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부 “‘계엄 매뉴얼’ 작성 의혹 중부발전 대상 감사 착수”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3일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중부발전(이하 중부발전)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부결된 직후 '계엄 매뉴얼'을 작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날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는 중부발전이 이른바 '계엄령 선포 시 비상대응 조치계획'을 제정했다는 일부 보도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문건이 작성된 시점은 지난 2024년 12월 10일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일주일 후이자 국회에서 첫 번째 탄핵 소추안이 부결된 지 불과 사흘 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부는 특히 △조치계획 제정 경위 △상부의 부당 지시 여부 △개정 내용의 중대성 등을 객관적으로 조사해 부적절한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후부 김성환 장관은 “이번 사건은 지난 2월 마무리된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활동 과정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던 중요한 사안"이라면서 “신속한 감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다른 산하 공공기관들에 대해서도 계엄 관련 협조나 지침 작성 여부를 면밀히 전수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부발전의 비상계획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매뉴얼에는 계엄법을 근거로 계엄사령부의 '징발' 권리와 '군사적 용도 물품 반출 명령' 가능성 등이 명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평시 비상상황'과 '전시 상황'을 구분해 대응 방침을 세웠고,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발령과 같은 상황 발생했을 때 계엄사령부 및 정부 지침에 따라 대응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한편, 당시 문건을 작성한 중부발전 관계자는 “계엄령이 또 있을 것 같아 나중에라도 대비하기 위해 부하 직원과 상의해 기안한 것이고, 윗선의 지시는 없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권향엽 의원 등은 “윤 전 대통령의 2차 계엄을 염두에 둔 체계 마련이 아니었는지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호르무즈 봉쇄 충격파 북극항로로 해결?…손실 만회 고작 2% 그쳐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면서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 구조가 가진 치명적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울러 북극항로가 한국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우회 항로가 될 수 있는가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우회 항로를 찾으면 된다"는 막연한 통념에 제동을 걸면서, 한국이 근본적으로 에너지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연구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연구는 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윤홍식 교수와 영국 리즈대학교 김지성 박사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최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대안으로 거론되는 북극항로(NSR)의 실질적인 완화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대한민국, 호르무즈 위기의 '최전선'에 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요충지(Chokepoint)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68~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해협이 봉쇄되면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연구진은 한국과 일본을 “호르무즈 의존도가 가장 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권"으로 규정했다. 연구팀은 봉쇄가 4~6주 지속되는 중기 시나리오(S2) 하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은 약 382억 달러(약 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단순히 유가 상승의 문제를 넘어 정유·석유화학의 생산비 상승, 전기요금 및 물류비 급등으로 이어지며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흔든 결과다. 특히, 물가가 오르는 동시에 생산이 위축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압력이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북극항로의 실체: “게임체인저"가 아닌 “제한적 보험" 대한민국 입장에서 호르무즈 봉쇄 시 수에즈 운하보다 거리가 짧은 북극항로가 대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지만, 연구 결과는 냉정했다. 북극항로를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전 세계 경제 손실 상쇄율은 1.1~3.6%에 불과했고, 한국의 손실 완화 효과 역시 2.4%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평가됐다. 즉, 50조 원의 손실 중 고작 1조 원 남짓을 줄이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북극항로가 기존 공급망을 대체하기에는 명확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한계 보험(Marginal Insurance)'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구체적으로는 △계절적 요인과 얼음 상태에 따라 운항 일정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물리적·환경적 제약이 있고 △대규모 비상 수송을 감당할 항만 및 보급 시설이 미비하고 △내빙선(耐氷船) 확보와 쇄빙선 호위료, 특수 보험료 등 추가 비용 발생하며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나 외교 갈등 시 활용이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이다. 북극항로 활용에 따른 환경 비용도 심각하다. 북극항로 운항 확대는 일반 탄소보다 위험한 블랙카본(Black Carbon) 배출을 늘려 북극의 해빙을 가속화할 수 있다. 얼음 위에 검뎅이 내려앉으면 빛 반사도(알베도)를 낮춰 얼음이 더 잘 녹아내린다. 이같은 환경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북극항로의 순편익은 다시 3~6% 가량 줄어든다. ◇'에너지 구조 전환'이 유일한 해법 연구진은 논문에서 “한국의 경우 화석연료 의존 자체를 줄이지 않고 항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밝혔다. 북극항로에 과도하게 기대기보다 단기-중장기 '이중 전략(Dual Strategy)'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기적으로는 전략 비축유를 늘리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며, 액화천연가스(LNG) 장기계약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산업 및 운송 부문의 전기화를 추진하고, 에너지 효율 혁신 및 저장기술 등에 대한 투자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과거 오일쇼크가 산업구조 전환의 계기가 되었듯 지금의 호르무즈 봉쇄 위기를 한국이 탄소중립형 에너지 독립국가로 나아갈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전력난민”만 남긴 일본 자율화?…진짜 교훈은 따로 있다

