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하면 ‘오염 불평등’ 그림자 드리울 수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 시간 중이라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이른바 '새벽 배송' 카드를 꺼내 들면서 유통업계의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쿠팡 등 이커머스 기업의 급성장에 대응해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배송 시간대의 변화가 환경과 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새벽 배송 확대는 단순한 유통 규제 완화가 아니라, 대기 오염과 환경 불평등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정교한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밤에는 오염이 더 쌓인다"…토론토대 연구의 경고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시민·광물공학과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비(非)피크 시간대 상업용 배송이 대기 질 및 환경 정의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팀은 상업용 배송 트럭의 운행 시간을 낮에서 저녁·밤 시간대(비피크 시간대)로 전환할 경우, 대기 오염 물질의 농도와 공간적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밀 분석했다. 분석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부에 위치한 광역 토론토 및 해밀턴 지역(Greater Toronto and Hamilton Area, GTHA)이다. 그 결과, 배송 시간이 밤으로 옮겨지면 낮 시간대 교통 혼잡이 완화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대기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절반에 불과했다. 밤 시간대에는 오히려 대기 오염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핵심 요인은 '대기 안정성'이다. 낮에는 태양 복사열로 인해 공기가 활발히 위아래로 섞이며 오염 물질이 확산한다. 반면 밤에는 지표면이 식으면서 대기가 안정화되고, 오염 물질이 퍼질 수 있는 혼합 경계층이 매우 얕아진다. 이로 인해 디젤 트럭에서 배출된 오염 물질은 공기 중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표면 근처에 정체된다. 특히 블랙 카본(BC)과 이산화질소(NO₂)와 같은 자동차 기인 오염 물질은 밤과 새벽 시간대에 농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연구팀은 비피크 시간대 배송 시나리오에서 하루 평균 블랙 카본 농도가 소폭 상승하거나, 낮 시간대의 개선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류센터와 도로 인근은 '오염 핫스팟' 이러한 영향은 모든 지역에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물류센터, 대형 유통 허브, 고속도로 인근은 트럭 통행이 집중되며 대기 오염의 '핫스팟'이 되기 쉽다. 연구에 따르면 도로 화물 운송은 전체 주행 거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질소산화물(NOx) 배출의 약 65%, 초미세먼지(PM2.5) 배출의 약 69%를 차지할 정도로 오염 기여도가 높다. 특히 새벽 배송처럼 야간·새벽 시간대에 트럭 운행이 집중될 경우, 이들 지역 주민은 밤의 대기 정체로 인해 더 높은 오염 농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야외 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실내 공기 질 악화로 이어져 장기적인 건강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연구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문제다. 캐나다의 경우 물류 거점이나 고속도로 인근에는 이민자, 저소득층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낮 시간대 배송 감소로 인한 대기 질 개선 효과도 상대적으로 크게 누리지만, 동시에 밤 시간대에 집중되는 오염 증가의 피해 역시 가장 직접적으로 감내하게 된다. 그 결과, 배송 시간 조정이라는 정책 변화가 지역 간, 계층 간 대기 오염 노출의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야간과 새벽에 근무하는 배송 노동자들은 업무 특성상 대기 오염 물질이 지표면에 정체되는 시간대에 오염원이 발생하는 도로 위에서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트럭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은 교통 관련 대기 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 사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건강에 해롭다. 짧은 시간의 노출이라도 장기적인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해법은…전기차 전환과 경로 재설계 연구팀은 새벽 배송 자체를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전제로 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대안으로는 ▶디젤 배송 트럭의 전기차 전환 및 친환경 차량 도입 ▶주거 밀집 지역과 소외 계층 거주지를 피한 야간 배송 경로 재설계 ▶물류센터 주변 지역의 대기 질을 고려한 공간적 형평성 평가 ▶초단기 배송을 당연시하는 소비자 기대치 조정 ▶충전 인프라 구축과 친환경 물류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 확대 등이 제시됐다. 특히 배송 차량의 전기차 전환은 블랙 카본과 질소산화물 배출을 거의 제거할 수 있어, 새벽 배송으로 인한 대기 오염과 건강 피해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으로 꼽힌다. 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은 유통 경쟁력 강화라는 경제적 논리만으로 평가할 사안이 아니다. 배송 시간대의 변화는 특정 지역 주민의 건강권과 직결되고, 물류 시스템 전반의 환경 부담을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새벽 배송 확대를 논의할 때, 쿠팡과의 경쟁 구도나 소비자 편의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대기 오염의 공간적 불평등과 환경 정의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정책적 시야가 요구된다. 지속 가능한 유통 혁신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재활용 빙자 시멘트공장으로 몰리는 수도권 쓰레기

올해 본격 시행된 수도권 직매립 금지 이후 수도권 쓰레기의 충청지역 반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뜨겁다. 충청지역 민간 소각장으로 얼마만큼의 수도권 쓰레기가 반입되는지, 어느 수도권 지자체에서 쓰레기를 보내는지 관심이 쏠리고, 발생지 처리 원칙을 무시한 채 민간 소각장의 배만 불려준다는 논란도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당 지자체들은 민간 소각장을 대상으로 과다 소각 여부나 수도권으로부터의 반입량을 수시로 특별 점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와중에도 지나치게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시멘트 벨트로 일컬어지는 강원 강릉․동해․삼척·영월과 충북 제천․단양 등 6개 지자체다. 수도권 쓰레기는 보통 소각장으로 보내 소각 처리하기도 하지만, 중간 재활용업체에 들어가서 파쇄된 후 산업폐기물로 둔갑해 시멘트공장에서 처리되기도 한다. 이들 6개 지역의 9개 시멘트공장으로도 수도권 쓰레기가 반입되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들은 너무도 조용하다.시멘트공장 인근 주민들이 연일 수도권 쓰레기의 시멘트공장 반입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앞 1인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는 시멘트공장에 대한 수시 점검은 고사하고 관련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멘트 환경문제 국민대책위원회가 나섰다. 지난달 초 시멘트벨트 6개 지자체에 “수도권 생활폐기물 시멘트공장 반입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라"고 공개 질의했다. 