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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UAE 컨센서스’와 한국이 할 일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합의가 이뤄졌다. 무엇보다 참가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최종합의문 ‘UAE 합의(UAE Consensus)’다. 여기에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에너지효율 2배 향상 등 목표설정과 ‘탈화석연료 전환’ 등의 내용이 명시됐다.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을 위해 화석연료의 ‘단계적 축소(phase down)’를 가속화한다는 합의도 이뤄졌다. 전 지구적 이행점검(GST·Global Stocktake) 결과가 예정대로 제시된 점도 큰 성과다. 2016년 말 발효되고 2021년부터 적용된 파리협정은 가맹국들에 대해 5년마다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기초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GST다. 이번 첫 번째 GST 결과에 따르면 완화(mitigation)의 경우 각국이 파리협정 후 상향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파리협정 목표 달성에는 불충분하며, 1.5도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2035년까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60% 감축해야 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화석연료로부터의 탈피, 메탄 등 이산화탄소 외의 온실가스 감축 등이 요구된다고 지적됐다. GST는 세계적 차원의 진척 상황을 평가하는 것으로, 개별국가의 목표설정이나 진척 상황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이번 GST 결과를 토대로 향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떻게 수정할까 하는 것은 각국의 재량이며, 각국이 2025년까지 제출하는 갱신된 NDC(2035년 목표)에 이번 결과가 어느 정도 반영될지, 또한 1.5도에 부합하는 목표설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 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불투명하다. 적응(adaptation)과 관련해서는 개도국에 대한 자금지원, 재해방지 기술 공여 및 인재육성 등 다각적인 지원 강화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기후변화에 강한 물과 식료 등의 공급망 구축, 건강 피해에 대한 대응 강화 등도 요구됐다. 한편 국제이니셔티브의 하나로서 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은 원자력발전 설비용량을 2050년까지 3배로 늘리는데도 합의했다. 이들 국가는 소형모듈형 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자로 뿐만 아니라 수소나 합성연료 생산 등과 같이 탈 탄소화를 위해 산업 부문에서 원자력을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원자로 개발 및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등 주요 5개국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제 원자력 에너지 공급망 구축을 위해 42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이들 국가는 정부 주도 투자를 통해 향후 3년간 우라늄 농축 및 전환 용량을 강화하고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탄력적인 국제 우라늄 공급 시장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COP28 성과에서 미흡한 부분도 있다. 석탄화력발전의 삭감 시기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고, 석유에 대해서도 산유국의 영향력이 작용해 합의문 문구에서 명시적인 언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손실과 손해(loss & damage) 기금의 신설은 결정됐으나 기금 출연 규모는 약 8억달러에 그쳤고, 적응이나 완화에 관한 개도국 지금지원에 대해서도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COP28의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도 많은 과제를 안았다. 먼저 온실가스 감축 노력 배가와 함께 NDC 목표 상향을 위한 에너지믹스 재정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7억2700만톤을 정점으로 2022년에 6억 5500만톤으로 줄었다. 하지만 2030년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인 4억3660만톤으로 배출량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2035년 감축 목표가 더욱 상향되면 목표 달성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에너지효율을 높여 배출원단위(GDP 당 배출량)를 낮추면서 탄소배출계수가 낮은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배출원단위는 1993년에 GDP 10억원당 663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에는 357톤까지 낮아졌다. 배출원단위를 더 낮추기 위해 산업, 수송, 건물 등의 분야에서 전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전기화(electrisification)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 전원믹스의 탈 탄소화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전력부문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2018년 36.9%에서 2022년 32.7%로 크게 낮아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자력 발전량이 늘면서 배출비중이 떨어졌다. 하지만 전력 부문은 여전히 국내 핵심 배출 부문으로 감축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무탄소에너지 발전 확대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기여도를 더 높여야 한다. 주요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원전 설비용량을 확대하자는 데 합의한 만큼 우리도 원전 활용도를 더 높여야 한다.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의 계속운전과 이용률 향상, 신규 설비 건설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균형을 이루도록하고 수소·암모니아, CCUS(탄소 포집·이용·저장) 등 여타 무탄소에너지와의 적절한 조합도 필요하다. 국내 노력과 별도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기후변동에 취약한 개도국에 대한 자금 지원, 재해 방지 기술 공여, 인재육성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기자수첩] 車산업 판도는 소프트웨어가 바꾼다

