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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세계박람회인가? 사우디 오일머니인가?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두고 사실상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치열한 경쟁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주제로 인류의 발전적 삶의 기록, 기술의 진보, 포용과 공유 등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부산 지역에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에 위해 윤석열 정부와 주요기업들이 함께 뛰고 있다.‘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에 따르면 부산엑스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약 50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되며, 행사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3480만 명 이상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4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함께 18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상당한 경제적 이익과 함께 대한민국은 올림픽, 월드컵, 세계박람회(등록박람회) 등 글로벌 대형 3대 행사를 모두 개최한 7개국에 안에 들어가는 위상을 갖게 된다.지금까지 ‘한다면 한다’라는 정신으로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달려 왔다.부산은 현대사회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수도로서 30만명의 도시가 100만명의 피난민을 품은 포용성과 개방성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이 교차하는 공간으로서 전 세계 환적 2위, 물동량 7위의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도시이다. 또한 부산아시안게임, 부산국제영화제, 국제게임전시회(G-STAR), 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치른 경험과 전시회 및 숙박시설 인프라를 갖춘 국제도시임을 인정 받고 있다. 세계박람회를 유치할 명분과 비전, 능력을 갖춘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2030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한다면 한국은 전 세계 국민들에게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커다란 울림을 전달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한국과 세계박람회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는 2030 비전의 한 축으로 5000억달러를 투입하는 신개념 도시 ‘네옴시티’를 조성하려고 한다.네옴시티 조성 과정에 한국기업과 정부에게 참여 기회를 보정하고 금전적 이득을 제공할 것을 내비쳤다. 무려 40조원에 달하는 26개의 계약 및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면서 빈 살만 왕세자는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국내 주요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등이 참여했다.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주요기업 총수들이 만남을 갖고 난 후 항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협을 위해 부산엑스포 유치를 양보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이러한 소문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국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빅딜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우디 하고는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관계이고, 네옴시티라든지 인프라 건설, 경제·통상 관계는 별도로 국익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정부 입장에선 사우디와 경협도 하고 부산엑스포도 유치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분명하다면, 기업들도 움츠려들 필요가 없다. 사우디와의 경협은 경협대로, 부산엑스포 유치는 유치대로 두 가지 모두 얻기 위해 민관이 협력해 성사시킴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길 기대해 본다. 이런 성과가 전세계 국민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데스크 칼럼] 한전 아이러니 캠페인 속사정

담배회사가 금연운동하는 것을 어찌 봐야 하나. 우선 병 주고 약 준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게 아니다. 담배회사엔 거미줄 규제로 마땅한 마케팅 방도가 없다. 캠페인이라도 해서 이름을 알리는 게 고작이다. 일종의 패러독스(역설) 마케팅이다. 담배회사는 사람 몸에 해로운 담배를 판다는 숙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약점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금연캠페인을 공익활동으로 포장해 기업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드물다. 당장 빵 장수만 봐도 전혀 다르다. 빵 장수가 빵 소비 절약에 나선다면 누가 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빵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 입장이라면 빵 소비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소비시장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자청해서 소비 줄이기에 나선다면 미쳤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그게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전기를 판매하는 한국전력공사, 한전 자회사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공기업. 그들이 최근 이 모순된 행동에 나섰다. 지난 14일 전국 주요 거점 도시 대국민 거리홍보를 시작으로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직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겨울철 에너지절약 실천요령 자료를 배포했다. TV와 라디오 등 매체에선 공익광고 형태로 에너지절약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왜 이런 아이러니가 벌어지는가. 공기업이니 정부가 시켜서일까. 솔직히 꼭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시급한 과제다. 당연히 정부가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은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 당장 우리 경제 사정을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무역수지의 악화 원인 중 78%를 차지한다고 한다. 