시멘트공장의 폐기물 사용에 대한 환경오염과 안전성 우려가 계속되는 만큼, 수도권 쓰레기의 지역 반입 시 안정적 처리 방안을 함께 모색해 보려는 취지였다. 6개 지자체 중 충북 단양군과 강원 삼척시 2곳에서만 회신이 왔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시멘트공장 반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단양군은 지난달 22일 관내에 있는 한일시멘트·성신양회 두 시멘트공장과 환경적 가치 보호와 주민 우려 해소를 위해 수도권 생활폐기물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업무협약까지 체결했다. 어려운 시기에 대승적 결단을 해준 단양군과 삼척시에는 감사한 마음이다.하지만 여전히 강원 강릉·동해·영월, 충북 제천시는 묵묵부답이다. 그러는 사이 수도권 쓰레기가 이미 시멘트공장으로 반입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생활폐기물은 평택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낙찰받아 시멘트공장으로 반입하여 처리하고, 마포구는 원주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생활폐기물을 인근 시멘트공장으로 반입하고 있다. 강북구도 역시 원주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충북과 강원도에 있는 시멘트공장을 통해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지난 2024년 8월 법제처는 “재활용업체는 생활폐기물을 재활용 대상 폐기물에 추가할 수 없다"라고 법령 해석한 바 있다. 시멘트 공장은 재활용업 지위를 갖고 있는데, 재활용 대상이 아닌 생활폐기물을 수도권에서 가져와서 처리하는 것은 명백히 법령에 위반이다. 하지만 작금이 상황을 보면, 이런 법제처의 위법 해석이 무색할 정도다. 시멘트업체에서는 생활쓰레기를 대체원료, 보조연료라고 주장하면서 소성로에 넣어 태우고 있고, 기후부는 이런 시멘트업체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의 의도적 침묵과 회피, 방관이 길어질수록 주민들의 피해만 커질 뿐이다. 민간 소각장보다 위험한 곳이 시멘트공장이기 때문이다. 시멘트공장으로 반입되는 폐기물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하고, 환경 기준마저 허술하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은 시멘트공장이 270ppm으로 소각시설의 50ppm에 비해 5배 이상 완화돼 있다. 총탄화수소(THC)는 배출허용기준이 있지만, 굴뚝자동측정기기(TMS)로는 측정이 안 돼 실시간으로 관리가 안 된다. 국민의 안전과 환경은 어떠한 이유로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유입을 제한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대책 마련이 분주한 상황에서 시멘트 벨트지역 지자체만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강원 강릉·동해·영월, 충북 제천시는 쓰레기 떠넘기기와 환경 차별을 스스로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재활용을 빙자해 시멘트공장으로 수도권 쓰레기가 몰리는 이른바 '수도권 쓰레기받이'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는 방법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시멘트공장이 수도권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bienns@ekn.co.kr

낮 최고 12도까지 올라 ‘포근’…미세먼지는 ‘나쁨’

오는 11일 전국의 낮 최고기온이 영상권에 머물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겠다. 10일 기상청 단기예보에 따르면 11일 전국 최저기온은 -3∼4℃(도), 최고기온도 4∼12도로 전망됐다. 전국은 대체로 흐리다가 오후부터 점차 맑아지겠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내리던 눈과 비는 오전에 대부분 그칠 전망이다. 수도권과 충남권은 오전에, 충청권 내륙과 전라 내륙은 오후에 0.1㎜ 미만의 빗방울이 떨어지거나 0.1㎝ 미만의 눈이 날리는 곳이 있겠다. 국내 발생 미세먼지가 대기 정체로 계속 쌓이면서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청권의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 그 밖의 지역은 '보통' 수준으로 예상된다. 국외 발생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호남권과 대구·경북은 오후부터, 부산·울산·경남은 저녁에 '나쁨' 수준을 보이겠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낙동강변 공기에서 남세균 독소 불검출…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지난해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낙동강 주변 공기 중에서 남세균 독소를 분석했으나, 모든 시료에서 독소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세균은 녹조의 원인 생물로 마이크로시스틴 등 인체에 해로운 조류 독소를 생산한다. 조류 독소는 간 독성, 생식 독성 갖고 있어 인체에 해롭다. 기후부는 지난해 환경운동연합과 낙동강네트워크, 경북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낙동강 본류 5개 지점의 공기 중 남세균 독소를 조사한 결과, 모든 조사 지점에서 조류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C) 6종이 검출 한계 미만(불검출)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가 녹조가 수그러든 9월 이후에 진행됐고, 해외에서도 공기 중 조류독소 검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번 조사 결과만으로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공동 조사는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지난 2024년 여름 낙동강 주변 주민과 환경활동가 등 97명을 조사한 결과, 46명(47.4%)의 콧속에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 건강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기후부는 지난해 봄부터 시민사회와 공동조사를 추진했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난 가을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조사는 9월 15~25일 사이 ▶대구 화원유원지 ▶대구 달성보 선착장 ▶경남 창녕 남지 유채밭 ▶창원 본포 수변공원 ▶김해 대동선착장 등 5곳에서 진행됐다. 수변경계로부터 5m 이내에 채집 장치를 설치해 공기 시료를 채취했고, 별도로 강물(상수원수) 시료도 채취했다. 강물·공기 시료는 시민단체 측인 경북대 연구진과 기후부 국립환경과학원의 의뢰를 받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콘트롤센터에서 분석했다. 분석 결과, 5개 지점의 공기 시료 20개 모두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이에 비해 강물(원수) 시료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이 불검출부터 최대 328ppb(㎍/L)까지 검출됐다. 분석에 참여한 경북대 이승준 교수는 “녹조가 줄어드는 시기에 조사를 실시했고, 일부 채집일에는 비가 내리는 등 최적의 실험 조건은 아니었다"면서 “공기 속 독소 채집 시간도 2시간으로 짧았다"고 말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7일의 경우 대구는 6.6㎜, 북창원에는 1.1㎜, 기헤에는 2.6㎜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시료 채취 과정에서 풍향이나 풍속 등도 고려하지 않았다. 조사 지점별로 강물에서 검출된 조류 독소 6종의 농도를 보면, 화원유원지가 최대 16ppb, 달성보 선착장에서는 최대 0.36ppb, 남지 유채밭에서는 최대 328ppb, 본포 수변공원에서는 최대 5.34 ppb, 대동선착장에서는 최대 8.94ppb를 기록했다. 이번 강물 조사에서 나온 최대치 328ppb는 기존에 기후부(환경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수치를 크게 웃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수치는 2022년 7월 25일 낙동강 매리지점 수심 0.5m 표층 시료에서 검출된 41.9ppb, 같은해 8월 8일 같은 지점의 혼합시료 47.3ppb가 최고였다. 328ppb일 경우 정수장에서 99.7% 이상 제거해야 세계보건기구(WHO)의 마이크로시스틴 먹는물(수돗물) 수질기준(1ppb 이하)를 달성할 수 있다. 한편, 환경단체는 지난 2022년 여름 낙동강물에서는 조류독소 농도가 최대 3000~4000ppb 수준으로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환경단체는 효소결합면역항체법(ELISA) 키트를 이용해 200여 가지의 마이크로시스틴 전체 농도를 분석했다. 만약 조류 독소 농도가 4000ppb라면 99.9%를 제거해도 먹는물 수질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중국 꽃매미, 한국을 교두보 삼아 미국 침공에 성공하다