[라스베이거스(미국)=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고틀립 다임러와 칼 벤츠가 내연기관차를 발명한지 138년이 흘렀다.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방식으로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연 게 110년 전이다. 기업들은 피 튀기는 경쟁을 펼치며 제품 품질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도로 상황 한계 탓에 자동차 성능을 개선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룡’처럼 성장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계속해서 시장 판도를 바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내연기관차 승차감·연비 경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전기차라는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지만 연료가 휘발유에서 전기로 바뀔 뿐이다. 업체 간 기술 격차는 의미 없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 Software-Defined Vehicle)이 주목받고 있다. 소프트웨어(SW)가 시장을 완전히 뒤흔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SDV는 주로 일반 휴대폰이 스마트폰까지 진화하는 과정으로 비유된다. 예전에는 전화(이동)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만들고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제조사는 차를 팔고 난 뒤에도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주요 업체들은 이미 사활을 걸었다. 폭스바겐그룹은 SW 자회사 ‘카리아드’를 설립하고 내년까지 4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토요타 역시 우븐플래닛홀딩스를 세워 ‘아레나’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자체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동시에 매년 5000명 이상 SW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예 새로운 플랫폼인 ‘MMA’를 준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포티투닷(42dot) 인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달 중 대규모 조직개편을 예고한 상태다. 이들의 목표는 ‘자동차 업계 iOS’ 또는 ‘자동차 업계 안드로이드’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부품 업체인 보쉬, 콘티넨탈 등도 SDV 관련 연구개발(R&D)에 수조원을 쏟고 있는 이유다. 포드 등 투자 여력이 없는 회사나 개발이 늦어진 브랜드는 경쟁사가 만든 OS를 돈 내고 써야 할 수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가올 SDV 경쟁에 비하면 전기차 전환은 신경 쓸 부분도 아니다. 전동화 기술은 추격이 가능하지만 SW 분야는 승자독식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SDV는 자율주행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 간 SDV 전쟁 ‘1차전’ 승패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CES 2024’에서 가려진다. 대부분 업체들이 저마다 청사진만 제시했을 뿐 SDV와 이를 운영할 OS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한 상태다. 이미 현장에서는 다른 회사의 기술력 수준을 확인하려는 첩보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번씩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아간다. 앞으로는 SDV에서 배터리를 최적화하는 앱을 사용하고, 승차감을 올려주는 업데이트를 받을 것이다. SW는 분명 자동차 산업 판도를 바꾼다. 전세계를 호령하던 휴대폰 기업들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뒤 몰락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yes@ekn.kr여헌우 산업부 기자

[EE칼럼] 한국만 비껴간 태양광 혁명

필자는 지난해 2월 에너지경제신문에 ‘태양광 300GW 시대’ 칼럼을 썼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2022년 하반기 태양광산업 동향’ 보고서를 근거로 2023년 전 세계 태양광 발전설비 설치 용량을 2022년 대비 20% 성장한 320GW로 예상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제 앞자리 숫자를 ‘4’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2023년 글로벌 재생에너지 분야는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재생에너지 혁명, 특히 태양광 메가 붐은 지속됐다. BloombergNEF에 따르면 풍력 발전의 경우 인플레이션과 높은 이자율, 공급망 압박이라는 어려움 속에 2022년보다 약 18% 성장한 100GW가 신규 설치될 것으로 예측된 데 비해 태양광 발전은 413GW로 64%가 성장할 것으로 봤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전용 원자로 정보 시스템(PRIS)의 지난해 12월 접속기준으로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원자로가 412기이고 용량은 370.17GW인 점을 감안하면 태양광이 얼마나 많은 용량을 한해에 설치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의 가장 큰 시장은 중국이다. 중국은 국가에너지청(NEA)에서 매달 20일 전후로 전월까지의 발전설비 용량 통계를 발표하는 데 매달 발표 때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까지의 신규 태양광 설치 용량이 165GW에 달한다. 이는 2023년 중국 국가 목표치(100GW)를 11개월만에 65% 초과 달성한 것이다.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2022년 설치 용량(86.1GW)의 192%에 해당한다. 중국은 매년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엄청난 용량의 발전설비를 건설하고 있다. 역시 11월까지의 신규 발전설비 용량은 우리나라 12월 기준 전체 발전설비용량(144GW)의 두 배가 넘는 289GW 달한다. 이 가운데 태양광이 165GW로 절반이 넘는 57%에 달하고 풍력 47.5GW(16.4%), 화력 46.4GW(16.1%), 수력 7.8GW(2.7%), 핵 발전 1.2GW(0.4%) 순이다. 신규 발전설비 용량 중 태양광이 차지하는 비율도 2021년 30%에서 2022년 46%, 2023년에는 57%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유럽연합(EU)은 2022년 40GW에서 지난해 40% 증가한 55.9GW, 미국은 21GW에서 55% 증가한 33.0GW, 독일은 7.4GW에서 90% 증가한 14.1GW, 이탈리아는 2.5GW에서 96% 증가한 4.9GW 설치가 예상된다. 반면 2020년 4.7GW에 달했던 우리나라 태양광 신규설치 용량은 2021년 4.4GW, 2022년 3.0GW에 지난해는 2.7GW로 3년 연속 역성장이 예상된다. 위도상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2022년 발전량도 우리나라의 93%(한국 620TWh, 독일 577TWh) 정도인 독일의 경우 태양광 신규설치에 가속도가 붙었다. 2021년 5.3GW에서 2022년 7.4GW, 2023년 14.1GW가 예상되며 불과 2년만에 2021년 대비 266%에 해당하는 용량을 신규로 설치하게 된다. 2014년부터 2020까지 8년 동안은 연평균 약 3GW(한국 2.4GW)를 설치했고 2022년과 2023년 2년은 이전 8년간의 평균의 3배가 넘는 연평균 10.7GW(한국 2.9GW)를 설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독일 전체 발전설비 용량에서 태양광이 차지하는 점유율도 2010년 10%, 2013년 20% 돌파한데 이어 2023년에는 33.2%에 이를 것이다. 우리나라와의 태양광 신규 설치용량 차이를 비교해 보면 2021년까지는 1GW 미만이던 것이 2022년 4.4GW, 2023년 11.3GW로 크게 벌어지게 된다. SolarPowerEurope의 최근 보고서에서는 1GW에서 1TW로 증가하는데 22년이 걸렸지만 이후 2TW까지는 3년, 3TW까지는 2년이 걸리고 그후에는 매년 평균 1TW 이상이 설치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2021년 대비 2022년 발전량 증가율을 보면 태양광 24%, 풍력 16%, 석탄 1%, 수력 2%, 바이오 1%, 핵 ?5%였는데 역시 2023년 이후 태양광의 증가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중립 로드맵의 시나리오에서 요구량을 충족하는 발전원은 태양광이 유일하다고 밝히는 등 태양광 혁명은 현재 진행중이다. 우리나라는 G20 및 OECD 회원국이자 세계 13위 경제 규모를 가졌다. 세계 10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전력생산량은 독일, 프랑스보다 많아 세계 8위지만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 점유율은 OECD 꼴찌다. 석탄발전 비중은 아프리카 평균보다 높고 태양광·풍력 발전 점유율은 나미비아, 모로코, 케냐의 절반 이하다.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점유율 또한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비교 국가의 역시 절반 이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미래 세대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은 외면한 채 2030 재생에너지 목표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30.2%에서 21.6%로 낮췄고 2024년 신재생에너지 관련 정부 예산을 39.5% 줄였다. 기후변화 위기 앞에 글로벌 경제 질서와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고, 재생에너지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 세계가 태양광에 풀 악셀을 밟고 있지만 태양광 혁명은 아쉽게도 우리나라를 비껴가고 있다.황민수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조합 전문위원/ 에너지포럼 이사