이달 5월 4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펴낸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에 일본 전력 소매시장 자율화 10년의 명암을 정리한 간행물이 실렸다. 사흘 뒤 한 일간지는 이를 “소비자 선택권 커졌지만 위기 땐 흔들"이라는 제목으로 받아 적었다. 706개에 이르던 소매전력사업자 가운데 4분의 1이 사업을 접었고, 일본 사회에는 '전력난민'이라는 낯선 어휘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글을 읽는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어렵지 않게 한 줄의 결론이 새겨질 것이다. “자율화가 결국 사달을 냈다"고. 그러나 이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다 통나무라고 결론짓는 거와 같은, 가장 손쉽고 위험하며 숨은 의도가 의심되는 결론이다. 먼저 위 논문의 본문은 오히려 일본 자율화의 성과 가운데 매우 고무적인 사실을 제시하였다.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기를 제외하면, 일본의 자유요금은 줄곧 규제요금보다 저렴하게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자율화 옹호론의 단골 주장이 아니라, 평상시의 시장 경쟁이 가격 하락 효과를 실제로 만들어냈다는 실증이다. 신규 사업자 761개 진입, 결합상품과 재생에너지 특화요금제 같은 혁신의 출현, 가정용 시장에서 신규 사업자의 23% 점유 또한 같은 성과의 다른 얼굴이다. 현재 독점화된 국내 시장 하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본문에 또렷이 적시한 것은 해당 보고서의 큰 기여이다. 문제는 그 정직한 본문과 달리 결론·헤드라인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 등 예외적 상황에서 도매가격이 폭등할 때 소매전력사업자들이 왜 그 충격을 흡수하지 못했는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거의 없이 단지, “역마진구조를 견디지 못하고 연쇄 파산했다"는 단 한 줄로서 결론은 곧장 “한국의 소매시장 개방은 신중해야 한다"로 미끄러진다. 물론 본문과 결론·헤드라인이 이렇게 어긋나는 국책연구기관의 여러 간행물들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언론과 국민의 공감대 방향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건가 싶은 이러한 경우에는 독자의 입장에선 잘못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사실 우리는 정답을 직접 경험까지 한 바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그것이다. 당시 종합금융사와 시중은행들은 국제시장에서 단기로 값싸게 달러를 빌려 와, 동남아의 장기채에 비싸게 굴렸다. 만기는 어긋나 있었고 통화 위험은 헷지되지 않았으나, 평상시 마진은 두둑하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태국 바트가 무너지자 단기외채의 롤오버가 막혔고, 차입 비용이 운용 수익을 추월하는 역마진이 한순간에 폭발하였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책망하였던가. 외환자유화 자체를 죄로 묻지 않았다. 외환보유고를 쌓고, 통화스와프 라인을 정비하고, 외환선물시장의 깊이를 키우고, 단기외채 비율을 감독하는 길을 택하였다. 만약 그때 우리가 “자유화가 위험하니 다시 닫자"고 결단했다면 어떻게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일본 소매전력사업자가 좌초한 메커니즘은 이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자체 발전설비 없이 도매시장(JEPX)에서 사 와 소매로 파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으니, 평상시 마진은 두둑했다. 그러나 2020년 겨울 한파와 LNG 부족이 겹치고, 곧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도매 현물(spot)가격은 평시 6엔에서 한때 250엔까지 무려 삼사십 배로 치솟았다. 자체 전원이 없으니 위험을 흡수할 곳이 없었고, 선물·선도시장이 얕으니 헷지할 도구도 없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인밸런스(Imbalance) 정산 제도다. 도매에서 못 사들인 부족분은 송배전망이 메워주되, 그 대가로 시장가보다 비싼 패널티가 청구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 패널티가 시장가에 연동되어 있어, 가격이 폭등할수록 페널티는 더 가파르게 치솟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전력소매판매자들 모두가 “오늘 비싸게라도 사두지 않으면 내일은 더 비싼 페널티"라는 죄수의 딜레마에 강제로 떠밀려, 어제보다 높은 값을 부르며 입찰에 뛰어드는 혼란이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즉 통화(currency)시장의 가격 · 만기(duration) 시차 불일치가 전력시장 버전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골격은 1997년 그대로다. 그러므로 일본 소매전기사업자의 좌초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자유시장 자체 위험이 아니라, 개별 기업들의 탐욕으로 초래된 차익거래(arbitrage) 전략 혹은 이에 대비한 공적 헷지 장치의 부족이 핵심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년 3월의 검증보고서에서 정직하게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향후 방향으로 장기 PPA·선물·기저부하 시장의 확충, 소매사업자의 공급력 책임 강화, 인밸런스 정산방식의 비용기반 재설계를 천명했다. 자율화를 후퇴시키는 길이 아니라 자율화의 토대를 두텁게 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도 역시 “개방하지 말라"가 아닌 것이다. 1997년 우리는 외환시장 자유화를 죄로 묻지 않고 그 토대를 다지는 길을 택하였고, 그 선택이 오늘날 원화 시장의 깊이를 빚어내었다. 일본 소매전력시장의 좌초는 우리에게 자유화를 단념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자유화의 보완장치를 미리 갖추라는 신호다. 위기시에도 누가, 어떤 조건으로, 어떤 가격 상한 안에서 위기 시 수용가를 받아주는지를 정해주는 최종공급자(Last Resort Supplier) 제도 등으로도 이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bienns@ekn.kr

“12분 생존 골드타임”…극한 호우시 ‘긴급재난문자’ 발송

올여름부터 시간당 100mm 이상의 극한 호우가 예상될 경우 시민들에게 호우 발생 12분 전에 '재난성 호우 긴급재난문자(CBS)'가 발송된다. 기후위기로 갈수록 심해지는 집중호우와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호우·폭염 특보 체계를 전면 개편됐다. 기상청과 행정안전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동 정책설명회를 열고 '2026년 여름철 자연재난 종합대책 및 방재기상대책'을 발표했다. 새 체계는 다음달 1일부터 시범 운영된다. 최근 이상 기후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시간당 100mm 이상 집중호우 발생 빈도는 1970년대 대비 약 3배 증가했고 폭염과 열대야 일수 역시 2~3배 늘었다. 지난해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보다 15% 적었지만 시간당 100mm 이상의 극한 호우는 16차례 발생했다. 이날 경남 남해군 이동면 일대에는 올해 첫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지난해 첫 발송일인 5월 16일보다 4일 빨라진 것으로, 5월부터 이른 극한 호우가 발생하고 있다. 새롭게 편성된 CBS는 시간당 85mm 이상이면서 동시에 15분 강수량 25mm 이상이 관측되거나, 시간당 100mm 이상 호우가 예상·관측될 경우 발송된다. 