20여 년 전 한국 사회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낯선 곤충에 두려운 시선을 던졌다. 붉은색 날개의 꽃매미(주홍날개꽃매미)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해서 이 곤충을 '중국매미'로 불렀다. 도심 나무 그늘에서도 쉽게 발견됐던 이 곤충은 포도밭과 과수원을 덮친 해충이기도 했다. 유충과 성충은 나무의 즙을 빨아 먹기 때문에 나뭇가지가 말라죽는 원인이 된다. 배설물은 그을음병을 유발한다. 이 꽃매미(학명 Lycorma delicatula)가 10여 년 전부터 멀리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 미국 동부 지역에서 널리 퍼져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간간이 들려왔다. 미국에 피해를 입히는 꽃매미도 중국에서 직접 건너온 것으로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가 꽃매미의 글로벌 침입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이 여러 피해 지역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대학교 생물학과 연구팀은 최근 '영국 왕립학회보 B'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꽃매미는 중국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진출하는 단계적 확산 경로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라 침입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도시 환경에 적응한 꽃매미가 한국 진출 꽃매미는 문헌상으로는 1932년 국내에서 처음 보고됐으나, 이후 발견된 적이 없다가 2004년 천안에서 처음 나타났고 학계에 공식 보고됐다. 이후 수도권과 충청·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고, 포도·사과·복숭아 등 주요 과수에 피해를 입히며 농가의 경계 대상이 됐다. 방제는 쉽지 않았다. 살충제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도심 공원과 가로수, 철도·고속도로 주변 녹지까지 꽃매미 서식지가 확대됐다. 뉴욕대 연구팀의 연구는 바로 이 시기의 한국 개체군에 주목했다. 유전체 분석 결과, 한국의 꽃매미 집단은 중국 상하이 도시 개체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에 진출했을 때 이미 도시 환경에 적응한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었다. 연구팀은 꽃매미가 한국 침입에 성공한 이유로 도시 환경의 구조적 유사성을 지목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한국의 대도시는 고온의 열섬 현상, 반복적인 살충제 사용, 단순화된 녹지와 가로수 체계라는 점에서 중국 상하이와 매우 닮았다. 한국 도시 환경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은 스트레스 대응 능력, 대사 조절 능력, 화학물질 해독 능력이 더욱 강화됐다. 특히 살충제와 식물 독성 물질을 세포 밖으로 배출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선택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분석됐다. ◇'경유지'가 아니라 '교두보'였던 한국 이 연구가 기존 인식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한국의 위치를 단순한 중간 경유지가 아닌 '교두보(bridgehead)'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교두보란 침입종이 한 번 자리를 잡은 뒤 다시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발판이 되는 곳을 의미한다. 꽃매미는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며 개체 수를 늘렸고, 이 가운데 일부가 2014년 쯤 미국으로 유입됐다. 한국의 도시 환경은 침입 대상이 된 미국 동부 도시들과도 닮았다. 비록 미국으로 건너간 개체군은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 상태였지만, 이미 도시 생존에 필요한 핵심 유전 형질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의도치 않게 미국 침입을 가능하게 한 '중간 증폭기' 역할을 한 셈이다. 다시 말해 연구팀은 한국에서의 적응과 확산 과정이 미국 침입을 위한 '사전 적응 과정'으로 기능했다고 평가한다. 미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데 최적화된 개체를 골라내는 역할을 한국 도시가 수행했다는 것이다. ◇통합적 대응전략 없이는 피해 반복돼 연구팀은 꽃매미 이동과 확산 과정을 '인위적으로 유도된 침입 적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외래종이 새로운 나라에 도착해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지와 경유지에서 이미 인간이 만든 환경에 적응한 결과, 어디로 가든 침입에 성공할 수 있는 형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꽃매미 문제는 특정 국가의 관리 실패라기보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가 낳는 문제인 셈이다. 글로벌 대도시들이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연결된 생태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도시 확장이 계속되는 한 꽃매미와 같은 사례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는 국경 통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도시 녹지 정책, 생물다양성 관리, 외래종 대응 전략을 통합적으로 재설계하지 않는다면, 어느 국가든, 어느 도시든 또 다른 '글로벌 침입자의 교두보' 혹은 '증폭기'가 될 수도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획]칠곡군, 국립공원 팔공산 ‘한티재’ 불법 간판 난립… ‘흉물 전시장’ 전락 (中)

관리번호 없는 광고물 다수…무허가 설치 의심 간판 도로변 점령 폐업 간판 수년째 그대로…철거 명령·행정조치 사실상 '유명무실' 옥외광고물 단속 권한 칠곡군에 있지만 현장 관리 손길 미치지 못해 국립공원 팔공산 한티재 일대 도로변에 난립한 불법·무질서 광고물은 단순한 경관 훼손을 넘어 행정 관리 부실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광고물 관리 책임은 지자체에 있지만, 현장에서는 단속과 정비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경제신문은 2회차에는 불법 간판 설치 구조와 단속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글싣는순서 1:국립공원 팔공산 맞나…한티재 진입로 불법 간판 난립, 관광객 첫인상 훼손 2:불법 간판 누가 세우고 누가 방치했나…칠곡군 단속 사실상 손 놓아 3:국립공원 품격 훼손 언제까지…칠곡군 관리 책임과 정비 대책 시급 ​ ◇폐업 간판도 장기간 존치 정황…칠곡군 “전수 조사 후 행정조치 검토" 칠곡=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팔공산 국립공원 입구인 칠곡군 동명면 한티재 일대 도로변에 설치된 광고물 상당수에서 허가번호나 관리번호 표시가 확인되지 않는 등 관리 공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광고물은 폐업 이후에도 장기간 철거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옥외광고물 관리 책임이 있는 지자체의 실효성 있는 점검과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경제신문 취재 결과, 한티재 일대 도로변에 설치된 광고물 30여 개 가운데 상당수에서 허가번호 또는 관리번호 표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일부 광고물은 번호 표시가 없거나, 훼손 또는 노후화로 인해 식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현행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허가 또는 신고 대상 광고물은 관리번호 또는 허가 표시를 부착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는 광고물의 적법성 여부와 관리 주체를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관리 기준이다.