[이슈&인사이트] 공급망기본법

COVID-19 팬데믹에 이은 국제사회의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각국의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제품 생산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갑진년 새해에도 국제사회의 자국 우선주의와 원료의 무기화가 얽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공급망의 위기는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원료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그것을 활용하는 산업의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고 종국적으로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큰 불편을 준다. 따라서 주요 품목에 대해 공급망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해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주요 국가들은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내재화하거나 블록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유럽의 원자재법 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력산업의 핵심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기업과 정부차원에서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9년 희소금속 소재산업 발전 종합대책에 이어 2011년 희소금속 산업 생태계 조성 계획을 수립하며 공급망 안정을 위한 민간투자 활성화, 핵심기술의 개발 및 체계적인 산업육성 기반을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기존 ‘소재와 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명칭을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바꾸며 공급망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였다. 이 법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와 관련된 산업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별도의 근거를 신설했고, 관련 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공급망 위기에 영향받기 쉬운 관련 산업에 대한 정부의 공급망 기본계획, 긴급수급 방안 등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포괄적인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더 나아가 특정 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공급망 안정품목을 정하고, 공급망센터를 설치해 공급망 관련 국내외 정보를 관리하고자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희소금속 전문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희소금속센터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한 점이다.기존의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 개정했다. 여기서는 국가첨단전략기술을 "공급망 안정화 등 국가·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및 수출·고용 등 국민경제적 효과가 크고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현저한 기술"로 새롭게 정의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조치에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 제도의 개정만으로는 급변하는 환경변화와 국가 경제 및 산업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른바 ‘공급망 기본법’인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은 공급망 위기 대응과 안정화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인 ‘공급망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차원의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근거를 담았다. 공급망위원회가 국가와 국민경제의 안정에 필수적인 품목을 지정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한편,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 선도사업자를 선정하고 시설투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치 근거도 마련했다. 공급망 위험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도입되고, 유관부처와 기관간 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국민경제에 큰 영향이 있는 185개 품목을 공급망 안정 대상 품목으로 정하고 70% 수준인 특정국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2030년까지 50% 아래로 낮추는 내용의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마련했다.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이 정부의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첨단 분야의 기술개발이나 품목 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급망 관리 체계를 넘어 서비스와 물류까지 아우르는 넓은 범위의 공급망 관리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적 노력에 대해서는 아직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이미 개정된 기존의 규범들이 대부분 산업통상자원부의 소관이지만, 새롭게 제정된 공급망기본법은 기획재정부에 엄청난 예산과 권한을 부여할 여지가 있고 부처 사이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정부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자칫 WTO 규범이나 FTA 등 국제사회의 기준에서 금지하는 보조금 지원 등으로 취급돼 외국과의 통상 분쟁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한국은 국내 소비시장이 작고 무역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화는 경제 안보 측면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이러한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라는 ‘두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하고 명확한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법제 수립과정에서 기업과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있는지, 국제사회에서의 통상 등 무역 분쟁 소지가 있는지를 보다 명확히 따져 안정적인 시행 기반을 갖춰야 한다. 공급망기본법은 말 그대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 수석부회장