기존 호우 긴급재난문자보다 한층 강화된 최고 수준 경보다. 읍·면·동 단위로 발송돼 주민들에게 즉각적인 대피 필요성을 알리게 된다. 연혁진 기상청 예보국장은 “시간당 85mm와 동시에 15분 25mm 이상 강수가 확인될 경우 실제 시간당 100mm 도달 전 평균 12분 정도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금 즉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재난성 CBS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시간당 100mm 이상 폭우에서는 인명피해 발생률이 97%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단순 사후 경보를 넘어 사전 대비까지 가능하도록 '5단계 호우 대응체계'도 처음 가동한다. 호우 발생 2~3일 전 제공되는 '호우 발생가능성 정보'를 시작으로 △호우예비특보 △호우주의보 △호우경보 △긴급재난문자로 이어지는 단계별 대응 체계다. 수도권에서는 호우특보 해제 예상 시점을 안내하는 '호우특보 해제 예고제'도 시범 운영된다. 폭염 대응 체계도 강화된다. 정부는 기존 폭염경보보다 높은 단계인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다. 일최고체감온도 38℃(도) 또는 일최고기온 39도 이상이 하루 이상 예상될 경우 발령된다. 밤 최저기온이 일정 기준 이상 유지될 경우 발표되는 '열대야주의보'도 함께 시범 운영된다. 연 국장은 “체감온도 38도는 온열질환자가 급증하는 임계 온도를 고려해 설정한 기준"이라며 “38도 이상에서는 외부 기온이 체온보다 높아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폭염중대경보 발령 시에는 '멈춤·이동·확인' 행동 수칙이 안내되고 고용노동부와 협업해 옥외 작업 중지도 적극 권고할 방침이다. 현장 대응 체계도 대폭 강화된다. 행안부는 올해부터 읍면동장이 직접 대피 명령을 내리는 체계를 운영한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서 약 9만4000명의 '주민 대피 지원단'이 운영된다. 특히 고령자 등 자력 대피가 어려운 주민들을 대상으로 1대1 매칭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용균 행안부 자연재난실장은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읍면동장 주도의 신속한 대피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하연·이현진 인턴기자

신규 댐 대신 ‘숨은 물그릇’ 활용…홍수조절 용량 최대 10% 확대

정부가 신규 댐을 건설하기 보다 기존 농업용 저수지와 수력·양수발전댐의 '숨은 물그릇'을 최대한 활용해 여름철 홍수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기후변화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기존 시설 운영 방식을 바꿔 홍수조절 능력을 최대 10%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1차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6년 여름철 홍수대책'을 보고했다. 이번 대책은 신규 댐 건설이 아닌 물그릇 확보와 인공지능(AI)·디지털트윈(DT) 기반 예측 체계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우선 농업용 저수지와 발전댐, 하굿둑 등을 활용해 기존보다 추가 홍수조절용량을 확보하기로 했다. 전체 홍수조절용량은 기존 108억2000만톤에서 118억6000만톤으로 최대 9.6%(10억4000만톤) 늘어난다. 이는 한탄강댐 약 3개 규모의 홍수조절 효과와 비슷한 수준으로 신규 댐 건설 없이 약 4조원의 예산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기후부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업해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농업용 저수지의 활용 범위를 확대한다.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는 범위에서 사전 방류 등을 실시해 홍수조절용량을 기존 6억4000만톤에서 최대 10억6000만톤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금강·영산강·낙동강 하굿둑과 아산만 방조제 역시 운영 기준을 조정해 추가로 1억5000만톤 규모의 물그릇을 확보한다. 기후부는 지역별 강우 상황과 상류 댐 방류 현황 등을 종합 분석해 홍수 위험이 커질 경우 사전 방류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또 홍수통제소의 수문 방류 승인 대상을 기존 38곳에서 58곳으로 확대해 저수지·하굿둑·댐을 연계한 통합 대응 체계도 강화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수력발전댐과 양수발전댐도 홍수 대응에 적극 활용된다. 수력발전댐의 홍수조절용량은 기존 3억8000만톤에서 최대 8억5000만톤 수준으로 확대된다. 강우 예보 시 미리 수위를 낮추는 방식으로 추가 물그릇을 확보하는 구조다. 양수발전댐은 강우 예보 전에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리는 방식 등을 통해 총 3000만톤 규모의 추가 홍수조절용량을 확보한다. 정부는 AI 기반 예측 체계도 강화한다. 올해 처음 도입되는 도시침수예보는 서울 강남역과 신대방역 일대 등 6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침수 범위와 수심을 사전에 예측해 '침수주의보'와 '침수경보'를 발령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소방당국이 출입 통제와 차수판 설치 등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I 홍수예보 시스템도 고도화된다. 레이더 기반 초단기 강수예측 모델의 적용 범위를 남한 내륙에서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고, 해상도 역시 8㎞에서 1㎞ 수준으로 세분화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홍수특보 발령 시간을 앞당기고 주민 대피 시간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홍수 위험 지역과 하천·하수도 시설에 대한 집중 점검도 병행한다. 기존 안전안내문자로 발송되던 홍수 '심각' 단계 정보는 최대 음량으로 전달되는 긴급재난문자로 격상해 발송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기존 댐과 저수지, 하굿둑을 최대한 활용해 홍수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것은 수조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례"라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물티슈의 불편한 진실…“안 풀리고, 안 썩고, 일부는 생태 독성까지”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한 생활용품 가운데 하나인 물티슈가 심각한 환경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물에 잘 풀리지 않아 하수관을 막고, 토양에서도 쉽게 분해되지 않는 데다, 일부 제품은 수생 생물에 치명적인 독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강원대 환경공학과 박정안 교수팀이 최근 '한국물환경학회'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 '시중 물티슈의 물 풀림성, 생분해성 및 급성 독성 비교 평가'를 통해 확인됐다. 연구팀은 국내에서 시판 중인 15종의 물티슈를 대상으로 물속 분해 특성, 토양 생분해성, 수생 생태 독성을 종합 분석했다. 물티슈를 생분해성 제품군, 청소용, 미용용, 유아용, 일반용 등 5개 그룹으로 나눠 실제 환경 조건에 가까운 실험을 진행했다. ◇물에 풀리지 않고 토양에서도 사라지지 않아 가장 먼저 확인된 문제는 물에 잘 풀리지 않는 구조였다. 국제표준 시험방법(ISO 12625-17)에 따라 실시한 물 풀림성 시험 결과, 상당수 제품은 600초 동안 강하게 섞어도 10% 이하의 낮은 분해율을 보였다. 특히 일반 물티슈와 유아용 제품 상당수는 거의 형태가 유지됐다. 