옥외광고물 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허가 절차를 거친 광고물은 관리번호가 부착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번호가 없거나 식별이 어려운 경우 설치 경위와 허가 여부에 대한 행정 확인이 필요한 광고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리번호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즉시 불법 광고물로 단정할 수는 없으며, 허가 여부와 설치 시기 등에 대한 지자체의 공식적인 확인 절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폐업 업소 광고물 장기간 방치 정황…안전·경관 문제 우려 현장에서는 이미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업소의 광고물이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도로변 곳곳에는△폐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점 간판△글자가 지워지거나 식별이 어려운 광고물△구조물이 부식되거나 기울어진 간판 등이 장기간 존치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옥외광고물 관련 법령에 따르면 광고물 설치자는 광고물 철거 의무를 가지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는 시정명령이나 철거 등 필요한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 인근 상인 이모(58) 씨는 “폐업한 지 오래된 업소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며 “철거나 정비가 이루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후 광고물은 도시 경관 저해뿐 아니라 구조물 부식이나 강풍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다. ◇옥외광고물 관리 권한은 지자체…주민들 “관리 체감 어려워" 옥외광고물 허가와 관리, 단속 권한은 관련 법령에 따라 칠곡군이 갖는다. 지자체는 광고물에 대해△허가 및 신고 관리△불법 광고물 조사△시정명령△이행강제금 부과△강제 철거 등의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현장에서 광고물 관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민 박모(64) 씨는 “오래된 간판이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정비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는 관리 대상 범위 확대와 행정 인력 여건 등 현실적인 행정 환경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관리 중요성 확대…기관 간 협력 필요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입구 구간의 경관 관리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공원 시설과 자연환경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나, 옥외광고물 허가와 단속 권한은 지자체에 있어 관리 주체가 구분돼 있다. 환경 관련 단체 관계자는 “국립공원 입구는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공간인 만큼 체계적인 경관 관리가 필요하다"며 “지자체와 관계 기관 간 협력을 통한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칠곡군 “허가 여부 확인 후 행정절차 진행…지속 점검 추진" 칠곡군은 해당 구간 광고물에 대한 실태 점검과 행정조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칠곡군 도시관리 담당 관계자는“해당 구간 광고물의 설치 허가 여부와 관리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조사 결과 관련 법령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자진 철거 계고 등 필요한 행정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장기간 설치된 광고물의 경우 설치 경위와 관리 주체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관리번호 미부착 광고물과 폐업 업소 광고물에 대해서도 전수 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국립공원 지정 이후 경관 관리 중요성이 커진 만큼 관련 부서와 협력해 광고물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지속적인 점검과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공원 입구 경관 관리, 실효성 있는 정비 필요 국립공원 입구는 방문객이 처음 마주하는 공간으로 지역 이미지와 직결되는 상징적 장소다. 광고물 관리 문제는 단순한 미관 차원을 넘어 안전과 행정 관리의 실효성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실태 점검 이후 실제 정비와 행정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 국립공원 입구 경관 관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기후 리포트] 재생에너지와 석탄 동시 확대…중국의 전략적 모순

지난해 전력 소비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중국은 석탄·원자력·가스 발전소 확충과 더불어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도입하며 새로운 발전 용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로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설치하고 전기차 보급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신규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승인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외부 시각에서 보면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중국이 과연 기후 위기 해결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기후·에너지 문제를 산업 전략과 성장 동력의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이에 따라 최근 학술 연구와 국제 분석 자료를 종합해서 중국의 속내를 짚어봤다. 결론은 중국의 정책은 '위선'보다는 경제 성장, 에너지 안보, 정치적 안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관리하려는 고위험 전략에 가깝다는 것이다. ◇청정에너지는 환경 정책이 아니라 '핵심 산업 정책' 중국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산업에 집중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이 부문이 이미 중국 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엔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핀란드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의 수석 분석가 라우리 밀리비르타와 벨린다 셰이프는 지난 5일 기후변화 분석 전문 매체인 '카본 브리프(Carbon Brief)'에 발표한 분석에서 2025년 중국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의 3분의 1 이상이 태양광·풍력·배터리·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산업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부문은 중국 전체 신규 투자의 약 90%를 차지했고, GDP의 약 11.4%에 해당하는 15조4000억 위안 규모로 성장했다. 이는 브라질이나 캐나다의 연간 경제 규모에 필적한다. 카본 브리프에 실린 이 분석은 중국의 기후 정책이 단순한 감축 의무 이행이 아니라, 미래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을 선점하기 위한 산업 전략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석탄 발전 증설의 역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석탄 정책은 외부 관찰자들에게 가장 큰 혼란을 준다. 핀란드 CREA와 글로벌에너지모니터(GEM)가 공동으로 수행한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에만 161GW(기가와트) 규모의 신규 석탄 화력발전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분석 보고서는 지난 3일 카본 브리프에 게재됐다. 공동 저자인 GEM의 크리스틴 쉬어러는 이를 “석탄 산업 이해관계자들의 마지막 돌진"이라고 표현했다. 