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변화로 인해 국지성 호우와 집중 강우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비가 다시 온실가스 배출을 부추길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가 오면 전체적으로 시민들의 외출이 줄어들지만, 대중교통 대신 승용차를 선택하는 비율이 일정 수준보다 높아진다면 오히려 도시 전체의 탄소 배출 효율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시민들의 이동 방식이 도시의 온실가스 배출 구조를 흔드는 셈이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황진욱 교수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종합 환경 과학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은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2024년 한 해 동안 부산광역시의 대표적인 도심 지역인 부산진구와 해운대구를 대상으로, 강수량 변화가 교통수단별 이용량과 온실가스 배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밀 분석했다. 이 연구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의 장진혁 연구원 등도 참여했다. ◇비가 오면 통행량은 줄지만, 1인당 탄소 배출은 증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강수량이 늘어날수록 도시 전체의 통행량은 뚜렷이 감소했다. 비 오는 날에는 외출과 이동 자체를 줄이는 시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이는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통수단별 '날씨 민감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강수량이 1% 증가할 때, 버스 이용은 평균 3.4%, 지하철 이용은 2.7% 감소한 반면, 승용차 이용은 1.3% 감소하는 데 그쳤다. 즉, 비가 오면 대중교통 이용은 크게 위축되지만, 승용차 이용은 상대적으로 잘 줄지 않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이 차이는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1㎞를 이동할 때의 탄소 배출강도(1PKM)는 승용차 이용시 132.80g이었다. 이는 버스 이용시 30.69g, 지하철 이용시 31.38g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연구팀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비로 인해 줄어든 대중교통 이용자 가운데 약 10~12%만 승용차로 이동 수단을 바꿀 경우 전체 통행량 감소로 얻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완전히 상쇄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총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탄소 배출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비가 오는 날 대중교통 이용자가 줄고 승용차 비중이 높아질수록, 도시 교통 시스템의 평균 탄소 효율은 빠르게 악화되는 셈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 1인당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버스나 지하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탓이다. ◇“집에서 정류장까지"의 불편함이 만든 선택 비 오는 날 시민들이 승용차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로 혼잡 그 자체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전 단계에서의 불편함이다. 집에서 정류장이나 역까지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에 노출되는 경험, 젖은 우산을 들고 승차하는 불편 등이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게 만든다. 승용차는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비를 거의 맞지 않는 '도어 투 도어(Door-to-door)' 이동이 가능하지만, 대중교통은 접근 단계와 대기 단계에서 날씨 영향을 직접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류장에 비 가림 시설이 부족하거나, 환승 동선이 길고 비에 노출돼 있을수록 이러한 기피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비 오는 날 도로가 더 막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 역시 단순히 차량 수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빗길에서는 시야가 제한되고, 노면 마찰이 줄면 운전자들이 미끄러짐 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한 감속 운전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 차량 주행 속도가 낮아지고, 교통 흐름의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차량이 같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더 많은 연료가 소모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난다. ◇'기후 적응형 교통 체계' 없이는 탄소 중립도 흔들린다 이번 연구는 날씨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행동 변화가 교통 부문의 탄소 배출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단순한 교통 이용 변화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정책 과제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비가 잦아지는 미래 기후 조건에서는, 대중교통 이용 감소를 전제로 한 기존의 탄소 감축 전략이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후 적응형 교통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버스 정류장과 보행 접근로에 비 가림막과 스마트 쉘터를 확충해, 집에서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의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단순한 시설 개선이지만, 대중교통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또한 비나 폭우로 인한 지연 상황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정보 제공 체계를 강화해,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불확실한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는 악천후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이나 소규모 셔틀, 공유 모빌리티를 대중교통의 보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승용차로의 급격한 쏠림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DRT는 이용 수요에 따라 노선·정차지점·운행시간이 유연하게 바뀌는 교통 서비스, '필요할 때 호출하면 움직이는 대중교통'을 말한다. 아울러 주거지와 생활 시설, 교통 거점 간 거리를 줄이는 콤팩트 시티 구조는 날씨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탄소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연구팀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교통 시스템은, 비가 오는 날마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구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서 “기후 적응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고려한 교통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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