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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핵심 집권전략은 지지층을 넓히는 것이다. 새 지지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산토끼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산토끼를 누가 많이 잡느냐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입장에서야 산토끼든 집토끼든 모두가 소중하다. 둘 다 잡기도 말처럼 쉽지 않다. 다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 현실정치에선 산토끼보다 집토끼를 잡는 게 더 중요하다.
남의 표를 끌어오기보다는 우리 표를 빼앗기지 않는 게 우선이다.이 원칙은 우리 정치 지형과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의 기본적인 이념성향은 대략 보수와 진보가 각각 45%대 45%이고 나머지 10%는 중도다.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양당 중심 체제라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성향도 그 비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역대 선거 결과가 그랬다. 선거 때 후보 경쟁관계, 이슈 등에 따라 이 비율이 조금씩 조정돼 어디 한 쪽으로 기울면서 승부가 결정 났다.
이념 성향은 좀처럼 상대 진영으로 바뀌지 않는다. 특정 진영 지지자가 해당 진영에 실망했다고 해서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냥 중도로 대기하고 있다가 그 실망 요인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 진영으로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표를 지키려면 상대 당을 거세게 몰아붙여 우리 표를 다지는 게 효율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통해 우리 측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방어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각 정당들은 이처럼 각 진영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이른바 ‘가두리 정치’를 해왔다. 가두리 정치는 국민들을 한 쪽 진영에 묶어두고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넓은 바다나 강 등에 그물을 치고 그 그물 안에 물고기를 가두어 기르는 가두리 양식처럼 말이다.
고상하게 말하면 심리학의 인지부조화이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신념·태도·행동이 서로 맞지 않으면 느끼게 되는 불편감을 줄이려고 하는 심리를 이용, 가두리 정치로 개인의 기존 신념·태도·행동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정치권은 이 가두리 정치를 위해 특정 프레임을 짜 갈라치기한다. 지역·세대·계층 등의 편을 갈라 상대방을 적으로 몰면서 자기편을 열광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개딸’(개혁의 딸), 문재인 전 대통령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박근혜 전 대통령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등이다.
처음엔 단순히 누구를 사랑하는 지지모임이었던 게 해를 거듭하면서 상대를 배격하는 극단적인 세력으로 자리잡아왔다. 실제 개딸이 얼마 전 같은 진영 내 다른 세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박’(겉과 속이 다른 인물) 색출에 나선 적도 있다.
특정 정치인의 팬덤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이어져오던 대중스타 지지세력 ‘오빠부대’ 현상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16대 대선 때 정치권으로도 옮겨왔다.
정당 또는 정치인은 최근 들어 당초 거리를 둬온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현상)에 의존, 진영을 결집시키고 세력을 확장한다. 가두리 정치를 위해선 가짜뉴스·괴담 등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선동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자극적이고 일방적인 입장을 전달하며 수퍼챗(라이브방송 직접 후원 기능) 수익 등 실속을 챙기는 유튜버들이 활개를 치게 한다.
그 사이 국민의 사실 접근이 방해받고 과학적 사고가 마비된다. 당연히 사회혼란을 부르고 국력은 낭비될 수밖에 없다. 과거 유모차 부대를 거리로 나서게 하고 촛불집회를 요란하게 열었던 광우병 사태 등의 결과가 어땠나. 정치권은 그 혼란과 피해를 국민에게 안겨주고도 책임지는 사람 아무도 없이 가두리 정치의 또 다른 이슈로 희생양 찾기에 정신이 빠져 있다.
가두리 정치 상황에선 각 진영 내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내부 견제 도 이뤄질 수 없다. 민주당은 금태섭 전 의원에 본때를 보여줬다.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처리의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한 게 죄목이다.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가 조리돌림 당한 뒤 내쳐졌다. 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고도 윤 대통령을 수차 공개 저격한 이유로 미운털이 박혔다.
가두리 정치의 원조 수단은 지역감정이다. 정치의 지역감정 악용은 국민의 의식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영남·호남·충청 등의 정치색은 각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이 사실상 결정했다. 그런 정치색은 3김이 모두 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데도 그 그림자가 아직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보수정권은 안보·성장, 진보정권은 환경·복지를 프레임으로 내걸어 유권자들을 각 진영에 가둬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 바로 북풍(北風) 카드 등으로 하락세였던 지지율의 반전을 시도했다. 2020년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2019년 탈북 어민 북송사건 등 대응과정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대북 강경대응 노선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까지 언급하며 안보의식 고취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이슈화로 자신의 ‘사법리스크’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여권으로부터 ‘괴담’ 전파의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대일관계 개선 행보를 비판하는데 화력을 모으고 있다. 장외투쟁까지 주도하면서 오염수 관련 ‘핵 폐수’, ‘방사능 테러’ 등으로 규정했다. 오염수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전문가들엔 ‘돌팔이’란 딱지를 붙였다.
각 진영은 가두리 정치에 빠져 보수는 평화논의의 판을 걷어찼고 진보는 먹거리 밥상을 뒤엎었다. 정치권이 가두리 정치에 매몰돼 안보나 먹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 대해선 마땅히 준엄한 심판이 따라야 한다.
양 진영이 총력을 쏟고 있는 가두리 정치의 효과는 갈수록 작아진다. 일방적인 대북 강경정책은 안보 불안의 역효과를 키우고 감성적인 일본 오염수 반대론은 거꾸로 먹거리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북한이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 것이나 개방경제에서 어처구니없는 소금 사재기가 일어나는 게 그 사례다.
국민들도 가두리 정치에 이제 점차 등을 돌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양 진영이 그토록 공을 들인 안보 팔이 또는 안전 장사의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아직 가두리 정치에서 벗어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진영 간 갈등·대립·반목·분열만 갈수록 커져갈 뿐이다. 그냥 서로가 앞으로 나란히다. 각자 앞만 보고 제 갈 길만 간다는 뜻이다. 옆을 보고 대화와 타협을 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본령은 이미 실종됐다. 아니 죽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넘기고도 아직 원내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만나 둘이 밥 한 번 먹은 적 없다. 그런 우리 정치에 뭘 기대하겠나.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은 사사건건 국회에서 막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개혁에서 식물정부나 다름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어떤 이유로도 온당치 않다.
결국 국민들이 똑똑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사실 확인과 과학적 사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객관적이면서 공정한 시각으로 유연한 입장을 갖는 게 필요하다. 사실 진영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다. 가두리 정치에 갇혀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그 상처와 피해는 깊고 넓었다.
국민은 선거 때만 되면 주권자로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가두리 정치에서 국민은 한낱 물고기일 뿐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대리인, 바로 정치인이 양식하는 그 물고기 말이다. 그저 정치인 낚시나 양식의 대상인 셈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불쾌하고 참담한 일이다. 국민이 그런 물고기 신세 안 되려면 정신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