이는 소비자가 변기에 버렸을 때 하수관 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잔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제품의 주원료가 종이가 아니라 폴리에스터(PES)와 폴리프로필렌(PP) 같은 합성 고분자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면(Cotton) 기반 일부 생분해성 제품은 상대적으로 물에 잘 풀렸다. 그러나 '생분해성' 표시가 붙은 제품 가운데서도 물에 거의 풀리지 않는 사례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친환경 마케팅 문구만으로 제품의 실제 분해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토양 분해 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42일 동안 토양에 매립한 뒤 무게 감소율을 측정한 결과, 면과 셀룰로오스 기반 제품은 최대 80~90% 이상 분해됐지만, 합성섬유 기반 제품은 형태가 거의 유지됐다. 특히 PE와 PP 제품은 초기 상태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낮은 분해성을 보였다. 전자현미경 분석에서도 셀룰로오스 섬유는 미생물 작용으로 표면이 붕괴된 반면, 합성섬유는 매끄러운 표면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이들 소재가 장기간 토양에 잔류하며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분해성'도 안심할 수 없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은 결과는 급성 독성 시험이었다. 연구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큰물벼룩(Daphnia magna)을 이용해 물티슈 추출액의 독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일부 미용용 물티슈와 생분해성 물티슈의 추출액에서는 24~48시간 내 100% 폐사했다. 연구진은 제품에 포함된 리모넨(Limonene)과 오렌지 오일 같은 향료 성분이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COSAR 예측에서도 리모넨은 조사된 성분 가운데 가장 높은 생태 독성을 보였다. ECOSAR 예측은 미국 환경보호청(US EPA)의 화학물질 생태독성 예측 프로그램을 활용한 독성 추정 분석을 말한다. 화학물질의 분자 구조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이 물질이 수생 생물에 어느 정도 독성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가"를 예측해주는 모델이다. 반면 실험 대상이었던 일부 유아용 물티슈는 전체 농도에서 치사율 0%를 기록했다. 독성 차이는 원단이 아니라 첨가 성분 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생분해성'이라는 표시가 반드시 생태 안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단이 잘 썩더라도 액상 성분에 포함된 향료나 방부제가 수생 생물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번 논문에서 “물티슈의 환경 위해성을 평가할 때 섬유 소재뿐 아니라 화학 첨가물까지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플라스틱 기반 물티슈의 변기 투입 금지, 제품 성분 표시 강화, 실질적인 생분해 인증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규제의 사각지대 이번 강원대 연구는 그동안 '편리한 생활용품'으로만 인식됐던 물티슈가 사실상 플라스틱 폐기물이자 잠재적 생태 독성 물질일 수 있음을 처음으로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입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티슈가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하수 인프라와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환경 문제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월 발간한 '물티슈 환경문제 해소를 위한 입법적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변기에 버려진 물티슈는 하수관 내 기름때와 결합해 거대한 덩어리인 팻버그(Fatberg)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전국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는 협잡물의 약 80~90%가 물티슈 계열이며, 긴급 준설과 펌프 수리 등에 연간 10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2019~2022년 약 32만 톤의 일회용 물티슈가 소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평균 약 8만 톤 수준이다. 이는 연간 200억~320억 장으로,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1.3장꼴이다. 그러나 국내 제도는 아직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물티슈는 화장품법상 인체 세정용 화장품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함유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처럼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에 따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폐기물부담금 부과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이 같은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월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과 국민의힘 김기웅 의원이 각각 물티슈를 환경 규제 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물티슈를 '환경 위해 우려 제품' 또는 '일회용 합성수지 제품'으로 지정해 제조·수입업체에 폐기물 처리 비용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개정안에 대해 신중론을 펴고 있다.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환경 위해 우려 제품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할 수 있다"는 점과 “물티슈를 규제 대상으로 지정할 경우 제조업체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업계 타격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규제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경 피해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산업계 부담을 이유로 규제 확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탈플라스틱 정책 기조와 배치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 판매 금지 추진…소비자가 나서야 반면 해외 주요국은 훨씬 적극적이다. 영국은 플라스틱 함유 물티슈를 하수 인프라와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오염원으로 규정하고, 올 연말 웨일스 지역을 시작으로 제조 및 판매 금지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 조사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판매 제한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은 생산자책임제와 경고 표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 미시간 등 미국과 캐나다 일부 지역도 '변기에 버려도 된다'는 허위성 광고를 제한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물티슈를 더 이상 단순 생활용품이 아닌 환경 위해 제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국제 흐름에 맞춰 단계적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의료·돌봄 등 필수 사용 영역은 예외로 두더라도, 일반 소비재 물티슈는 플라스틱 함유 여부를 명확히 표시하고 생산자 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도 중요하다. 규제가 늦어지는 동안 소비자가 먼저 나서 실천할 수도 있다. △물티슈를 변기에 버리지 않는 것 △'생분해성' 표시만 믿지 않고 성분표를 확인하는 것 △가능하면 손수건과 행주 같은 다회용 대체품을 사용하는 것 등이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꼽힌다. 작은 생활 습관 하나가 하수 인프라 부담을 줄이고, 미세플라스틱 발생을 막고, 수생 생태계를 보호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인터뷰] ‘환경 노벨상’ 김보림의 탄식 “국회, 기후위기 해결 의지 있나”