무역수지가 최근 역대급 적자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고환율·고물가를 불러왔다. 이는 결국 소비 및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경제성장의 엔진을 식게 만든다. 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이 우리 경제를 허약체질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우리나라는 에너지를 90% 이상 수입에 의존한다. 그런 우리로선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가 생존 전략이자 국가 경쟁력 향상의 무기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지 소비실태를 보면 걱정이 태산이다. 에너지 다소비 국가 중 세계 8번째다. 국내 총생산 대비 에너지 소비량으로 계산하는 에너지 효율 수치를 보면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35위다. 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에너지의 자급률이 높고 소비나 효율 면에서도 대체로 우리보다 낫다. 그런 유럽조차도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을 맞아 짠내 나는 위기 극복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일반 가정에선 샤워시간을 줄이며 불편을 감수한다. 프랑스 관광 명소인 에펠탑 조명도 1시간 일찍 소등한다. 밤거리 가로등이나 간판 네온사인까지 꺼서 관광객이 호텔 찾기 쉽지 않을 만큼 어둡다. 기업은 회사 에너지 경비 절감을 위해 재택근무를 확대하려다 직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그러나 우리에겐 문제의식도, 위기감도 없어 보인다. 에너지 위기는 딴 세상의 일 같다. 그만큼 한가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과소비 또는 낭비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에너지 절약하는 게 마치 바보 취급 받는 세상이다. 곳곳이 에너지 소비로 흥청망청이다.한 겨울에도 실내 런닝셔츠에 반바지차림이다. 한강다리나 도심 새 아파트 야간 조명은 휘황찬란하다. 상가 밀집 지역은 곳곳이 불야성이다. 문 열고 난방이나 냉방하는 가게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농촌에선 과일재배도 전기 온실에서 한다. 국내 전력의 63%를 쓰는 산업현장은 온통 에너지 다소비 기반으로 짜여져 있다. 반도체·자동차·철강·정유화학 등 주력산업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 일색이다.정부가 우리 사회의 이런 에너지 과소비와 비효율에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한전과 산하 발전 공기업은 전기를 판매하거나 생산하는 곳으로 에너지 소비절약에 나서는 것을 내켜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그럴지언정 그들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에너지 낭비를 막고 비효율을 제거하는데 앞장서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다.한전과 산하 발전 공기업의 최근 절전 캠페인이 단순히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전이 최근 처한 상황은 에너지 소비 절약 캠페인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하다. 정부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절전 운동의 전면에 설 수밖에 없다.한전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영업손실 21조8342원을 나타냈다. 지난해 연간 적자(5조8542억원)의 3.7배에 달했다. 특히 올해엔 한전의 주 수입원인 전기요금을 18% 정도 올렸는데도 적자가 천문학적인 규모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제 에너지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발전 연료비가 급등했는데도 이를 전기요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전기를 팔수록 손해 보는 한전의 사업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사업구조에선 많이 파는 것보다 적게 파는 게 유리하다. 사업을 접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고 공기업이니 장사를 안 할 수도 없다. 오죽했으면 한전이 에너지 절약 캠페인까지 벌이겠는가. 발전 공기업도 생산 전력을 한전에 제값 받고 팔면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전에 인계철선이 달려 있다. 한전의 자회사로 재무제표 작성이 연결기준이다. 한전이 연료비 정산 등 방식으로 수익을 조정해 나눈다. 한전이 경영 악화에 놓이면 발전 공기업으로부터 전력을 사가면서 제값을 쳐주기 어렵다. 한전이 휘청거리면 발전 공기업도 연쇄적으로 어려워진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자구노력이 뒤따르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대부분은 전기요금이나 세금을 더 많이 내 적자를 메워주는 수밖에 없다. 한전의 최근 경영악화가 급기야 금융시장의 돈맥경화까지 불렀다. 최우량 등급으로 평가받는 한전채가 금융시장의 블랙홀로 떠올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6%대 금리로 시중 자금을 쓸어가면서 수요가 집중되는 연말 기업 등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한전은 적자 누적으로 전력을 사올 자금이 부족하자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한전채는 23조9000억원(장기채 기준)어치 신규 발행됐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공사채 신규 발행액의 70%가량을 차지한다.에너지 절약 캠페인은 에너지 과소비와 비효율 문제점을 알리고 그에 따른 위기 경각심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다. 지난 1998년 국가 부도 상황에서 금 모으기 운동도 외환위기 극복의 단초였다.캠페인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보다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를 위해선 여러 인센티브나 패널티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요금 현실화 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요금이 높으면 에너지를 쓰라고 해도 못 쓴다. 캠페인 같은 번잡한 일을 요란하게 벌일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요금이 싸기로 유명하다. 특히 전기요금은 독일의 5분의 1,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가스요금도 영국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요금 수준을 싸게 유지하면서 말로만 절약을 외쳐 본들 효과가 얼마나 있겠는가. 정부가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를 위해 해마다 캠페인을 벌이고 관련 사업 추진을 위해 수천억 원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과소비는 여전하다. 