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강풍이 불었던 제주공항에서는 국내선 105편이 결항했고, 지연 운항도 이어졌다. 국제선 3편은 강풍으로 착륙하지 못하고 회항했다. 이처럼 강풍으로 인해 항공기가 결항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기상 문제로 항공기가 10분 늦게 출발한다면 승객 한 사람에게는 큰 불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000명이 넘는 승객이 한꺼번에 공항에서 발이 묶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후변화로 극한기상이 잦아지면서 항공기 지연으로 승객들이 잃어버리는 '시간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와 김선호 연구원은 최근 '한국 김포~제주 항공노선의 극한기상에 따른 항공편 지연과 사회적 비용'이란 제목의 논문을 최근 국제 학술지 '항공 운항 관리 저널(Journal of Air Transport Management)'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07년 1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김포~제주 항공편과 기상 자료를 분석했다. 김포~제주 노선은 2017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국내 항공노선으로 꼽힌다. ◇김포는 강풍, 제주는 폭설에 취약 분석 결과, 두 공항에서 항공기 출발 지연을 유발하는 '약점'이 달랐다. 김포공항에서는 강풍이 평균 약 8.94분의 추가 지연을 일으켜 영향이 가장 컸다. 집중호우는 평균 1.56분, 폭설은 1.36분, 한파는 0.82분의 추가 지연과 관련이 있었다. 제주공항에서는 강풍이 평균 3.54분, 폭설이 3.39분의 추가 지연을 유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제주에서 바람이 더 강한데도 강풍 지연은 김포가 더 길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활주로 방향과 측풍, 기상 대응 인프라 차이에 주목했다. 풍향·풍속을 나타내는 풍향도, 즉 '바람 장미'를 보면 제주공항은 북서풍이, 김포공항은 남서풍이 우세하다. 제주공항 활주로는 동-서 방향, 김포공항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설치돼 있어 강풍이 불 때 활주로 옆에서 부는 측풍(crosswind) 조건에 빈번하게 노출돼 항공기 이착륙 지연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주공항은 2001년부터 11개 원격 센서를 갖춘 저층 윈드시어 경보시스템(LLWAS)을 운영해 왔다. 반면 김포공항에는 이같은 시스템이 없었다. 눈이 내리는 경우는 반대다. 김포공항은 제주보다 제설 장비를 더 많이 갖춰 폭설에 따른 지연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같은 날씨라도 공항이 무엇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승객이 기다리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승객 1240명이 잃은 '9분의 값'은 1400만원 연구진은 항공기 지연으로 승객이 잃어버린 시간을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했다. 여기서 사회적 비용은 항공사의 손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출장이 늦어 업무 시간이 줄거나, 관광객의 여행 시간이 짧아지고, 휴식과 개인 일정에 쓸 시간이 사라지는 데 따른 승객들의 '기회비용'을 합친 것이다. 연구진은 기존 항공 여행시간 가치 연구 12건을 분석해 승객 1명의 평균 시간 가치를 시간당 57.07달러로 추정했다. 업무 목적 승객은 103.87달러, 여가 목적 승객은 51.87달러였으며 김포~제주 승객 비율을 업무 10%, 여가 90%로 적용했다. 김포공항에서 강풍이 불면 승객들은 기상 영향으로 평균 약 9분을 추가로 잃는다. 연구진은 시간당 평균 승객 1240명을 적용했다. 계산 결과(1240명 × 시간당 57.07달러 × 0.15시간)는 1만615달러, 약 1400만원이다. 만일 강풍으로 인한 출발이 더 지연된다면 손실은 더 커진다. 제주공항에서는 강풍으로 약 3.6분의 추가 지연됐을 때 승객의 시간 가치 약 4246달러가 사라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실제 손실은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승객이 몰리는 피크 시간대라면 같은 9분 지연이라도 피해를 입는 승객이 늘어나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계산에는 결항·회항으로 인한 손실이나 추가 숙박비, 교통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향후 연구에서는 이런 비용까지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포에는 '바람 감시', 제주에는 '제설'에 투자 필요 승객 한 사람이 잃어버린 평균 9분의 시간은 작아 보인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국내 항공노선에서 수천, 수만 명이 반복해서 시간을 잃는다면 거대한 사회적 비용이 된다. 이 때문에 공항에서도 승객의 시간을 지키는 투자가 필요하고, 공항 특성에 따른 맞춤형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포공항은 강풍과 측풍, 저층 윈드시어를 정밀하게 감시하는 기상 관측·경보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제주공항은 제트 스위퍼와 스노 블로어 등 제설 장비와 인력을 확충해 활주로를 더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아울러 전국 공항에 동일한 기상 대응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항별 지형과 활주로 방향, 기상 특성, 대응 능력을 반영한 맞춤형 경보와 대응 체계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