“국회가 (기후위기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숙의결과를)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깎아내리고 있다. 시민들은 기후위기에 당장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놨는데 결정은 또 다시 소수 의사결정권자의 몫이 됐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난 8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기후특위 공론화위원회의 숙의 결과가 실제 입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환경·시민단체가 제기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위헌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판결을 냈다. 헌재는 법에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존재하지만 2031~2049년 중간 감축 목표가 없어 이것이 미래 세대의 환경권,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김 활동가는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4년 반 동안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간 끝에 아시아 최초로 정부의 미온적인 기후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재 판결을 끌어냈다. 그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20일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2026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수상은 1995년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후 31년 만이다. 골드만 환경상은 1989년 미국의 자선가 리처드와 로다 골드만 부부가 제정한 상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환경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매년 전 세계 6개 지역에서 풀뿌리 환경운동가를 선정하며, 수상자에게는 각각 20만 달러(약 3억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국회 기후특위는 위헌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시민 319명을 대상으로 숙의 과정을 진행했다. 그 결과, 77.9%의 동의로 2031~2049년 기간 동안 초기에 더 빠르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도출됐다. 하지만 야당인 국민의힘과 일부 정부 부처에서는 이같은 숙의 결과에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말 종료되는 국회 기후특위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활동을 끝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활동가는 이런 국회의 모습에 무척 실망하고 있다. 헌재 판결 이후에도 정치권의 대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권이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은 인정됐지만, 결국 다시 국회의 자발성에만 기대는 구조가 됐다"며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너무 포괄적이라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가 기후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2018년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당시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오래된 주택에서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111년 만의 폭염으로 새벽에도 숨이 막힐 정도의 더위가 이어졌고, 함께 살던 어머니의 건강까지 걱정해야 했다. 이후 비슷한 환경의 노후 주택에서 중년 여성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가족의 안전조차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기후행동'을 조직해 거리와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한 캠페인과 요구만으로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결국 사법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정부의 자발성에 기대는 것은 우리의 안전을 담보해주지 못한다고 느꼈다"며 “실질적인 법적 강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후소송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소송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청소년은 30여 명 수준이었지만, 그는 기후위기가 미래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더 다양한 세대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국을 돌며 원고인들을 모집했지만 소송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시선이 많았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청소년이 원고 자격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 판결을 끌어내고 싶었다"며 “동료들과 변호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돌아봤다. 김 활동가는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취약성에 대한 감각'을 꼽았다. 활동을 이어오며 기후위기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소득 수준과 주거 환경에 따라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불평등의 문제라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위험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골드만 환경상 상금 7만5000달러(약 3억원)는 청소년·청년 기후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청소년·청년들이 환경운동을 중간에 그만두는 걸 봤다"며 “사람들이 계속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운동이 더 커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기후위기 속에서도 누구나 안전할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이어 “전문가나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시민들의 참여도 당부했다. 김하연·이현진 인턴기자