중앙 정부의 장기적 탈탄소 목표와 달리, 지방 정부와 국유 발전 기업들은 향후 기후 규제가 강화될 것을 예상하고, 규제 창이 닫히기 전에 최대한 많은 프로젝트를 승인받으려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중국의 석탄 증설이 기후 정책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정책 전환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나타나는 방어적 투자 행동임을 시사한다. 석탄이나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공급업체와 장기적으로 체결한 경우가 많아 이를 활용하려는 시도도 한몫하고 있다. 발전소 가동률을 높여 이미 싼 값에 구매한 연료의 처리를 가속화하려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화석연료를 멀리는 분위기 속에서 화석연료 가격이 내리면, 발전소는 값싼 연료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게 돼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이른바 '그린 패러독스(green paradox)'가 발생하기도 한다. ◇'1+N' 체계의 구조적 한계: 2030과 2060 사이의 간극 중국은 2030년 이전 탄소 배출 정점 도달과 206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1+N' 정책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여기서 '1'은 국가 차원의 최상위 가이드라인이고, 'N'은 에너지·산업·교통 등 부문별 실행 계획이다. 칭화대학교 공공정책관리학원의 장팡 교수와 미국 터프츠대학교의 켈리 심스 갤러거 교수 등이 지난해 9월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발표한 연구는 이 체계의 한계를 지적한다. 연구팀은 현재 정책 수준만으로도 2030년 탄소 피크 달성 가능성은 높지만, 206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에는 감축 강도와 정책 범위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현재의 1+N 정책만으로는 2060년에 약 43억 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특히 농업 부문의 메탄 배출, 시멘트·철강 등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비(非)에너지 배출, 그리고 CCS(탄소 포집·저장) 확대 전략이 미흡하다는 점이 구조적 약점으로 지적된다. 또, 중앙 정부의 설계와 지방 정부의 실행 사이의 불일치도 문제로 지적됐다. 중앙 집중식 계획과 지방의 보호주의가 충돌하면서 재생에너지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업과 산업 공정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1+N' 정책 패키지와 더불어, 국유 기업 및 에너지 시장의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방 정부의 '전시 행정'과 지역 불평등 중앙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의 21세기 중국센터의 웨이라 공은 지난해 12월 '카본 브리프'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지방정부의 기후 정책 참여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분석했다. 실질적 감축을 목표로 하는 '실행 중심 참여'가 있는 반면, 상급 기관에 보여주기 위한 '전시 행정(performative participation)'과 형식적 계획 수립에 그치는 '상징적 참여(symbolic participation)'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중간급 지방 관료들은 저탄소 시범사업을 상급자의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승진 기회를 확대하려는 유인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중국의 기후 정책이 외부에서 과장되거나 불균질하게 보이는 원인 중 하나다. 기후 정책의 또 다른 그림자는 지역 불평등이다. 중국과학원(CAS)의 왕푸는 지난해 12월 '환경 과학 기술'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의 탈탄소 전략이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하이와 저장성 같은 동부 연안 지역은 청정기술 산업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반면, 신장과 닝샤 등 서북부 지역은 여전히 에너지 집약적 산업과 오염 부담을 떠안고 있지만 경제적 보상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환경 부담과 경제 손실이 동시에 발생하는 '루즈-루즈(lose–lose) 구조', 즉 동반 불이익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또한 베이징화학기술대학교의 윈후이민 등은 지난해 8월 '환경 과학 기술'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급격한 전환이 석탄 의존 지역에서 대규모 실업과 좌초자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의 기후 정책은 '위선'이 아니라 '고위험 관리 전략' 종합하면, 중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진심이냐 위선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보이는 전진과 후퇴, 때로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정책 선택은 방향 상실의 결과라기보다,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세 가지 국가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에너지 수입 의존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석탄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안보를 유지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전기차·배터리 등 청정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워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려 한다. 동시에 급격한 전환이 초래할 수 있는 실업, 지역 격차, 사회 불안을 관리해야 하는 정치적·사회적 제약도 안고 있다. 이 세 목표는 동일한 속도와 방향으로 달성될 수 없다. 에너지 안보와 지역 안정성은 기존 산업에 대한 완충 장치를 요구하는 반면, 청정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은 빠르고 집중적인 구조 전환을 전제로 한다. 그 결과 중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중앙 정부의 장기적 탈탄소 비전과 현장에서의 석탄 유지·유예 정책이 병존하는 '이중 궤도' 형태를 띠게 되며, 이는 외부에서 볼 때 갈지(之)자 행보로 인식된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기후 문제를 국가 생존과 경제 패권의 문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해법은 환경적 일관성보다 경제적 안정성, 정치적 통제 가능성, 사회적 충격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결국 중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도덕적 위선의 산물이 아니라, 성공할 경우 거대한 전환을 이끌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심각한 내부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의 성공과 실패가 중국만의 이슈가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 체제의 미국이 국제 기후정치에서 리더십을 포기하고, 유럽연합도 주춤하고 있는 지금 전 세계가 중국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동계올림픽의 불편한 진실

