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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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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자원안보의 시작과 끝은 해외자원개발 정상화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31 08:31

신현돈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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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돈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중국 사서중 하나인 대학에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 지소선후 즉근도의(知所先後 則近道矣)’라는 말이 있다. 사물이나 일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봐서는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발생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그 결과를 예측하고 일의 순서를 정해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의 에너지자원 공급문제는 10년 전에 이미 사전 준비를 마쳤어야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에너지자원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면 이미 늦어서 당장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원전건설을 계획한다고 해도 전력 공급은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가능하다. 땅 위에 건설하는 발전소의 경우에는 불확실성이 작아 계획하에 실행하고 관리통제가 가능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땅속에 부존하는 에너지자원은 자원을 찾아서 개발하고 생산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크다는 특성이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해외자원개발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이런 에너지자원개발의 특성인 고위험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 자원, 시간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정부 주도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던 해외자원개발사업은 2012년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치되고 외면받아 왔다. 그러는 사이에 자원가격의 하락 시기와 맞물려 자원공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져 자본잠식에 빠지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와 자원공기업은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인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도 했지만 한마디로 ‘자금 투입 없는 공짜 구조조정’만 외치다가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허송세월을 한 셈이 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자원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자 우리나라도 국가자원안보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우여곡절 끝에 자원안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국가자원안보 시스템의 큰 틀이 마련됐다.

93% 이상의 에너지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매년 정부예산의 20%가 넘는 막대한 돈을 에너지자원 수입에 쓰고 있는 한국에게 자원안보는 경제안보를 넘어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 이 자원안보의 핵심은 성공적인 해외자원개발에 있다. 이것이 해외자원개발의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이 자원안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시에 강구해야 한다. 국내에서 필요한 자원의 충분한 양을 항시 도입할 수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고, 외부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한 국제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충분한 비축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에너지자원의 국내 비축을 위해서는 충분한 비축 장소도 필요하고 비축자원에 대한 재고관리도 필수적이다. 또 풍력·이차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산업의 확대로 인해 필요한 자원의 종류가 늘어나고,비축량 규모가 증가할수록 많은 자금도 필요하다.

국내 비축은 자원의 종류에 따라 2주~2개월 정도의 단기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장기적 대응은 어렵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해외자원개발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확보한 광구의 매장량은 개발 후 20~30년에 걸쳐 장기간 생산이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 비축시설과 관리를 염려할 필요가 없는 저비용 천연비축기지의 역할을 한다. 제대로 된 해외자원개발은 경제적인 이익은 물론이고 국가자원안보를 위한 든든한 비축기지 역할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이 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경험했듯이 단순히 전쟁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의 에너지자원 공급망 문제가 됐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을 중심으로 지구상에는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고 있고, 세계 경제는 점점 구역화되고 있어 언제라도 에너지자원 공급망 위기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러기에 에너지자원 공급망에 대한 지속 가능한 장기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국가자원안보의 파수꾼인 자원공기업에 대한 죽이는 축소형 구조조정이 아닌, 살리는 확장형 구조조정을 실행해 국가자원안보의 시작과 끝인 해외자원개발을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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