‘존폐 위기’ 수도권매립지공사 노조, 총파업 예고…쓰레기 대란 우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노조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정부의 폐기물 정책을 규탄했다. 이들은 올해부터 인천 매립을 금지한 정책은 지자체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시행한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부지에 공공소각장을 구축하고 공사 역할도 기존 매립 중심에서 공공소각 기능으로 확대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요구안이 들어주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11일 수도권매립지공사 노조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가 수도권 폐기물 처리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공공운수노조와 환경 공공기관 관련 노조 등이 함께 참여했으며, 수도권매립지공사 노조 조합원 등 약 150명이 참석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1월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생활폐기물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알아서 소각 처리하고, 소각 후 발생한 잔재물만 매립지에 매립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정책의 유효기간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 생활폐기물 처리에 충분하다던 공공소각장은 일부 정비 등을 이유로 반입이 제한되자, 결국 다시 매립지를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들은 지난 3월부터 생활폐기물 직매립을 다시 허용했다. 허용물량은 연간 16만3000톤이다. 이는 2023~2025년 연평균 직매립량 52만4000톤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전면 매립 중단을 선언한지 3개월만에 1/3이 허용되면서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이 노조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불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대책없는 정책으로 수도권매립지공사의 역할은 대폭 축소됐다. 인천시는 역할이 줄어든 수도권매립지공사를 인천시로 이관하고 매립지 사용을 완전히 종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이 같은 흐름은 결국 공사를 축소 내지는 해체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매립지를 기존 매립 중심에서 공공소각 기능으로 확대 전환하고, 수도권매립지공사를 '수도권자원순환공사'와 같은 대체 자원 생산 및 연구개발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도권매립지 부지 내 대규모 공공소각장을 건설해 수도권 생활폐기물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노조는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인천시와의 갈등 조정, 인허가 문제 해결, 주민 지원 대책 마련 등에 직접 나서 국가 차원의 폐기물 처리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진욱 수도권매립지공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직매립 금지 정책 시행 이후 수도권 폐기물 처리 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현장 여건을 반영하지 못한 실효성 없는 방안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는공공소각장 확충 책임을 지자체에만 떠넘긴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를 두고 “정부가 폐기물 처리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정책 실패"라며 “수도권매립지는 기능 축소나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자원순환 체계에 맞춰 기능을 재설계해야 할 시설이다. 공사가 보유한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국가 환경 공공기관으로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번 집회 이후에도 청와대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며,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포함한 강도 높은 투쟁도 검토하고 있다. 결국 노조 총파업으로 이어져 노조원들이 매립지 반입을 막을 경우 수도권 쓰레기 대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환경포커스] 호르무즈 막히면 폐플라스틱 더미는 ‘유전’이 된다

최근 미국와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유·석유화학·플라스틱 원료 공급망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계가 주목하는 대안이 있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처럼 쓰는 기술이다. 플라스틱은 본질적으로 석유에서 만든 탄소와 수소의 저장고다. 다시 말해, 이미 땅 위로 꺼내 쓴 탄화수소 자원이다. 이를 태워 없애는 대신 햇빛이나 미생물을 이용해 분해하면 수소와 합성가스, 액체연료, 고부가 화학원료를 얻을 수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두 편의 연구는 이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햇빛으로 플라스틱을 연료로 바꾸는 광촉매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미생물이 스스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리빙 플라스틱' 기술이다. 두 기술 모두 플라스틱 오염과 에너지 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카드로 평가받는다. ◇햇빛 한 줄기로 수소와 디젤 생산 첫 번째 연구는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 화학공학과의 샤오광 두안 교수와 샤오 루 등 연구진이 최근 국제 촉매 분야 저널 '화학 촉매반응(Chem Catalysis)' 에 발표한 것이다. 연구의 핵심은 '광촉매 플라스틱 광개질(photoreforming)'이다. 쉽게 말해, 폐플라스틱을 물속에 넣고 특수 나노 촉매를 더한 뒤 햇빛을 비추면 촉매가 빛 에너지를 흡수해 전자를 들뜨게 만든다. 이 전자가 플라스틱의 탄소-탄소(C-C), 탄소-수소(C-H) 결합을 끊는다. 플라스틱 사슬이 잘게 쪼개지면서 수소(H₂)가 발생하고, 남은 탄소는 유용한 연료나 화학 원료로 전환된다. 기존 물 분해 수소 생산은 물 분자의 산소 결합을 끊어야 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면 플라스틱은 이미 에너지가 높은 유기 결합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분해된다. 연구진이 개발한 비결정질 니켈-인-황 기반 촉매(d-NiPS₃)와 황화 카드뮴(Cadmium Sulfide)을 결합한 시스템은 촉매 1g이 1시간에 약 0.08g(80mg)의 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이 반응을 100시간 이상 유지했다. 실험실 수준으로는 매우 높은 효율이다. 플라스틱 종류에 따라 생성물도 달랐다. 폴리에틸렌으로는 디젤 범위(C15~C18)의 올레핀 연료를, 페트(PET)로는 아세트산 등 화학 원료를, 혼합 폐플라스틱으로는 수소와 합성가스(Syngas)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비상시 도시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현장에서 바로 연료 전환할 수 있음을 뜻한다. 연구진은 2030년까지 겉보기 양자수율(AQY) 10% 달성, 즉 들어온 햇빛 에너지의 10%를 실제 연료 생산에 활용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2040년까지 파일럿 플랜트 구축, 2050년 산업 상용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미생물이 먹어 치우는 리빙 플라스틱 두 번째 연구는 제시하신 중국과학원 산하 선전 고급기술연구원(SIAT)의 주오준 다이 교수팀이 지난달 'ACS 응용 폴리머 재료(ACS Applied Polymer Materials)'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기술은 플라스틱 내부에 살아 있는 미생물 포자(spore)를 넣어두는 방식이다. 