산업현장의 효율화나 사업구조 개편 등이 더디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의 천국으로 꼽히는 것도 바로 저렴한 전기요금에 있는 것 아닌가. 전기요금이 싼 것을 빗대어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도 이제 ‘전기 쓰듯 한다’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우스개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다. 에너지 요금의 현실화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지금처럼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국민 살림살이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선 더더구나 어렵다. 에너지는 모든 산업의 기본 원료다. 에너지 가격을 올리면 서민경제에 타격을 주는 물가 불안의 충격과 우려가 없지 않다. 가뜩이나 고물가 상황인데 공연히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하지만 어떤 정책이든 효과가 있으면 부작용이 따른다. 그렇다고 그 부작용이 무서워 제 때 효과적인 정책을 못 쓰고 기회를 놓치면 그 비용과 후유증은 커질 수밖에 없다. 냄비가 끓기 전에 레인지 온도를 낮춰야 한다. 부풀어 오른 풍선은 바람을 서서히 빼야 한다. 에너지 요금 폭탄이 한꺼번에 터지기 전에 좀 더 과감한 에너지 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 자꾸 물가 불안 핑계를 대고 눈치 보며 효과가 의심되는 캠페인 등으로 먼 길을 돌아가지 말라. 캠페인은 내년 본격적인 에너지요금 현실화에 앞서 예방주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에너지요금 현실화로 당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바란다. 결코 쉽지 않는 길이지만 보다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데스크 칼럼]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아니, 사전 안내문자도 없이 서울로 가는 KTX 차편 운행을 취소하면 우리는 어쩌란 말이오!", "사고 때문에 열차운행 취소하면 다냐고요? 차표를 미리 끊은 사람들 일정이나 피해는 생각 안 하고 우리보고 알아서 차편 구해서 올라가라는 게 말이 되나요?"딱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지난 7일 이른 아침인 4시 40분, 부산 구포역 예매창구에서 마주친 상황이었다. 전날 장모의 첫 기일을 맞아 처갓집에서 제사를 모시고, 다음날 서울로 출근을 위해 미리 예매한 KTX열차 탑승시간에 맞춰 구포역에 도착했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구포역 기차표 창구에서 몇몇 시민들이 역무 담당자에게 거친 고성과 함께 항의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유는 전날 오후 9시께 서울 영등포역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 6량의 탈선사고에 따른 일부 기차노선의 운행 중단 때문이었다. 이른 새벽 KTX 기차로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근무, 사업계약, 병원진료 등 개인 일을 소화해야 하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예매 기차편이 일방적으로 취소된 것이었다. 구포역 역무원도 상부에서 취해진 조치라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다른 차편을 이용하라는 말만 되풀이할뿐이었다.구포역에서 겪은 일을 소개하는 이유는 일주일 앞서 서울 이태원에서 속절없이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10.29 참사’ 사고 원인 일부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첫째, 10.29 참사 당시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정부와 서울시 등은 3∼4시간이 지나서야 이태원 상황을 알리는 긴급문자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영등포역 열차 탈선 사고도 판박이였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었겠지만 기자가 탈선사고로 일부 열차의 운행 중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코레일 안내문자를 받은 시각은 6일 오후 9시께 사고발생시점에서 3시간이 경과한 자정(밤 12시) 이후였다. 문자 내용도 운행 중단이 예상되니 열차 이용자들이 알아서 확인하라는 것이었고, 미리 표를 끊은 예매고객의 열차편 중단 여부 안내는 없었다.물론 10.29 참사가 사고 발생 몇 시간 전부터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등포역 탈선사고의 성격은 구분돼야 한다. 둘째, 구포역에서 겪은 일에서 확인한 10.29 참사와 닮은꼴은 당국의 사고 직후 신속하고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다는 점이다.구포역에서 일부 KTX노선 중단과 관련, 코레일은 열차 탈선사고에 따른 불가피성과 복구 노력만 강조했을뿐 운행중단 노선 이용자의 피해는 외면했다. 예매표 대금을 환불하면 그만이라는 태도였다.구포역에서 예매표 이용자가 거세게 항의한 이유는 열차 중단보다는 중단으로 빚어질 이용자의 피해와 불편에 대해 코레일이 전혀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29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사고 직후 경찰력을 최대한 신속하게 동원해 인파를 정리하고 구조차량 찻길을 확보하려는 인식과 노력이 있었더라면 한 사람의 아까운 생명이라도 더 많이 살려냈을 것이다.복잡한 현대생활에서 사건사고는 언제 어디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해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빈발하기에 거대한 정부든 미미한 기업이나 개인들도 사전에 방지하려 애쓰고, 사후에 피해 구제에 힘을 보탠다. 안타까운 점은 이같은 재발방지와 사후대책을 제도와 시스템으로 구축해 놓았음에도 대형 사건사고는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운용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라도 운용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그 능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특별제언] "JY,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세요"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으로 생각합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화려한 취임식을 열지 않고 대신에 사내 게시판에 올린 취임 일성이다. 이 회장은 ‘미래의 삼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기술력과 인재의 중요성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창의적인 조직 문화 △고객과 주주·협력회사·지역사회 등과 함께하는 동반성장 △인류 난제 해결에 기여 등을 강조했다.이 부회장이 진단했듯이 국내외 경영환경과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국제 정치가 그리 녹록지 않다.