. 미국이 완전 전기자동차 누적 판매 100만대를 기록하는 데는 2011년 1·4분기부터 2020년 3·4분기까지 약 10년이 걸렸고, 200만대에 도달하는데도 2020년 4·4분기부터 2022년 2·4분기까지 약 2년이 소요됐다. 300만대 돌파까지는 2022년 3·4분기부터 2023년 3·4분기까지 1년 남짓이 걸렸다. 이를 감안할 때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동력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과 테슬라(Tesla)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회사들의 시장확보 노력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르게 ‘세계 기후변화에 따른 친환경 자동차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전기차 구매 지원금, 세금감면, 전기차 충전기 설치 지원금 등 정책자금을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전기차 보급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충전설비다. 충전설비가 촘촘하게 설치될수록 전기차 충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전기차 구매력이 상승한다. 올해 11월 말 현재 미국정부, 주정부, 전기회사 등에서 전기차 충전설비 지원금 규모가 615억달러(약 80조원)를 넘는다. 미국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른바 ‘Green 뉴딜’ 정책을 펼치고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 시장에서 세계 맹주자리를 굳히려 하고 있다. 그리고 Tesla를 중심으로 자동차 회사들이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시장에 선보이는 가운데 중가모델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올해 11월 말 기준 미국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전기차 모델은 배터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합쳐 83종에 달한다. 과거 데이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새 모델이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전기차 신차 구매에 지불된 평균가격은 16% 줄었다. 전기차 신차 가격은 2022년 6월에 정점을 찍은 후 올해 현재까지 6000달러 이상 하락했다. 여기에다 정부가 최대 7000달러까지 전기차 구매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을 전기차가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정적인 소식들도 나온다. 전기차 수요가 하락세로 전환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전기차 회사들이 투자를 철회하거나 연기한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 전기차 시장에 먹구름이 끼는 것일까? 미국의 올해 분기별 전기차 판매 증가율을 살펴보자.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1·4분기 55%, 2·4분기 57%, 3·4분기는 63% 성장하면서 성장폭을 키웠다. 이 수치만으로 보면 미국 전기차 시장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른 전기차 회사들의 투자 철회 및 연기 결정 소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소식의 진원은 바로 GM과 Ford다. 그렇다면 왜 이 두 회사가 전기차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 철회를 하거나 연기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이 두 회사가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목표로 한 시장 점유율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를 낸 것이 주요인으로 보인다. 앞서 보았듯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Tesla 대비 가격 등의 경쟁력이 없다 보니 두 회사의 시장 확보에 최소한 노란 불이 켜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 최근의 고금리 정책으로 고객의 구매력이 약화돼 성장률이 지금보다는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은 큰 빛이 비치는 상태에서 조그마한 그림자가 비치는 상황으로 보인다.조셉 김(Joseph KIM) 한미에너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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