평소에는 휴면 상태라 일반 플라스틱처럼 안정적이다. 그러나 폐기 후 48~50도 환경에 놓이면 플라스틱이 부드러워지고 포자가 깨어난다. 이후 미생물이 효소를 분비해 플라스틱을 스스로 분해한다. 연구진은 특히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란 세균을 활용했다. 이 균은 안전성이 높고 내열성이 강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미생물 팀플레이'다. 한 균주는 플라스틱 사슬을 무작위로 절단하고, 다른 균주는 절단된 말단부터 차례로 분해한다. 마치 한 팀이 벽을 부수고, 다른 팀이 잔해를 치우는 식이다. 이 방식으로 연구팀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인 폴리카프로락톤(Polycaprolactone, PCL)을 4~6일 만에 98% 이상 분해하는 데 성공했다. 분해 후 남는 물질은 대부분 저분자 화합물이라 미세플라스틱 축적 위험도 낮다. 이 기술은 웨어러블 센서, 의료기기, 일회용 전자소자처럼 사용 후 회수가 어려운 제품군에 특히 유망하다. ◇한국은 이미 '원료'를 갖고 있다… 문제는 전환 기술 한국은 매년 수백만 톤의 폐플라스틱을 배출한다. 분리배출 체계도 세계적 수준이다. 문제는 상당량이 저품질 재활용이나 소각으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보면 이는 엄청난 전략 자원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에서는 폐플라스틱 기반 연료 생산이 긴급 대체 자원이 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 보고한 '탈플라스틱 순환경제 전환 추진계획'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플라스틱 1kg은 대략 10~12kWh 수준의 화학 에너지를 저장한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은 사실상 거대한 '도시형 유전'이다. 정유시설이 멈춰도 지방 산업단지나 항만 인근에서 소규모 태양광 광촉매 반응기를 돌리면 수소와 액체 연료를 생산할 수 있다. 여기에 미생물 기반 분해 플랫폼을 결합하면 플라스틱 회수-분해-연료화의 순환 시스템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광촉매는 실제 폐플라스틱 속 색소와 첨가제에 약할 수 있고, 장기 내구성이 검증돼야 한다. 미생물 기술은 아직 범용 플라스틱(PE·PP) 적용성이 제한적이다. 경제성 분석과 전과정평가(LCA)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석유를 수입해 플라스틱을 만들고 버리는 시대에서, 버린 플라스틱을 다시 연료와 원료로 돌려쓰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햇빛과 미생물은 그 쓰레기를 다시 에너지로 깨우는 열쇠가 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멈춰서는 대서양 해류…영화 투모로우가 현실로?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거대한 해류가 멈추면서 북반구에 갑작스러운 빙하기가 찾아오는 기후 재난을 그려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극적인 영화적 설정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오늘날 기상학자와 해양학자들은 영화 속 재앙의 핵심 원인인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AMOC) 혹은 대서양 남북 열염(熱鹽, thermohaline) 순환의 격변을 우려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기후 임계점(tipping point)' 중 하나로 지목하며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생명체의 거대한 혈관과도 같은 이 해류 시스템이 정말로 멈출 위기에 처한 것인지, 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살펴본다. ◇지구의 심장 박동, AMOC의 정체와 중요성 AMOC은 대서양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해류 시스템이다. 표층의 따뜻하고 짠 바닷물을 북쪽으로 운반하고, 북대서양 아(亞)극지 해역에서 차갑게 식어 밀도가 높아진 물이 심해로 가라앉은 후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 전 지구적인 해류 열염 순환의 일부를 말한다. 해류 열염 순환은 바닷물의 온도와 염분 차이에서 나오는 밀도 변화로 움직이는데, 이 거대한 '대양 컨베이어 벨트'가 지구 바다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대략 1000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지구의 중앙난방 시스템'처럼 작동하는데, 열·소금·영양분을 재분배한다. 특히, 유럽과 북미 지역의 기후가 위도에 비해 온화하게 유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르네 반 베스턴 박사팀은 지난해 9월 '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해양(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Oceans)'에 발표한 논문에서 AMOC은 북쪽으로 흐른 뒤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강력한 순환 구조에서 약하고 얕은 순환으로 '바뀔 수 있는' 기후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전이가 발생할 경우 전 지구적인 기후 격변이 불가피한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브레이크: AMOC이 약해지는 이유 최근 과학자들이 AMOC의 급격한 약화를 우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온난화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해류의 엔진'을 방해한다. 첫째, 북극과 북대서양 표층수 온도를 높여 해수가 차갑게 식는 과정을 방해해 차가운 물이 심해로 가라앉는 동력인 '침강'을 약화시킨다. 둘째, 결정적으로 그린란드 빙상(Ice Sheet)과 북극의 해빙이 녹아 막대한 양의 담수가 북대서양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민물은 바닷물보다 밀도가 훨씬 낮아 표층수가 심해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거대한 장벽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약화 추세는 관측 데이터에서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대학교의 발랑탱 포르망 박사팀이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21세기말까지 AMOC이 약 51%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기존의 많은 기후 모델이 예측했던 수치보다 훨씬 약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해류 시스템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구 역사의 기록: 과거가 보내는 엄중한 경고 과학자들이 미래의 해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는 근거 중 하나는 지구의 과거 경험 때문이다. 지구 역사에는 해류의 변화가 기후를 어떻게 뒤바꿨는지에 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루카스 게르버 등 연구진이 지난해 7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만1700년 동안의 홀로세 기간 AMOC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는 급격한 변동을 겪었다. 약 1만2900년 전부터 1만1700년 전까지 지속된 영거 드라이어스(Younger Dryas) 동안, 북미 빙하가 녹아 유입된 대량의 담수가 북대서양의 염분과 밀도를 낮추면서 AMOC이 급격히 약화되거나 사실상 붕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결과 북반구, 특히 그린란드와 유럽 지역의 기온이 수십 년 사이 10~15℃ 가까이 급락하는 급격한 한랭화가 나타났다. 