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심장부인 한국은행 조사국에는 J.M. 케인즈의 어록이 걸려 있다. 케인즈는 순수한 시장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경제 개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거시경제학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이 분야는 정부 정책의 효과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제학 분야이다. 필자는 거시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의료개혁과 같은, 겉보기에 경제학과 관련 없어 보이는 사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건강보험부터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경제학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짚어보자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필수의료 서비스의 부족 문제는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실패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시 추가적인 규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건강보험 시스템은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현재의 의료공백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다. 경제원론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수요가 증가하면 일반적으로 가격도 상승한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욱 올라간다. 반면,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량은 증가하고 공급량은 줄어든다.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는 필수의료(급여) 서비스의 가격이 포괄수가제 등을 통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요량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공급량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가격통제에 의해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암시장이 형성돼 수요공급의 균형을 이루지만, 의료서비스라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는 암시장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은 지속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졌다. 이론상으로 필수의료는 더욱 수요량과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료비가 저렴한데 건강보험은 중복지급되니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은 같은 상병으로 여러 병원을 방문해 중복진료를 받는다. 이런 중복지급은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적일 것이지만, 급여진료에 대해 병원에 지급되는 수가는 원가 이하 수준으로 책정돼 재정 고갈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의 상황은 어떠할까? 회사든, 정부든, 개인이든, 적자는 결국 파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원도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비급여 진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의료개혁 방안은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의사 수를 매년 2000명씩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매년 2000명의 새로운 의사들을 의료서비스에 추가 투입한다고 해도, 과연 필수진료과목인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의 수가 증가할까? 이 정책은 마치 실패가 예상되는 사업에 창업을 권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직업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찾고, 사회적 지위와 부를 쌓는 것이 일반적인 목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특정 산업에만 적자가 불가피한 직업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의료분야로의 과도한 진입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체 의료분야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 정책이 의료분야를 더 이상 선호되는 직업경로로 만들지 못한다면, 정부가 추가로 확대하려는 2000명의 의대 정원은 과연 누가 채우려 할까? 이는 단순히 대학 입시 문제를 넘어서 의료 분야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재평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