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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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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유승민 활용법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31 08:02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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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필자는 에너지경제신문에 ‘한동훈 활용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는 정치를 시작하기 직전의 한동훈을 비대위원장이나 선대위원장 등의 직으로 영입하자는 의견이 분분한 때였다. 이 칼럼에서 한동훈의 가장 적절한 활용법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에 전략공천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에 부적절하거나 그 역할을 잘못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여기서 장황하게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용산(대통령실)과의 거리두기와 수도권 판세에의 영향, 그리고 실질적인 비대위원장 혹은 선대위원장으로서의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이재명 대표를 지역구에 묶어두고 그의 사법리스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바로 이재명 대표와 맞대결을 시키는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칼럼에는 쓰지 않았지만 만일 한동훈을 인천 계양을 지역에 공천한다면 누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당시 이 질문을 한 여권 인사 중 한 사람에게 사견임을 전제로 내 의견을 밝힌 바 있었는데, 비대위원장직은 유승민 전 의원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유승민은 보수적이며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젊은 세대와 여성들에게 지지도가 높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는데 내부경선 과정에서 당시 당선인 측에서 김은혜 인수위 대변인을 밀면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것이 공정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본선에서 민주당의 김동연 후보에게 패함으로써 국민의힘은 수도권 중 경기도의 지방권력을 잃었다.

이것은 단순히 경기도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서울과 인천을 이겼는데, 경기도에서 패배함으로써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을 잃었을 뿐 아니라 바로 전 도지사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각종 의혹을 입증할 증거자료가 묻혀버렸다. 또 보수정당의 내부 분열이 탄핵의 강을 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앞세워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그다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시작된 첫 사례였다는 점이다.

물론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는 크게 갈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정에서의 행보만이 아니라 이후 정치과정에서 현재의 국민의힘 주류와 많은 갈등을 일으켰고, 지금도 직설적 비판으로 윤석열 정부를 곤란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그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무엇보다 보수통합을 이룰 수 있고, 당시 탈당을 저울질하던 이준석을 주저앉힐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여당 정치인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한 마디로 ‘불가능’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 나는 정치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이고,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개딸 중심의 독재가 극심해지는 민주당과 용산 리스크 및 적어도 당시까지 리더십 부재로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총선에서의 필승카드는 보수통합 외에는 없고 이를 수행할 현실적 대안은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현재,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나름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만 명품 백 소동으로 인한 용산발 리스크는 여전하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준석은 개혁신당을 창당해 중도층 공략에 나섰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러브콜에 유승민 전 의원은 "탈당은 없다", "공천신청도 없다"고 답했는데, "출마는 없다‘가 아니라 ’공천신청은 없다‘는 것은 스스로 국민의힘 승리에 힘을 보탤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수도권 승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유승민 전 의원을 적어도 수도권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서울이나 수도권의 민주당 거물 정치인 지역에 전략공천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길만이 이준석 신당으로 쏠리는 중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국민의힘 인사들은 유승민의 복귀에 부정적이고 일부 보수적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 사정이 과거의 관계나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따질 만큼 여유롭지 않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이 선거에 승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는 물론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식물정부 상태로 전쟁과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한 국제관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는가.

법안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지나갈 5년을 생각하면 AI 시대 국가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도 꿈에 불과할 뿐이다.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든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지금 쏟아내는 수많은 포퓰리즘적 지원 정책도 백약이 무효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4·10 총선에서 질 때, 비로소 최악의 상황은 현실화될 것이다. 늦었지만 이길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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