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꼽은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등의 사업영역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 경쟁사들과의 치열한 싸움이 쉴새없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이 회장은 취임 첫 일정으로 광주광역시에 있는 협력회사 ‘디케이’를 찾았다. 디케이는 1994년부터 삼성전자와 거래를 시작해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등 철판 가공품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와 거래하면서 작년 기준으로 매출과 직원수가 2152억원, 773명으로 27년에 비해 각각 287배, 77배 늘었다.‘미래동행’ ‘상생협력’ 등 삼성이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삼성은 작은 기업이 아니다.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 16개 상장 계열사 소액주주수(중복)는 작년 기준으로 729만9526명, 올해 10월까지 803만명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1차협력사만 700여곳, 직원수 37만명, 연간 거래규모는 31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수십개의 계열사와 해외 네트워크망을 총괄하는 기능을 가진 핵심 조직이 없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미래전략실’이 있었고, 이 곳에서 삼성의 글로벌 전략을 만들었다. 이재용 회장 시대가 개막됐지만 ‘컨트롤 타워’ 없이 출발하게 된 것이다.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급속도록 위축되고, 삼성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마저 실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 ‘뉴 삼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특히 이 회장이 그토록 갈망하는 ‘진정한 초일류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컨트롤 타워’ 부재 상황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지적은 빈말이 아니다.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이 부회장이 말 한마디로 해체시킨 ‘미래전략실’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회장 시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국회 청문회에서 스스로 ‘미전실’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야 하는 대의명분을 찾기가 힘들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솔직함’ ‘정면돌파’다. "지금의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3각 축으로 운용하는 느슨한 테스크포스(TF)로는 엄혹한 글로벌 경영환경을 헤쳐 나가기에 역부족이다." "개인의 미래가 아니라 삼성의 미래 전략을 짜는 조직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런 말을 이 회장이 직접 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호응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정치권도 수긍할 것이다. 국가차원의 안보, 재난, 경제 등의 분야에서 커다란 문제가 터지면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해 항상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이재용 회장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릴 줄 아는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언제까지 뗏목을 어깨에 메고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하나. 삼성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 성장 전략실(Sustainable Growth Strategy Office)’ 류의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데스크 칼럼] 취약해진 자본시장 센티멘털, 정부 부담 막중하다

채권시장 경색을 일으킨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에 기업의 자금 조달이 난항을 겪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에도 투자자들의 수요가 미달되면서 ‘3고 1저’(고금리·고환율·고물가·저성장)에 가뜩이나 긴축경영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은 일말의 희망마저 잃은 듯하다. 금융시장 불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레고랜드 사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하기만 하다. 레고랜드 사태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회생 신청 발언에서 시작됐다.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조성사업을 했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GJC가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할 당시 강원도가 채무보증을 섰는데 이에 대한 보증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김 지사가 돌연 뒤집은 것이다. 김 지사는 이미 최문순 전 지사가 벌인 사업에 대규모 칼날을 들이대겠다고 예고해왔다. 김 지사는 2018년에도 레고랜드가 도민 혈세 1200억원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7년 동안 진척된 일이 없고, 앞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2050억원 규모의 ABCP는 결국 이달 4일 최종 부도처리됐고 파장은 상당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유동화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단번에 무너졌다. 신용평가사들은 지자체의 신용도가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다는 이유로 GJC가 대출을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인 아이원제일차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신뢰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신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경제시스템을 정치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레고랜드가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시장은 돈맥경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금리상승으로 각 경제주체들의 자금조달비용은 급증했고 금융권이 부동산PF 대출에 대한 빗장까지 걸어잠그면서 건설사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발행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건설사, 금융권의 신용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때아닌 부도설이 도는 것은 작금의 위기가 더욱 심상치않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곳이 스위스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다. 