[데스크 칼럼] 가스산업 판도 바꿀 제2의 LNG 직수입

내년이면 국내 천연가스(LNG) 자가소비용 직수입제도가 도입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정부는 지난 1995년 천연가스 대량 소비자의 연료 선택권 확대를 목적으로 자가소비용에 한해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제도는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며 가스산업 경쟁도입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확대가 이어져 왔다.자유시장경쟁체제 도입 붐을 타고 도입된 LNG 직수입 제도는 당시만 해도 어떤 의미에서는 ‘후퇴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이 있었다.당시 국내 가스산업은 LNG 도입, 판매를 독점해 오던 한국가스공사를 3개사로 분할해 민간에 매각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다.알짜 공기업을 인위적으로 3개로 분할해 민간에 매각하자는 논의는 가스산업 구조개편의 명목 아래 지속됐으나 이는 또 다른 독과점 체제 형성에 불과하다는 비판 속에 철회됐다. 회사의 인위적인 분할 매각에 극렬히 반대한 한국가스공사 노조의 반발도 당시 정책 철회에 크게 한 몫 했다. 인위적인 분할 매각 대신 도입된 LNG 직수입 제도를 두고 당시 가스공사를 비롯한 기존 기득권 업계에서는 ‘선방했다’는 반응도 있었을 터다.하지만 현재 LNG 직수입 사업은 제도 도입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하지 못했을 만큼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국내 LNG 직수입량은 지난 2005년 33만톤으로 국내 전체 LNG 수입의 1.4%에 불과했으나 2019년 약 730만톤, 17.8%로 12배 이상 증가했다.2016년 당시만 해도 국내 천연가스 도입의 약 93.7%를 가스공사가 도입·공급하고, 직수입자의 직수입 규모는 약 6.3% 수준에 불과했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및 국제 LNG 시장여건을 활용해 2025년 이후 직수입 물량이 연간 1000만 톤 상회(13차 천연가스 수급계획)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25년에는 더 많은 직수입 의향사업자가 출현해 연간 1500만톤 이상의 LNG 직수입이 실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중 발전용 직수입이 약 60%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다.1995년 도시가스사업법 상 불과 서너 줄 표기되면서 도입된 LNG 직수입이 현재 대한민국 가스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형국이다.30여 년 전과 같이, 가스산업의 큰 변화를 몰고 또 다른 제도 도입이 지난해 다시 한 번 이뤄졌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대안)(자특법)’이 그것이다.지난해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자특법은 그동안 가스공사가 국가 전체 가스시장의 비축의무를 전담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했으나, 앞으로는 천연가스 직수입자에게도 비축의무를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논란이 됐던 직수입사업자의 물량 처분(판매)을 국내 제3자에게 허용하는 조항도 포함됐다.민간 직수입사업자가 천연가스 비축의무를 위해 수입한 LNG를 가스공사나 타 직수입사업자는 물론 제3자에게까지 판매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다.다만, 제3자 물량 처분의 경우 자원안보협의회 심의를 거쳐 대상물량과 기간을 정하도록 규정했다. 직수입 LNG 물량의 전면적인 제3자 처분까지 허용하기 전 일종의 유예단계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또 다시 법안의 원안(직수입 물량의 제3자 전면 처분) 통과 대신 유예단계와도 같은 단서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또 다시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하지만, 30년 전 이뤄진 민간의 LNG 직수입 허용이 현재 대한민국 천연가스 시장 판도를 바꿨듯, 또 다시 이번 자특법이 향후 천연가스 산업 30년을 좌우하게 될 또 다른 계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자특법이 제2의 LNG 직수입제도와 같은 파장을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youns@ekn.kr

[기자의 눈] ‘에너지안보가 최우선’ 산업부의 정책 기조 변화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년 에너지정책 기조는 원전·석탄·재생에너지 등 모든 에너지자원을 활용해 ‘에너지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가 한동안 ‘탄소중립·에너지전환’을 강조해왔지만 최근 수년간 연이은 전쟁과 이로 인한 에너지가격 불안정성 확대 등으로 에너지위기가 심화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정책 수정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러한 기조 변화의 배경으로는 최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급등이다. 유럽에 있는 에너지기업들과 동아시아 기업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놓고 경쟁을 하면서 전세계적 가스, 전기요금 급등을 경험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제 상황에 따라 에너지안보라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최근의 위기로 인해 깨닫게 됐다. 이에 그동안 퇴출을 가속화했던 석탄 등 화석연료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이호현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지난해 말 개최한 ‘2023년 글로벌 에너지 정책동향’세미나에서 "에너지안보라는 이슈가 에너지정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됐다. 다음으로 가격, 경제적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하며 그 다음이 탄소중립과 기후변화대응이다. 세 기둥이 함께 가야 굳건한 에너지정책 수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탄소중립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는, 산업 그 자체로 탄소중립을 봐야 한다.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며 "우리 정부도 탄소중립 과정에서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인프라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원전, 재생에너지, 수소, 양수 등 다양한 ‘무탄소 전원’ 확대와 전력망의 조속한 확충은 물론 지난 2∼30년간 구축한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인프라들은 앞으로 탄소중립에서도 일정기간 역할을 할 수 있다. 훌륭한 레거시(유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위 관료들은 통상적으로 중립적으로 발언하지만 이처럼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기후당사국총회(COP28)에서도 탄소중립 궤도 수정, 방향전환이 있었다. 기존에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에만 포커스를 뒀다면 이제는 탄소중립이 에너지안보를 훼손하지 않도록 각국의 여건을 고려해 기존의 화석연료들을 무탄소, 저탄소화 하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추세로 전환된 것이다. 즉 이제는 에너지안보 구축 과정에서 가격 수용성, 기존 에너지시스템을 어떻게 튼튼하게 뒷받침 할 수 있을지 종합적으로 준비하는 게 중요해진 상황이다. 정부도 더 이상 한전의 적자와 전기요금 급등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실장의 발언대로 산업부가 탄소중립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 하고 에너지안보까지 강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jjs@ekn.kr전지성 기후에너지부 기자.