지금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밀라노는 알프스 산맥을 배후로 둔 이탈리아의 대표 도시이고, 코르티나담페초는 알프스 산악 지역에 위치한 전통적인 겨울 스포츠 도시이다. 코르티나담페초는 1956년에도 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현재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기후 분석기관인 Climate Central에 따르면 코르티나담페초의 2월 평균기온은 1956년 대회 직후와 비교해 최근 10년 평균이 약 3-4도 상승하였다. 그 결과 1956년에 열린 코르티나담페초의 겨울 올림픽은 자연이 제공하는 환경 속에서 열렸던 반면, 지금은 인공 눈과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스포츠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코르티나담페초만의 일은 아니다. 겨울 스포츠 장소로 유명한 알프스 산맥은 한때 안정적인 겨울 기후를 자랑하던 지역이었지만 오늘날 알프스는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겨울철 평균 기온은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상승했고, 자연 강설량은 줄어들거나 변동성이 커졌다. 눈이 쌓여야 할 시기에 비가 내리고, 영하의 기온이 유지되어야 할 기간이 짧아지는 현상은 더 이상 이례적이지 않게 됐다. 이러다 보니 과거와 달리 동계 스포츠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스포츠'에서 '에너지에 의존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이번 대회를 두고 지속가능성을 표방한 올림픽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모순을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내린 눈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공 눈과 이를 보조하기 위한 인프라는 단기적 대응일 뿐,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인공 눈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과 에너지를 요구하게 되어 결국 악순환이 계속될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자연설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인공저수지를 만들고 수백 대의 제설기를 설치하여 인공 눈을 공급하였다. 이를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고, 이 비용들은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용들이 더욱 커질 것이고 재정 여력과 적응 능력이 충분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에 기후 피해와 경제적 손실로 인한 소득 격차가 생기며 그로 인해 지역 간 혹은 개인 간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국제 사회에도 적용된다. 지구온난화의 책임 여부와 상관없이 기후변화 적응 역량과 재원이 부족한 국가들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고, 결국 이것은 기후불평등과 기후정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언뜻 논점이 너무 확대된 듯 보이지만, 겨울 스포츠의 작은 변화는 나비효과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영향과 피해가 얼마나 빠르게 우리 삶 속에 파고들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기후위기 속에 치러지는 동계 올림픽의 불편한 진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후변화를 단순히 환경 이슈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 지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사회가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과 지속가능한 전환을 통해 자연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겨울 스포츠는 여전히 소중하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동계 올림픽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변화한 기후 속에서 비용을 감수하며 겨울을 인공적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삶의 방식을 전환할 것인지. 모든 것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bienns@ekn.co.kr

[기획] 칠곡군, 국립공원 팔공산 ‘한티재’ 불법 간판 난립… ‘흉물 전시장’ 전락 (상)

국립공원 진입로 곳곳 대형·노후 광고물 난립…자연경관 대신 '간판 숲' 폐업 업소 간판까지 수년째 방치…관광객 “국립공원 이미지 훼손" 지적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이후에도 미정비…칠곡군 경관 관리 부실 논란 ​ 202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은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국가 자연자산이다. 그러나 칠곡군과 군위군 경계에 위치한 한티재 일대는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불법·무질서 광고물이 난립해 관광객 이미지 훼손은 물론 경관 훼손 논란까지 낳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현장 취재를 통해 불법 간판 실태와 관리 책임, 행정 대응의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짚는다. ​ 글싣는순서 1:국립공원 팔공산 맞나…한티재 진입로 불법 간판 난립, 관광객 첫인상 훼손 2:불법 간판 누가 세우고 누가 방치했나…칠곡군 단속 사실상 손 놓아 3:국립공원 품격 훼손 언제까지…칠곡군 관리 책임과 정비 대책 시급 ​ ​◇국립공원 승격 이후에도 무질서 간판 그대로…칠곡군 “현장 확인 후 조치 검토" 칠곡=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주요 진입로인 칠곡군 동명면 한티재 일대는 무질서하게 설치된 광고물들이 정비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경관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립공원 입구라는 상징적 공간이 각종 간판으로 뒤덮이면서 자연경관 훼손은 물론 관광지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 국립공원 표지석 주변 무질서 간판 다수 확인 8일 오후 찾은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팔공산 한티재 입구 일대 도로 양측에는 음식점, 카페, 농산물 판매장, 숙박시설 등을 알리는 광고 간판들이 다수 설치돼 있었다. 일부 간판은 도로변 경사면과 숲 가장자리, 가드레일 인근에 설치돼 있었으며, 노후화로 인해 녹이 발생하거나 기울어진 상태로 남아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또 영업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시설의 간판이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장 상황만으로 해당 광고물의 적법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국립공원 진입로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광고물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상 확인됐다. ◇관광객 “국립공원 이미지와는 거리감 느껴" 팔공산 한티재는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팔공산으로 진입하는 주요 통행로 가운데 하나로, 많은 방문객이 이용하는 구간이다. 그러나 일부 방문객들은 국립공원 입구 경관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구에서 가족과 함께 방문한 이모(43) 씨는“국립공원이라고 해서 자연적인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입구에 간판이 많이 보여 다소 혼잡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방문한 등산객 박모(51) 씨도“국립공원 입구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경관 관리가 조금 더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국립공원 지정 이후 경관 관리 중요성 확대 팔공산은 2023년 12월 환경부 고시에 따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립공원 지정은 자연경관 보호와 체계적인 관리가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국립공원 및 인접 지역의 경관 관리 중요성도 함께 강조되고 있다. 특히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광고물 설치는 일정한 기준과 허가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광고물에 대해서는 정비 또는 철거 등의 행정조치가 가능하다. 