이 회사는 지난해 파산한 영국 그린실 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 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로 인해 지난 7월까지 3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했다. 무디스는 크레디트스위스가 올해 3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파른 물가상승,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등 외부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위기 역시 어디가 끝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다음달 미국은 또 한 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다. 살얼음판인 자본시장이 연일 정부의 입만 쳐다보는 이유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장 상황의 원인이 정부에 있느냐고 묻기에도 어폐가 있다. 지금의 자본시장 경색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인상에서 촉발된 부작용들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어설픈 발언이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이 역시도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긴급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음에 따라 단기간 금융시장은 진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둔촌주공아파트의 PF가 만기를 하루 앞두고 차환 발행에 성공한 것이 시장 안정의 물꼬를 트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계획은 이미 실기했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 작금의 자금시장 경색을 안일하게 바라봤다는 지적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정부의 과감한 행동과 정책 방향타 설정이 중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금융사에 SOS를 치는 듯한 행보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모두가 ‘최악은 끝났다’고 안도할 때에, 정부는 소방수 역할을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는 하나의 실수도 결코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 데이터센터 화재와 기업규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카카오 먹통’ 사태를 빌미로 기업의 자율경영을 제약하는 논의가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 등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물론 카카오가 백업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자체 데이터센터 운용이나 이중삼중의 안전망 구축에 소홀했던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서비스사업에 대한 규제가 ‘자율규제’의 방향에서 ‘강제성 규제’로 선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특히 카카오 서비스에 대해 독과점 운운하며 규제에 나서려는 것은 접근 방법부터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카카오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해온 고객들은 편의성, 효율성, 경제성 등의 측면을 따져보면서 현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다.카카오가 ‘국민대표 메신저’라는 지위에 오른 것 역시 이용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이지 어쩔 수 없거나, 대체재가 없어서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일부 이용자들은 다른 메신저 서비스로 갈아 타거나 세컨드 메신저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최근 텔레그램 이용자가 부쩍 늘어난 것이 한 사례다.특히 정치권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를 옥죄는 법안 마련에 나서고 있어서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대표적 규제 법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법안은 민간 데이터센터를 방송·통신 시설처럼 국가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해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명 ‘카카오 먹통 방지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미 정보통신망법 등에 재난 대비 보호조치 의무가 마련돼 있는 만큼 ‘이중규제’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 인한 서비스 먹통사태는 법안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카카오가 재난복구 시스템 구축에 완벽을 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카카오 역시 데이터센터를 4곳에 분산시켜서 대비를 해오고 있었고, 4000억원을 투자해 2023년 준공 목표로 자체 데이터센터를 안산시에 건설하고 있었다. 다만 개발자들의 이중화 작업을 놓치면서 이번 같은 대란을 막지 못했다. 또한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자료가 설비통합운용자료 제출이란 과정을 통해 경영 노하우가 유출되고 경쟁력 강화에 이르는 공정경쟁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나아가 자칫 잘못하면 자본력이 충분하지 못한 플랫폼 서비스 스타트업이 성장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할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데이터 이중화 ·안전망 구축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두 번째 규제법안으로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 온플법은 매출 1000억원, 거래액 기준 1조원 이상의 플랫폼 기업에게 규제를 가하는 법으로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제약을 정하자는 것이다.그러나 온플법과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와는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율규제라는 원론적 입장이 반영돼 온플법 제정이 무산된 것인데 이번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를 빌미로 다시 강제 규제에 나서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규제 일변도 법제정에 나서다보면 진짜 중요한 혁신을 놓칠 수 있다.