[특별기고] 에너지 위기시대, 국가 차원 LNG 비축 강화가 해법이다

에너지 안보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해외 주요국들은 가스 등의 자원안보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의 파장을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유럽연합은 동절기 가스비축과 공급망 다변화 등의 전략을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주요 실천과제로 천명하고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천연가스 비축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 시점에서 천연가스는 건물의 난방취사 연료로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이며,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믹스에서도 주요한 발전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자력수력재생에너지석탄발전을 기저발전으로 놓고, 천연가스발전을 첨두발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저발전의 불시고장 및 이상기온 등 발전시장 내 변동성을 천연가스가 맡는다. 발전원으로서 천연가스의 특성은 천연가스 수급위기 시 그 여파가 민수용 난방·취사에 한정되지 않고, 전력시장과 연계되어 에너지 시장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한다. 유럽연합 등의 주요국이 천연가스 비축 제도를 강화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천연가스의 광범위한 활용성과 파급성 때문이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직후 유럽연합은 가스안보 강화의 일환으로 2022년 11월 1일까지 저장시설용량의 최소 80%, 2023년 11월 1일까지는 최소 90%의 가스비축의무를 법제화 하고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시 가스비축제도를 운영 중인 주요국가 중 액화천연가스(LNG) 도입량이 많으며, 1차 에너지소비 및 발전믹스 내에서 천연가스의 비중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스페인의 비축 사례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크 할 만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산업 구조 한국과 유사한 스페인, 시장참여자 모두 동등하게 천연가스 비축의무 가져스페인은 유럽에서 천연가스를 LNG 형태로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2022년 천연가스가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7%(한국 17.5%)이며,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4%(한국 27.9%)나 된다. 이 같이 스페인은 천연가스가 국가 에너지 시장에서 자리한 위치와 역할이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하다. 또한 스페인의 2022년 LNG 수입량은 약 2100만톤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LNG를 수입했다. 천연가스 소비량에서 LNG 수입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90%(한국 100%)로 천연가스 수입형태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스페인은 LNG 수입 외 나머지 약 10%를 배관망을 통해 PNG(파이프라인가스) 형태로 수입하고 있으므로 천연가스 수입의존도가 100%라는 점도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천연가스 수입 및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지만, 천연가스 비축제도에서는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비축관리주체와 비축의무자의 범위에서 큰 차이가 발견된다. 스페인은 천연가스를 포함한 석유류의 공급 안정성(비축관리, 도입선 다변화)을 2013년부터 정부산하 중앙비축기관인 CORES를 통해서 통합 운영·관리하고 있다. 또한 1998년부터 판매자/공급자, 직소비자 모두에게 비축의무를 법적으로 부여했다. 즉, 천연가스를 수입하여 공급하는 사업자든, 수입하지 않고 내수 시장에서 구입하는 직소비자든 구분하지 않고 시장 참여자 모두가 비축의무를 동등하게 부담한다. 정부에서는 국가 전체 비축을 비롯한 공급안정성을 통합적으로 운영·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직 가스공사만 비축의무자로 지정돼 있다. 비축의 운영·관리도 가스공사가 수행하고 있다. 양국은 천연가스 의무비축량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스페인의 의무비축량은 현재 국가 총수요의 최소 27.5일분이다. 최소 안전재고 10일분, 최소 운영재고 10일분, 사용자 운영재고 7.5+a일분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사용자 운영재고의 비축일수는 최소 7.5일에서 천연가스 수요, 저장시설의 가용 용량, 사용자 운영재고 외의 비축량 등을 고려해 매년 다르게 계산된다. 2023년의 사용자 운영재고는 11.1일분으로 확정돼 2023년 스페인의 총 의무비축량은 31.1일분으로 강화됐다. 스페인의 의무비축 형태별 차이점은 안전재고는 방출 권한을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으며, 운영재고의 방출 권한은 관할 부서장관이 가진다는 점이다. 사용자 운영재고량은 동계비축 의무량으로 유럽연합차원에서 부과되는 동계비축 의무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11월 1일까지 비축해야 하는 물량이다. 스페인에서는 특별히 LNG를 도입돼 사용하는 기업에게는 11월 1일부터 익년 3월 31일까지 LNG 형태로 비축의무를 부여한다. 이러한 LNG 비축은 스페인의 동계비상계획(Winter Action Plan)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시행됐으며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다. 2021년 9월 비축의무일수는 3.5일에서 5.5일로 상향 조정됐다. 이 시기는 유럽의 풍력발전량 감소, 코로나-19 이후 에너지 수요 증가 등의 원인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점차 증가하고 변동성 또한 확대되는 시기였다. 스페인 동계비상계획에서는 LNG 비축 강화 이유가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시장 변화로 동계 수급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고, 동절기 예외적 공급 부족 사태의 결과를 시장이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LNG 비축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은 지하저장시설용량이 부족하며, 물리적인 특성상 LNG 저장시설 만이 유일하게 갑작스런 천연가스 수요 증가에 따른 즉각적인 공급을 보증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 에너지 위기와 천연가스 가격 폭등 사태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한 여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2021년 9월 LNG 비축강화제도를 시의적절하게 추진한 스페인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2021년 9월 일평균 유럽 현물가격(TTF)이 22.8달러/mmbtu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2022년 8월 69.9달러/mmbtu로 3배 이상 상승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페인의 2021년 LNG 비축의무 강화는 매우 적절한 사전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스페인에서 동계 LNG 비축물량을 방출할 수 있는 조건으로는 △한파로 인한 기온 급감 △발전시장 수급불안에 따른 가스발전량 급증 △가스공급자의 불가항력 선언 △가스 공급 인프라 혹은 상류부문 사고 등의 경우다. LNG의 도입·공급 단계에서의 위기뿐만 아니라 국내 도시가스·발전 소비단계의 수급불균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위기관리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은 비축의무제도 외에도 천연가스 공급안정성 보장 관련 의무를 판매자/공급자, 직소비자에게 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한 수입국의 의존도가 국가 천연가스 소비량의 50%를 초과하는 경우 국내 수요의 7%를 초과하는 판매자/공급자, 직소비자는 해당 국가의 수입 비중을 50% 미만으로 조정하도록 도입포트폴리오 조정의무가 부여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국가 전체 수요의 절반 이상을 한 국가에서 수입하는 일이 쉽게 발생하지는 않으나, 가스시장 참여자들의 도입선 다변화를 유도하고 국가 수급의무에 동참하게 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스시장 참여자들은 매년 4월 30일까지 도입관련 세부 정보를 정부기관에 제출하는 의무가 있고, 담당기관은 국가 도입 포트폴리오 정보를 반기별로 업데이트하고 공개하도록 돼 있다. 