다만 광고물의 적법 여부와 관리 책임은 개별 설치 시기, 허가 여부, 위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구체적인 행정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다. ◇주민들 “경관 개선 위한 관리 필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경관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명면 남원리 주민 김모(68) 씨는“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입구 주변 환경이 정비되면 지역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립공원 진입로 경관이 관광객의 첫인상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환경정책 관련 전문가 A씨는“국립공원 진입 구간은 상징적 공간인 만큼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관리가 중요하다"며“광고물 관리 실태에 대한 점검과 필요 시 정비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칠곡군 “현장 점검 후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 검토" 이에 대해 칠곡군은 광고물 관리 실태 확인 후 관련 법령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칠곡군 관계자는 “팔공산 한티재 일대 광고물 설치 현황에 대해서는 현장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관련 법령에 따른 허가 여부와 관리 상태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점검 결과 관련 기준에 맞지 않는 광고물이 있을 경우 관련 절차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며“국립공원 지정 취지에 부합하는 경관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국립공원 품격 유지 위한 지속적 관리 필요성 제기 국립공원은 자연경관 보호와 공공 자산으로서의 가치 유지를 위해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되는 공간이다. 전문가들은 국립공원 진입로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경관 관리가 국립공원의 상징성과 관광 환경 조성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해당 지역이 국립공원의 위상에 걸맞은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광고물 관리 실태 점검과 지속적인 경관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기후 신호등] 일자리 위협 산업로봇…탄소중립 앞당길 수는 있을까

글로벌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지난달 자사의 인공지능(AI) 챗봇이 한 달 동안 230만 건의 고객 상담을 처리하며 정규직 상담원 700명의 업무량을 대체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IBM 역시 향후 5년 내 백오피스 인력의 30%를 AI와 자동화로 대체하겠다며 신규 채용 중단을 선언했다. 영국의 BT그룹은 2030년까지 최대 5만5000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육체노동자를 대체하던 자동화의 물결이 이제 전문직 화이트칼라와 숙련 공정까지 정조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생산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자 노조가 “합의 없는 도입은 결코 안 된다"며 강력히 반발하는 등 이른바 '신(新) 러다이트 운동'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아틀라스는 지난달 초 미국 라이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 가전제품 전시회) 2026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과 '피지컬 AI'의 결합은 고용 시장을 뒤흔드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할 결정적 열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들이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하는 산업로봇이 어떻게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지 최근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한국 제조업의 풍경을 바꾸는 로봇: '생존'과 '그린'의 결합 한국은 로봇 강국이다.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밀집도가 1012대에 달해 2023년 기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의 도시·지역계획학과 연구팀은 'SSRN'에 공개한 논문에서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SMMs)들은 인건비 상승,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협동로봇(Cobots) 도입을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로봇화는 탄소중립 목표와 결합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5만 개의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탑재한 '반도체 인공지능(AI) 팩토리'를 구축했다. 여기서는 실시간 데이터 학습을 통해 제조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소모를 최적화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1월 당진 특수강 공장에 태깅 로봇을 도입해 오부착 오류를 최소화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줄이고 안전성을 높였다. 포스코는 4족 보행 로봇을 활용해 제철소 용광로 등 위험 설비를 정밀 진단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 대형 사고로 인한 환경 오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인텔리전트 팩토리'로 진화 중이다. 한화오션은 조선소 자동화율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로 용접 협동 로봇을 대거 투입해 작업 준비 시간을 60% 단축하고 정밀도를 높여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 산업로봇 도입 확대: 온실가스 감축의 강력한 동력 산업로봇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지능형 제조의 핵심이다. 중국 쓰촨대학교 경제학부의 왕젠룽 교수팀은 2023년 '사회 속 기술 (Technology in Societ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업로봇의 확산이 기업의 탄소 배출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 동난대학교 경제관리대학의 야오웨이지 교수 등은 2024년 3월 '청정 생산 저널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산업로봇 사용량이 1% 증가할 때 탄소 배출량은 약 0.24%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브릭스(BRICS)에 속한 40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이러한 감축 효과가 로봇이 정밀 제어를 통해 에너지 낭비를 막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생산성 향상 효과'와 청정 제조 기술의 발전을 유도하는 '기술 진보 효과'를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과 무역 구조의 고도화 로봇 도입은 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도록 도와 간접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중국 광업기술대학교 경영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7월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로봇을 통한 지능형 제조는 가공·조립 위주의 저부가가치 공정에서 연구개발(R&D)과 설계 중심의 고부가가치 단계로의 이전을 촉진하는 '가치사슬 등반 효과'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 집약적 공정이 줄어 전체 탄소 배출량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샤오싱대학교 경영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데이터 과학 및 관리 (Data Science and Management)'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산업로봇의 적용이 수출 제품에 포함된 탄소 배출 강도(CIE)를 유의미하게 감소시켜, 국제 시장의 엄격한 환경 규제를 준수하는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서 CIE(intensity of CO2 emissions embodied in manufacturing exports)는 제조업 수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집약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수출 무역에 포함된 전체 탄소 배출량을 수출을 통해 창출된 총 부가가치로 나눈 비율로 계산한다. 