[데스크 칼럼] 신재생에너지 산업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뚜껑만 살짝 열었는데 벌써 썩은내 진동이다. 아직 헤집고 찬찬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앞으로 본격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뤄지면 부실과 비리가 얼마나 더 나올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조정실이 최근 전임 문재인 정부 5년 간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의 일부를 들여다봤다. 대상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간 관련 지원금 12조원이었다. 해당 기금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일부를 떼 조성하는 일종의 세금이다. 이 지원금을 집행한 전체 지방자치단체 226곳에 대해 일부는 전수, 일부는 12곳 표본을 뽑아 점검한 결과 문제 투성이다. 불법·부당 사례가 2267건이었다. 문제된 지원금도 2616억원에 달했다. 태양광 부문에서 비리가 확인된 지원금 만도 1800억원대에 달했다. 전력기금을 부당하게 지원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376명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과정에서 친환경을 내세워 사실상 세금 도둑질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 것이다. 복마전이 따로 없다. 국무조정실은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 관련 예산 사업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금융 당국도 신재생에너지사업 대출의 부실 확인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이뤄진 태양광 발전 사업 관련 금융권 대출액이 16조3000억원, 펀드 설정액은 6조4000억원이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민낯이 곧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얼마 전엔 새만금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중국계 회사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는 소식도 나왔다. 놀라운 것은 사업권 매각 위기에 있는 이 새만금 해상풍력발전 사업 추진 법인의 실제 소유주다. 그는 일반 사업가도 아니다. 새만금이 위치한 전북의 국립대 현직 교수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전신으로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의 해상풍력추진단 등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와 그 가족 등이 지분 참여해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된 법인이 최종 팔리면 700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고양이에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한 요지경 세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점검에 여태 손 놓고 있다가 지금 와서 웬 호들갑인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 에너지 정책이었다. 일각에서는 운동권 세력의 ‘비즈니스 운동장’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혈세가 들어간 태양광 사업의 ‘이권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집권 이전부터 이미 대대적인 점검과 수사가 예고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최근 신재생에너지 사업 점검과 수사는 좋게 봐서 정책 바로 잡기다. 나쁘게 보면 정책 뒤집기의 일환이다. 의례적인 푸닥거리처럼 된 전 정권 적폐 청산의 성격도 엿보인다. 그래서 그 결과가 실체보다 부풀려져 전 정권을 악마화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로선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리 제대로 점검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을 자책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대체로 모든 걸 털고 간다. 전 정권의 잘못을 떠안고 가다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어서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이든 정치 보복이든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정당성을 떠나 모든 상황 자체가 ‘내로남불’로 맞불을 놓으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게 됐다. "너네는 안 그랬냐,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하면 뭐라 둘러댈 것인가. 피장파장인 셈이다. 재생에너지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화 시대에 꼭 필요하다. 요즘 문제 되는 공급망 붕괴 때 에너지 자립 섬이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에너지 수급 위기를 넘을 대안이기도 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선 그 게 적어도 간접적인 밥줄일 수 있다.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 캠페인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ESG 경영은 글로벌 기업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고 상품을 해외 시장에 내다 팔려면 재생에너지를 써서 제품을 만들고 기후환경 변화 대응 등에 노력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보급의 속도와 폭이다. 도로는 국도인데 고속도로로 착각해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달리면 결국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좋고 필요하다고 해서 모두가 가능한 게 아니다. 대안이나 대책 없이 무조건 좋은 것만 추구할 수 없다. 그냥 이상만 쫓으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인기영합)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과속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1.5%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종 목표보다 8.7% 포인트 낮춰 속도조절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윤석열 정부의 낮춰진 목표마저도 도전적이고 달성이 쉽지 않다고 지금 와서 뒤늦게 실토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그간 사실 땅 짚고 헤엄치기, 봉이 김선달 식으로 추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의 대표 사업인 태양광 발전만 봐도 그렇다. 자기 돈 한 푼 없어도 정부 지원금을 받거나 대출금을 끌어다 발전 설비 갖추고 생산 전기를 비싼 가격에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판매 단가도 비싼 데 여기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도 발급해줘 일종의 보조금까지 챙기게 했다. 발전 공기업 등 대형 발전사를 대상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를 도입, 신재생에너지를 20년 간 비교적 높은 고정가격에 안정적으로 사주도록 했다. 요즘 같이 연료비 폭등으로 전력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에선 그 혜택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과 동일한 가격으로 사주는 게 이유다.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은 햇빛과 바람 등 자연 자원을 활용한다. 