이는 정부가 천연가스 시장 참여자들의 도입관련 시장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해 정보 부족이나 정보비대칭으로부터 야기되는 가스시장의 수급 불안 문제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내서도 정부 주도 통합 LNG 비축 강화방안 마련해야국내에서도 핵심 자원안보의 중요성이 공론화돼 관련 법안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최근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안(대안)’(‘자특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그간 가스공사가 오롯이 국가 전체 가스시장의 비축의무를 전담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금번 법안 추진을 통해서 직수입자의 비축의무 필요성을 인식하고 법제화하려는 노력 그 자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특법’ 안에 담긴 직수입자의 비축의무는 위기 시 한시적인 부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들 뿐만 아니라, 비축 물량 처분을 국내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되면서 핵심 자원안보에 대한 효과적인 위기 대응이라는 자특법의 근본 취지가 퇴색될 것이 우려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및 ‘천연가스 비축의무에 관한 고시’를 통해 가스공사 판매량의 9일분을 가스공사가 비축하도록 법제화 돼 있다. 또한 가스공사 저장탱크 용량의 5%는 불용재고로 비축의무량인 9일분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에 2023년 가스공사의 실제적인 비축의무량은 가스공사 판매량의 11.6일분이 된다. 이는 2021년에 강화된 규정으로 이전에는 가스공사가 불용재고를 포함한 7일분만을 비축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스공사가 가스공사 판매량뿐만 아니라 민간 직수입사의 물량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비축의무와 수급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우리나라의 2023년 천연가스 비축일수는 명시된 9일분(불용재고 포함 11.6일분)보다 적은 7.6일분(불용재고 포함 9.8일분)으로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 수요 기준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비축일수는 직수입사의 도입량에 따라 증감하는 함수형태가 되는데, 직수입사의 도입 변동성은 국제 LNG시황과 현물가격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국가 비축일수의 변동성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비축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가스공사의 비축의무를 통한 국가 수급 안정성의 효용을 공유하는 직수입자의 무임승차 이슈이다. 가스공사가 부담하는 비축의무 비용(비축물량 확보비용, 저장탱크 이용비용, 기타 부대비용)은 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주택용 소비자, 산업용 소비자, 발전용 소비자에게로 전가돼 분담하는 구조이다. 각 소비자들은 직수입자를 대신해 국가 비축의무에 대한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가스공사가 2022년도 비축의무의 80%를 부담하고 직수입자가 나머지 20%를 부담했다고 가정하면, 가스공사는 상당량의 금액을 요금 인하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직수입자는 비축의무와 자가소비에 대한 수급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장기도입 비중을 낮게 가져가면서 국제 LNG시장 시황에 따라 현물도입을 통한 수익극대화 전략을 추구한다. 문제는 이러한 직수입자의 행태가 풍선효과로 돌아와 가스공사의 도입 및 가스공사로부터 공급받는 발전사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인용하며 직수입자가 선택적으로 도입물량을 감소시키면서 가스공사가 계획 밖의 고가의 추가 LNG현물을 구매하게 됐고, 이에 따른 발전시장의 SMP(계통한계가격) 상승이 유발돼 전기료 인상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도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그 결과, 전 세계 에너지 격랑 속에서도 주요 민간 발전 3사는 2022년 국내 SMP 상승에 따른 수혜로 2020년 대비 영업이익이 약 3.3배 상승한 1조8877억원을 실현했다. 반면 가스공사는 미수금 약 15조원(2023년 2분기 기준), 한전은 누적 적자 약 45조원(2021년~2023년 기간)이라는 실적과 에너지요금 폭탄의 주범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자특법’에서는 위기 경보 시에만 직수입자에게 비축의무를 한시적으로 명할 수 있기 때문에 상기에서 언급한 △직수입물량에 따른 국가 비축일수의 증감현상 △직수입자의 무임승차 이슈 △에너지 기업 간 수익양극화 현상 중 어떤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최근의 에너지 위기와 급작스런 에너지 가격 급등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위기 경보에 대한 판단과 그 시점이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페인의 동계비상계획에서는 ‘시장이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 발생’에 대해 명시하며 국가차원의 통합 비축의무를 강화한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위기 경보 발령 후 직수입자에게 비축의무 명령이 실제로 내려 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든다. 현재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에서도 수급 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직수입자에게 도입물량 규모·시기 등의 조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 돼 있지만, 2022년 에너지 위기 기간을 포함해 단 한 번도 직수입자에게 수급 조정명령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직수입자를 포함한 국가 전체의 소비물량으로 비축의무의 대상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LNG 비축강화의 세부방안은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해봐야 할 테지만, 스페인의 사례와 같이 국가 주도의 통합적 비축·운영 방안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국가 전담비축기관을 지정하면 전담비축기관은 국가 비축의무를 통합적으로 수행 및 운영·관리하며, 비용은 가스시장의 참여자인 가스공사와 직수입자 그리고 정부가 분담하면 된다. 통합비축은 비축제도의 효율적 운영 및 관리 측면에서 이점이 있기 때문에 국가수급 위기 발생 시 기민한 대처가 가능하며, 현재 ‘자특법’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제3자 판매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에서도 천연가스의 역할이 여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EI(舊 BP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천연가스가 국내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5%, 발전량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9%이다. 특히, 발전부문에서 천연가스는 원자력석탄과 함께 주요 발전원으로서 중추역할과 발전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흡수하는 유연성 전원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천연가스의 수급위기 대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는 정부 주도의 국가 통합비축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법 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서 국가 에너지 안보강화와 국민 편익 증진의 초석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한국가스공사 인천LNG생산기지 전경.