이 지표는 특정 국가나 산업의 수출 제품이 얼마나 탄소 효율적인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국제적인 환경 규제 준수나 수출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고숙련 인적 자본: 로봇의 탄소 감축 효과를 완성하는 열쇠 로봇 도입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운영하는 인적 자본의 고도화가 필수다. 중국 시안교통대학교 경제금융대학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연구팀은 2024년 6월 '혁신과 녹색 발전 (Innovation and Green Develop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고숙련 노동력이 로봇의 정밀 조작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함으로써 탄소 감축 효과를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서 언급된 고소득 전문직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행이 특허 데이터와 직무 데이터를 결합하여 산출한 'AI 노출 지수'를 분석한 결과, 의사(일반의 및 전문의), 회계사, 자산운용가, 변호사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AI 대체 위험이 높은 직업군은 역설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임금 수준도 높은 전문직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의 핵심 업무인 방대한 전문지식 학습, 문서 및 보고서 작성, 논리적 추론, 규정 및 판례 검색 등의 영역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이 가장 빠르게 능력을 향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노출 직종 내에서도 단순 정보 전달이나 기초 자료 조사 같은 정형적 업무는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기획, 심층 해설, 관계 형성 등 '기계가 하기 어려운 역할'로 이동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AI나 로봇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도구로 부려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유연성이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 피지컬 AI(산업로봇 등) 시대에 노동 유연성은 기술 도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산업 구조를 저탄소 기반으로 재편하는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로봇 도입은 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노동 요소가 지역이나 산업 간에 자유롭게 흐를 때 더욱 강화된다. 특히 인력 수급이 어려운 지역으로 숙련된 인재가 유연하게 유입될 때 산업로봇의 탄소 감축 기여도는 극대화된다. 로봇은 단순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수작업을 대체하는 '노동 대체 효과'를 유발한다. 이때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돼 더 가치 있고 지능화된 직무로 유휴인력이 신속하게 재배치(Reallocation)되면, 산업 전체의 에너지 효율과 노동 생산성이 동시에 향상된다. 피지컬 AI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노동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직무를 전환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훈련 체계는 필수적이다. 노동자가 로봇을 도구로 부려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때, 기업은 단순 생산량 확대를 넘어 공정의 '청정화'와 녹색 기술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피지컬 AI 시대에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완화는 단순히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지능형 제조 기술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탄소중립의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경계해야 할 '에너지 반등 효과'와 정책적 해법 그러나 로봇 도입이 생산 효율을 높여 오히려 생산 규모를 급격히 확대시키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이른바 '에너지 반등 효과(energy rebound effect)'는 탄소중립의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쓰쵠대학교 왕젠룽 교수는 로봇 가동에 필요한 전력이 여전히 화석 연료에 의존할 경우 감축 성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반등 효과'를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재생 에너지 인프라의 통합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 공장 지붕 등에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해 로봇 가동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녹색 기술 혁신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터키 오스팀 기술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AI 기반 청정 에너지 특허와 로봇 기술이 결합될 때 탄소 감축 효과가 극대화되므로, 정부는 '더러운(Dirty)' 혁신 대신 '녹색 혁신'에 R&D 자금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로봇 도입을 통해 얻은 탄소 감축 성과를 탄소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저탄소 기술을 채택하게 될 전망이다. ◇ESG 경영과 산업로봇의 시너지 효과 투명한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는 산업로봇 도입을 가속화하는 비료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 충칭 메카트로닉스 직업기술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8월 '사이언티픽 리포츠'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일수록 정밀 제조와 폐기물 감소가 가능한 로봇 기술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이를 통해 환경적(E) 성과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ESG는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춰 중소기업이 초기 투자비가 비싼 로봇을 도입할 수 있는 금융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로봇은 다시 실시간 데이터 모니터링을 통해 기업의 탄소 배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도와 ESG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인지 역량과 지능형 로봇의 협업이 여는 저탄소 미래 현대자동차의 '아틀라스'의 산업 현장 투입 추진이나 글로벌 기업들의 인력 감축 사례에서 보듯이 산업로봇과 AI의 확산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중국 난징항공우주대학교 경제경영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4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AI와 로봇을 통해 경제 구조를 '가볍고 깨끗하게'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로봇 도입으로 발생하는 초과 이익을 노동자 재교육과 재생 에너지 전환에 재투자함으로써, 일자리 위기를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이라는 인간 특유의 인지 역량을 로봇의 정밀함과 결합할 때, 비로소 기술은 일자리를 뺏는 기계가 아닌 탄소중립 시대를 여는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배너