또한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의 귀도 베토레티 박사는 지난 2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거대한 화산 분출과 같은 자연적인 충격조차 AMOC의 붕괴와 회복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베토레티 박사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인위적인 지구 온난화가 해류 시스템을 위험한 임계점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역설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컴플루텐세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7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과거 빙하기 종료 시기에 해류가 약화하면서 아프리카 연안 해양 생태계의 산소 공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는 해류의 변화가 단순히 온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 ◇AMOC 붕괴가 가져올 대재앙: 영화는 현실이 된다 만약 AMOC이 실제로 붕괴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영화 '투모로우'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한다. 첫째, 온도 체계의 붕괴다. 북서유럽의 기온은 최대 15℃ 급격히 떨어지면서 혹독한 겨울과 강력한 겨울 폭풍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남반구는 열을 북쪽으로 보내지 못해 더 심한 온난화에 시달리게 된다. 멕시코 만류(Gulf Stream)의 경로가 북상하면서 미 동부 연안은 국지적인 기온 급등과 해수면 상승을 겪게 된다. 위트레흐트대학교 연구팀은 “미국 케이프 해터러스 인근 해역(북위 35도 부근)의 상층 온도가 단 2년 만에 약 6.5℃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 탄소 순환의 역습이다. 독일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PIK) 연구팀이 지난달 '커뮤니케이션즈 지구 및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AMOC 붕괴는 남극 주변 심해의 대류를 자극해 심해에 저장돼 있던 막대한 양의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구 기온이 약 0.2℃가량 추가로 상승하는 가혹한 피드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는 '물폭탄'이 쏟아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AMOC 약화는 동아시아 지역의 대기 강(atmospheric rivers, 비구름의 흐름) 빈도를 연중 내내 높여 연간 강수량을 최대 470㎜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반도에 지금보다 훨씬 잦고 강력한 집중호우와 대홍수의 위험이 일상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학계의 뜨거운 쟁점: 언제, 어떻게 붕괴할 것인가? AMOC의 미래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의 전망은 다소 엇갈리며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KNMI) 연구팀은 지난해 9월 '환경 연구 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고탄소 배출 시나리오(SSP5-8.5) 하에서는 2100년 이후를 기간으로 분석한 모든 기후 모델에서 AMOC이 완전히 중단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저탄소 배출 시나리오에서도 AMOC이 붕괴 확률이 21%나 존재한다고 KNIM 연구팀은 덧붙였다. 서울대 국종성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논문에서 '소음 유도 붕괴(Noise-induced tipping)' 이론을 내놓았다. 국 교수팀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특정 수준에서 안정화하더라도, 대기 시스템 내부의 무작위적인 변동성(노이즈), 즉 지속적인 고기압 이상 현상 등이 축적되면 AMOC이 예기치 않게 임계점을 넘어 붕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리가 탄소 중립에 성공하더라도, 시스템이 이미 취약해진 상태라면 단순히 '운 나쁜 기상 현상의 연속'만으로도 거대 해류가 멈춰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노르웨이 비에르크네스 기후연구센터의 셰틸 보게 박사와 같은 연구자들은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대서양 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데이터를 근거로, 그린란드 인근의 바다 얼음 감소가 오히려 바다를 차가운 극지 대기에 노출시켜 해수의 냉각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해류를 유지시키는 복원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사샤 시네 박사팀이 지난해 11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다. 이들은 서남극 빙상의 붕괴로 인한 담수 유입이 오히려 북대서양의 해류 붕괴를 억제하거나 늦출 수 있다는 '빙상 간 상호작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지구가 가진 복잡한 피드백 시스템을 보여주지만, 해류의 유지가 또 다른 재앙(남극 빙하 붕괴)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인류에게는 여전히 가혹한 시나리오다. ◇AMOC 붕괴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AMOC이 약해지고 있다는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중국 과학원의 렌 치우핑 박사팀은 지난해 11월 '커뮤니케이션즈 지구 및 환경'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류 약화의 신호가 이미 적도 대서양 1000~2000m 깊이의 중층 수온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의 싱첸장 박사는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연구를 통해 지난 20년간 북대서양 서쪽 경계 해류의 수송량이 일관되게 감소했음을 관측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AMOC의 붕괴가 이미 진행 중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 '투모로우'의 빙하기가 내일 아침 당장 창밖의 풍경이 되지는 않겠지만, 최신 과학 연구들은 지구의 거대한 혈류인 AMOC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한계점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시나리오에서도 AMOC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기후시스템이 취약하다면, 향후 각국의 노력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고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음의 배출, 즉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 자체를 빠르게 떨어뜨리지 않은다면 파국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기후 대응이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해류 시스템의 복원력을 유지하기 위한 훨씬 더 정교하고 긴급한 수준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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