[EE칼럼] 분산에너지 활성화, ‘그림의 떡’ 될 수도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다. 대형 발전소 중심의 중앙집중식 전력 공급 체계를 전력을 소비하는 곳에서 직접 생산하는 분산형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분산에너지는 연료전지·신재생에너지·중소형 원전(SMR)·집단에너지발전과 같은 무탄소 또는 환경친화적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말한다. 송·배전 인프라 등 전력 계통망 구축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환경정책기본법에 규정된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에도 부합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의 취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보기 흉한 고압 송전 철탑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오염과 사고의 위험을 남에게 떠넘기는 윤리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분산에너지 활성화가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부과하고 있는 전기요금 체계를 지역별 차등제로 전환해야 한다. 전기의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거래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전기 거래절차 개선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전기를 저장하는 현실적인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전기는 실시간 생산과 실시간 소비를 원칙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활용이 가능한 분산에너지로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현재의 기술로는 100% 완전한 분산에너지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분산에너지 시스템은 현재의 중앙집중식 전력의 보조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모든 소비자가 중앙집중식 송전망과 분산에너지를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기술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압과 주파수의 안정성을 요구하는 정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쨌든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하더라도 완전한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불가능하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분산에너지의 양을 중앙집중식 전력 사용량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관리하는 복잡한 스마트그리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전국의 모든 송전망을 첨단 스마트그리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시설 투자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송전망 관리에 필요한 기술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진다. 현재는 한국전력이 교류를 생산하는 25기의 원전과 50여 기의 석탄화력을 비롯한 대형 발전사와 일부 대형 민간 LNG 발전사만 관리하면 된다. 매일 시간대별 전력 수요를 전망해서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국의 발전사에 전력 공급을 요청하고, 실시간으로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모니터링하면서 발전량을 조정해야만 한다. 잠시라도 공급이 부족하거나 넘치면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분산에너지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미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 사업자의 수가 5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영세 발전 사업자의 기술력·관리력은 물론 사회적 책무성도 신뢰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한전이 분산형 전원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극단적인 수도권 분포도 분산에너지 활성화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 인구의 50.6%에 해당하는 2600만 명이 서울·인천·경기를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전력 수요도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수도권에 수요에 걸맞는 수준의 분산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분산에너지시설을 갖추기 위한 공간적인 제약과 발전설비는 물론이고 물론 오염 방지와 사고 예방을 위한 시설을 갖추기 위한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발전단가도 높아진다. 그런 현실은 이미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의 발전 현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의 발전량의 43%가 호남 지역에서 생산된다. 그렇다고 태양광이 호남지역의 분산에너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남 지역의 전력 소비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12%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호남에서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고압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분산에너지라고 모두 장거리 송배전 투자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특별법에 명시된 대부분의 분산에너지가 아직은 기술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분산에너지 발전사는 필연적으로 영세할 수밖에 없다. 대형 원전이나 석탄화력이 챙길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영세한 미래 에너지의 발전단가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쌀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값이 지나치게 비싸면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기자의 눈] 상생금융 이후의 상생금융