화석연료 가격 변동과 무관하다. 그런데도 화석연료 가격 급등에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원래 단맛 나는 곳에 쉰 파리 떼들이 꼬이는 법이다. 돈 되는 사업이니 오염되지 않고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 세력까지 기웃거린 흔적도 보인다. 사방에 구린내 풀풀 난다.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감시와 점검, 나아가 관리와 수사는 문재인 정부 때 이미 철저히 했어야 했다. 정권의 관심사나 국정과제라면 더 엄밀한 감시·점검·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런 시스템에 구멍이 났다. 시스템이 망가지니 성역이 만들어졌다. 당시 정권 담당자들이 숙제 검사를 제대로 못 했거나 안한 것이다. 결국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당연히 검사의 강도는 세졌다. 검사의 방식은 적패청산 형태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꿀 단지 있는 곳의 문단속을 잘못한 대가다. 도둑은 울타리를 단단히 쳐 놓아도 넘어가기 십상이다. 빗장을 허술하게 해놓았으니 사고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구조다. 자생하지 못하고 외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게 돼 정부 의존적인 산업 체질을 갖게 됐다. 그 사이 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이 따로 놀았다. 온통 보급 목표 달성에 쫓기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산업 생태계 육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뒤돌아 보면 문재인 정권 때 보급 속도전까지 펼치면서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국내 관련 산업 기반의 취약은 값싼 외국산 부품의 국내 시장 잠식을 불러왔다. 그나마 경쟁력 있는 몇몇 대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신재생에너지사업도 복지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다. 외부 의존적이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독자적인 비즈니스 생태계의 마련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정부 지원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산업 기반을 점차 갖춰 나가야 한다. 규모의 경제로 민간 기업의 투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얘기다. 제도를 단순히 미세 조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신재생에너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라.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물길을 내 흐르게 해야 한다.구동본

[데스크 칼럼] 납품단가연동제, 상생 촉매제로 삼야야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2021년 (주요정책 부문) 자체평가 결과보고서’를 공개했다.정권교체를 이룬 윤석열 정부의 중기부가 직전 문재인 정부의 중소·벤처기업, 창업기업, 전통시장을 포함한 소상공인 관련 주요정책의 46개 관리과제 성과를 등급별로 매긴 성적표였다.민간평가위원들이 46개 관리과제를 자체평가해 등급을 매긴 결과, 지난해 문 정부의 전반적인 중소기업 정책은 △매우 우수 2개 △우수 9개 △다소 우수 7개 △보통 14개 △다소 미흡 7개 △미흡 5개 △부진 2개의 성적표를 받았다. ‘보통’을 기준점으로 본다면 ‘우수’ 18개, ‘미흡’ 14개다. 민간평가위원들의 ‘채점’이더라도 정권교체 뒤 직전 정부의 ‘흠결’을 찾아내려는 정치권의 ‘루틴(routin·의도적인 반복행동)’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표’이다.윤 정부의 문 정부 중소기업 정책평가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불공정거래 근절을 통한 중소기업 경영환경 개선’ 과제로 평가등급 ‘6등급(미흡)’을 받았다. 수주기업(수급사업자)에 제조원가를 밑도는 납품단가 요구, 중간 유통·판매 비용의 전가, 특허기술 탈취 등으로 중소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발주기업(원사업자)의 갑질행위를 근절·개선시키려는 정부(중기부)의 지난해 정책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였다.수주기업들은 원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이전 역대정부 때부터 개선과 시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과 개선을 요구하는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핫이슈가 ‘납품단가 연동제’이다.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사업와 수급사업자간 하도급 및 위·수탁거래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하는 조항을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국내외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고정단가 계약으로 제조원가에 상승비용을 반영하지 못해 ‘출혈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개선 요구와 연동제 도입을 촉구하면서 지난 2008년부터 입법 논의가 진행됐으나 성과는 없었다.윤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의지를 피력했고, 당선 뒤 중기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주도로 지난 9월 초 표준약정서를 마련하고 6개월간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진전을 보였다. 입법화도 여야 모두 적극성을 띠고 있어 연내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다만, 걸림돌이 있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납품단가 연동제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간 자율계약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중소기업계는 자율계약보다는 법제화를 통한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5월 중소 제조기업 209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를 원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발주(갑)와 수주(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에서 자율의 게임룰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불신감의 반영이었다.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원사업자들은 납품단가 연동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국민여론과 정치권을 의식해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대신 연동제 도입이 기업간 사적 계약임을 강조하며 ‘의무화(법제화)’를 반대하고 있다.이처럼 정부와 국회, 이해당사자들 간 견해차가 있기에 시범운영 평가와 입법화 과정에서 이견 조정이 필요하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6개월간 시범운영을 거쳐 시행과 제도 안착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를 슬기롭게 치러야 한다.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14년을 끌어온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더라도 산업계의 위기 극복에 작은 ‘상생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에너지경제신문 이진우 성장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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