지난해 말 은행권에서 발표한 2조원+α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년간 4% 초과 이자 납부액의 90%(감면율)를 환급해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들은 각 은행별 지원 규모를 발표하면서 2월 지원을 시작해 3월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은행권의 이번 상생금융 시행으로 금융사의 과도한 수익에 대한 지탄과 상생금융에 대한 요구가 컸던 분위기는 당분간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은 지난해 정부와 정치권의 전방위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고 은행들은 금리 인상의 흐름에 올라타 역대 최대 수익을 거뒀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지적하고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상공인의 말을 빌려 은행권을 압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은행의 수익에 세금을 물어야 한다며 ‘횡재세’ 도입을 추진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은행권은 2조원 이상의 상생금융안을 발표하며 결국 백기를 들었다. 문제는 상생금융 이후의 상생금융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상생금융 압박은 오는 4월 열리는 총선과 맞물리면서 정치권의 표심 잡기에 금융권이 활용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물론 대출 이자 환급은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총선 이후, 그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은행권이 공동으로 나서는 상생금융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 상생금융의 핵심은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금융권에 대한 비판과 압박을 피하기 위해 내놓는 상생금융안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지금처럼 은행들이 매번 차주들에게 이자 환급을 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생금융이 일회성에 그친다면 2조원 이상의 역대 최대 규모로 실시하는 지금의 은행권 노력 또한 의미 있게 다가가기 어렵다. 금융지주 회장들은 연초 신년사에서 일제히 ‘고객’과 ‘상생’을 강조했다. 어려운 때일 수록 고객의 가치를 잊지 않고 고객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당부다. 또 금융·은행권은 상생금융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이같은 당부와 변화가 대외용으로, 눈치보기용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은행들은 스스로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생금융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사들이 자발적인 상생금융을 실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금융당국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지 생각해 봐야 한다. dsk@ekn.kr

[이슈&인사이트] 겉도는 부동산PF 대책

국내 16위 건설사인 태영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가 새해 벽두 금융시장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까지 부동산 가격이 하늘 모르게 치솟자 ‘부동산 불패론’에 편승해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무분별하게 건설사업에 공사비를 대 준 것이,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 시장금리 상승, 공사비용 증가로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증하고 이로 인한 도미노 충격이 빚어지면서다. 자칫하면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떼이고,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 여러 건설회사들은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금융기관들과 건설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경제 전반에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부동산 PF 부실화는 먼저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헤칠 수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 등에서 돈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돈의 흐름이 막히는 것이 신용경색이다. 금융시장에 공급되는 자금의 절대량이 줄어들거나 자금의 통로가 막히면 금융 기관들은 자산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고, 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활동이 위축돼 자금 부족으로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은 다시 부실채권에 대한 손실을 감당하느라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두번째는 부실한 부동산 PF의 매각이나 청산은 부동산 시장에 공급 확대효과를 불러 공급과잉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는 고금리 상황에서 부동산 물량 증가와 가격의 하락을 동시에 초래하고, 이는 부동산 업계 전체와 금융회사들, 이른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가격이 높을 때 내집을 마련한 서민들에게도 적지않은 재정적 부담을 안긴다. 세번째로 부동산PF 부실화는 경기 침체와 불황,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동산 부실로 인한 금융 시스템의 충격은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 둔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가계 자산의 불안정성으로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은 소비를 절제하게 되고, 가계의 소비활동이 줄어들면 불가피하게 기업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 활동을 위축시키므로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의 고용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기업과 가계의 연체율을 볼 때 우리 경제에 빨간 신호는 켜졌다.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악순환 고리의 재앙이 닥칠 수 있다.더 나아가 금융기관 상호 간에 보유 자산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시점이 되면 필자가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정확한 상황 진단과 평가를 통해 기민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부동산 시장 충격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금융시장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는 경제분야의 여러 이벤트, 외부 충격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위기 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각각의 경제 영향 시나리오를 활용해 그 여파가 어느 정도가 될지를 예측하고, 금융 위기 상황에서의 PF의 안전성을 평가, 상황에 맞는 조치를 해야 한다. 부동산 PF 부실의 충격에 금융기관들이 입을 수 있는 손실 또는 자금 과부족 등을 측정하고 자본확충계획과 같은 비상대책을 수립, 실행해야 하는 시점이다.사람의 몸에도 건강 이상 신호가 있을 때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수술이 필요하듯이 부동산 PF의 운영과 거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잠재적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유념해야 한다.박세원 S&P글로벌 상무/ 거시경제 및 국가리스크 한국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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